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색을 하며
화장을 하고 반짝반짝 꽃분홍 치마를 입고 거울을 봅니다. 입가의 팔자주름이야 마스크로 가린다지만 머리카락의 하얀 뿌리는 가릴 수가 없습니다. 매직처럼 생긴 부분 염색약을 바르려니 떡이 집니다. 휴지로 살짝 살짝 닦아내고 가는 빗질로 보기 흉하지 않을 정도로 마무리를 합니다. 염색을 하고 싶지만 시간이 없습니다.
노인 시설 수업 시간, 다행히 어르신들 대부분은 눈이 좋지 않아 제 머리카락의 세세한 결점을 모르십니다. 행여 머리카락이 보일세라 적당한 거리를 두고 수업을 합니다. 하늘하늘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고 봄꽃 이름 끝에 박수를 칩니다. 나의 모션과 말 하나하나에 즐겁게 웃는 어르신들의 환한 얼굴에 감사와 행복을 느낍니다.
꽃분홍 치마가 예쁘다고 칭찬을 합니다. 젊으니 좋다. 늙지 마라. 즐겁게 해 줘 고맙다고 인사를 하는 어르신들 덕분에 오늘도 마음 가볍습니다. 집에 와 곧바로 염색을 합니다. 요즘은 물염색약이 나와 냄새도 거의 없습니다. 그래도 염색은 여간 성가신 게 아닙니다. 분말에 물을 부어 잘 섞은 다음 머리카락 뿌리부분에 염색약을 바릅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머리카락 색이 진해집니다. 남편은 염색은 왜 하냐고 지청구를 늘어놓습니다. 사실은 나도 염색이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어르신들 앞에 서는 강사가 머리가 허옇게 해서 가는 건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에 염색을 합니다. 기력도 떨어지고 웃을 일 없고, 서글픔 많은 어르신이니 보다 젊고 활기찬 제 모습을 보이고 싶은 거지요.
귀찮지만 나로 인하여 잠시나마 웃고 기분 좋게 신체활동을 하는 어르신들을 생각하며 정성을 들입니다. 염색으로 세월을 되돌릴 순 없지만 기분은 달라집니다. 한결 젊어진 기분과 함께 얼굴에 생기가 도는 듯합니다. 옷이 날개라는 말처럼 머리카락 색깔 하나에도 인상이 달라지는 것을 염색은 경험하게 해 줍니다.
똑같이 노인시설에 다니시는 어르신이라도 옷이나 헤어스타일에 따라 인상이 달라 보입니다. 예전에 나는 젊은이들이 염색을 튀게 하면 혀를 찼습니다. 그런데 어제 약국에 갔다가 은회색 염색을 한 아가씨가 참 예뻐서 놀랐습니다. 정말 예쁘다는 말을 못해준 게 후회될 정도로 예뻤습니다. 어르신 눈에 나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