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해양부가 지난 5일 택배차량 부족 해소를 위해 내놓은 방침에 대해 업계에서 비난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국토해양부가 내놓은 방안은 크게 두 가지로 하나는 용달사업자와 택배기사 간의 양도·양수를 통해 용달차량을 택배로 대규모 전환하는 것과 다른 한 가지는 공번호판(T/E: Table of Equipment)도 충당하여 부족한 차량의 공급을 늘리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두 가지 방침 모두 현실성을 떠나 기존 정책들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라고 업계관계자들은 맹렬한 비난을 퍼붓고 있다.
겉으로는 많은 혜택을 받게 되는 것처럼 보이는 택배업계 역시 발상자체를 이해할 수 없다며 강한 불만을 제기하고 있는 상황이다.
화물연대 역시 국토해양부를 대기업 택배회사의 대변인이라고 꼬집으며 이번 정책을 즉각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국토해양부에서 내놓은 이번 정책에 대한 업계 비난이 커지는 이유는 뭘까. 이에 대해 보다 자세히 알아보았다.
번호판 가격 인정한 정부(?), 뒷감당 누가 책임지나
업계에서는 정책을 발표한 국토해양부 관계자들의 자질논란까지 일고 있다.
이는 국토해양부가 발표한 보도 자료에 시장에서 은밀하게 거래되고 있는 차량 번호판의 적정가격이 700만 원이라고 명시돼 있기 때문.
실제 시장 내에서는 정부의 화물차량 신규 증차제한 정책에 따라 높은 가격에 번호판들이 거래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시장 내에서 암묵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행위일 뿐 정부가 결코 이를 인정해서는 안됐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주장이다.
이러한 업계의 주장에 대해 국토해양부 관계자는 “보도자료 내에도 원활한 사업 추진을 위해 한국교통연구원이 산정한 적정 가격이라고 명시돼 있다. 국가가 아닌 교통연구원에서 책정한 가격일 뿐 이를 국가가 인정했다고 하는 것은 말도 안된다”며 “이미 시장에서 높은 가격에 거래되고 있는 것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는 만큼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고 판단된다”고 말했다.
그는 또 “교통연구원이 700만 원이라고 책정했다고 안 살 사람이 사고, 사려던 사람이 안사지 않지는 않을 것”이라며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업계 관계자들은 이를 쉽게 용납하는 분위기가 아니다. 정부로 돌아오는 화살을 한국교통연구원으로 돌리는 책임회피 론까지 들먹이며 잘못을 지적하고 있다. 심지어는 나중에 증차가 풀리게 될 경우 700만 원을 주고 구입한 이들에게 정부에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발표한 내용에 번호판 가격이 포함돼 업계를 혼란시킨 점에 대해서는 비판받아 마땅하다”며 “국가가 인정한 것이 아니라고 아무리 말해도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은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개인택시 번호판 가격이 아무리 비싸도 다른 정부 관계자들은 누구하나 이를 입 밖으로 꺼낸 적이 없다. 그것을 얘기한다는 것 자체가 정부가 인정한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정부 관계자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이를 발표했다. 이것은 국가가 인정한 꼴밖에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덤핑, 과적, 저운임의 현 시장 더욱 악화시킬 듯
이번 정책을 놓고 업계에서는 증차를 허용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며 차량의 공급과잉으로 덤핑, 과적, 저운임 등이 팽배한 시장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화물연대 측은 화물운송노동자들의 생존권이 벼랑 끝으로 내몰려 ‘핸들을 잡으면 신용불량자, 핸드을 놓으면 실업자’가 되는 게 현실이라며 차량 수급을 늘린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또 기름값이 천정부지로 뛰고, 운송료는 제자리인 상황에서 국토부는 이번 증차 조치로 화물노동자들을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도록 만들고 있다고 비판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
이밖에도 공번호판은 현재 존재하지 않고 있는 번호판으로, 7,000개의 번호판을 교부한다는 것은 증차한다는 것과 다름없다며 이번 증차를 시작으로 추가적인 증차가 이어질 경우 공급과잉 상태를 유발시켜 화물노동자의 생존권을 2003년 이전으로 돌려놓을 것이 분명하다고 지적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정부는 국토부 내 ‘공급기준심의위원회’를 설치해 2005년부터 매년 수급동결을 결정해 왔다. 이미 2010년 말 심의위는 2011년 차량 공급을 동결하겠다는 방침을 확정한 바 있는데 공번호판을 양도, 양수해 증차하겠다는 것은 불과 3개월 만에 정부 결정을 스스로 뒤엎은 꼴”이라고 말했다.
5년 뒤 대혼란 발생할 가능성 높아
정부는 공번호판 중 12톤 대형 미만의 3,000대를 우선적으로 자가용 택배기사 차량으로 충당하겠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최근 본지에서 확인한 결과 현재 개설 중인 세부 지침에 이 차량들을 5년 뒤에 기존 톤급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한다는 내용이 포함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만약 이것이 맞을 경우 상황은 더욱 심각해진다. 5년 뒤에는 큰 혼란이 야기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현재 1톤 차량의 시장가격은 1,000만 원 수준인데 반해 12톤 이상은 3,000만 원까지 거래되고 있다. 이처럼 톤수에 따라 최소 3배 차이가 난다. 물류업체들은 현재도 대형차를 구하지 못해 애를 먹고 있다. 1톤 차량을 5년 뒤 대형 차량으로 전환할 수 있다고 가정했을 때 1톤 차량으로 유지하려는 이들은 얼마나 될까. 이에 대해 업계에서는 의문점을 제시한다.
만약 한 택배사가 이번 정책을 통해 12톤 미만의 차량 100대를 공급받은 후 5년 뒤 1톤 차량을 포기하고 대형 번호판으로 변경한다면 이 업체는 번호판 차액으로만 20억 원 가까운 이득을 챙길 수 있다. 상황이 이런데 누가 과연 1톤 번호판을 유지하겠냐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주장이다.
이에 대해 정부 관계자는 “현재 여러 지침을 애매모호한 입장을 표명했다.
반면 한 업계 관계자는 “1톤 차량을 12톤 차량 번호판으로 바꿀 수 있다면 나라도 당장 하겠다”며 “수 천만 원의 차액이 생기는데 안하는 게 바보 아니겠냐”고 말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한 순간 잘못된 정책이 가뜩이나 말 많고 탈 많은 화물운송시장을 나락으로 빠트리고 있는 꼴”이라며 “만약 5년 뒤 너도나도 대형차로 전환한다고 가정했을 때 택배시장을 포함해 물류업계는 큰 혼동에 빠지고 말 것이 자명하다. 그러한 사태가 발생했을 때 과연 누가 책임을 질 수 있단 말인가”라며 한탄했다.
몇 차례 실패로 끝난 용달전환 또 들먹여
일부 업계에서는 이번 국토해양부 정책의 최대 수혜자로 택배업계를 꼽는다.
하지만 택배업계의 불만도 만만치 않다. 몇 차례 실패로 끝난 전례가 있는 용달협회와의 제휴를 해결책이라 또 다시 내놓았기 때문이다.
지난 해 택배업계와 용달업계는 용달차량을 택배차량으로 전환하는 사업을 진행한 바 있다. 그러나 결과는 처참한 실패로 끝났다. 이런데도 또 다시 용달업계와의 손잡으라고 하자 택배업계는 정부의 발상 자체를 이해하기 힘들다고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택배업계 관계자들은 이번 정책이 1월 29일 국회 최규성 의원 사무실에서 열린 회의 후 TFT를 구성, 단 5차례 미팅 만에 만들어진 자료일 뿐 과거 여러 자료들은 전혀 참조되지 않았다며 업계를 위한 정책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택배업계에서는 이번 정부 정책이 용달업계 달래기이자 탁상공론에 불과하다는 비난의 목소리가 크다.
현재 1톤 차 번호판 가격은 시장 내에서 1,000만 원에 가깝게 거래되고 있는데 700만 원에 판매하라고 하면 용달사업자 중 팔 사람이 과연 누가 있겠냐는 것으로 현실과는 전혀 동떨어진 정책에 불과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택배업계 한 관계자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마련되지 않는 한 이는 어디까지 궁여지책에 불과할 뿐”이라며 “택배산업 만을 위한 법 개정이 마련돼지 않고선 어떤 방안이 나와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말했다.
[Box] 정부 발표 내용 원문
국토해양부(장관 정종환)는 2005년 이후 심화되고 있는 택배 등 일부 사업용 화물차량부족 해소를 위해 용달사업자와 택배기사간의 양도·양수를 통해 용달차량을 택배로 대규모 전환하고 동시에 공번호판(T/E: Table of Equipment)도 충당하여 부족한 차량의 공급을 늘릴 계획이라고 5일 밝혔다.
‘공번호판’은 2004년「화물자동차운수사업법」개정에 따라, 지입차주가 운송사와 지입계약 해지 후 신규 사업허가를 취득하고, 당해 운송사의 허가대수(T/E)는 차량이 충당되지 않은 공 T/E로 존재하는 번호판을 말하며, 국토부는 현재 약 7천대의 공T/E가 존재하는 것으로 집계하고 있다,
특히, 국토해양부는 이번에 추진하는 사업이 물류기업의 애로를 해소함으로써 화물운송시장을 안정시키고 영세 자가용 택배기사가 안정적으로 영업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는 서민 친화적 정책이라는데 큰 의미를 두고 있다.
그 동안 화물운송시장은 2004년 4월 등록제에서 허가제 전환 이후, 2010년까지 신규허가를 제한함에 따라 화물 차량의 공급과잉은 2006년 2만 9천대에서 2009년 5천대로 크게 감소하였으나 물량이 증가중인 택배분야에서는 집·배송 차량 확보가 곤란하여 전체 택배차량의 30%인 1만 여대가 자가용 차량을 이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일부 물류기업은 영업용차량의 높은 프리미엄(1~3천만 원)으로 대형(12톤 이상) 차량 확보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등 화물운송 시장에서 부분적으로 영업 차량부족 문제가 제기되어 왔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토해양부는 선별적으로 사업용 차량이 공급되고 자가용 택배기사의 근로여건 향상을 위해 아래와 같이 대책을 마련·추진키로 하였다.
① 용달차량의 택배로의 적극적 양도·양수 추진
- 택배와 용달사업에 동일규모의 차량(1톤이하)이 사용되나 용달사업은 택배와 달리 물량감소 등으로 공급과잉으로 파악됨에 따라 유휴 용달차량이 택배업에 활용 될 수 있도록 용달차주(양도자)·자가용 택배기사(양수자)간의 대규모 사업권매매가 이루어지도록 거래의 장을 마련 한다.
- 원활한 사업추진을 위해 한국교통연구원이 적정 양도·양수가격을 산정(7백만 원) 하고 전국용달화물자동차운송 사업연합회(회장 박종수)와 한국통합물류협회(회장 석태수) 주관으로 양도·양수 신청자를 모집하여 계약 체결할 계획이다.
- 국토해양부는 자가용 택배기사의 사업자 전환에 따르는 비용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 용달 차량 구매 비용을 연리 2%에 5년 이내 상환 조건으로 융자 받을 수 있도록 미소 금융과 연결하고 이자는 국고에서 지원한다.
* 5년 상환시 이자부담액 : 36만원 (양도가격 700만원 기준)
* 원금은 영업용 전환에 따라 지급되는 유가보조금(월 10여만원)으로 상환 보조 가능
② 사업용 공번호판(T/E) 충당
- 2005년~2010년간 지입 화물차주가 신규 운송사업 허가를 받으면서 발생한 기존 운송사업자의 공번호판을 택배분야와 물류기업에 공급되도록 추진 한다.
- 공번호판의 당초 차량 적재량이 12톤 대형 미만(3천여대)인 경우에는 자가용 택배기사 차량으로 충당하고 12톤 이상은 당초 적재량으로 연간 50%씩 연차적으로 충당한 후 양도·양수 조정 등을 통해 차량이 필요한 우수 물류 기업(인증업체 등)에게 공급되도록 유도할 계획이다.
국토해양부 관계자는 “효과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전국화물자동차운송사업연합회(회장 김옥상)·전국용달화물자동차운송사업연합회(회장 박종수)·한국통합물류협회(회장 석태수)간에 MOU를 체결(4월 7일)토록 하고 원활한 금융지원을 위해 국토해양부와 우리미소금융재단이 MOU를 체결 할 계획(4월 18일)”이라며 금번 대책이 “친서민과 기업애로 해소정책의 일환으로 추진되는 만큼 어려운 여건에서 근무하는 자가용 택배기사의 지위 개선과 택배 등 부족 화물차량 공급에 도움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