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기 : 상 메라 푸티라 하며, 결백(하양) 위에 선 용기(빨강) 상징
배경 : 동남아시아에 있는 나라로, 제2차 세계대전 전 네덜란드령(領) 동(東)인도였으며, 1945년 8월 17일 독립을 선언하였다.
1949년 네덜란드와의 협의로 네덜란드·인도네시아 연합이 성립되었으나 1956년 완전한 독립국이 되었다.
요약 : 정식명칭은 인도네시아공화국(Republic of Indonesia)이다.
동남아시아에 널리 퍼져 있는 크고 작은 섬들로 이루어진 세계 최대의 도서국가로서, 말레이제도(諸島)에서 필리핀을 제외한 대부분을 차지한다.
동서교통의 요지에 위치하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각 방면에서 문화적·민족적인 교류와 이동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국명은 19세기 중엽에 영국의 언어학자인 J.R.로건이 명명한 것으로 '인도 도서(Indo Nesos)'라는 뜻이다.
현지인들은 중세 때 자바의 주민들이 사용했던 '누산타라(Nusantara)'라는 명칭을 주로 사용하는데 역시 '많은 섬들의 나라'라는 뜻이다.
동티모르는 포르투갈 식민지였으나 1975년 해외식민지를 모두 포기하고 군대를 철수하자 인도네시아에 합병되었다가 1999년 8월 분리 독립했다.
행정구역은 30개주(propinsi), 2개 준주(daerah istimewa), 1개 수도구(daerah khusus ibukota)로 되어 있다.
인도네시아의 지형 (Geography)
위치 : 동남아시아 / South East Asia
수도 : 자카르타 / Jakarta
면적 : 191만 9440㎢ (육면 : 182만 6440㎢ / 수면 : 9만 3000㎢) 17,508개의 섬 좌표 : 5 00 S, 120 00 E 면적비교 : 미국 텍사스 주의 3배 정도의 크기 대한민국의 19배 이상의 크기 고도 : 최저 0m (인도양) / 최상 5,030 (Puncak Jaya) 천연자원 : 석유, 주석, 천연가스,니켈, 재목, 보크사이트, 구리, 석탄, 금, 은 토지 사용 : 경지 11.03% / 수확지 7.04% / 기타 81.93% 자연 위험 요소 : 홍수, 심한 가뭄, 수나미, 지진, 화산 , 산불 구역 : 30개의 주(Province/Propinsi), Bali, Banten, Bengkulu, Gorontalo, Jambi, Jawa Barat, Jawa Tengah, Jawa Timur, Kalimantan Barat, Kalimantan Selatan, Kalimantan Tengah, Kalimantan Timur, Kepulauan Bangka Belitung, Kepulauan Riau, Lampung, Maluku, Maluku Utara, Nusa Tenggara Barat, Nusa Tenggara Timur, Papua, Papua Barat (Irian Jaya Barat), Riau, Sulawesi Barat, Sulawesi Selatan, Sulawesi Tengah, Sulawesi Tenggara, Sulawesi Utara, Sumatera Barat, Sumatera Selatan, Sumatera Utara 2개의 특별구역(Special Region/Daerah Istimewa), Aceh, Yogyakarta 1개의 특별 수도 지역(Speciasl Capital City District/(Daerah Khusus Ibukota) Jakarta Raya
지형 :
인도네시아는 서쪽 끝의 수마트라섬·자바섬에서 북동쪽의 할마헤라섬까지 약 5,100km에 걸치는 호상(弧狀)의 순다열도와 그 내부에 위치한 보르네오섬(칼리만탄), 술라웨시섬(셀라베스) 등의 큰 섬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 해역은 테티스해(海) 구조대와 환태평양 구조대가 이어지는 곳으로 지반의 변동이 격심했던 지역이다.
현재 이들 제도(諸島)에 의해 둘러싸인 바다는 수심 50m 이하의 얕은 바다로, 이른바 순다 해붕(海棚)을 형성하고 있다. 이 해붕과 오스트레일리아 북서부의 사풀 해붕은 마카사르·롬복 양 해협을 연결하는 월리스선(線)으로 명확하게 구분된다. 순다열도 및 몰루카제도에는 현재 화산활동이 현저하게 나타나고 있는데 화산의 수가 전국을 통틀어 400개에 달하며, 이 중 활동 중인 화산은 78개이다. 화산은 특히 수마트라섬과 자바섬에 집중되어 있으며 보르네오섬과 술라웨시섬에는 극히 적다. 이 화산들은 자주 발생하는 폭발과 지진으로 인간생활에 직접적으로 큰 영향을 준다.
인도네시아는 비가 많은 지대이므로 토양은 라테라이트 토양이나, 산지에서 범람한 물질이 토양을 비옥하게 만든다. 이 경우 화산암질토양은 수성암(水成岩)토양에 비하여 비옥도가 높아 농사에 유리하다. 화산암을 거의 포함하지 않는 보르네오섬 대부분과 술라웨시섬 중부에 인구가 희박한 것으로 미루어볼 때, 화산암질 토양의 분포는 자바섬과 수마트라섬에 인구가 밀집하는 현상의 자연적 원인이 된다. 인도네시아의 농업이 거름을 거의 주지 않고도 이루어질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화산은 3,000m를 넘는 것이 대부분이며, 자바섬 최고의 스메루산(3,676m)을 비롯하여 롬복섬의 린자니산(3,726m) 등이 대표적이다. 높은 산들 사이에는 많은 고원 및 분지(盆地)가 이어지며 수마트라섬 서안의 파단 고원, 자바섬의 반둥, 말랑 고원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고원에서는 기온이 체감률에 따라 낮아지므로 거주에 유리하다. 수마트라와 보르네오 지역의 산지와 해안부근에 있는 정글에는 넓은 저습지대(低濕地帶)가 분포하며 그 중간을 많은 하천이 곡류한다. 수마트라섬의 무시강(江)·잠비강, 보르네오섬의 카푸아스강·바리토강 등은 길이에서 인도네시아의 유수한 하천에 해당한다.
각 섬들의 특징 및 설명 (지지(地誌)) :
[자바섬]
자바섬은 모든 면에서 인도네시아의 중심이다. 면적은 전국토의 7%에 지나지 않지만 동서의 역사적 교통로와도 가깝고, 또 섬을 가로지르는 화산맥(火山脈)으로 인해 토지가 비옥하여 생산물이 풍부하며, 그 풍요로움으로 인해 이미 2000년 전 프톨레마이오스의 세계지도에 <야바디우>라는 섬으로 기록되어 있을 정도이다. 따라서 오늘날에도 전인구의 약 70%가 이곳에 집중되어 있다. 주로 농업으로 살아가는 섬으로는 세계 최대의 조밀성을 나타내어 농업용 토지이용도가 이미 한계에 도달해 있다. 자바섬에는 제2차 말레이족에 속하는 세 민족이 거주한다. 중부에서 동부에 이르는 지역은 자바섬에서 가장 오래 전부터 개척된 곳으로 자바족이 사는데, 그들은 현재 인도네시아의 지도적 민족이며 자바섬 인구의 60%를 차지한다. 일찍부터 인도문화를 흡수하여 많은 왕국이 번영했고, 독자적인 문화·예술을 발전시켜 왔다. 이에 반하여 서부의 프리앙간산지대는 순다족의 거주지로서 인구는 자바섬의 약 20%를 차지하고, 역사적으로 자바족과 대립해 왔다. 종교적으로는 오늘날 자바족보다 독실한 이슬람교도이다. 또한 딸려 있는 마두라섬에서부터 자바섬 동부에 걸쳐서는 마두라족이 거주한다. 그들은 근면하며 역사적으로 자바족과 융화가 잘 되어 왔다. 이들 세 민족은 저마다 다른 민족어를 사용하며 성격이나 생활풍습에서 많은 차이가 있다. 이 밖에 자카르타·수라바야와 같은 해안도시는 자바섬 각지와 군도 각지에서 온 민족이 모여서 형성되었기 때문에 주민의 성격에도 특수한 면이 있다.
[수마트라섬]
수마트라섬은 세계에서 다섯번째로 큰 섬으로 테티스구조선이 통과하여 높은 화산이 이어지는 서해안과, 순다대륙붕의 일부를 이루는 넓고 큰 저습지가 이어지는 동해안으로 크게 나누어진다. 저습지에는 바탄하리강·무시강·인드라기리강 등의 큰 강이 흐르는데, 말라카해협에 접해 있기 때문에 하구에 일찍부터 외래문화가 유입되어 팔렘방 등 하항도시가 발달하였다. 수마트라섬의 민족분포는 자바섬보다 복잡하다. 북쪽 끝에는 아치에족이 거주하는데, 이곳은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일찍 이슬람화한 곳으로, 민족성도 용감하여 20세기 초까지 네덜란드지배에 저항했던 지방으로 알려져 있다. 토바호(湖)를 중심으로 한 지역은 원(原)말레이계의 바타크족의 거주지로서 오래도록 고립된 사회를 형성해 왔지만 근대에 이르러 그리스도교와 근대교육이 보급되어 지금은 상인이나 의사 등 근대적인 직업분야에서 활동하는 사람이 늘었다. 서해안 중부의 고원을 중심으로 미낭카바우족이 산다. 그들은 수마트라 최대의 민족집단으로서 모계사회의 전통이 남아 있고 특유의 가옥형태를 가졌으며, 현재는 자바족과 함께 인도네시아의 지도자를 많이 배출하고 있다. 동해안 일대에는 말레이인이 분포하며, 옛날에는 몇 개의 소왕국을 형성하였는데, 말라카해협을 사이에 둔 말레이반도 방면의 말레이인과 동일계통이다. 이 밖에 북부산지에는 가요족·아라스족, 남부지방에는 람풍족 등이 거주하고 있다. 수마트라섬은 옛날에는 밀림으로 덮여 있는 곳이 많았으나, 20세기부터 서양자본이 진출하여 북동부의 메단을 중심으로 담배·고무의 대농원이 개발되었고, 또 동해안 저지의 유전개발로 상황은 크게 변했다. 이러한 변동은 제2차세계대전 후에도 지속되어 전쟁중 800만 명에 불과했던 인구가 현재는 2100만 명을 넘어서 <제2의 자바>로 발전하고 있다.
[셀레베스섬]
이 섬의 특이한 형상은 테티스·환태평양의 2대 구조선의 활동결과로 생긴 것인데, 지역적으로는 우중판당(옛 이름 마카사르)을 중심으로 한 남서부반도와 메나도를 중심으로 한 북동부반도의 두 지역만이 잘 개발되어 있다. 남서부에는 부기족·마카사르족 등의 여러 종족이 살며, 예로부터 선원이나 상인으로 동남아시아 각지에서 활동하였으며 논농사가 발전하였다. 북동부에는 종족상 이들과 조금 다른 미나하사족이 사는데 이들도 농·어업을 생업으로 하며, 근대 이후에는 대부분 그리스도인이 되어 인도네시아의 그밖의 힌두교나 이슬람교 문화권 지역과는 다른 지역문화를 보이고 있다. 또 셀레베스섬 중앙의 산지는 원말레이계 토라자의 거주지로 특유의 문화를 남겼다. 이곳은 아직 많이 개척되지 않고 있다.
[보르네오섬]
보르네오섬(칼리만탄)은 수마트라섬을 능가하는 세계 제3의 큰 섬으로 전체섬 중 70%가 인도네시아령이다. 북부 말레이시아령과의 경계에는 분수령을 이루는 높은 산맥이 이어져 있고 해안 쪽으로는 저지가 펼쳐져 있으며, 특히 남부는 큰 습지를 형성하고 있다. 이들 저지 사이를 카푸아스강·바리토강·마하캄강 등 큰 강이 흐르고 있으나, 이러한 적도 바로 밑의 거대한 우림형기후지역이 화산성의 비옥한 토양을 갖추지 못한 점 때문에 개척이 충분히 진행되지 않았으며 인구도 희박하다. 해안 가까이에는 말레이인·자바인·중국인 등이 거주하지만 보르네오섬 본래의 원주민은 원시말레이계 다야크족으로 오지(奧地)에 많은 부족이 나뉘어 살고 있으며, 수렵이나 화전농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많다. 보르네오섬은 대부분이 밀림지역이지만 최근에 동부의 일부 지역에서 유전·삼림자원의 개발과 남부 해안지역에서 고무재배 등 부분적으로 개척되어 가고 있다.
[소순다열도·몰루카제도]
소순다열도·몰루카제도는 특수한 지역을 구성한다. 발리섬에서 동쪽으로 갈수록 건조도가 심해지고 사바나경관이 나타나는 곳도 있다. 발리족은 자바족과 비슷하며 뛰어난 농경민인데, 현재 인도네시아에서 순수한 힌두교신앙을 유지하는 유일한 민족이며, 이로 인하여 이 섬은 고유한 생활풍속과 문화를 지니고 있다. 동쪽 여러 섬의 주민은 종족으로 원말레이계·멜라네시아계 요소가 강하며 화전경작 등을 주로 하고 있다. 또한 몰루카제도는 옛날부터 각종 향료의 독점생산지로 유명하였기 때문에 다른 소순다 섬들과는 달리 일찍부터 외래문화와 접촉하였다. 현재 몰루카제도의 중심은 암보이나섬이며, 그곳에 사는 암본족은 네덜란드 통치 아래 그리스도인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리안자야]
이리안자야는 세계 제2의 큰 섬인 뉴기니섬의 서반부이다. 자연이 복잡한데다 척량산맥(脊梁山脈)에 4000∼5000m의 고산이 즐비하다. 또 남쪽 경사면에는 광대한 대습원이 전개되며 섬 대부분이 적도우림(赤道雨林)으로 덮여 있어서 <녹색사막>이라고 불린다. 원주민인 니그로이드계의 파푸아족이 흩어져 있는 개척지를 제외하면 인구는 매우 적다. 그러나 최근 서쪽 끝의 첸드라와시반도를 중심으로 유전의 채굴이 시작되어, 앞으로 이리안자야의 개척 가능성은 크다.
기후 :
인도네시아의 섬들이 적도를 중심으로 북위 5°에서 남위 10° 사이에 위치하므로 완전한 열대성 기후를 나타내며 동남아시아 계절풍대의 전형적인 특징을 보인다. 일반적으로 연중 높은 기온을 나타내 거의 전지역이 평균기온 25∼27℃를 기록하며 적도변의 중앙지대에서는 월별 변화가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강수량은 몬순의 영향을 크게 받아 중심부에 해당되는 적도 부근의 연중 강우지역을 제외하면 대체로 건기(乾期)와 우기(雨期)의 구별이 뚜렷하다. 주요지역의 연평균강수량은 폰티아나크(보르네오섬) 3,175mm, 파당(수마트라섬) 4,172mm, 자카르타(자바섬) 1,755mm이며, 소순다열도의 동쪽은 훨씬 더 건조하다.
생물 :
인도네시아는 ‘적도에 걸려 있는 에메랄드 목걸이’라는 표현처럼 군도 전체가 고온다습하여 많은 식물로 뒤덮여 있다. 식물 분포는 고도(高度)에 따라 수직적 변화가 크게 나타나, 해안의 무성한 습열성(濕熱性) 맹그로브 수림(樹林)으로부터 3,000m 높이의 산에 피는 에델바이스에 이르기까지 복잡한 분포를 보인다. 열대재식농원(熱帶栽植農園:Estate)의 대부분은 이러한 식물분포의 수직적 변화를 이용하여 이루어진 것이다. 동물군은 위치에 따라 아시아와 오세아니아의 2계통으로 분류되는데, 코끼리 및 오랑우탄을 수마트라섬·보르네오섬에서는 볼 수 있지만 동부에서는 볼 수 없으며, 서(西)이리안의 동물들은 오세아니아에서만 볼 수 있다. 이 밖에 자바섬의 들소는 독특한 존재이다.
인도네시아의 문화 (Culture)
문화 :
기반을 이루는 말레이민족문화에 인도·중국·이슬람·유럽 등 각종 외래요소가 가미되어 다양성을 띠고 있다. 이들 가운데 어떤 것은 표면적 구성요소에 불과하지만 특히 인도문화는 원주민문화와 깊이 융합하여 문화발달에 큰 영향을 미쳤다. 특유의 와양(wayang;그림자극)·가믈란음악(gamelan)·무용을 비롯하여 고전문학도 모두 그 영향 아래 발전해 왔다. 이들 대부분은 조령숭배(祖靈崇拜) 등의 신비주의와 결부되어 인도문화가 유입되기 전부터 인도네시아지역에 있었던 것이지만 인도문화가 가미됨으로써 그 내용이나 표현방법이 한층 풍요롭고 완전한 것으로 발전하였다. 특히 《라마야나(R?mayana)》 《마하바라타(Mah?bh?rata)》 등의 이야기는 현재도 널리 인도네시아문화의 각층에 걸쳐 퍼져 있다. 또 바틱(batik;자바 사라사織)의 무늬나 금은세공·크리스(creese;말레이인의 단검)·목조(木彫) 등의 공예품에서도 인도문화의 영향을 볼 수 있다. 또한 감수성이 풍부한 민족으로서 훌륭한 가요곡도 많이 남겼다. 그 곡조는 하와이음악의 곡조와 비슷하여 말레이·폴리네시아 민족의 잠재적인 등질성을 나타내고 있다. 일반적으로 신비주의는 인도네시아문화에서 두드러진 특색 중 하나로 많은 전설·민간신앙·주술 등을 통하여 전승되고 있다. 아직도 일상생활에서는 주술사의 점 등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하다. 한편으로는 최근 유럽적인 것과의 결합으로 새로운 문화를 창출하려는 노력도 나타나고 있다. 언어는 종족에 따라 다르므로 일상생활에서는 제각기 토착어가 사용되나 상호간의 교섭을 위해서는 말레이어가 사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독립 뒤 이것을 개량한 인도네시아어를 정식 국어로 정하여 사용함으로써 국민적 통일을 도모하고 있으며, 학교 교과서도 지역을 불문하고 이 언어로 된 것을 사용하고 있다. 식민지시대에 네덜란드가 고의로 우민정책을 취한 일도 있어서 식자층이 제2차세계대전 전에는 겨우 6%에 지나지 않았는데 현재는 교육체계가 일단 정비되어 문맹자 일소에 노력하고 있다. 1995년 현재, 문맹률은 남자 10%, 여자 32%이다. 7∼12세의 초등학교는 의무교육이다. 국립대학은 44개 교가 있으며 재학생수는 약 20만 명이다. 국립대학 가운데는 인도네시아대학·가자마다대학(요그야카르타)·에를랑가대학(수라바야·말랑)·바자자란대학(반둥)·공과대학(반둥) 등이 유명하다. 또한 기술교육을 위한 5개의 훈련센터도 1975년에 창설되었다.
음식 :
인도 상인이 향신료 거래를 하기 위하여 인도네시아에 들어와 힌두교 및 남방불교를 전파시켰는데, 이 때 상인들은 농업기술을 이들에게 가르쳤고 동시에 코코넷밀크의 사용 및 카레 음식문화를 전파시켰다.
또 중국 상인과 무역으로 채식주의가 성행하였으며, 중국 음식 만드는 기술이 전파되어 튀김 조리법이 시작되었다. 오늘날에는 인도네시아의 큰 비중을 찾이하고 있다.
지역 별 음식 특징 :
- 자카르타 및 자바 지역은 쌀로 지은 밥이 주식이며 부식으로는 육류, 채소, 생선을 이용한 다양하고 풍뵤로운 식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특히 이지역에서는
인도네시아의 중요한 부식의 하나인 'tempe'(템페)가 처음으로 만들어졌다. 또한 이 곳에는 서구식 풍습이 유입되어 전통적이고 토속적인 식생활 모습과 근
대적인 식행활 모습이 함께 공존하고 있다.
- 서부 스마트라 지역의 주식은 밥과 삶은 카사바이다. 강한 향신료를 이용하며 특히 고추 및 tumeric의 사용이 두드러져 음식의 색깔이 노란색을 띠며 매운
맛을 낸다. 이지역 중 파당 지역의 음식이 특이 한데, 뱀,닭, 생선 등을 tumeric으로 노란색을 내어 튀겨서 식용하고 있다.
- 남부 셀러바스 지역의 주식은 옥수수 가루로 만든 죽이며, 생선을 바나나잎에 싼 후 시루에 수증기로 찐 음식을 보편화되어 있으며 술라웨시 지방에서는 쥐
를 불에 구워먹는 요리가 있다.
- 서부 이리얀자야 및 암본 지역의 주식은 사고가루로 만든 죽이며 아직까지도 일부 지역은 야생의 채소와 사냥으로 잡은 동물을 통째로 구워 먹는 식생활 풍
습이 남아있다.
- 발리의 주식은 쌀로 지은 밥이며 힌두교식 식생활이 발달하여 쌀로 만든 튀김과자와 꽃을 차려 매일 몇 차례씩 사당에 제를 지낸다.
식습관 및 조리법:
- 인도네시아는 옛부터 다양하고 싱싱한 향신료가 생산되며 특히 고추의 사용이 두드러져 붉은 고추의 사용이 두드러져 붉은 고추를 갈아 만든 'samble
sauce'를 즐겨 먹으며, 밥을 짓는 것에서 부터 시작하여 거의 모든 음식에 coconet milk가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다.
- 볶거나 튀긴음식은 쉽게 변질되지 않는다고 믿어 'goreng'이라 불리는 튀김, 볶음 음식이 많으며 palm oil 등이 풍부하게 생산되기 때문에 많은 요리에 이용
되고 있다.
- 인도네시아인은 뜨거운 음식을 싫어하여 음식을 조리한 후 바로 먹지 않고 항상 미리 상차림 해 놓는 관습이 있다. 이는 기후 때문에 생겨났다.
- 음식을 담는 식기는 우리 나라와 달리 오목한 그릇보다는 평평한 접시 모양이 대부분이다. 즉 탕의 문화가 발달이 안 되었고 음식의 형태가 마른 고형식이기
때문이다. 또한 밥과 반찬을 한 접시에 담는 것이 예사로우며 주식인 밥의 양이 반찬의 양보다 많은 것이 특징이다.
- 중,상류층에서는 수푼과 포크를 사용하나 많은 사람이 아직 손으로 음식을 먹고 있다. 손으로 먹을 경우 음식을 오른손으로 비벼서 먹는데 이는 손가락으로
음식을 비빌때 특별한 맛이 난다고 믿기 때문이며, 이들은 왼손으로 용변을 씻기기 때문에 음식을 만지는 것은 실례가 되고 부정한 것으로 여긴다. 그래서
항상 상차림에는 손 씻는 그릇이 함께 준비되어 있다.
- 손님에게는 차와 과자를 대접하고 음식을 먹기 전에는 'slamat makan(good eating)'이라고 말하며 음식을 나누어 먹는 풍습이 있다.
인도네시아의 사회 (Society)
사회 :
인도네시아의 인구증가율은 평균 2.2%를 넘고 있다. 이는 식량생산 증가율을 상회하여 식량수입과 외화유출의 커다란 원인이 된다. 인구의 64% 이상이 총면적의 6.9%에 지나지 않는 자바와 마두라에 집중해 있고 인구밀도도 매우 높은 편이다. 이와 같은 인구과밀현상은 토지의 부족과 토지분배의 불균형, 토지를 갖지 못한 많은 농민, 노동지대의 잔존, 농업기술 낙후와 생산성의 저하, 낮은 생활수준의 고착화 등 난제의 요인이 되고 있다.
직업을 구하는 반실업(半失業)상태의 농민은 칸폰이라 불리는 도시의 빈민구에 널리 분포하고 있으며 실업·반실업이 많은 도시사회를 형성한다. 인도네시아는 많은 종족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종족들은 독자적인 언어와 문화·전통을 지니고 있으며, 약 300만 명의 인구를 가진 화교(華僑) 문제와 이슬람교, 그리스도교, 힌두교, 불교 등의 종교문제가 얽혀 있다. 더욱이 섬 사이의 교통도 미개발상태이기 때문에 사회적 통합력이 미약하다.
보건위생 상태는 극히 취약하여 각종 전염병과 풍토병에 시달리고 있으며, 특히 어린이의 영양결핍 해결이 당면과제가 되고 있다. 교육제도는 6년제 초등교육과정과 각기 3년의 중학교·고등학교 과정으로 이루어지며, 1994년부터 9학년(초등학교, 중학교) 의무교육제를 채택하였다. 정부는 국민교육을 보급함으로써 인도네시아어(語)를 통일된 생활어로서 광범위하게 뿌리내리는 데 노력하였다. 인도네시아대학(자카르타), 가자마다대학(요그야카르타), 바자자랑대학(반둥) 등 24개주에 설립된 51개 국립대학에서 인도네시아어로 강의를 하게 됨에 따라 국민들간에 문화적 일체성이 커지고 있다.
2000년 현재 일간지가 300여 종이고 텔레비전 방송국은 국영방송이 1국이며 민영방송은 10개 채널이 운영된다. 1998년 대통령 수하르토의 하야 이후 언론·표현의 자유가 급격히 신장되었다.
인구 : 237,512,355 (세계 4위) 2008 CIA 조사 결과
인구 성장율 : 1.175% 2008 CIA 조사 결과 출생율 : 1,000명당 19.24 출생 2008 CIA 조사 결과 사망율 : 1,000명당 6.24 사망 2008 CIA 조사 결과 이민율 : 1,000명당 -1.25명 이민 2008 CIA 조사 결과 수명율 : 79.46세 (남 : 67.98 세 / 여 : 73.07 세) 2008 CIA 조사 결과 유아 사망율 : 1,000명 출생 당 31.04 사망 (남 : 36.14 사망 / 여 : 25.68) 2008 CIA 조사 결과 평균 연령 : 27.2 years (남 : 26.7 years / 여 : 27.7 years) 2008 CIA 조사 결과 연령 비율 : 0-14 세 : 28.4% (남 34,343,198 / 여 33,175,135) 남녀 비율 : 전체 : 1 남 / 1 여 2008 CIA 조사 결과 출생 : 1.05 남 / 1 여 성인 HIV / AIDS 감염자 : 110,000 2003 CIA 조사 결과 성인 HIV / AIDS 감염 사망률 : 2,400 2003 CIA 조사 결과 주요 감염 질병 : 위험도: 높음 음식 / 물 관련 질병 : bacterial diarrhea, hepatitis A and E, and typhoid fever (장티푸스열) 박테리아 관련 질병 : chikungunya, dengue fever (댕기열), and malaria (말라리아) 주의 : highly pathogenic H5N1 avian influenza has been identified in this country (조류독감) it poses a negligible risk with extremely rare cases possible among US citizens who have close contact with birds 2008 CIA 조사 결과 문맹율 (15세 이상 기준): 90.4% (남 : 94% / 여 : 86.8%) 2004 CIA 조사 결과
15-64 세 : 65.7% (남 78,330,830 / 여 77,812,339)
65 세 이상 : 5.8% (남 6,151,305 / 여 7,699,548) 2008 CIA 조사 결과
15 세 이하 : 1.04 남 / 1 여
15-64 세 : 1.01 남 / 1 여
65 세 이상 : 0.8 남 / 1 여
성인 HIV / AIDS 감염률 : 0.1% 2003 CIA 조사 결과
인도네시아의 언어 (Language)
주요 언어 : Bahasa Indonesia / 인니어(공용어) English / 영어 Dutch / 네덜란드어 Javanese, Sundanese 등 지방어 및 지방 사투리 포함 583종의 언어 1. Other Sumatra 9. Mori-Laki 2. Other Borneo 10. Buginese-Makasarese 3. Minahasan 11. Muna-Butung 4. Gorontalo 12. Sula-Batjan 5. Tomini 13. Bima-Sumba 6. Toradja 14.Ambon Timor 7. Loinang 15. South-Halmaheran 8. Banggai 16. Melanesian 인니어 질문 : 질문할 때는 "Permisi"(실례합니다)라고 말한후 의문 사항을 묻는다.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매우 친절한 편이므로 잘 대답해 줄 것이다. 기본 단어 : 화장실 w.c., toilet 웨세, 또일렛 실용 문장 : 실례합니다, 부인. Permisi, Bu. 뻐르미시 부 인니어 답 : 긍정적인 대답은 "Ya"(예) 이고 부정적인 대답은 "Bukan"과 "Tidka"이 있는데 전자는 명사와 이에 상당하는 어구를 부정하고 후자는 동사, 형용사 등의 술어를 부정한다. "아직 -하지 않았다"의 의미로는 "Belum"을 사용한다. 기본 단어 : 물론 tentu saja 실용 문장 : 예. Ya.
부인 ibu, bu 이부, 부
저기 sana 사나
여기 sini 시니
묻다 bertanya 버르따냐
이해하다 mengerti 멍어르띠
나이 umur 우무-ㄹ
시각, 시간 jam 잠
반 setengah 스뜽아
다시 lagi
천천히 pelan-pelan 뻘란-뻘란
도와주다 tolong 똘롱
말하다 mengucapkan 멍우짭깐
반복하다 mengulangi 멍울랑이
조금 sedikit 스디낏
네, 도와드릴까요? Ya, bisa dibantu? 야 비사 디반뚜
화장실이 어디지요? W.C ada di sebelah mana? 웨세 아다 디 스벌라 마나
저 쪽에 있어요. Di sebelah sana. 디 스벌라 사나
말씀 좀 묻겠습니다. Boleh saya bertanya sedikit? 볼레 사야 버르따냐 스디낏
지금 몇 시입니까? Jam berapa sekarang? 잠 버라빠 스까랑
두시 반입니다. Jam setengah tiga. 잠 스뜽아 띠가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Siapa nama Anda? 시아빠 나마 안다
나이는 몇 살입니까? Umurnya berapa? 우무르냐 버라빠
이해하셨나요? Sudah mengerti? 수다 멍어르띠
조금 알겠어요. Bisa mengerti sebagian saja. 비사 멍어르띠 스바기안 사자
실례지만, 다시 한번 말씀해 주세요. Maaf, tolong ulangi sekali lagi. 마아프 똘롱 울랑이 스깔리 라기
저것은 무엇입니까? Apa itu? 아빠 이뚜
좀 천천히 말씀해 주세요. Tolong ucapkan pelan-pelan. 똘롱 우짭깐 뻘란-뻘란
인도네시아어를 하십니까? Bisa berbahasa Indonesia? 비사 버르바하사 인도네시아
조금 합니다. Sedikit saja. 스디낏 사자
몇 층입니까? Lantai berapa? 란떼이 버라빠
운임은 얼마입니까? Ongkosnya berapa?
은행이 어디 있는지 가르쳐 주세요. Tolong tunjukkan bank ada di sebalah mana?
동의 setuju
확실히 pasti
그러한 begitu
이러한 begini
아니오. Bukan/Tidak.
아직요. Belum.
좋습니다. Baik.
아, 그렇군요. O, begitu.
어려워하지 마세요. Jangan segan-segan.
네, 맞아요. Ya benar.
아니오, 저는 중국 사람이 아닙니다. Bukan, saya bukan orang Cina.
아니오, 저는 호텔에 가지 않아요. Tidak, saya tidak pergi ke hotel.
저는 아직 미혼입니다. Saya belum kawin.
인도네시아의 종족 (Ethnic Group)
인도네시아의 주요한 특색 중 하나는 민족 구성이 복잡하다는 것이다. 주민의 대부분은 직상모(直上毛)와 황갈색의 피부를 가진 말레이 인종이지만 이들도 섬에 따라 여러 종족으로 나뉘며, 동부에는 빳빳한 머리털에 암갈색의 피부를 가지고 있는 파푸아인이 포함되어 있다. 또한 말레이인이 훨씬 많이 거주하고 있는 지역에도 수마트라섬의 쿠부족(族)과 셀레베스섬의 트아라족처럼 선주민(先住民)으로 추정되는 짙은 검정색 피부를 가진 네그리토족(族)과의 혼혈이 분포한다. 셀레베스섬의 미나하사족(族), 보르네오섬의 다야크족 등은 비교적 혼혈 정도가 낮은데도 종종 폴리네시아계(系)와 비슷한 밝은색 피부의 종족이다. 그 밖에 역사시대에 이주해온 중국인·인도인·아라비아인·유럽인 및 그들의 혼혈인종이 도처에 분포하여 인도네시아가 복잡한 민족 이동의 무대였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인도네시아 인종 비율 [ 말레이계 94%, 중국계 4%, 이란계/뿐잡계 1.2%, 기타 0.8% ] 총 300여 종족 말레이계 종족 그룹 인구 자와족 Javanese 7,520만 순다족 Sundanese 3,100만 마두레세족 Madurese 1,250만 미낭카바우족 Minangkabau 590만 바탁족 Batak 580만 수마트라 말레이족 Sumatra Malay 520만 부기스족 Bugis 500만 발리족 Bali 380만 아체족 Achenese 290만 다약족 Dayak 290만 자카르타 베타위족 Jakarta Betawi 270만 반자르족 Banjar 210만 사삭족 Sasak 210만 마카사르족 Makassar 160만 칼리만탄 말레이족 Kalimantan Malay 160만 또라자족 Toradja 130만 1995년 CIA 조사 결과 말레이계 종족 그룹 비율 자와족(Javanese) 40.6% 순다족(Sundanese) 15% 마두레세족(Madurese) 3.3% 미낭카바우족(Minangkabau) 2.7% 베타위족(Betawi) 2.4% 부기스족(Bugis) 2.4% 반텐족(Banten) 2% 반자르족(Banjar) 1.7% 기타 혹은 안알려진 족(other ot unspecified) 29.9% 2000년 CIA 조사 결과 말레이계 종족 그룹 지도 [말라요-폴리네시안] 자와족 미낭카바우족 순다족 발리족-사삭족 마두라족 바탁족 말레이족 아체족 다른 인도네시아 족 [다른 종족 그룹] 북 할마헤란족 파푸아족 * 중국인들은 널리 퍼져있으나 대체적으로 도시지역에 거주함 1. 다른 수마트라족 2. 다른 보르네오족 3. 미나하산족 4. 고론딸로족 5. 또미니족 6. 또라자족 7. 로이낭족 8. 빵가이족 9. 모리라끼족 10. 부기-마카사르족 11. 무나-뿌똥족 12. 술라-밧짠족 13. 비마-숨바족 14. 암본-이모르족 15. 남 할메헤란족 16. 멜라네시안족
인도네시아의 종교 (Religion) 인도네시아 종교 비율 회교 86.1%, 기독교 5.7%, 카톨릭교 3%, 힌두교 1.8%, 기타 3.4% 2000년 CIA 조사 결과 인도네시아는 대부분이 회교도이지만 발리 섬에서는 힌두교가, 술라웨시 섬 북부에서는 기독교(가톨릭교)가 우위이다. 인도네시아는 헌법 29조로 신교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그러나 인도네시아인은 이슬람교 힌두교 불교 기독교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며 선택한 후에는 바꿀 수가 없다. 인도네시아는 세계 4위의 인구의 나라이며 회교도의 인구는 1억 7000만명이상으로 세계 최대의 회교 인구의 나라이다. 인도네시아는 회교가 다수이나, 세속 국가이며 회교 국가는 아니다. 회교가 국교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회교 권력이 매우 강한 것은 사실이다. 2007년 조사결과 무슬림은 전체 인구의 80%를 넘어섰으며 이슬람교의 성장률은 1.3%에 이른다. 기독교 인구(가톨릭 포함)는 16%인 3400만명에 달한다. 하지만 순수 기독인은 8%,선교사 1명당 현지인 비율은 1 대 6만2351명에 불과하다. 비율로 계산해 볼 때 선교사가 2만명이 필요한 것이다.
인도네시아의 역사 (History) 솔로강(江) 유역에서 발견된 플라이스토세(世) 말기의 화석인류와 이와 함께 발굴된 유물은 인도네시아에 구석기문화가 발전하였음을 증명한다. 또한 자바섬의 와자크에서도 고기충적층(古期沖積層)의 표면 부근에서 오스트레일리아 인종과 비슷한 두개골이 발견되고 있다. 오늘날 각지의 인종들 사이에 남아 있는 멜라네시아·네그리토·베도이데계(系) 인종과 함께 오스트레일리아 인종도 태고시대에는 이 지역의 주민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신석기시대의 유물로는 서쪽 지방에 네모꼴 돌도끼[石斧], 동쪽지방에 원통형 돌도끼가 분포되어 있는데, 전자는 대륙에서 남하해온 인도네시아형(型) 종족이 남긴 것이고 후자는 멜라네시아 지방과의 교류를 증명하는 것으로 보인다. 신석기시대의 뒤를 이어 거석유물(巨石遺物)을 수반하는 철기문화가 펼쳐져 돌멘 모양의 분묘, 돌항아리, 돌로 만든 조상의 인물상 등이 남아 있다.
대표적인 인종은 자바족·순다족·마두라족 등이며, 전체적으로 300여 종족이 혼합되어 있다. 인도네시아어를 공통의 공용어(共用語)로 사용한다. 주민의 약 87%는 13세기 이후 진출한 이슬람교도이나 일상생활에서는 그 이전에 이미 군도(群島)를 지배하였던 힌두교의 의식도 뿌리깊게 남아 있으며 애니미즘적 요소도 남아 있다. 그리스도교도는 전 인구의 약 9%, 힌두교도 약 2%, 불교도 1%이고 나머지는 기타 종교이다. 세계에서 4번째로 인구가 많은 나라로 인구분포는 지극한 불균형 상태로 자바섬(수마트라섬 포함)의 인구가 인도네시아 전체 인구의 64%를 차지하는 등 개발 여부에 따라 인구 차이가 뚜렷하다. 증가하고 있는 인구와 광대한 미개발 섬의 개발을 조화시키는 것이 앞으로의 중요한 과제이다.
선교사의 거주,사역에 대한 정부의 제한이 강화되고 있다. 인도네시아에서 활동중인 선교사는 1600명에 달한다. 하지만 수마트라 누사텐가라 술라웨시에서 사역하는 선교사가 매우 부족하다. 한국세계선교협의회와 미전도종족선교연대가 최근 발표한 선교사 수요 예측에 따르면 인도네시아에서 2030년까지 필요한 선교사 수는 1만9474명이다.
인도네시아계 인종이 이와 같은 발전을 이룩하는 동안 서쪽에서는 인도인 이주자들이 몰려들었다. 그들은 수마트라섬 동부와 자바섬 서부지방을 개척한 데 이어 보르네오섬과 셀레베스섬까지 진출하였다. 수마트라섬의 팔렘방을 중심으로 번영을 누렸던 인도계 문화국가 스리비자야(중국의 문헌에는 室利佛逝, 나중에는 三佛齊라고 하였다)는 특히 강대한 해상세력을 형성하여 수마트라섬과 자바섬 서부, 말레이반도의 대부분을 수중에 넣었으며 남중국해 무역의 중심지로서 막강한 부(富)를 자랑하는 국가로 발전하였다.
8세기에는 자바섬의 중앙에 샤일렌다르라고 불렸던 왕조가 일어나 보로부두르와 같은 불교유적을 남겨놓았다. 이 왕조는 수마트라섬의 스리비자야 왕조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였으며 9세기 중엽에 이 두 왕통(王統)이 합병됨으로써 한때 남중국해의 강대한 해상제국이 성립되었다. 11세기 초 스리비자야는 인도의 코로만델 해안을 지배하였던 주련국(注輦國:Colas)과 싸움을 벌였으나 크게 패하였다.
이 당시 동부 자바에 에를랑가라는 왕이 출현하여 이 지방을 통일하였으나 그가 죽은 뒤 장갈라와 카디리의 2왕조로 분할되었으며 12세기에는 카디리의 세력이 커지면서 동부 인도네시아의 여러 섬들을 정복하였다. 그때부터 1세기 반 뒤 카디리 왕조가 멸망하자 싱가사리 왕조가 새로 일어났으며 이 왕조 최후의 왕인 쿠리타나가라 시대에는 수마트라를 비롯하여 발리·순다·마두라섬을 정복하였다. 그가 죽고난 뒤 몽골군이 침입해왔으나 쿠리타나가라 왕의 사위 라덴비자야가 교묘한 술책으로 몽골군의 세력을 이용하여 자신의 정적(政敵)을 제거하는 한편, 몽골군의 허점을 엿보고 있다가 기습하여 큰 손해를 입힘으로써 민족독립을 되찾고 마자파히트 왕조를 창시하였다. 이 왕조는 나중에 포르투갈 영토가 된 동인도의 대부분을 지배하여 인도계 국가로서는 최후의 번영을 누렸다. 한편 아랍인들이 남중국해로 진출해온 것은 꽤 오래된 일로 추정되는데, 10∼11세기 무렵 베트남의 참파 근방으로 유입해온 이슬람교는 13세기에 수마트라섬 북부의 사무두라와 페들라크에 이슬람 왕국을 성립시켰다.
14세기에는 말레이반도에 교두보를 확보하였으며 말라카가 그 중심지 구실을 하였다. 15세기에 자바로 진출한 이슬람 세력은 특히 중부지방에서 기반을 굳혔으며, 마자파히트 왕조는 북부해안 부근의 테마크를 지배하였던 이슬람교 군주에게 멸망하였다. 그 뒤 이슬람교는 서부 자바를 비롯하여 보르네오섬·셀레베스섬 등 여러 섬으로 전파되어 발리섬을 제외한 동인도제도를 휩쓸었다. 근세에 와서는 이슬람교도의 해상세력을 격파한 서유럽인들이 진출해왔다.
포르투갈은 암본을 차지하고 몰루카제도의 향료 무역권을 독점하였으며, 에스파냐인들은 필리핀을 세력권으로 하여 몰루카제도의 향료무역에도 손을 대었다. 그러나 이 두 나라는 식민지정책에 서툴렀기 때문에 네덜란드가 이들에게서 동인도의 해상권(海上權)을 빼앗았으며, 이때를 전후하여 이 곳으로 진출해온 영국인과 격렬한 싸움을 벌였다. 17세기 초 네덜란드의 쿤은 자카르타에서 영국세력을 몰아내고 바타비아를 건설하여 자바섬에 네덜란드 세력을 심었다. 따라서 네덜란드의 동인도회사는 마자파하트 왕조의 뒤를 이은 마타람왕국을 잠식해 들어갔다.
나폴레옹 전쟁 당시 한때 영국군에게 점령되기도 하였으나 1814년과 1824년에 체결된 런던조약에 따라 네덜란드는 아시아 대륙의 옛 영토를 포기하는 대신 영국으로부터 인도네시아 지배권을 승인받게 되었다. 이로써 자바섬의 토착 왕국은 점차 네덜란드의 무력에 굴복하게 되었고, 마침내 티모르(포르루갈령), 보르네오섬의 일부(영국령), 필리핀(에스파냐령, 나중에는 미국령)을 제외한 인도네시아의 대부분이 잇달아 네덜란드의 통치를 받게 되었다. 350년이 넘는 네덜란드의 지배는 인도네시아 민족해방을 지도할 만한 민족자본가의 성장가능성을 배제해 버렸다.
그러나 19세기 후반경부터 미약하나마 문화적 활동을 지향하면서도 종족적 색채가 강한 여러 가지 운동이 일어났다. 1908년 와히딘 수디로후소도가 주도한 부디우토모당(黨)이 대표적이다. 그 후 이슬람교도들을 중심으로 한 사리카트이슬람(이슬람연합) 운동이 인도네시아 전역에 걸쳐 일어나 종교를 통하여 종족의 벽을 뛰어넘음으로써 대규모의 통일된 힘을 보여 주었다. 그러나 사리카트이슬람은 마침내 급진적인 정치색을 띠기 시작하여 1920년에는 인도네시아 공산을 탄생시켰다. 공산당은 1926년 노동조합의 통일전선(統一戰線)으로 동인도 노동조합협의회를 결성한 데 이어 공산당을 비롯한 12개 정당과 노동조합을 결속하여 반제국주의 통일전선(反帝國主義統一戰線)을 결성하였으나 1926∼1927년 전국에 걸친 무장폭동 이후 비합법화되었다. 그 대신 1927년에는 인도네시아 국민당이 결성되어 지도권을 장악하고 민족주의적 비협조를 제창함으로써 세력이 크게 확산되었다.
그러나 1931년에는 이것 역시 해산명령을 받게 되어 민족해방운동은 점차 후퇴하였으며, 단지 자치를 요구하는 선에 머물렀던 대(大)인도네시아당이 그 뒤를 이었다. 1936년에는 각종 정당 및 노동단체를 통합한 인도네시아 인민회의가 탄생하여 보통선거에 의한 완전한 의회의 획득이라는 슬로건을 정면으로 내세웠다. 제2차 세계대전 중인 1942년에 바타비아를 점령한 일본군이 동인도 전역에 군정(軍政)을 실시하였기 때문에 민족운동은 지하로 숨어들었다. 일본의 항복 직후인 1945년 8월 17일 민족운동 지도자 수카르노와 하타를 중심으로 인도네시아 공화국의 독립이 선언되었다. 하지만 실질적인 식민지회복을 노렸던 네덜란드는 1947년 경찰행동(警察行動)이라는 명목으로 인도네시아에 대한 전면공격을 가해왔다. 이 사건은 국제연합(UN)의 조정에 따라 1948년 1월 15일 렌빌협정에 의해 수습되었으나 이 협정은 인도네시아 민족주의자들의 불만을 샀으며 급진세력이 공산당을 중심으로 결속하여 인민민주당을 조직하였다. 공화국 정부는 마디운사건을 계기로 이들을 모두 제거하였다.
그러나 1948년 12월 네덜란드가 제2차 경찰행동을 일으켜 공화국을 위협하자 다시 반(反)네덜란드 감정이 높아졌고 식민지 재편성의 주도권을 쥐고 있던 미국이 네덜란드에 압력을 가하기도 하였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1949년 12월 27일 헤이그 원탁회의 결과 인도네시아 연방공화국이 탄생하였고 네덜란드와의 사이에는 네덜란드·인도네시아 연합이 성립되었다. 그 뒤 공화국 정부는 단일국가 수립에 노력하였으며 연방내 친(親)네덜란드파(派)의 반란을 비롯한 여러 가지 장애를 배제한 뒤 1950년 8월에는 1949년의 연방헌법을 폐지하고 연방을 해체하였다.
그 결과 서유럽형 의회제도를 골자로 하는 1950년 헌법에 의하여 단일독립국가로 통일되었고, 이어서 1956년 2월 네덜란드·인도네시아 연합을 폐기함으로써 완전한 독립국이 되었다. 그러나 네덜란드의 경제적 권익은 그대로 남아 커다란 제약요인이 되었다. 국제적으로는 이른바 콜롬보 그룹에 속하여 SEAT(Southeast Asia Treaty Organization:동남아시아 조약기구)에 반대하며 국제적 긴장완화를 위해 적극적인 활동을 벌였다.
1963년에는 수카르노가 군부의 지지하에 종신 대통령에 취임함으로써 독재체제를 수립하였으며, 대외적으로 UN을 탈퇴하고 소련과 중국과의 관계를 강화하였으며 대내적으로 용공노선을 지지함으로써 군부와 공산당이 대립, 경제난과 정치적 혼란을 초래하였다. 이에 1965년 반공적인 군부세력의 쿠데타가 발발하였으며, 1968년 수하르토 정부가 출범하였다. 수하르토 정부는 1969년 이리안바라트를, 1975년 동티모르를 합병하였으며 1992년 총선에서 집권당이 승리함으로써 연속집권의 기반을 다졌다. 1999년 8월에 UN 감시 아래 치러진 주민투표에서 동티모르의 독립이 결정되었다.
인도네시아의 정치 (Government)
국가 이념 : 빤짜실라 기본이념에 따른 1945년 헌법 제정, 이를 토대로 대통령을 국가원수로 하는 민주공화국 건국
빤짜실라(5개 건국이념 :Pancasila) 첫째, 유일신에 대한 믿음 (Belief in the One and Only God, 다양한 신앙에 대한 존중을 의미) 둘째, 인간의 존엄섬 (Just and Civilized Humanity) 셋째, 통일 인도네시아 (The Unity of Indonesia) 넷째, 대의 정치 (Democracy guided by the Inner Wisdom in the Unanimity arising out of Deliberations amongst Representative) 다섯째, 사회정의 구현 (Social Justice for the Whole of rhe People of Indonesia) 정치 역사 : 가. 고대왕국시대 -644 말라유 왕국(힌두교 왕조) : 수마트라 남부지역 지배 -689 스리위자야 왕국(불교 왕조) : 수마트라, 자바, 말레이반도 지배 -1292 마자파히트 왕국(힌두교 왕조) : 현재의 전 인도네시아 영토, 말레이 반도, 필리핀 남부에 걸친 거대한 해상제국 형성 -15세기 이슬람교 침투 : 수마트라, 자바, 깔리만탄 해안지역에 말라카 빈담마타람 등 수개의 이슬람왕국 성립 나. 화란 식민지 시대 -1602 네덜란드의 동인도 회사 설립으로 식민지 경영 시작 -1824 전 인도네시아를 네덜란드 직할 식민지화 다. 일본 점령 :1942-1945 라. 인도네시아 공화국 시대 -1945. 8 인도네시아 공화국 독립선언 및 헌법 채택, 4년간의 대 네덜란드 무력항쟁 시작 -1949.12 인도네시아 연방공화국 수립 -1950. 8 인도네시아 공화국으로 복귀 -1965. 9 인도네시아 공산당(PKI) 쿠테타 시도, 인니군에 의해 진압 -1966. 3 수카르노 대통령, 수하르토 장군(당시 전략사령관, 육군소장)에게 실권 이양 -1968. 3 수하르토 대통령 취임, New ORder Government 출범 -1998. 5 소요/폭동사태로 대통령직을 하비비 부통령에게 이양 -1999. 10 국민협의회(MPR)의 정/부통령 선거에서 대통령 Abdurrahman Wahid, 부통령에 Megawati Soekarnoputri가 당선 -2001. 7 국민협의회(MPR) 특별회의에서 Megawati Soekarnoputri가 대통령직을 승계하였고, Hamzah Haz 통일개발당 총재가 부통령에 선출 -2004. 4 국회의원 선거 등 총선 실시(곱까르당, 제1당으로 복귀) -2004. 7 현정사상 처음으로 국민직접투표에 의한 대통령 선거 실시, 과반수 이상 득표 후보가 없어, 상위 1, 2위 후보(Susilo Bambang Yudhoyono전 정치/안보 조정장관과 Megawati 현 대통령)간에 9.20 결선투표 실시 -2004. 9 결선투표 결과, Yudhoyono 후보가 차기 대통령으로 당선 -2004. 10 유도요노(Yudhoyono) 대통령 취임 "United Indonesia Government" 출범 정치적 특징 : -수하르토 정권 하의 권위주의 체제에서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전환하는 단계 -각 정당은 빤짜실라 민주주의에 기초한 우당관계였으니, 1999년 및 2004년 총선을 거쳐 이슬람계 정당과 민족주의 정당으로 크게 양분되는 양상 -강력한 대통령 중심제였으나, 수하르토 대통령 퇴진(98년) 이루 대통령 권한을 축소하고 국회(DPR)의 권한을 강화 -2004. 7. 5 대통령 선거부터 대통령, 부통령을 헌정사살 처음으로 국민 직접투표로 선출 -이에 따라 국민협의회(MPR)가 국가주권기관으로서의 의미를 상실 -민주화와 시장경제를 표방하고 개혁을 추진 중이나 여러 가지 난관 존재 최근 정치 정세 : 가. 2004. 4월 총선 결과 -2004. 4. 5 실시된 총선 결과, 집권여당인 '투쟁민주당(PDI-P)'이 전반적인 퇴조를 보인 가운데 수하르토 체제를 지탱해온 '골까르당(Golkar Party)'이 '투젱민주당'을 제치고 제1당의 위치로 복귀 -의회 선거에서 나타난 투쟁민주당에 대한 헌격한 지지도 저하와 수하르토 체제를 지탱해 왔던 '골까르당'의 제1당 탈환은 2001. 7월 집권한 Megawati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대해 상당수의 국민들이 불만과 실망감을 표출한 것으로 분석 -총선 결과의 특징은 1)Megawati 대통령이 이끄는 집권여당의 참패, 2)'골까르당'의 제1당 탈환 3)선명성을 내세운 신생정당의 약진 4)이슬람계 정당의 현상유지로 분석 -투쟁민주당의 패배의 원인으로는 1)개혁 추진 노역이 미흡하고 2)정계, 관계 및 사법부의 부정부패와 정/경 유착이 계속되는 현상을 보였으며 3)물가고, 높은 실업율 등 민생 경제가 불안한 상황이고 4)Megawati 대통령 측근들의 독주로 인해 투쟁민주당의 결속력이 약화되고 중앙당-지방 조직간 균열리 확대된 점등이 거론 -골까르당으 제1당 복귀는 골까르당에 대한 지지도 확산에 힘입었다기 보다는 Megawati 정부의 실정에 따른 반사이익의 성격이 크며, 수하르토 정권 당시의 공공질서 유지와 안정에 대한 동경 현상이 일부 작용한 것으로 판단 -특히 신생정당의 선전은 정치 풍토 개선과 새로운 리더쉽을 갈망하는 유권자들의 여망을 나타낸 것으로 평가 -특히 Susilo bambang Yudhoyono 전 정치/안보 조정장관이 이끄는 민주당(Democratic Party :PD)은 2001년 창당 이래 3년만에 대통령 후보를 낼 수 있는 분기점인 전체 의석수의 3%(또는 총5% 이상의 득표) 수준을 상회하는 7.45%의 득표를 힘으로써 주요 정당으로 발돋움 -이슬람계 개혁정당인 '복지정의당(PKS)도 99년 총선시(1.4%)와 비교, 6% 수준의 득표율 상승을 거둬 전국적인 기반을 갖춘 제6위의 정당으로 도약 *복지정의당은 이슬람계 정당이면서도, '반부패, 깨끗한 정치'를 표방함으로써 선명성을 부각, 비이슬람계 유권자들로부터 상당한 지지를 확보 -'복지정의당'과 '민주당'은 자카르타시에서 기성정당을 제치고 각각 1, 2위를 차지라는 등, 대도시 거주 중산층과 지식인 계층의 폭넓은 지지도를 획득하는데 성공 요약 : 인도네시아의 국체(國體)는 공화국, 정체(政體)는 대통령 중심제이다. 1945년 8월 17일 공화국 독립을 선포한 이후, 2001년 7월 23일 와히드(Abdurrahman Wahid)가 무능력과 부패 의혹 등으로 인해 집권한 지 21개월 만에 대통령직에서 쫓겨나고,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Megawati Sukarnoputri)가 신임 대통령으로 정권을 잡기까지 대통령 중심제를 고수하고 있다. 신앙의 존엄성, 인간의 존엄성, 통일 인도네시아, 대의정치, 사회정의 구현 등 1945년 제정된 헌법에 따라 '판차실러(Pancasilla)', 즉 '건국 5원칙'을 국가 이념으로 삼고 있으며, 헌법을 개정해 강력한 대통령의 권한이 축소되고, 국민 대표기관인 국민협의회(MRP)와 국회(DPR)의 권한이 강화되었다. 정치 성향은, 대내적으로는 군도(群島) 국가로서 지역간 불균형, 심각한 빈부격차, 전통과 근대의 혼재, 다종족 등으로 인한 통치상의 난점뿐 아니라, 부정부패·정경유착 등 정치권의 부정부패도 심각하다. 대외적으로는 비동맹 중립노선을 추구하면서 대통령은 행정부의 수반이자 국가 원수로서, 임기는 5년이며, 국민협의회에서 선출되고, 국회에 대해 책임을 진다. 1968년 6월 경제안정과 경제개발계획 추진을 목적으로 제1차 개발 내각이 발족한 이후 수하르토(Suharto) 정권 하에서 7차에 걸쳐 개발내각이 구성되었고, 1998년 5월 하비비가 새 과도정부를 구성한 뒤, 1999년 10월 국민협의회 대통령 선거에서 와히드가 당선되었다. 당선 이후 와히드는 국가통합 유지와 경제위기 극복을 최우선 과제로 설정하고, 모든 정파를 포함하는 국민연합 내각을 발족, 취임 직후에는 비교적 정세가 안정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그러나 일부 지방의 분리주의 요구와 수하르토 전 대통령의 처리 문제 지연, 정파간 갈등의 표면화 등으로 인해 갈수록 정국이 혼미해지고, 2001년에 들어서면서는 와히드 자신이 조달청 자금 횡령 및 브루나이 국왕의 기부금 유용 혐의 등을 받으면서 국내 정세는 급격히 불안해졌다. 그러다 2001년 7월 23일, 국민협의회의 탄핵에 의해 임기를 절반도 채우지 못한 채 대통령직에서 쫓겨나고, 메가와티가 새로운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지만, 일선 군부대 지휘관들인 영관급 장교 중에는 아직도 와히드의 지지세력이 적지 않고, 인도네시아 최대 이슬람 단체인 나둘라툴울라마(NU) 회원들이 자살특공대를 결성해 와히드를 사수하겠다고 선언하는 등 당분간은 불안한 정국이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국민대표기관은 국민협의회와 국회의 2원적 조직으로 이루어져 있다. 국민협의회는 헌법제정, 주요 국가정책 방향 결정, 대통령·부통령 선출 및 해임 등과 관련된 일을 하며, 임기는 5년이다. 국회의원 500명, 지역대표 130명, 직능대표 65명 등 총 695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국회는 입법권, 예산 결정 및 집행·감독, 행정부 견제 기능을 하며, 임기는 5년으로, 총 500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주요 정당에는 민주투쟁당(PDIP), 국민계몽당(PKP)를 비롯해 골카르당(GOLKAR), 통일개발당(PPP), 국민수권당(PAN) 등이 있다. 사법제도는 3심제를 채택하고 있으며, 법원은 대법원·고등법원(26개)과 지방법원 및 분원(287개)으로 구성되며, 그밖에 국방부가 관할하는 군사재판소, 종교부가 관할하는 종교재판소가 있다. 군사 :
인도네시아의 경제 (Economics) 경제 : 네덜란드 국민경제의 확대와 재편을 위해 식민지화된 인도네시아는 서유럽 기업에 의한 단일재배경제형(單一栽培經濟型:monoculture)의 식민지가 되어왔으며, 민족사회 내부에 민족 부르주아를 형성하지 못한 관계로 독립 후에도 기간산업부문(基幹産業部門)은 물론 생산수단의 생산부문이나 소비물자의 생산까지 어려움을 겪었다. 더욱이 1942년 네덜란드 식민지권력의 붕괴, 일본군정(1942~1945), 독립전쟁(1945~1949), 그리고 수카르노 정부에 의한 네덜란드 기업의 접수활동이 진행되는 동안 식민지적 대지주제와 전통적 토지소유제도의 2중구조를 타파하려는 국민경제의 형성이 촉진되었으나, 수카르노 정부 시책을 받쳐주는 경제적 기초가 약했을 뿐만 아니라 치솟는 인플레이션을 억제하지 못하였다. 산업 : 인도네시아는 19세기 이래 네덜란드에 의해 풍부한 열대자원을 바탕으로 한 농업개발이 중점적으로 이루어져 어떤 의미에서는 ‘열대의 보고(寶庫)’로서의 가치를 가장 강하게 나타내고 있는 나라이다. 농업은 이른바 에스테이트에 의해서 수출을 위한 것과 원주민의 식량자급을 위한 것의 2가지 종류로 나누어진다. 에스테이트 농업은 예전에는 자바섬과 수마트라섬을 중심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었으나 제2차 세계대전과 잇달은 독립전쟁으로 큰 타격을 받게 되었다. 전전의 248만ha 중 오늘날 경작되고 있는 면적은 170만ha에 지나지 않는다. 주요 농산물은 쌀·옥수수·카사바·고무 등 식량작물 외에 고무·커피·잎담배·야자유 등이다. 교통 : 인도네시아는 자바섬 내에 철도 및 자동차도로가 사방으로 뚫려 있어 동남아시아에서는 드물게 보는 교통망이 갖추어져 있지만, 그 밖의 섬은 낙후되어 있다. 특히 동부지역의 교통이 불편하다. 철도 총연장은 6458km, 도로 총연장은 34만 2700km(포장률 46%, 1997)이다. 최근에 국내공로(國內空路)가 점차 정비되고 있으며 국제적으로는 자바섬·수마트라섬의 여러 항구도시로 이어지는 항로와 항공로가 발달해 있다. 공항은 453개이다. 국민총생산 : 4,381억불 2008 CIA 조사 결과 1인당 국민소득 : 1,947불 2008 CIA 조사 결과 수출 : 1,139억불 2008 CIA 조사 결과 수입 : 744억불 2008 CIA 조사 결과 주요자원 : 석유, 천연가스, 목재, 주석, 석탄, 보크사이트, 망간, 동, 니켈, 금, 은, 고무
친서방 외교정책을 통한 실리외교에 중점을 두고 있다.
또 몇 년째 계속되는 경제난에도 불구하고, IMF(International Monetary Fund:국제통화기금)이 2000년 12월, 개혁이행 실패를 문제 삼아 구제금융 집행을 중단하는 등 국내 정세의 불안 외에 경제난까지 겹침으로써 이것이 앞으로 메가와티 정부가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로 지적되고 있다. 대통령 메가와티는 영토 보존, 인권존중 및 개혁·민주화 추진, 경제개발 및 국민경제 기반강화, 법 집행 강화 및 부정부패척결, 능동적 외교수행 및 국가 신뢰도 회복, 2004년 총선 준비 등을 국정목표로 설정하고, 이를 위해 협동내각을 구성하였다.
1975년 인도네시아에 병합된 동티모르는 구스마오를 중심으로 독립운동을 줄기차게 펼친 결과, 1999년 8월 UN(United Nations:국제연합) 감시 아래 치러진 동티모르의 독립 여부를 묻는 주민투표에서 독립이 결정되었다.
국방은 국방부(Department of Defense) 관할하의 육군·해군·공군으로 구성되며, 기존의 경찰군은 2000년 7월부터 대통령 직할군으로 편성되었다. 국토방위와 치안유지의 의무가 있으며, 헌법상 정치참여의 권리가 인정된다. 총 병력은 48만 2000명으로, 육군이 23만 5000명, 해군이 4만 3000명, 공군이 2만 1000명, 경찰군이 18만 3000명이다. 전차 330대, 장갑차 500대, 화포 450문, 잠수함 2척, 구축함을 포함한 함정 100여 척, F-16 10대를 포함한 전투기 및 수송기 358대를 보유하고 있다. 2002년 국방비는 8억 3000만 달러이다. 병역제도는 지원제이다.
뒤를 이은 수하르토 정부는 식량자급을 목표로 하는 비마스 계획을 실시하고 식량·의료 등 국민생활의 구체적인 개선을 목표로 하는 대규모 시책을 실시하였다. 이자를 포함해 24억 달러가 넘는 수카르노정부의 대외채무상환의 연기가 일본·미국 등 자유주의 제국에 의하여 실현된 후 1967∼1969년 수하르토 정부는 계속해서 여러 나라로부터 10억 달러가 넘는 새로운 원조를 받았으며 이 사이에 또 10억 달러의 외자가 도입되었다. 이 결과 소비자물가의 상승률이 떨어지고 환율도 안정을 찾게 되었다.
인도네시아는 농업과 광업에 기초를 둔 개발도상국형의 혼합경제체제인데, 1998년 현재 6020억 달러의 국민총생산 중 농업이 18.8%를 차지하고 종사자수도 총취업 인구의 45%를 차지하는 농업국이며, 동남아시아 유일의 OPEC(Organization of Petroleum Exporting Countries:석유수출국기구) 회원국이다. 특히, 1989년 시작된 제5차 5개년계획에서는 농업부문의 식량자급량 확보와 수출진흥·고용기회확대를 위한 공업부문의 개발을 중점적으로 추진하였다.
그러나 1997년 6월부터 시작된 루피아화의 가치폭락으로 경제가 큰 타격을 받았다. 1997년 6월 1달러당 2,450 루피아가 1달러당 1만 7000루피아로 떨어지기도 했다. 루피아와의 가치폭락은 국내의 수요를 감소시키고, 물가급등, 기업도산, 실업자 양상, 경상수지적자 등을 초래하여 1998년 현재 GDP가 전년대비 13.6% 감소하였고, 1인당 GDP는 1996년도 1,184달러에서 1998년도 480달러로 떨어졌다가 2000년에는 728달러로 높아졌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IMF(International Monetary Fund:국제통화기금)와 원조공여국 등 국제사회의 지원을 받아 경제위기 극복에 주력하고 있다.
자연조건으로 보아 벼농사는 2년5작(二年五作)이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농업기술이 뒤떨어져 국내 수요를 충당하지 못하고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산림자원은 수량이 풍부하여 목재산업이 활발할 뿐 아니라 주요 수출품 중의 하나이다. 재배림의 대부분은 티크나무로 자바섬이 주생산지이며, 동부 몰루카 지방의 특산으로 다마르 수지(樹脂)가 있다. 어업도 활발하나 어획방법이 원시적이고 어로지역도 근해가 중심이다. 제염은 마두라섬에서 활발한데, 자연조건으로 보아 아시아에서 가장 유명한 염업지(鹽業地)가 될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이 밖에 동부의 아루제도 부근에서는 진주조개가 잡힌다.
인도네시아는 풍부한 지하자원의 혜택을 입고 있는데, 특히 국내총생산액의 35%를 차지하고 노동력의 16%를 점유하는 공업과 광업은 석유에 그 기초를 두고 있다. 석유는 민간자본에 의한 석유회사를 통합하여 1968년 설립한 국영석유회사인 플루타미나와 미국을 필두로 하는 외국석유회사에 의해 급속한 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주요 유전은 수마트라(메단, 팔렘방)·보르네오(타라칸, 발릭파판)·자바 동부·서이리안 등지이며, 석유자원은 국유화되어 있고 정유는 국영 정유회사인 페르타미나에서 전담하고 있다.
천연가스도 주요 수출품으로 점차 비중이 높아져 생산시설의 확충이 계속되고 있다. 석탄은 수마트라섬 서안 및 팔렘방 부근에서, 금은 수마트라섬과 보르네오섬에서, 철은 보르네오섬 남동부와 셀레베스섬 남서부에서 생산된다. 공업의 발달은 지극히 낙후된 상태로 이제까지는 에스테이트 농업 등과 결합된 소규모에 지나지 않았으나 자원과 노동력이 풍부하여 장래 공업발달의 가능성은 높다.
무역은 1970년대 이후 수출이 계속 늘어 무역흑자폭이 확대되고 있다. 주요 수출품목은 원유·천연가스·섬유·원목(原木)·신발·고무 등이며 주요 수출국은 일본·미국·싱가포르·한국 등이다. 주요 수입품목은 기계류·화학제품·비금속(非金屬)·자동차부품·철강판 등이며 주요 수입국은 일본·미국·싱가포르 등이다. 무역상대국은 수출입 모두 일본이 제1위, 미국이 제2위를 차지하며, 그 밖의 수출에서는 중국·타이완·네덜란드, 수입에서는 오스트레일리아·독일·한국 순이다. 2000년 수출은 611억 달러, 수입은 336억 달러이다.
인도네시아의 외교 (Diplomacy)
외교 :
외교면에서 현재는 수카르노시대와는 달리 유연한 대외정책을 취하여 각국의 경제적 원조를 확보하고 있다. 중국과는 <9월 30일사건> 이래 국교가 단절되었다가 1990년 재수교하였다. 인근 여러 나라들과는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을 형성하고 있으며, 차츰 그 중심적 존재로서의 지위를 확립해가고 있다. 인도네시아의 경제는 최근 석유자원 개발로 수카르노시대에 비하여 상당히 발전하였으나, 아직도 부의 분배에서는 두드러진 불균형을 보이고 있다. 빈부격차의 해소, 그리고 자바섬 중심의 정책에 대한 다른 지역의 불만 등은 국내정치에 있어서 하나의 불안정한 조건을 형성한다. 1995년 12월 오스트레일리아와 안보협력협정을 체결하였다. 1999년 10월 동티모르 독립을 공식 비준함으로써 동티모르에 대한 24년간 통치를 끝냈다.
한국과의 관계 :
인도네시아는 남북한 동시수교국이다. 남북한의 상주공관이 설치되어 있다. 한국과는 1973년 9월에, 북한과는 1964년 4월에 국교관계가 성립되었다. 1981년 7월 대통령 전두환이 인도네시아를 방문한 데 이어 이듬해 10월 대통령 수하르토가 한국을 방문함으로써 자원개발을 비롯한 양국의 협력관계가 확대되었다. 2000년 11월 대통령 김대중이 인도네시아를 국빈방문하고, 2000년 2월과 10월에 인도네시아 대통령 와히드가 방한하는 등 정상외교를 통해 양국간의 유대관계가 강화·발전되고 있다. 양국간에 체결된 협정은 경제 및 기술협력과 통상증진에 관한 협정(1971), 임업협정(1987), 항공협정(1989), 이중과세방지 협정(1989), 투자보장협정(1991), 법무자료교환 협정(1996), 대외경제 협력기금(EDCF) 협정(1997), 건설협력약정(1999), 범죄인 인도협정 및 문화협정(2000) 등이다. 1970년대 이후 한국 건설업체의 진출로 마두라 유전개발 등을 비롯하여 민간차원의 협력이 강화되고 있다.
2000년 현재 대(對) 한국 수입은 35억 400만 달러이고, 수출은 51억 8700만 달러이다. 주요 수출품은 유화제품, 수송기계, 철강판 및 금속, 일반기계, 플라스틱 및 고무제품, 전자전기제품 등이고, 수입품은 원유, LNG, 목재, 펄프 등이다. 2001년 12월 말 현재 교민수(체류자 포함) 1만 8000명이다.
인도네시아의 여행 정보 (Traveling Information)
비자 정보 : 6개월 이상 유효한 여권만 있으면, 비자 없이 60일까지 체류할 수 있다.
공항 정보 : 대한항공과 가루다인도네시아 항공에서 자카르타 직항기를 매일 운행하고 있으며, 아시아나 항공은 1주일에 3번 자카르타로 취항한다.
자카르타 국제공항은 자카르타 시내 서쪽으로 20Km 정도 떨어져 있는데 시내와 도심을 연결하는 고속도로가 있다.
공항에서 시내로 가기 위해서는 공항 리무진 버스를 이용하는 것이 가장 편리한데 보통 30분 간격으로 운행되고 있다.
입국 정보 : 담배는 체류기간에 따라 면세받는 정도가 다른데, 보통 담배 200개피, 시가 50개피, 입담배 100g까지 면세받을 수 있다.
술은 개봉된 것에 한하여 1L까지 면세되며 개인사용 용도의 향수 적당량과 선물용의 물품 $100까지 면세받을 수 있다.
주의 사항 : 인도네시아에는 다양한 종교가 있지만 절대적인 숫자가 이슬람교를 믿고 있다.
따라서, 인도네시아를 여행할 때는 종교적인 금기사항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이 곳에서는 어린아이의 머리를 만져서는 안 되는데 머리에 손을 되면 영혼이 더러워진다고 믿고 있다.
또한, 왼손은 부정한 손으로 여겨지므로 사람을 가리킬 때나 물건을 건네 줄 때에 왼손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
대중교통 정보 : - 비행기
많은 섬으로 이루어진 인도네시아를 여행하기 위해서는 비행기를 이용하는 것이 가장 편리하다.
가루다인도네시아 항공을 비롯한 인도네시아 국내항공사들이 각 섬과 도시 사이를 연결하고 있다.
- 배
섬나라인 인도네시아를 여행할 때 빠질 수 없는 교통수단이 배이다.
주요 큰 섬들을 연결하는 페리는 버스노선과 연계되어 있는 경우도 많다.
일정이 불규칙한 경우도 많아서 조금은 불편할 수도 있다.
- 버스
시간적인 여유가 좀더 있고 인도네시아의 정취를 느껴보고 싶다면 버스를 이용해 보는 것도 좋다.
각 주요 도시와 소도시를 잇는 급행버스와 야간버스가 운행되고 있으며, 큰 섬 간에는 버스를 싣는 페리와 연결되어 있는 경우도 많다.
- 기차
섬나라이기 때문에 철도노선이 잘 발달되어 있는 편은 아니지만 자바섬과 수마트라섬에서는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교통수단이다.
1~3등석이 있으며 야간 특급열차 등이 잘 되어 있다.
쇼핑 정보 : 인도네시아는 직물제품과 금속 공예품, 목공예품 등으로 유명하다.
- 바티크
자바의 사라사를 지칭하는 것으로 인도네시아 전통의상은 바로 이 바티크로 만들어진다.
요그야카르타와 솔로가 대표적인 생산지이며 이 곳에서는 바티크 공장을 견학할 수도 있다.
바티크를 이용한 손수건·셔츠·테이블보·깔개 등의 제품이 관광객들 사이에서 인기이다.
다른 나라의 것에 비해서 색깔이 화려하고 손으로 그린 느낌이 잘 살아 있다.
- 은공예품
요그야카르타 교외의 고타 게데가 대표적인 생산지이며, 발리섬의 출리크에서는 공장견학도 할 수 있다.
다양한 종류의 제품이 있어서 선택의 폭이 매우 넓다.
음식 정보 : 인도네시아인은 쌀을 주식으로 하며 음식은 향신료를 듬뿍 넣어 조리한 것이 많다.
이것은 기후 영향의 탓도 있지만 주변 국가의 영향을 받이 받았다.
이러한 인도네시아 요리는 양식을 주로 하는 호텔 레스토랑에서도 먹을 수 있다.
인도네시아 어디에서나 열대과일, 군것질 등을 늘어놓고 파는 노점상을 만날 수 있다.
- 사테
우리나라의 꼬치와 비슷한 음식으로, 차이가 있다면 이 곳에서는 염소고기를 이용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땅콩 소스 등에 발라서 먹기도 하는데 밥이나 론통과 함께 먹는다
- 미 고랭 (미: 면, 고랭: 볶음)
야채와 닭고기, 해산물을 면과 함께 볶은 것이다.
- 나시 고랭 (나시: 밥, 고랭: 볶음)
우리나라의 볶음밥과 비슷한 음식이다.
숙박 정보 : 인도네시아의 저렴한 숙박시설로는 로스멘(Losmen)·위스마(Wisma)·게스트하우스가 있다.
발리섬 같은 리조트 지역에 가면 통나무 집같은 숙박시설을 발견할 수 있다. 전체적으로 숙박시설은 저렴한 편이다.
전압 정보 : 대부분의 도시에서 전압은 220V, 전류는 50Hz이다. 우리나라와 플러그 모양이 다르므로 별도로 어댑터를 구입해야 한다.
전화 정보 : 인도네시아는 자카르타 등 대도시를 제외하고는 아직 전화보급률이 낮은 편이라 한국에서만큼 쉽게 공중전화를 찾아 볼 수 없다.
국제전화를 하려면 호텔 전화기를 사용하는 편이 낫다.
인도네시아에서 한국으로 전화를 하려면 001+82(한국 국가번호)+0을 제외한 지역번호+상대방 전화번호를 누르면 된다.
공중 화장실 정보 : 호텔 등에는 좌변기가 있지만 대부분의 화장실이 우리나라 재래식과 같은 모양의 변기이다.
인도네시아 화장실에는 화장지가 없으므로 화장지를 미리 준비하는 것이 좋다.
한국 공관 및 기타 연락처 : 주 인도네시아 한국대사관 주소 : 57, Jalan Gatot Subroto, Jakarta Selatan, Indonesia 전화번호 : (62-21) 520-1915 대한항공 인도네시아 지점 : (시내) 521-2180, (공항) 550-2394, 2389 경찰서 : 110 화재신고 : 113 구급차 : 118, 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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