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11장 연구
두 증인의 활동
김 유곤
대환난의 전반부인 전3년 반에 두 증인이 나타나 전 세계를 다니며 예언을 한다. 그런데 두 증인의 출현에 앞서 종말 성전이 이방인에게 42개월 동안 짓밟힐 것이 언급되어 있다. 두 증인의 정체는 대환난기의 전반부에 나타나 작은 책의 비밀을 선포할 종들이다. 두 증인은 꼭 두 사람이 아니다. 종말에 나타날 상징적인 모세와 엘리야다. 144000명이 두 증인이다[자세히 설명하려면 너무 길어지기에 요점만 써 나간다]. 구약의 모세는 율법의 대표이고 엘리야는 예언자의 대표이다. 신약에 와서 변화산상에서 이 둘이 예수님과 회동했다.
종말에 모세와 엘리야의 정신을 계승할 두 사람이 곧 두 증인이다. 문자 그대로 두 사람은 아니고, 전세계에 파송될 종말시대의 종들의 총칭이다. 입의 불로 원수를 소멸한다. 하늘을 닫아 그 예언하는 날 동안 비가 오지 못하게 한다. 물을 바꿔 피가 되게한다. 이러한 사역들은 엘리야(불의 종), 모세(물의 종)의 사역을 단박에 연상시킨다. 물과 불은 자애와 심판을 동시에 상징한다. 이들은 인류 역사의 추수(수확)기에 1260일 동안 예언 사역을 다 마친 후 짐승 즉 적그리스도와의 싸움에서 순교한다. 그리고 승천한다.[이상이 11장의 개요다]
성경에서 두 사람은 법적 증인의 수다. 이러한 두 증인의 예는 소돔과 고모라 성에 내려온 두 천사, 여리고 성의 두 정탐병, 둘 씩 파송 받은 열두 제자, 둘 씩 파송 받은 70인, 주님이 부활한 장소에 나타난 두 천사, 승천하시던 때의 두 천사 등등 매우 많다. 뒤에 더 자세히 쓰겠다. 그런데 계11:3 에 나오는 두 증인이란 단어엔 정관사가 붙어 있다. 특정 인물들이다.
1. 두 증인의 사역 도구(연장:Tool)
또 내게 막대기 같은 갈대를 주었다. 그 천사가 서서 말했다: 일어나 하나님의 성전과 그 성전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측량해라. 하지만 성전 밖에 있는 뜰은 그냥 남겨두고 측량하지 말아라. 그것은 이방인들에게 주었고 그 이방인들이 42개월 동안 거룩한 도성(예루살렘시)을 유린할 것이기 때문이다(11:1-2).
고대 이스라엘은 갈대로 자(尺)나 붓 등을 만들어 썼다. 헬라어로 정경(正經)을 카논 이라고 한다. 곧은 막대기라는 뜻이다. 칸나 즉 갈대라는 말에서 나왔다. 갈대는 인류가 맨 처음 사용한, 척도를 내는 도구다. 갈대는 약하다. 빠스칼도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하고 했다. 약해도 쪽 곧으면 요긴하게 쓰인다. 약한 걸 한탄 말고 굽을까봐 두려워해라. 다윗은 정직했기 때문에 하나님께 크게 쓰임 받았다. 사람들의 믿음과 행실을 측량하는데 있어서 그 표준(Standdard)이 되는 도구는 오류가 없는 곧은 갈대 곧 정경(칸논)이다. 정경만이 유일한 잣대다. (외경․위경은 제외됨) 이 기구를 사용하여 성전 ․ 제단 ․ 예배자의 신앙, 을 측량하라고 하였다. 성전 바깥 마당은 측량하지 말라고 한 이유는, 42개월간 이방인에게 내주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여기에 성전이란 단어가 나온다. 현재(2010년)는 예루살렘에 성전이 없다. 난 2007년 7월에 성지 순회를 했었다. 이슬람 사원(寺院)이 금빛 돔을 이고 서 있었다. 저 자리가 성전 터였는데...... 기가 막혔다. 그런데 계시록 11장엔 분명히 성전이 있는 걸로 돼 있다. 종말의 징조로 꼭 지켜봐야 할 대목이다. 그렇다. 머잖아 적그리스도가 나타나기 전에 세월질 것이다. 이스라엘 국 예루살렘 시에 하나님의 성전이 다시 세워졌다고 하는 뉴스를 보거든 종말의 카운트다운이 시작됐다고 보면 틀림없다. 그 때부턴 시한부 종말론을 매도해선 안 된다. 다니엘서의 70주 예언의 최종 7년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계시록 및 다니엘의 연구는 도락(道樂)으로 하는 게 아니다. 영원한 운명이 걸려 있다. 어려우니까 숫제 덮어두자. 그건 더 안 될 소리다.
2. 두 증인의 의복(옷)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겠다. 그러면 그들이 굵은 베옷을 입고(11:3).
옷은 사람의 성품과 인격의 표현이다. 그가 입은 옷을 보면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대충 알 수 있다. 두 증인은 굵은 베옷을 입었다. 큰 창녀 바벨론에 있는 교회 지도층은 자주색과 붉은 옷을 화려하게 입고 금․보석․진주로 치장했다. 두 증인은 조잡한 옷을 입었다. 굵은 삼베를 난 어렸을 때 시골에서 보았다. 값도 싸다. 그걸로 옷을 해 입으면 여름 공기가 잘 통하고 살에 붙어있지 않아 시원하다. 가느다란 모시옷은 어린양 예수님의 신부가 입는 의(義)의 세마포지만, 굵은 베옷은 슬픔을 나타내는 상주(喪主)의 옷이다(한국에서도 상주와 그 가족은 삼베 옷을 두른다). 참된 종들은 교회의 타락이 너무나 슬퍼서 굵은 베옷을 입고 회개를 촉구하는 강론(예언․대언)을 한다.
3. 두 증인의 사역 기간
1260일 동안 예언할 것이다(11:3 b) 이 기간은 다니엘의 70주 예언에서 마지막 한 주, 즉 7년의 절반에 해당되는 기간이다(단 9:27). 7년을 전3년 반 과 후3년 반으로 구분하는데 월(月)수와 일(日)수와 때(時)로 구분하기도 한다.
[계11:3] 1260일(전3년 반)= 두 증인의 예언 기간
[계11:2] 42개월(후3년 반)=적그리스도 통치기간[13:5]
[계12:6] 1260일(후3년 반)
[계12:14] 한 때, 두 때, 반 때(후3년 반)=성도들이 예비처에서 보호․양육 받는 기간
거룩한 성 예루살렘은 42개월 동안 유린 당한다,고 했다. 이방인의 날은 겨우 3년 반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인내하면 된다. 영원에 비하면 3년 반은 순식간이다. 그런데도 하나님의 선민 이스라엘 민족은 무지하다. 적그리스도가 교묘한 말로 꼬시면 거기에 넘어간다(단 8:23이하). 적그리스도는 처음엔 이스라엘국을 도와 성지를 수복(收復)해주고 또 그들과 협조해서 종말 성전을 건축해 주겠다고 조약을 맺는다. 이른바 7년 평화조약일 가능성이 크다. 선민 이스라엘은 깜빡 속아서 적그리그도를 자기네가 누천년 동안 고대해오던 메시야인줄로 착각한다. 그리하여 적그리스도 정권을 지지하면 그 보호를 받아 평화롭게 잘 살줄 알았다. 그게 아니었다. 이 정황을 선지자 이사야는 이미 예언해 두었다: “그러므로 예루살렘에서 이 백성을 다스리는 너희 오만한 자들아, 야훼의 말씀을 들어라. 너희는 자랑하며 이렇게 말하는구나!” “우리는 죽음과 계약을 맺고 무덤(스올)과 조약을 체결했다. 우리에겐 거짓과 허위라는 은신처가 있으니 제아무리 재앙이 밀어닥치더라도 그것이 우리를 해치지 못할 것이고 우리는 끄떡없을 것이다.”(사 28:14-15). [주: 죽음․스올․허위 등은 모두 악의 진영 즉 사탄의 세력을 은유함].
성전이 완공된 후 적그리스도는 서서히 본심을 드러낸다. 무엄하기 짝이 없게도 제가 성전 안에 들어가서 자칭 하나님이라고 참칭하면서 뭇 사람들에게 자기를 경배하라고 강요하기에 이른다.(살전 2:3-4). 모든 제사를 금지한다. 666 짐승의 표를 받아야 물품 매매를 허용한다는 법령을 제정한다. 선민 이스라엘은 그때 가서야 비로소 속았음을 깨닫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그 때 선민은 뒤늦게 떨쳐 일어나 적그리스도 정권에 반기(叛旗)를 든다. 그들은 즉시 적그리스도의 박해를 받는다. 하나님께서는 선민을 3년 반 동안 적그리스도에게 넘겨주신다(단 7:25, 9:27). 거룩한 성 예루살렘은 짐승 정권에게 유린 당한다. 성전은 더럽혀진다. 선민은 모욕과 박해를 당한다. 뒤늦게야 유대인은 자기네의 불민(不敏)과 불신(不信)과 완고(頑固)를 뉘우치고 오열(嗚咽)하며 회개한다. 그것이 후 3년 반 즉 한 때, 두 때, 반 때다.
4. 두 증인의 상징
이들은 이 땅의 주 하나님 앞에 서있는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다(11:4).
10절에는 두 선지자로 지칭되고 있다. 4절은 스가랴서에 나오는 환상중의 하나인, 촛대 좌우에 세워진 올리브(감람)나무 형상을 배경으로 깔고 있다.(슥4:3). 올리브나무는 지중해성 기후 지역에서 잘 성장하는 상록수다. 올리부유(油)는 식용유이자 등불을 점화하는 기름이기도 하다. 그래서 올리브나무하고 촛대 하고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 두 증인을 감람木과 촛대로 묘사한 이유는, 그들이 죄악으로 관영한 세상 가운데서 기름을 태워 빛을 비추는 것과 같은 예언자적 사역을 떠맡게 될 것임을 상징한다.
성경 전체를 보더라도 두 증인의 맥(脉)은 두텁다. 롯의 시대에 소돔성에 파송되었던 두 천사를 필두로 해서, 모세와 아론도 짝을 이루어 이집트 탈출에 성공했다. 여리고성에 파송된 두 정탐군도 한 팀을 이루어 기생 라합과 그 가문을 구출했다. 스룹바벨과 예수아[一名 여호수아]도 한 조(組)가 되어 이스라엘을 바벨론에서 이끌어냈다. 변화산상에 모습을 홀연히 드러낸 한 쌍의 거인군은 바로, 모세하고 엘리야였다.
모세와 엘리야⁃ 이 두 사람이야 말로 예수 그리그도의 재림시에 길을 예비할 두 증인의 원형(元型:prototype)이다.
5. 두 증인의 특수한 권능
누구든지 그들을 해치려 하면 그들의 입에서 불이 나와서 원수들을 삼켜버릴 것이다. 이처럼 그들을 해치고자 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죽임을 당할 것이다. 이 두 사람은 자기들이 예언하는 날 동안 하늘을 닫아 비가 내리지 못하게 하고, 물을 피로 변하게 하며, 원하는 때는 언제든지 여러 가지 재앙으로 땅을 칠 능력을 가지고 있다(계11:5-6).
하늘을 닫아 3년 반 동안 비가 오지 못하게 한 선지자는 엘리야(왕상17:1)였다. 나일강 물을 변화시켜 피가 되게 한 선지자는 모세(출7:19)였다. 이 두 선지자는 산(Living)자의 짝이다. 그래서 늘 함께 기록되고 함께 등장한다(말4:4-6. 막9:2-8). 그렇다고 해서 계11장에 나온 이 두 증인이 글자그대로 두 명은 결코 아니다. 전 세계에 쫙 깔려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심판을 선포하고 성도들을 이끌어 보호처[예비처․양육처․피신처]로 인도할, 엘리야와 모세의 정신․권능을 이어 받은 종말의 특수한 권능의 종 집단이다. 그들이 곧 144000인이다. (그러나 이것 역시 실제 수는 아니라고 난 본다).
6. 두 증인의 순교
두 증인이 자기네 임무를 마치는 때 무저갱에서 올라오는 짐승이 그들과 싸워 이긴다. 그리하여 그들을 죽일 것이다(11:7). 여기의 “짐승”은 적그리스도다. 악의 화신이다. 성경의 진리를 도용(盜用)하고 왜곡해서 세계인더러 자신을 현인신(現人神)인양 경배하게 만들고 존귀와 영광을 가로챈다. 눈의 가시인 두 증인을 마침내 잡아다 모조리 학살한다. 두 증인은 최종순교자의 영광의 반열에 들어선다. 그들에겐 무상의 영광이다. 하지만 우리에겐 하나의 의문이 떠오른다. 주님께서는 왜 악한 짐승의 손에 사랑하는 종들을 죽이도록 허락하실까? 하는 물음이다. 그 답으로 예수님 자신의 죽음을 제시하실 것이다.
나를 보아라. 나는 스스로 목숨을 내놓았노라. 두 증인군(群)도 스스로 택한 죽음이었다. 죽어야만 부활한다. 사람이 한번 죽는 것은 모든 인생에게 정해진 것이다(히9:27). 예수님처럼 죽으면 그보다 더 큰 영예는 없다. 모든 순교는 자발적이다. 억울하다고 여겨져서 이를 악물고 죽는 죽음은 순교가 아니다.
과연 두 증인의 순교의 장소 역시 그들의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곳이라고 했다. 그 영적 의미는 소돔 또는 이집트라고 했다(11:8). 소돔은 죄악의 도성이다. 변태 섹스로 인해 불심판이 내린 곳이다. 뉴욕과 서울과 홍콩이다. 무섭다. 요즘은 목사도 음란죄에 한 몫 끼고 있어 너무 창피하다. 이집트는 인간을 사탄의 노예로 만드는 곳이다. 어둠의 소굴이다. 믿음이란 찾아볼 수도 없고 패역과 육욕만 난무한 곳이다. 두 증인의 시체가 큰 성의 길바닥 위에 너절하게 뉘어져 있다고 했다. 육적으로 보면 아주 치욕적이다. 극심한 박해를 받아 죽고나서 시체라도 잘 안장돼야 할 것 아닌가? 그렇다, 치욕도 견뎌내야 한다. 예수님의 경우에는 부자인 아리마대 요셉이라도 있었다. 하지만 이들에겐 시체를 거두어주는 자도 없었다.
도리어 조롱했다. 장례도 못 지내게 했다. 전 세계에 그들의 시체가 널부러지게 방치했다. TV나 인터넷이나 스마트폰 등으로 시체들의 처참한 모습을 현장 생중계할 것이다. 적그리스도 정권이, 자기네를 대적하면 이렇게 몰살 시킨다면서 위협 방송을 해댈 것이다.
백성․족속․언어권․국가 중에서 사람들이 그 두 증인의 시체를 3일 반 동안 묵도하면서도 시체를 매장하지 못하게 할 것이다, 라고 했다(11:9).
백성․족속 등이란 말로 미루어 보아서 이들이 단지 두 사람은 아님을 알 수 있다.범(汎)세계적인 사건이다. 이들에 대한 모독을 보자. 그들은 축제 분위기에 빠져 서로가 예물을 주고받는다. 마치 예수님을 희롱하던 헤롯과 빌라도가 당일에 친구가 된 것처럼, 적그리스도 진영에서는 두 증인이 아주 죽은 줄로 착각하고 서로 기뻐한다.
7. 두 증인의 부활과 승천
3일반 후에 하나님께서 생명의 기운을 시체 속에 불어넣으시자 그들은 제 발로 일어섰다. 그 때 그 광경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두려워서 어쩔 줄 몰랐다(11:11).
생명의 기운이란 하나님께서 불어넣는 생명의 입김이다. 생명의 영(The spirit of life)이다. 버려진 시체가 3일반 후에 부활했다. 이것은 무슨 의미가 내포되었는가? 예수님은 3일동안 무덤에 묻히셨다가 부활하셨다. 그런가 하면 나사로는 4일간 무덤에 머물렀다가 되살아났다(요11:39). 예수님은 하늘에서 오신 분이므로 하늘 수인 3으로 부활하셨고, 나사로는 땅에 속한 사람이기에 땅의 수인 4로 다시 살아났다. 그런데 두 증인은 3일 반 만에 부활했다. 이것은 예수님의 3수 부활과 나사로의 4수 부활과를 연계시켜주는 영적 비밀이다. 그들은 부활의 도를 체득할 소명을 띠고 인류 종말에 이 세상에 나타났다. 그뿐 아니라 3일 반은 거룩한 성전 뜰을 짓밟는 3년 반을 축소시킨 기간이기도 하다(1日을 1年으로 계수함. 겔4:6).
그 두 증인은 <이리 올라와라!>하고 말하는 하늘의 큰 음성을 들었다. 그들은 원수들이 빤히 지켜보는 가운데 구름을 타고 두둥실 하늘로 올라갔다(11:12).
예수님 승천시는 눈이 열린 제자들만 구경했었다. 하지만 두 증인은 모든 원수들을 포함한 전 세계인이 육안 또는 온갖 메스미디아를 통해 그야말로 중인환시리(衆人環視裡)에 훠얼훨 날듯이, 그들이 평생 사모하던 하늘로 올라갔다. 부여받은 사명 다 마치고 승리한 자의 개선(凱旋)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