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3 편
하나님의 속성
. 신성한 조언자
. 1934년
3:0.1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신다; 우주의 아버지는 영원의 궤도를 다스린다. 그러나 바로 파라다이스 창조 아들들을 통해서 생명을 수여하는 바와 같이, 하나님은 이 아들들의 person(몸, 성격, 개인, 개체) 안에서 그 지역 우주를 통치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으니, 이 생명은 그의 아들들 안에 있다.” 이들 하나님의 창조 아들들은 회전하는 진화 우주 행성의 자녀들과 그리고 시간 영역에서 하나님 자신의 personal(성격적, 개인적, 성품적)을 표현한다.
높이 personalized(성격화, 개인성구현, 성품존재화)된 하나님의 아들들은 더 낮은 서열의 창조된 지성들에 의해서 분명하게 구별되고, 그래서 아버지의 무한함과 분별하기 어려운 보이지 않는 것을 그 아들들이 보상한다. 우주 아버지의 파라다이스 창조 아들들은 영원의 궤도에서, 그리고 파라다이스 Deities(신, 신품)의 personalities(성격, 인격, 개인성, 성품)에서, 본래부터 있는 절대성과 무한성 때문에 볼 수 없는 존재를 볼 수 있도록 계시하는 분들이다.
창조성은 하나님의 속성으로 보기 어렵다; 오히려 그것은 그의 행동하는 본성의 총합이다. 이 창조성의 우주적 기능은 첫째 근원 중심의 무한하고 신성한 실체의 모든 통합된 속성들에 의해 조절되고 통제되어 영원히 나타난다. 우리는 신성한 본성의 어떤 특성이 다른 본성보다 선행되는지 진지하게 의문을 품지만, 그러나 만약에 그렇다면, Deity의 창조적 본성이 모든 다른 본성들, 활동들, 속성들보다 우선할 것이다. Deity 창조자 신분은 하나님 아버지라는 우주적 진리 안에서 결론을 맺는다.
1. 모든 곳에 계시는 하나님
3:1.1 우주 아버지가 모든 곳에, 그리고 동시에, 계실 수 있는 능력은, 그가 어디에나 계신다는 것을 나타낸다. 하나님은 혼자서 두 곳에, 셀 수 없이 많은 장소에, 동시에 계실 수 있다. 하나님은 “위로 하늘과 아래로 땅에” 동시에 계신다; 시편의 저자는 외쳤다: “내가 당신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가야 합니까? 내가 당신 앞에서 어디로 도망가야 합니까?”
“‘나는 멀리 있을 뿐 아니라 가까이 있는 하나님이다,’ 주(Lord)가 말씀하신다. ‘내가 하늘과 땅을 채우지 않느냐?’” 우주 아버지는 방대한 창조의 모든 곳에,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항상 계신다. 그는 “그는 모든 만물을 그 안에서 가득 채우신다”, 그리고 “모든 사람 안에서 모든 일을 하시고,” 더 나아가, 그의 personality 개념은 “하늘(우주)과 하늘들의 하늘(우주들의 우주)이 그를 담을 수 없다.”는 것과 같다. 이것은 글자 그대로 하나님이 모두이고, 그가 모든 것 안에 계신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조차도 하나님의 전부는 아니다. 무한자는 오직 무한 속에서 마침내 드러날 수 있다; 결코 결과를 분석한다고 원인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다; 살아 계신 하나님은 그의 자유 의지의 창조적 행동의 결과로 생겨난 창조물의 총합보다 측량할 수 없을 만큼 크다. 하나님은 우주 전체에 걸쳐 나타나지만, 우주는 결코 하나님의 무한함 전체를 담거나 품을 수 없다.
아버지의 존재는 끊임없이 우주 전체를 순회한다. “그는 하늘 끝에서 출발하시고, 하늘의 저 끝까지 순회하신다; 그 빛으로부터 숨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생명존재는 하나님 안에 존재할 뿐 아니라, 하나님은 또한 그 생명존재 안에 살고 있다. “그가 우리 안에서 계시므로 우리가 그분 안에서 사는 것을 우리가 안다; 그는 우리에게 그의 영(spirit)을 주신 분이다. 파라다이스 아버지가 준 이 선물은 인간에게서 떼어낼 수 없는 동반자이다.” “그는 늘 계시며, 모든 것에 스며 있는 하나님이다.” “영원한 아버지의 영은 모든 필사 자녀의 mind 속에 감추어져 있다.” “사람은 자기 안에 있는 바로 그 친구를 찾아 떠난다.” “진정한 하나님은 멀리 계시지 않으니, 그는 우리의 일부요, 그의 영은 우리 안에서 말씀하신다.” “아버지는 자녀 안에서 살며,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신다. 그는 영원한 운명을 안내하는 영이다.”
진실로 인류가 "너희는 하나님의 사람이다"라고 말한 것은, "하나님 안에 거하고 그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이 그 안에 계시기" 때문이다. 죄를 저지를 때에도 너는 내주(內住)하는 하나님의 선물을 괴롭히는 것인데, 그 생각 조절자는 인간 mind 속에 갇혀 있어서 악한 생각의 결과를 반드시 함께 겪어야 하기 때문이다.
3:1.6 하나님이 어디에나 있다는 것은 사실상 그의 무한한 본성의 일부이다; 공간은 Deity에게 전혀 장벽이 되지 않는다. 하나님은 오직 파라다이스와 중앙 우주에서만 보고 알 수 있도록, 아무 제한 없이, 완전함 가운데 계신다. 하나님은 하보나를 도는 우주들에서 눈에 보이게 계시지 않는데, 이는 시간과 공간의 우주를 통치하는 동위 창조자들의 주권과 신성한 특권을 인정하는 가운데 하나님이 직접 실제로 계심을 제한하셨기 때문이다. 따라서 영원한 아들, 무한한 영이 계시는 회로들과 파라다이스 섬을 포함하여, 신성한 존재의 개념은 겉으로 나타나는 방식과 경로의 범위가 넓다는 것을 허용해야 한다. 우주 아버지의 존재와 그의 영원한 공동 대리자들의 활동을 항상 구별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불변하는 목적의 무한한 요구 조건을 모두 완벽하게 행한다. 하지만 personality 회로와 조절자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여기서 하나님은 유일하게, 직접, 혼자서 활동한다.
우주 통제자는 우주의 모든 부분에 있는 파라다이스 섬의 인력 회로들에, 항상 같은 정도로, 질량에 따라서, 잠재적으로 존재할 수 있으며, 이 존재함은 물리적 요구에 반응하여, 모든 것이 그에게 달라붙고 구성되도록 하는 모든 창조의 본질적인 특성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첫째 근원 중심은 Unqualified(무제한, 불변불가) 절대 안에 잠재적으로 계시며, 이 절대자는 영원한 미래 우주, 아직 빚어지지 않은 우주의 저장소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과거ㆍ현재ㆍ미래의 물리적 우주에 만연해 있다. 그는 이른바 물질 창조라는 일관성의 근원적 토대이다. 비영적인 Deity의 잠재력은 우주 활동단계에서 그의 특정 대리자들 중 하나인 누군가의 설명할 수 없는 침투에 의해 물리적 존재들의 단계에 걸쳐 여기저기 실제화된다.
하나님이 mind 안에 계시는 것은 합동 행위자, 곧 무한한 영의 절대 mind와 서로 관계가 있다. 그러나 이렇게 존재하는 것은 유한한 창조에서, 파라다이스의 Master Spirits(으뜸 영, 主 영들, 주재자 영)의 우주 mind가 어디서나 활동하는 데서 더 잘 파악된다. 첫째 근원 중심이 합동 행위자의 mind 회로들에서 잠재적으로 존재하는 것 같이, 하나님은 우주 절대자의 긴장 속에 잠재적으로 존재한다. 그러나 인간 서열의 mind는 합동 행위자의 딸, 곧 진화하는 우주들의 신성한 봉사자가 수여한 것이다.
어디에나 존재하는 우주 아버지의 영은 영원한 아들의 우주적인 영적 존재와 신 절대자의 영원한 신적 잠재력의 기능과 연합한다. 그러나 영원한 아들 및 그의 파라다이스 아들들의 영적 활동이나, 무한한 영이 mind를 수여하는 것도 창조된 하나님의 자녀들 마음에서 깃든 하나님의 분신인 생각 조절자들의 직접적인 활동을 배제하지 않는 것 같다.
한 행성ㆍ체계ㆍ별자리, 또는 지역 우주에 하나님이 존재하는 것과 관련하여, 창조적인 단위에서 그 존재의 정도는 Supreme Being(최상존재, 최극존재, 지고의존재)의 진화하는 정도를 측정하는 것이 된다: 이것은 체계와 행성들 자체에까지 미치는 광대한 우주 조직의 일부인 하나님에 대한 집단적 의식과 충성심에 의해 결정된다. 그러므로 때때로 일부 행성들(또는 심지어 체계들)이 영적인 어둠 속으로 멀리 떨어졌을 때, 그들은 어떤 의미에서 격리되거나, 더 큰 창조 단위와의 관계로부터 부분적으로 격리되는 것은 하나님의 귀중한 계심의 이러한 국면들을 보존하고 보호하려는 희망에서이다. 이 모든 것은, 유란시아에서 작용하는 것처럼, 고집 세고 사악하고 모반하는 소수의 행동으로부터, 고립되는 결과를 가능한 한 당하지 않도록, 대다수의 세계들이 스스로를 구하기 위해 영적으로 방어하는 반응이다.
3:1.11 아버지는 부모로서 그의 아들―모든 personality들―을 모두 회로로 연결하지만, 그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신의 둘째 분과 셋째 분으로부터 그들의 기원이 얼마나 먼가에 따라서 제한되며, 그들이 달성하는 운명이 그러한 수준에 가까이 감에 따라서 그 영향은 확대된다. 생명존재의 mind들 속에 하나님이 계신 사실은, 그들에게 신비의 훈계자와 같은 아버지 분신이 깃드는지, 아닌지에 따라 결정된다. 그러나 하나님의 실질적 계심은, 이 깃드는 조절자가 머무르는 그 mind가 조절자와 얼마나 협동하는지에 따라서 좌우된다.
아버지의 존재가 변동하는 것은 하나님이 변화하기 때문이 아니다. 아버지는 소홀히 여김을 받았다고 해서 은둔하거나 물러나지 않는다. 인간이 죄를 짓는다고 해서 하나님의 사랑이 멀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분에 대해) 선택하는 힘을 부여받았기 때문에, 그 선택권을 행사함으로, 하나님의 자녀들은 자신의 마음과 혼 속에서 아버지의 신성한 영향이 미치는 정도와 한계를 직접 결정한다. 아버지는 제한 없이, 그리고 차별 없이, 자신을 우리에게 아낌없이 주셨다. 아버지는 사람이나, 행성이나, 체계나, 우주를 차별하는 분이 아니다. 시간의 구역에서 아버지는 유한한 우주의 합동 창조자들인, 칠중 하나님이신 파라다이스 personality들에게 오직 특별한 영광을 수여한다.
2. 하나님의 무한한 능력
3:2.1 모든 우주가 “전능한 주(Lord) 하나님의 통치”를 알고 있다. 이 세계와 다른 세상의 일들이 신성하게 감독된다. “그는 하늘의 군대와 땅의 거주민들 사이에서 그의 의지를 따라 행하신다.” 이것은 영원한 진실이다. “하나님의 능력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신성한 본성과 일치하는 범위 내에서 "하나님과 함께라면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것은 문자 그대로 사실이다. 인류, 행성, 우주들의 오랜 진화 과정은 지역 우주 창조자와 행정가들의 완전한 통제를 받으며, 우주 아버지의 영원한 목적에 따라 전개되고, 조화와 질서 속에, 그리고 하나님의 모든 지혜로운 계획에 따라 진행된다. 오직 한 분의 입법자만 계신다. 그는 공간 속에서 세상들을 지지하고, 영원한 회로의 끝없는 원을 그리며 우주들을 회전시킨다.
모든 그 신성한 속성 가운데, 그의 전능하심은 특히 이 물질 우주에 사는 사람들이 가장 잘 이해하는 속성이다. 비영적인 현상으로 볼 때, 하나님은 에너지이다. 물리적 사실의 이 선언은 첫째 근원 중심이 모든 공간에서 우주의 물리적 현상의 주요한 원인이라는 이해할 수 없는 진리에 기초를 둔다. 이 신성한 활동에서 모든 물리적 에너지와 다른 물질적 징후들이 도출된다. 빛, 즉 열이 없는 빛은, Deities의 또 다른 비영적 표현이다. 그리고 유란시아에서 거의 알려지지 않은 또 다른 형태의 비영적 에너지가 있는데; 그것은 아직까지 인식되지 않고 있다.
하나님은 모든 힘을 통제한다; 그는 “번개 치는 방법”을 만든다; 그는 모든 에너지의 회로를 정해놓았다. 그는 모든 형태의 에너지와 물질이 나타나는 시간과 방식을 결정했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은 하나님의 영구한 움켜쥠―아래 파라다이스에 집중되는 인력 통제―에서 영원히 유지된다. 영원한 하나님의 빛과 에너지는 이처럼 그의 장엄한 회로, 우주들의 우주를 구성하는 별 무리들의 끝없이 질서 있는 행렬을 중심으로 영원히 선회하고 있다. 모든 창조는 모든 사물과 존재의 중심인 파라다이스-Personality 주위를 영원히 돌고 있다.
아버지의 전능하심은 절대 수준이 지배하는 모든 곳에 존재하며, 만물의 근원이신 그에게 가까이 근접하여 있는 물질적, 지성적, 영적 이 세 가지 에너지는 구별되지 않는다. 파라다이스 monota(일력, 단일소, 단원소)도, 파라다이스 영도 아닌 생명존재의 mind는 우주 아버지에게 직접적으로 반응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불완전한 mind―유란시아 필사자들에게 생각조절자를 통해 적응한다.
3:2.6 우주의 아버지는 일시적 force(물력, 기세, 원력)나 이동하는 power(힘, 능력), 또는 변동하는 에너지가 아니다. 아버지의 능력과 지혜는 우주의 어떤 긴급 사태도, 이 모두를 이겨 나가기에 전적으로 넉넉하다. 인간의 체험에서 긴급 사태가 발생함에 따라 아버지는 그 사태를 모두 예견하시므로, 따라서 초연하게 우주 사무에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영원한 지혜가 지시하는 대로, 그리고 무한한 판단이 명령하는 대로, 반응한다. 겉으로 나타난 것과 상관없이, 하나님의 power는 우주에서 분별없는 force로 작용하지 않는다.
긴급 판결이 내리고 자연법칙이 중단되고, 잘못된 적응이 인지되고, 그 상황을 시정하려고 어떤 노력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상황이 일어나기는 한다. 하지만 문제의 진실은 그것이 아니다. 하나님에 대한 그런 개념은, 너의 시야의 테두리가 제한되어 있고, 너의 이해가 유한하고, 조사의 범위가 한정된 데서 생긴다. 하나님에 대한 그러한 오해는, 그 영역에 존재하는 더 높은 법칙, 아버지의 특성이 갖는 엄청난 규모, 그의 속성의 무한함, 하나님이 자유 의지를 가진 사실에 대하여, 너희가 전혀 무지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영이 깃드는, 행성의 생명존재는 여기저기, 공간의 여러 우주에 두루 흩어져 있고, 그 수와 계급이 거의 무한하다. 그들의 지적 능력은 너무 다양하고, mind들은 너무 제한되어 있고, 때때로 너무 거칠며, 비전은 너무 단축되고 축소되어 있다. 그래서 아버지의 무한한 속성을 적절히 표현하면서, 동시에 이 창조된 지성들이 어느 정도라도 이해할 수 있는 그러한 법칙을 일반화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따라서 생명 존재인 너희에게, 전능한 창조자의 많은 활동이 제멋대로이고, 무심하고, 자주 냉혹하고 잔인하게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이것이 진실이 아님을 나는 너희에게 다시 보증한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모두 목적이 있고 슬기로우며, 현명하고 친절하며, 영원히 최선을 고려한다. 반드시 한 개인 존재나, 개별 민족이나, 개별 행성, 아니 개별 우주의 최선을 위하는 것이 아니다; 가장 낮은 자로부터 가장 높은 자에 이르기까지, 관계된 모든 자의 복지와 최선을 위한 것이다. 시대적으로 부분의 복지가 때때로 전체의 복지와 다른 듯 보일지 모른다; 영원의 궤도에서 그렇게 명백한 차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가족의 일부이며, 따라서 가끔 가족훈련을 함께 해야 한다. 우리를 너무 불안하게 만들고 혼란스럽게 하는 많은 하나님의 행동들은 모든 지혜의 결정과 최종 판결의 결과이며, 이것은 무한한 mind의 의지, 결코 그르칠 수 없는 의지의 선택을 집행하기 위하여, 완전한 personality의 결정을 실행하기 위하여, 합동 행위자에게 권한이 부여된 것이다. 그분의 전망ㆍ비전ㆍ갈망은 광범위하고 방대한 모든 창조의 영원한 최대 복지를 포함한다.
그래서 분리되고, 편중적이고, 유한하고 거칠며, 다분히 물질적인 너희의 관점, 그리고 너희 존재의 본성에 내재해 있는 한계가, 너무 장애가 되어서, 너희는 많은 신성한 행위에 담긴 지혜와 친절을 볼 수 있거나, 이해하거나, 깨달을 수 없다. 너희에게 신성한 행위는 사람을 짓밟는 잔인성으로 가득 차 있고, 너희의 동료 인간이 누리는 위안과 복지, 행성의 행복, 개인의 번영에 아주 철저히 무관심한 특징이 있는 듯이 보인다. 너희가 하나님의 동기를 오해하고 그 목적을 왜곡하는 것은 인간의 통찰력의 한계 때문이며, 너희의 한정된 이해와 유한한 이해 때문이다. 그러나 진화하는 세계에서는 우주의 아버지가 직접 행하지 않는 많은 일이 일어난다.
3:2.11 신성한 전능하심은 하나님 personality의 다른 속성과 함께 완전히 조정된다.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능력은, 세 가지 조건 또는 상황에 의해 우주에서 영적으로 표현이 제한을 받게 된다.
1. 하나님의 본성에 따라서, 특히 그의 무한한 사랑에 따른 진, 미, 선에 의해서.
2.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우주의 personality들과 함께 하는 그의 자비로운 봉사와 아버지다운 관계에 따라서.
3. 하나님의 법에 따라서, 영원한 파라다이스 삼위일체의 의(義)와 공정에 따라서.
하나님의 능력은 무한하며, 본성은 신성하며, 뜻은 최종이고, 속성은 무한하며, 지혜는 영원하고, 그 실체는 절대적이다. 그러나 우주 아버지의 이 모든 특성은 Deity 안에서 통일되고, 파라다이스 삼위일체 안에서, 그리고 삼위일체의 신성한 아들들 안에서 우주적으로 표현된다. 그 외에 파라다이스와 하보나 중앙 우주의 바깥에서, 하나님에 관한 모든 것은 Supreme(최상위, 최극자, 지고위)의 진화적 존재에 의해 제한되고, 궁극위의 존재에 의해 조건화되며, 실존적인 세 절대자―신 절대자, 우주 절대자, Unqualified (무제한, 불변불가) 절대―에 의해 조율된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이 그러하므로 하나님의 존재는 그렇게 제한된다.
3. 하나님의 보편적 지식
3:3.1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 신성한 mind는 모든 창조에 대한 생각을 의식하고 또한 알고 있다. 사건들에 관한 하나님의 지식은 보편적이고 완전하다. 그로부터 나가는 신성한 독립체들은 그의 일부분이며, “구름을 저울로 다는” 하나님은 또한 “지식에서도 완전하다.” “주의 눈은 어디에나 있다.” 하찮은 참새에 대하여, 너희의 위대한 선생은 이렇게 말했다. “저들 가운데 하나도 내 아버지가 모르고서는 땅에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또한 “너희 머리에 있는 바로 그 머리털의 수도 계산되었다.” “그는 별들의 수를 말씀하시고, 그들 모두를 이름으로 부른다.”
우주의 아버지는 공간에 있는 별과 행성의 수를 실제로 아는, 온 우주에서 유일한 분이다. 모든 우주에 속하는 모든 세계를 하나님은 항상 의식하고 있다. 그는 또한 말씀하신다; “나는 분명히 내 백성의 고난을 보았고, 그들의 외침을 들었으며, 그들의 슬픔을 알고 있다.” 왜냐하면 “주(Lord)는 하늘에서 보신다; 그는 사람의 자녀들을 모두 보신다; 그는 그의 거처에서 땅에 있는 모든 주민을 내려다보신다.” 모든 생명존재 자녀들은 진실로 말할 수 있다; “그는 내가 가는 길을 아시며, 그가 나를 단련하고 나서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 “하나님은 우리가 앉고 일어서는 것을 아신다; 그는 우리의 생각을 이해하고, 우리의 길을 모두 아신다.” “만물이 벌거벗었고, 우리가 상관해야 하는 분의 눈에 열려 있다.” 그리고 “그는 너의 뼈대를 알고 있다; 너희가 티끌인 것을 기억하신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모든 인간에게 위로가 될 것이다. 예수는, 살아 계신 하나님에 대해, “너의 아버지는 네가 묻기도 전에 필요한 것을 아신다.”고 말했다.
하나님은 만물을 아는 무제한 능력을 소유한다; 그의 의식은 우주적이다. 그의 personal 회로는 모든 personality들을 감싸고, 비천한 생명존재들에 관한 그의 지식도, 내려오는 계열의 신성한 아들들을 통해서 간접으로, 그리고 깃드는 생각 조절자를 통해서 직접 보충된다. 더군다나 무한한 영은 항상 어디에나 존재한다.
하나님이 죄의 사건들을 미리 알고 선택하는지 아닌지에 대해 우리는 전적으로 확신하지 못한다. 그러나 비록 자기 자녀들의 자유 의지 행동을 하나님이 미리 알고 있다 하더라도, 그러한 예지력으로 그들의 자유를 전혀 제압하지 않는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이 있다: 하나님은 결단코 놀라지 않는다.
전능은 실행 불가능한 행동, 불가사의한 행동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하지 않는다. 전지(全知)도 알 수 없는 것을 안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진술은 도저히 유한한 mind가 이해할 수 없다. 생명존재는 창조자의 의지 범위와 한계를 거의 이해하지 못한다.
4. 하나님의 무한함
3:4.1 우주에서 자신을 연속적으로 수여함으로 그 우주들이 계속 Deity personality 중심 안에 거하고, 쉰다고 해서 능력의 잠재성이나 저장된 지혜가 전혀 줄어들지 않는다. 파라다이스 아들들과, 그 하위 창조 세계들에 있는 다양한 생명존재들에게 아낌없이 수여한 결과로서, 힘, 지혜, 사랑의 잠재성에서 아버지는 그의 소유 중 어떤 것도 결코 조금도 줄어든 적이 없고, 그의 영화로운 성격의 어떤 속성도 빼앗긴 적이 없다.
새로운 우주를 창조할 때마다 새로운 인력의 조정이 요구된다. 그러나 창조가 무기한으로 영원히, 아니 무한까지 이어져 궁극에 물질 창조가 제한 없이 존재한다 하더라도, 파라다이스 섬의 운행하는 통제와 조정하는 힘은, 그렇게 무한한 우주를 통달하고 통제하고 조율하기에 충분하고 적절함이 발견될 것이다. 그리고 무한한 우주에 끝없는 force와 power를 이처럼 부여한 다음에, 무한자는 여전히 똑같은 정도의 force와 에너지로 넘치게 충전되어 있을 것이다; Unqualified(무제한, 불변불가) 절대는 여전히 줄어들지 않은 채로 있을 것이다; 마치 force와 에너지와 power를 허다한 우주 재산에 결코 쏟아 낸 적이 없는 것처럼, 하나님은 여전히 똑같이 무한한 잠재성을 가지고 계실 것이다.
지혜도 마찬가지다: mind가 그 영역의 생각에 아주 아낌없이 분배된다는 사실은, 전혀 신성한 지혜의 중심 근원을 빈곤하게 만들지 않는다. 우주의 수가 늘어나고, 그 영역에 사는 존재들의 수가 이해할 수 있는 한계까지 늘어남에 따라서 높고 낮은 지위를 가진 이 존재들에게 mind가 줄곧, 끝없이 수여된다 해도, 여전히 하나님의 중심 personality는 똑같이 영원하고, 무한하게, 모든-지혜로운 mind를 품을 것이다.
너희의 세상과 다른 세계의 남녀에게 깃들라고 하나님이 영적인 메신저들을 자신으로부터 내보낸다는 사실은, 신성하고 전능한 영 personality로서 활동하는 그의 능력을 조금도 줄이지 않는다; 하나님이 보낼 수 있고 보내도 좋은 그러한 영 훈계자들의 범위나 숫자에는 절대 제한이 없다. 이처럼 자신을 생명존재에게 주는 것은, 신성한 자질을 받은 이 필사자가 점진적으로 연속하여 존재할 수 있는, 한없고 거의 상상할 수 없는 미래 가능성을 만들어낸다. 이 섬기는 영들로 하여금 자신을 이처럼 넘치게 분배한다고 해서, 모든 지혜, 모든 지식, 모든 능력의 아버지 안에서 운행하는 지혜와 그리고 완전한 진리와 지식을 어떤 방법으로도 줄이지 않는다.
시간 세계의 필사자에게는 미래가 있지만, 하나님은 영원에 거주한다. 비록 나는 Deity가 거하는 곳 가까운데서 왔지만, 많은 신성한 속성들의 무한함에 대해 완전히 이해한다고 가정할 수 없다. mind의 무한자만이 홀로 무한한 존재와 영원한 행위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
3:4.6 필사 인간은 하늘 아버지의 무한함을 도저히 알 수 없다. 유한한 지성은 그러한 절대 진리나 사실을 꿰뚫어 볼 수 없다. 그러나 바로 이 유한한 인간은, 그러한 무한한 아버지 사랑의 영향, 충분하고 줄어들지 않은 영향을 실제로 느낄 수 있다―글자 그대로 맛볼 수 있다. 우리는 그러한 사랑을 참으로 체험할 수 있다. 하지만 체험의 질이 무한한 반면, 그러한 체험의 양은 인간의 영적 감수 능력에 따라서, 또한 그 사랑에 응답하여 아버지를 사랑할 수 있는 능력에 따라서 엄격히 제한된다.
유한자가, 제한된 생명존재의 논리 능력을 훨씬 뛰어넘어서 무한한 특성들을 이해하는 것은 필사 인간이 하나님의 모습대로 만들어진 사실 때문이다―안에 무한의 한 분신이 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하나님께 다가가는 가장 가깝고 귀중한 방법은 사랑을 통해서인데, 이는 하나님이 사랑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모든 고유한 관계는 창조자와 생명존재의 관계―아버지와 자식 사이의 사랑―으로, 우주의 사회학에서는 사실적인 체험이다.
5. 아버지의 최상 통치
3:5.1 하보나-이후 창조된 세계들과의 접촉에서, 우주 아버지는 그의 무한한 힘과 최종적 권한을 직접 전달하지 않고 오히려 그의 아들들과 그들의 종속 성격자들을 통하여 행사한다. 그리고 하나님은 자신의 자유 의지로 이 모든 것을 하신다. 아버지가 맡긴 어떤 권한들도 필요하면, 신성한 mind로 직접 행사할 수 있다; 그러나 대체로 위임받은 personality가 신성한 신탁을 이행하지 못하는 결과로서 그러한 행동이 일어난다. 아버지는 바로 그런 때에, 그러한 태만에 직면해서, 신성한 능력과 잠재력의 보호 한계 안에서, 아버지는 자신이 스스로 직접 선택한 명령들에 따라 독자적으로 행동한다; 그 선택은 언제나 어김없이 완전하고, 무한히 지혜로운 선택이다.
아버지는 그의 아들들을 통해서 다스린다; 우주 조직에는 끊어지지 않은 통치자의 연결고리가 있는데, 밑으로는 아버지의 광대한 영토에서 진화하는 구체들의 운명을 지도하는 행성 영주들에서 끝난다. “땅과 그 안에 가득한 것이 주(Lord)의 것이요.” “그는 왕들을 폐하고 왕들을 세운다.” “Most Highs(최고자, 지고자)은 사람의 나라에서 다스린다.”라는 외침은 단지 시적인 표현만은 아니다.
사람의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의 경우에 우주 아버지의 뜻대로 항상 되는 것은 아니지만, 한 행성의 운영과 운명의 경우에는 신성한 계획이 지배하며, 지혜와 사랑의 영원한 목적이 승리를 거둔다.
예수는 이렇게 말씀했다. “저들을 내게 주신 내 아버지는 모든 것들보다 크시며, 아무도 아버지의 손에서 저들을 빼앗을 수 없다.” 너희가 끝없는 창조의 다양한 작용을 얼핏 보고, 그것의 믿기 어려운 광대함을 바라볼 때, 너는 하나님이 최고성 개념이 흔들릴지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이 만물의 파라다이스 중심에서, 확실하고 영구하게 보좌에 앉아 계시고 모든 지적 존재의 은혜로운 아버지인 것을 네가 받아들이지 못하면 안 된다. 오직 “한 분의 하나님, 모든 이의 아버지”가 계시고, 그는 “만물 위에, 만물 안에 계신다.” “그리고 그는 모든 것보다 먼저 계시고, 그분 안에 모든 것이 존재한다.”
3:5.5 삶의 불확실성과 존재의 우여곡절은 어떤 식으로든 하나님의 우주적 주권 개념과 모순되지 않는다. 모든 진화 생명 존재의 삶은 특정한 어떤 불가피한 것들에 시달린다. 다음을 깊이 생각해 보라:
1. 용기―굳건한 성품―은 바람직한가? 그렇다면 인간은 고난과 씨름하고 실망에 반응해야 하는 환경에서 자라야 한다.
2. 이타심─동료에 대한 봉사─는 바람직한가? 그렇다면 삶의 체험은 사회적 불평등의 상황에 부닥쳐야 한다.
3. 희망―큰 신뢰―은 바람직한가? 그렇다면 인간의 존재는 불안과 되풀이해서 일어나는 불확실성에 늘 직면해야 한다.
4. 믿음─인간의 생각에 대한 최상의 확신─은 바람직한가? 그렇다면 인간의 mind는 자신이 믿을 수 있는 것보다 더 아는 것이 없는 골치 아픈 곤경에 처해 있어야 한다.
5. 진리를 사랑하고 진리가 이끄는 곳이면 어디든 기꺼이 가는 것이 바람직한가? 그렇다면 인간은 잘못이 있고 거짓이 언제나 가능한 세상에서 자라야 한다.
6. 이상주의(idealism)―신의 개념에 가까이 가는 것―은 바람직한가? 그렇다면 인간은 더 좋은 것을 위해 억제할 수 없이 도달하려는 자극적인 환경, 비교적 선하고 아름다운 환경에서 고군분투해야 한다.
7. 충성―가장 높은 의무에 헌신하는 것―은 바람직한가? 그렇다면 사람은 배반당하고 버림받을 가능성이 있는 가운데에서 견디어야 한다. 의무에 대한 헌신의 용기는 불이행이라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가운데에 있다.
8. 사심 없는 태도―스스로 자신의 이익을 초월하는 정신―은 바람직한가? 그렇다면 필사 인간은 피할 수 없는 자아가 인정받고 명예를 얻으려고 끊임없이 외치는 소리를 귀가 따갑게 듣고 살아야 한다. 버려야 할 자아의 삶이 없다면, 사람은 신성한 삶을 활기차게 선택할 수 없다. 선을 높이고 그와 대조해서 구별할 잠재적인 악이 없다면, 사람은 의로운 것을 잡으려는 상황에 결코 놓이지 않는다.
기쁨―행복한 만족―은 바람직한가? 그렇다면 사람은 고통이 있고 언제든지 고통받을 가능성이 있는 곳에 처해진 체험 가능한 세계에서 살아야 한다.
3:5.15 우주 전체에 걸쳐, 모든 단위는 전체의 일부분으로 간주된다. 한 부분이 살아남는 것은 아버지의 신성한 의지를 행하기를 전심으로 바라는 온전한 계획과 목적에 협조하는 것에 달려있다. 잘못(지혜롭지 못한 판단을 내릴 가능성이)이 없는 진화 세계가 있다면, 그것은 자유로운 지성이 없는 세계일 것이다. 하보나 우주에는 완전한 거주민이 사는 완전한 세계가 10억개 있다. 진화하는 인간은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실수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자유롭고 경험이 없는 지적 존재는 처음에 도저히 균일하게 지혜로울 수 없다. 잘못된 판단(악)의 가능성은 오직 인간의 의지가 일부러 비도덕적 판단을 의식하면서 지지하고, 알면서 받아들일 때 죄가 된다.
완전한 신성한 우주에는 누구나 본래부터 진(眞), 미(美), 선(善)을 충분히 이해한다. 하보나 세계들의 거주민들에게는 선택을 자극하기 위한, 상대적 잠재 가치 수준들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러한 완전한 존재들은, 대조되고 생각을 강요하는 모든 도덕적 상황이 없어도 선(善)을 찾아내고 선을 고를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완전한 존재들은 모두, 도덕적 본성과 영적 지위 면에서, 그들이 실존적 존재라는 사실 덕분으로, 그런 신분으로 존재한다. 그들은 단지 그들의 선천적 지위 안에서만 그들의 체험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필사 인간은 상승하는 후보자라는 지위조차도 자신의 믿음과 소망으로 획득한다. 인간 mind가 파악하고 인간의 혼이 얻는 신성한 것은 모두 체험적인 성취이다; 그러므로 잘못이 없는 하보나 personality들에게 본래부터 있는 의(義)와 선(善)과 비교해서, 그것은 인간이 개인적으로 체험하는 실체이며, 고유한 재산이다.
하보나 생명존재들은 본성적으로 용감하지만, 인간적 의미에서 용감한 것이 아니다. 날 때부터 친절하고 생각이 깊지만, 인간적 방법으로 도저히 이타적이라 할 수 없다. 즐거운 앞날을 기대하지만, 불확실한 진화 세계의 필사자가 신뢰하는 강렬한 방식으로 희망을 품지 않는다. 그들은 우주가 안정되어 있음을 믿지만, 필사 인간이 동물의 지위로부터 파라다이스 문 앞까지 올라가도록 구원하는 믿음을 도무지 모른다. 그들은 진리를 사랑하지만, 혼을 구원하는 진리의 성질을 전혀 모른다. 그들은 이상주의자들이며, 그렇게 태어났다; 환희에 이르는 선택으로 이상주의자가 되는 최고의 기쁨을 도무지 알지 못한다. 그들은 충성스럽지만, 불이행의 유혹에 부딪쳐서, 마음을 다하여 지적으로 헌신하는 떨리는 그 기쁨을 결코 체험해 본 적이 없다. 그들은 이기적이지 않지만, 호전적인 자아를 당당하게 정복하는 그러한 수준의 체험을 결코 얻은 적이 없다. 그들은 기쁨을 즐기지만, 고통의 잠재력에서 벗어나는 기쁨의 달콤함을 이해하지 못한다.
6. 아버지의 최고성
3:6.1 신성한 사심 없는 완전한 너그러움으로 우주 아버지는 권한을 양도하고, 능력을 위임하지만, 그러나 아버지는 여전히 근원이다; 그의 손은 우주 영역의 상황을 조종하는 강력한 지렛대 위에 있다; 하나님은 모든 마지막 결정권을 쥐고 있으며, 바깥으로 뻗고 소용돌이치는, 항상 회전하는 창조의 복지와 운명에 대하여 누구도 도전할 수 없는 권한으로, 그의 영원한 목적을 위해서 전능한 거부권을 어김없이 행사한다.
하나님의 통치권은 제한이 없다: 그것은 모든 창조의 근원적 사실이다. 우주가 필연적으로 생긴 것은 아니다. 우주는 어쩌다가 생기지 않았고, 스스로 존재하지도 않는다. 우주는 창조된 작품이요, 따라서 창조자의 뜻에 전적으로 지배된다. 하나님의 뜻은 신성한 진리요, 살아있는 사랑이다; 따라서 진화하는 우주들에서 완성되는 창조들은 두 가지 특징을 가진다; 하나는 선(善)―신에게 가까워지는 것―이요, 하나는 잠재하는 악(惡)―신에게서 멀어지는 것―이다.
모든 종교 철학은 조만간 유일한 하나님의 통일된 우주 통치 개념에 도달한다. 우주의 원인은 우주의 결과보다 낮을 수 없다. 우주의 생명과 우주 mind의 흐름 근원은 그것이 명시되는 수준보다 높아야 한다. 인간의 mind는 그보다 낮은 수준의 존재들에게 착실하게 설명을 해줄 수가 없다. 인간의 mind는 오직 높은 서열의 생각과 목적이 분명한 의지의 실체를 인식함으로 참으로 이해할 수 있다. 도덕적 존재로서의 인간은 우주의 아버지가 그 실체임을 인정하지 않는 한 이해할 수 없다.
기계론적 철학자는 우주적인 통치 의지가 있다는 견해를 거부한다고 공언하며, 우주 법칙을 공들여 설명하면서 바로 그 최고 의지의 작용을 깊이 숭배한다. 기계론자가, 그러한 법칙이 스스로 작용하고 스스로 해명된다고 생각하다니, 결과적으로 그는 그 법의 창조자에게 영문도 모르고 경의를 표하는 것이 아닌가!
사람에게 깃드는 생각 조절자의 개념을 제외하고, 하나님을 인간화하는 것은 큰 잘못이다. 그러나 이것조차도 첫째 근원 중심의 사상을 완전히 기계화하는 것만큼 완전히 어리석지는 않다.
3:6.6 파라다이스 아버지는 고통을 받는가? 나는 모른다. 창조 아들들은 필사자들처럼 고통받을 수 있는 것이 확실하고, 때로는 고통받는다. 영원한 아들과 무한한 영은 어떤 의미에서만 고통을 받는다. 나는 우주의 아버지도 고통을 받는다고 생각하지만, 어떤 방법으로 고통을 받는지 이해할 수 없다. 아마도 personality 회로를 통하든지, 또는 개별적으로 생각 조절자들을 통해서든지, 그의 영원한 본성을 수여하는 다른 행위들에서 그럴 것이다. 그는 필사 민족들에 관하여 말씀하셨다. “너희의 모든 고통 속에서 내가 고통을 받는다.” 의심할 여지 없이, 그는 아버지같은 이해심, 공감하는 이해심을 체험한다: 그가 정말로 고통받을 수 있지만, 나는 그 본질을 이해하지 못한다.
온 우주의 무한하고 영원한 통치자는 power, 형태, 에너지, 과정, 원형, 원리, 존재, 이상화된 실체이다. 그러나 그는 그 이상이다; 그는 personal(성격적, 개인적, 성품적) 이다; 그는 통치자의 의지를 행사하며, 신성의 자의식을 체험하고, 창조적 mind의 명령들을 실행하고, 영원한 목적 실현의 만족을 추구하며, 그의 우주 자녀들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과 애정을 표현한다. 그리고 모든 이러한 아버지의 personal 특징들은 너희 창조 아들이 유란시아에서 육신화하였을 때, 미가엘의 수여 생애에서 드러난 것들을 살펴봄으로 더 잘 이해될 수 있다.
아버지 하나님은 사람을 사랑한다; 아들 하나님은 사람에게 봉사한다; 영 하나님은 영 하나님의 은혜로운 봉사를 통해 하나님의 아들들이 예정한 방법으로 아버지 하나님을 찾는 모험, 늘 올라가는 모험을 하라고 우주의 자녀들에게 영감을 불러일으킨다.
[우주 아버지의 계시를 발표하도록 위임받은 신성한 조언자로, 나는 Deity의 속성에 대해 계속하여 서술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