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 함께 일어서는 참 좋은 나사렛대학교 사람들 이야기 08
전문사회복지사를 꿈꾸는
인간재활학과 강세민 씨
박은자(동화작가, 예은교회 사모)
키가 크지만 왜소한 남자 강세민 씨, 그는 나를 보자마자 웃었다. 처음엔 그 웃음이 잘 분간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한 시간 넘게 이야기 하는 동안 강세민 씨가 나를 보고 웃었던 웃음이 반가운 웃음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강세민 씨를 보고 어색하고, 어려워했던 것은 강세민 씨가 아니라 오히려 온전한 육체를 가진 나였다.
인간재활학과가 어떤 학과냐고 물었을 때 강세민 씨가 나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나는 강세민 씨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그러자 강세민 씨가 컴퓨터 자판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천천히 글씨를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자판을 두드리는 세민 씨 두 손은 역시 자유롭지 못했다. 그러나 모니터에는 빠른 속도로 이렇게 쓰여 있었다.
“인간재활학과는 장애인들의 직업재활과 자립생활을 돕는 장애인 전문사회복지사를 양성하는 학과입니다.”
세민 씨는 자신이 대답한 것이 이해가 되느냐고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또 물었다.
“공부는 잘해요?”
내 질문을 좋은 질문이 아니었다. 그래서 다시 물었다. 하지만 학점을 물었으니 그 역시 좋은 질문이 아니었다. 그러나 세민 씨는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지난 학기에 3.3나왔어요.”
“그래요? 정말 좋은 성적이군요. 장학금 받았겠네요.”
세민 씨는 그 성적으로는 장학금을 받지 못한다고 말했다. 서울에 있는 연세대 대학원에 갈 예정이고, 유학도 갈 계획이기 때문에 더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민 씨는 토플이 550점이라며 또 자랑스럽게 웃었다.
세민 씨에게서는 그늘을 찾아 볼 수가 없다. 사랑을 아주 많이 받고 자란 귀한 티가 자신감으로 얼굴에 나타나 있다. 세민 씨 어머니와 통화를 했다. 세민 씨 어머니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가슴이 뭉클했다. 그리고 마음이 많이 아팠다.
“세민이는 10개월을 다 채우지 못하고 9개월 만에 태어났어요. 저항력이 약했지요. 황달이 있었고, 태어난 지 5일째 되던 날 열이 40도가 넘었어요. 열이 머리로 올라갔는데 세민이는 그 열을 견디지 못했어요. 세민이가 뇌성마비 판정을 받았을 때는 하늘이 보이지 않았지요. 세민이를 고치기 위해 남편과 저는 여기저기 뛰어 다녔어요. 그러나 세민이는 일어나 앉지도, 걷지도 못했어요. 그런 세민이로 인해 우리 가족은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어요.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아마 세민이가 7세였던 것 같아요. 기도하는 중에 세민이가 일어나더니 세 발자국을 걸었어요. 너무 놀랐죠. 그 기쁨을 참을 수가 없었어요. 목사님 사택까지 뛰어가 소리를 질렀어요. ‘목사님, 세민이가 일어났어요. 세민이가 걸었어요. 세민이가 섰다고요!’ 목사님과 저는 함께 울었지요. 그러나 세민이는 몇 발자국 걸으면 금세 넘어졌어요. 하지만 걸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는 저는 세상을 얻은 것처럼 기뻤어요. 세민이를 걷게 해 주신 하나님이 이제 세민이를 온전하게 해 주실 거라는 믿음이 생겼지요. 하지만 그 때부터 더 힘들었던 것 같아요.”
세민 씨 어머니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아마 그 순간 많은 일들이 세민 씨 어미니 마음속에 스쳐지나갔을 것이다. 아, 정말 어떻게 사랑하는 아들의 이야기를 다 할 수 있으랴. 세민 씨 어머니는 호흡을 가다듬더니 조용히 말을 이어갔다.
“세민이는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정상적인 아이들과 함께 다녔어요. 세민이를 굳이 장애 학생들이 있는 학교에 보내지 않은 것은 앞으로 세민이가 살 세상이 장애자들만 있는 것은 아니잖아요?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다닐 때는 세민이와 늘 함께 다녔어요. 복도에 서서 공부하는 세민이를 지켜보았지요. 그런데 3학년 2학기가 되면서 친구들과 싸우기 시작했어요. 친구들도 어리니 의사표현이 안 되는 세민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싸움을 한 거지요.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친구들이 세민이를 이해하게 되고 세민이를 많이 도와주었어요. 저는 세민이가 좀 더 열심히 공부하기를 원했어요. 저 역시 세민이가 좀 더 좋은 성적을 받기를 바라는 보통의 엄마들과 다르지 않았지요. 그런데 세민이가 고등학생이 되면서 일일이 간섭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세민이를 혼자 학교에 보내야 한다는 생각, 자립을 시켜야 한다는 생각을 한 거지요. 그러나 세민이를 혼자 학교에 보낸다는 것은 더 큰 고통이었어요. 학교에 잘 간 것인지, 넘어지지는 않았는지, 의사소통이 안 된 세민이를 누가 때리는 것은 아닌지....... 그런데 우리 세민이가 열심히 공부했어요. 중 상위권을 늘 유지했지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사렛대학교에 들어간 후, 저는 완전히 마음을 놓았어요. 나사렛대학교에 와서 정말 놀라고 또 놀랬어요. 학교가 어쩌면 그렇게 사랑이 가득한지요. 세민이가 넘어지면 저보다 먼저 세민이를 잡아주고, 세민이를 일으켜주는 학생들을 보고 울고 말았지요. 기숙사도 세민이가 생활을 하기에 조금도 불편한 것이 없고요. 그리고 세민이와 함께 방을 쓰는 도우미 학생은, 그래요. 그 학생은 하나님께서 세민이에게 보내주신 선물이에요. 하나님이 보내주신 천사에요. 엄마인 저보다도 더 세민이의 마음을 아는 형이며, 친구이지요. 저는 세민이가 대학교에 들어간 후 직장생활을 하기 시작했어요. 이제 세민이는 혼자서 주말이면 혼자서 서울에 오고, 월요일 아침이면 또 혼자서 학교로 가지요. 정말 꿈같은 이에요. 우리 세민이가 혼자서도 너끈히 세상을 살 힘을 가졌다는 것, 정말 믿을 수 없는 일이에요.”
세민 씨와 함께 방을 쓰고 있다는 도우미 유진우 씨의 이야기도 들어 보았다.
“제가 세민이의 도우미라고 하지만 세민이를 위해서 특별이 해 주는 일은 없어요. 세민이가 워낙 혼자서 잘하거든요. 세민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 그래요. 그냥 세민이와 함께 살아요. 세민이는 아마 저와 있는 시간이 가장 많을 거여요. 세민이는 친근한 동생이고, 저 역시 세민이에게 다정한 형이 아닌가 싶어요.”
그래도 세민이를 도와주는 것이 있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여전히 없다고 말한다.
“정말 없어요. 아침에 밥을 타다주는 일 말고는요. 세민이가 무언가를 드는 일은 할 수가 없으니까요.”
세민 씨의 손을 만져 보았다. 많이 경직되어 있었다. ‘아, 이렇게 몸이 경직되어 있기 때문에 잘 넘어지는 것이구나. 이래서 경직된 모습으로 걷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도우미 진우 씨가 갑자기 말했다.
“아, 생각나는 것이 있네요. 처음 함께 방을 쓰는데 세민이가 빨래를 모아 놓았다가 집에 가져가더군요. 그런데 생활관에는 빨래를 할 수 있는 시설이 잘 되어 있거든요. 그래서 세민이를 데리고 세탁기 있는 곳으로 가서 사용하는 방법은 물론 혼자서 빨래를 할 수 있도록 가르쳤지요. 그래서 지금은 세탁물을 집에 가져가지 않아요. 사실 세탁물 같은 것부터 스스로 해결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자립할 수가 있겠어요?”
세민 씨의 도우미 유진우 씨는 환하게 웃었다. 그러나 말은 다 하지 않아도 진우 씨는 세민 씨에게 손이 되어주고 있을 것이다. 세민 씨가 혹 아프다고 할 때, 그이 머리맡을 지켜주는 든든한 친구이자 형일 것이다. 세민 씨 어머니가 그토록 칭찬하고, 그토록 감사해 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세민 씨는 말한다.
“진우 형이 좋아요. 그냥 바라보고 있어도 좋아요. 진우 형은 나에게 아주 많이 잘해 줘요. 내 모든 일상생활의 해결점이 되어 주고 있어요.”
도우미를 바라보며 웃는 세민 씨의 얼굴이 행복하다. 세민 씨가 행복하다는 것을, 세민 씨의 마음이 안정되었다는 것을 그 웃음으로 알 수 있었다.
다시 세민 씨의 이야기를 들었다. 학교생활에서 혹 힘든 것이 있느냐고 물었다. 세민 씨는 컴퓨터 자판을 두드렸다.
“강의 시간에 궁금한 것이 있는데 질문을 못하는 것이 어려워요. 질문을 마음껏 하고 싶어요. 혼자서 공부할 때도 궁금한 것이 많아요. 하지만 나는 질문을 일일이 글로 써야 해요. 글로 쓰지 않고 질문할 수 있다면 좋겠어요. 느릿느릿 말하지 않고 다른 친구들처럼 제대로 말할 수 있다면 좋겠어요.”
세민 씨는 교회에서 고등부 교사는 물론 찬양 팀에서 인도를 맡고 있다고 한다. 순간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 혹은 휠체어에 앉은 사람은 찬양을 인도할 수 있다. 그러나 지체 장애자가 어떻게 찬양을 인도할 수 있단 말인가? 도무지 그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는데, 그런 그가 어떻게 찬양을 인도하겠는가? 정말 사람들은 세민 씨의 인도대로 찬양을 부를 수 있을까? 그런데 세민 씨가 말한다.
“우리 교회 교인들이 조금은 힘들겠지요. 하지만 다들 어렸을 때부터 저를 보아왔고, 대화도 많이 하고, 그래서 내가 하는 말은 다 알아들어요. 제 말을 제일 잘 알아듣는 사람은 목사님이에요. 새로 온 교인이 있어 제 말을 알아듣지 못하면 목사님이 통역을 해 주시어요.”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나사렛대학교 장애학생들이 가지고 있는 자존감, 휠체어에 앉아서도 하나님께 쓰임을 받고, 앞을 보지 못해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이렇게 어눌한 말씨와 몸이 자유롭지 못해도 고등부 교사로 쓰임을 받고 있는 나사렛대학교 장애학생들.......
살다가 지친 사람이 있는가 물어보고 싶다. 삶에 지치고 세상이 원망스럽다면 나사렛대학교 교정으로 달려가 보라고 말하고 싶다. 이렇게 장애를 가졌어도 대학에 와서 공부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세상이 당신을 아무리 힘들게 해도 당신의 몸이 건강하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당신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으며 하나님께 쓰임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하고 싶다.
나사렛대학교 학생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학생들 가슴에 감사가 있다는 것이다. 세민 씨도 마찬가지다.
나사렛대학교 인간재활학과 3학년 강세민 씨, 그는 몸이 불편하다. 그러나 그는 행복하다. 그에게는 친형과 다를 바 없는 도우미 형이 있고, 꿈의 발전소 나사렛대학교가 있다. 그를 극진히 사랑하는 목사님과 부모가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 세민, 그를 너무나 사랑하신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세민 씨는 온전하게 걷지 못해도, 온전하게 말하지 못해도, 온전하게 서 있지 못해도, 그는 세상의 누구보다도 온전하다. 세민 씨가 공부를 마치고 이 땅의 많은 장애인들을 위해 사는 날, 그날 세상은 또 한 줄기의 사랑과 평화의 빛으로 인해 기뻐할 것이다.
(크리스챤신문, 2007. 10.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