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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브라함 링컨과 병사의 임종 ♥ 미국 역대 대통령 중에 가장 위대한 인물로 추앙 받고 있는 에이브라함 링컨(1809~ 1865)은 미국의 남북 전쟁이 한창일 때 종종 부상 당한 병사들이 입원해 있는 병원을 방문했습니다. 한 번은 의사들이 심한 부상을 입고 거의 죽음 직전에 있는 한 젊은 병사들에게 링컨을 안내했습니다. 링컨은 병사의 침상 곁으로 다가가서 물었습니다. "내가 당신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뭐 없겠소?" 그 병사는 링컨 대통령인 것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는 간신히 이렇게 속삭였습니다. "저의 어머니께 편지 한 통만 써 주시겠어요?" 펜과 종이가 준비되자 대통령은 정성스럽게 젊은이가 말하는 내용을 적어 내려갔습니다. "보고 싶은 어머니, 저는 저의 의무를 다하던 중에 심한 부상을 당했습니다. 아무래도 회복되지 못할 것 같군요. 제가 먼저 떠나더라도 저 때문에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동생 존과 메리에게도 저 대신 입을 맞춰 주시구요. 하나님께서 어머니와 아버지를 축복해 주시기를 빌겠어요." 병사는 기력이 없어서 더 이상 얘기를 계속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링컨은 젊은이 대신 편지 말미에 서명을 하고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당신의 아들을 위해 에이브라함 링컨이 이 편지를 대필했습니다.] 젊은 병사는 그 편지를 자기에게 좀 보여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는 마침내 편지를 대신 써준 사람이 누구인가를 알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병사가 물었습니다. "당신이... 정말로 대통령이신가요?" 링컨이 조용히 대답했습니다. "그렇소. 내가 대통령이오." 그런 다음 링컨은 자신이 할 수 있는 다른 일이 없는가를 그에게 물었습니다. 병사가 말했습니다. "제 손을 잡아 주시겠습니까? 그렇게 하면 편안히 떠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조용한 실내에서 키가 크고 수척한 링컨 대통령은, 청년의 손을 잡고 그가 숨을 거둘 때까지 그에게 따뜻한 용기의 말들을 나직히 들려 주었습니다. 이 일화는 [더 베스트 오브 비츠 앤 피이시즈 = The best of bits & peaces]에 소개된 내용으로, 읽는 이로 하여금 마음의 따뜻함과 편안함, 훈훈함을 느끼게 합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국가를 위해 싸우다가 부상당한 병사들이 입원한 병원을 자주 방문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지만, 거기다가 대통령이 직접 환자와 더불어 이야기를 나누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찾아서 도와주며, 편안히 세상을 떠날 수 있도록 최후의 순간까지 손을 잡고, 따뜻한 위로의 말을 건네 주는 인간적인 모습은 정말 훌륭한 일이며 부럽기까지 합니다. 지도자의 인간적인 훌륭함에 존경심을 갖게합니다. 링컨 대통령의 훌륭함을 가슴깊이 다시한번 깨우치게 합니다. 우리는 다음 대통령을 이런 분으로 뽑아야 할 것입니다 ---------- 🧿🍁🍁🧿 ♡自尊心과 自尊感(Pride and Dignity) '자존심'은 '나는 잘났다.'면서 자신을 지키는 마음이고, '자존감'은 '나는 소중하다.' 하면서 자신을 존중하는 마음 입니다. 오래 전에 일본 최고의 명문 공대를 수석으로 졸업한 천재 학생이 공부를 더 하라는 교수와 선배들의 권유를 뿌리치고 회사에 취업하기 위하여 '마쓰시다 전기회사'에 입사지원서를 접수시켰습니다. 그는 지금까지 수석을 놓친 적이 없고 항상 남보다 우수한 성적으로 주위 사람들한테서 부러움의 대상인 천재 학생이었기에 공부를 포기하고 취업을 하겠다고 했을 때 사람들은 남들이 이해 못하는 숨은 뜻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합격자를 발표하는 날 천만 뜻밖에도 합격자 명단에 천재의 이름은 빠져 있었습니다. 그는 몇 번이고 확인하였지만 분명히 자신의 이름이 없었고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단 한번도 1등을 놓친 적이 없었던 천재는 분명히 수석으로 합격될 것으로 자신했는데, 수석은 커녕 합격자 명단에도 오르지 못한 것 입니다. 당당한 모습으로 발표를 기대했던 그는 풀이 죽은 채 환호하는 합격자와 합격자 가족들을 뒤로하고 핏기가 없는 얼굴로 힘없이 집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집에 돌아온 그는 그날 저녁 평생 처음 맛본 불합격에 따른 좌절감과 자존심이 상한 것을 이기지 못하고 다량의 수면제를 복용하고 영원한 잠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다음날 가족들은 이미 숨을 거둔 그를 발견하고 큰 슬픔에 빠져 오열하고 있을 때 긴급전보로 '합격 통지서'가 도착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이 예상했던대로 다른 사람들보다 월등한 실력으로 합격했던 것이고,수석으로 합격하였기 때문에 일반 합격자 명단에 넣지 않고 별도로 적혀 있는 그의 이름을 실무자 실수로 합격자 명단에서 빠뜨린 것이었습니다. 당시에 이 사건은 일본 사회에서 큰 화제가 되었으며, 회사의 실수로 천재를 죽였다고 비난하는 보도가 연일 쏟아졌습니다. 그 천재 청년은 '자존심' 때문에 '자존감'을 포기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사건이 잠잠할 무렵 한 기자가 그 회사 '마쓰시다 고노스케' 회장을 찾아가 인터뷰하며 그 사건에 대한 의견을 물었습니다. 회장은 당시 회사의 실수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점에 대해 사과 하면서 말하였습니다. “장래가 촉망이 되는 청년의 죽음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습니다. 그렇지만 회사의 입장에서는 다행 스러운 일이었습니다.” 뜻밖의 말에 기자가 그 이유를 묻자 총수는 말을 이었습니다. “단 한 번의 실패를 이겨내지 못할 정도로 심약한 사람이라면 다음 중역이 되었을 때 만약 회사가 위기에 봉착한다면 모든 것을 쉽게 포기함으로서 회사를 엄청난 위기에 빠뜨리고 전 사원의 삶이 걸려 있는 회사를 비극으로 끝을 맺는 우를 범할 수 있었을지 누가 알겠습니까?” '셰익스피어'는 "달성하겠다 결심한 목적을 단 한 번의 패배 때문에 포기하지 마라"고 하였습니다. 발명왕 '에디슨'이 전구를 발명을 하기까지 수천 번의 시행착오가 있었다고 합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2번의 실패로 깨끗이 포기 했을 일을 말입니다. 자존감은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내가 나를 사랑해야 남도 사랑할 수가 있습니다. 내가 나를 존중해야 남도 존중해줄 수 가 있습니다. 자존감이 있는 사람은 어떤 경우에도 좌절하지 않고, 불평하지 않고, 남의 탓이나 남을 원망하지 않고, 남을 무시하지 않습니다. 자존감 있는 사람은 적극적이고, 긍정적이며, 포용하고, 양보하며, 겸손한 삶을 살아갑니다. 오늘도 행복한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 💘 퇴계 (退溪)의 연정 유교적(儒敎的) 법도에 충실했던 그에게 젊은한 여인을 향한 애정 한 편의 전설같은 이야기를 소개(紹介) 한다. 퇴계 이황(李滉)은 48歲때 경치 좋은 단양(丹陽) 군수(守)로 부임(赴任) 했는데, 그 고을 관기였던 18세의 어린 두향을 만난다. 두향은 첫 눈에 대나무처럼 올곧은 퇴계를 연모하게 되었고, 퇴계도 부인과 아들을 잇따라 잃었던 터라 공허한 가슴에 두향이 들어왔다. 30년 세월(歲月)을 뛰어넘는 사랑의 교감(交感)이고, 반상(班常)의 신분(身分)을 뛰어넘는 로맨스다. 두향은 詩와 書와 거문고에 능했고 특히 매화(梅花)를 좋아했다. 그녀는 언제나 퇴계의 곁에서 거문고(금:琴)를 타며 퇴계(退溪)의 얼굴에서 미소(微笑)가 떠나지 않게 한 여인(女人)이다. 그런데 이렇게 사랑을 시작한지 꼭 9개월 만에 퇴계가 경상도 풍기(豐基) 군수로 전근 발령(發令)을 받는다. 두 사람 모두에게 대단한 충격(擊)이었고, 관기(官妓)를 못 데리고 다니는 당시의 규율(規律)때문에 결국(結局) 두향을 두고 퇴계는 혼자 풍기로 떠나야만 했다. 떠나면서 꾸린 짐 속에는 두향이 준 수석2개와 매화 화분(花盆) 한 개가 있었다. 떠나기 전날 밤에 마주 앉아 주고 받았던 한시(漢詩)가 백미다. "死別己呑聲 (사별기탄성) "죽어 이별은 소리조차 나오지 않고" 生別常惻測 (생별상측측) "살아 이별은 슬프기 그지 없네" 그리고 퇴계는 말을 이었다. "내일이면 떠난다 기약(期約)이 없으니 두려울 뿐이다." 두향은 말없이 먹을 갈고 붓을 들었다. 그리고는 詩 한수를 썼다. "이별이 하도 서러워 잔 들고 슬피 우는데, 어느덧 술도 비워 없어지고 님마저 가는구나. 꽃 지고 새우는 봄날을 어이할까 하노라." 이날 밤의 이별(離別)은 결국(結局) 너무나 긴 이별로 이어져 퇴계가 70세로 세상(世上)을 하직 할 때까지 두 사람은 한번도 다시 만난 적이 없었다. 퇴계(退溪)가 부제학(副提學) 공조판조(工曹判書) 예조판서(禮曹判書)로 승승장구(乘勝長驅) 하는데~ 아마도 두향은 누가 될까하여 퇴계에 대한 두향의 배려였으리라. 퇴계와 이별(離別) 한 후 두향은 관기(官妓)를 그만두고 퇴계와 즐겨갔던 남한강(南漢江) 강가에 움막을 짓고 평생(平生)을 살았다. 이별 후 이들은 만나지 못하고 서로 서신(書信)만 주고받았다. 다음은 퇴계가 두향에게 보낸 시다. "黃卷中間對聖賢 (황권중간대성현) 누렇게 바랜 옛 책속에 좋은 말씀을 보면서 虛明一室坐超然 (허명일실좌초연) 빈 방에 홀로 조용히 앉았는데 梅窓又見春消息 (매창우견춘소식) 매화 핀 창가에 봄소식을 다시 보니 莫向瑤琴嘆絶絃 (막향요금탄절현) 그대도 거문고 마주 앉아 줄 끊겼다고 한탄 말라 퇴계는 말년(末年)에 안동(安東)에 있는 도산(陶山) 서원(書院) 에서 조용하게 지냈는데 한 때는 병세가 위독해서 자신도 모르게 옷을 입은 채로 설사를 하게 되었다. 그 경황에서도 그는 시중드는 사람에게 불결(不潔)하니 미안한 마음이 든다며 매화 화분을 딴 방으로 옮기라고 하였다. 그 매화(梅花)가 바로 두향이 준 것 이여서 각별(各別)히 애지중지(愛之重之) 하였다 명종과 선조 임금이 항상 퇴계에게 큰 벼슬을 내리면서 조정으로 나올 것을 간곡하게 청했지만, 그는 끝내 벼슬을 사양하고 출세(出世)보다는 학문에 전력했던 군자(君子)였다. 그러나 詩와 음악(音樂)과 한 女人을 사랑했던 로맨티스트였고, 또 달과 山과 江과 梅花를 유달리 사랑했던 풍류객(風流客)이었다. 기록(記錄)에 의하면 그가 병이 깊어 누워 있던 1570년 섣달 초여드렛날, 제자들이 부축하여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창문으로는 눈부신 겨울 햇살이 쏟아져 들어왔고, 윗목에는 매화 화분 하나가 두세 송이 부푼 꽃망울을 매달고 있는데, “저 매화에 물을 주어라!“ 이 말을 끝으로 선생은 미소 띤 표정으로 앉아서 이승을 하직 했으니, 이때 선생의 나이 70세 였다. 그날은 맑았는데 오후 다섯시쯤 갑자기 흰 구름이 집 위로 몰려들더니 눈이 한 치 남짓 내렸고 조금 뒤 선생이 숨을 거두시자 구름은 흩어지고 눈도 그쳤다. 두향이 퇴계에게 주었던 매화는 그 대를 이어 안동의 도산서원에 그대로 피고 있다. 어느 날 두향이 안동의 퇴계에게 난초를 보냈다. 단양에서 두향과 함께 기르던 것임을 알아차린 퇴계는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고, 이튿날 새벽에 일어나 자신이 평소에 마시던 우물물을 손수 길어 두향에게 보냈다. 이 우물물을 받은 두향은 물을 마시지 못하고 새벽마다 일어나서 퇴계의 건강을 비는 정화수(井花水)로 소중히 다루었다. 어느 날 이 정화수가 빛깔이 변하는 것을 보고 퇴계가 돌아가셨다고 느낀 두향은 소복 차림으로 단양에서 머나먼 도산서원 까지 4일간을 걸어서 돌아가신 님을 뵈었다. 한 사람이 죽어서야 두 사람은 만날 수 있었다. 그래서 지금도 퇴계 종가(宗家)에서는 두향이 묘(墓)에 벌초하고 그녀의 넋을 기린다. 퇴계 선생의 파격적인 사랑을 공식적으로는 인정할 수 없지만, 그 애달픈 사랑을 잊지는 않는 다는 것이 사람의 禮인 모양이다. 또한 옛날이나 지금이나 女子는 존경(尊敬)하는 님에게는 ••• 변치않는 숭고(崇高)한 사랑으로 승화(昇華)시키는것 같다. ♧우리 人生은 이렇다네! ♧ "인생 예순은 해(年)로 늙고, 일흔은 달(月)로 늙고, 여든은 날(日)로 늙고, 아흔은 때(時)마다 늙고, 백세가 되면 분(分)마다 늙는다." 고 말했다. 노후(老後)의 친구는 01. 가까이 있어야 하고 02. 자주 만나야 하며 03.같은 취미면 더 좋다. 유수불복회 [流水不復回] 흐르는 물은 다시 돌아오지 않고, 행운난재심 [行雲難再尋] 떠도는 구름은 다시 볼 수 없네... 노인두상설 [老人頭上雪] 늙은이의 머리위에 내린 흰 눈은... 춘풍취불소 [春風吹不消] 봄 바람이 불어 와도 녹지를 않네... 춘진유귀일 [春盡有歸日] 봄은 오고 가고 하건만, 노래무거시 [老來無去時] 늙음은 한 번 오면 갈 줄을 모르네, 춘래초자생 [春來草自生] 봄이 오면 풀은 저절로 나건만 청춘유불주 [靑春留不住] 젊음은 붙들어도 머물지 않네 화유중개일 [花有重開日] 꽃은 다시 피는 날이 있으나, 인생갱소년 [人生更少年] 사람은 다시 소년이 될 수 없네 산색고금동 [山色古今同] 산색은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으나 인심조석변 [人心朝夕變] 사람의 마음은 아침과 저녁으로 변하네... 화향백리 [花香百里] 꽃의 향기는 백리를 가고, 인향만리 [人香萬里] 사람의 향기는 만리를 간다네... 남자는 마음으로 늙고, 여자는 얼굴로 늙는다. 세월 정말로 빠르다 벌써 녹음이 우거진 6월 초순!! 일교차가 많이 나는 요즈음 건강 잘 챙겨 코로나 19는 물론 감기 걸리는 일이 없도록 하고..., 오늘도 좋은 일만 있기를 기원합니다🍒⚘♡~~~ ---------- ❤Japan과 피자의 유래❤ 우리나라는 고구려시대에 서양세계에 알려졌다는 설도 있지만 고려시대에 알려졌다는 설이 더 유력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중국은 진시황(秦始皇)시대에 널리 알려졌기 때문에 지나라 부르고, 대한민국을 ‘코리아’ 라고 부른다. 고려말 조선초 시대에 포르투칼, 에스파니아(스페인), 네델란드 해적들이 '해적선’ 조상들은 모양이 이상하다고 이양선(異樣船)이라 불렀다. 서양의 해적들은 그 ‘이양선’을 타고서 오대양 육대주를 누볐다. 콜럼버스, 마젤란, 마르코폴로, 바스코다가마도 말이 탐험가이지 해적이나 다름 없었다. 그 포르투칼 사람들이 이양선을 타고서 베트남, 남중국 해안선을 따라 북상하다보니, 자연히 일본열도보다 먼저 한반도 남쪽 남해안에 이르게 되었다. 상륙하여 교역하는 척 하다가 약탈을 감행할려고 시도하였다 갓 쓴 우리 할아버지들은 활 쏘고, 북, 징, 괭과리를 치면서 난리를 쳤다. 아이들은 돌팔매를 던지고, 할머니, 아주머니들은 가마솥 솥뚜껑을 두드리면서 가진 악을 다 쓰면서 쫒아버렸다. 할아버지 헐머니들은 저편으로 가라, 저편으로 가라 라고 외쳐대면서 오랑캐들을 상륙도 못하게 하였다. 이양선 선장은 기수를 돌려서 저편으로 항해하였다. 드디어 나타난 것이 지금의 일본 열도이다. 이양선 선장은 항해일지에다가 섬의 이름을 "Japan"(저편)으로 기재하였다. 그로부터 일본의 이름이 저편이 되었다. 그래서, 일본사람들은 지금도 저편 Japan 이라는 이름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들은 니폰 Nippon(일본 日本)을 즐겨 사용한다. 2002년 월드컵 당시에도 거국적으로 응원단을 꾸리면서 Ultra Nippon 이라고 이름하였다. 그 저편 놈들이 얼마 후에 포르투칼 해적들로부터 조총을 수입하여서, 1592년 임진년에 포르투갈 용병들과 같이서 부산항에 상륙하였다. 임진왜란 도중에 선량한 우리 백성들을 잡아다가 용병 용역에 대한 댓가로 포르투갈 해적상인들에게 넘겼다. 조선 8도중에서 전라도는 이순신 장군의 눈부신 활약으로 인하여, 강원도는 산악지대라서, 그 윗 지역은 너무 멀어서 포로로 잡혀가는 피해를 면하였다. 잡혀간 백성들은 거의다 경상도 백성들이었다. 우리 조상들은 이역만리 말도 다르고, 풍토도 낯설고, 음식도 다른 코쟁이들의 세계로 팔려갔다. 그중 이탈리아로 팔려간 조상들은 지금도 안토니오 코리아 라고 불리는 후손을 두고 있다고 한다. 미켈란젤로의 그림 가운데에도 한복입은 우리 조상 코리안을 그린 그림이 있다 이탈리아 주방에서 일하면서, 같이 일하는 여러 우리 동포들이 나누어 끼니를 때워야 하는데, 쌀은 없고, 먹을 밀가루는 적고, 그래서 후라이판에 밀가루를 반죽하여 전을 굽는 나무 판으로 턱 턱 치면서 넓게 더 넓게 폈다. 여러 사람들이 나누어 먹을려면 넓게 펴야만 했다. 또한 우리민족은 밀가루 음식은 가마솥 솥뚜껑을 뒤집어 놓고 전을 구워먹는 것이 일반적이었기 때문에 자연스레 밀가루를 반죽하여 넓게 펴게 되었다. 조국을 떠나 포로로 팔려온 설움을 달래면서 처자식과 헤어진 가슴아픈 사연을 달래면서 후라이팬에 밀가루 반죽을 넓게 펴면서 "피자 피자 넓게 피자" 라고 노래 장단에 맞추어 구슬프게 노래 불렀다. 펴자의 경상도 사투리는 피자이다. 그 위에다가 코쟁이들이 주로 먹는 온갖 재료들을 붙여 놓고는 8조각으로 잘라서 나누어 먹었다. 코쟁이들이 어쩌다가 그 모습을 보고서 맛있는 것 같아서 가져와 보라고 하여서 그들도 먹어 보았다. 그 맛은 자신들이 주로 먹는 요리 Main Dish 보다 훨씬 더 맛있었다. 그래서, 피자가 탄생된 것이다. 그 가슴 아픈 사연, 고향 잃은 서러움이 한이 되었는지, 요즘 우리 아이들은 김치보다도, 보리밥, 파전, 호박전보다도, 피자를 더 찾는다. 피자 하면 사족을 못쓴다. 이탈리아에서 피자가 정식 요리종목으로 탄생된 이후로 넓게, 더 넓게 편(핀) 피자는 넓음을 뜻하였다. 그래서 이탈리아에서는 넓은 광장을 ‘피아자’라고 한다. 영어로는 ‘Plaza 플라자’ 라고 한다. 피자, 피아자, 플라자 이 모두 우리 조상들의 경상도 사투리 ‘피자 피자 넓게 피자’ 에서 나온 것이라 한다. ☆ 말 씀 ☆ ♡ 명철한 자의 마음은 지식을 얻고 지혜로운 자의 귀는 지식을 구하느니라 ♡ 사람의 선물은 그의 길을 넓게 하며 또 존귀한 자 앞으로 그를 인도하느니라 ( 잠언 18 : 15 ~ 16 ) ☆ 영문주소를 터치해서 영상을 감상해보세요! https://www.geimian.com/wx/37654.html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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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재팬가 피자의 유래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