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어 정리> 자자형: 죄인의 몸에 상처를 내고 먹물로 죄명을 새겨 지워지지 않게 하는 형벌.
축경: 불교의 교리를 밝혀 놓은 전적(典籍)을 통틀어 이르는 말. 전적(典籍): 일정한 목적, 내용, 체재에 맞추어 사상, 감정, 지식 따위를 글이나 그림으로 표현하여 적거나 인쇄하여 묶어 놓은 것.
<기사 요약> 올해 2월 개봉한 영화 '파묘'에는 배우 이도현(봉길 역)을 비롯한 네 배우가 보호 주술을 위해 얼굴과 몸에 축경을 새긴 채 등장하는 장면이 있다. 이 장면을 두고 한 중국 네티즌이 중국에서는 '얼굴에 글을 쓰거나 새기는 행위가 매우 모욕적인 행위, 한국인이 뜻도 모르는 중국 글자를 얼굴에 쓴다는 게 참 우스꽝스럽다. 한국인들은 중국 글자라고 부르지 말고 ‘음력 문자’라고 불러야 할지도 모르겠네.'라고 비판하여 한국 네티즌들과 설전을 벌였다. 영미에서 음력 설을 ‘중국 설(Chinese New Year)’로 부르는 경우가 많아서 우리나라에서 ‘음력 설(Lunar New Year)’로 대신 불러야 한다고 촉구해온 것에 불만을 품었던 중국인이 빈정거린 것으로 보인다.
<나의 생각> 중국에는 '자자형'이란 형벌이 있다. 죄인의 얼굴에 상처를 내고 먹물로 글자를 새겨 전과를 표시하는 형벌이다. 이는 주나라의 형서에 처음 등장했는데, 과거 조선에서도 시행된 기록이 있다. 이렇게 얼굴에 글씨를 새기거나 그리는 행위는 단순히 영화 속에서 주술의 기능을 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고 우리나라에 얼굴이나 몸에 한자를 새기는 문화가 있는 것이 아니지만, 중국인이 영화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 상태로 '파묘'의 포스터만 봤다면 이를 떠올리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과연 파묘를 비하한 중국 네티즌이 이것만 보고 그런 비난글을 작성한 것일까?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다고 느낄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이 기사를 읽고 '자문화 중심주의'와 '문화 상대주의'의 개념을 떠올렸다. 자문화가 더 우월하기 때문에 음력설을 'Lunar New Year'이 아닌 'Chinese New Year'로 불러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한국을 비판하고자 파묘 포스터를 문제 삼아 자국에서는 이것이 모욕적인 행위라며 비꼬는, 소위 말해 '억까(억지로 까내림)'를 하는 중국인 네티즌이 문화 상대주의가 아닌 자문화 중심주의적 태도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문화 상대주의는 한 사회의 문화는 다른 나라의 언어로 완전히 번역되거나 전적으로 이해될 수 없으며 각각의 문화 사이에 우열을 가릴 수 없고 모두 상대적 중요성이 있다는, 쉽게 말해 '남의 문화를 편협한 시각에서 바라보지 말고 존중해야 한다'는 개념이다. '문화 상대주의를 아냐'고 교내 설문조사를 하면 99%가 안다고 대답할 것이다. 그런데 개념은 알지만, 이를 실제로 일상 속에서 실천하고 있는 사람들은 몇이나 될까? 나는 가끔 타국의 특이한 문화를 접하고 비난하는 건 우리나라 사람들이 더한 것 같다고 느끼기도 한다. 최근 예능 프로그램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를 보았는데, 여기서 식물을 씹어뱉어 전통음료를 만드는 걸 보고 배우 이시언이 역겨움을 표했다. 댓글창에는 그 나라의 문화를 존중하는 사람도 있었던 반면, 이해할 수 없고 충격적이라는 의견을 표하는 댓글도 꽤 많이 찾아볼 수 있었다. 문화 비난 뿐일까? 중국 네티즌의 공격을 두고 '역시 짱깨' 등의 비하발언을 서슴지 않게 뱉는 사람들도 많았다.
문화가 다르니 이해할 수는 없는 건 당연하지만, 이해와 존중은 다른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문화와 콘텐츠가 비난받는 것에는 화내고, 타국의 문화는 이해할 수 없다고 비난하면 우리가 이 사건 속 중국 네티즌과 다른 게 무엇일까? 남을 존중해야 나도 존중받을 수 있다. 이 사건을 접한 한국인들이 단순히 중국 네티즌을 비판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는 계기로 삼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