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임은 오후 여섯시
급식실 대청소도 월요일로 미루고 서둘러 길을 나선다.
4시 20분차 강남 고속에 올라 탔다. 어중간한 시간 손님은 몇없다. 맨 앞자리에 앉으니 기사가 통로에 나와 배꼽 인사를 하며
정중히 모시겠다며 ... 친절한 기사님. 동서울로 뻔질나게 다녔어도 이런 일이 없었는데 또 모르지 삼개월째 동서울을 못 갔으니.
여주대학에서 학생 몇을 더 태우고 . 안락한 의자에 앉으니 잠이 솔솔 왔다. 깊게 잠들지 않도록 한가닥 신경은 밖에다 걸쳐두고. 한시간을 달린후 차가 속도를 줄였다. 서울 요금소. 늘어선 차들 후미등이 빨간 홍시처럼 예뻤다. 비는 세 차게 내리고.
버스 전용 차로로 내달리니 옆에 있는 차 뒷꽁무니 홍시들이 마구 지나간다. 날은 컴컴하고 그럴수록 더욱 선명 해 지는 불빛들.
정중하게 강남고속 버스 터미널에 5시 50분에 떨어졌다. 대합실로 들어서니 진한 커피향이 좋았다.
약속 장소는 사당. 교대에서 2호 선으로 갈아타 세 정거장 사당역이다. 터미널 지하도 많이 바껴 있었다. 지하 상가엔 예쁜 구두 가게가 줄을 서서 날 유혹했지만 늦었다. 시간이 있었으면 눈 요기라도 했을 텐데 . 지하철 표를 끊으려니 창구가 아예 없었다.
무인 발매기 . 그것도 예전것이 아닌 교통 카드 나오는 것이었다. 1회용을 누르고, 목적지를 누르고, 성인 1매를 누르니 화면이 떴다. 요금이 합계 1500원. 지하철 요금이 이렇게 올랐나.. 한번 취소를 하고 다시 누르니 보증금 500원 이라는게 있었다.
교통 카드를 받아 곁눈질로 남들이 하는대로 기계 위에다 올리고선 전철을 탔다. 한정거장 교대에서 내려 사람들 물결 따라
환승역으로 한참을 걸었다. 사당에서 내려 계단을 올라서니 흥겨운 트럼펫 소리가 춤을 춘다. 남미 멕시코나 페루 에서 온 악단이었다. 연한 커피색 성장을 하고 노래를 불렀다. 네 다섯 멤버들이 흥겹게. 많은 사람들 우루루 모여 공연을 즐겼다.
그래서 서울이 좋긴 좋구나. 난 또 약속 시간이 늦어 걸음을 재촉했다. 못내 아쉬웠다.
모임 장소는 사당역 복개천 옆 숯불 화로 구이였다. 문 앞에서 은영이가 기다린다. 15년 만에 보는가...
검은색 버버리 바지에 까만 목티로 한껏 멋을 냈다. 살은 더 빠져 있었고 친정 엄마 닮아 많이 먹어도 안 찌는 체질이었다.
걸을 때도 학처럼 도도하게 걸어간다. 국민 학교때 아마 무용을 했지... 친구들은 은영이와 나랑 라이벌이라 했지만 공부 뿐이었다. 내게 없는 냉철한 결단력. 쉽게 범접하지 못할 그 무언가가 분명히 있다. 집은 또 어떤가.. 청호동 판자집이 즐비하던 6_70년대 우리 반에서 제일 부잣집이었다. 엄마가 창난 공장을 하셨고 눈이 부리부리하신 은영 아버지는 베레모 쓰시고 선글라스에 파이프 무시고 싸이클을 타셨다. 로터리 회원 이셨고 몇집 없던 문이 달린 큰 흑백 텔레비전. 새까만 전화. 우린 밥도 잘 못 먹고 수제비를 매일 먹었는데 . 그당시 모두 가난 하던 시절에. 어찌됬든, 은영이도 날 많이 생각 해 주고 나 또한 은영일 각별하게 생각 했었다. 오늘도 1시간 먼저 나와 단둘이 얘기 하자 했는데. 이젠 더 아우라가 느껴질 만큼 튼튼한 성안에 공주처럼 살고 있다.
애기중에 은영이 엄마와 울 아버지가 이북 북청 동향 이라는것은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국민 학교 동창 이라는 사실은 오늘 처음 알았다. 82세. 아직도 속초에서 정정하게 살아 계신다니 아버지도 살아 계셨다면 82 인데. 내가 다닌 청호 초등학교.
학교에 이바지 한번 한적 없고 청호동을 걸어 내려 갈 때 학교 정문을 지나치기만 했었다. 아, 내가 조그맣게 학교 운동장을
뛰었었단 말인가.
많은 사람들. 식당 안에서 옹기 종기 모여 앉아 연기처럼 이야기 피어 올리고 . 금요일 저녁이 아니던가. 씨끌 벅적하다.
탁자가 좁으면서 길게 빼졌다. 앞사람과 거리가 멀지 않아 친밀감이 마구 생기기도 하게 됬다. 메뉴는 삼겹살. 날도 더운데
땀만 연실 삐질 흘렸다. 그닥 배가 고프지 않아 세 절음 먹었나. 탈렌트 한혜숙 닮은 선희, 배우 김성녀 닮은 재옥이, 그리고 귀선이 까지. 귀선이도 인천서 왔다. 남들은 소주 잔을 기울리는데 나만 맥주 잔을 들고 축배를 들었다. 날 위해 맥주 두병을 시켰지만 맥주 한잔 반 물도 한잔 반 . 남은 맥주 한병도 땀을 흘리면서 식어 갔다. 덥고 씨끄러운 자릴 일어나 옆에 있는 카페로 옮겼지만 카페는 오래됬고 젊은 사람 취향이 아니었다. 조명은 어둡고 나이 든 여자 둘이 텅빈 홀을 지키고 있었다. 냉커피 한잔 마시고 얘기가 흐르는데 벌써 9시가 넘어 갔다. 막차는 열시. 점점 습관처럼 초조 해 온다. 그런 날 보며 은영이가 우리 집에 전화를 한다. 옛날 목동에서 일면식이 있던 터라 너무 오랫동안 못 만났고 조금 더 놀다 가면 안 되냐고 얘기가 잘 나가는가 싶었다. 날 바꿔준다. 전화를 받으니 아니올시다였다. 또 얘기가 달라진다며 빨리 내려 오라는 것이었다. 가끔 친구들 만나 늦어지거나 일년에 한번쯤 친구들과 자게 될 경우 친구를 팔아 결재를 받는것이 내 수법인데 오늘은 통하지 않았다. 그러면 데리려 오라 하니 비도 오고 현실적인 사람이라 고유가 시대, 갈 수 없다 했다. 난 이제껏 초 현실적으로 살다 지금 이모양이 되 있지만.
합창부였던 은영인 노래도 잘한다. 노래방 가서 은영이 노래 한자락도 듣고 싶고 나도 노래 좋아하니 한자락 부르고 싶은데
내 생일날, 노래하고 춤추고 싶다. 가끔 그런 자리가 좋다 . . 수도승 처럼 이제껏 살다 죽을 때까지 이런 재미도 없이 살다 가면 내가 억울해서 어쩐담.
민기적대다 9시 25분 자릴 박차고 일어났다. 택시를 잡으려니 모범택시만 지나갔고 터미널과 반대 방향이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지하 계단을 뛰어 내려 갔다. 통행권을 뽑으려니 도착역 이름이 한번에 나와 주지 않았다. 잠시 안절부절하다 겨우 어찌해서 터미널역에 도착하니 9시 58 분 이었다. 전동차 차창 너머 고집 세게 얼굴 넙적한 넙치 같은 여자가 우두커니 날 보고 있다. 영동선을 찾아 또 뛴다. 이리 저리 찾아 겨우 매표소를 가서 표를 끊으려니 매표원이 시간 없으니 돈 내고 타라며 탑승구를 가르켰다 . 경부선, 부산 대구만 나왔다. 아이고 버스 놓치는구나. (버스 놓치면 요즘은 리무진 온다하던데 ㅋ) 사람들은 의자에 느긋하게 앉아 버스를 기다리는데. 남이 보든가 말든가 들고 뛰어 모퉁이를 도니 영동선 속초가 보였다. 여주 차 없으면 속초 차 타리라. 그런데 제천 다음 다음 여주 막차가 늠름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검표원이 천원짜리 잔돈 뭉치를 잔뜩 들고 버스값을 계산했다. 빙긋이 웃으면서 . 나같이 헐레벌떡 하는 사람이 막차땐 많은가보다. 막차라 사람이 꽉 차 있었다. 겨우 중간 여자 옆자리에 앉으니 버스가 바로 출발 했다.
땀이 비 오듯 쏟아 졌다.
눅눅한 마음으로 1시간 20분 달려 여주에 쿵 떨어지고 집에 가는 내내 말이 없다.
말 안하는 것은 내 주 특기인데 .
오늘 열두시가 다 되어 가도록 밥 달란 소릴 안한다. 앉아서 딴짓을 하고 있는데 "밥 차려"
얼른 라면 두개 끓여 같이 한술 뜨고 자판을 두드린다. 독수리 타법, 눈만 죽어라 아프다.
내가 심각하면 난 같이 밥을 안 먹는다 . 이상하게 엄마는 아버지와 싸우면 밥을 안했는데 난 마음이 약해서인지 밥은 해 준다. 싸워도 나가서 돈 은 벌어 오니까. 다음엔 밥을 안해줄까. 그럴 용기도 내겐 없다. 지금은 싸운게 아니다. 일방적으로 내가깨진거지
"커피 타와"
한냉 전선 오츠크 해 고기압과 북태평양 고기압이 부딪혀 장마가 오듯 우리 집에도 장맛비가 흩 부렸다.
날이 훤해지다 다시 비가 온다. 지금 안방으로 들어가서 자는지 마는지.
어제 경비로 3만원 찬조까지 해 주더니... 내가 잘 못 했다. 기분 상 하게 해서.
아들은 친구 만나러 춘천 갔고 딸은 친구하고 놀다 교회 갔고. 일주일 마다 친구들과 어울려 노래방 노래하러 다니는 딸애가 부럽다. 여름아, 너도 조심해 ! 나중에 시집가서 까불다 엄마처럼 한방에 훅 간다.
노래는 점점 흐르고
소녀는 울음 참지 못해
밖으로 나가 버리고
노랜 끝이 났지만
아직도 부르기에
이 슬픈 노래.
첫댓글 은영이가 제 애길 많이 써서 기분 상하지 않길... 은영아, 이해 해 줄꺼지? 미안.
이숙님. 진솔한 얘기 좋아요. 공감 부분도 많구요. 사랑 넘치는 가정. 한방에 훅 간거 아니네요.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