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송진 시인
‘복숭앗빛 복숭아’를 중심으로 한 시와 시인
리호(시인)
리호 - “현대시의 대표적 모더니즘 이미지 시인인 송진 시인이 등단 20주년을 맞아 다섯 번째 시집 『복숭앗빛 복숭아』를 발간했다. 1일 한 편의 시를 쓰는 송진 시인은 지난 3년간 쓴 천여 편의 시들 중에서 골라낸 74편의 시를 실었다.” 는 보도자료를 읽었습니다. 등단 20주년이란 말에 놀랐구요, 굉장한 다작에 두 번 놀랐습니다. 일단 시집 출간을 격하게 축하드립니다. 저자본 따끈따끈한 시집을 손에 딱 받았을 때 느낌 기억하시나요?
송진 - 리호 시인 안녕하세요. 축하 말씀 고맙습니다. 제 첫 번째 시집 ‘지옥에 다녀오다’가 故 김충규 시인이 문학의전당에서 발행인으로 계실 때 나왔는데요. 1998년인가 문학동네 본심에 여러 명 같이 올라간 인연이 있었어요. 그 때 김충규 시인이 당선되었는데요. 그 인연을 기억했는지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 잊지 않고 시집청탁을 해주었어요. 그래서 첫 시집을 내기로 했는데 어느 날 일을 마치고 집에 오니 첫 시집 ‘지옥에 다녀오다’ 가 든 보리박스가 현관 문 앞에 있는데 어찌할 바를 모르겠더라구요. 기분이 좋은 것도 아니고 나쁜 것도 아니고 부끄러운 것도 아니고 부끄럽지 않은 것도 아니고 미묘한 감정이었어요. 그 일이 늘 첫 시집에게 미안했어요. 두 번째 시집 『나만 몰랐나봐』도 세 번째 시집 『시체 분류법』도 네 번째 시집 『미장센』도 그랬죠. 도무지 기쁘지가 않았어요. 그래서 이번 다섯 번째 시집은 환대 해주고 싶었어요. 2020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에 집으로 도착했는데 기쁘게 환대하고 안아주었어요. 그동안 제 시집이 나올 때마다 너무 외롭게 한 것 같아 사과의 뜻으로 따뜻하게 두 손으로 정중하게 품에 안았습니다.
리호 - 등단 후 강산이 두 번 변했는데요, 이번 시집을 묶으면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송진 - 출판사에서 시집 제목을 좀 바꾸어보면 어떻겠냐고 하시더라구요. 몇 개의 제목으로 서로 의논하다가 마지막 교정 때 시집 제목을 『복숭앗빛 복숭아』 그대로 하고 싶다고 말씀드렸어요. 시집 빛깔은 검은 바탕이 좋겠다고 말씀드렸죠. 시집이 나오고 보니 그렇게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리호 - 『복숭앗빛 복숭아』를 펼쳤을 때 시인의 말이 인상 깊게 다가왔습니다. 옮겨보자면
체코 맥주 조금 남아있어 목을 축이고
진영 단감 한 개를 깎아 먹었다
故 송원석 아버지께 이 시집을 바칩니다
앞서 펴낸 네 번째 시집 『미장센』의 시인의 말에는 ‘故 이삼순 외할머니께’ 라는 말이 등장하고요.
아버지 혹은 외할머니와의 좋은 추억 하나만 말씀해주세요.
송진 - 저는 부산에서 태어나고 부산에서 자랐는데요. 초등학교 6학년까지는 방학만 되면 경남 사천 할머니 집에 갔어요. 버스를 타고 가면 시외버스 정류소에 할머니가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 당시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곳이었는데 저는 그 어둠이 참 좋았어요. 호롱불에 어른거리는 흙벽의 그림자도 좋았고 동그란 검은 문고리가 달린 약간 두터운 문풍지 한지 방문도 아름다웠어요. 까만 그을음도 좋아했어요. 따뜻한 가마솥에 들어가 있는 밥그릇 안의 물고구마도 좋았고 저녁밥 먹은 후에 할머니랑 불이 아직 남은 아궁이 앞에 쭈그리고 앉아 고구마를 밀어 넣고 재를 덮어주면 깊은 아궁이 안에 아득하게 누워있는 재나 뒤척이는 듯 내 발 끝 앞으로 흘러나오는 재들이 은하수 별빛 같아 너무 아름다웠어요.
할머니가 “마실(산책) 가자“ 그러면 할머니 손을 잡고 밤마실을 다녔는데요. 하늘에 별이란 별은 다 모여 있었지요. 제가 하도 밥을 많이 먹어 할머니가 웃으며 ”다음에 올 때는 쌀 한가마니 지고 온나“ 했어요(웃음)
리호 - 이번 시집에 등장하는 부제 –어제의 시, 시리즈가 몇 편(86, 85, 84) 보이는데요. 혹시 긴 연작이었나요? 연작이었다면 어떤 의미일까요?
송진 - 제가 날마다 시 한 편은 꼭 쓰려고 하는데요. 몸이 안 좋거나 일이 많거나 그러면 쓰지 못하고 지쳐서 그냥 쓰러지듯이 잘 때가 있어요. 이른 새벽에 눈을 뜨면 아, 어제 시를 못 썼구나, 그런 생각이 들죠. 어느 날 새벽 누워있는데 무척 아련하고 슬픈 느낌이 들었어요. 어제 시에 집중 못한 것을 반성하면서 누워 있는데 그런 감정이 흘러 나왔어요. 그래서 휴대폰 노트에 어제의 시라고 쓰면서 연작시가 시작되었어요. 그냥 우연히 자연스럽게 흘러나왔어요.
리호 - 앞에서 말했듯이 3년간 천여 편을 쓰셨다는 것이 놀라운데요. 요즘도 하루 한편 시를 쓰시나요? 제가 송진 시인을 흠모하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한데요. 시집이 아무리 두껍고 많은 시가 실렸어도 한 번에 다 읽히거든요. 숨도 안 쉬고 읽다가 6부에서는 다리 한번 꼬고 마무리를 하게 되어요. 숨 돌리기라고 할까요. 그래서 더 재미있었습니다. 현재 ‘시창작법’ 연재도 하고 계신데요, 송진 시인만의 시 쓰기 노하우가 있다면? 혹은 시집 묶기 노하우도 괜찮습니다. 독자들을 위해 들려주세요.
송진 - 하하 등단 후 20년 넘게 시를 쓰고 시인으로 살아왔지만 흠모라는 단어는 처음 들어봅니다. 시집을 끝까지 읽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날마다 시집이 무수히 쏟아져 나오는 현실에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으니까요. 거듭 고맙습니다. 대답을 드리자면 예 요즘도 날마다 시 한 편을 쓰고 있습니다. 시작노트도 함께 쓰고 있는데요. 다 못한 말들이 들어가는 순간들이죠. 시는 몰입인 듯 합니다. 몰입하지 않으면 가짜의 시가 될 확률이 높아지는 거죠. 저 같은 경우는 무의식의 시를 쓰다 보니 몰입하지 않으면 시가 마음에 안 들어요. 살아남은 시가 몇 편 되지 않더라도 좋은 시를 쓰고 싶은 마음에 몰입과 성실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성실은 날마다 시를 쓰게 하는 힘이죠. 몰입만 한다고 시가 나오는 건 아니니까요. 꽃의 줄기처럼 인내심을 가지고 직관력으로 써야죠. 시는 언어로 나타내는 게 가장 기본이잖아요. 날마다 언어로 성실하게 쓰다보면 그 속에 자연스럽게 꽃도 음악도 시계도 같이 뛰어 놀죠.
리호 - 『복숭앗빛 복숭아』 시집이 오래된 “애인” 이라 생각하시고 단어 세 개만 딱 건네준다면?
그리고 왜 그 단어를 택하셨는지 말씀해주세요.
송진 - 글쎄요... 제 다섯 번째 시집이 오래된 애인이라면 자비가 먼저 생각나네요. 평소 생활 속에서 자비로서 인간의 존엄성이 완성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 전에 오늘 하루 자비로웠나 반성하고 참회기도와 자비관을 보내기도 하구요. 새벽에 눈을 뜨면 오늘도 어떤 헛된 상相에 휘둘리지 않고 자비롭기를 기도하죠. 저는 제 자신과 주변사람들에게 자비가 필요하고 그것을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아직 많이 부족하니까 노력하는 것 외에는 별 방법이 없는 거죠. 그래서 노력합니다. 세속에서 다 놓아버리는 것은 좀 힘들 것 같아요. 최소한의 욕망은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다섯 번째 시집이 오래된 애인이니 더 참고 견디고 기다리며 시를 써야겠습니다. 그리고 자비나 용서 같은 감정들은 있으나 눈에 보이지 않잖아요. 허상이지요. 『복숭앗빛 복숭아』의 빛은 나타나지만 곧 사라지고 흔적도 없으니 공空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리호 - 시집의 마지막 부분 6부에 풍자시 형태의 장시 「이화에 중선이라」를 넣었는데 의도적이었는지 궁금합니다. 그러고 보니 네 번째 시집 『미장센』 6부에도 「인간의 얼굴」이란 장시가 있었네요.
송진 - 예 일 년에 한 편 정도 시소설(장시)를 쓰고 시집에 싣고 있습니다.
리호 - 3-4-5 시집 『시체 분류법』, 『미장센』, 『복숭앗빛 복숭아』를 읽으면서 문득 꽃으로 비유해 봤습니다. 『시체 분류법』은 ‘칸나’, 『미장센』은 ‘작약’, 『복숭앗빛 복숭아』 ‘만첩빈도리’ 로 표현을 해봅니다. 제가 이렇게 표현한 이유는 점점 시집이 더 자유로워진다는 느낌을 받아서입니다. 유체이탈한 시인이 자유롭게 우주를 날아다니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벌써 다음 시집이 궁금해지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송진 시인께서는 본인의 위 시집들을 물고기로 비유한다면 어떤 녀석들이 등장할까요?(꼭 물고기가 아닌 다른 것으로도 비유 가능합니다. 생물 미생물 상관없이요.) 이유도 얹어주시면 좋겠어요.
송진 - 예... 갈수록 질문이 어려워지네요(웃음). 『복숭앗빛 복숭아』가 나오기 전에 제 다른 시집 한 권 분량이 다른 출판사에 넘어가 있었는데요, 원래는 그 시집이 2020년 겨울까지 나오기로 되어있었는데 출판사에서 급한 사정이 있어 나오지 않았어요. 그래서 『복숭앗빛 복숭아』는 사실 순서상 여섯 번째 시집인데 먼저 나오게 되었어요. 부산문화재단 창작기금을 받았기 때문에 2020년 12월까지는 시집이 나와야했거든요. 그래서 저도 독자들이 혼란스러우면 어떡하지 그런 고민을 좀 많이 했어요. 시인의 정신적 시공時空이 역으로 흘러가는 시집을 읽어야 할 테니까요. 저도 얼른 여섯 번째 시집이 보고 싶어요. 시인에게는 시가 피붙이 같은 존재잖아요. 한시도 눈을 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집착을 해서도 안 되는 존재죠. 사실 시는 존재하나 존재하지 않는 존재잖아요. 존재하지 않지만 존재하기도 하구요 여섯 번째 시집을 곧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스스로 위로하며 시의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복숭앗빛 복숭아』는 ‘큰 유리새’라고 부르고 싶어요. 파란빛이 아름다운 새이거든요. 아름다운 시를 내장 속에 차곡차곡 쟁여 넣어 날아다니는 시집 같아요.
리호 - 시인 “송진” 하면 어떤 시인이라고 생각될까요? 어떤 시인으로 불리고 싶으신지요?
송진 - 금기를 뛰어넘어 본래 있는 자유를 향해 나아가는 시인
리호 - 여름에 소책자 잡지 형태의 문학지를 창간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색깔의 문학지일까요? 살짝 스포 부탁드려요.
송진 - 예. 일 년에 두 번 나오는 소책자 문학지 입니다. 등단 비등단 경계 없이 재미있는 문학잡지를 만들고 싶구요. 5월 말 쯤에 창간호가 나올 예정입니다.
리호 - 다시 태어나면 송진이란 시인은 시를 쓰고 있을까요? 복숭아나무를 키우고 있을까요?
송진 - 다시 태어난다면 쇼팽, 슈만처럼 작곡가가 되어있을 것 같습니다.(하하!)
리호 - 그림 하나 부탁해도 될까요?
아래 공간에 선생님 자화상 하나 그려주세요. 꼭 사람의 형상이 아니어도 됩니다.
(직접 그리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리호_카메라 기사님 투샷으로 부탁드려요.)
리호 - 앞의 그림에 대해 설명 부탁드려도 될까요?
송진 - 귀도 없고 코도 없고 입도 없는데요. 옆으로 길쭉한 커다란 타원형 눈동자 안에 수없이 많은 눈동자가 또 있습니다. 그 눈동자들은 듣는 귀의 역할까지 하고 있구요. 가느다란 다리에 매달린 발은 언제 어디서나 밤이나 낮이나 높은 곳이나 낮은 곳이나 흔들리지 않고 단단하게 안착 할 수 있도록 많은 발가락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날개가 되어 훨훨 날아다닐 수도 있습니다. 물만 먹고도 오래 날 수 있어 견디고 참고 기다리는 ‘감인대 새’ 라고 불리기도 한답니다.
■ 지금부터 뜬금없는 짜장 짬뽕 게임 한번 해볼까요?
(옆에서 스태프로 둔갑한 발행인께서 하나 둘 셋을 외친다.)
레디~~~고!!
○ 새우깡 : 웨하스 ( 웨하스 ) 새우깡
○ 화요일 : 목요일 ( 목요일 ) 화요일
○ 별 : 달 ( 별 ) 달
○ 보라 : 검정 ( 검정 ) 보라
○ 봄 : 겨울 ( 겨울 ) 봄
○ 백도 : 황도 ( 백도 ) 백도
○ 이상 : 기형도 ( 이상 ) 이상— 만
리호 - 송진 시인과의 즐거운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마지막 질문을 던지겠습니다.
‘시’와 ‘봄’이 물에 빠졌어요. 송진 시인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송진 - 물속에 뛰어든다.
풍덩!!!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