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색계 안료
먹 [墨(묵),松煙,油煙 ]
* 松煙 - 소나무를 태운 그을음.
* 油煙 - 기름이나 가스, 관솔 따위를 불완전 연소시킬 때 생기는 검은 연기.
* 전해 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후한(後漢)의 서도가인 위탄(韋誕)이 발명했다고 한다. 그 이전에는 죽목(竹木)의 첨필(尖筆)에 흑칠을 해서 간독(簡牘 : 대쪽과 얇은 나무쪽)에 썼다고 학자들은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위탄이 태어나기 이전의 문헌인 ≪후한서≫의 등황후전(鄧皇后傳)과 후한의 명제(明帝)가 창수(創修 : 만들고 고치다)한 ≪동관한기 東觀漢記≫에 2세기 초인 화제(和帝) 때 각국에서 한나라에 먹을 헌납했다는 기록이 있다.
또 나라에 대사가 있을 때면 황제는 황태자나 고관·학자에게 먹을 하사하여 은총을 표시했다고 한다. 즉, 먹은 전국시대에 있어서도 서사용(敍賜用)으로 사용되었던 것 같다.
“춘추(春秋) 제(齊)의 오패(五覇)의 한 사람인 환공(桓公)은 정치 개혁을 위해서 소리(小吏)에 명하여 그의 명령을 필묵을 사용하여 목독(木牘 : 나무 조각)에 적었다.”는 기록이 ≪관자 管子≫에 보인다.
고고학적 발굴에 의해서도 은대(殷代)의 갑골 문자는 먹〔墨〕이나 적(赤)의 액체를 사용해서 썼다는 것이 실증되고 있다.
먹의 제조 방법은 다음과 같다. 용기에 기름을 가득 넣고 심(芯)에 점화시켜 태워서 생긴 매연을 긁어모아 고무질 혹은 교질(膠質)을 혼합하여 호장(糊狀)으로 만든 다음 조그만 틀에 부어 굳힌다.
이와 같이 고대에는 그을음〔煤〕에다 기름을 개어서 만든 일종의 유연묵(油煙墨)을 가지고 인쇄를 하였던 것 같다. 그을음은 불을 사용하여 자연적으로 되는 것이므로 그을음을 사용하여 먹을 만든 것은 예로부터 행해졌던 것으로 추측된다.
유연묵의 제조법은 불을 잘 조절해서 유연을 채취하여 만드는 것인데 송유(松油)·동유(桐油)·석유(石油) 또는 칠(漆) 등이 사용되었다. 이 중 동유의 사용은 훨씬 뒤의 일이다.
동유를 태워서 그 탄소분(炭素粉)으로 제조한 먹을 ‘동화묵(桐花墨)’ 또는 ‘동매(桐煤)’라고 한다. 이 동매는 질이 견고하고 광택이 난다.
≪잠확유서 潛確類書≫에 의하면, “고대에는 칠유(漆油)로 쓰다가 뒤에 모두 석묵(石墨)을 쓰게 되었으며, 한(漢)나라 이후에 와서 송연(松煙)과 동매가 성행하면서부터 석묵은 사라졌다.”고 한다. 송유는 유연을 뽑는 것으로는 가장 많이 사용되어 왔다. 오늘날에도 제묵의 최량의 재료로 되어 있다.
송연을 재료로 해서 만든 먹을 송연묵이라 한다. 이 송연묵이 2세기 이전에 이미 사용되었다는 것은 위(魏)나라 무제(武帝)의 셋째 아들인 조식(曹植)의 〈악부시 樂府詩)에 “먹은 송(松)의 매연으로 만든다”라는 것으로도 증명이 된다.
이 송연묵은 안후이성산(安徽省産)이 가장 유명했다. 명나라 도종의(陶宗儀)의 ≪철경록 輟耕錄≫에 의하면, “당나라 때 고구려에서 송연묵을 세공으로 많이 바쳤다.”고 하였다.
아교〔膠〕도 제묵의 중요한 성분이다. 이 아교는 보통 사슴의 뿔이나 우피(牛皮)·어피(魚皮) 등에서 정제된다. 이들 원료를 물에 적셔 부드럽게 한 뒤, 삶아서 사(紗)나 목면의 포(布)에 씻어 맑은 액체를 만든다. 아교와 그을음의 배합은 제묵법의 비밀로 되어 있었다.
그밖에 아교의 취기(臭氣 : 좋지 못한 냄새)를 없애기 위해서 사향(麝香)이나 장뇌(樟腦)를 증류하여 얻은 방향(芳香 : 꽃다운 향기)이 있는 백색 결정체의 향료 또는 박하 등의 향료를 가미하기도 하였다.
한대(漢代) 이전의 먹의 형태에 대해서는 확실히 알 수 없다. 한대 이후의 먹은 환형(丸形)이나 편평(扁平)한 형태로서 원주형(圓柱形)·방주형(方柱形)이었다. 뒤에 와서 여러 가지 모양의 것이 나타났다. 미적 취향에서 그림이나 문자를 장식하기도 했고 금분(金粉)이나 회구(繪具)로 채색하기도 하였다.
우리 나라에서는 언제부터 먹을 사용하였는가를 문헌에 의하여 보면, 고구려시대에 송연묵을 당나라에 세공으로 바쳤다는 기록이 ≪철경록≫에 나타난다. 이로써 삼국시대에 벌써 먹이 성행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고구려 고분 중 모두루묘지(牟頭婁墓誌)가 발견된 경내의 전실(前室) 정면 상벽(上壁)에는 가로세로로 그어진 계선(界線)에 매항 10자 총 81항의 사경체(寫經體) 묵서가 있다.
≪묵사 墨史≫ 고려조에 의하면, 관서 지방의 맹주(猛州)·순주(順州)·평로성(平虜城)에서 생산되었던 먹이 주로 중국에 수출되었는데, 그중 맹주묵이 가장 좋았고 순주묵이 그 다음으로 손꼽혔음을 알 수 있다.
신라에서도 비교적 정품(精品)의 먹이 생산되었다. 양가(楊家)·무가(武家)의 먹은 모두 송연묵으로서 그 품질이 매우 좋았으며 현재 일본의 쇼소원(正倉院)에 남아 전한다.
고려묵(高麗墨)은 묵광이 번쩍이고 묵향이 코를 쏘는데, 이는 송연을 취재하여 정제한 때문인 듯하다. 조선 정조 때의 대제학 서명응(徐命膺)의 ≪고사신서 攷事新書≫에는 조림매묵법(造林煤墨法)이 자세히 적혀 있다.
“송연 열 근과 아교 네 근, 물 열 근을 배합하여 먹을 만든다. 구체적으로는 물 아홉 근에 아교를 담가 동분(銅盆)에 넣어 녹인 다음 연(煙)이 섞일 때까지 나머지 한 근의 물로써 씻어 별기(別器)에 담아 물을 뿌리면서 수없이 찧어 만들어낸다.”는 내용이다.
우리 나라에 있어서 송연묵(숫먹·개먹)으로는 양덕(陽德)의 산품이 유명하고, 유연묵(참먹)은 해주의 것이 유명했다. 그리고 한림풍월(翰林風月)을 비롯하여 초룡주장(草龍珠張)·부용당(芙蓉堂)·수양매월(首陽梅月) 등이 상품(上品)이었다. 대개 목판 인쇄에는 송연묵을 썼으며, 금속 활자 인쇄와 서예에는 주로 유연묵을 사용하였다. → 문방구
≪참고문헌≫ 攷事新書(徐命膺)
≪참고문헌≫ 輟耕錄(陶宗儀)
≪참고문헌≫ 墨史(陸友)
* 먹은 기름을 태운 그을음을 가지고 만드는 유연묵(油煙墨)과 송진을 태워서 만드는 송연묵(松煙墨)으로 크게 나눌 수 있는데, 전자는 금속활자로 인쇄할 때 사용하고 후자는 목판인쇄에 사용한다. 먹의 형태는 초기에는 둥글거나 원주형(圓柱形)이었으며 점차 다양한 모양으로 만들어졌는데, 먹 위에 그림이나 문자를 새겨 장식한 것들도 있다. 먹은 후한(後漢)의 위탄(韋誕)이 발명했다는 설이 있으나 그동안의 고고학적 성과에 의해 한(漢) 이전에 이미 사용되었음이 밝혀졌다.
은대(殷代)의 갑골(甲骨) 가운데 검거나 붉은 액체를 사용한 것이 출토되어 BC 2500년 이전에 먹이 사용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기록상으로도 위탄 이전의 책에서 먹에 관한 기록이 발견된다. 이때 사용한 먹은 석묵(石墨)이었을 것으로 짐작되며, 지금과 같이 탄소의 분말을 이용하여 만든 것은 한대 이후부터이다. 한국의 먹 가운데 현재 전해지고 있는 가장 오래된 것은 일본의 쇼쇼인[正倉院]에 소장되어 있는 신라의 먹 2점이다. 이것은 모두 배 모양이며 각각 먹 위에 "新羅楊家上墨", "新羅武家上墨"이란 글씨가 압인(押印)되어 있어 신라시대에 무가와 양가에서 좋은 먹을 생산했다는 것을 알려준다.
또한 고구려에서 당에 송연묵을 보냈다는 기록이 중국의 〈철경록 輟耕錄〉에 보이며, 고구려 고분에서도 묵서명(墨書銘)이 발견되었다. 이러한 것은 삼국시대에 좋은 먹이 생산되고 널리 보급되었다는 것을 알려주는 증거들이다. 그후 조선시대에는 다양한 종류의 먹이 제작되었다. 한국에서는 양덕(楊德)과 해주(海州)의 먹이 예로부터 가장 유명하다.
먹을 뜻하는 한자인 <묵(墨)>자는 검을 흑(黑)과 흙 토(土)의 합자로, 고대 중국에서 천연으로 산출되는 석묵(石墨;墨鉛)의 분말에다 옻[漆(칠)]을 섞어서 사용하였다고 한다. 먹은 매연(煤煙)으로 만드는데, 먼저 소나무를 태운 그을음을 모아 응고시킨 다음 동유(桐油)나 청유(淸油)에 섞어 뭉쳐서 만든다. 기름은 극히 미량이 들어가고 대부분은 송연(松煙)이다. 한국에서는 해주(海州)에서 나는 송연으로 만든 먹을 으뜸으로 쳤고, 중국에서는 명나라 때에 안후이성[安徽省(안휘성)]의 후이저우[徽州(휘주)]에서 만든 먹이 가장 좋다고 알려졌다.
먹의 제법
먹을 만드는 순서는 다음과 같다 ① 먼저 소나무의 송진을 모두 뺀 다음 나무를 벤다. ② 소나무장작을 적당한 크기로 자른 다음, 기다란 대나무올로 비닐하우스의 뼈대같이 만들어 세우고 종이와 가마니 등으로 완전히 봉한다. 이때 연기가 빠져나갈 수 있도록 통로를 만든다. ③ 며칠동안 소나무를 태워 연기가 빠져나가게 한 뒤, 식히면 그을음이 떨어지는데, 이것을 모아 둔다. ④ 물에 넣어 품질을 조사하는데, 물에 가라앉는 것이 좋다. ⑤ 아교를 적당히 넣는다. ⑥ 향료를 넣을 때에 금가루를 약간 넣는다. ⑦ 사향을 넣을 때도 향기가 약간 풍기도록 조절한다.
송연묵(松煙墨)과 유연묵(油煙墨)이 있다. 송연묵은 노송을 태워 그 연기에서 뽑아 낸 매연을 아교로 반죽하여 만든다. 송연묵의 묵액(墨液)은 진할 때는 순흑색이나, 묽게 해서 희미해지면 푸른 기(氣)를 띤다. 특히 청색이 강한 것을 청묵이라고 한다. 송연묵의 입자는 유연묵보다 다소 거칠고, 벼루면과의 접촉이 다소 껄끄럽다. 유연묵은 유동(油桐)나무의 씨에서 짜낸 건성의 기름, 또는 참기름 등 식물성 기름을 사용한다. 묵액은 갈색을 띠는 검은색으로서, 벼루에 갈면 물에 석유를 띄운 것 같은 아름다운 색을 나타낸다. 양질의 유연묵은 흑자색의 광택이 나고 종이에 스미는 힘이 양호하다. 송연묵은 담묵(淡墨)으로 했을 때 가장 묵채(墨彩)가 풍부하며, 유연묵은 농묵(濃墨)으로 했을 때 그 광택을 발휘한다. 중급 이하인 먹은 흔히 광물성 탄소인 카본블랙을 이용하고 있는데, 검은 광채가 없고 먹빛도 좋지 않다.
고대에는 먹이 죽간(竹簡)이나 흰 비단에 쓰여졌으나 종이의 발명에 따라 글자를 쓸 때에는 꼭 필요한 용구가 되었다. 이러한 필기 용도 이외에, 당대(唐代)로부터 탑본(금석에 새긴 글씨나 그림을 그대로 박아내는 일)을 뜨는 데에도 사용되었다. 먹을 갈 때에는 벼루의 묵당(墨堂;먹을 가는 곳)에 물방울을 조금씩 부어서 갈며, 묵지(墨池)에 모은다. 묵지에 있는 물을 먹으로 끌어올리면서 가는 것은 좋지 않다. 먹은 45˚ 각도로 벼루면에 갈리도록 하며, 부드럽게 천천히 움직인다. 먹을 간 채로 묵당에 세워 놓으면, 좋은 벼루일수록 밀착되어 뗄 때 구멍이 나는 수도 있으므로 먹을 다 갈고 나면 즉시 종이나 천으로 닦아두어야 한다.
* 먹[墨]의 시초는 중국의 한대(漢代) 초라는 정설이 있다. 붓은 진대(秦代)의 몽염(蒙恬)이, 종이는 한대의 채륜(蔡倫)이 발명하였다고 하나, 먹의 발명자에 대한 기록이 없다. 다만 붓을 쓰기 시작한 때와 거의 같은 시기에 발명되었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먹이 발명되기 이전에는 문자를 골편(骨片)이나 금석(金石)에 새겼다. 이를 갑골시대(甲骨時代)·금석시대라 한다. 그 후 인지(人智)와 문화가 발달함에 따라 문자의 사용범위가 넓어지고, 갑골문이나 금석문만으로는 기록하기가 어려워지자 대나무 조각이나 나뭇조각 또는 천 등에 문자를 쓰게 되었다. 이때를 죽간시대(竹簡時代)라 한다. 당시 죽간에 쓰던 것은 붓이 아닌 죽정(竹挺)이란 것으로 옻[漆]을 묻혀 썼다. 그래서 그 문자의 획이 마치 올챙이 모양과 같다 하여 죽첩과두문자(竹牒蝌蚪文字)라고 하였다. 공자나 맹자가 쓴 글씨도 모두 이 죽간칠서(竹簡漆書)였다.
견백(絹帛)이란 천(명주)은 종이보다 다소 먼저 발명되었다. 죽간시대에 이미 명주에 글씨를 썼으며, 이 글씨는 붉은 단서(丹書:붉은 광석이나 돌가루를 반죽하여 그것을 붓에 묻혀 쓴 글씨) 아니면 검은 묵서(墨書)였다. 이때 묵서의 원료는 자연산 석날(石靭)이라는 일종의 광물이었다. 석날이란 오늘날 연필심으로 쓰이는 흑연(黑鉛)의 일종인 듯하며, 거기에 옻을 섞어서 썼던 모양이다. 그 후 문화가 발달됨에 따라 점차 그을음, 즉 연매(煙煤)를 옻 대신 썼다. 이어서 아교풀과 섞어 쓰게 되면서 드디어 제묵(製墨)의 단계로 옮겨지게 되었다.
전한(前漢)시대에도 오늘날과 같은 먹은 만들지 못한 듯, 당시에 쓰였던 얇고 편편한 벼루와 마묵구(磨墨具)가 낙랑채협총(樂浪彩瑩塚), 그 밖의 한대(漢代) 고분에서 출토되었다.
25∼220년 후한(後漢)시대에 이르러 비로소 오늘과 같은 먹을 만들게 되었는데, 그것은 종이의 발명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처음에는 송연묵(松煙墨)을 생산하였고, 유연묵(油煙墨)을 사용하게 된 것은 오대십국(五代十國)시대에 이르러서다. 당시 남당(南唐)의 후주(後主)가 먹의 사용을 장려하여 이정규(李廷珪)와 같은 유명한 묵공(墨工)이 나왔고, 그 후 송(宋)·원(元)·명(明)·청(淸) 등으로 이어져 오면서 많은 묵공이 배출되고 일품(逸品)이 생산되었다.
한국의 제묵 연혁을 살펴보면, 고대부터 먹을 사용하였다. 그러나 위만·낙랑시대에 중국의 것을 본받은 것이 사실인 듯하며, 신라시대에 들어와서 비로소 정품(精品)의 먹이 생산되었다. 신라의 양가(楊家)·무가(武家)의 먹은 모두 송연묵으로서 그 품격(品格)이나 질이 매우 좋았다.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에는 조선묵(朝鮮墨)의 황금시대를 이루었다.
일본에서도 먹은 매우 귀하게 여겼으며, 그들이 먹을 처음으로 만든 것은 고구려의 담징(曇徵)이 제지법과 제묵법을 610년에 전해준 데서 비롯되었다. 일본인 자신들도 이 사실을 시인하고 있으며, 이 밖에도 신라의 먹을 수입하여 매우 소중히 여겼다 한다.
* 동양의 먹은 서예의 무대 위에서 고색창연한 묵색을 자랑하면서 그윽한 묵향과 함께 많은 문인 묵객들의 사랑을 받아 왔다.
먹의 생명은 종이와 관련이 깊고, 먹의 맑고 깊은 세계는 도양인의 마음과 미의식을 가장 잘 나타내 준다. 서예와 수묵화의 세계는 곧 먹의 농담에 함축되어 있는 '玄'의 세계를 말하며 먹의 색깡ㄹ은 화려함이나 밝은 색이 아니라 고요한 가운데 기운을 품고 있는 독특한 색깔이다.
묵의 우리 말이 먹이다. 중국에서는 옛날에 천연 광물성 석묵을 사용하였는데 이는 요즘의 흑연이다. 현재 연필심으로 많이 사용되는 것으로 흑색 또는 회색이며 손으로 만져보면 미끈미끈하고 석탄이나 금광석과 같은 순수한 탄소이다. 이 석묵을 물에 녹이든지 옻칠을 혼합하여 사용한 것이 먹의 시초라고도 한다. 또다른 방식으로는 옻칠을 불에 태워서 그을음을 만들고, 또 소나무를 태워서도 그을음을 만들어 이 두 가지 연기의 검댕을 혼합하여 굳혀서 먹을 제조하였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 제조방법은 오늘날 탄소분말에 아교액을 섞어서 단단한 먹으로 제조하는 방법과 흡사하다.
610년 담징이 일본에 파견될 때 종이와 먹을 전하면서 그 제조법도 가르쳐주었다는 기록이 <일본서기>에 전하고 있어 우리의 먹 역사를 짐작케 한다.
먹은 원료에 따라 송연묵, 유연묵, 색상에 라담묵, 자묵, 고묵등으로 나눌 수 있다. 좋은 먹에는 카본 블랙(Carbon Black)이 잘 섞여 있다. 연대가 70년, 100년 정도 되는 묵은 광택이 없고 아주 깊은 색감이 나는데 이를 고묵이라 한다. 먹의 수명은 200년 이상 지속된다고 한다. 먹을 갈 때는 40도 정도의 각도로 눕혀 벼루 위에서 힘을 주지 않고 서서히 갈아야 한다. 물은 화학약품이 첨가되지 않은 증류수 같은 것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
■ 먹의 기원 ■
먹의 기원은 얘기가 각기 분분해서 확실한 고증은 없다. 은허의 발굴에서 나온 그릇의 파편에서 몇 글자가 나왔는데 여기에서 먹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어서 먹의 기원을 찾아볼 수 있다.
은나라에 이미 청동기, 갑골문자가 사용되었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혈거 생활을 하며 움막에서 제작된 것으로 청동기를 구워 만드려면 나무와 불이 필요하였다. 여기서 나오는 목탄이 필기용으로 사용되었으리라 추측해 볼 수 있다.
혹은 석묵이 사용되기도 했는데, 순수한 천연탄으로, 판대기 모양의 결정체이다. 오늘날에는 연필의 심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이것을 물에 용해시키면 곧 묵즙이 된다. 또 청동기를 제작하는데 수은과 유황이 사용되는데 이때 '朱'가 만들어 진다.
지금과 같은 붉은 먹으로 검은 먹 대신 붉은 글씨를 사용하기도 하였다.
춘추전국시대에 들어서 많은 사상가가 출현하고 사상을 기록하는 방법들이 나타나게 되었다. 그 당시는 아직 사상가들은 모두가 칠묵을 사용하여 쓴 옻글씨로서, 칠묵만을 사용하면 글자가 그다지 선명하지 못했으므로 여기에 묵즙을 가하여 선명한 윤택이 나도록 했다. 은나라에서 주나라에 이르기까지 먹에 관한 고증이 미비한 점이 많으나 현재 우리들이 생각하는 형태의 먹은 한나라 이후에 만들어졌다.
호북성 강릉현 한나라 무덤에서 발굴된 먹이 있는데 그 먹이 가장 오래도니 유물이다. 이 먹은 잘게 부서져 있었는데 소나무 그을음으로 만든 좋은 먹이었다. 소나무 그을음을 가지고 먹을 만든것은 한나라 시대에서 시작된다고 볼수 있다. 이때 먹을 굳게 하기 위하여 사용된 모제는 아교로 알려져 있고, 먹은 둥근 형태였다. 이 먹에 물을 붓고 연석(마석이라고 함)으로 문질러 잘게 부스러뜨려 먹물을 만들었다.
송나라 도이도가 쓴 [묵경]에 "예전에는 석묵과 송연(소나무 그을음) 2가지가 있었고, 위·진나라 이후에는 송연먹을 썼다."라고 말하고 있어서 위나라, 진나라 때에 와서 비로소 옻과 소나무 그을음으로 묵환(땅콩크기만한 먹)을 사용하였다.
11세기에 들어와 소식, 황산곡, 네불 등이 옛먹이나 명묵(좋은 먹)에 관심을 기울여 스스로 먹을 만들어 사용했다.
명대에 들어와 많은 먹이 생산되었는데, 우명한 라소화, 오거진 , 정군방, 방우노 등과 같은 장인이 나와 먹의 황금시대를 일으켰다.
청대에 들어와 황실의 적극적인 후원으로 좋은 먹이 생산되었다. 특히 건륭황제가 묵에 대한 남다른 애착을 보였는데, 이것이 유명한 [건륭어묵]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초기에 소나무 그을음과 녹교로 송연묵을 만들었다. 서울의 먹골, 묵정동은 옛날에 먹을 만들었던곳이다. 황해도 해주와 평안도의 양덕에서 먹으 많이 제조하였으며, 특히 해주먹은 중국과 일본에 수출되었고, 양덕의 먹은 향기가 좋아 이름이 널리 알려졌다.
■ 먹의 제조법 ■
먹을 만드는 주요 재료는 그을음, 아교, 향료 등이다.
먹을 만드는 주요 성분은 극히 작은 탄소 입자이다. 원형의 탄소 입자는 그 크기가 고를수록 좋은 먹이고 입자가 불규칙하면 좋은 먹이 되지 않는다. 먹을 만들 때는 반드시 아교로 응고시키는데, 아교는 동물의 가죽 또는 연골을 삶은 즙으로 만들기 때문에 냄새가 좋지 못하다. 그래서 먹에 향료를 섞는다.
그을음의 채집방법은 등유를 연소시킬때, 아주 작은 화염을 만드는데 이때 유리를 사용하여 계속되는 화염을 덮으면 앞쪽으로 상승하려는 연기는 유리마개에 부착된다. 이런 것을 채집한 것이 곧 그을음이다.
그을음의 좋고 나쁨은 화염과의 거리로 말미암아 결정되는데, 즉 화염과의 거리가 멀면 멀수록 좋은 그을음을 얻을 수 있게 되며 반대로 가까울 경우는 질이 좋지 못하다.
그을음은 기름의 품질과 종류에 따라 먹의 질이 달라진다. 채자유, 호마유, 춘유, 대두유에서 채취한 그을음이 좋고, 소나무 기름에서 채취한 송연묵은 먹중에서 가장 선명한 광채를 가지고 있는 고급품이다. 그렇지만 오늘날에는 소나무 원료가 부족하고 게다가 그을음을 채집하는 데 손이 너무 많이 가므로 제조하지 않고 그 대신 중유, 경유 등 공업유를 이용하여 먹을 만든다.
아교는 접착제로서 그 성분은 단백질이다. 합성수지라는 접착제를 만들어 내기 이전에는 아교를 사용하여 접착제로 썼다. 아교질은 야수나 물고기의 뼈, 가죽에서 나오는 액체를 건조한 후에 가공한 것이다. [묵경]에 의하면 "아교는 먹의 질을 결정시켜 주는데, 만약 좋은 아교가 없다면 아무리 조은 그을음이라 할지라도 우수한 먹을 만들 수 없다."고 하였다.
먹을 갈 때에 매끄럽거나 혹은 매끄럽지 않은 감각은 아교가 그을음을 억압하는 관계와 서로 조화된 관계에 달려 있다.
이 아교의 냄새를 제거하기 위해 향료를 섞어 쓰는데, 예로부터 묵향은 고귀한 향취로 사람을 그윽하고 심원한 세계로 이끌어낸다. 고대에는 천연향료를 사용하여 아교 냄새를 제거했고, 향료 중에는 사향노루의 사향을 최고로 여긴다.
그을음과 아교를 섞는 것을 연묵이라 한다. 연묵은 밀실에서 하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작은 탄소입자인 만큼 쉽게 바람에 날아가 버리기 때문이다. 또 그을음과 섞여 있는 혼합물을 제거하기 위하여서는 체로 쳐서 걸러낸다. 그런 연후에 약한 화로 위에 송판을 놓아 반죽한다.
요즘은 정연기가 있어 대량 반죽이 가능해졌지만 옛날에는 사람이 일일이 손으로 반죽했다. 목판위에 보통 그을음 600∼700g, 아교 120∼140g의 비율로 반죽한다.
반죽하는 시기는 한랭한 늦가을이나 겨울철이 좋다. 묵장(먹으 만드는 사람)이 오랜 경험으로 비비고 문지르고 여러 번 반복하여 먹을 만든 다음 마지막으로 틀에 넣어 건조시키면 완성된다. 먹의 모양은 틀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므로 먹의 문양, 글씨 등은 틀 속에서 만들어진다. 모형(틀)에 먹을 넣을 때는 사람의 체온과 비슷한 온도가 적당하다. 만약 온도가 지나치게 높으면 먹이 물러져 버리고, 또 낮으면 딱딱해지기 때문이다. 모형에서 뜬 먹은 재 속에 넣어두어 완전히 물기를 제거해 낸다.
그 다음 먹을 짚으로 엮어서 통풍이 잘 되는 곳에 매달아 건조시킨다. 다 마른 먹이 완전해지기까지는 30∼50년 세월이 지나야 좋은 먹색이 나는 먹을 만들 수 있다. 완전히 마른 먹은 광을 내고 금분잊나 은분 또는 청분, 붉은 색으로 문자나 문양을 도안한다.
■ 먹의 종류 ■
먹은 원료에 따라 종류가 다르다.
● 주묵 - 중국에서 고귀한 사람과 지체 높은 권문을 상징하는 뜻에서 주로 사용된 붉은 빛깔의 먹이다. 주묵은 수은과 유황, 납을 혼합하여 만들었는데 주묵은 무거우면 무거울수록 좋다.
●유연묵 - 주로식물성 기름인 채종유 같은 기름을 태워서 얻은 그을음으로 만든 먹으로 순도가 아주 높다. 오래될수록 먹의 고아택이 나며 아교 성분이 많은 편이다.
● 송연묵 - 이름 그대로 소나무의 송진이 타면서 만들어 내는 그을음으로 만든 먹이다. 이 먹은 먹색이 맑고 깊으며, 아교가 적다. 한나라 이후로 많이 만들어졌고, 중국 안휘성 황산에서 나는 소나무로 만든 것이 최상품이다.
● 양연묵 - 광물유에서 얻는 그을음으로 원료는 카본블랙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대부분이 다 화학원료인 카본블랙을 사용하여 먹을 만들고 있다.
● 채묵 - 주묵을 포함해서 5종이 있는데, 이것을 5채먹이라 한다. 대부분 그림과 장식용으로 만들어졌다.
● 석묵 - 자연산의 먹으로 중국 공양산의 묵산이라는 곳에서 많이 생산된다.
■ 좋은 먹을 고르는 법과 보관법 ■
좋은 먹은 우선 그을음의 입자가 가늘고 고와야 함은 물론 가볍고 탁하지 않으며 맑아야 좋은 먹이다. 되도록 아교질이 적고 단단해야 하고 향기가 좋아야 한다.
좋은 먹을 고르는 데는 먹색과 향기, 두가지 방법이 보통 쓰이는데 손으로 두들겨 보아 소리가 맑아야 하고 갈 때 소리가 나지 않고 윤기가 있는 것을 고르는 것이 좋은 선택법이다.
먹을 오랫동안 쓰지 않을 때에는 쑥속에 넣어두고 장마철에는 종이에 싼 다음 재 속에 넣어두면 질이 변하지 않고 곰팡이가 안 생긴다. 또 직사광선을 받지앟게 하며 갈던 먹은 깨끗이 닦아두는 것이 좋다.
석묵 [石墨,흑연(黑鉛 ,graphite), 흑석지(黑石脂)](광물)
탄소로 이루어진 육방정계에 속하는 광물. 탄소의 동소체(同素體). 석묵(石墨)이라고도 한다. 〔그림〕과 같이 탄소의 평면형6원환이 2차원적으로 연결된 층상(層狀)구조를 이룬다. 검은색이며 금속광택을 낸다. 굳기 1∼2, 비중 2.27, 쪼개짐은 {0001}로 완전하며, 지방 감촉이 있고 휨성이 뛰어나다. 천연으로 변성된 탄층이며 접촉변성암·편마암 등 속에서 산출된다. 녹는점 3700∼4300℃이지만, 공기 속에서 가열하면 500∼600℃ 이상에서 점화한다.
원자면(原子面) 안을 π 전자가 자유로이 움직여 돌아다니므로 전기양도체이고, 비저항(比低抗)은 층 방향으로는 10
Ω㎝ 정도이나 수직방향으로는 약 100배이다. 화학적으로 안정되고, 통상의 시약에 침범되기 어렵다. 또 층상구조를 이루므로 윤활성도 뛰어나다. 전기로용 전극·전기분해용 전극·브러시·내열도료·흑연도가니·내화벽돌·윤활제·감마제(減摩劑)·연필심 등 외에 원자로용 감속재(減速材)·반사재(反射材) 등에 널리 쓰인다. 오늘날에는 공업적으로 제조된 인조흑연이 사용되고 있다.
미국의 E.G. 애치슨은 1896년 탄화규소(SiC) 제조용로에서 SiC가 분해하여 흑연이 생성해 있는 것을 발견, 아크로에 의한 인조흑연제조를 생각해 냈다. 그리하여 인조흑연을 애치슨 흑연이라고도 부른다. 원자로에서는 감속재·반사재 및 연료체와 노심(爐心)구조재로 쓰인다. 탄소원자는 중성자의 흡수가 적고 가벼우므로(원자번호가 작다) 중성자를 능률적으로 감속시키는 성질을 지녀 중수(重水) 다음으로 뛰어난 감속재이다. E. 페르미가 만든 세계 최초의 원자로 CP-1에서도 감속재로서 흑연블럭이 사용되었다.
흑연은 비교적 값싸고 공업적으로 생산되며 기계적 성질이 좋고 가공성이 좋다. 또한 비산화성 분위기에서는 고온 특성도 좋으므로 발전용 원자로 개발 초기부터 중요한 재료였다. 현재 개발이 진행중인 고온가스로에도 흑연이 이용되는데, 이 연료는 산화물이나 탄화물의 연료물질을 흑연으로 피복한 피복입자연료이다. 이것은 흑연과 혼합하여 둥글게 빚은 정제로 만들어 흑연공 속에 봉입하여 연료체로 하는 것, 입자를 만들어 연료봉으로 하여 이것을 구멍이 많은 큰 흑연블록 속에 넣어 노심을 구성하는 것 등이 있다.→ 그래파이트
램프 블랙 lamp black
식물유,탈(tar),피치(pitch),송진(resin),중유 등의 불완전 연소에 의해 만들어진 탄소의 미립(微粒).
카본 블랙 [carbon black]
검은색의 미세한 탄소분말. 물질이 연소되어 생기는 그을음이다.
중국에서는 오래 전부터 먹으로 사용하였고, 20세기에 들어서 고무의 보강제(補强劑)로 쓰이게 되어 고무공업의 발전과 함께 카본블랙의 제조도 활발해졌다. 잉크·먹·그림물감 등의 용도 외에 중합체의 내후성(耐侯性)이 떨어지는 것을 방지하거나, 전기전도성의 향상을 목적으로 한 용도, 또는 탄소재(炭素材)로 쓰이고 있다.
카본블랙은 탄화수소가 열분해 또는 불완전 연소함으로써 생성된다. 따라서 제법은 열분해법과 불완전연소법으로 크게 나뉜다. 카본블랙은 탄소 육각형의 그물구조가 3~5층 겹쳐 사슬 모양으로 연결된 구조를 갖는다. 이 층에는 카르복시기(基)·히드록시기(水酸基)·카르보닐기 등의 기가 존재하는 것도 있다.
카본블랙의 물성(物性)을 지배하는 3가지의 요소는 입자지름·구조·표면의 성질(pH, 휘발성분)이다. 입자지름은 보통 10~500mμ인데, 입자지름이 작을수록 검은 색조가 강하고 착색력도 크다. 구조는 디부틸프탈레이트(DBP)의 흡착량으로 측정할 수 있는데, 각종 바인더에 대한 배합성, 점성도 등 외에 검정 색조에도 영향을 준다.
표면의 산화 상태는 물로 슬러리를 만들어서 그 pH를 측정하여 7 이하인 경우에는 산화된 것으로 본다. 표면의 상태는 각종 와니스(니스)류와의 친화성, 잉크의 유동성, 도료의 안정성에 영향을 준다. 그 밖에 흑연과 혼합하여 건전지에도 쓰이는데 이것을 전지블랙이라 한다.
종류 | 제조방법 | |
열분해법 | 열그을음 | 천연가스를 사용하여 축열로(蓄熱爐)에서 200~700℃로 가열하여 축열과 열분해를 반복한다 |
아세틸렌그을음 | 아세틸렌을 예열한 노(爐)에서 열분해한다 | |
불완전 연소법 | 채널그을음 | 가는 철판을 천연가스 불꽃으로 구워서, 만들어진 탄소를 부착시킨다. 수율(收率)은 나쁘다 |
노그을음 | 노 안으로 천연가스 또는 석유를 불어 넣어 불을 붙이고 공기량을 조절하여 불완전연소 시켜 생긴 탄소를 냉각시킨 뒤에 사이클론 등으로 모은다 | |
남포그을음 |
유채기름 가운데에 심지를 꽂아 불을 붙이고, 그 불꽃을 도기(陶器)에 대어 그을음을 만드는 방법. 이 그을음으로 먹을 만든다 |
차콜[charcoal],숯
목재가 열분해된 뒤에 남는 고체잔사(固體殘渣). 목탄(木炭)이라고도 한다. 숯은 숯가마에서 구워내는 흑탄(黑炭)·백탄(白炭)과 건류로 생기는 건류탄이 있다. 숯은 흑연·석탄·코크스 등과 같이 무정형탄소의 일종이다. 그레이. 진회색.
숯의 일반적인 용도는 연료이며, 취사·난방용으로 쓰인다. 백탄은 장시간의 난방뿐만 아니라 생선·고기 등을 굽는 데 좋다. 농업용으로는 표고버섯·담배·한천 등의 건조 및 양잠·제차(製茶)의 연료로 쓰인다. 지금도 활성탄 제조에 숯이 중요하게 쓰이고 있다. 활성탄은 분말과 입상(粒狀)이 있는데, 숯·야자껍질탄·톱밥 등으로 제조하며 탈색·물처리·가스세척·탈취 등에 널리 쓰인다. 제철야금용의 숯은 인·황이 적어야 하고, 금속규소용의 숯은 칼슘이 적어야 한다. 철 1t을 제조하는 데에 드는 숯은 제철인 경우는 970㎏, 금속규소인 경우는 1400㎏이다. 소나무숯은 도검의 제조에 적합하다. 금속의 표면에 침탄(浸炭)을 하는 데에 쓰는 침탄제로는 졸참나무·떡갈나무의 경질백탄이 사용된다. 이황화탄소용의 숯으로는 휘발분이 적은 경질의 백탄이 적합하며, 톱밥으로 만든 활성탄을 고온탄화한 활성탄도 사용한다. 흑색화약용의 숯은 오리나무를 350℃ 전후로 장시간 탄화시킨 것이 좋으며, 소나무숯도 사용된다. 용도는 광산화약·도화약(導火藥)이다. 연마용 숯은 후박나무·일본유동의 백탄과 마취목·송양나무를 특수제탄한 것인데 금속연마, 칠·칠보세공의 연마에 사용된다. 그림에 쓰이는 숯은 버드나무류·오동나무·오리나무·칠엽수를 특수한 항아리에 담아 제탄한다. 그 밖에 형성목탄(形成木炭)은 야외요리·레저용·스토브·각로(脚爐)·온풍난방기의 연료로 쓰이고, 숯가루는 골프장의 잔디 관리, 어스, 경계, 매장용 등 용도가 많다. 이 밖에 새로운 용도로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숯의 흡착성과 목초액(木醋液)의 탈취효과를 병용하여 축산의 악취방제에 사용한다. 토질이 나쁜 곳에 숯가루를 뿌려 녹화용 수목 등 묘목의 잔뿌리를 많게 하고 생장을 촉진시키는데, 해송을 새로 심은 해안림에도 숯가루는 뿌리를 발달시켜 생장을 촉진하며 더욱이 균근균(菌根菌)이 빨리 붙어 버섯이 생긴다. 맹종죽(孟宗竹)의 대나무숲에 숯·숯가루를 뿌리면 죽순이 빨리 돋는다.
본 블랙 (Bone black)(동물성)
동물의 뼈를 태워 만든 검은 색, Ivory Black
백초상 (百草霜)
백초상은 일명 당묵(당墨)이라 하며, 우리말로 '앉은 검정'이라고 한다. 즉 솥 밑에 붙은 검은 그을음을 말한다
백초상은 백가지의 초목을 태워서 만든 끄름.
독은 없다. 열독(熱毒)을 치료하며 적을 삭히고[消積] 체한 것을 풀며[化滯] 갑자기 생긴 설사와 이질을 멎게 한다. 부인의 월경이 고르지 않은 것, 붕루[崩中], 누하(漏下), 횡산[橫生], 역산(逆産), 태반[胞衣]이 나오지 않은 것도 치료한다[본초].
○ 『국방(局方)』에 가마 밑의 검댕이를 백초상이라고 하였는데 그것은 잘못 쓴 것이다. 오직 흑노환(黑奴丸)에만 이 2가지가 다 들어있다. 이것은 아궁이 마돌에 붙은 검댕이를 말하는데 조돌묵이라고도 한다.
○ 두메산골에 있는 오랜 아궁이 마돌의 검댕이가 좋다. 이것이 피를 멎게 하는 데는 제일 좋은 것이다[입문].
당묵(당墨, 가마밑 검댕)
고독(蠱毒), 중악(中惡), 혈훈(血暈)을 치료한다. 또한 쇠붙이에 상한 데 바르면 새살이 살아나고 피가 멎는다. 그러나 얼굴에 바르는 것은 삼가해야 한다. 그것은 검댕이가 살에 들어가면 글자를 새긴 것처럼 되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가마밑 검댕이다[본초].
통초회 (通草灰)
통초를 태워 만든 검은 재가루.
으름덩굴의 줄기를 한방에서 목통(木通) ,통초(通草),白通草(백통초),葱草(총초),通脫木(통탈목)이라 한다 .
석류흑(石榴黑)
석류 껍질을 말려서 태운 재가루.
오배자(五倍子, 붉나무열매집)
벌레집이 생기는 과정은 다음과 같다.
9월 하순 벌레집에 구멍을 뚫고 나온 날개 있는 암벌레는 중간숙주인 선태류(Minum vesicatum, M. trichomane)에 새끼 벌레를 낳는다. 새끼벌레는 선태류의 즙을 빨아먹고 자라서 흰 납으로 벌레집인 고치를 만들고 겨울을 난다. 다음해 봄에 번데기가 되고 4월 하순 번데기에서 나와 날개 있는 암벌레가 된다. 암벌레는 교미 후 붉나무의 가지에 날개 없는 암수컷의 새끼벌레를 낳고 죽는다. 날개 없는 암벌레는 어린잎에 옮겨가 기생하는데 이때에 벌레집이 자란다.
한 개의 벌레집 안에서 암벌레는 10월 상순까지 평균 400마리로 늘어난다. 그리고 가짜번데기를 거쳐 날개 있는 암벌레로 자라 구멍을 뚫고 날아 나온다. 그리하여 중간숙주에 새끼벌레를 낳게 된다. 선태류가 많이 자라는 그늘진 습한 곳에 붉나무를 많이 심고 벌레집을 따면 약재를 많이 만들게 할 수 있다. 이처럼 벌레집이 생기는 과정을 세포조직학적으로 연구한 바 외부 자극에 의한 식물 세포의 이상 증식으로 보게 되었으며 식물 또는 식물종양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식물혹에 대한 연구는 항암약 연구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벌레집은 생긴 모양에 따라 귀처럼 생긴 이부자, 나뭇가지처럼 갈라진 지부자, 꽃처럼 생긴 화부자로 나누는데 껍질이 두꺼운 이부자가 좋다.
성분: 벌레집에는 탄닌이 50~60퍼센트 들어 있다. 탄닌은 주로 펜타-m-디갈로일-β-D-글르코시드로 되었다. 그리고 약간의 몰식자산, 수지, 기름이 있다. 잎에도 탄닌이 6~12퍼센트 들어 있다. 열매에는 탄닌, 몰식자산, 기름 7.8퍼센트, 사과산, 포도산, 레몬산과 A1, Ca, Mg, Fe염이 있다. 그 가운데에서 사과산은 84퍼센트, 포도산은 10퍼센트, 레몬산은 6퍼센트이다.
응용: 벌레집과 잎은 탄닌산, 몰식자산, 피로갈롤의 원료로 중요하게 쓰인다. 수렴약, 피멎이약으로 토혈, 각혈, 혈뇨, 장출혈, 설사에 쓴다. 마르지 않은 열매를 따서 그대로 또는 말린 것은 소금을 먹어서는 안 될 콩팥염을 비롯한 질병에 소금 대신으로 쓴다. 벌레집은 천을 물들이는 데와 잉크를 만드는 데에도 많이 쓰인다.
흙칠(옻칠)
옻나무의 수액(俊液)으로 만든 도료. 옻칠이라고도 한다. 넓은 의미로는 물건에 색깔을 칠하는 것을 의미한다. 중국에서는 은(殷)나라 때 부터, 한국에서는 청동기시대부터 사용되었다. 한국에서 생산되는 옻칠 중에는 평안북도 태천(泰川)지방에서 생산되는 태천칠이 유명하며, 남한지역에서는 강원도 원주(原州) 치악산(稚嶽山)을 중심으로 생산되고 있다.
일단 굳은 칠은 산·알칼리 등의 약품에 침해되지 않고 열이나 직사광선에 강하여 예로부터 고급제품으로 애용되었다. 식기·가구·건축·불구(佛具)·미술공예품·선박·차량·항공기 등에 응용된다. 또한 도료용·방부재·염료·약재로 쓰이고, 옻닭 등 식품으로도 이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