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간화선 수행체계 개관
5. 금수산 영하산방 간화선
앞장에서 살펴본 대로 선도회나 금수산 영하산방 수행체계는 현 일본 임제종 묘심사파의 수행체계와 비슷하고, 묘심사파에서 갈라져 나간 임제종 향악사파向嶽寺派 수행체계와도 닮아 있다. 묘심사에 출가하셨던 종달 노사님에 의해 수행 커리큘럼이 오롯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간화선법이나 수행체계가 묘심사파와 다르지 않다는 것은 이미 앞장에서 논의하였지만, 실재 종달 노사님 입적 후 뒤를 이은 법경 법사는 두 차례에 걸쳐 숭산 스님과 독대하여, 숭산 스님의 화두 경계 또한 임제종 선법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몇 개의 화두 경계는 새롭게 선도회에 추가되기도 하였는데, 먼저 숭산 스님의 선법을 알아보고 선도회의 수행과 어떻게 다른지 간략하게 살펴본다.
1) 숭산의 십문관十門關
현각 스님이 엮은『숭산 대선사의 가르침, 선의 나침반』에 보면, 숭산 스님은 10개의 화두를 제시하고 이를 투과하면 인가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10개의 화두는 ‘십문관十門關’이라고 알려진 화두 점검체계로 단계적으로 공안을 공부하게 한 후 독참(공안 인터뷰)를 통해 점검한 후 인가하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현각은 10개의 공안을 통과하고 나면 마지막 숙제가 주어지고 이를 풀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현각 엮음,『숭산 대선사의 가르침, 선의 나침반 2』 pp. 188~216.) 그럼 십문관은 무엇이고 10개의 화두는 무엇인가?
숭산은 십관문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많은 공안은 아주 비슷하다. 이 모든 공안으로부터 나는 서로 다른 모든 유형을 대표하면서도 독특한 유형을 보여주는 열 개를 간추렸다. 그러므로 십문관은 모든 천7여 공안의 지도와 같다.”
십관문의 각 공안은 다음과 같다.
1. 조주의 개(趙州狗子, 『종용록』 18칙, 『무문관』 1칙),
2. 조주세발(趙州洗鉢, 『종용록』 39칙, 『무문관』 7칙),
3. 암환주인(巖喚主人, 『무문관』 12칙),
4. 달마대사의 수염(胡子無髭, 『무문관』 4칙),
5. 향엄상수(香嚴上樹, 『무문관』 5칙),
6. 부처님 손 위에 담뱃재를 떨어뜨림,
7. 고봉삼관(『선요』),
8. 덕산탁발(德山托鉢, 『무문관』 13칙),
9. 남전참묘(南泉斬猫, 『벽암록』 63칙, 『종용록』 9칙, 『무문관』 14칙),
10.밥그릇이 깨졌다.
(중략)
십관문에서는 전통적인 시중, 본칙, 착어, 평창, 송고 등의 격식이 보이지 않고 몇 개의 점검질문이 공안의 핵심을 차지하고 있는데, 이것은 숭산의 새로운 공안제시법이다. (장은화(동국대 강사),「숭산선(禪)의 공안수행: 한국선의 창의적 재해석」(한국선학회 2015년 춘계학술세미나 | 禪의 대지 위에 영글어가는 온갖 곡식))
10개의 화두는 『무문관』 『벽암록』 등에 등장하는 화두들로 숭산은 이 화두들이 서로 다른 모든 유형의 화두들을 대표하여 이를 투과하면 모든 1,700여개 공안을 투과 한 것과 같다고 하고 있다. 이같이 숭산의 십문관은 기존의 임제종 화두들에서 가려 뽑은 후 조계종 스님들이 새로 도입한 화두를 첨가해 만든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십문관은 숭산 스님이 일본에 머물며 일본 임제종과 교류한 결과로 보이며, 화두의 숫자만 줄였을 뿐 입실전통 및 점검 과정은 일본 임제종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실재 지도과정은 일본 임제종 간화선 수행 과정인 사다리 방식이다. 다만 일본 임제종과 선도회는 몇 배 더 많은 화두를 투과할 뿐이다.
한국 간화선의 이러한 특징이 바로 숭산(崇山, 1927~2004)이 세계에 널리 설립한 관음선종(觀音禪宗)의 가르침과 상당히 다른 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에서 6년여 동안 머물며 일본 임제종 선사들과 폭넓게 교유(交遊)한 숭산은 일본 임제종(Rinzai school)의 영향을 깊이 받았다. 그는 연속적인 10개의 화두를 사용하였는데, 이를 일컬어 십문관(十門關)이라 불렀으며, 제자들을 정기적으로 만나면서 제자들의 수행과정을 점검하였다. (서명원(徐明源) SJ Bernard SENÉCAL『퇴옹성철, 이 뭣고? 가야산 호랑이의 체취를 맡았다』 p. 130.)
이 방식에 대해 그의 제자 무량 스님은 '한국에서는 스승이 화두를 한 번 던져주면 몇 년 동안 그 화두를 붙들고 참구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미국에서는 그렇게 두면 두세 달 만에 나가 버리는 사람들이 대다수'일 것이기 때문에 이를 방지하기 위해 스님이 개발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 실정이니 외국인을 지도하는데 있어 10개보다 많은 화두를 참구하라고 요구하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무량은 이 방식이 '자신이 계속 발전해 나간다는 느낌'을 주어 수행에 효과적이었다는 의견도 피력하였다.
십문관은 ‘공안 인터뷰’라는 단계별 공안의 점검을 통해 이루어지는데, 기존의 ‘입실참문入室慘聞’ 제도를 개선하여 해외 제자들이 쉽고 친근하게 접근하여 수행에 빠져들게 하기 위한 방편方便 이었던 것이다. 점검에는 10개의 화두만을 제시하였지만 숭산이 집대성한 공안집『한 송이 꽃』에는『무문관』에 나오는 화두들과 우리나라에서 태어난 “자생화두自生話頭” 등을 포함해 360여개의 화두를 소개하고 있다. 이 모든 화두들을 어떻게 혹은 어떤 방식으로 점검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결과적으로는 임제종 수행체계를 따르고 있다고 보겠다. 뒤에 언급하겠지만 필자는『한 송이 꽃』에 나오는 질문 또한 수행과정에 포함시켰다.
숭산 스님의 십문관은 일본의 수행체계를 단순화 하였을 뿐 근본적으로는 같다고 할 수 있는데, 입실점검 없이 화두는 하나만 참구해야한다는 한국 조계종의 기본 룰이 일정 부분 수용된 조치라고 할 수 있다. 숭산에게 익숙한 조계종 방식을 바탕으로 일본 임제종 간화선법을 버무린 임제종과 조계종 간화선의 “중간형태”라고 볼 수 있겠다. 일본 임제종 간화선법에 익숙하지 않은 한국의 승려들이나 일반 재가자, 혹은 해외 포교시 외국인 제자들에 맞게 개발한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다.
숭산 스님의 십문관을 연구한 한 학자는 십문관과 임제선 수행체계를 비교하여 '둘 다 단계적으로 공안을 공부하며 또 독참(공안 인터뷰) 전통이 살아있다는 면에서'는 같지만 그 이면을 고찰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였다.(논문에는 십문관을 십관문이라고 쓰고 있다.) '십관문 수행법과 한국의 화두선 수행법을 대비해볼 때, 발표자는 십관문 화두선을 현대적, 창의적으로 재해석한 것이라고 본다. 우선, 화두선이 대혜종고(1089-1163)에 의해 제시된 체계에 의거하고 있다면 숭산선은 한국선의 원류인 육조혜능(638-713)의 사상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다음과 같이 단언한다.
십관문과 임제선 공안 커리큘럼은 둘 다 단계적으로 공안을 공부하며 또 독참(공안 인터뷰) 전통이 살아있다는 면에서 서로 비슷하다. 그런데 양자 간의 관계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표면적이고 피상적인 유사성의 이면을 고찰할 필요가 있다. 이 두 전통 을 비교해보자.
첫째, 숭산선은 임제선과 달리 공안 자체의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다. 임제선의 공안 커리큘럼은『무문관』, 『벽암록』, 『종용록』 등에 나오는 수백 개의 공안으로 구성된 반면, 십관문은 단 열 개로 이루어졌으며 전통적인 공안 형식을 완전히 탈피하여 파격적으로 단순화했다. 이런 점을 보면 십관문이 『무문관』 고칙 공안을 활용하기 때문에 임제종을 모방했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고 유의미하지도 않다.
둘째, 공안 수행의 방식이 다르다. 임제선의 공안참구에서는 견성(見性)을 목표로 공안과 하나가 되라거나 혹은 독참에서 올바른 답변을 제시하라고 가르침을 받지만 십공안 에서는 그보다는 “오직 모르는 마음”을 체득하도록 가르친다.
셋째, 십공안은 임제선과 다르게 일상생활과의 연결을 매우 중시한다. 임제선의 커리 큘럼은 깨달음을 지향한다면, 십관문은 깨달음 자체 보다는 일상적인 실천을 더 중시한다. 즉, 공안은 각자의 상황을 올바르게 이해하도록 인도하여 다른 사람을 돕도록 제시된다. 숭산선의 공안수행은 오직 모르는 마음을 일상생활과 연결하는 방법을 추구하는 것이기 때문에, 일상생활이 순간순간 분명하고 올바르게 전개된다면 공안에 대한 답변이 옳든 그르든 문제가 되지 않는다. 숭산은 임제선이 일상생활과 연결되지 못한다는 점을 들어 이렇게 비판한다. “일부 선방에서 공안수행은 지나치게 특별한 체험으로 만들어진다. 이런 식의 수행을 실제 일상생활의 상황과 연결하기는 매우 어렵다. 수행자들은 아주 희한한 방식으로 이 무자 공안을 따르기만 하도록 아주 강력하게 배운다. 매일, 매 행위 마다 그들은 오직 ‘무우우우우우우우우!’만 할뿐이다. 그렇지만 무가 여러분의 생각 이전의 마음을 복잡한 세상의 일상생활과 어떻게 연결된단 말인가? 이러한 가르침의 요점은 분명하지가 않다.”(장은화(동국대 강사),「숭산선(禪)의 공안수행: 한국선의 창의적 재해석」(한국선학회 2015년 춘계학술세미나 | 禪의 대지 위에 영글어가는 온갖 곡식))
첫째로 숭산 스님의 십문관이 '전통적인 공안 형식을 완전히 탈피하여 파격적으로 단순화했'기 때문에 임제종 수행 과정과는 다르다고 주장하고 있다. 모방한 것이 아니라는 것인데, 단순화했다고 해서 전통적인 공안 형식을 벗어난 것도 아니고 화두를 참구하는 방식이나 독참을 통한 점검 방식 또한 변한 것이 없다. 간단히 말해 화두의 개수를 줄여 중간과정이 줄었지만, 화두의 정답을 제시하고 점검을 받는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야구 투수가 매일 연습삼아 300개씩 던지던 투구를 매일 10개로 줄인 것에 불과하다.
한편 이 주장은 공안 점검 과정을 체험해 보지 못한 학자들이 논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그 내면의 사정은 수행을 하지 않은 학자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세계인 것이다. 임제종 수행이 모두 비밀스럽게 사자전승하기 때문에 수행 체험이 없는 학자들은 그 과정을 모를 수밖에 없는 것도 사실이다. 수행 체험을 조금이나마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위와 같은 분석이 얼마나 허망한 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수행은 일도 체험해보지 못한 사람들이 '코끼리 만지기 식'으로 해설해 놓은 임제종 수행에 대한 글만 읽어보고, 이것이 코끼리(임제종 수행)라고 주장 하고 있는 격이다. (논문에는 '십문관'을 '십관문'이라고 바꿔 부르고 있는데, 이는 십문관의 의미를 모르는 데서 기인한 실수이다.)
둘째로 논문에서 '임제선의 공안참구에서는 견성(見性)을 목표로 공안과 하나가 되라거나 혹은 독참에서 올바른 답변을 제시하라고 가르침을 받지만 십공안 에서는 그보다는 '오직 모르는 마음'을 체득하도록 가르친다.'고 주장하며 그것이 철저히 다른 것인 양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그 과정을 체험한 수행자에게는 '공안과 하나가 되라거나', '독참에서 올바른 답변을 제시하라'거나 혹은 '오직 모르는 마음'은 말만 다를 뿐 초보자에게 공안참구에 집중하게 하기 위한 예비 단계일 뿐이다. 처음 수행에 입문한 수행자에게 요구되는 것이지 그걸로 수련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선정에 들어 화두를 참구하는 것으로 말만 다를 뿐, 결국 둘 다 '독참에서 올바른 답변을 제시하'기 위함이다. 점검에 합격하지 못하면 그 과정을 다시 반복해야 되고, 그 공안을 뚫어야 그 하나의 과정이 끝이 난다. 결국 그런 과정을 집중해서 잘하라는 독려의 말인 것이다. 선종에서 우는 아기에게 노란 나뭇잎을 돈이라 속여 울음을 그치게 하는 방편법인 "황엽지제전黃葉止啼錢"에 불과한 것이다. 울음을 그친 아이에게 황엽의 지제전은 이제 필요 없다. 결국 어떻게 하든 수행에 집중해서 화두를 투과해야 하고 투과하고 나면 버리는 나룻배에 불과한 것이다.
셋째로 ‘십공안은 임제선과 다르게 일상생활과의 연결을 매우 중시한다. 임제선의 커리큘럼은 깨달음을 지향한다면, 십관문은 깨달음 자체 보다는 일상적인 실천을 더 중시한다.’하고 있다. 난센스다. 일상적인 실천을 중시하는 것은 임제종 간화선 수행도 마찬가지이다. 불교의 사상이 그러하듯 깨달음도 중요하지만 일상적인 실천에 더 큰 방점이 있다.
‘내가 만난 선지식’에서 활안스님은 ‘오신 손님들의 신발을 나란히 정리하여 나갈 때 편이하게 신을 수 있도록 정리해 놓으시는 이희익 스님, 항상 조심스럽게 법도에 맞게 말하며 털끝만한 실수도 용납하지 아니했던 대선사의 향취가 새삼스럽게 다가온다’고 하셨는데, 수행을 하면 ‘각자의 상황을 올바르게 이해하도록 인도하여 다른 사람을 돕도록’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도 자연스럽게.
논문은 십문관과 임제선 공안 커리큘럼을 비교하면서, 십문관은 전체적인 수행과정과 그 수행을 거친 다음 얻게 되는 경지까지 폭넓게 고려하면서, 임제선은 그 초기 단계와 공부과정 만을 조명하는 실수를 저지르고 있다. 물론 알려지지 않아 연구할 수도 없었겠지만 단순하던 복잡하던 그 두 수행 과정이 지향하는 목표는 같다. 화두 숫자를 줄이면 화두를 투과하는 경험도 따라서 줄 뿐으로, 그 실천 여부는 수행자의 노력에 달린 것이라고 하겠다.
현재 승려가 아닌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일본의 임제종 간화선 수행을 하고 있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수행만을 전념할 수 없는 재가자들이나 갓 입문한 수행자에게는 임제종 간화선법만큼 효과적인 수행체계는 찾기 어려울 것이다. 무턱대고 하나의 화두만 참구하라는 주먹구구식의 수행과정은 숭산에 이르러 변화를 꾀하고 있다. 이는 점차 확산되는 추세인데, 수행법을 찾아 헤매던 조계종 스님이 인도로 간다거나 우리 모임에 참여하여 수행하는 것을 보면 명확하다.
『중외일보(中外日報)』의 보도에 따르면, 지난 9월 24일부터 1주일간, 경상남도의 統營市에 있는 명상수련원에서,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일본의 공안선(公案禪)의 전통적 섭심(攝心)이 행해졌다고 한다. 사가(師家)는 일본 임제선(臨濟禪)의 大本山 向嶽寺의 관장 宮本大峰로, 처음으로 전통적인 공안선의 입실참선도 행해졌다고 하며, 가까운 장래, 두 세 명의 한국 선승이 일본에 와, 向嶽寺의 전문 도장에 掛搭을 한다고 전해진다. (니시무라 에신[서촌혜신西村惠信], 일본 하나조노대학 명예교수, 선문화연구소소장,「일본 간화선看話禪의 전통과 변용」(普照思想 제25집(2006.02), 보조사상연구원). (괘탑掛搭 : 선종에서, 새롭게 사원에 들어간 승려가, 가사와 바리때, 석장 등을 승당 벽의 갈고리에 걸어 두는 것. 인용문에 나오는 통영의 명상수련원은 남해 외딴섬 오곡도에 있는 전문 선방禪房 <오곡도수련원>을 말한다.)
사다리는 높은 곳을 편하게 그리고 차근차근 용이하게 올라가게 한다. 대혜종고 선사는 ‘무수히 많은 작은 깨달음과 열여덟 번의 큰 깨달음을 얻었다’고 술회하였는데, 비유하자면 이는 무수히 작은 계단을 하나하나 올랐고 열여덟 번은 몇 계단 씩 건너 뛰어 대자유인의 경지에 이르렀음을 말하고 있다.
간화선이 개발된 송대에 이미 사다리선이라는 말이 유행하였다는 것은, 공안을 투과하고 또 다른 공안을 투과하는 교육과정이 보편화되어 있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공안을 투과하고 또 투과하는 간화선 교육체계는 임제종 간화선법의 특징으로 이미 송대에 완성되었거나 완성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무문관』이 선종서로 자리 잡으면서 당연히 공안에 대한 모범답안 또한 결집되어 마음과 마음으로 전승되었을 것이다. 교육을 위해서는 적어도 화두들의 전형적인 혹은 정형적인 답안들이 형성되고 전승되었다고 보는 것이 보다 합리적일 것이다.
다만 선종이 간화선에 이르러 방법론적 완성을 이루고 ‘선의 완결’에 도달하였지만, 그러므로 해서 간화선은 활발발함을 잃게 되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선의 완결을 이루어 내부적으로는 더 이상의 발전의 계기가 없었다는 것이다.
중국선은『無門關』에 이르러 그 발전의 최고봉에 도달 한 것이며, 그것은 이제 더 이상 더 진보하려고 하지 않는 한계에 왔음을 보여 준다고 해도 좋은 것이다. (야나기다 세이잔, 추만호.안영길 옮김,『선의 사상과 역사』 p. 156.)
더 이상 새로운 방법이 나오지 않음을 개탄한 것이겠지만, 숭산 스님의 노력 또한 그 일환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다. 지금 세계적으로 일고 있는 간화선풍은 간화선이 현대인에게 맞는 수행법이라는 반증으로, 간화선의 부활은 물론 재도약을 예견하게 한다. 물론 현대인에 맞는 네트워크를 통한 사이버 수행 등 새로운 형태의 간화선 수행이 더 강화되기를 기대해 본다.
2) 선도회 간화선과 숭산의 선법
종달 노사님 입적 후 법경 법사님은 두 차례에 걸쳐 숭산 스님과 독대하였다. 이 때 숭산은 선도회에서 점검 받은 화두 경계를 대부분 똑같이 점검해 주셨다고 한다.1 그리고『무문관』「제14칙 남전참묘南泉斬猫」점검과정에서 법경 법사님은 새롭게 깊은 통찰체험을 하며 다시 의심 없는 “평상심시도平常心是道”의 안목을 갖추게 되었다고 술회하였다.2 이는 '조주가 신발을 벗어 머리에 이고 나간' 대목으로 숭산이 실재한 이 화두의 배경에 대해 알려준 일이다. 필자 또한 몰랐던 사실을 후에 들을 수 있었다. 임제종 간화선(종달 노사님)과 한국식으로 변형된 숭산선의 만남이라고 할 수 있겠다. (실재 종달 노사님과 숭산 스님은 만난 적이 없었다. 처음 독대시 숭산 스님은 종달 노사님을 알고 계셨다고 하였는데, 종달 노사님은 당시로는 드물게 선종서를 간행하고 처음으로 불교잡지를 발행하였기 때문이다.)
숭산 스님과 법경 법사님의 만남은 당, 송대 활발하게 이루어지던 입실점검 모습을 현대에 다시 보는 듯하다. 그리고 한 문하에서 인가를 받고 다른 선지식들을 찾아다니며 진검 승부를 하는 선객의 모습도 힐끗 보인다. 자신의 깨달음을 확인받기도 하면서 또 새로운 깨달음을 얻기도 하는 그런 여정을 통해 선종은 그 활발발함을 잃지 않고 계속 발전하였으리라. 어쨌든 결과적으로 현재 선도회 간화선 체계는 종달 노사님의 가풍에 작지만 숭산 스님의 가풍까지 합해져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겠다.
필자는 백은 선사로부터 비롯된 종달 노사님의 경계를 “즉심卽心”의 경계로, 숭산 노사님의 경계를 “즉여卽如”의 경계로 구분하고, 두 경계를 같은 비중으로 지도하고 있다. (뒤에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현 선도회는 ‘즉심’의 경계 보다는 법경 법사의 성향에 따라 ‘즉여’의 경계로 지도하는 추세다.) 즉심의 경계가 정직함과 순수함과 함께 단순함이 돋보인다면, 즉여의 경계는 하와중생심下化衆生心의 발현과 현대적인 응용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하겠다. 그렇다고 종달 노사님의 경계가 모두 즉심의 경계이고 숭산 노사님의 경계가 모두 즉여의 경계라는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그런 경향성을 보여 편의상 그렇게 구분하였으나, 나중에는 투과하는 경계들을 재정립하는 작업들을 수행하고 있는 중이다. 법사들마다 조금씩 다른 경계에 대해 초심자들의 혼돈을 막기 위해서도 꼭 필요한 작업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필자는 이 작업을 위해 선배들의 경계를 수집하고 확인하였다. 덧붙일 것은 두 경계는 우열을 논할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하며, 두 경계를 다 투과하면, 견해의 폭을 넓힐 수 있을 분 아니라 지혜의 깊이를 더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화두 경계에 대한 모호함도 걷어낼 수 있었다.
3) 재독과정과 말후末後의 뇌관牢關
한편 기존 선도회에서는『무문관』1독의 과정과 더불어 재독의 과정도 있다. 일본 임제종에도 있는지 확인 할 수는 없지만 꼭 필요한 과정이다. 첫째, 재독의 과정은 화두를 모두 투과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려 다시 복습하는 의미도 있고, 둘째로는 보다 진전된 평상심시도의 경계를 전수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두 과정에 있어 두 경계가 같은 경우도 있고 다른 경우도 있는데, 선어록을 광범위하게 공부하다보니 두 경계는 부분적으로 이미 당 ․ 송대에도 논의 되고 존재하였다는 확신이 들었다. 현재의 경계는 당시의 경계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이고, 세월이 흐르면서 새로운 경계 또한 축적되어 내려왔다는 사실이다.
백은의 수행체계를 보면 ‘향상’이후의 수행으로 ‘말후末後의 뇌관牢關’, ‘최후最後의 일결一訣’이라는 공부 단계를 두고 있다. 이들에 대한 공안은 정해진 것은 없지만 수행에 있어 만전을 기하기 위해 묻는 “활구공안活句公安”이라고 언급되어 있다. 필자는 이들 화두들은『무문관』재독 과정이나『무문관』다음 과정인 “마무리하는 사람들을 위한 화두들” 과정이나 그 재독 과정에 스며들어있다고 보았다.
필자는 선도회 모든 과정을 끝내고 나서 새로운 과정들을 정립하면서, ‘시작하는 화두들’ 재독과정을 새로이 추가하고,『무문관』재독 과정에서는 숭산 노사님의 공안집『한 송이 꽃』에 나오는 질문들을 추가하여 3독의 경계로 정리하고 입실점검에 새로이 도입하였다. 필자가 지도하면서 경험한 바로는 이들 과정이 화두 경계를 더욱 명확하게 하고 화두의 의미를 재점검하는 계기가 되고 있지만, 문제는 엄청나게 많아진 질문들을 투과하는데 드는 시간이다. 모든 과정을 마무리하기 위해서는 매일매일 입실해야 가능해 진다는 것이다. 그 해결책으로 매일매일 전자메일로 입실점검을 하고 부족한 부분은 매주 한 번 만나 직접입실로 채우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한다.
여담으로 한국에서 숭산 스님의 선법이 조명을 받은 데는 현각玄覺 스님의『만행,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의 역할이 컸다. 서양인들을 늘 우위에 두고 따라 하려고 했던 한국인에게 파란 눈의 스님, 그것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것도 우리가 보기에는 감히 들어갈 생각도 못할 세계 유수의 대학, 하버드를 나온 파란 눈의 스님이라니. 세계의 철학 종교를 섭렵했을 그가 한국 불교를 선택하고 또 출가라니.......
인구의 30%를 차지하는 기독교도들에게 뿐만 아니라, 해방이후 한국인에게 있어서 서양인은 늘 자신들을 지켜주고 이끌어주는 존재였다. 그들은 서양을 흉내 내고 어떻게든 서양을 뒤쫓아 가려 했다. 이렇게 비굴한 아시아적 근대는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도 똑같다. 때문에 삭발머리에 가사를 입고 한국에서 깨달음을 얻겠다는, 파란 눈을 한 승려의 결단은 한국인들에게 충격을 안겨주었다. 서양 법의를 두르고 가르침을 설파하는 선교사와 달리, 회색 가사를 입은 스님들이 한국에서 가르침을 구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현각 스님의 저서가 베스트셀러가 된 이유도, 그것이 결코 경박한 오리엔탈리즘이 아니라 애인도, 학위도, 나라도 버리고 속세와의 모든 인연을 끊어야 하는 불교에의 귀의, 특히 한국에로의 귀의였기 때문이 아닐까? (이토 준코 지음 ; 김혜숙 옮김,『한국인은 좋아도 한국민족은 싫다』pp. 113~114.)
나아가서 그는 왜 한국 불교를 선택했을까? 더듬거리면서 했을 다음 말이 한국불교의 위상을 한껏 높여주고 있다. 물론 한국 불교의 미래는 덤으로.......
“중국의 절에는 문화대혁명의 영향으로 노인이나 아이밖에 남아있지 않아요. 전통은 이미 끊어져버렸죠. 그리고 일본의 절에는 상업주의가 침투되어 마치 슈퍼마켓 같아요. 하지만 한국의 절에는 ‘선 사상’이 있어요.” (이토 준코 지음 ; 김혜숙 옮김,『한국인은 좋아도 한국민족은 싫다』p. 112.)
일본 불교는 백은에서 정점을 찍은 것일까? 책을 낸 현각에게 숭산 스님은 이렇게 말했다던가? “아직 수행중이면서 사람들을 가르치려 드는 것이냐?” 그야말로 파릇파릇한 살아있는 “선禪”이 느껴진다.
1, 법경 법사님은 화두에 대한 입실점검이 한 사람 한 사람 독참으로 철저히 비밀리에 이루어지지 않고, 경우에 따라서는 공개적으로 진행하시는 숭산 노사님의 화두점검 방식이 자칫 화두의 생명력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는 편지를 보낸 적이 있었는데, 그 편지를 계기로 두 분의 회동이 이루어져 서로의 화두 경계를 비교한 일이 있었다. 이를 계기로 법경 법사님은 선도회 간화선 수행에 대해 확신을 가지게 되셨다고 한다. (『두 문을 동시에 투과한다』「숭산 노사와의 만남」 p. 101, 『이른 아침 잠깐 앉은 힘으로 온 하루를 부리네』「숭산 노사와의 재회」 p. 65). 선도회 간화선 수행을 마치면 모든 경계가 확연히 드러나 어떤 선문답이라도 그 수준을 가늠할 수 있다. 조계종 큰 스님들이 선문답을 접하면 대부분 선도회 공부에 포함되어 있어 그 경계를 다 알 수 있는데, 혹 비밀리에 전해지는 어떤 경계는 없을까 의심이 들 때도 있다. ‘선도회 간화선 수행에 대해 확신을 가지게 되셨다’는 위의 말씀은 법경 법사님도 인가를 받으시고 일말의 의심이 남아 있으셨는데, 숭산 노사와의 만남은 그 한 줌의 의심조차 기우였음을 아시는 기회가 되었다는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 선도회 후학들에게는 큰 은혜다. 필자는 처음에는 스님들을 만나면 선문답을 시도하려 하였었지만, 지금은 선문답을 기대하지 않는다. 몇 마디 나눠보면 이내 알 수 있는데, 그런 수행은 하지 않아서 모를 뿐 아니라, 누가 ‘깨달았다’더라 하고 남 소개하기에 바쁘다.
2.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만공 스님과 혜암 스님, 그리고 진성 사미 세 사람이 어느 날 배를 타고 안면도 간월암看月庵으로 향하는 해상海上에서 있었던 일화 <과해농주過海弄舟> 화두 문답에서 법경 법사님의 경계를 120% 라고 말씀하신 경우이다. 이는 법경 법사님의『이른 아침 잠깐 앉은 힘으로 온 하루를 부리네』「숭산 노사와의 재회」에 서술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