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하릴없이 남을 미워하는가! 이유는 무엇인가? 증오의 권리는 누가 가지고 있는 것일까? 그를 대신할 세계적인 K경영자는 누구인가?
"아버님 친구분의 추도사 가운데 승어부(勝於父)라는 말이 강하게 맴돌았습니다. 아버지를 능가하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효도라는 말이었습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승어부(勝於父)'는 아비보다 뛰어난 자식을 가리키는 말이다. 본인이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라 제삼자가 칭찬으로 해주어야 하는 멋진 말이다. 제자가 스승보다 나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청출어람(靑出於藍)'과 같은 맥락이다. 이재용 회장이 세상으로부터 듣기를 원하는 소박한 소원은 오로지 이것뿐이었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난 그가 승어부(勝於父)가 아니라 세계를 넘어선 승부사(勝負士)가 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모든 것을 다 가진 자, 설명이 필요 없는 자이다. 물론 나 또한 내 이름으로 나를 말하고 싶은 자이지 누군가를 안다는 이유로 나를 세상에 알리고자 하는 자는 아니다. 그가 받고 싶어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적확하게 예측할 수 있었다. 그는 넘어서야 하는 아버지라는 거대한 암벽을 가진 "프리 솔로"이다. 자신의 지위를 남용하지 않고 아버지의 명예와 업적을 능가하기 위해 홀로 싸워야 하는 운명을 가지고 태어난 자이다. 업(카르마)을 벗어나려 하지 않고 스스로를 던진다.
내가 이 회장을 숭상함은 그가 부자여서도 잘생기고 키가 크고 멋진 몸매를 소유해서도 온화한 인품과 최고의 지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도 아니다. 그는 세상의 소리들을 받아들이고 암흑의 시간을 잘 버텨온 견자(狷者)이고 난 그를 바라보고 삶을 배우는 견습생(見習生)이기 때문이다. 위대한 후계자는 좋은 품성을 타고 태어나서 오랜 시간 억센 수업을 통해 아슬아슬하게 만들어지는 것이다.
지나간 이지러진 달의 정권에 참으로 많은 것을 잃었고 고통스러웠지만 잘 견뎌냈다. 누군가에겐 광인의 소리로 들리겠지만 그가 내 견딤의 이유이기도 했다. 타인의 고통이 위로가 된다는 생각이 아니라 그도 견디는데 나쯤이야 하는 생각이었다. 급성 충수염의 극한의 고통에서도 특별 대우받기 싫어 참았던 그의 모습이 나를 반성하게 했다. 나 또한 지인 찬스나 돈으로 빨리 끝낼 수 있었던 아주 쉬운 싸움들을 누군가의 인생을 짓밟고 싶지 않아서 형사소송을 하지 않았다. 지인들에게도 숙제를 주고 싶지 않아서 홀로 감내했다.
피가 끓고 뼈가 타는 많은 밤들을 이를 갈며 보냈다. 끈적이고 검붉은 피는 심장이 아니라 뼈 안에서 만들어진다. 골수를 파고드는 아픔을 이재용 회장은 묵묵히 견디었다. 내 삶의 롤 모델이자 나와 같은 고통을 오롯이 홀로 겪은 자이다. 나만의 망상이라 생각하고 정중하게 비난의 댓글이나 힐난은 자제해 주시길! 생각보다 더 빨리 자신이 던진 비난은 자신에게로 돌아가게 되어있다. 우주의 법칙이다.
요즘 나에게 새로운 놀이가 생겼다 외국인들이 만든 유튜브에 영어로 댓글을 다는 것이다. 칭찬이나 감동의 글을 보내면 반드시 아름다운 하트와 답장을 먼 남미에서도 보내준다. 수천 개의 댓글을 보면서 느낀다. 누군가를 비꼬거나 질책하거나 시비 거는 이가 없다. 우리는 왜 꼬여 있는가? 우리나라에선 칭찬을 해도 욕을 먹는다. 우리도 이제 아름답고 성숙한 마인드를 가진 예의 바른 디지털 시민이 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칭찬과 응원의 댓글이 아니라면 달지 말아야 한다. 차라리 침묵하라!
한번 피해자는 영원한 피해자이고 돈이 많을수록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사실은 더 큰 고통일 뿐이다. 삼성을 미워하는 자들도 좋아하는 자들도 많을 것이다. 삼성전자 주주 수는 2022년 말 기준 대략 600만 명이다. 그가 엄청난 위력을 가지고 있음을 실감한다.
난 삼성전자의 주식은 없고 알리바바의 주식을 가지고 있다. 억울하게 생긴 마윈의 망함이 나에게 부메랑처럼 날아왔다. 주가가 반의반 토막이 났다.(아! 망할 시진핑의 면상을 이중 발차기로 날려 버리고 싶다.) 분명한 건 우리도 반면교사(反面敎師) 해야 할 것이다. 그만큼 정치가와 기업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세상이 혼돈스럽고 정신에 혼동이 생길 것 같은 현실이다. 이제 우리는 한 외로운 기업가를 응원해야 한다. 내가 재벌 회장을 걱정함은 우리 모두가 상호 연관된 삶을 살 수밖에 없는 운명이기 때문이다.
이재용 회장을 내가 직접 보거나 만나거나 그의 혜택을 받을 일은 없을 것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가장 사랑한 벨베데레 아폴론(기원전 330년쯤) 조각상을 우연히 감상한듯한 느낌으로 그냥 일생에 한 번쯤 스쳐가거나 미디어를 통해 바라볼 수는 있을 것이다. 그 깊은 마음을 웅숭깊게 들여다볼 수도 없을 것이다. 내가 그려보는 대한민국의 위대한 한 남자의 치열했던 여정과 나의 지난하고도 고통스러웠던 일상을 그를 통해 위로받았던 찌질한 내 과거를 솔직하게 고백한다.
오늘 정신과에서 "망상증 환자"라는 진단을 받았다.
"왜 정신과에 오셨습니까? 젊은 의사가 물었다.
"코로나 때 여기저기 고발당했고 수많은 사람들의 손가락질과 심지어 현관에 돌을 던지는 자들도 있었습니다. 아프지도 않고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욕설과 능멸에 폐가 녹아내렸습니다. 이웃 주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수십 명의 기자들이 몰려와 복도 가득 메우고 소란 피우고 갔다고 했습니다. 몰래 이사를 하고 여러 달 동안 집을 비웠습니다. 수백 개의 거짓 뉴스와 저주의 댓글 때문에 빗물이 핏물처럼 보였습니다. 병원에 끌려가 강제 격리를 당하고 생피를 빼앗겼습니다.
먼 이국땅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대사관에 있는 제자가 TV에 나온 우리 집 현관 사진과 호수(106호, 심지어 모자이크 처리도 안 함), 내가 걸어둔" Good Luck"이라는 장식품을 보고 바로 안부 전화(보이스 톡)를 했습니다. 소독약으로 물든 집에 은닉하면서 등 돌린 수많은 사람들에게 창을 던집니다. "
치매가 와서 "보이스 톡"을 사실 "보톡스"라고 말했다.
" 혹시 혼자 오셨나요?"
"아뇨, 남편이랑 같이 왔습니다."
"죄송하지만 밖에서 기다리시고 남편분 좀 불러 주시겠습니까?"
정신과 의사 선생님과 남편의 어색한 면담이 시작되었다.
" 의사 선생님이 무슨 말했어? 마누라 예뻐해 주고 감싸 주라고 했지? 맞지? 맞냐고?"
남편의 답은 상상 밖이었다.
"아내분께서 망상증에 시달리고 있는 것 같다고 하던데!! 그래서 우리 아내는 제정신이고 망상이 아니라 유튜브에 보면 증거들이 아직도 남아있다고 했어! 생각보다 우리 가족이 유명세를 전국에 떨쳤다고 자랑했어!"
다행히도 남편은 정상인으로 참작해 준 것 같다. 당당한 남편 덕분에 망상증 환자라는 지위를 잃었다.
내 연기가 그렇게 리얼했던가? 정신과 의사 선생님을 속일 정도로 대단했던가! 감탄하는 하루이다. 난 정말 망상의 시대를 살아내고 망각의 시간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것인가! 미친 K 광기의 정권이 내 삶을 다 망가뜨렸다. 순식간에 정부가 문을 부수고 들어와 잘 가꾼 내 정원을 박살 내 버렸다. 한바탕의 칼춤이나 살풀이라도 해야 하는 것인지? 난 다시는 잃어버린 나를 찾지 못하리라! 지옥행 열차는 생각보다 빨랐고 난 아직도 하차하지 못했다. 정신분석자인 의사조차도 내 시련을 "망상"으로 정의 내렸다. 우리 가족은 지난 정권에 너무 많이 물고 뜯겼다. 아쉬운 것은 그들은 우리의 고통을 그저 그런 모래바람처럼 쉽게 날려버리고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제 의사가 인증한 K 망상 환자가 되어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 글을 쓴다. 요즘 세상이 많이 바뀌어서 1960~70년대 생들이 대한민국 경제의 중심에 서있다. 소위 젊은 세대들이 말하는 "꼰대" 나 "틀딱"을 가리키는 속어의 상징 인물들이 대한민국을 주도하고 있다. 소비도 경제력도 지금 나와 같은 세대들이 다 이끌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엔 이재용 회장이 있다.
겸손과 예의 바름과 인내의 상징 삼성전자 이재용 회장
<이재용 회장 프로필>
1968년 서울특별시 용산구
1992년 서울대학교 동양사학 학사
2000년 하버드대 경영 대학원 경영학 박사과정 수료
2013년 삼성전자 부회장
2014년 부친 이건희 회장이 쓰러진 이후, 삼성의 실질적인 총수(대한민국 GDP의 23%를 차지하는 기업 삼성의 최고 경영책임자)가 되었다. 부러움의 대상이라기보다는 짊어져야 할 부담이 더 끔찍할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건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세상의 무차별적인 공격에 대항하지 않고 수긍하고 고개 숙일 줄 아는 그가 좋다. 할 말들은 넘치나 입 다물고 조용하게 수용하는 그의 대자대비하심이 존경스럽다. 난 밤마다 복수심에 칼을 간다. 창공에 창처럼 날리는 육두문자들, 차라리 행복한 망상자이고 싶다.
2016년부터 5년 동안 그는 2번 구속, 70차례 넘는 검찰의 수사와 재판을 오롯이 견뎌냈다. 경찰서와 검찰에 간다는 것은 단 한 번도 생각하기 싫다. 출석하기 직전까지 고통이 쓰나미처럼 밀려온다. 경찰서에 한번 출석한 이후, 파란색과 노란색의 로고만 봐도 경기가 나고 경찰차만 봐도 마이클 잭슨의 문워크가 절로 나온다. 두 번째, 세 번째 다시 가도 여전히 적응이 안 되고 공포스럽게 느껴진다.
말수가 적지만 그가 하는 말들은 짧고도 강렬했으며 긴 공방 동안, 진술문은 명문장으로 넘쳤다. 나도 반성문이랑 진술서 쓰다가 늦게서야 재능을 발견했다. 당시 서울 구치소엔 거물들의 행렬이 있었다. 유명한 정치인들이 줄줄이 구속되었다. 힘들다고 징징거리는 사람도 있었고 밥을 남기거나 특식을 신청하는 사람도 있었다.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간을 그는 구치소에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353일 만에 비로소 세상으로 나왔다.
이병철 회장은 1938년 삼성전자의 전신인 삼성물산을 설립했다.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기업의 아버지이다. 과감한 투자와 혁신의 아이콘이다. 수시로 공장을 방문해 직원들과의 소통을 중요시했다. 안전모를 쓰고 있는 그의 모습이 친숙하게 보인다. 그는 아들에게 평생을 함께한 "논어"를 물려주었다.
내가 사랑한 책
이건희 2대 회장은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등 새로운 신사업의 문을 열었다. 새로운 창조자이다. 비전과 전략, 변화의 아이콘이다. 2014년부터 이재용 회장의 시대가 도래했다. 4차 혁명 시대를 이끌어 혁신 기업으로 키웠다. 숨결마다 피를 토하는 시간들을 잘 견뎌왔다. 삼성의 역사와 함께 아버지의 뒤를 이어받았다. 겸손하고 현명하고 상냥함과 지적이고 세련됨까지 잘 배운 자이다.
이재용 삼성그룹 3대 회장(1968. 6. 23~)이다. 신의 실수처럼 그는 완벽한 인간상이다. 세월이 흐르니 그에게서 강인한 정신력과 추진력을 가진 아버지 이건희 회장의 모습이 이제 조금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강철로 된 심장이 아니고서야 견디기 힘든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의 고단한 시간을 돌아보면 눈물이 날 만큼 힘들었던 내 과거가 얼룩진 수묵화처럼 겹쳐서 떠오른다. 화성에서 홀로 버려졌다 한들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기업이란 기여(寄與) 할 기(寄), 일업(業)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나라가 어려울 때 독립 자금을 대주고 다리를 놓아주고 자신들의 업(業 카르마)을 사회에 업(業)으로서 기여하는 것을 의미해야 한다. 삼성이 현재 기업(寄業)의 길을 가고 있다. 재벌이라는 단어보다 난 기업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삶의 중압감, 선택과 책임의 귀로, 빠른 판단력과 리더십은 그룹 회장이 지녀야 할 덕목일 뿐만 아니라 자질이어야 한다. 이재용 회장은 이 모든 것을 다 지니고 있다. 해외의 유명 기업인들을 봐도 그처럼 눈에 확 들어오는 인물은 없다. 더군다나 그는 아름답고 스위트하고 우아한 모습까지 지니고 있다. 배려심과 소년의 미소를 갖고 있다. 유리알처럼 맑은 눈동자는 언제나 촉촉해 보이고 강인해 보이기도 사슴처럼 온순해 보이기도 한다. 달달한 카리스마를 지닌 이 시대 대한민국 기업의 리더 중 최고이다.
사람이 얼마나 인내할 수 있는지 극한의 상황에서도 품격을 잃지 않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물을 짜는 침묵 속의 진지한 어부처럼 오늘도 품격의 한 남자의 이야기를 엮어낸다. 지나간 시간을 경멸하고 설득당하고 싶지 않다. 세상이 천국과 지옥의 이분법으로 나누어진다면 난 어느 쪽으로 향할 것인가? 은행의 금고 속 달러($)를 팔았고 빚을 갚기 위해 아파트를 팔았다. 짓밟히고 망가진 세월 동안 아무 보상도 받지 못했다. 달의 몰락이 오기를 기원하고 있다.
달은 차면 신월(新月) 또는 삭(朔), 합삭(合朔), 월 삭(月朔) 등으로 기울어진다. 밤중에 달이 아예 뜨지 않는 순간이 오기를! 태양이 달을 지워버리기를 기다린다. 물론 다시 달은 뜨겠지만 그달이 그달은 아닐 것이다. 태양은 언제나 한결같다. 그가 경제계의 태양으로 화하길 기대해 본다. 그가 나에게 삶을 가르쳐 준 것은 사실이고 나 또한 그를 위로할 만큼의 피로 쓴 스토리가 있다.
미국 뉴욕 미드타운 맨해튼에 있는 유명한 상업적 교차로에 타임스 스퀘어(영어: Times Square) 광장이 있다. 삶에서 모든 것들이 불투명해 보이고 암울했던 이십 대, 이제야 알게 된 길이 너무 많아 길이 보이지 않았던 그때에 광장에서 배회하고 있었다. 돌아보면 푸른 젊음이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이유 없는 이유로 힘들고 방황했던 시간, 푸른 글씨로 쓰인 익숙한 SAM SUNG이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정말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쌤썽" 이라는 단어에 고국에 대한 그리움과 내 존재가 확연하게 느껴졌다. 난 한국인이다. 세계 속에 서 보면 당신이 누구인지를 더욱 절실하게 알게 된다. I am KOREAN! 죽기 전 나의 유언이자 잃어버릴 수 없는 나의 신분증이다.
타임스퀘어 광장 전광판
당신 자신을 피하려고 해도 범죄자가 되어 쫓겨난 자라고 해도 한국인임을 지울 수는 없다. 이국에서 바라본 삼성의 존재는 나의 그늘막이었다. 삼성이라는 전광판이 주는 감동은 마치 태극기를 들고 아우내장터를 향해 질주하는 기분을 주었다. 김일성의 사망 소식이 들리고 어쩌면 대한민국에 전쟁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요란스러운 뉴스가 미국 전역에 퍼지고 있었던 그 순간, 애국자는 아니지만 나라를 생각하며 뜨거운 눈물을 흘렸던 날, 전광판 속의 삼성이라는 푸른 글씨는 하늘을 나는 청룡처럼 보였다. 세계적인 기업을 가지고 있는 난 자랑스러운 한국인이다.
지난 달의 정권에 코로나로 확진으로 인해 강제 폐업을 당했다. 고발을 당했고 3번을 경찰서에 출석했다. 세 시간씩 조사를 받았다. 이재용 회장도 15시간 조사를 받으면서 그의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간이었다고 고백했다. 돈이 많을수록 돈으로 안 되는 게 있다는 사실에 세상이 경멸스러워지고 더 큰 절망이 다가온다. 그는 그 모든 시간을 충분히 담금질당하고 왔다.
애플 창업주인 고(故) 스티브 잡스가 즐겨 입었던 검은색 터틀넥(목폴라)은 사실 수백 달라($)의 명품이었다. 난 적어도 만 오천 원 이상이 간다면 그런 옷을 사지 않았을 것이다. 일본의 세계적인 패션 디자이너 이세이 미야케가 만든 것이다. 강경 장터에 가니까 똑같은 디자인의 옷들이 넘쳤다. 물론 수천 달라($)의 티셔츠를 입었다 한들 잡스에겐 사치품이 아닐 것이며 누군가에게 잘 보이고 싶은 이유를 가지고 있지 않았을 뿐이다. 어떤 이의 눈치도 보지 않고 자신만의 삶을 충실하게 짧고 굵게 잘 살다 갔다. 잡스는 깡마르고 신경질 적이었으며 오목눈이 뱁새처럼 강렬한 눈을 가지고 있다. 선을 넘는 카리스마로 수많은 직원들을 서슴없이 자르는 행동도 했다.
엘리베이터에서 예리한 질문을 한 뒤, 자신이 원하는 답을 못할 경우 "넌 해고야!"라는 말을 던졌다. 이 회장은 도루코 면도날 같은 스티브 잡스와는 상당히 대조적인 인상이다. 물론 삼성을 싫어하는 자들도 많을 것이다. 자신의 부를 지켜야 하는 자들의 철옹성 같은 벽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이 낳은 위대한 경영인인 이재용 회장을 들이대고 칭찬할 자신이 있다. 완벽한 사람은 없으나 완벽하려고 노력하는 자는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도 나와 같은 힘든 시간을 보낸 마치 학창 시절, 복도에서 홀로 손들고 있을 때 동지가 생긴듯한 느낌을 그로 하여 얻었다. 자신의 지위를 이용하지 않고 하늘을 우러러 할아버지의 명예와 아버지의 업적을 능가하려고 끝없이 노력하는 사람이다.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모범수로 매일 45분씩 운동을 한 성실함의 상징이었다. 1.9평방을 단정하게 정리했다. 그는 불교, 기독교 관련 서적을 가리지 않고 읽었다. 신문도 빠짐없이 읽었다. 불교가 종교인 집안에서 기독교 서적도 읽었다는 사실에 그의 오픈 마인드가 느껴졌다. 가르치려 하지 않아도 깨닫게 만드는 능력이 있다. 그는 감성과 인성 천재임에 틀림없다. 30년 넘게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공부를 넘어선 어떤 한 분야의 영재인 아이들의 한마디가 유독 다가오는 이유도 같다.
그는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인간이었다. 어떤 위대한 철학자보다 내 눈엔 대단해 보였다. 한 사람의 얼굴을 보고 그가 살아온 길을 생각하며 이렇게 가슴 떨리고 설레어 본 적은 처음이다. 첫눈에 반한 사랑의 열정이 그러하듯 그가 거인처럼 느껴지고 내가 한없이 작아지는 순간이다. 아버지가 물려준 삼성을 300배 성장시킨 비밀코드 "이건희 27법칙"이라는 책을 다시 펼쳐 보았다.
내 청춘이 부를 향해 불탔던 욕망을 그를 통해 배웠다. 그의 전화번호나 이메일을 아는 사람은 극 소수이다. 그의 지인들은 그에게 문자를 보내면 새벽에도 반드시 짧은 답이라도 꼭 하는 아주 특별한 사람이라고 이 회장을 칭찬했다. 말을 아낄 줄 알고 말수도 적지만 아버지와는 다른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다.
할아버지의 업을 받은 아버지는 가업을 세계적인 기업으로 키웠고 끝나지 않을 퍼즐 조각을 아버지 없는 세상에서 받아들여야 했던 그의 비운의 시간은 그가 한 사람의 어린 아들이라는 애처로움으로 다가왔다. 그는 시대의 흐름을 잘 읽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유언인 무노조 경영을 폐지했으며 소통을 중요시했다. 아버지의 부재에도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잘 지켰으며 언제나 예의 바르고 친절했다. 이런 면들이 그를 약하게 보이도록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이재용 회장과 나는 같은 시대를 살았다. 난 한 번도 가수나 배우 정치인에게 마음 빼앗겨 본 적이 없다. 그의 얼굴은 보는 이를 행복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아름다운 홍라희 여사의 가장 위대한 작품, 이재용 회장의 스몰토크(Small Talk)에 심쿵한다. 이건희 회장님의 시대엔 우리 모두의 아버지들이 그러했듯이 기쁨, 슬픔, 화남도 근엄한 표정으로 수렴시켜 버리는 얼굴이 멋진 남자상이었다.
우리 시대엔 스위트한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는 그에게 삶을 배운다. 그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대한민국의 영원한 롤 모델 오빠이다. 슬기로운 감옥생활의 시작이었다. 자리를 정돈했고 주변을 언제나 깨끗하게 정리했다. 내가 틀렸거나 꼰대일지 모르지만 뒷정리 잘하는 사람은 언제나 믿고 본다. 최선을 다해 노력해도 안되자 그는 바로 자세를 낮추어 삶을 받아들였다. 감옥에서 좌절하고 잠만 자지 않았다. 수면제 처방을 받지도 않았고 사식을 신청하지도 않았다. 이런 면에서 가식적이거나 위선자여도 노력하는 모습만으로도 그가 좋다.
스페인의 전통 축제의 행사 중 하나인 인간 탑을 만드는 ‘카스텔(Castell)’ 카탈루냐 지방의 마을과 도시에서 열리는 연례 축제 행사 중 하나이다. 인간 탑을 쌓는 데 필요한 지식은 전통적으로 인간 탑 단체 내에서 비공식적으로 세대 간에 전승되어 왔다. 인간 탑을 쌓는 데 필요한 순서와 기술은 낮은 층은 건장한 남성으로 구성하고 높은 층은 어리고 가벼운 소년소녀로 구성된다. ‘폼 데 달 터’라고 하는 인간 탑의 가장 위쪽 세 단계는 어린 소년소녀로 이루어진다.
반면에, ‘피냐’라고 하는 인간 탑의 기초를 지탱하는 부분에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고, 노년층도 참여할 수 있다. 본인이 무너지면 삼성 직원들이 다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는 적응 잘하기, 겸손하기, 재벌 티 안 내기를 실행했다. 그는 학처럼 아름다운 여인 홍라희 여사의 교육을 받은 자이다. 살다 보니 수십만 명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운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행복하기 어려운 인생이다.
난 그 무게를 알지는 못하지만 가늠할 수는 있다. 나도 내 나름의 고통이 그 순간 함께했기 때문이다. 무뚝뚝하고 말없이 명품 만년필로 눈도 안 마주치고 결재서류에 서명만 할 것 같은 그룹 회장님의 전형적인 모습을 그가 지워버렸다. 국민 오빠나 형 같은 사람이다. 그는 배울게 참 많은 사람이다. 성실하고 겸허하고 따듯하고 효자이다.
그가 겪은 고통과 리더로서 감내해야 했던 고통의 시간들과 몸뚱이의 구속은 그에게 어떤 가르침을 주었을까? 감히 상상해 본다. 나도 2주 동안 ㅊ대학 병동실에서 6명의 죄수처럼 환자복 입고 남녀 공용 화장실에서 씻고 쌌다. 화장실 가는 것도 일일이 전화해서 보고했다. 그는 무엇을 했을까? 친절함과 상냥함은 연습하는 게 아니라 타고나는 경우가 많다. 이재용 회장은 모든 것을 다 가지고 태어났다. 완벽한 그에게 있어서 시련의 크기는 그를 더욱 멋진 사람으로 성장시켜 주었다.
모든 특혜를 다 내려놓고 배려하는 모습과 바람이 뒷덜미를 잡는 날도 그는 웃옷을 벗고 달렸다. 우리에겐 석유도 다이아몬드도 나지 않는다. 인적자원을 활용해 무역 중심 국가가 돼야 한다. 오래전 문 닫은 폐교의 운동장 같은 아무것도 없는 유치장 마당을 그는 달리고 또 달렸다. 아마도 오래된 다락방의 고서처럼 먼지 낀 생각이 많아서 털어버리고 싶었을 것이다. 어쩌면 밀려와 뇌를 파먹는 복수심이 자리 잡지 못하게 미친 듯이 달렸을지도 모른다. 난 그의 깊은 마음의 고뇌를 아주 조금은 알 것 같다.
그는 대한민국의 국민이다. 나라는 모든 국민들이 걱정하지 않고 편안하게 사업할 길을 막아서는 안된다. 검찰은 함부로 면죄부를 주면 지배주주들이 거리낌 없이 위법과 편법을 동원할 것이라는 이유였다.
국회의원 전세사기나 재산 축소 신고는 왜 조용히 넘어가며, 이완용의 후손은 왜 부끄러움이나 반성 없이 재산 반환 소송에서 "불법으로 축적한 재산이라도 나라가 함부로 할 수 없다"라는 이유로 승소했다. 당당하게 그는 할아버지 이완용의 재산을 다 돌려받아갔다. 이미 결과를 알고 작정하고 달려들었을 것이다.
뇌물 안 주면 사업 못하게 길 막고, 달라고 해서 주면 법정으로 불려 간다. 미국 정치처럼 로비를 합법으로 바꾸어야 한다. 대한민국은 뇌물을 줄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누구에게 손가락질을 할 것인가? 한 기업가가 말했다. "정치인들과 친하게 지내지 말라! 뒤통수친다."라고! 인생 명언이다. 대한민국 4차 산업의 역사를 다시 쓰고 지난 감옥에서 억울했던 시간이 현자의 시간이 되어 삶의 아름다운 달인이 되어온 그의 모습이 자랑스럽다. 억울하지 않은 인생이 있겠는가? 키 크고 아름다운 한 남자가 외투도 걸치지 않은 채 양복 차림으로 구치소에서 걸어 나온다. 이재용 회장의 모습이다.
현란한 언어의 포장지를 씌우지 않아도 그가 멋진 남자라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다. 그가 삼성가의 후계자가 아니어도 충분히 그의 모든 재능과 자질과 인품은 세상에 드러났을 것이다. 그의 시련을 통해 바라본 그의 민낯은 생경하고도 감탄을 낳았다. 노력과 적극성을 감탄사를 내뿜게 만든다. 인간적으로 멋진 남자 대한민국에 세상에 자랑스럽게 드러낼 인성 천재인 이재용 회장이 있다. 스스로 먼저 손 내밀 줄 알고 먼저 말 걸어주는 사회성을 그에게 배운다.
인격적으로 결함이 많았고 오만했던 스티브 잡스! 그의 옆에선 이재용 회장이 빛나 보였다.
잡스 회장님이 암시하는 것은 난 그 어느 누구의 시선과 상관없이 내 길을 간다는 의미이다. 옷이란 조금 불편해도 타인을 향한 예의인 경우가 많다. 격식에 맞는 의상, 또는 사랑하는 연인에게 잘 보이고 싶은 경우 상당히 신경 쓰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어둠의 거리를 나와 이제 세계 속의 대한민국의 K 회장님을 언젠가 볼 수 있는 기회가 온다면 그 어떤 선물보다 귀한 하루일 것이다.
정치인보다는 난 언제나 경제인 편이다. 잘 먹고 잘 사는 게 가장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정치가 무엇을 일구었는가? 우리 세대가 다음 세대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할아버지가 만든 기업을 아버지가 일구고 아들이 세계 속의 기업으로 만들어 갈 수 있도록 우리는 그를 응원해야 한다. 새로운 삼성을 만들고 아버지를 넘어서겠다는 그의 신념이 현실이 될 수 있도록 응원해야 한다. 가진 자를 이유 없이 미워하고 돈이 많은 자를 시기하는 자들이 넘치는 세상에서 나는 먼저 그를 공부한다. 이병철 회장과 이건희 회장의 책들은 수십 번 읽었다. 미국에 유학 갈 때도 제일 먼저 챙겼다.
누군가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이 글을 쓰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내게 손가락질을 하거나 인정하지 않겠지만 내가 좋아하는 인물이라 글이 술술 잘 써지는 밤이다. "이유 없이 누군가를 미워하지 않기!"가 내 삶의 모토이다. 지난 일그러진 달의 정권 동안 수차례 경찰서를 드나들었으며 지인 변호사 앞에서 서러워서 울었고 울었다는 사실이 창피해서 또 울었다.
우리는 왜 이유 없이 남을 미워하는가! 미워하기 전에 이해하고 아우르는 자이고 싶다. 행여나 이 회장을 만나 누가 더 불운한 시간을 보냈는지에 대해 배틀을 뜬다면 당연히 내가 이길 자신이 있다. 몰락한 달의 정권에서 난 모든 것을 잃었다. 내가 살아온 인생의 거적 같은 이야기가 그를 격하게 위로해 줄 수도 있다고 감히 말해본다.
미국 뉴욕 타임 스퀘어를 걸어간다면, 당신이 외롭고 삶에 지쳐 힘들다면 화려한 전광판과 수많은 빌딩 사이 전 세계에서 가장 비싸다고 하는 전광판에 처음으로 광고를 올린 삼성을 생각하라! 내일의 태양이 오늘을 밀어낼 것이다.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1년 먼저 태어나 죽어라 공부해서 서울대 동양사학과 다니면서 그와 모임을 할 것이다. ( 참고로 그는 재수해서 서울대에 갔다.) 노력하는 수재형 인간이다. 재벌 집 황태자가 동기들 모임과 설악산 여행까지 함께 했다는 것을 모든 것이 다 늦은 이제야 알아 버렸다. 인생에서 그를 조우할 수 있었던 가장 좋은 병기를 나는 과감하게 놓쳐버렸다. 그는 같은 과 동기들과 여행도 갔고 모임도 했다. 형편이 어려운 학우의 수업료를 내주기도 했다. 살면서 이렇게 쉽게 이재용 회장과 친구가 될 수 있는 방법도 있구나! 하는 걸 깨달은 오늘, 술의 맛도 쓰고 인생도 쓰다.
논어를 유산으로 남기는 집안이라면 일단 믿고 본다. 논어는 지식을 자랑하는 것을 가르치는 책이 아니라 사람이 되는 것을 설파하는 공자의 책이기 때문이다. 세월이 흘러도 사람됨을 공부한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이제는 누군가를 들이대고 미워하기 보다는 이해하고 싶고 공부하고 싶고 가르치고 싶은 시간이다. 나보다 어르신이라면 이해하고 나보다 어리다면 깨닫게 해주고 싶다. 삶이 주는 숙성의 시간은 참으로 정직하다. 내가 조금씩 사람됨을 그에게 배우는 시간이다.
새벽 4시에도 문자에 꼭 답장을 하는 그의 아름다운 인성이 존경스럽고 위대해 보인다. 지난 달의 정권 동안 우리는 얼마나 많이 타인에게 손가락질을 했으며 이유 없이 무시했으며 욕설을 퍼부었던가! 알면 알수록 좋아지는 사람이 바로 " 이재용" 회장이다. 재벌 총수가 칭찬받기는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힘들다는 사실을 난 알고 있다. 경제계의 황제가 머리 숙여 사과하기는 쉽지 않다. 언젠가 반드시 그가 승어부(勝於父)라는 말을 대한민국에서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듣기를 간절히 원하는 바이다.
청순하고 아름다운 한 남자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쉽게 써지는 글, 시인 윤동주는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쓰여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라고 말했다. 내가 알지 못하는 사람을 이렇게 쉽게 칭찬할 수 있다는 것이 창피한 오늘이다. 대한민국이 살기 힘든 곳이 되어가는 요즘 그룹 총수의 소박한 소원이 이루어지길 고대해 본다. 그가 바라는 것이 내가 바라는 것이고 난 그에게 아무것도 원하는 것이 없기에 자유로운 밤이다.
내가 이 글을 씀으로써 광고료를 받거나 이익을 얻는 게 없기 때문에 거리낌이 없이 써 내려간다.
광인 돈키호테를 이해하기 시작한 지천명, 연서처럼 써 내려간다. 정치인들이 말을 유독 더듬을 때가 있다. 거짓말을 하거나 본인의 진심과 괴리가 생기는 순간이다. 내가 정말로 좋아해서 한 가족의 일대기를 읽고 또 파헤쳐 보는 밤, 오월의 끝자락인 날에도 난 여전히 스카프를 두르고 난로를 켜고 재채기를 한다. 아직도 진실은 밝혀지지 않았고 내 상처는 여전히 벌어져 있다. 고통의 시간을 함께 함으로써 난 그에게서 삶을 배운다. 진정한 인생의 학습자가 되어 본다.
회장님의 내일은 얼마나 고되고도 힘들까? 오늘 하루, 그가 행복하길 기대해 본다. 국민들이 사랑하고 신뢰하는 기업을 만들고 싶은 그의 꿈이 꼭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모두가 잠든 깊은 밤이다. 대한민국이여! 깨어나기를!
세상의 모든 것들이 공부가 되는 새벽, 진정한 학문이란 삶에 대한 바른 이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