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답: ③
* 3성 6부 중앙관제 체제의 발해
발해의 중앙의 정치 조직은 3 성과 6 부를 근간으로 편성하였다. 정당성의 장관인 대내상이 국정을 총괄하였고, 그 아래에 있는 좌사정이 충·인·의 3부를, 우사정이 지·예·신 3 부를 각각 나누어 관할하는 이원적인 통치 체제를 구성하였다. 당의 제도를 수용 하였지만, 그 명칭과 운영은 발해의 독자성을 유지하였다
①, ⑤ 통일신라기의 지방 행정 조직은 9주 5소경 체제로 정비하여 중앙 집권을 더욱 강화하였다. 군사⋅행정상의 요지에는 5소경을 설치하여, 수도인 금성(경주)이 지역적으로 치우쳐 있는 것을 보완하고, 각 지방의 균형 있는 발전을 꾀하였다.
군사 조직도 체계적으로 정비하였다. 중앙군의 핵심은 9서당이었다. 서당에는 고구려와 백제 사람은 물론 말갈족까지 포함하여 민족 융합을 꾀하기도 하였다. 지방군으로는 10정을 두었는데, 9주에 1정씩 배치하고, 북쪽 국경 지대인 한주(한산주)에는 2정을 두었다.
② 발해는 10세기 초에 이르러 부족을 통일한 거란이 동쪽으로 세력을 확대해 오고, 발해 내부에서도 귀족들의 권력 투쟁이 격화되어 발해의 국력이 크게 쇠퇴하였고, 결국 거란의 침략을 받아 멸망하였다(926).
③ 발해는 무왕, 문왕 대의 발전을 토대로 중국과 대등한 지위에 있음을 대외적으로 과시하기 위하여 인안(무왕), 대흥(문왕) 등의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하였다.
④ 신라의 초기 연맹체의 전통을 유지한 대표적인 제도는 화백 회의였다. 귀족은 이를 통하여 국왕을 폐위시킨 적도 있었고, 새 국왕을 추대하는 데 영향력을 발휘하면서 왕권을 견제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