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과 나의 삶(8)】70년대에 활약한 가수들.... 대형 색시 댄스 가수 - 김추자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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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잠시 나의 시계를 30여년 전으로 돌려 70년대
우리나라의 대중음악의 분포도에 대해 기억을 더듬어 회상해 보고자 한다.
필자의 주관적인 판단이므로 어떤 부분은 편견일 수도 있는 점을 감안해
읽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그 시절, 우리의 대중 음악은
어떻게 보면 춘추전국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여전히 이미자, 나훈아, 남진, 배호 등의 전통 트로트 가수들이
방송과 극장 쇼무대의 주축을 이루었고,
키보이스, 히식스 등의 그룹사운드의 활약도 컷 다고 볼 수 있다.
소수이긴 하나 재즈와 한국 락의 대부인
‘신중현과 엽전들’ & 댄싱가수 김추자!의 출현.....
그 다음이 포크 가수들로 구분되었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대형 색시댄스 가수 - 김추자와
포크가수 소위 통기타 가수들에 대해 조금만 알아보기로 한다.
(사진/ 수퍼댄싱 가수- 김추자!)
▷ 뭇남성들의 정신을 빼앗아간 수퍼 댄싱 가수 - 김추자!
'봄비' ‘빗속의 여인’ ‘늦기 전에(69년)’
‘님은 먼 곳에(70년)’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 등
그녀는 한국 록의 대부인 작곡가 겸 록밴드의 기타리스트였던
신중현씨와 콤비를 이뤄 수많은 히트송을 남겼다.
70년대 「담배는 ‘청자’ 노래는 ‘추자’」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김추자는 인기도 인기지만
우리 가요의 수준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킨 가수였다.
뭇남성들은 김추자라는 대형 여가수에 온통 정신을 빼앗겨 몽롱했다.
우선 터질 듯한 몸매를 여과없이 드러낸 타이트한 의상과
엉덩이를 현란하게 흔들어대는 춤이 그랬다.
폭발적인 가창력까지 겸비한
그녀의 등장에 온국민은 자신의 눈을 의심해야 했다.
드러내길 꺼리는 정적인 사회를 일순간에 후끈 달아오르게 했을 정도.
그녀는 파격 그 자체였다.
40을 넘긴 중년의 남성들은
'잠자던 돌부처도 불러 세웠다'는 김추자를 가요역사상
가장 섹시한 여가수로 기억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온국민들의 눈과 귀를 자신을 향해 고정시키게 한 여가수는 유래가 없었다,
노래건 스캔들이건 간에....(*주간지 기사 인용)
특히 극장에서 하는
“김추자쇼“에는 항상 입추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만원사례였다.
필자도 그녀의 극장 쇼를 몇 번 봤다. 그녀의 관능미 넘치는
몸에서 폭발하는 다이내믹한 율동은
이땅의 수많은 남장네들을 매료 시키기에는 충분했다.
그래서 별명이 ‘다이나마이트’ 라고...... 하하하
아~~ 김추자!
20-30년전의 얘기긴하나
같은 시대를 살아온 사람으로 그녀의 현란한 춤과 노래가
너무나 그립다. 가요무대에서라도 한번 그를 꼭 보고싶다.
그도 이제 50대 중반의 나이일텐데 그의 건승을 바란다.
확인되지 않은 소문에 의하면
그는 현재 가족과 함께 미국에서 살고 있다는 얘기도.....
"봄비~~ 나를 울려주는 봄비~~~"
# 김추자 약력 #
*출생 : 1951년 강원출생
*데뷔 : 1969년 '늦기 전에'로 데뷔
*가족사항 : 남편, 딸 하나
*히트곡 : 님은 먼 곳에,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 빗속의여인, 꽃잎 등
*특이사항 :70년대 섹시 댄스가수
사실 나는 통기타 음악보다는
김추자를 포함한 새로운 소울 풍의 노래와
전통 우리 가요를 더 좋아했다. 노래자랑에서의 레퍼토리도 주로
나훈아/ 박건/ 배호 등의 노래로 선곡......
그러나 놀러 다닐 땐 통기타와 함께 거의 포크송을 주로 많이 불렀던 기억이 있다.
【음악과 나의 삶(9)】다음은 「7080 통기타 가수들.....」로 이어집니다.
감사합니다.
갑신년 1월의 마지막날에 보내드리는
『로제의 음악여행』 오늘은 여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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