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은?
본문 / 딤후 10~17
우리는 지난 시간에 사도 바울을 통해서 말세에는 고통의 때가 올 것이라는 말씀을 배웠습니다. 말세란 예수님이 부활하신 이후부터 다시 심판의 주로 오실 때까지의 기간을 말하기 때문에 사도 바울 당시 2천 년 전 에도 말세였고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도 말세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어떤 시대이든지 나타나는 증상들을 19가지로 특징해서 기록했는데 그게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한다’라고 하면서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는 말씀을 주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거짓으로 유혹한 후메내오와 빌레도의 이름을 거론하며 이들의 어리석음은 반드시 드러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10절로 이어지는데 우리 성경에는 번역하지 않았지만 사실은 10절은 ‘그러나 너는’이라는 말이 생략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앞의 내용이 후메내와 빌레도 같은 사람이 잘못된 진리를 가리키며 교회와 성도들을 혼란시켰지만 “(그러나 디모데 너는) 나의 교훈과 행실과 의향과 믿음과 오래 참음과 사랑과 인내와 박해를 받음과 고난과 또한 안디옥과 이고니온과 루스드라에서 당한 일과 어떠한 박해를 받은 것을 네가 과연 보고 이 모든 것 가운데서 나를 건지신 것을 네가 알았지 않느냐”라는 말이 10, 11절 말씀입니다. 무슨 말인가요? 디모데 너는 나를 통해서 믿음과 오래 참음과 사랑과 인내하는 것을 직접 보았고 박해와 고난 속에서 하나님이 나를 건지신 것을 보지 않았느냐? 그 근거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었다. 그러니 너도 성경을 붙잡고 모든 고난과 핍박을 이겨내라 것이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실제로 디모데는 사도 바울이 1차전도 여행 때 이고니온과 루스드라에서 복음을 전하다 돌로 맞아 다 죽어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때 디모데는 사도 바울을 보면서 인상적인 신앙의 영향을 받았을 것입니다. 신앙의 집안에서 외할머니와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화초처럼 자라온 디모데는 이 광경을 눈으로 목격하고 나중에는 광야의 잡초 같은 환경에서 사도 바울과 함께 소아시아, 헬라, 마게도냐, 로마 등지를 전도하며 바울의 신앙의 가르침을 직접 보고 몸으로 체험하며 신앙이 성숙되어 갔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디모데를 가리켜 나와 함께 수고한 동역자라고 했고(로마서 16:21) 내 사랑하고 신실한 아들이라고 하였습니다(고린도전서 4:17). 또 믿음의 참 아들(디모데전서 1:2), 사랑하는 아들(디모데후서 1:2)이라고도 불렀습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바울과 함께 로마 감옥에 갇혔다가 풀려나 다시 순회전도를 할 때 에베소 교회를 사역하도록 맡긴 것입니다.
디모데의 신앙은 어릴 때부터 외조모와 어머니의 기도와 신앙으로 자랐습니다. 이렇게 어릴 때 신앙의 환경과 집안에서 성장했다 할지라도 실제적으로 세상에 나와 반 신앙적인 것과 부딪치면 상황은 달라지는 게 현실입니다. 이때 중요한 것이 누구를 만나서 누구의 영향 하에서 신앙생활을 하느냐는 그래서 중요합니다. 아무리 가정에서 신앙교육을 잘 받았다 할지라도 세상에 나가서 잘못된 신앙의 황경에서 비 신앙적인 사람과 만날 때는 원래 가지고 있는 신앙도 잃어버릴 수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지금 디모데는 그런 면에서 사도 바울을 만난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내가 좋은 신앙의 사람을 만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내가 좋은 신앙의 사람이 되어 주고 좋은 신앙의 영향력을 다른 사람에게 행사하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사도 바울은 아주 당당하게 그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10절의 바로 그 뜻입니다. 그러나 너는 나의 행실을 잘 보지 않았느냐? 내가 어떻게 하나님을 붙잡고 어떻게 진리의 말씀인 성경으로 살아 왔는지를 직접 나의 삶을 통해서 배우고 보지 않았느냐“ 이것이 바울의 삶입니다. 바울은 말로만 가르치는 신앙의 선생이 아니라 행동으로 삶으로 보여준 신앙인이었습니다.
그런데 디모데가 본 사도 바울은 핍박과 고난의 삶이었습니다. 사도 바울과 첫 대면할 때부터 핍박당하는 모습을 보았고 복음을 전할 때도 그랬고 지금 현재도 고난이라는 상황에서 사도 바울로부터 신앙의 서신을 받고 있습니다. 또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해 주는 말이 무엇인가요? 본문 12절에 기록되어 있죠.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 그런데 사실은 이미 1장 8절에서도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고 했고, 2장 3절에서는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3장을 마무리하면서도 “경견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라고 다시 반복해서 말씀해 줍니다. 지금 에베소 교회를 맡아 사역하고 있는 디모데도 안팎으로 어려움을 당하고 있을 때입니다. 내부적으로는 이단들이 횡횡하여 성경 말씀을 왜곡하여 전하며 성도와 교회를 혼란하게 했습니다. 외부적으로 로마라는 거대한 정치와 군사적인 힘으로 예수 믿는 사람을 핍박하고 있습니다. 이때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해 주는 신앙의 권면은 조금만 참어라! 그러면 좋은 날이 올 것이다 라는 권면이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말씀을 붙잡고 살면 오히려 박해가 있다는 말을 해주면서 오히려 네가 고난과 핍박, 박해를 당하는 것은 신앙으로 잘 살고 있다는 말로 위로합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이 말씀이 저와 여러분들에게도 주시는 말씀입니다. 만약 지금 여러분들의 삶이 힘들고 어렵다면 신앙으로 살고자 하는 것을 증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반대로 아무 고난과 고통 없이 잘 살고 있다면 지금 현재 세상과 잘 타협하며 세상의 원리에 잘 순응해서 살고 있다는 증거라는 겁니다. 그러므로 힘들고 어려운 것은 당연한 것이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그게 지금 사도 바울이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이걸 당연하게 여기고 힘들고 고통스럽게만 살아내라는 것일까요? 이걸 희망고문이라고 합니다. 이건 더 힘든 일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러한 모든 어려움과 고난을 가장 효과적으로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준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성경의 기록되어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끝까지 붙잡고 그 말씀 안에 있으면 고난과 고통을 이겨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 안에서 기쁨과 소망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 14절~17절에 기록되어 있는 말씀을 다함께 한 목소리로 읽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사도 바울이 말하는 확신한 일이란 성경 말씀을 말하는 것입니다. 살아가면서 만나는 모든 문제의 해결과 정답은 성경에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성경이라는 뜻은 원어로 ‘카논’이라고 합니다. 카논은 갈대나 긴 나뭇가지라는 뜻으로 길이를 재는 도구가 없었던 고대에는 자를 대신해서 갈대 나무를 사용했습니다. 우리 인생이 살아가면서 수 없이 만나는 문제들이 있습니다. 무엇이 옳고 그르냐의 문제 앞에 살아갑니다. 또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갔다 대면 정확한 정답이 나온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캐논이라고 하고 정경(正經)이라고도 합니다. 캐논이라는 카메라 회사가 이것을 잘 이용해서 사진을 찍으면 정확하게 그대로 나온다는 뜻으로 자기 회사를 홍보해서 전 세계의 카메라 시장을 휘어잡았던 적이 있습니다.
그러면 어디에 절대 진리와 절대 기준이 있고 모든 문제의 해결과 정답이 있다는 걸까요?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이 세상을 다스리시고 이 세상의 주인이신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신 절대 진리, 절대 선, 인생의 정답을 기록해서 주신 것이 성경입니다. 성경은 인간이 경험하고 인간이 공부하고 연구해서 만든 책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간의 경험과 생각과 연구를 이용해서 인간으로 하여금 기록하게 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무엇을 보면 알 수 있느냐면 몇 가지만 들어 보겠습니다. 2천년 인류 역사 가운데서 가장 많이 읽은 베스트셀러 책이 성경입니다. 지금도 전 세계의 140개국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어 읽혀지고 있습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성경에는 인생에 대한 이야기서부터 해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뿐만 아니라 인생의 가장 궁극적인 문제인 삶과 죽음에 대하여 확실한 말씀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말씀들이 한 사람의 의해서 66권의 성경이 기록된 것이 아니라 40여명의 저자들이 각각 다른 시대에 약 1600년의 가까운 기간에 걸쳐 기록한 말씀이 일관되게 한 주제를 가지고 통일성 있게 기록되었다는 것입니다. 만약 40명의 사람이 동시에 한 곳에 모여 한 주제를 가지고 토론 한 후 책을 기록하라고 하면 한 치에 오차 없이 정확한 결론이 나올까요?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기록한 저자들은 한 번도 만난 본 적이 없는데다가 최대 1600년 이상의 차이를 두고 기록한 것입니다. 그런데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창세기에서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이라는 한 주제로 통일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의 저자들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계시를 받아 하나님이 기록하도록 한 하나님이 실제 저자인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성경은 수 천 년 동안 이어져 오면서 성경에 잘못 기록된 오류가 한 글자도 없는 역사성과 통일성을 가지고 하나님의 의해서 기록한 계시성이 있는 절대무오 한 하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어떤 문제든 성경을 통해서 답을 찾으라고 한 것입니다. 그럼 사도 바울은 누구로부터 이 성경과 진리를 배웠을까요? 사도 바울도 당시에는 신약성경이 없었기 때문에 구약성경을 통해서 배운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처음에는 잘못 배운 율법으로 다른 사람을 정죄하고 비난하고 예수 믿는 사람을 죽이는 일에 앞장섰지만 다메셋에서 성령으로 오신 주님을 만난 이후에는 회심하여 하나님의 사람으로 거듭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한다는 것은 말씀과 함께 성령의 체험과 도우심이 있을 때 가능한 것입니다. 디모데가 에베소 교회의 신실한 목회자로 변신해 있는 것은 어릴 때부터 듣고 배운 성경과 하나님이 보내 주신 사도 바울을 통해서, 즉 성령의 경험과 체험을 통해서입니다.
15절 말씀을 다시 한 번 보시겠습니다.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그렇습니다. 사도 바울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눠서 성경이 무엇인지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그 첫 번째가 구원에 이르게 하는 지혜를 가져다주는 것이 성경이라는 것입니다. 이게 성경이 주는 첫 번째 유익이고 신앙의 모태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성경에서 구원의 내용을 빼 버리면 더 이상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아닌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구원 받은 이후에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의 대한 답을 성경이 주는데 그게 16절 말씀입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다”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되었다고 할 때 ‘감동’의 원어는 ‘데오프뉴스토스’라는 말인데 하나님의 호흡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인간의 손으로 기록되어지기는 했지만 하나님이 그 안에 하나님의 호흡, 즉 영을 집어넣으므로 기록된 것이 성경입니다. 이렇게 기록된 성경은 우리에게 교훈도 주지만 책망도 준다는 사실을 잊지 마셔야 합니다. 책망이란 자신의 잘못과 죄를 보게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죄를 보게 하고 거듭나도록 하는 것이 바로 성경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세 번째로 성경은 우리로 하여금 회개하게 하는데 있다고 기록합니다. 회개의 최종 목표는 무엇일까요? 거듭나므로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만들어져 가는 것이라고 사도 바울은 알려 줍니다. 17절 말씀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성도가 구원받은 후 계속해서 성경 말씀을 배우고 순종할 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온전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 지며, 선한 일을 온전히 행할 수 있는 인격을 갖추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말씀을 먹어야 영적으로 살 수 있고 그 말씀으로 살아갈 때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하는 것입니다. 성경이 모든 것의 절대기준이며, 삶과 신앙의 기초이고 교회의 근거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자기를 비우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그래야 그 말씀이 내 안에 들어와서 역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작업은 어느 한 때만 하는 것이 아니라 평생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더 만만치 않습니다. 박해와 핍박, 고난과 고통은 필연적인 것입니다. 그렇지만 여기에 여러분들의 인생과 삶의 절대 기준과 진리 정답이 있음을 믿으시고 끝까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붙잡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만들어져 가면서 하나님이 예비해 놓으신 복과 은혜를 충만히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