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육걱정없는세상 기자단 3기 - 두 번째 독서 모임 2023.04.06.(목) 최유미
《그냥, 사람》 홍은전
보고 싶은 만큼 보인다
《그냥, 사람》 이 책은, 딱 1년 전 동네 작은 책방으로부터 내 손에 들려왔던 책이다. 당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던 내게 끌렸던 ‘그냥’ 이라는 두 글자와 늘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제목에 나란히 붙어 있어서였던 것 같다. 나는 책이든 영화든, 종종 목차를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고 제목이나 책 표지 느낌만을 보고 집어 드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간혹 내가 예상한 것과는 전혀 다른 전개로 당황하기도 하지만, 우연히 들린 여행지에서 아름다운 풍경과 스릴을 맛보듯 나는 종종 그 방식을 택한다. 이 책 역시 그냥 소소한 사람들의 일화들이 모여 있는 가벼운 책일 것이라는 예상은 비껴갔지만, 또 다른 의미로 내게 다가왔다.
나이를 먹어 가며 ‘주변 모든 것들이 내가 아는 만큼 보이는구나’, ‘그리고 하나가 보이고 나면 또 더 많은 것들이 펼쳐지는구나’ 하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명품을 전혀 몰랐던 때(여전히 잘 모르지만)와 지금의 내가 다르듯, 4·3을 몰랐을 때와 알고 난 지금의 내가 제주를 바라보는 시선은 분명 다르다. 이 책은 내가 힘들고 아프게 경험하지 않았음에도 너무나 생생히 내가 잘 몰랐던, 어쩌면 모른 척 해왔던 다른 세계를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을 안겨주었다. 문득 내가 이 책의 서문을 꼼꼼히 읽었더라면 어쩌면 내려놓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태어날 때부터, 불의의 사고로 장애를 갖게 되거나 목숨을 잃게 된 사람들과 그 가족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또 인간들을 위해 한 평생 희생하다 죽음을 당하는 생명인 동물들의 이야기까지 이 책에 담겨 있다. ‘장애인과 그 가족들의 고단한 삶, 인간들을 위한 동물의 희생’ 정도는 누구나가 알고 있다. 그러나 과연 제대로 알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내가 손가락 클릭 몇 번이면 언제든 이용할 수 있는 ‘대한민국 최고의 버스’와 ‘장애인은 탑승할 수 없는 버스’는 하나의 버스라는 것, 잘못 설치된 지하철 엘리베이터 버튼 하나가 전쟁과 교통사고에서 목숨을 건진 건장한 장애 남성의 목숨을 잃게도 만든다는 슬픈 진실, 내겐 한없이 기쁨이기만 했던 아이의 취학통지서가 무릎 꿇고 애원해도 허가를 얻지 못해 설립되지 못한, 그래서 보낼 특수학교가 없는 부모에게는 받고 싶지 않은 고지서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내가 누리고 있는 많은 당연함과 편리함은 비장애인인 우리들만의 것이었구나 생각한다.
첫 아이를 가졌던 십여 년 전, 우연히 공장식 축산의 실태 영상을 본 충격으로 임신 중임에도 몇 달간 육식을 못했던 기억이 난다. 얼마 전 우연히 알게 된 다큐멘터리 ‘나의 문어 선생님’을 보고 개나 고양이만큼 지능을 가진, 사람과 교감이 가능한 문어를 또 한동안은 먹지 못할 것 같다 생각한다. 생선 눈을 바로 쳐다보지 못해 늘 다듬어진 생선밖에 사지 못하는 나는, 아이들의 건강을 위한다며 애써 해내야 했던 고기와 생선 다듬기를 줄여 나가려 한다. 며칠 전 마트 갔다 냉동고 한 켠을 빽빽하게 차지하고 있는 고기 대용 냉동제품들을 발견하곤 놀라웠다. 그렇게 세상은 조금씩 변하고 있다. 우리 집 저녁 단골 메뉴도 고기에서 이것들로 바뀌어야겠다.
어제 외출 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제주농아복지관’을 보았다. 늘 다니던 길인데 이게 여기에 있었구나 했다. 초보 운전 딱지를 붙이고 다니던 작년, 아이들 소아과 다녀오는 길에 지름길인 줄 알고 갔다가 좁은 골목길에 고생하고 다시 안 가리라 마음먹은 그 길에 그것이 있었다. 애써 관심 두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그곳에. 그리고 언론에선 여전히 고군분투하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 대표의 행보도 자주 눈에 띈다. 역시 아는 만큼 보인다.
솔직히 여전히 나는 이왕이면 좋고 예쁜 것만 보고 싶다. 그래서 슬프고, 무섭고, 무거운 것은 피하고 싶다. 그렇지만 나 역시 늘 좋은 모습일 수만은 없고, 언젠가는 좋은 모습이 아닌 나를 누군가가 제발 봐주었으면 하는 때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다시금 마음을 고쳐먹는다. 보고 싶은 것만 보는 마음에서, 보는 것조차 힘들더라도 마땅히 봐야 하는 것은 바라보자고. 그렇게 더 많이 보며 내 앎의 지평과 시선을 더 넓혀가 보자고, 그리고 거기서 멈추지 말고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려 노력해보자고.
첫댓글 제주 농아 복지관이 그런 골목에 있다니 씁쓸하네요.
좋은 것만 보고 싶다는 선생님 마음에도 공감이 갑니다. 마지막 문단을 읽으면서 직면하는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가를 생각하게 되네요.
선생님이 이 책을 어떻게 읽었을지, 느껴지는 글이예요. 첫 도입 문단부터 좋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