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교 : 안식교는 율법주의적 구원론, 토요일 안식일 문제, 엘렌 지 화이트의 계시론, 영혼멸절설, 영원지옥부재설, 또는 조사심판 및 2300주야 문제 등의 비성경적인 교리를 주장하는 이단임을 최종 밝혀 둔다.
2. 월간 현대종교 최삼경 목사의 안식교 비판론
3. 주요 이단 종파 비판 (탁명환 著, 국제종교문제연구소 刊.)
4. 이단의 정체 (김순명 著, 미주크리스찬신문 刊)
5. 안식교는 과연 (안토니 회케마 著, 손주철 譯, 생명의말씀사 刊)
1. 서론: 안식교는 기독교인가?
안식교는 <제칠일안식일 예수재림교회>라는 공식 명칭을 가지고 있으며, 미국에서 발생하여 우리 나라에는 19세기 초에 유입된 종파이다.안식교는 교육사업과 의료사업, 그리고 구제활동에 상당한 기여를 해왔고, 도덕적, 윤리적으로는 훌륭한 종파이긴 하나, 성경해석이나 교리 면에서는 정통 기독교와 해석을 달리하고 있다. 안식교를 이단으로 보는 것도 바로 그들의 잘못된 성경해석에 기인한다.
미국에 본부를 두고 있는 대다수 안식교인들을 안식일 문제와 음식 문제를 구원의 조건으로 내세우지 않고 있으며 더욱 의아스런일은 자신들의 안식교 창시자 엘렌 지 화잇(Ellen G White )에 대해 비판을 가하고 있으며, 안식교를 유일한 교회로서가 아니라 하나의 기독교 교회로 여긴다는 점이다. 그리고 음식 문제나 안식일 문제를 구원의 조건으로 내세우는 자들을 편협한 안식교인이라 하여 비판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저들이 주의 날을 달리한다고 해서 그것만으로 이단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사뭇 혼란스러워진다. 현재 미국의 안식교에는 여러 가지 분파가 있는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한국에는 오직 하나의 안식교 외에는 없으나 안식교교회들간 내세우는 교리와 주장은 각기 다양성을 띠고 있다.
`안식교`도 여호와의 증인처럼 `시한부 종말론`에서 출발했다.
원래 이름은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Seventh day Adventists)이다.
재림을 강조하기 때문에 `재림교회`라고도 불린다. 영어 약자로는 SDA를 사용한다. 외국어 학원의 간판에 SDA가 표기되어 있으면 대개 안식교와 관련이 있는 곳일 가능성이 크다고 보면 된다.
그들은 자기들을 `안식교`라고 부르는 것을 몹시 싫어한다. `안식`만 강조되어 놀고 쉬기만 하는 종교처럼 보인다는 그들의 설명이다. 아울러 그들은 `안식일교회`라고 하는 것이 토요일 안식일을 지키는 자신들의 특징을 잘 나타낸다고 한다. 그래서 인지는 모르지만 기성 교회를 향해서는 `일요일 교인` 또는 `일요일 교회`라고 조롱하듯 말한다. 안식교의 외형상 특징은 공식 명칭에서 나타나는 바와 같이 `토요 안식일 준수`와 `재림`을 꼽을 수 있다.
2. 안식교 발생기원
윌리암 밀러의 시한부종말론과 안식교의 출발
안식교는 1844년 10월 22일에 예수님이 재림한다는 윌리암 밀러(William Miller, 1782-1849)의 시한부종말론에서부터 그 뿌리가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윌리암 밀러는 예수 그리스도의 절박한 재림과 천년왕국의 도래를 주장했다. 그는 다니엘서 9:24-27과 8:14의 말씀을 근거로 1843년 3월 21일-1844년 3월 21일 사이에 예수님이 재림한다고 주장했으나 당연히 그의 예언은 빗나가게 되었다. 이후 다시 1844, 10,22일에 재림한다고 주장했으나 이 역시 불발로 끝나고 말았다.
오늘날 수많은 시한부 종말론자들은 성경의 숫자에 대한 잘못된 해석으로 예수님의 재림일을 계산하고 있는 바, 성경은 예수님의 재림과 그 때는 하나님 외에는 아무도 모른다고 증거하고 있다(마 24:36). 아무튼《윌리암 밀러》의 재림 날짜 예언을 믿고 따랐던 많은 사람들이 정한 날짜에 예수님의 재림이 없자 실망에 빠졌다가, 시한부종말론을 추종했던 사람 중에 한 사람인, 1844년 10월 22일에 하늘 성소를 주장한 히람 에드슨(Hiram Edson)과 토요일 안식일을 제창한 요셉 베이츠(Joseph Battes)를 거쳐 엘렌 화이트(Ellen White, 1827-1915) 여사에 의해 1863년에 공식적으로 제칠일안식일 재림교회로 창립되어지게 된다. 특히《엘렌 지 화이트》라는 여자가 받았다는 새로운 환상과 계시를 믿고 그를 중심으로 모여 안식교가 형성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엘렌 지 화이트는 윌리암 밀러의 1844년 10월 22일 재림 예언을 변형하여 시한부종말론을 나름대로 재 해석한 예수님이 그 때 하늘 지성소에 들어가서 심판을 시작했다는 이상한 주장을 펴며 소위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Seventh day Adventists)가 만들어졌다.
여하튼 안식교의 출발 자체가 거짓된 시한부 종말론주의자 월리암 밀러로부터 시작되었으며, 안식교에서도 이를 정면으로 부정하지 않고 오히려 월리암 밀러가 종말의 시점으로 잡았던 1844년은 옳은 것이었다고 강조하고 있다.
3. 교세 현황과 한국의 안식교 현황
안식교의 총본부는 미국 워싱턴에 있으며, 총회는 4년에 한 번씩 열린다. 미국에서 시한부종말론주의자 윌리암 밀러 (William Miller)의 사상을 이어 받은 엘렌 지 화이트(Ellen G. White)로부터 시작된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Seventh day Adventists 일명 안식교)는 1904년에 하와이로 이민갔던 유은현과 손홍조가 일본 체류 중에 일본인 구리야 히데요시에게서 교리를 배우고 안식교인이 되어 귀국함으로 안식교 전교가 시작되었고 최초 안식교 한국에 유입의 기원이 되었다. 이후 해방과 더불어 전국으로 퍼져나가 현재 전국에 안식교 교회수는 일천개가 넘는 교회와 2천여명의 교역자, 120,000명이 넘는 신도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4. 안식교 교리들
1)1844년 10월 22일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과 엘렌 지 화잇의 가르침(종말론)
진정한 크리스챤들과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1844년 10월 22일은 여느 때와 똑같이 평범한 날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안식교인들에게는 그들 교리의 핵심 중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날이 바로 그날이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그 동안 하늘 성전의 첫째 칸인 성소에 계시다가 이 날에야 하늘 성전 둘째 칸인 지성소로 들어가 사람들의 행위를 낱낱이 살펴 조금이라도 흠과 티가 없는 자만 구원 받게 하기 위하여 소위 조사를 하고 있는데 이 기간을 조사심판 기간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이 조사심판 기간 즉 예수님께서 사람들의 행위를 지성소에서 조사하고 있는 기간이 구원받을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다는 점에서 은혜의 기간이라 하는데 그날 이 바로 1844년 10월 22일에 시작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성경에는 1844년 10월 22일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을 단 한번도 없다.
단지 이 날에 조사심판이 시작되었다고 믿으려면 다음과 같은 점을 전제할 때만 가능하게 된다
첫째, 윌리암 밀러(1782-1849)를 반 선지자로 믿을 때
둘째, 엘렌 지 화잇(1827-1915)을 계시 받은 선지자로 믿을 때
셋째, 아닥사스다왕의 조서에 대한 성경 해석이 옳을 때
안식교인들은 엘렌 지 화잇을 성경의 선지자나 사도들과 같은 선지자로 여기고 있으나 밀러에 대하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안식교인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1844년 10월 22일의 의미 부여는 엘렌 지 화잇이 아니라 윌리암 밀러였다는 점이 상당한 모순을 안고 있다. 당시 윌리암 밀러는 같은 성구들의 같은 계산법에 의해 1844년 10월 22일에 예수님이 재림한다고 예언하였는데 그날에 예수님이 오시지 않게 되자 예수님을 기다리던 사람들은 실망하게 되었고 결국 날짜에 대한 밀러가 받은 계시만 살아남고 재림이 아니라 조사심판이 시작된 것으로 그 해석을 수정하게 되었는데 그가 바로 엘렌 지 화잇이다.
엘렌 지 화잇은 1844,10,22일에 예수님이 지성소로 들어가는 환상을 보았다고 하는데 만일 그것이 잘못된 환상이거나 아니면 화잇의 고의적인 거짓말이라면 엘렌 지 화잇과 함께 1844년 10월 22일로 시작된 조사심판 교리를 믿고 있는 모든 안식교인들은 또 다시 제2의 밀러나 제2의 화잇을 기다리지 않는 한 안식교는 붕괴되고 말 것이다. 그렇다면 엘렌 지 화잇의 환상이 문제가 아니라 과연 성경에서 그 날에 대해 어떻게 말하고 있느냐는 점이다. 성경에서 그것을 가르치는 확실한 증거가 있다면 저들에게 다행이나 그렇지 않다면 참으로 불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이제 성경으로 돌아가 보자.
2) 2300주야론
문제의 핵심은 2300주야이다. 문제의 성구는 3개로 압축된다.
다니엘 8:14, 9:25, 그리고 에스라 7:11-26이 그것이다.
다니엘 8:14은 다니엘이 본 환상으로서 "그가 내게 이르되 2300주야까지니 그때에 성소가 성결하게 함을 입으리라"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2300주야에 대한 환상을 다니엘 9:25의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말고 연결시켰으며 그것을 다시 에스라 7:11-26에 나오는 아닥사스다왕이 에스라에게 내린 조서와 연결시켰다. 바로 아닥사스다왕의 조서가 내려진 때를 주전 457년으로 정한 후에 2300주야는 2300일로서 1일을 1년으로 계산하여 2300년을 기원전 457년으로 역으로 계산하면 1844년이 되는데 바로 엘렌 지 화잇이 본 환상의 해가 되는 것이다. 숫자 놀이 치고는 기가 막히게 들어맞는다. 그러나 이 숫자가 맞아 들어간 것으로 보려면 반드시 다음의 사실들을 전제하고 그것을 성경으로 증명할 수 있을 때만 가능하다.
첫째, 다니엘 8:14의 2300주야 후에 성전이 정결케 된다는 예언과 다니엘 9:25의 예루살렘성을 중건하라는 명령이 같다는 것을 증명할 때에 안식교 교리가 가능해진다.
초점은 예루살렘 성전건축령과 예루살렘 성벽 건축령이 구별된다는 점이다. 이 점에 대해 성경을 살펴보면 예루살렘 성전 건축령과 예루살렘 성 건축령이 다름을 알 수 있다. 즉, 예루살렘 성전 건축과 에루살렘 성 건축이 다르다는 점이다. 성경에서는 성전건축에는 전이란 말은 사용하고(스 6:15-18, 스 1:1) 성 건축에 대하여는 그저 예루살렘을 중건하라 또는 성읍을 중건하라고 기록하고 있다는 점이다.(단 9:25, 느 2:1, 느 6:15) 성전이냐 성이냐 하는 문제는 여러 가지 학설들이 있다. 아무튼 단8:14의 예루살렘 성소가 정결하게 된다는 예언이 단9:25의 예루살렘 성이 중건되어야 거룩해진다는 말과 같다는 말인가? 왜 성전인 성소가 정결케 되는 것이 성전 중건이 아닌 성 중건으로 정결케 된다는 말인가? 그리고 왜 그 기점을 성전 건축령이 내려진 BC 536년이 아닌 성 건축령이 내려진 BC 457에서 기점으로 잡고 2300년을 역으로 계산해야 하는가? 오히려 성전 건축은 성 건축이 시작되기도 전에 일찍 완성되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성전 건축령이 내려진 BC 536년에서 기점을 잡아야 할 것은 엘렌 지 화잇도 성 건축령이라 하지 않고 성전 건축령이라고 했기 때문이요 성전이 거룩해지는 문제와 성 건축 문제(그것도 성벽 건축)가 무슨 상관이 있는가?
둘째, 2300주야만에 성소가 깨끗케 된다는 다니엘 8:14의 예언이 예수께서 하늘 성소에서 하늘 지성소에 들어갈 때 이루어진다는 예언의 타당성이 증명될 때 안식교 교리가 가능해진다.
안식교인들은 예수님이 1844년 전까지 하늘 성소에 계셨는데 그때까지는 성소가 더러웠었다는 뜻이요, 비로소 10월 22일에 지성소로 들어감으로서 성소가 정결케 되었다는 말이니 예수님이 성소에 계실 때는 성소가 더럽고 지성소에 들어가야만 성소가 깨끗해진다는 말이 된다? 아니면 예수님이 성소에 있지 않고 다른 곳에 있었는가? 예수님이 지성소에 들어가신 것을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이루어 진 것이 아니라 1800여년이나 기다려 1844년에야 이루어졌다는 안식교가 주장하는 예언 성취적 요소를 증명할 성구가 신약에는 단 하나도 없다.
셋째, 다니엘 9:25의 성 건축령에 대한 다니엘의 말이 에스라 7:11-26에 내린 아닥사스다왕의 조서에 대한 언급이요, 에스라 7:11-26의 조서가 성 건축령임을 입증하고, 그 연대가 안식교의 주장대로 BC 457년임을 증명할 때 안식교 교리가 가능해진다.
여기서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한국에 있는 한 안식교의 우목사의 주장대로 성전건축령이 BC 536년에 내려져(고레스 원년, 스 1:1) 완공된 것이 BC 516년(다리오 6년, 스 6:15-18)이란 점에는 이의가 없음을 확실히 인정하고 있다(현대종교 86년 4월호 p.164). 그렇다면 그 기점을 성전건축령에서 잡지 않은 것도 이상한 데 더욱이 성 건축령에 대해 분명히 언급된 아닥사스다 20년 즉 BC 445년에 느헤미야에게 내린 때로 잡지 않았고(느 2:1), 성 건축령인지 아닌지 분명하지도 않은 아닥사스다 7년으로 잡은 것도 이상 할 뿐이다.
에스라 7:11-26에 보면 에스라에게 내린 조서란 말밖에는 이것이 성 건축이란 흔적이 전혀 없으며 단지 본문은 아닥사스다왕이 에스라를 돕기 위해 써 준 편지 내용일 뿐이다. 그런데 안식교 우목사는 이것을 성 건축령으로 보기 때문에 아닥사스다왕이 성 건축령을 두번 내린 것처럼 보게 된 것이다. 즉 스7:11-26은 아닥사스다 7년에 내려졌고(에스라 7:7에 의해), 또 아닥사스다 20년에 내린 건축령도 부정하지 못하게 된 셈이다.(느 2:1) 그런데도 2300년의 기점은 성전 건축령이 내려진 BC 536년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닥사스다 20년도 아닌 단지 조서가 내려진 것에 불과한 아닥사스다 7년을 그 기점으로 잡게 되었다.
그리고 안식교 우목사는 에스라 7:11-26의 연대를 터무니없게도 BC 457년으로 잡게 됨으로(현대종교 86년 5월호 p.175) 결국 자가당착에 빠지게 되었다. 성전 완성 연대를 BC 516년으로 보고 이 아닥사스다 7년을 BC 457년으로 보면 연대 계산은 맞지 않는 것이다. 왜냐하면 아닥사스다 20년은 BC 455년인데 안식교 식으로 하면 1년이 모자라는 BC 444년이 되기 때문에 그렇다. 그러니 에스라 7:11-26의 아닥사스다 7년에 내려진 조서가 과연 성 건축령이라고 할지라도(분명히 아니지만) 그 연대는 BC 457년이 아니라 BC 458년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볼 때 다른 모든 것이 다 옳다고 인정해 주어도 1844년 10월 22일이 아니라 1843년 10월 22일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게 유추해 볼 때 1844년은 성경에서 나온 연대가 결코 아니라 엘렌 지 화잇의 환상에서 나온 억지 계산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넷째, 1일이 1년을 예시한다는 것을 증명할 때 안식교 교리가 가능해진다.
1일을 1년으로 계산하는 것은 안식교만이 아니라 여호와의 증인들도 그렇다. 그들은 다니엘 4:16, 23, 25, 32에 나오는 일곱 때를 7년으로 보고 유대력에 의한 1년은 360일로서 7에다 360을 곱한 숫자 2520을 1년으로 환산하여 2520년을 예루살렘이 멸망한 해 BC 607년을 임으로 정하고 역으로 계산하여 1914년부터 환난시대가 되었다고 한다.
여호와의 증인과 안식교가 숫자 계산에 있어서 무엇이 다른가? 누가 1일이 1년을 상징한다고 하던가? 여기에 어떤 구체적인 성경의 증거와 교회사적 증거가 있는가? 안식교 우목사는 에스겔 4:6에서 1일은 1년이라고 한 것이 모든 경우에 해당되는 말이 아니라 바로 그곳에만 해당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애굽에서 430년만에 나올 것으로 예언된 것도 안식교 식으로 유대력 360을 곱해서 또 그것을 연수로 환산해야 한단 말인가?
다섯째, 안식교 창시자 엘렌 지 화잇의 예언이 잘못되었음을 인정할 때 안식교 교리가 가능해진다.
안식교인들은 엘렌 지 화잇을 신격화하고 있다. 그녀는 2000번 이상의 계시를 받았으며 계시를 받을 때는 성경 저자들과 동일하다고 한다(원세호 은사확인론{초판} 1983, 국종출판사 p.156).그러니 아무리 그의 계시를 성경과 같이 취급한다고 해도 일단 2300주야 문제에 대한 엘렌 지 화잇의 예언이 성 건축이 아니라 성전 건축이라고 했는데 그것이 잘못임을 인정해야 비록 연대도 틀리고 해석도 틀렸지만 그나마라도 에스라 7:11-26을 연대 계산의 기점으로 삼는 안식교 교리가 하나라도 가능하게 되지 않겠는가? 왜냐하면 그녀는 성 건축을 고집하는 안식교 주장과는 달리 성전 건축이라고 했기 때문이다(대쟁투 p.366). 이 점을 인정하지 않으면 한국 안식교계가 거짓말쟁이가 되어야 하고, 인정하면 엘렌 지 화잇이 거짓말쟁이가 된다. 그러나 화잇의 견해를 인정하면 성경이 거짓말쟁이가 되어 버린다. 한국 안식교도들은 어느 쪽을 택하겠는가? 엘렌 지 화잇이 밀러의 해석을 수정하듯이 누군가 화잇을 수정하고 나올 제2의 화잇이나 밀러가 있어야 할 것으로 생각되지 않는가? 화잇을 살리려다 한국 안식교계가 대신 거짓말쟁이가 되는 것은 그렇다 할지라도 엘렌 지 화
잇 때문에 성경을 거짓된 책으로 만들 수야 없지 않겠는가?
3) 안식일 문제 : 토요일 안식일 문제
안식교는 그들의 교단 명칭에서 보여주듯 토요일 안식일 성수를 구원의 조건으로 내세우고 있다.이 안식일 문제는 안식교의 사활이 걸릴 만큼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과 안식일 초판"이라는 교리서적을 보면 일요일 안식일은 태양숭배일이고, 카톨릭이 일으킨 권위와 거짓 짐승의 표가 붙은 멸망의 날이라고 한다. 또 안식교는 안식일을 주일로 대치하라는 말씀이 성경에 없으므로 기성교회는 4계명(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을 부인하기 때문에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오늘날 개신교가 일요일을 안식일로 지키는 것은 결코 아무런 근거가 없이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안식 후 첫 날(즉 일요일)에 무덤에서 부활하셨으며, 첫 날에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또한 오순절 성령강림도 바로 주일에 이루어졌습니다.그래서 기독교는 초대 교회부터 주일을 안식일로 지켜오게 된 것이다. 비록 구약의 안식일이 신약에서는 주일로 바뀌었다고 하나 안식일의 근본 정신은 여전히 변함이 없이 주일에 계승되고 있는 것이다.
이 문제에 관해 교회사를 살펴 보면 이미 초대교회 때에 안식일 문제와 절기 문제에 관한 논쟁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아무튼 안식교의 주장에 의하면 안식교인들은 자신들이 토요일 안식일을 지키는 `남은 자손`으로서 참 교회라고 주장하며, 로마 카톨릭은 배도(背道)했으며 개신교회는 성서진리로부터 떠났다고 한다. 또한 로마 카톨릭이 예배일을 토요 안식일에서 일요일로 바꾸었다고 주장하며 토요일 안식일을 지키지 않고 일요일에 예배하는 것은 하나님의 계명이 아닌 인간의 계명을 따르는 것으로 거짓 예배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받는 예배가 될 수 없고, `짐승의 표`를 받으며, 가장 참혹한 심판을 초래한다고 주장함으로서 `안식일 준수`는 그들에게 구원의 조건이 되는 것이다.(`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 기본교리 27`pp151-161, 238-241, 244) 결국 일요일에 예배 드리는 개신교회도 심판을 받는다는 논리이다. 안식교의 입장에서는 `토요 안식일 준수`를 구원의 조건으로 삼는 셈이다.
그러나 우리가 예배드리는 주일이 로마 카톨릭이 그렇게 정했기 때문에 그대로 지키는 것이 아니다. 콘스탄틴에 의해서 A.D. 321년에 예배일이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바뀌었다는 안식교의 주장도 억지다. 콘스탄틴이 일요일을 휴일로 정한 것은 맞지만 예배일로 바꾼 것은 아니다. 그 전에 이미 주일에 예배를 드리고 있었다. 성경에도 안식일(율법의 토요 안식일)을 폐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고(골 2:16), 초대교회의 전통에 따라 예수님이 부활하신 주일에 예배를 드리는 것이다. 오늘의 주일은 구약의 안식일 개념의 일부로는 생각하나 구약의 안식일이 그대로 신약의 주일로 바뀌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좀더 엄격히 따지면 안식일과 주일은 다르다는 점이다. 본래 그들의 주장대로 안식일은 토요일에 지켜졌다. 그러나 신약에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상의 구속사를 완성함으로서 주일의 개념을 정립할 수 있었고 오늘날은 안식일을 통상적으로 주일날 지킨다는 점이다.
문제는 안식교가 안식일 성수를 구원의 조건으로 내세워 말한다는 점이다. 바울 때에도 이미 이 날의 문제가 있었다. 하나님의 계시인 바울의 글속에서 답을 찾아보자.
"혹은 이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 혹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나니 각각 자기 마음에 확정할지니라.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으니 이는 하나님께 감사하느니라"(롬 14:5-6). 바울이 어디에 안식일만 지켜야 한다고 하며 더욱이 안식일 지키는 것을 구원의 조건으로 삼고 있는가? 그러나 안식일 성수 문제만으로 안식교를 결코 이단으로 정죄하는데는 다소 무리가 따르게 된다.
4) 율법적인 구원관
안식교는 믿음으로 얻는 구원을 말하고는 있지만 실상은 행함으로 얻는 구원을 주장하는 집단이다.
왜냐하면 율법의 행위를 구원의 조건으로 삼고 있고, 현세의 완전한 성화를 주장하고 있으며, 또한 품성의 변화를 위해서 부정한 음식과 육식을 금하고 채식을 강조하기 때문이다.([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 기본교리 27] pp.85, 127-129, 265-266).([대쟁투 상]433)." 또한 안식교인 가운데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 7:21)는 말씀을 제시하면서 아버지의 뜻대로 행한 자라야 천국에 들어가리라고 했으니 역시 율법을 지켜야 천국에 들어간다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즉, `내 아버지의 뜻`을 율법이라고 해석하는 것이다. 과연 `아버지의 뜻`이 `율법을 지키는 것`일까요? 성경에는 하나님의 뜻에 대하여 여러 가지 의미로 나타납니다. 항상 기뻐하고 감사하며 기도하는 것도 하나님의 뜻이며(살전 5:16-18) 주를 위하여 고난받는 것도 하나님의 뜻입니다(벧전 3:17). 율법만이 하나님의 뜻이라고는 할 수 없다.
천국에 들어가는 하나님의 뜻, 즉 구원의 조건이 되는 가장 큰 아버지의 뜻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하시는 구속의 경륜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언제나 구원의 유일한 조건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생을 얻는 것이라고 갈1:4 에서 가르치고 있다. 또 요6:40 에서는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라" 라고 하여 `아버지의 뜻`을 분명히 하셨다.
5) 율법과 은혜의 법....두 개의 구원(작은 구원 그리고 큰 구원(영원한 구원)이 있다)
안식교는 구원을 큰 구원과 작은 구원으로 나누는데, 작은 구원은 믿음으로 얻는 구원이나 취소될 수 있는 불완전한 구원이고, 큰 구원즉 영원한 구원은 율법을 지킴으로 얻어지는 구원이라고 한다. 그것도 흠도 티도 없어야 받는 구원으로 이것이 완전한 구원이라고 한다.이것은 행함을 강조하는 구원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성경에는 두 구원이 있다고 증거하고 있지 않는다. 또한 행함은 믿음의 열매이지 행함 그 자체가 구원의 절대 조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에 의하면 인간의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 이루어진다고 천명 했다. 행함은 믿음의 결과로 나타나는 열매이지 구원의 조건은 아니다.
일단 안식교인들이 믿음으로 얻는 구원을 큰 구원이라 하여 성경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받는다는 사상을 부정하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사실 엄격히 따지고 보면 행위로 얻는 영원한 구원에 대해 믿음으로 얻는다는 큰 구원이란 별 의미가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어차피 영원한 구원을 얻지 못할 바에야 큰 구원이란 의미 없는 구원이요 또 취소될 수 있고 없어질 수도 있는 구원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두 개의 구원이 있는 것처럼 구원을 이원화 시켰고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제반 성구들을 찾아 열거했다(약 2:24,히 5:9, 7:25, 롬 13:11, 눅 21:28). 그러나 성경에 의거하건대 결코 두 개의 구원이 있을 수 없고 행위를 강조하는 제반 성구들은 행위로 구원을 받는다는 말이 아니라 믿음과 행위의 관계를 말하는 것이요 참된 믿음에는 행위가 수반되어야 한다는 인간의 노력을 촉구하는 내용이다.
만일 행위로 구원을 얻는다면 구원 얻을 자가 하나도 없게 되어 버린다. 안식교 우목사가 제시한 성구들은 결코 행위에 의해 구원받는다는 것들이 아니라 단지 믿음에 있어서 행위가 수반되도록 노력을 촉구하는 일원화된 성경 사상에서 나온 것들이다.
이에 대한 증명으로 사도 바울을 예로 들어보자.
만일 행위로 받을 구원이 영원한 구원이라면 바울도 구원받지 못한 자가 되는 것이다. 바울은 단 한번도 자신이 행위로 온전하다고 한일이 없고 선한 행동을 하려고 몸부림치며 노력하나 구원받기 위하여 노력한 일은 없고, 오히려 바울은 행위에 대해 무능한 자신을 한탄하고 반면에 하나님의 은혜로 주신 구원이 더 크고 아름다워 감사했던 것이다(롬 7:21-25).
그리고 우리의 행위에 의한 구원이라면 오히려 불안한 구원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온 율법을 다 지키고 하나만 범해도 온 율법을 어긴 것이 되기 때문이며(약 2:10), 변하기 쉬운 인간에 의한 구원이 아니라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구원일 때에만 우리의 구원에 대한 보장이 이루어지고 성도의 견인이 완성될 것이기 때문이다(롬 8:35-39). 하나님께서 믿음으로 양자를 삼으시고(롬 8:15,23)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권세를 주셨는데(요 1:12) 어떻게 양자가 되었나 안되었나, 아들의 권세가 있다 없다 할 수 있는가? 오직 의인이 되는 것은 그리스도의 의로만 되는 것으로서 하나님은 바로 믿음으로 의로워진 자들을 영화롭게 하시는 것이다(롬 8:30).
안식교에서 영원한 구원을 주장하는 것은 보상설에 의한 속죄관을 가진 것과 같다. 안식교에서 말하는 큰 구원은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말이니 예수님의 피로 죄가 씻음 받는다고 하는 점에서 기성교회의 속죄관과 일치한다(비록 큰 구원을 얻을 때까지만 적용되지만). 그러나 문제는 소위 큰 구원을 얻은 후부터 영원한 구원을 얻기 전까지가 문제이다.
왜냐하면 속죄이론에 있어서 그들이 주장할 수 있는 이론은 둘 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나는 여전히 예수님의 피로 용서 받는다는 이론이다. 그런데 안식교는 이 입장을 취할 수가 없다. 그렇게 되면 영원한 구원의 의미가 전혀 없어지기 때문이다. 즉 큰 구원을 얻고 난 후에도 여전히 예수님의 피로 용서 받는다는 말은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영원한 구원의 필요와 그 의의를 스스로 무너뜨리고 말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큰 구원을 얻은 후 영원한 구원을 받기 전까지의 죄는 보상의 원리에 의해 죄가 사해 진다는 말밖에 안된다. 백원어치 죄를 짓고 천원어치 선한 일을 하여 백원어치 죄를 감해 주지 않는다면 죄가 씻음 받을 길이 없을 것이다. 어떻게 하겠는가? 예수님 피로 속죄 받는다고 하여 스스로 영원한 구원을 포기하겠는가? 아니면 보상설에 의한 비 정통적 비 기독교적인 속죄관을 취하겠는가?
6) 율법은 다 지켜야 하고 또 지킬 수 있는가?
성경에서는 율법을 폐하였다고도 하고(엡 2:15), 또한 완성되었다고도 한다(마 5:17). 하지만 이 두 가지 상반되는 것 같은 말은 모순된 말이 아니라 같은 뜻의 다른 표현이다. 즉 집을 짓기 위한 건축 설계도가 있다면 집을 지음으로 그
설계도는 완성되었고 이제 더 이상 필요치 않으니 폐하여진 것이다. 율법은 예수 그리스도로 완성되었고 또 폐하여졌다. 그런 의미에서 율법이 폐하여 졌다는 일련의 성구를 소개함으로 안식교의 율법 수행의 의무는 비성서적이 된다.
엡 2:15 "원수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히 7:18 "전엔 계명이 연약하며 무익하므로 폐하고."
히 8:7 "저 첫 언약이 무흠하였더면 둘째 것을 요구할 일이 없으려니와"
히 8:13 "새 언약이라 말씀하셨으매 첫 것은 낡아지게 하신 것이니"
히 10:9 "...그 첫 것을 폐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니라".
갈 2:21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았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
물론 한국 안식교 우목사는 율법을 다 지킬 수 있다고 하였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지키지 못할 법을 하나님이 주셨다면 하나님은 사랑이 못된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성경과 하나님을 오해한 것이다. 성경의 가르침은 언제나 온전한 수준에서 말하기 때문에 그 목표는 완전한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하나님의 온전하심같이 너희도 온전하라고 할 때 우리는 하나님처럼 온전해지지는 못하나 그것이 온전해지려는 푯대요 목표인 것이다.
과연 안식교 주장대로 그들이 말하는 조사 심판에서 흠도 티도 없이 인정하도록 율법을 다 지켰다는 확신이 주관적인 면에서 있을까?
고령이 되도록 율법을 다 지키려고 힘썼는데도 만일에 소신이 없다면 구원받을 자가 없을까 봐 염려스럽다. 물론 다 지켰고 확신이 있다고 대답한다고 해도 지키지 못했음을 증명할 길이 없으니 역시 어리석은 판단이 될 수밖에 없지만 일단 모든 안식교인들에게 진실하게 묻고 싶은 질문이 아닐 수 없다. 안식교도들도 장례를 치르고 있어 율법대로 하지 않으며(민 19:11-13), 월경 중의 금기 사항도 지키지 않아 율법대로 하지 않는 모양이니(현대종교 1986년 6월호 p.183) 어쩔 수 없이 다 지키려고 조차하지 않는 것이 아닌가?
7) 영혼멸절의 문제 : 인간의 영혼은 소멸하는 것이다.
안식교는 영혼을 인정해 놓고 사람의 영은 사람 전체를 가르치는 것이고, 영혼은 육체와 분리될 수 없는 것이며, 육체가 죽을 때는 소멸해서 없어지는 것이지, 인간이 불멸의 영혼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 그러나 성경은 인간의 영혼은 죽음과 함께 소멸하는 것이 아니라 천국 또는 지옥에 들어가게 된다고 증거하고 있다(요 5:28 ; 마 13:42 ; 눅 16:22-24). 더구나 안식교는 여호와 증인의 주장과 같이 영원한 지옥과 사후의 영혼의 존재를 부정함으로 소위 영혼멸절설을 취하는 자들이다. 즉, 의인은 부활하여 영생하지만, 악인은 부활하여 불태워 소멸되기 때문에 지옥도 존재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 기본교리 27] pp.340-341)
그러나 성경은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롬 3:20)하여 안식교의 교리를 부정합니다. 또 마지막 날 의로운 사람은 영생에 들어가서 주님 앞에서 얻을 수 있는 충만한 기쁨과 시원함을 얻으나(마 25:31-34, 행 3:19, 살후 1:7), 하나님을 모르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복종치 않은 사악한 사람들은 영원한 고통에 던지어져 주님 앞에서 처벌받아 영원한 파멸에 빠지게 된다고 가르칩니다. 멸절되는 것이 아니며 이 형벌 기간도 시한부적인 것이 아니라 영원한 것입니다(마 25:41, 46, 살후 1:9).
8) 계시론
안식교에서는 비록 성경만이 모든 교리의 기준이며 하나의 신경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엘렌 지 화이트가 보았다는 환상이나 그녀가 쓴 책들 또한 그들의 특별계시이다. 특히 말세의 참 교회의 특징은 예언의 은사를 가진다고 주장하는데 바로 엘렌 지 화이트야말로 그 `예언의 신의 은사`를 받은 선지자로서 그가 받았다는 계시가 말세의 백성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지시라고 주장함으로 안식교는 성경 계시 외에 다른 계시를 가진 자들이다.([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 기본교리 27] p.203, 205-211, 156-157)
9) 조사심판 교리 : 재림 문제
안식교는 또 <제칠일안식일 예수재림교회>라는 종파 명칭에서 보여주듯 예수님의 재림 교리가 상당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안식교는 2,300주야만에 성소가 깨끗하게 된다는 다니엘 8:14의 예언에 근거해서 1844년에 예수님이 1차 재림을 했다고 주장한다. 안식교는 예수님의 2차 재림 전이 있기 전에 조사 심판 기간이 있으며, 이 조사 심판 기간 후에 종말과 신천신지가 도래된다고 한다.
이미 앞에서 언급한 2300주야 문제가 터무니없는 것임이 입증된 마당에 조사심판 교리 또한 터무니없는 것임은 자연스런 결론이다. 그러나 1844년 10월 22일에야 예수님께서 하늘 지성소에 들어 가셨다는 점에 대하여만 비판을 가해 보자.
첫째, 구약에 대제사장이 1년에 한번씩 지성소에 들어가는 것이 이 조사심판 교리를 위한 예시인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위한 예시인가?
이것은 조사심판을 위한 것임이 아니라 예수님의 몸을 단번에 드린 십자가 사건을 말하고 있으며
(히 10:10-12), 1844년에 지성소에 들어가 대제사장의 직무를 감당하신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대제사장의 직분을 감당하신 것을 나타낸다(히 9:1-7,11, 25:26).
둘째, 히6:20의 예수께서 휘장 안(지성소)에 들어 가셨느니라는 말이 1844년에 들어가신 것을 예언한 것인가?
여기서 사용한 "들어 가셨느니라"는 "에이셀센"은 분명히 과거 시제이다.
만일 예수님이 1844년에야 들어가셔서 조사심판을 하고 계시다면 조사심판 전에 죽은 자와 그 후에 죽은 자 들의 구원 방법이 달라지지 않겠는가? 만일 다르지 않다면 안식교가 말하는 1844년의 조사심판의 시작설은 아무 의미가 없다.
10) 음식에 관한 문제
음식문제에 있어서도 율법 문제와 직결된다. 구약에서 부정한 음식을 정하였다. 에덴 동산에서는 아예 육식을 금하고 채식만 하였다고 안식교들은 본다. 한국 안식교 우목사는 다니엘이 채식만 했던 것을(단 1:8,12) 말하고 있으나 그것은 부정한 짐승을 금하고 깨끗한 짐승은 허락하는 원래의 의미와는 다른 의미이다. 또한 베드로가 고기를 금한 것도 같다(행 10:14). 더욱이 그가 우리 몸이 성전이라고 한 고린도전서 3:17의 의미도 여기에 맞지 않는다.
아무튼 안식교에서는 현세의 완전한 성화와 품성의 변화를 주장하여 부정한 음식과 육식을 금하고 채식을 강조한다. 한 때 미국에서 의사로 일하고 있다는 어느 안식교인이 TV에 출연해서 앤돌핀 등을 거론하면서 건강법에 대하여 말한 적이 있었다. 요점은 고기는 먹지 말고 채소를 먹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사실은 채식은 안식교의 중요한 교리이며 교묘하게 안식교의 교리를 TV 방송을 통해서 전한 것이었다. 안식교에서는 사람이 이 땅에서 완전히 거룩하게 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따라서 육식은 거룩하게 되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이라며 금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첫째, 고기는 다 먹지 않아야 하느냐?
안식교 교리도 구약의 가르침도 그렇지 않다. 그러나 유독 한국 안식교도들만이 어떤 고기도 먹지 않았다는 다니엘이나 베드로의 경우를 더러운 것만 금하는 율법의 의미로 바꾸어 사용하였다.
둘째, 신약시대에도 구약의 더러운 음식문제가 적용되는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자유를 주셨다. 베드로의 환상 문제(행10장)는 뒤로 미루고 먼저 바울의 제사문제를 들어 설명해 보자.
틀림없이 구약시대에는 제사 음식은 먹지 못하게 되어 있다. 다니엘이 어떤 고기도 먹지 않았던 이유도 고기가 이방신에게 먼저 바쳐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바울은 고전8장에서 분명히 우상 제물에 대하여 자유를 인정했다.먹지 말라는 말은 없고 오직 사랑의 법에 의해 먹든 먹지 않든 형제를 넘어지게 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 점에 대하여 롬14장에서는 더욱 분명하다. "먹는 자는 먹지 않는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못하는 자는 먹는 자를 판단하지 말라"(3절) "식물을 인하여 하나님의 사업을 무너지게 말라 만물이 다 정하되 거리낌으로 먹는 사람에게는 약하니라. 고기도 먹지 아니하고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고 무엇이든지 네 형제로 거리끼게 하는 일을 아니함이 아름다우니라"(20-21절).
또한 베드로의 환상 속에서 하나님은 더러운 것들이 가득 있는 보자기를 보여 주시며 그것을 잡아먹으라고 하였다(행 10:12-13). 이것은 환상이라고 할것이다. 또는 이방인에게 복음을 증거 하시려는 하나님의 비유 계시라고 볼 것이다. 즉, 환상이요 비유이다. 그런데 그 비유와 환상을 통해 하나님께서 자신의 율법을 파괴하시며 비유하시고 계시하실 수 있겠는가? 먹지 못할 짐승들을 보여 주시며 환상 속에서는 잡아먹을 수 있고 실제로는 먹을 수 없다는 것을 가르치셨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것이다.
이외에도 안식교는 성례등 여러 부분에 있어서 기성 교회와는 다른 교리를 가지고 있다.그들은 영혼멸절설, 조사심판설, 영혼수면설, 율법으로의 구원,예수 그리스도의 인성 부인 등 성경에 어긋나는 가르침을 믿고 전파하고 있다. 책을 소개한다면서 그들의 이단성을 슬쩍 숨기려고 하는데 쉽게 안 될 겁니다.
책들-월간[시조]
[오직 성경만이 판단기준이다]-저자:신계훈,여운사출판
[기독교를 조각한 불칼]저자-엘른 지 화잇,여운사출판
[영원에 이르는 길]저자-엘른G,화잇 시조사출판
안식교와 관련된 기관은 위생병원, 삼육식품, 삼육초.중.고.대학교, SDA영어학원등 수많은 의료 교육기관을 가지고 있으며 출판 시조사, 월간<시조> 월간 "교회지남"등이다. 그외 사회사업기구로 구호봉사회, 성육원, 한국절제회 등이 있고, 등을 경영하고 있다.
혹자는 `이단은 이단이고 제품이 좋으면 살 수도 있는 것 아니냐`고 반문을 한다. 그렇다면 이렇게 한번 생각해 보자. 우리가 구입하는 이단 제품으로 인해 이단 집단의 자금력이 커진다고. 아니면 제품에 해당하는 이익금을 이단 교주에게 내가 헌금하고 있다고...
5. 연구결론
안식교는 율법주의적 구원론, 토요일 안식일 문제, 엘렌 지 화이트의 계시론, 영혼멸절설, 영원지옥부재설, 또는 조사심판 및 2300주야 문제 등의 비성경적인 교리를 주장하는 이단이다. 그런데도 이들이 건강문제를 앞세우고, 정통교회를 표방하는 요소가 있기 때문에 그 미혹성이 더 심각하다 할수 있다. (예장(통합))
안식교 비판을 마치면서 느끼는 것은 엄청난 이단인 안식교도들이 변절하고 위장하고 동일시하며 서식하고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의 한분파로 아는 실수를 하고 있음을 지적 안할 수 없으며, 교회는 바로 알고 성도들을 일깨워야 한다. 끝으로 부탁하고 싶은 것은 성경의 인간론과 구원론,재림론,안식일에 대한 교리를 바로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참된 복음을 믿고 받아들여 자유함을 누릴 수 있기 바란다. 예수님은 율법을 폐하러오신 것이 아니라 완성하고 또 성취시키려 오셨으며(마5:17, 18)구원은 은혜로 된 것이지 행위로 되는 것이 아니다. 꼭 안식일을 지키거나 음식을 가려먹는 것 등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롬11:6 , 갈3:21, 22, 갈3:11, 히 10:38). 의롭게 되는 것도 믿음으로 (갈 2:16)되는 것이며 그리스도 안에서 참 자유와 구원을 얻도록 힘써야 한다. (기성)
비록 안식교가 성경을 사랑하고 있고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을지라도 이단이 되었고 어떤 면에서 더 무서운 이단이 된 것이다. 성경은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고 했다. 진리를 떠났기 때문이요 다른 구원을 말하기 때문이요(행 4:12), 다른 교회를 주장하기 때문이다(고전 3:11).(월간 현대종교 최삼경 목사)
안식교는 교육, 의료, 사회사업, 구호활동 등 여러 가지 선한 사업으로 괄목할 만한 포교와 성장을 해왔다. 또한 안식교도들의 도덕적인 성실성과 윤리성은 기성 교회의 교인들보다 뛰어나다고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도적적인 선행이나, 배타적 선민의식은 차치하고라도 잘못된 구원론과 종말론, 안식일에 대한 교리 등은 기성 교회에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이질적이고 이단적인 요소가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안식교의 선행이나 도덕성은 과감히 본받되 교리만은 절대 받아들여서는 안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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