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들이 지난해 11월 발표한 ‘2010학년도 대학 입학전형계획’을 흔들어 이른바 ‘입학사정관제 전형’을 대폭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잇따라 내놓고 있습니다. 이것은 교육과학기술부가 입학사정관제 선도 대학에 예산을 집중 지원하겠다고 밝힌 데 따른 여파입니다. 이에 따라 당장 올해 시험을 치러야 하는 수험생과 교사들은 혼란에 빠졌습니다. 교과 성적만이 아니라 잠재 능력·소질·창의성 등을 살펴 대학 신입생을 뽑자는 ‘입학사정관제’의 도입·확대에 교육계는 대체로 동의합니다. 그런데 각계각층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는 것은 왜일까요? 이번 주에는 ‘입학사정관제’의 허와 실을 알아봅니다. 이를 통해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입학사정관제가 잘 정착되기 위해서 필요한 보완책을 함께 생각해봅시다.
교과서
[교육받을 권리] 오늘날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하는 데 가장 기초가 되는 것은 교육이다. 헌법에서는 교육받을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즉,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받을 권리가 있다. …국민의 교육받을 권리를 제도적으로 보장하려고 교육의 자주성, 전문성, 정치적 중립성, 대학 자치가 국가 기관에 의해 부당하게 침해당하지 않게, 기본적 사항은 법률로 정하도록 하고 있다. 고등학교 <법과 사회> (교학사)
이슈
입학사정관제 대폭 확대
대학들이 지난해 11월 발표한 ‘2010학년도 대학 입학전형계획’을 흔들어 이른바 ‘입학사정관제 전형’을 대폭 확대하겠다는 입학전형 계획을 잇따라 내놓아, 당장 올해 시험을 치러야 하는 수험생과 교사들의 혼란이 커지고 있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입학사정관제 선도 대학에 예산을 집중 지원하겠다고 밝힌 데 따른 여파다.
대학들, 법령 무시
대학들은 지난해 11월 대학 입학전형 계획을 발표했다. 고등교육법 시행령에, 입학전형을 공정하게 시행하고 응시생에게 예측 가능한 입학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입학년도 1년3개월 전에 대입전형 계획을 공포하도록 돼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달 들어 고려대·성균관대·연세대·한국외대·한양대 등이 ‘입학사정관이 전형하는 모집’ 인원을 대폭 늘리겠다고 잇따라 발표했다. 한양대는 지난해 11월엔 입학사정관으로 40명을 뽑겠다고 했는데, 이번엔 무려 26배나 늘린 1031명을 뽑겠다고 발표했다. 성균관대는 50명에서 626명으로 13배, 연세대와 한국외대도 11배가량 늘렸다.
수험생들은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서울 ㄷ고등학교 3학년인 김아무개군은 “입시 7~8개월을 남겨두고 입학사정관제가 입시에서 ‘대세’처럼 인식돼 무척 혼란스럽다”며 “갑자기 해외 봉사활동이나 자격증을 딸 수도 없는데 좀 황당한 느낌”이라고 말했다. 유성룡 이투스 입시정보실장은 “서울 주요 대학이 내용을 변경했으니 나머지 대학들도 너도나도 바꿀 것 같다”며 “입시는 학생들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예측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법령으로 사전 예고제를 명시하고 있는데, 대학들이 이를 무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는 손을 놓고 있는 모습이다. 대교협 관계자는 “입시전형 계획을 바꾸려면 대교협 차원에서 심의 대상인지 따져 봐야 하는데, 대학들이 (대교협에) 문서 한 장 보내지 않고 저마다 입시안을 발표하고 있다”며 “지금은 딱히 통제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수험생들보다는 예산 겨냥?
대학들이 갑자기 입학사정관제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은 정부 영향이 가장 크다는 지적이다. 교과부는 입학사정관제를 확산시키겠다며, 지난해 40개 대학에 128억원을 지원했던 예산을 올해는 더 늘려 40여개 대학에 236억원을 투입할 예정이다. 입학사정관제를 활용한 학생 선발 인원, 입학사정관 채용 규모, 사업계획의 적절성 등을 평가해 차등 지원한다는 것이다. 한번 선정되면 큰 문제가 없는 한 5년 동안 지원받는다. 오는 7월 말 입학사정관제 지원 대학을 최종 선정한다는 계획이다.
서울의 한 사립대 입학처 담당자는 “정부가 10여개 선도 대학에 예산을 집중 지원한다고 하니까 대학들마다 경쟁이 붙은 것”이라며 “입학사정관제를 활용한 학생 선발 규모가 중요하니까, 입학사정관들이 조금이라도 참여하는 전형을 모두 끌어모아 다시 발표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다른 사립대 입학처 담당자도 “정부가 입학사정관제를 교육 개혁의 핵심으로 보고 있어서, 대학들도 거부할 수 없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김소연·정민영 기자, <한겨레> 2009-03-16,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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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자는 수만명, 10명도 안 되는 입학사정관
대학의 무리한 선발 인원 증원에 의구심
대학들이 입학사정관 수나 운용 체제 등을 제대로 갖췄는지에 의구심이 일고 있는 가운데 무리하게 선발 인원을 늘리겠다고 나서, ‘창의성·잠재능력을 중시하자’는 제도 취지를 퇴색시키고 ‘공정성 시비’등 부작용을 일으킬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입학사정관이 입학 전형에 참여하는 비중이 늘어날수록 점수 같은 객관적 지표보다는 잠재력이나 창의성 같은 주관적 판단이 개입할 여지가 커진다. 하지만 각 대학의 입학사정관 규모나 준비 정도는 미흡한 것으로 평가된다.
지원자 대비 입학사정관 턱없이 모자라
지난해 치른 2009학년도 ‘입학사정관제 전형’ 현황을 보면, 건국대는 자기추천 전형에서 15명 모집에 1105명이 몰려 73.7 대 1의 높은 경쟁률을 보였다. 한양대 52.3 대 1, 고려대 42.7 대 1, 연세대 39.9 대 1 등 입학사정관제 전형은 다른 대학들도 경쟁률이 높았다.
하지만 입학사정관 수는 매우 적은 실정이다. 연세대와 한양대의 입학사정관은 6명뿐이다. 그러나 두 대학은 올해 치를 2010학년도 입시에서 입학사정관제 전형으로 각각 1309명, 1301명을 선발하겠다고 했다. 경쟁률이 20 대 1만 돼도 전형해야 할 학생이 2만명을 넘어선다. 김진우 좋은교사운동 정책위원장은 “입학사정관제가 도입된 지 겨우 1년으로 경험도 취약한데다 사정관 수는 턱없이 부족하고, 입학전형 기준이나 방법도 분명하지 않아 상당히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무늬만 입학사정관제로 변질 우려
한편, 입학사정관이 단지 서류 심사나 면접에 일부 참여하기만 해도 대학들이 이를 입학사정관제 전형이라고 포장해 ‘숫자 부풀리기’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무늬만’ 입학사정관제라는 것이다. 교육과학기술부 관계자도 “대학들이 입학사정관제 전형을 대폭 늘린 것처럼 발표하는데, 전형요소 반영비율은 별로 변한 것이 없다”며 “다만 입학전형 과정에 입학사정관을 참여시키겠다는 의미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입학사정관들도 우려
입학사정관들도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김수연 가톨릭대 입학사정관 연구실장은 “봉사활동이나 각종 수상 내역들, 자기소개서처럼 단순히 눈에 보이는 실적이 아니라, 그 안에 숨겨진 학생의 잠재력을 해석해 지표로 만들려면 많은 시간과 전문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학생들을 얼마나 많이 뽑느냐보다 정성적 평가를 제대로 해내는지가 입학사정관제 성공 여부를 가를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소연·정민영 기자, <한겨레> 2009-03-15, 기사
배경
‘잠재력’으로도 대학 간다?
대학 가는 길이 또 하나 늘었다. 2009학년도 입시에 처음 등장한 ‘입학사정관제’를 통한 길이다. 그러나 길잡이가 마땅치 않다.
…입학사정관제는 2004년 10월 발표된 ‘학교교육 정상화를 위한 2008학년도 이후 대학입학제도 개선안’에 처음 등장했다. 당시 교육혁신위원회 위원으로 개선안을 구상한 이인규 아름다운학교운동본부 사무총장은 “21세기가 요구하는 창의적인 인재를 뽑기 위해서는 점수로 줄 세워 학생을 선발하는 ‘정량평가’가 아닌 질적인 평가가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에서 도입된 것”이라고 했다. 입학사정관은 이처럼 점수가 감춘 학생의 ‘잠재력’을 평가한다.
“창의적 인재 뽑으려면 질적 평가 중요”
잠재력을 보기 위해 입학사정관은 다양한 요소를 고려한다. 성장배경이 그 가운데 하나다. 임진택 경희대 입학사정관은 “ㄱ학생과 ㄴ학생 모두 90점을 받았다. ㄱ학생은 농어촌의 어려운 가정환경에서 자랐고 ㄴ학생은 서울의 중산층 가정에서 자랐다면 입학사정관은 ㄱ학생이 더 큰 잠재력이 있다고 본다”고 했다.
학생이 지닌 잠재력의 전공 관련성도 중요하다. 중앙대 입학처 관계자는 “대학에서 공부하고 싶은 전공과 관련된 특기나 적성이 있어야 ‘쓸모 있는’ 잠재력으로 인정받는다”며 “외국어 능력이 뛰어나도 자연계열에 지원하면 떨어진다”고 했다. 지난해 입학사정관이 참여했던 ‘21세기 다빈치 전형’에서는 외고와 과고를 나온 학생들도 떨어졌다고 한다.
입학사정관들은 보이지 않는 잠재력을 어떻게 검증할까? 입학사정관은 ‘정성평가’를 활용한다. 김수연 가톨릭대 입학사정연구실장은 “ㄱ학생은 영어 1등급, ㄴ학생은 영어 2등급이다. 그런데 ㄱ학생은 영어 관련 수상경력이나 동아리활동 경험이 없는 반면 ㄴ학생은 영어말하기 대회에서도 수상하고 영어토론 동아리 활동 경험도 있다. 정량평가를 하면 ㄱ학생이 뽑히지만 정성평가를 하면 ㄴ학생이 뽑힌다”고 했다. 컴퓨터 프로그램에 성적을 입력해 순위를 매기는 기왕의 방법은 ‘정량평가’다.
‘결과보단 과정’ 성장배경이 큰 변수로
결과보다 과정을 중시하는 정성평가의 성격 때문에 직접 학생을 찾아다니며 교육 환경을 확인하는 입학사정관도 있다. 대안학교 전형 심사에 참여하는 인하대 입학사정관은 지금 전국 21개 특성화 대안학교를 ‘순방’하는 중이다. 그는 “대안학교는 저마다 특성이 다르기 때문에 학생을 제대로 파악하려면 일일이 학교를 돌아다니며 분위기를 봐야 한다”고 했다.
지원서류가 많고 전형과정에서 심층면접을 하는 것도 학생을 다면적이고 종합적으로 평가하기 위해서다. 가톨릭대는 1차 서류전형을 통과한 학생들에 대해 2차로 인터뷰와 토론면접을 한다. 김수연 실장은 “똑같이 복지시설에 봉사활동을 나갔더라도 사회적 약자에 대한 고민을 한 학생과 요식적인 행위에 그친 학생은 인터뷰를 통해서 거를 수 있다”며 “토론면접으로는 타인과 관계 맺는 능력을 볼 수 있다”고 했다.
입학사정관제 전형과 특기자 전형의 차이점이 여기 있다. 특기자 전형 역시 특정 분야에 소질 있는 학생의 잠재력을 보지만 지원자격에 그칠 뿐, 전형과정에서는 성적이 평가의 요소가 된다. 성균관대 입학처 관계자는 “과거에도 리더십 전형이 있었지만 그때는 학생회 임원 경력이 지원자격일 뿐이었다”며 “그러나 앞으로는 임원이 된 뒤 어떤 활동을 하고 어떤 능력을 쌓았는지 내용을 면밀하게 따지게 될 것”이라고 했다.
전문성 갖춘 입학사정관 필요
따라서 입학사정관은 학생 평가와 선발에 상당한 전문성을 갖춰야 한다. 가톨릭대는 지난해 5명의 입학사정관을 채용했다. 21명의 교수가 입학사정관으로 임명되는 서울대를 빼고는 가장 많은 수다. 박사 1명, 석사 3명, 학사 1명으로 구성됐다. 모두 교육학 전공자다. 김수연 실장(교육학 박사)은 교육심리 전공으로 상담 경력이 15년이다. 가톨릭대는 5명의 입학사정관이 일하는 입학사정연구실을 따로 만들었다. ‘전문가’ 양성을 위해 학교는 따로 예산을 마련하고 입시 분석에 필요한 ‘사회조사분석 프로그램’(SPSS) 연수를 진행할 계획이다.
성적도 평가 항목에 포함
학생들이 오해하지 말아야 할 대목은 입학사정관제 전형이라고 해도 수능이나 내신의 교과성적이 완전히 무시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특기나 적성을 계발할 기회가 전무하다시피 한 우리나라에서 점수화된 성적은 학생의 잠재력을 어느 정도는 설명한다고 간주되기 때문이다. 임진택 입학사정관은 “과거에 비슷한 전형을 실시한 결과를 분석해 보면 특정한 능력을 보유하고 있어도 학업 성적이 지나치게 안 좋은 학생들은 대학 생활에 적응하지 못했다”며 “입학사정관제 전형에서는 학업 성적이 과거와는 다른 방식으로 고려될 것”이라고 했다.
진명선 기자, <한겨레> 2008-04-06, 기사
낱말풀이
① 정량 (定量) 양을 헤아려 정하는 것을 뜻합니다.
② 정성 (定性) 물질의 성분이나 성질을 밝히어 정하는 것을 뜻합니다
관점
“사교육비 절감과 공교육 정상화를 위해 반드시 필요”
입학사정관 도입을 위한 대학들의 움직임이 활발하다. 얼마전 서남표 KAIST 총장이 일반고 학생 150명을 입학사정관을 통해 선발하겠다고 밝힌 데 이어 포스텍은 올해 입시에서 국내 대학 중 처음으로 전체 모집 정원 300명 모두를 입학사정관제 전형으로 뽑기로 했다. 이 밖에 올해는 모두 50여개 대학이 4500여명의 신입생을 이 같은 방식으로 충원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는 성적 위주의 대입 관행(慣行)을 깨뜨리는 기폭제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고무적인 현상이다.
입학사정관제는 학업 성적뿐 아니라 잠재력, 봉사활동, 가정환경 등 종합적인 면을 고려해 학생을 선발하는 방식이다. 미국 유럽 등지의 대학에서는 일반화된 전형 형태로 대학의 자율적 학생선발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도 필요한 제도다. 정부가 이의 활성화를 위해 올해 40여개 대학을 선정해 236억원의 예산을 지원키로 한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사실 점수 위주의 우리 교육 현실이 낳은 폐해는 새삼 강조할 필요도 없다. 아이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온갖 학원과 과외로 내몰리고 부모들은 연간 21조원에 육박하는 사교육비를 대기 위해 허리가 휠 지경이다. 그런 점에서 입학사정관제는 사교육비 절감과 공교육 정상화를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제도라고 본다.
문제는 넘어야 할 산이 한두 개가 아니라는 데 있다. 우선 신뢰를 확보하는 게 급선무다. 어차피 입학사정관의 주관이 작용할 수밖에 없는 만큼 어떻게 하면 자의적인 평가를 배제하고 공정성을 확보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입학사정관의 자격요건 객관화와 학생선발 과정에서의 비리 근절(根絶)도 과제다.
따라서 각 대학은 철저한 준비를 통해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절차의 공정성과 객관성을 확보하는 것이 시급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학교육협의회 등을 통해 수시로 협력하고 정보를 교류하는 등 만전의 준비를 해야 한다. 정부는 입학사정관의 자격과 수준을 유지하기 위한 인증제를 차질 없이 도입하고 사후에도 꾸준히 보완해야 할 것이다. 입시 부정을 막을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도 마련해야 함은 물론이다. 아울러 조급하게 밀어붙이기보다는 점진적으로 확대해 나가면서 합리적인 방안을 찾는 노력도 절실하다.
<한국경제> 2009-03-11, 사설
배경2
“사이비 입학사정관제라면 안 하는 게 낫다”
입학사정관제 돌풍이 분다. 연세대(1309명), 한양대(1031명), 고려대(886명), 한국외대(678명), 성균관대(626명) 등 주요 사립대학이 선발 인원을 대폭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말 밝힌 계획보다 많게는 무려 26배까지 늘렸다. 점수로 줄 세워 뽑지 않고 인성·잠재력 등 종합적인 역량을 평가해 선발하는 제도라니, 대학들의 이런 표변을 나무랄 순 없다.
문제는 배경과 진정성이다. 지난 정권도 이 제도 도입을 집요하게 요청했다. 그러나 서울대 등 일부 국공립 대학을 제외하고 이들 대학은 못 들은 척 외면했다. 이들을 돌변케 한 것은 정부의 당근과 채찍이다. 선도 대학에 예산을 집중 배정하겠다고 한 것이 당근이라면, 사학의 각종 탈·불법 행태를 손에 쥐고 있는 정부의 보이지 않는 압력은 채찍이었다. 대학들은 재정 지원도 노리고, 정부의 눈총에서도 벗어나고자 숫자 늘리기 경쟁에 나선 것이다.
배경이 이렇다 보니 진정성이 의심받는 건 당연하다. 위의 대학들은 현재 사정관이 불과 10명도 안 된다. 확충 계획도 불투명하다. 이들이 수험생 수만명을 종합적으로 평가한다는 건 말도 안 된다. 기준도 원칙도, 하다못해 윤리준칙도 없다. 그저 잡다한 특별전형들을 끌어 모아 입학사정관제라는 겉옷만 입히려는 것이다.
입학사정관제는 두 날을 가진 칼이다. 발전적인 면과 함께 퇴행의 소지도 크다. 잠재 역량까지 종합판단을 해야 하는 것이므로 평가가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공정성 시비를 피하기 어렵다. 대학은 고교등급제 적용 등의 유혹에 빠진다. 공정한 기준과 투명한 선발, 그리고 투철한 윤리의식이 전제되지 않으면 긁어 부스럼이다.
대학도 정부도 문제다. 대학은 호시탐탐 고교 등급제 적용 등 변칙 기회만 노렸다. 정부는 섣부른 대입 자율화의 실패를 이 제도로 미봉하려 한다. 괴물을 낳을 결합인 것이다. 가시적 성과에 급급해선 안 된다. 괴물 출현보다는 포기하는 게 낫다.
<한겨레> 2009-03-16, 사설
심화
대입선발제도 변화는 일종의 ‘쇼’
‘학벌주의 완화’ 없이 공교육 정상화 불가능
그간 지겹도록 보아온 바와 같이 대입선발제도의 변화는 일종의 ‘쇼’였다. 기존 학벌주의를 완화하지 않고선 사교육비 부담완화와 고교교육 정상화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명백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자꾸 대입제도만 바꾸는 ‘쇼’를 반복하는 건 새로운 변화에 강하게 저항하는 기득권 세력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차이 때문이었을 것이다.
한국의 대학입시 전쟁은 국제 경쟁이라고 하는 본선에 진출하기도 전에 ‘밥그릇 싸움’만 하다가 모두가 기진맥진해 드러눕는 미련하기 짝이 없는 짓이었지만, 그 ‘밥그릇’을 차지하는 게 절체절명의 과제였기 때문에 기존 체제를 바꾼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한국의 오바마’ 길러내라?
2008년 11월 <한겨레> 사설은 “서울대의 학생 선발에 대해 상담을 해온 미국의 도리스 데이비스 코넬대 입학처장이 전해온 컨설팅 결과는 여러모로 주목된다. 이 가운데 특히 눈에 띄는 건 학생선발에서 고교 때 성취를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삼고, 복잡 무쌍한 입학전형을 단순화하라는 내용이었다. 간단하지만 대입제도 문제점의 정곡을 찌른다.”며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오늘의 버락 오바마를 만든 여러 요인 가운데 하나는 미국 대학의 학생선발제도다. 고교 시절까지만 해도 그는 정체성 문제로 방황하다가 술과 마약에까지 손을 댔다. 옥시덴탈 칼리지는 그런 그를 받아주었고, 명문 콜롬비아대학은 그의 잠재력을 보고 정치외교학과 편입을 허락했다. 대학 졸업 후 빈민가에서 환경 및 인권운동을 하다가 뒤늦게 하버드대 로스쿨의 문을 두드렸을 때도 이 대학은 그를 받아줬다. 오늘날 오바마가 미국의 역사를 새로 쓸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대학들 덕분이었다. 한국의 대입제도에서라면 불가능한 일이다. 서울대가 학생선발제도를 바꾸겠다고 한다. ‘한국의 오바마’를 선발하고 길러낼 수 있는 제도를 도입해 국립대로서 의무를 다하길 기대한다.”
미국과 한국은 상황 달라
좋은 말이긴 하지만, 이건 한국 실정에 맞지 않는 이야기다. 미국의 그런 학생선발제도는 미국이 한국만큼 학벌주의가 강하지 않거니와 명문대 출신의 요직 독과점이 심하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며, 그마저 상징적인 수준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에서 그런 제도를 실시한다 해도 더더욱 상징적 수준에 머무를 수밖에 없게끔 돼 있다. 명문 대학 입장에선 ‘귀족 대학’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위한 면피용 목적이 더 크다는 것이다. 중요한 건 극소수 명문대의 학생선발제도 변화로는 지금 우리가 문제 삼고 있는 사교육 과잉과 입시전쟁엔 아무런 변화를 가져올 수 없다는 점이다.
‘학벌주의 완화’가 답이다
‘원인’은 SKY 출신의 사회요직 독과점에 있는데, 우리는 원인은 방치하거나 악화시킨 채 ‘증상’과만 싸우고 있다. 앞서 지적한 이유들 때문에 이런 비생산적인 싸움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피곤하고 살벌하게 살더라도 그 이유는 제대로 알고나 살자. 우리는 쏠림의 축복과 저주의 덫에 같혀 있다. 이 덫이 유발하는 각개약진 체제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이게 기존 입시전쟁이 한국사회에 미치는 가장 치명적인 악영향이다.
강준만, <입시전쟁잔혹사> (인물과사상사, 2009) 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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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
높은 사회적 신분에 위치한 자는 그에 걸맞은 도덕적 의무를 져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로마시대 초기에 왕과 귀족들이 투철한 도덕의식과 실천하는 자세를 보인 것에서 비롯됐습니다. 근·현대 들어 도덕의식은 계층 간 대립을 해결할 수 있는 최고의 수단으로 여겨졌습니다. 특히 국가위기를 맞이해 국민을 통합하고 역량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무엇보다 기득권층의 솔선하는 자세가 필요했습니다.
낱말풀이
① 절체절명 (絶體絶命) 몸도 목숨도 다 됐다는 뜻입니다. 어찌할 수 없는 경우를 빗대어 씁니다.
② 정곡 (正鵠) 가장 중요한 요점 또는 핵심을 뜻합니다.
③ 각개약진 (各個躍進) 지형·지물(地物)을 이용해 병사들이 개별적으로 적진을 향해 돌진하는 것을 뜻합니다.
출처:함께하는 NIE논술.... 기획·편집 정종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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