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예수님께서 세우셨고, 예수님이 머릿돌이 되시며, 예수님이 교회의 머리가 되시고 주인이 되십니다. 예수님이 못 박히시고 부활하심으로 무덤의 문이 열리고 교회의 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무덤 문을 열고 부활하심으로 사망권세를 이기시고 하늘 문이 열려져서 이 땅에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집, 교회가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교회는 주님이 십자가를 지심으로 세웠기 때문에 피 흘려 세워주신 교회입니다. 교회는 피가 묻은 곳입니다. 예수님의 피가 아니면 있을 수 없는 것이 교회입니다. 교회는 피의 집이며 우리가 피 앞에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의 죄를 사해 주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돌아가셨습니다. 우리는 피가 흐르는 곳으로 나아와 피의 은총을 입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교회를 세우셨으며, 주님의 제자들이 주님이 주신 교회를 지키고 섬기게 된 것입니다. 주님이 세워주신 12제자들은 주님의 복음을 전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피 흘려 세워주신 교회를 잘 보존하며 악하고 패역한 세대, 어두움의 세력과 싸워 이기며 교회를 지켰습니다. 그들은 모두 다 순교했습니다. 베드로는 로마에서 순교하고 마태는 에티오피아에 가서 순교했습니다. 안드레는 헬라에 가서 순교하고 야곱은 예루살렘에서 목 베임을 당하여 죽었습니다. 빌립은 소아시아 부르기아에 가서 전도하다가 기둥에 매달려 죽었고 또 바돌로메는 알메니아에 가서, 도마는 인도에 가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는 성전 꼭대기에서 떨어뜨려 죽임을 당했습니다. 가나안인 시몬은 애굽에 가서 전도하다가 활에 맞아 죽었고 예수님의 동생 유다는 바사 즉, 페르시아에서 활에 맞아 죽었습니다. 가룟 유다 대신 제자가 된 맛디아도 에티오피아에 가서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사는 길이 많이 있었지만 복음을 위해 살다가, 복음을 지키다가, 복음을 증거하다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모두 생명을 바쳤습니다. 모두 억지로 죽은 것이 아닙니다. 자원함으로 바쳤습니다. 복음이 너무 귀하니까 복음을 위해 살다가 복음을 위해 사도들의 생애가 모두 하나님 앞에 바쳐지게 되었습니다.
사도들의 뒤를 이은 분을 교회사에서는 속사도 라고 합니다. 교회사에 나오는 용어인데, 디모데, 디도, 빌립 이런 분들을 속사도라고 부릅니다. 사도들이 섬기던 교회를 또 후임 목회자가 되어서 섬기던 분들을 속사도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세운 교회를 사도들이 이어받고 사도들이 이어받은 교회를 속사도들이 이어받았습니다. 속사도들이 이어받은 교회를 교부들이 이어받습니다. 교부들은 감독들이었습니다. 클레멘트, 폴리갑, 오리겐. 여러 분들이 있습니다. 이런 분들이 또 지역의 교회를 맡아서 복음을 위해 살다가 복음을 위해 순교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했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예수님이 가장 귀하니까요. 주 예수만이 우리의 구주시라는 것입니다. 온 인류의 구주는 한 분 뿐입니다. 이 분들은 예수를 믿고 영접하고 구원의 은총을 감사하며 살았습니다. 모두 어렵고 부족했지만 만족하며 살았고 능력 있게 살았고 복음을 증거하면서 복음을 위해서 생명과 일생을 다 바쳐서 헌신했습니다. 그 다음에 중세시대, 교황시대 이렇게 내려오면서 오늘날까지 주님이 세워 주신 그 교회를 그대로 이어서 여기까지 내려오고 있습니다. 그 뒤를 따라서 우리도 예수를 믿고 복음을 위해 살고 복음을 증거하며 남은 생애를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어 주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가장 큰 선물입니다. 이것은 가장 귀한 것입니다. 이 우주에 단 하나의 보화가 있습니다. 참 보화는 하나밖에 없습니다. 이 보화를 만나기 전에는 다 가짜 보화입니다. 쭉정이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진짜 보화를 가지고 난 다음에는 다른 것들이 보화가 아닌 것을 알게 됩니다. 최고로 잘 사는 분도 자살하는 것은 그 집안에 세상 보화가 있기 때문입니다. 어마어마하게 좋은 것이 다 있지만 그것이 보화가 아닙니다. 사람은 이 세상의 것을 그렇게 갖고자 하지만 가져보면 아닌 것입니다. 어떤 권력도 보화가 아닙니다. 재산도 보화가 아닙니다. 인기도 보화가 아닙니다. 세상에는 보화가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허무한 것입니다. 미개한 나라에서는 자살을 하지 않습니다. 선진국에서 자살합니다. OECD국가들이 자살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다 가져보니까 허무하기 때문입니다. 학위를 가져보니 학위가 허무하고, 물질을 가져보니 물질이 허무하고, 수술해서 예뻐 보이니까 예쁜 것이 허무한 것입니다. 모두 다 가질 때 허무함이 옵니다. 오늘 우리나라는 자살 홍수에 밀려 있습니다. 앞으로 훨씬 더 많을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10년 후에는 아마 마을마다 자살을 막기위해서 보초를 서는 곳이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얼마나 많이 자살할는지 모릅니다. 과학이 막을 수 없습니다. 정치가 막을 수 없습니다. 왜 자살합니까? 허무하니까요. 보화가 아니니까요. 그러나 참 보화, 하나밖에 없는 보화, 영생을 주는 보화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할렐루야! 이 보화가 모든 어두움의 세력을 다 몰아냅니다. 하나님은 이 보화 하나로 말미암아 우리가 이 땅을 떠날 때에도 무한한 행복을 가지고 기쁨으로 떠날 수 있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신 보화, 바로 복음의 보화인 것입니다.
신약에는 사도들의 삶이 나옵니다. 신약성경은 그 기록한 연대가 얼마 안 됩니다. 짧은 기간에 한 40년 정도 기록한 책이 신약성경입니다. 그러나 구약은 성경을 기록한 연대가 적어도 천 년 이상 걸쳐서 내려옵니다. 그런데 이 구약성경은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이 모세오경이 가장 중요한 구약의 복음의 기초가 되는데, 믿음을 지킨, 복음을 지킨, 하나님을 잘 믿는 한 가족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 믿음이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되어서 이삭, 야곱, 열두지파로 그대로 내려옵니다. 조금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치우치지 않습니다. 유대인들은 오늘날까지 아브라함부터 4천 년 동안 아브라함의 믿음과 오늘의 믿음이 똑바르게 바로 내려오고 있습니다. 저는 이런 것을 걱정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 애들이 나만한 믿음이 있나? 나도 믿음이 부족하지만 나만 하겠나? 하는 걱정을 해요. 왜? 우리의 믿음은 부모 대에는 잘 믿는데 아들 대에 가서 많이 넘어지니까요. 이건 크게 불행한 일입니다. 자녀에게 쭉정이만 넘겨 준 집안입니다. 무엇을 옷 입혀도 그것은 벌거벗은 옷이요 무엇을 가져도 그건 거지의 길밖에 없는 것입니다. 가장 큰 보화는 예수 그리스도 복음인데 복음을 물려주지 않은 부모는 실패한 부모입니다. 심히 후회할 것이고 그 자녀들은 부모의 무덤에 와서 얼마나 울며 섭섭해 하며 욕할는지 모릅니다. 왜 나에게 복음을 알려주지 않았느냐고, 복음을 물려주지 않았느냐고, 외국 유학은 보냈는데 천국 가는 길은 왜 막았느냐고, 분명히 심한 눈물 속에 아들이 부르짖게 될 것입니다. 복음 외에는 보화가 없기 때문에, 가장 귀한 보화는 주 예수 그리스도인 줄로 믿습니다.
미국 대통령 카터가 말했지 않습니까? 자기는 일생동안 받은 가장 큰 축복이 세 가지인데, 감사할 것이 세 가지인데 첫째는 예수를 믿은 것입니다. 모두 대통령을 한 것이지 않았겠나 생각했는데 그게 아닙니다. 대통령을 해도 다 잡혀가는데 뭐가 그게 감사할 일이겠습니까? 두 번째는 교회 집사된 것이 감사하답니다. 세 번째는 봉사하고 헤비타드를 세워서 남을 섬기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너무 큰 축복이고 행복한 일이라고 간증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에게 가장 큰 보화가 누구입니까? 국가가 예수를 잘 믿으면 그 국가가 보화요, 개인이 잘 믿으면 개인의 보화요 가정에 예수님이 계시면 예수님이 보화인 줄로 믿습니다. 할렐루야! 우리는 사업을 해도 좋습니다. 정치, 교육, 음악, 스포츠 무엇을 해도 좋습니다. 의사, 법관, 농부 다 좋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모시고 사업을 해야 되고 농사를 지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중심해서, 예수님이 주업입니다. 예수님이 중심입니다. 예수님이 가장 소중한 것입니다.
그저께 이의근 경상북도 지사님이 돌아가셨는데 저보고 설교를 해 달라고 해서 대구에 가서 장례식 설교를 했습니다. 이의근 장로님은 도지사를 세 번 하셨어요. 경상북도 도지사를, 관선까지 하면 네 번을 도지사를 하셨어요. 이 분은 박 대통령 밑에 새마을운동을 같이 담당을 시켜가지고 우리나라 최초로 새마을운동을 시작한 분이십니다. 이번에 마지막 회장을 하시고 하나님 나라로 가셨어요. 저는 장로님과 가깝게 자주 뵙고 했는데 저는 장로님을 존경합니다. 이 장로님은 5대째 믿어왔습니다. 할아버지 때부터 이미 믿어온 가정, 믿음을 지킨 겁니다. 새벽기도를 하루도 안 빠지고 주일을 반드시 지켰습니다. 교회생활을 잘 하고 그 회고록 책에 보면 전도한 이야기가 많이 나와요. 어떻게 하더라도 전도하고 교인으로서 믿음 지키려고, 하나님이 우리 조상들을 통해 내게 주신 이 믿음을 소중히 여기면서 도지사의 일을 한 거예요. 더 놀라운 것은 이 아들 두 형제를 다 목사로 만드셨어요. 한 분은 선교사예요. 다른 것 얼마든지 할 수 있어요. 이 자녀들도 얼마나 감동을 받았겠어요? 아버지를 보고 우리 아버지는 훌륭한 장로님이시다, 나는 신학을 해서 목회자가 돼야겠다. 장로님이 되어서 아들이 장로가 되어야 본전이에요. 장로가 되어서 장로도 못 만든 장로는 회개하라. 그 얼마나 소중해요? 교인은 고민이 많아요. 어려움도 많아요. 그 경상도에는 얼마나 불교가 센데 거기에서 장로로 믿음을 지키는 것이 쉽지 않았어요. 올곧은 길로 가는 것이 어려웠어요.
제가 한 사년 전에 이 의근 장로님한테 연락이 왔습니다. 저하고 하룻밤을 자고 싶다고 그래요. 둘이서만 자고 싶다는 겁니다. 이 어른이 왜 나하고만 자려고 하는가? 이상하다 싶었습니다. 무슨 이야기가 있는가? 그래서 제가 원주 내려가서 수양관에서 하룻밤을 같이 잤습니다. 그런데 또 목사님하고 산을 한 바퀴를 돌면서 둘이만 좀 이야기를 했으면 좋겠다고 그래요. 그래서 한 바퀴를 돌아왔어요. 그런데 마음에 있는 장로로서의 고민을 이야기 하는 거예요. 말할 수 없는 어려움을 겪으면서 믿음을 지킨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믿음 잃지 않고 한 길로 걸어가는 이 어려움이 얼마나 크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한 바퀴를 돌아온 일이 있습니다.
여러분! 교인은 고민이 많습니다. 믿음을 지키기 때문에, 신앙을 지키기 때문에, 어려움이 올 수 있습니다. 손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 버려도 믿음은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아브라함이 지키듯이 열 두 제자의 믿음은 열두제자가 지키듯이 복음은 내가 지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내가 믿는 것입니다. 이것은 내가 할 일입니다. 에덴동산은 아담, 이브가 지켜야 됩니다. 그들이 지키지 못하니까 에덴동산을 빼앗기고 버림을 받았습니다. 공부는 본인이 하는 것입니다. 부모가 하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공부는 반드시 본인이 해야 되는 거예요. 부모는 공부를 하도록 도와주는 거예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믿음생활을 네가 믿으라고 말씀하십니다. “믿음은 네가 지켜라 하는 거예요.” 어떤 어려움이 오더라도 내가 지켜야 합니다. 그러나 믿음을 지키도록 하나님이 도와주십니다. 그래서 물질도 주시고 건강도 주시고 가정도 주시고 행복하게도 하시고 출세하게도 하시는데 이것은 잘 믿으라고 주는 것이지 그걸 지키라고 주는 건 아닙니다. 이것을 지키다가 믿음 잃어버리면 그건 아무 의미가 없는 거예요. 하나님은 여러분이 믿음 지키라고 인기도 주시고 성공도 주시고 직장도 주시고 사랑하는 가족도 허락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역사 속에 믿음을 경홀히 여긴 사람은 다 후회합니다. 이 세상 끝날 까지 우리에게 어떤 유혹이 있고 시험이 있고 핍박이 있을지라도 어떤 장애물이 있을지라도 사도 바울과 같은 믿음이 필요합니다. 바울에게도 위기와 위험이 있었지만 복음을 위해서 나는 끝까지 달려간다고 오늘 고백하고 있습니다. 나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데 예루살렘에서 무슨 일을 만날는지 나는 알지 못하지만 나는 이 믿음을 지키고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바울은 오늘 에베소 장로님들에게 마지막 한 이 고별설교를 끝으로 예루살렘에 가서 붙잡혀서 로마로 호송이 되어서 로마로 건너갑니다. 디모데 후서 4장 7절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리라.” 고 말하고 있습니다. 믿음을 지킨 자에게는 예비된 것이 있습니다. 천국이 예비되어 있습니다. 면류관이 예비되어 있습니다. 사도들이나 교부들이 다 어려움이 있었지만 모두 이긴 것처럼 오늘 여러분들은 이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고 믿음을 지키고 소중히 여기고 복음을 위해 사는 성도되기를 바랍니다.
교회가 왜 능력이 있습니까? 성도가 왜 능력이 있습니까? 우리가 행복하고 어떤 유혹도 넉넉히 이길 수 있는 것은 보화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종교가 갖지 않은 이 보화로 말미암아 기독교는 어떤 위기도 이겨냅니다. 그래서 복음이 건강한 나라는 그 나라 정치 경제가 항상 건강합니다. 찬란한 기독교 역사에 빛나는 이 복음의 아름다운 전통을 우리는 여러분 대에 더욱 확실하게 해서 우리 자손들에게 물려 줄 때 대한민국의 미래는 밝아질 줄로 믿습니다. 이것은 확실한 것입니다.
교회는 건물이 아닙니다. 교인이 아닙니다. 누가 있느냐가 아닙니다. 교인이 얼마나 많고 성가대가 얼마나 잘 하고 예산이 얼마나 많으냐가 교회의 힘이 아닙니다. 자랑이 아닙니다. 교회의 아름다움은 건물에 있지 않습니다. 교인의 심령 속에, 교인의 마음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있는 성도, 그 교회가 부요한 교회요 살아 있는 교회요 축복된 교회요 능력 있는 교회요 아름다운 교회인 줄로 믿습니다. 생명 있는 교회는 심판의 주님, 온 인류를 다스리시는 만왕의 주님이 계신 교회, 주님이 영광 받으시는 교회, 주님이 머리가 되시는 교회, 주님으로 말미암아 운영되는 교회, 주님 때문에 그 교회에 나오고 주님을 만나려고 나오는 교회, 이 교회는 살아있는 교회인 줄로 믿습니다.
교회가 유혹을 많이 받을 때가 있습니다. 교회가 세상의 힘을 가지려고 할 때가 있습니다. 주의 종이 세상에 있는 것으로 무장을 하려고 하는 유혹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교회의 힘은 보이는 것이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영적인 힘입니다. 이 힘이 4천년 동안 오늘날까지 내려오면서 세상의 모든 것을 다스리고 지배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 영적인 힘 때문인 것입니다. 여러분 안에 주의 성령이 함께하시고 은혜가 함께하시고 주님이 살아계셔서 여러분과 저와 우리 온 교회와 이 민족을 인도하여 주실 줄로 믿습니다.
교회는 일반적인 세상에 있는 물질주의자들이 보는 눈으로 교회를 보면 안 됩니다. 주의 종도 물론 마찬가지입니다. 자기가 개척을 해서 교회가 크고 성공했다 할지라도 세상적인 성공의 기준으로 교회를 보면 안 됩니다. 교회는 크거나 작거나 내 교회가 아니고 내가 개척하나 안 하나 내 교회가 아닙니다. 교회는 주님의 교회인 것입니다. 자기가 고생했으니까 내 교회다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고생을 아무리 많이 해도 주님의 종으로서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그 은혜에 감사해서 기쁨으로 당한 고난인데 그것을 세상에서 어떤 보상을 받으려고 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이곳에서 충성하다가 천국 가서 생명의 면류관을 쓰는 천국의 소망을 가지고 주님을 섬겨야 할 줄로 믿습니다.
교회는 주님의 교회입니다. 이 건물도 다 주님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는 거룩한 것입니다. 주의 종은 아무리 성공했다고 해도 높은 자리에 설령 올라갔다 할지라도 세상의 기준으로 높은 자리가 아닙니다. 세상은 올라가면 대접받고 인기 있고 방송에 나가고 영광스러운 자리에 나가지만 주의 종은 설령 총회장이 되어도 그건 섬기는 자리예요. 낮아지는 자리입니다. 예수님이 만왕의 왕이시면서 낮아지고 섬기고 희생하고 봉사하고 십자에 피 흘려 돌아가시듯이 주의 종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평생을 희생해야 되고 낮아져야 되고 섬겨야 되고 교인을 위해서 헌신해야 되고 양을 위해서 생명을 바쳐야 올바른 종의 길인 것입니다. 주의 종이 텔레비전에 자주 나오는 것, 그거 관리를 잘 못하는 거예요. 저도 물론 관리자로 실패한 겁니다. 주님이 영광 받으셔야 할 줄로 믿습니다. 할렐루야!
우리는 주님을 위해서 살아가는 주의 종입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종입니다. 살려주신 주님의 은혜를 감사해서 온 몸과 마음과 생명을 바쳐 주님 앞에 충성해야 합니다. 복음을 증거하는 사도들이 무슨 자기 자랑을 한 일이 있나요? 속사도들이 자기를 위해서 무슨 한 일이 있나요? 주님을 위해서 다 바치고 헌신하는 거예요. 세례요한이 말한 대로 그는 흥하여야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나는 그의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다고 요한복음 1장 27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요한에게 오니까 내가 메시야다, 메시야다, 전부 사람들이 그렇게 하면 따라갈 텐데 나는 아닙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저 분이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저 분에게로 가야합니다. 오늘 주의 종이 하나님 앞에 세례요한의 일을 해야 합니다. 다 주님에게로 보내고, 주님이 영광 받으시는 주의 백성, 주의 교회가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주의 종은 성도를 잘 섬겨야 합니다. 양을 위해서 생명을 바치는 목자가 되라고 주님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양을 향하여 이리떼들이 늘 달려든다. 고 말했습니다. 초대교회도 이단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도들이나, 갈라디아서, 히브리서가 모두 이단하고 싸우기 위해서 나온 책들입니다. 얼마나 이단들이 요한1, 2, 3서에도 나옵니까? 유다서에도 나옵니다. 이단들이 교회로 침투하고 있습니다. 양들을 잡아먹습니다. 그러나 교인은 그걸 잘 모릅니다. 이단이라고 하는 건 잘 몰라요. 한문으로도 끝이 다르다는 것이 이단이에요. 하나만 다르지 거의 다 같습니다. 마치 늑대하고 개하고는 구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늑대는 잡아먹고 개는 주인을 위해서 늘 충성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단은 잘 하는 것같이 뒤로 살며시 들어오지만 양들을 삼키는 거예요. 도적이 들어오는 거예요. 오늘 여기에도 이리 떼가 들어온다고 했습니다. 도적이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끊임없는 도적 떼와의 싸움, 이리 떼와 싸움, 이단과의 싸움, 악한 세력과 교회는 끊임없이 싸워 내려오는 것입니다. 누가 지켰습니까? 사도들이 지킨 거예요. 생명을 바쳐서 지키는 거예요.
오늘 한국 교회가 이만큼 좋은 분위기가 왔을 때, 주의 종들이 이 땅에 있는 주의 교회와 양들을 위해서 생명을 바칠 각오를 하고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어두움의 세력은 한국 교회를 또 다시 넘어뜨리려고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교회는 살아 있는, 보화가 있는 곳이라서 그렇습니다. 왜 도적이 시골에 안 있고 전부 서울에 와 있습니까? 왜 절도범들과 소매치기가 서울 와서 삽니까? 서울은 돈이 많지 않습니까? 왜 우리 강동구에 안 있고 전부 강남구에 가 있느냐? 도적이 잘 압니다. 강동구에는 별 것 없다는 걸 잘 알고 강남으로 서초로 자꾸 가지 않습니까? 그래서 뭐 훔쳤다 하면 서초, 강남 3구에 늘 걸리고 강동구가 안 걸리더라고요. 왜 오늘날까지 2천년 동안 마귀들이 교회만 자꾸 공격합니까? 교회에 보화가 있고 복음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여러분! 타락해 보세요. 예수 안 믿어보세요. 아무런 유혹이 없습니다. 보화가 없으니까요. 사랑하는 여러분! 이 보화를 잘 지키시기를 바랍니다. 양을 지켜야 됩니다. 교회를 지켜야 됩니다. 온 성도들은 교회와 내 신앙만 잘 지키면 다른 건 다 지킬 수 있습니다. 다 포기해도 믿음 있는 곳으로, 믿음 지키는 길로 나아가면 승리할 줄로 믿습니다.
남, 북이 분단되었을 때, 1.4후퇴 때 복음 때문에 북한에 재산, 집 모두 다 버리고 나온 사람들이 여기 와서 얼마나 잘 되었습니까? 우리 오 목사님도 북한에서 다 버리고 여기 오셨습니다. 북한에 계셨으면 지금 어디 가 계실지 어떻게 알아요? 탄광에 가 계실지 어떻게 알아요? 빼빼 말라가지고 그 배가 나왔겠어요? 상상도 못할 일이지요. 여기 내려오셔서 복을 받은 거예요. 미국의 청교도들이 다 버리고 102명이 나는 예수만 믿겠다, 복음만 믿겠다, 보화만 갖겠다! 그렇게 떠나서 세운 나라가 미국 아닙니까? 복음이 있으면 다 있습니다. 복음 지키면 다 지킬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교회를 지켜야 합니다.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에요. 위를 바라보는 거예요. 하나님을 의지하는 거예요. 기도하는 거예요. 예배드리는 거예요. 주의 종들은 양을 사랑해야 돼요. 양을 위해서 생명을 바쳐야 돼요. 한국 교회는 그런 면으로 많이 문제가 있어요. 다른 나라와 좀 다른 게 있어요. 주의 종들은 양을 위해서 희생해야 돼요. 기쁘게 헌신해야 돼요. 저는 저도 너무 잘 먹거든요. 너무 잘 입고 철철이 옷을 갈아입고 매일 넥타이를 바꿔 매고 날마다 양말 바꿔 신고 잘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항상 잔소리 하는 것이 반찬 적게 하라는 거예요. 왜 그러느냐? 너는 교인들보다 더 잘 먹는다는 거예요. 너 그러면 되냐는 거예요. 교인이 얼마나 어려운데.. 그래서 저도 회개하고 많이 울었어요. 그러나 우리 한국 교회가 정말 교회와 주의 종들이 복음에 합당하게 살면 이 나라는 소망이 있고 다시 하나님이 좋은 소망을 주실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신앙고백을 예배시간마다 하는 거예요.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예배시간마다 왜 고백하는지 아십니까? 지킨다는 겁니다. 이 신앙고백이 성경 66권을 다 묶은 고백이에요. 66권에 있는 가장 중요한, 믿어야 할 것을 신앙고백 안에 다 넣은 거예요. 그래서 그걸 예배 때마다 고백하는 거예요. 창조주를 믿습니다. ‘창조주를 믿습니다!’ 보세요. 진화론자들은 창조주를 안 믿잖아요? 우리가 하나님 믿는 믿음을 강력하게 주장해야 돼요. 동정녀 탄생을 안 믿습니다. 처녀가 어떻게 애를 낳느냐는 거예요. 성령으로 잉태되었다는 걸 안 믿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걸 안 믿는 거예요. 무슨 피가 우리를 건져내느냐고, 자꾸 이렇게 말하는 거예요. 많은 신학자가 그렇게 말하고 목사가 지금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많은 신학자가 예수님의 부활, 죽은 사람이 어떻게 살아 나냐? 제자들이 예수님 환상을 본 뒤에 이야기를 만든 것이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예수님도 죽이는 당시에 무엇 때문에 제자들이 그걸 만들어서 그것 때문에 죽습니까? 살지도 않은 분을 위해서 누가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승천하셨습니다. 다시 재림합니다. 우리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예수 믿으면 천국 가고 믿지 않으면 지옥 가는 것입니다. 그건 확실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 모든 것을 지키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을 보수주의라고 합니다. 보수주의는 라틴어로 ‘콘설바레’라고 하는 말에서 나왔는데 이 보수주의라고 하는 말은 지킨다는 뜻이에요. 좋은 것을 지키는 거예요. 잘 되는 나라는 그 나라를 잘 지키는 사람들에 의해서 그 나라가 잘 되는 거예요. 민주주의 국가는 민주주의를 잘 지켜야 됩니다. 가정이 있는 분은 가정을 잘 지켜야 가정이 잘 되는 거예요. 사람은 누구나 보수적인 생각을 하는 거예요. 강 호순, 그 미친 사람도 자기애들은 잘 되기를 바라더라고요. 애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것이 보수이잖아요? 자식 사랑하는 게 그게 보수잖아요? 그래서 돈을 벌어가지고 행복하게 살려고 끝까지 돈 관리를 잘 했더라고요. 그게 보수예요. 잘 살려고 하는 것 그것 보수입니다. 그러나 생활이 보수가 아니에요. 생활이 사람을 죽이는 그런 생각을 가지고는 그 보수는 무너지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나라에는 정치적인 보수도 있고 경제적인 보수도 있고 종교적인 보수도, 문화적인 보수가 있는데 오늘 우리나라의 보수는 좋은 것을 지키려고 하면서도 우리의 무너진 도덕이 많은 거예요. 무너진 인격이 너무 많은 거예요. 그러면 이 보수는 권위가 없어져 무너지고 맙니다. 오늘 왜 보수주의자들이 몰립니까? 강 호순 같이 돈을 벌어 잘 살려고 하면서 사는 것은 제멋대로 살면 안 된다는 겁니다. 한국교회도 마찬가지예요. 믿음을 지키면 그 믿음만큼 살아야 될 것 아니에요? 합당한 보수주의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 앞에 영원히 은혜를 받습니다.
마귀는 우리를 넘어뜨리려고 합니다. 물질주의는 우리를 타락시킵니다. 온갖 유혹으로 넘어뜨립니다. 사람들은 다 유혹을 받습니다. 누구나 할 것 없이 유혹을 받습니다. 프랑스의 사상가 ‘루소’ 는 ‘20대는 연인에 움직이고 30대는 쾌락, 40대는 야망에 움직이고 50대는 탐욕, 60대는 명예욕에 움직인다.’ 고 했습니다. 타락한 우리 인간은 유혹에 약한 존재입니다. 욕심이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현대 문화는 우리 인간이 이렇게 유혹이 많은 것을 알고 상업주의로 끊임없이 우리를 유혹합니다. TV, 방송, 인터넷, 광고, 신문, 문자메시지.. 끊임없이 우리의 유혹을 부추깁니다. 사람들은 다 흔들리는 것입니다. 보화가 없는 사람은 만족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항상 더 예뻐져야 된다는 생각, 더 가져야 된다는 생각, 더 행복해야 된다는 생각, 더 좋은 것을 가져야 된다는 생각, 이것은 안 돼, 더 좋은 것, 더 좋은 집, 더 좋은 차, 자꾸 가지려고 하는 이게 욕심이에요. 그게 왜 그러냐? 복음이 없으니까 그런 거예요. 최고가 내 안에 있을 때는 그런 마음이 없어집니다. “이것 만 해도 족합니다. 주여 감사합니다. 오늘 내 모습 이대로 주여 나는 행복합니다. 나는 내 남편 이대로 행복합니다.”
그러나 복음이 없는 사람은 바꿔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 남편으로는 안 되겠다고, 이 아내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이 자동차 가지고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는 거예요. 바꿔야 되겠다, 집도 다 바꿔야 되겠다. 그래서 여름이 오면 상업주의자들은 너무 우리를 유혹하는 것입니다. 수영복이 새로 나왔다는 거예요. 내가 보면 30년 전이나 똑같은데도 탄력이 있습니다.라는 등 탄력이 있으나 없으나 다 수영복이 똑같은 것인데 유혹하는 거예요. 선풍기? 에어컨? 유혹하는 거예요. 아, 이 에어컨은 향기가 납니다, 하면 그쪽으로 또 가는 거예요. 세탁기 새로 나왔습니다. 이건 탁탁하며 돌아갑니다, 하면 또 그쪽으로 가고 계속 프로그램을 백번 천 번 바꾸고, 있는 것을 멀쩡한 세탁기가 아파트 밖으로 또 나오는 거예요. 그리고 새 것을 또 갈고, 냉장고도 우리 앞에도 보면 내가 갖고 싶은 냉장고가 너무 많은데 금방 버리고 또 바꾸는 거예요. 이번엔 냉장고에서 커피도 같이 나옵니다, 그러면 그대로 싹 다 바꿉니다. 자기의 삶에 만족하지 않는 거예요. 거울을 보면서 항상 어디를 보완해야 할까? 계속 찾는 거예요. 이번에는 어디를 수술할까? 요기를 올릴까 조기를 낮출까 이쪽으로 주사를 놓을까 저쪽으로 놓을까 계속 그 생각만 하는 거예요. 목욕하면서 어디를 빼야 할까 계속 그것만 보는 거예요. 내 모습을 좋아해야 돼요. 할렐루야! 예수 안에서 만족하기를 바랍니다.
♬예수 안에서 우리 기뻐하네 예수 안에서 우리 기뻐하네 하나님의 영광 함께 누릴 소망 있네 할렐루야 예수 안에서 우리 기뻐하네♬ 예수 안에 살아가고 복음 안에 살아가고 예수로 만족하고 예수를 증거하고 세상 끝날 까지 도지사를 하던 믿음을 지키려고 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뭘 보고 사랑하실까요? 하나님의 영이 내 안에 있고 보화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인 생명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내 안에 있을 때 하나님은 로마서에 뭐라고 했습니까? 다른 것은 다 준다는 것입니다. 아까운 게 없다는 것입니다. 아들까지 주신 하나님이 천하를 다 주실 수 있다는 거예요. 앞으로 오는 미래 시대에 예수님을 보화로 삼는 여러분의 가는 길에 무한한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