최치원이 마신 후 총명해졌다는 총명수는 바위 속에 물이 고여 있는 모양새다. 물이 고여 있어 수질이 좋아 보이진 않고 바가지도 없어 마시지는 않았다. 절벽 아래 테라스에 자리 잡은 응진전에 들렀으나 둘러볼 만한 것도 없고 내리쬐는 햇볕이 너무 따가워 이내 그늘진 산길로 쏙 숨어 버렸다.
왔던 길을 거슬러 오르면 김생굴이다. 김생굴은 신라의 명필 김생이 수학했던 곳이라 전한다. 다가가노라면 우선 반원형의 큰 굴이 있고, 그 위에 작은 굴이 또 하나 있는데, 위쪽에 야트막한 돌담을 쌓아둔 곳이 김생의 수도처라고 전한다. 이 좁고 궁벽한 곳에서 무려 10년간 서도에 정진했다는 김생은 왕희지에 필적할 만한 천하명필로 중국에까지 널리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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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지난해 새로 만든 하늘다리. 선학봉과 자란봉을 잇고 있으며 해발고도 800m 지점에 위치한 90m 길이의 국내 최대 구름다리다. 2. 국내 최대 규모의 구름다리인 하늘다리. 3. 하늘다리에서 본, 감탄을 자아내는 암봉.
한동안 오름길에 몸을 던져 잡스런 머릿속을 백지로 씻어낸다. 그렇게 머리를 비우고 땀으로 오른 경지는 자소봉의 보일 듯 보이지 않는 중용의 경지다. 암봉 중간의 너른 테라스가 등산인들의 실질적인 정상이다. 표지석과 망원경이 쉬었다 가라 한다. 암봉 중간이라 남쪽 풍경은 바위에 가려 반만 보인다. 그래서 보일 듯 보이지 않는 산 전경은 은은한 맛이 있다.
능선을 타고 하늘다리를 향해 간다. 곳곳에 기암들이 솟아 있어 왼쪽 오른쪽으로 우회한다. 탁필봉은 뾰족하게 솟은 탓에 우회 등산로에 정상 표지석을 세워 놓았다. 하긴 표지석이 없다면 앞만 보고 가는 탓에 탁필봉 곁을 지나고 있는지도 모를 정도다. 연적봉은 철계단이 있어 오를 수 있다. 나무가 있지만 사이로 보이는 전망이 시원하다.
청량사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는 뒤실고개부터는 거의 시장통이다. 샌들이랑 운동화 신은 관광객들이 왁자지껄이다. 산에 등산복을 입은 이들이 평상복 입은 이들보다 훨씬 더 적을 정도니 하늘다리가 관광객들에게 얼마나 인기인지 알 만하다. 하늘다리는 봉화군이 21억 원의 예산을 들여 1년여의 공사 끝에 지난해 5월에 완공한 구름다리이다. 선학봉과 자란봉을 잇는 하늘다리는 해발 800m 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90m 길이로 국내 산에 설치된 구름다리 중 최대 규모다. 그러나 워낙 튼튼하게 만든 탓에 출렁거림이 덜해 공포감을 느낄 정도는 아니다. 다리 중간에는 1m 크기의 밑바닥을 강화 유리로 해놔 발아래를 보는 스릴을 맛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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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좌) 탁필봉 옆을 지난다. 거칠게 솟은 암봉이므로 표지석이 봉 아래 등산로에 있다. (우) 어풍대에서 본 청량사. 주변의 기암과 잘 어울리는 깔끔한 절이다.
연두색으로 깔끔하게 칠한 것이 한눈에 봐도 걷고 싶은 생각이 들게 잘 만들어졌다. 다만 자세히 보면 두 암봉을 연결한 다리이기에 바위를 깎고 만든 것을 알 수 있다. 매력적인 청량산의 암봉을 깎아 만든 다리이니 산꾼의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 그럼에도 관광객들은 “왜 케이블카를 안 만들어서 이렇게 힘들게 올라오게 하냐”며 “가는 길에 봉화군청에 항의해야겠다”고 이해할 수 없는 말을 쏟아놓는다. 산에선 산길을 걷는 게 당연한 것이거늘,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산정을 ‘날로 먹으려 드는’ 사고방식이 아쉽다.
하늘다리 한가운데서는 물론 조망이 좋다. 맞은편의 축융봉은 평범한 육산의 산세로 수더분하게 서 있다. 저 수더분한 산에서 본 청량산의 풍경이 얼마나 화려한지 여기 있는 인파는 모를 게다. 시간 여유가 있다면 축융봉에 올라 청량산을 즐겨 보길 권한다.
의상봉은 나무로 둘러싸인 헬기장이다. 서쪽으로 5분 정도 가자 절벽 위의 낙동강 전망대가 있다. 반짝반짝 빛을 내며 흘러가는 이나리강이 살아 있는 듯 생기 있다. 래프팅을 즐기는 고무보트들이 작게 보인다. 땀에 흠뻑 젖은 등산복이 축축해 마음 같아선 하산을 생략하고 바로 강에 풍덩 뛰어들고프다.
관광인파 속에 묻혀 왔던 길을 되돌아간다. 뒤실고개에서 청량사로 바로 내려선다. 돌계단이 끝도 없이 나온다. 이래서 관광객들이 그토록 투덜거렸구나 싶다. 깔끔하게 정돈된 청량사는 탑에서 본 풍경이 운치 있다. 절 오른편으로는 암봉이 거칠게 솟아 산사의 운치를 더한다.
청량사에서 도로를 따라 선학정으로 하산한다. 호스에서 흘러나오는 계곡물이 너무 시원해 손만 씻으려다 발을 담그고 이내 머리까지 감는다. 뜨겁게 달구어진 몸이 한순간 차가워지며 머릿속까지 상쾌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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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량산 개념도
산행길잡이
>>산행코스
청량산 산행은 짧고 굵다. 산이 높거나 크지 않지만 오름길은 화끈한 맛이 있다. 바위가 많은 산이지만 등산로상 위험한 코스는 없다. 일반적인 산행 경로는 입석에서 산행을 시작, 응진전과 어풍대~김생굴~자소봉~하늘다리~청량사로 도는 코스다. 주봉이 의상봉이지만 딱히 볼 게 없는 헬기장이라 생략해도 무방하다.
청량산을 제대로 보려면 축융봉 산행을 하는 게 제격이다. 정상에 올라서면 청량산 육육봉이 한눈에 드는 것이 청량산에서 본 여느 풍경보다 더 낫다. 축융봉은 성곽으로 오르는 것이 최단 코스이며 위험한 코스는 없다. 하산은 공민왕당으로 해도 되지만 딱히 볼 게 없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길이라 올라온 길로 다시 내려서는 게 더 낫다.
>>교통(지역번호 054)
봉화의 청량산이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안동을 기점으로 삼는 것이 더 가깝고 편리하다. 동서울터미널에서 안동행 버스가 6시부터 저녁 8시 반까지 20분 간격으로 운행하며 1만5,600원에 2시간50분 정도 걸린다. 안동에서 청량산행 버스는 1일 5회(05:50 08:50 11:50 14:50 17:50) 운행하며 50분 소요에 요금은 2,000원. 안동시외버스터미널 입구 오른편의 버스정류소에서 67번 좌석을 타면 된다. 청량산이 종점이다. 이 버스가 다시 안동으로 되돌아 나오며 06:50, 10:20, 13:20, 16:20, 18:40분에 출발한다.
동서울에서 봉화행 버스는 1일 6회(07:40, 09:40, 11:50, 13:50, 16:10, 18:10) 운행하며 1만5,100원에 2시간40분 정도 걸린다. 봉화에서 청량산행 버스는 1일 4회(06:20, 09:20, 13:30, 17:40) 운행하며 되돌아 나간다.
>>숙박
청량산관리사무소 근처에 식당 겸 민박이 여럿 있다. 청량산쉼터민박(054-673-2694), 강변민박(673-6745), 청량산맛고을식당(673-8854), 다래식당민박(673-9005), 대진마트(673-4179), 까치소리식당(673-9777), 그루터기식당(673-5450) 등이며 청량산폭포 앞에도 청량산폭포슈퍼민박(672-1488)이 있다. 청량정사 옆에 있는 산꾼의집(672-8516)에선 이대실씨가 무료로 차와 컵라면을 준다.
/ 글 신준범 기자
사진 허재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