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을 통해 사랑과 협력의 공동체를 꿈꾸다~ 伊-韓 최초 문화교류 ‘이탈리아 피렌체 국제음악페스티벌’ 개최 연주와 토론이 있는 ‘칸토룸 음악캠프’ 34번째 진행
입력시간 : 2015. 05.14. 17:06
민간 외교를 통해 조용히 대한민국을 알리는데 큰 몫을 하는 사람들이 곳곳에 있다. 전남대학교를 졸업하고 이탈리아 국립음악원을 졸업한 성악가(테너) 김치곤도 그 중 한명이다. 현재 이탈리아 피렌체 IL TRILLO 국제음악대학 성악과 석좌교수이자 칸토룸음악 대표인 테너 김치곤은 이탈리아 피렌체 국제음악페스티벌을 통해 한국의 문화의 우수성을 이탈리아에 알리는데 공헌하고 있다.
만토바국립음악원연주회
이탈리아 피렌체 국제음악페스티벌은 지난 2008년 김치곤의 모교인 이탈리아 만토바(Mantova) 국립음악원의 초청으로 정기연주회에 참가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재학시절에 이탈리아와 최초 문화교류 차원의 한국세미나 “Esotismo al contrario(이국적 정서에의 동경)”을 주최하기도 했다. 2010년에는 이탈리아 북부도시 CEREA, MONTE D'ALPONE, MANTOVA, RIVALTA 등에서 초청 연주를 했다. 2013년에는 이탈리아 피렌체 국제음악페스티벌에 한국 음악인 65명이 참가했으며 지난해에는 한국 음악인 145명과 이탈리아 현지 음악인 70명이 피렌체 시의 후원으로 국제음악페스티벌을 공동 개최하기 시작했다.
지난 1월과 2월에 한국 음악인 110명과 이탈리아 현지 음악인 135명이 참가하는 페스티벌을 성공리에 마무리했으며 내년에는 200여명의 한국음악인들이 참가할 예정으로 매년 많은 관심이 더해 가고 있다. 매년 3월에 피렌체에서 개최되는 피렌체 한국영화축제와 더불어 한국과 이탈리아의 문화를 교류하는 대표적인 페스티벌로 발전해 갈 것으로 기대한다.
오리엔테이션-교수들과 참가자들의 만남
이 피렌체 국제음악페스티벌은 연주회·마스터클래스·여행·한국 전통음악공연으로 진행되고 있는데, 피렌체 시의 주요 공연장에서 4일간 진행이 되고 각 분야 세계적 권위를 가진 교수진들과 함께하는 전공별 마스터클래스 디플롬 과정도 있다. 공연과 함께 로마, 베네치아, 피렌체, 피사, 밀라노 등 현지 문화 탐방 여행도 하게 되며 최근에는 광주지역 민간 전통음악 단체인 휘가 참가하여 한국 전통 음악공연으로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를 받기도 하는 등 피렌체에서는 한국전통음악연주단체들의 참가를 강력하게 요청하고 있다고 한다.
앞으로 한국과 이탈리아 예술가뿐 아니라 미국과 호주, 영국 등지의 예술가들이 참여하게 될 것이며 피렌체시와 한국의 예술도시와의 문화교류를 위한 자매결연을 추진 중에 있다. 동시에 피렌체시와 함께 국제음악콩쿨대회도 개최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김치곤이 피렌체와 이처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은 만토바 국립음악원 재학시절부터 이탈리아 현지인들과의 사이에서 얻은 신뢰때문이다.
그를 위해 1997년 만토바에서는 김치곤에 대한 이색적인 발표회가 있었다고 한다. 그 해에 개최된 이탈리아 문학페스티벌에 자서전 초대 발표 “Caok caok verso dell'ibis verso doloroso(따옥 따옥 따옥소리 처량한 소리)”가 있었다. 자서전의 내용을 페스티벌 형태로 한 공연이었는데, 김치곤에게는 잊을 수 없는 소중한 추억이다.
한국이탈리아연합합창단
이 같은 국제적인 페스티벌 외에 김치곤은 제자들을 위한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다. 음악을 통한 사랑과 협력의 공동체라는 의미를 담아 ‘칸토룸 음악’을 설립하고 1999년부터 매년 2회의 ‘칸토룸 음악캠프’와 2000년부터 매년 1회의 ‘미래를 향한 콘서트’를 개최하고 있다.
개인이 주최하는 캠프로는 가장 역사가 깊은 ‘칸토룸 음악 캠프’는 올해 7월이면 35회를 맞으며, 음악을 전공한 학생들이 모여 5박 6일 동안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참가자들 간의 연주와 토론의 시간인 공개 연주 수업과 이태리어 딕션 및 회화강의, 오페라의 역사 특강, 성악계 현안과 개인의 과제를 선정하고 조별로 발표 및 토론이 이뤄진다. 참가자들이 직접 지도자가 되기도 하고 학생이 되는 미니스쿨인 셈인데, 성악을 전공하는 학생들에게 큰 경험을 만들어주며 매년 그 인기를 더해가고 있다.
이처럼 자신이 하고 있는 음악에 대해 남다른 열정을 가지고 있는 김치곤에게 ‘성악가’의 길은 그다지 평탄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음악을 매우 좋아하셨고, 그 당시에는 상상하기 힘들었던 ‘성악가’가 꿈이신 분이셨다. 그래서였던지 김치곤은 아주 어려서부터 음악을 많이 듣고 자랐으며, 경음악, 영화음악, 색소폰 등 장르를 불문하지 않고 다양한 음악을 접할 수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에도 동요보다는 가요를 즐겨 불렀었다는 것을 보니 어머니의 음악에 대한 애정으로부터 영향을 받았음을 느낄 수 있었다. 어머니는 평양 출신으로 여장부셨는데, 어머니의 사업이 순탄했었더라면 음악가의 길을 걷는데 주저하지 않았겠지만, 고등학교 2학년 때 별 의미없이 인문계를 선택하고 진로에 대해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칸토룸 성악캠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악 시간이 마냥 행복했던 고등학생 김치곤에게 운명 같은 날이 있었다고 한다. 어느 날 점심시간에 학교 운동장에 있는 그에게 하늘에서 “너는 음악을 해라”는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누구도 믿기지 않겠지만 김치곤은 지금도 그 목소리가 생생하다.
늦게 시작했지만 타고난 재능이 있었던지 19살에 베를린(서독) 음대를 합격했다. 하지만 유학을 뒷받침해 줄 만한 형편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결국 포기하고 전남대학교 예술대학으로 진로를 정했다. 시내의 커피숍에서 피아노를 치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대학 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외국에서 공부하고 싶은 간절함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그러던 중 아내 이지연(소프라노, 예원예대·광주대·호신대·광신대 강사역임·(현)서울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강사)을 만나 결혼을 했는데, 결혼 축의금만 달랑 들고 이탈리아 유학을 결심했다. 이때도 잊을 수 없는 사건이 있었다. 아내와 함께 출국하기 위해 공항에 갔다가 가진 돈을 모두 잃어버려 죽도록(?) 뛰어다니다가 지하 3층에서 청소하는 아주머니가 가방을 들고 있어 겨우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그의 유학은 이렇게 어렵게 시작되었다. 다행히도 당시 역사상 가장 좋았던 환율 덕택에 적은 비용으로 공부를 할 수 있었고, 자신이 그토록 원했던 공부이기에 정말 열심히 했다.
5년 4개월을 공부하고 한국에 온 직후인 1997년 12월부터 제자들을 가르치며 대학에서 10년간의 겸임교수와 시간강사의 생활을 정리하고 이탈리아로 자리를 옮겨 지금에 이르고 있다.
자신이 워낙 힘들게 공부를 했기 때문에 제자들에 대한 마음이 각별한 김치곤은 칸토룸 장학금을 조성하는 등 하나라도 더 가르쳐주기 위해 애쓰고 있다. “옛날 서당 훈장의 마음으로 아이들을 마주하고 있다”는 김치곤의 진심이 느껴진다.
자서전 출간
나이가 더 들면 ‘피아노가 있는 카페’에서 음악회를 열고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이 꿈이라는 김치곤. 그의 바람이 이뤄져 피아노 선율이 흐르는 아름다운 공간에서 작은 콘서트를 열고 있는 그를 만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