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의 구성 요소
구인환, 구창환
수필은 자유로운 마음의 산책이며 모든 것을 담을수 있는 용기라 하지만 한편의 수필을 이루기 위해선 여러가지 구성요소가 있어야 한다. 흔히 3요소라 하여 주제·구성·문체를 들고, 4요소라 하여 제재·구성·문체·주제를 들기도 한다. 이러한 요소들이 모여서 일정한 형태에 담아 미적 구성에 의한 표현을 할때 한편의 수필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1. 제재
(1) 제재의 개념
제재는 일정한 주제를 나타내기 위한 재료, 즉 주제를 나타내기 위해서 선택한 소재를 말한다. 말하자면 작가가 주제를 나타내려는 의도에의해서 많은 소재중에서 선택한 재료를 말한다. 따라서 우주의 삼라만상은 다 소재인 동시에 작가에 의해서 선택되어져 작품의 내용이 되어질때는 제재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소재가 다 제재가 될수는 없다. 흩어져 있는 무한한 소재 중에서 주제적 의도에 의해서 선택되어질 때 비로소 제재가 될 수 있다. 그러기에 소재가 자연적인데 반하여 제재는 의도적이라고 할수 있다. 그러므로 제재는 주제적인 동기에서 선택되어진 작품의 재료이다. 작품의 재료가 되는 모든 것을 소재라고 하는 경우가 많으나 그것은 제재와 혼동해서 쓰는데서 결과된 오류다. 소재는 주제적인 의도에 의해서 선택되기만 하면 제재가 될수 있는 우주의 삼라만상의 전부를 말하는것이요, 제재는 작가에 의해서 선택되어진 소재를 말하는 것이다. 소재에 주제적 의도가 가해질때 제재로 선택되어진다고 할것이다. 그러므로 소재가 훨씬 광범위하고, 제재는 소재보다는 좁은 범위에 드는 의도적인 것이다.
수필을 쓰기 위해선 많고 넓은 소재에서 제재를 선택해야 한다. 이 제재의 선택은 작가의 가장 자유스러우면서도 주제를 나타내기에 가장 알맞고 새로운것이여야 하기때문에 제재의 선택에 제약성이 많다. 여기에 제재의 주관적이면서도 객관적이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작가가 자기의 의도에 의해서 마음대로 택할 수 있는 자유에 제재의 주관적인 면이 있으며 그 시대나 사회에 가장 알맞으며 새로워야 한다는데 제재의 객관적인 제약이 있게 된다. 수필의 제재는 넓고 무한하다. 삼라만상은 물론이요, 인생이나 사회의 모든것이 다 수필의 제재가 될수 있다. ‘지성을 기반으로 한 정서적 ·신비적 이미지’를 이루는 모든것이 다 수필의 제재가 될수 있는데 수필의 무한한 영역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인생이나 자연은 물론이요, 동·식물 등 무엇이든 주제의식에 의해서 선택되어지기만 하면, 다 수필의 제재가 될수 있다. 이양하[수필가·영문학자(1904~1963)]의 「나무」나「무궁화」, 밀른[영국의 극작가·아동 문학가·소설가(1882~1956)]의 「과일론」은 식물들이 그 제재요, 파브르[프랑스의 곤충학자(1823~1915)]의 「곤충기」, 이효석[소설가(1907~1942). 호는 가산(可山)]의 「가을과 산양」은 동물이 그 제재이며, 피천득의 「금반지」나 양주동[시인·국문학자(1903~1977). 호는 무애(无涯)]의 「웃음설」,이희승[국어학자·시인(1896~1989). 호는 일석(一石)]의 「딸각발이」는 인사가 그 제재다. 또한 나도향[소설가(1902~1926). 본명은 경손(慶孫). 필명은 빈(彬)]의 「그믐달」이나 김동리의 「만월」은 천체가 그 제재요. 베이컨[영국의 철학자·정치가(1561~1626)]의 「학문」이나 김진섭[수필가·독문학자(1906~?). 호는 청천(聽川)]의 「창」,「생활인의 철학」은 인간의 사유가 그 제재다. 이와 같이 수필의 제재는 주제의식에 의해 선택된 소재면 무엇이든지 다 될수 있는 것이다.
(2) 제재의 종류
수필의 제재는 그 성격이나 내용에 따라 여러가지로 나누어 볼수 있다.우선 내용에 따라서 보면 ,①인생사, ②자연(천체,충경 등), ③동식물, ④사유의 대상으로 나누어 볼수 있다.
또한 그 성격으로 보면, 계시적 제재와 동시적 제재로 나누어 볼수 있다.
가. 계시적 제재- 주로 시간적 순서에 따라 전개되는 제재를 말한다. 어느 사건이나 여행·행사·약속 등은 주로 시간적인 순서에 따라 전개되는 제재들이다. 이러한 계시적 제재는 플롯에 의한 사건의 진행은 아니지만, 시간적 순서에 따라 전개되기때문에 흥미를 줄뿐만아니라 수용하여 마음이 움직이기 쉽다. 정지된 사유의 앙금이나 반추가 아니기땜누에 제재와 일치되어 사색이나 정서가 움직여 가서, 서술이나 묘사의 다양을 기할수 있다. 이은상의 「피어린 육백리」나 주요섭의 「사대륙횡단기」, 피천득의 「금반지」등이 다 계시적 제재에 의해서 씌여진 수필들이다.
나. 동시적 제재- 주로 공간성을 띄는 제재를 말한다. 자연이나 사회의 공간적 상황, 다시 말하면 자연풍경이나 클럽이나 단체의 활동상황, 정서나 지성의 촉수에 따라 포착되는 대상이 이 동시적 제재라 할수 있다. 계시적 제재가 동적인데 비해서 이 동시적 제재는 정적이라고 볼수 있다. 이러한 정적 표현을 할수 있는 동시적 제재는 통찰과 달관의 대상이 될수도 있다. 김진섭의 「주부송」이나 베이컨의 「학문」, 이양하의 「나무」와 같은 수필이 이 계시적 제재로 된것이다.
이러한 수필의 제재의 선택은 ①새로우면서도 평범한것, ②넓고 풍부하며 다양한것, ③독자의 공감을 살수 있는 것, ③주제를 담기에 알맞은것만을 취사선택해야 한다.
2. 구성
(1)구성의 개념
다른 문학작품이 그렇듯이 수필은 주제의식에 의해서 선택된 제재만으로 작품이 되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것을 형상화시키는 구성에 의해서 표현되어야 한다.
구성은 구조, 플롯,형태 등 여러가지 의미로 쓰이는 말이지만, 그것은 주제를 나타내기에 알맞게 제재를 배열하는 기법을 말한다. 그것은 허드슨이 말하는 문학의 사대요소가운데서 그 네번째인 <기법적 요소 또는 작법과 문체의 요소>에서 기법적 요소에 해당하는 것으로 작품의 구조적인 면을 말한다. 아무리 무한하고 광범위한 수필의 제재라고 해도 구성에 의한 형태에 의하지 않고는 주제를 예술화시킬수는 없다. 이 구성적인 기법은 문체와 더불어 문학의 본질적 요건, 즉 내적 조건이기땜누에 더 중요시 되어진다. 제재는 문학으로서의 형태를 갖출때 비로소 작품이 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수필은 제재가 수필의 형태를 갖출때 비로소 작품이 되는 것이다. 제재에 깃든 사상이나 시대성, 또는 인생관과 같은 문학의 비본질적인 요소인 외적 조건은 구성에 의한 형태나. 표현기법에 의한 문체와 같은 문학의 본질적인 요소인 내적 조건에 의해서 형상화 되더지는 것이다. 작가의 사유에 수용되는 모든 제재는 이 예술적인 구조에 의해서 비로소 그 생명을 가지게 된다.
구성은 선택된 제재를 주제로 나타내기에 가장 알맞게 배열하고 결합시키는 작업이다. 말하자면 제재를 유기적으로 조직하는 기법이라 할수 있다. 이것은 건축에 비하면, 제재는 건축에 사용되는 철근이나 시멘트·목재 등 모든 재료를 말하는 것이요, 구성은 이것을 어떻게 사용하여건물을 지을까 하는 설계도라고 할수 있다. 그러나 구성이 제재를 배열하는 설계도라고 해서, 그대로 배열만 해서도 안된다. 그것은 주제를 나타내는데 가장 알맞으며 생동하게 배열되어야 하는 것이다. 여기에 문학은 내용과 형식이 일치하는 데서만 가능함을 알수 있다.
이러한 구성적 기법에 대해서 김요섭(아동문학사상)은 「문학기술」에서, 기술면에서 조금도 나무랄 데가 없는 마치 문학기사가 조립한 듯한 작품을 이따금 대할 때가 있다. 그러나 그러한 작품에서 조금도 생명감을 느낄수 없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우리들은 그러한 문학을 장인문학이라 한다. 힘을 덜 들이고 효과를 많이 올리고자 하는 속인의 처세주의와 같은 요령주의의 문학이 있기도 하다. 그렇다고 기법이 합하면 내용이 되어진다고 문학기술을 가볍게 생각할 수 없다. 언제나 유동적이고 광막한 언어세계속에서 작업해야 할 시인이나 작가가 진실이나 정열 하나만을 믿고 일할 수 없다.
시인이나 작가에게 있어서 언어세계는 하나의 혼동과 같기도 하다. 그러기때문에 내용은 언제나 기술을 부정하고 깨뜨리려고 하고, 또한 기술 역시 내용을 부정·억제하면서 자기 손에 휘어잡으려고 한다. 이들은 부정·초극하려는 관계를 가지고 있다. 만일 이 관계속에서 합일된 문학기술을 작가가 획득하여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1회적인것이다. 우리들은 문학기술의 획득에 노력하되 그 기술은 손에 익혀지면 즉각 폐기할 용기가 있어야 할것이다.
고 말하고 있다.
여기에서 “기술이 손에 익혀지면 폐기할 용기가 있어야 할것이다”라는 말은 기법이 기법대로 유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기법을 초극해야 된다는 말이다. 제재가 구성적 기법과 융합되여 주제를 나타낼 때 그 작품은 예술적인 수필이 될것이다.
그러므로 구성은 첫째로 유기적 제재의 알맞은 배열이요, 둘째로 주제를 구현하기 위한 기법이고, 셋째 수필의 예술미를 형성해 주는 것이라고 할수 있다. 여기에서 수필의 구성은 무엇보다 수필의 주제를 효과적으로 나타낼수 있게 짜여져야 하며 전체적으로 통일성 있게 유기적으로 짜여져야 할것이다.
(2)구성의 종류
수필의 구성은 단순하기도 복잡하기도 하여 다양한 양상을 띤다. 그것은 수필이 삼라만상과 사유의 모든것을 제재로 하는 형식이 자유로운 문학이기때문이다.
수필의 구성은 여러가지로 나누어진다. 그것은 단순구성, 복합구성, 산만구성, 긴축구성의 네가지로 나누어 볼수 있다.
가. 단순 구성—단순구성은 한가지의 이야기로 단순하게 전개하는 구성을 말한다. 어떤 사실이나 사건이 복잡하게 복합되지 않고 단일하게진행하는 구성이다. 무리하지 않고 산만하지 않게 구성하여 주제를 선명하게 나타내는 이점이 있으나, 잘못하면 단조로운 구성이 되어 예쑬적 구조미가 흐려질 염려가 있다. 따라서 피천득의「금반지」나 김진섭의「모송론」과 같은 수필은 단순구성으로 되어 통일된 인상을 주고 주제가 명백히 나타나 문학적인 수필을 이루고 있다. 대개의 수필이 단순구성으로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나. 복합 구성- 복합구성은 두개 이상의 이야기나 줄거리를 합쳐서 복잡하게 구성되는 것을 말한다. 복합구성은 대개의 경우, 주된 제재의 배열과 동시에 거기에 따라 다른 제재가 배합되는 경우가 있고, 대등한 제재 몇가지가 나열되는 경우가 있다. 이 복합구성은 이희승의 「청추수제」에서 볼수 있듯이 버러지·달·이슬·창공·독서와 같은 대등한 제재가 병렬적으로 나열되어. 인상을 흐리게 할 염려가 있으나 건축적인 예술미를 효과적으로 구조할수 있다. 그러나 3천자 내외의 수필에서 이러한 복합구성에 의할 경우 주마간산격으로 제재의 겉만 보이게 되어, 통찰하고 달관한 깊이 있는 내용을펴현하기에 알맞지 않을 경우가 많다.
다. 산만 구성- 산만구성은 일정한 통일된 계획이 없이 산만하게 써가는 구성법이다. 이 산만구성은 붓가는 대로 써내려가 겉으로 보기에는 산만하여 무질서한듯이 보이면서도 전체로서 조화되고 통일된 예쑬미를 갖추게 하여, 주제를 선명하게 나타내는 방법이다.
피천득의 「수필」이나 「내가 좋아하는 생활」과 같은 수필은 산만하게 짜여지면서도, 통일된 인상을 주고 있다. 거기에는 지성에 바탕을 둔 서정적·신비적 이미지가 있고 유머와 위트가 넘치고 있는 것이다. 날카로운 비평정신에 유머와 위트가 넘쳐 흐를때 이러한 산만구성이 수필의 문학적인 운치를 더 할수도 있는 것이다.
라. 긴축 구성-긴축구성은 유기적인 관계로 짜여진 구성을 말한다. 긴축구성은 서두부터 끝까지 빈틈없이 유기적인 연결을 맺어 질서정연하게 전개되어 예술적 구조미를 나타낸다. 지나치게 판에 박은듯한 기계적인 구성이 되기 쉬우나 산만하지 않고 통일된 인상을 주며, 주제를 가장 뚜렷하게 나타낼수 있는 구성법이기도 하다.
이러한 긴축구성은 건조무미하여 정서에 바탕을 둔 감미로움이 결여되기 쉬워,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설명문과 혼동될 우려가 있다. 김진섭의「창」이나 「생활인의 철학」과 같은 수필이 긴축구성에 의한 것으로, 포말 엣세이가 이러한 구성에 의하게 된다. 이 긴축구성은 너무 구성에만 얽매이지 않고 정서적 ·신비적인 무드를 상실하지 않을 때 문학적인 미로 감싸진 수필이 될수 있다. 이러한 수필의 구성은 그 제재나 주제에 알맞게 쓰여져 주제를 가장 에술적으로 표현한 문학적인 수필을 이루는 것이다.
3. 문체
수필을 이루는 요소중에서 문체는 주제의식에 의해서 선택된 제재를 구성적 기법을 형상화해서 표현하는 것이다. 주제의식에 의한 제재의 예술적 구조도 표현에 의해 문체로 정착되서야 비로소 작품이 되기때문이다.
(1) 개인적 표현의 특이성
문체는 개성적인 표현의 특이성을 말한다. 같은 대상을 묘사하거나. 서술하더라도 작가에 따라 다를수 밖에 없다. 그것은 작가마다의 개성이나 인격이 다르고 생활감정이 다르기때문에 이러한 내적인 문체인자들이 그때의 언어나 습관 등의 외적인 문체인자와 겹합하여 다른 표현을 하게 된다. 김진섭의 수필과 이양하의 그것의 차이는 김진섭이 지성에 의하여 대상을 관객적으로 귀납하고 이양하가 정서를 기반으로 하여 대상을 직관하는 차이도 있겠으나, 그것을 어떻게 표현하느냐 하는 문체적인 차이에서 오는 결과가 더 심할것이다.
(2) 수필의 문체
그러면 여기 수필 두편을 읽어 문체의 인상을 살펴보자.
이러한 정도의 ‘웃은 죄’라면 참으로 달가운 오해요, 간주이겠지마는 나는 전술한 바와 같은 쾌활·솔직·자연스러운 당당한 남성적 웃음임에 불구하고 생애 여러 번 남에게 죄를 당한 적이 있으니, 억울하기 짝이 없다. 그런 얄궂은 경험은 내 기억에 의하면 무릇 다음과 같은 세 번의 케이스가 있다.
첫 번 일은 어려서 시골서 어느 상가에 갔더니, 상주가 스틱을 양손에 맞쥐고 서서 소위 곡을 하는데, 그 ‘아이고, 아이고’소리가 울음이 아니라, 단조로운 베이스의 유장한 노래였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사람들에게 조상을 받으며 한편으로는 부의금 수입 상황을 집사자에게 물어보며, 또 가인들에게 잔일 기타 무엇을 지휘하며 그러다가 문득 생각이 나면 ‘아이고 아이고’, 끝날줄 모르는 경음악이다. 내가 하도 우스워서 그야말로 나도 모르게 만당의 조객이 모두 침통한 얼굴로 묵묵히 앉아있는 중에 돌연히 「하하하하」한자로 번역하면 「가가대소」를 그대로 발한 것이다. 그래 동리 늙은이에게 단단히 꾸중을 듣고 자리를 쫓겨나와 두시산에 올라 또 한바탕 남은 웃음을 실컷 웃은 기억이 있다. 뒤에 문학서를 보다가 중국 진대에도 능적·계강 등 이른바 청담자류들의 이 비슷한 언동을 한 것을 알았고 그 사상이 멀리 노장에 연원됨과 그들과 내가 공자의 이른바 광견의 무리에 속함을 알았다.
-양주동「웃음설」에서
십년 근속 기념품으로 금반지를 받았다. 좀 작으나 모양이 이쁘다. 나는 예전에 반지를 두 개 산 일이 있다. 하나는 백금에 진주를 물린 아름다운 반지로 약혼 선물로 산 것이요, 또 하나는 결혼식 때 쓰느라고 산 금반지다. 그런데 백금반지는 일정 말년 백금 헌납 강조 주간에 아니 내어놓으면 큰 벌을 받을까봐 진고개 어떤 상점에 팔아버렸다. 팔러 가게 될 때까지에는 고민이 있었다. 그래서 ‘ 진주반지를 끼면 눈물이 많다’는 말을 누구에게서 들은 것 같이 생각하여 보았다. 결혼반지가 중하지 약혼반지는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라고 중얼거리기도 하였다. 백금 값이 폭등하였으므로 지금 파는 것이 경제적으로는 이익이라고 집사람을 달래기도 하였다. 그리고 그 판돈으로 야미쌀을 사먹자고 꼬였다.
결혼반지를 가지고 귀금속 상점을 드나들게 된 것은 부산 피난 가서 생긴 일이다. 마음 단단히 먹고 닷 돈 중 금반지를 두 돈 중 금반지로 바꾸었다. 닷 돈은 끼기에 너무 무겁지 않았던가? 내외간의 사랑은 결혼반지의 무게와 정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이런 생각을 한 것이다.
몇 달 후 나는 또 광복동 금은상을 드나들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이번에는 두 돈중 금반지를 두 돈중 은반지로 바꾸었다. 십오 년이나 갖은 고생을 같이한 조강지처의 사랑이 반지의 빛깔이나. 그 물질적 가치로 좌우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굳은 신념을 가지고 이 교환을 감행하였던 것이다. 그 후 언젠가 그 반지가 반주거리에서 굴러져 다니는 것을 본 일이 있다.
나에게 세 가지 기쁨이 있다. 첫째는 ‘천하의 영재’에게 학문을 이야기하는 기쁨이요, 둘째는 젊은이들과 같이 즐기므로 늙지 않는 기쁨이요, 셋째는 거짓말을 많이 아니하고도 살아나갈 수 있는 기쁨이다. 이런 행복한 생활을 해오기에는 내조의 공이 큰바 있다. 만약에 불행히 그가 사교성이 있는 여자였더라면 나는 아마도 대관이 되었을 것이요, 화려한 생활이 어떤것인지 아는 영민한 여성이었더라면 내가 영어로 편지도 잘 쓰는 터이니 지금쯤 큰 무역상이 되었을것이다. 십년이라는 긴긴 세월을 더구나 한곳에서 훈장 노릇은 못하였을 것이다. 이번에 금반지를 타게 된 것이 어찌 오로지 부덕의 힘이 아니랴. 이 반지는 우리 집 사람이 결혼반지 삼아 끼고 다녀도 좋을 것이다.
-피천득,「금반지」에서
「웃음 설」은 양주동의 유머와 위트가 서린 굵직하고도 엉크러진 문체요, 「금반지」는 피천득의 섬세하고도 간결한 문체이다. 이 두 수필을 보면, 두 분의 체취와 개성이 그대로 드러나 있어. 직접 말을 듣는 듯한 인상이다. 두 분의 개성이나 성격의 차이가 그 근저에 흘러 서술적이면서 폭포와 같이 박력 있는「웃음 설」의 문체를, 계시적인 제재를 감각적으로 표현한「금반지」의 문체를 이룬 것이다.
그러므로 문체는 작가의 생생한 입김이 서리고 체취가 풍긴다. 조잡하고 메마른 마음속에, 카타르시스를 안겨 줄 현실의 문학적인 미화가 이 문체에 의해서 전달되는 것이다.
문체 그 것은 문학의 조소요, 형태이며, 주제의 형상화이다.
수필의 문체는 소설의 경우와 같이 서술, 묘사, 대화 등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수필은 ①개성적으로 표현할것, ②품위있게 표현할것. ③미사여구를 쓰지 말것, ④박진한 표현을 할것 등에 유의하여 제재를 주제화하는데 알맞은 문체를 이루어야 할것이다.
4. 주제
주제는 수필을 구체적으로 나타내려는 중심사상이요, 핵심적 의미다. 주제는 제재를 구성적 기법에 의하여 예술화 하여 문체로 정착시켜 나타내려는 제재에 대한 작가의 해석이고, 가치평가이며, 의미부여라고 말할수 있다. 따라서 제재나 구성·문체 등은 주제를 나타내기 위한 요소에 불과하다. 만일 중심되는 사상이 깔려 있지 않은 수필이 있다면 그것이 아무리 재미있고 즐거움을 주는 작품이라고 해도 그 작품은 문학작품으로서의 가치를 상실한 얘기가 되고 말것이다.
그러므로 수필의 주제는 ①되도록 한정되어야 한다. ②관심을 가지고 능히 처리할수 있는 것이여야 한다. ③제재를 구할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등에 유의해서 정해야 한다.
여기서 주의할 일은 작품의 내용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주제를 나타내기 위한 수단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극적으로 구성된 얘기나, 관찰이나 서술은 씨〔종자〕를 남기기 위해서 보기 좋고 맛있는 과육으로 싸여져 있는 과실과 같이 주제를 나타내기 위해서 예술적인 구조와 표현으로 형상화한데 지나지 않는다.
첫댓글 자료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