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살던 고향은
안홍진(출향 작가)
서울로 향하는 길목에 위치한 곳. 500년 백제 시대 때부터 번성했던 마을, 양평이 내 고향이다. 동해 일출을 보러 가려면 지나칠 수밖에 없는 양평군(郡)이다. 요즘 서울에서 출발하는 고속도로 문제로 전 국민의 중요한 관심을 받는 바로 그곳이다. 야당이 제기한 시비로 잠시 양평군민의 꿈이 접힌 듯하다. 하지만 서울 사람들이 양평을 빠르게 오가고, 경유할 때 교통 문제가 해결될 것이기 때문에 그 꿈은 곧 이루어질 것으로 믿는다. 서울, 양평을 연결하는 ‘큰 도로’ 건설의 경제성은 정치적 논쟁을 비껴갈 것이다.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던 옛 정치인의 말을 웃음과 함께 떠올리며 마음을 누그러뜨린다.
양평은 6.25 전쟁 때는 유엔군과 중공군 사이에서 격전이 있었던 곳이기도 하다. 그만큼 대한민국 전체를 아우르는 지역적 요충지였다는 의미일 것이다. 양평 서쪽의 명소 중에 두물머리가 있다. 남한강, 북한강이 만나는 지점이다, 두 개의 물줄기가 만나는 곳이라서 두물머리라는 이름을 얻었다. 인공지능과 데이터 기술을 기반으로 어느 회사는 금융과 테크놀로지의 접목이라는 의미로 회사 이름을 ‘두물머리’에서 따기도 했다.
양평은 그 인접성과 산자수명(山紫水明)한 자연경관으로 서울시민의 휴식처 역할도 한다. 도시인의 바쁘고 치열한 경쟁적 생활에서 쌓인 스트레스 해소는 물론 치유의 시간을 베풀기도 한다. 황순원 문학관을 비롯한 잔아 박물관, 군립 양평미술관, 문화센터, 군립도서관은 물론 면 단위까지 들어선 작은 도서관은 양평군민의 문화적 품격을 보여주는 긍지의 표상이다. 문학관과 박물관은 타지 사람의 관광 명소로 알려졌다. 세미원은 18만 제곱미터의 자연정화 공원이다. 세미원 연꽃 필 무렵이면 꽃을 즐기려는 완상(玩賞) 객, 사진작가, 견학 온 학생들이 전국에서 모여들어 두물머리 일대는 교통체증을 일으키기도 한다. 요즘은 중단한 허수아비 축제도 있었다.
동서양 따질 것 없이 문명은 강을 끼고 발달했다. 황하 문명, 나일강 문명, 인더스강 문명 등 역사가 증명하는 사실이다. 독일, 네덜란드 스위스 등 여러 나라를 거치며 흐르는 라인강변의 도시들, 센강, 허드슨강변의 파리, 뉴욕 역시 강을 끼고 이루어 낸 도시 문명이다. 양평군(郡)은 지리상으로 보나 역사적으로 보나 대한민국의 상징적 지역이다. 남한강과 북한강이 머리를 맞대고 만나는 두물머리가 있지 않은가? 양수리(兩水里)는 지명은 두물머리라는 뜻의 한자어다. 강 하나에도 수많은 문명이 피어났는데 두물머리이니 말할 것도 없지 않은가? 북한과 남한이 통일된다면 두물머리는 더욱 그 빛을 발할 것이다.
조선 후기 최고의 화가인 정선은 '독백탄’이라는 그림에서 두물머리의 풍광을 찬미했다. 물이 있는 곳은 몸과 마음은 쉽게 힐링이 되기도 한다. 산과 함께 강이 모이는 자연이 주는 선물을 인간은 만끽하게 된다. ‘물이란 참 특이한 존재로이다. 늘 낮은 곳으로만 흐르고, 또 흐르다 돌을 만나도 싸우지 않고 돌아서 흘러가 버리고 만다.’ 노자는 물이 흐르는 모습을 보면서 낮아짐을 생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물이 돌과 다투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잘 참고 다른 방법을 찾는 지혜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그는 물의 모습을 보면서 자기 자신의 고집과 자존심 때문에 늘 불협화음을 만들어 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물의 성품과 비교해 보니 더 어리석게 보였다고 했다.
산도 이름난 명산(名山)이 많다. 용문산은 용문사를 품은 명산이다. 용문사는 천년 고목(古木) 은행나무로 유명하다. 용문까지 전철이 들어와 서울서도 편하고 빠르게 올 수 있는 여행지가 되었다. 꾸준히 인구가 늘어나는 양평은 서울로 통하는 요지로서 강원도는 물론 중부권 경상도와 동해안으로 향하는 길목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전원주택지로 떠오르는 곳이 바로 양평이다.
내가 태어난 곳은 양평군 지평(砥平)면, 막걸리로 유명한 그 지평이다. 작년 말, 고향에 순흥안씨(順興安氏) 종친 묘원(墓園)을 만들었다. 가슴과 머리가 늘 이곳으로 향하게 된다. 죽을 때 태어난 곳으로 머리를 향한다는 수구초심(首丘初心)인가 보다, 연어와 거북이 태어난 곳으로 가서 알을 낳는 귀소본능(歸巢本能, homing instinct)을 지닌 것처럼 그런 것이리라. 몇 해 전,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 작가가 작품을 썼던 이곳에 별장을 지었다는 소문이 돌았다. 작가에게도 지평이 고향 같았나 보다.
양평의 장래는 밝다. 서울 사람들이 재충전 시간과 에너지를 주는 땅으로 여기며 최적의 주거지로 꼽힌다. 수도권 시민의 안전한 수돗물도 양평에서 비롯한다. 아름다운 산과 맑은 물은 여전하다. 양평서 나고 자란 사람으로서 자부심을 가지게 된다. 앞으로 고향사랑기부제에 참여하여 작은 힘이나마 보태련다. 고향을 떠났지만 고향을 사랑하고 발전을 응원하는 마음은 그대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