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 동천리와 남원시 인월면 인월리를 잇는 약 10km의 길이다.
오른쪽으로 바래봉~고리봉을 잇는 지리산 서북능선을 조망하고 왼쪽으로는 수정봉,
고남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을 바라보며 운봉고원을 걷는 길로, 옛 통영별로 길이다.
* 통영별로 : 조선시대 사용되던 관로(통영-고성-사천-진주-단성-산청-운봉-남원-임실-
전주를 거쳐 한양으로 가던 길). 김정호 '대동여지도'의 10대로 가운데 하나.
이 구간은 너른 운봉들녘과 운치 있는 람천을 따라 지리산 서북능선과 백두대간을
조망하면서 걸을 수 있으며, 지리산 덕두봉 산길도 함께 즐길 수 있는 길이다.
전 구간 대부분이 제방길과 임도로 된 평지길이라 누구나 걷기 좋고,
황산대첩비, 송흥록 생가, 국악의 성지 등 문화와 역사가 깃든 길이라 지루하지 않게 느껴질 것이다.
운봉읍
남원시 운봉읍은 지리산 서북능선과 백두대간에 둘러싸인 고원분지(평균고도 450~500m)에
형성된 고을로, 하늘에서 내려다 보면 눈에 띄는 타원형 사발 모양이다.
철쭉으로 유명한 지리산 바래봉이 굽어 내려 보는 곳인 운봉은 1일과 6일로 끝나는 날에
장이 서는데 각종 잡화, 곡물, 옷 등이 주로 팔리며, 과거에는 목기와 곶감으로 유명하였다.
서림공원
운봉엔 돌장승이 많다.
유독 이곳에 돌장승이 많은 이유는 운봉의 역사와 지리에서 찾을 수 있다.
운봉은 오랜 세월 온갖 세력이 밀고 당기던 전략적 요충지였고,
자연적으로는 비와 눈이 잦은 고원지대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평온한 내일을 위한 소망을 돌에 새겨 마을 입구와
들판 언저리에 세웠다.
특히 이 공원에선 아주 익살스런 돌장승을 볼 수 있다.
북쪽의 방어대장군과 남쪽의 진서대장군이다.
이 두 장승 역시 그 지형의 허한 기운을 보충하기 위한 비보장승인데,
본연의 역할과 어울리지 않게 코를 벌름거리고 있다.
이곳엔 동학농민전쟁 때 농민군을 진압했던 박봉양의 비도 있는데,
후대 역사의 평가에 따라 비의 한쪽이 깨어진 모습이 인상적이다.
비전마을
황산대첩비를 관리하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고,
마을 앞에 비(碑)가 있다 하여 비전(碑前)마을이라 부르게 되었다.
☞ 황산대첩비
고려 말 이성계와 그의 군대가 이 일대에서
왜구를 크게 물리친 황산대첩을 기념하는 비석이다.
하지만 일제 때 패망을 눈앞에 둔 조선총독
부는 우리의 민족혼을 말살시키려는 최후의
발악으로 비석을 폭파했으며 그것도 모자라
비문까지 긁어내는 만행을 저질렀다.
일제에게 황산대첩비는 자기 조상의 굴욕을
낱낱이 까발리는 보고서였다.
새로 만든 황산대첩비 옆에 있는 파비각
(破碑閣)이 당시 역사를 증언해 준다.
송흥록 생가
가왕(歌王) 송흥록(1801~1863)은 판소리 동편제의 창시자이다.
동생인 송광록, 판소리 여류 명창 박초월(1915~1983) 등 판소리 200년사에서
가장 많은 제자를 길러낸 이 곳 비전마을은 명실공히 판소리 동편제의 탯자리로 불리고 있다.
이곳에서 소리가 성행했던 이유를 황산대첩비와 연계해서 생각해보고자 한다.
옛날 말을 탄 관리가 이곳 비전마을을 지날 때면 마을 서편의 하마비 앞에서
말을 내리고 황산대첩비 앞으로 와 절을 했다.
관리 일행이 묵었던 숙소가 하마비 근처 하마정이라는 2층짜리 정자였는데 그 일대는 주막의 거리였다.
사람이 섞이고 오가는 곳에서 새로운 문화가 싹튼다.
비를 세우고, 이를 기념하는 사람들이 머무르고, 머무르는 사람들이 소리를 주고받고,
귀명창이 태어나고, 그가 창조자가 되고...
그럴 듯하지 않은가.
군화마을
1961년 대홍수 때 소멸된 화수리 이재민들의 가옥을 군인들이 주둔하면서
마을을 건립하였는데, 그 때문에 '군인들이 지은 화수마을'이라 하여
군화동이라 부르게 되었다.
※ 군화동 정류장
덕두산 허리를 지나는 임도를 따라 대덕 리조트를 지나면 넓은 차도에 있는 정류장에 이르는데,
이 지점에서 차도(24번 국도)를 건너야 하므로 주의를 요한다.
신호등이 없고 도로폭이 좁아 조심하지 않으면 큰 사고가 날 수 도 있는 위험한 지점이다.
옥계댐
옥계는 옛날 운봉의 비경을 꼽은 운성 10경에서 옥계청류(玉溪淸流)로 불린 물맑은 계곡이다.
옥계동에 관한 이런 기록이 있다.
'산이 워낙 방대하고 백리가 넘는 골짜기가 많아 옛날부터 뜻 있는 선비들이 혼란한 정치의
파문을 피해 벼슬을 버리고 은거하였다. 신라 경덕왕 때 옥보고가 지리산 운상원(운봉) 옥계동에
은거하면서 50년 동안 거문고를 공부하고 새로이 30곡을 지었다.'
옥보고가 거문고를 탔다는 그 풍류계곡의 하류는 옥계댐이 만들어지면서 물속에 잠겨버렸다.
흥부골 자연 휴양림
지리산 국립공원과 연계된 곳으로 바래봉(1165m)자락의 덕두봉(1150m) 계곡에
수령 55~60년생 울창한 잣나무 집단군락을 형성하여 삼림욕이 좋은 곳이다.
지리산 서북능선인 백두대간 코스의 주봉 덕두봉을 거쳐 철쭉 군락지 바래봉과
연계되는 등산로가 있다.
안내소 앞마당이 둘레길의 휴식처로 적당하다.
월평마을
월평이란 마을 이름은 달이 뜨면 바로 보이는 언덕이란 뜻으로 달오름 마을이라고도 불린다.
1800년대 후반 천석꾼인 운봉 박씨가 이곳에 터를 잡고 살기 시작했다.
팜스테이가 가능한 농촌 테마 마을이라 민박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