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기구는 나의 친구
김 병 규
60이 넘도록 도시생활의 늪에 깊숙이 빠진 사람이 농촌에 발을 디디기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농사일도 각다분하지만 아무래도 의료시설이며 문화시설이 열악하다는 이유로 꺼려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도 애초에는 그리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자리 잡은 충청북도 괴산은 산골마을이 많고 미개발 지역이지만 도두보았다. 읍내에 대형병원과 백화점은 없지만 그런대로 종합병원 두 곳과 마트 네 곳이 있다. 큰 질병이 없고 평범하게 살아가는 나에겐 별 문제될 게 없다.
문화복지 혜택은 오히려 이곳 농촌이 낫다. 도시에서는 드문 잔디 게이트볼장과 고풍의 국궁장시설도 갖추어 있다. 도시에서 번질나게 다녀 부담을 느꼈던 골프 연습장도 실비다. 마음만 먹으면 도시에서 보다 돈 안들이고 즐겁고 멋진 노후를 보낼 수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나를 이끄는 게 있다. 농사일이다. 집 문을 열고 몇 발짝 나서기만하면 일거리가 있다. 하다못해 잡초 하나를 뽑고 돌멩이 하나를 주어내도 농사에 도움이 된다. 내 작은 몸을 움직이기만 하면 생산적이다. 퇴직 후 3년간 도시에서 바둑을 두고 등산을 하는 등, 실컷 놀고먹은 것에 비하면 하늘과 땅 차이다.
내가 땀 흘려 가꾼 텃밭에서 상추, 시금치 등의 푸성귀가 하루가 다르게 풋풋하게 잘 자라는 모습을 모면 흐뭇하다. 콩을 수확할 때는 먼지를 흠뻑 뒤 집어 쓰고도 어린애처럼 신이 났다. 탈곡기 속에서 쏟아져 나오는 샛노란 콩알의 자태는 진주처럼 빛났고, 그 소리는 마치 사물놀이의 절정에 이르는 난타와 같이 경쾌했다.
난생처음 그렇게 열심히 일했음에도 피곤하지 않았다. 청정산골을 감도는 상큼한 풀숲향기와 신선한 공기 속에서 고즈넉한 농촌 풍경을 바라보면 금세 피로가 풀리고 가뿐하다.
들녘에서 백두루미가 한가로이 먹이를 쪼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평온하다. 해가지고 고요한 어둠의 뜰에서 새털보다 가벼운 반딧불의 춤사위가 펼쳐지면 어깨가 둥실 절로 흥이 난다.
은은하게 흐르는 계곡물소리며 갓난아이처럼 마구 울어대는 개구리……. 그 무수한 사물의 생동감은 신비롭고 조화로운 대자연을 이룬다.
게다가 농촌은 느긋하고 곰살갑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내가 하고 싶을 때하고 쉬고 싶을 때 쉰다. 이처럼 여유 만만한 삶이 이 세상 어디에 있겠는가. 오가며 마을 사람들과 권커니 잣거니 마시는 술잔에는 인정이 넘친다.
요즈음 지인들의 나의 농장 방문이 잦다. 나의 농촌생활이 궁금하여서다. 홀로 외롭고 궁색하게 사려니 여겼다가 도시에서보다 더 혈기왕성한 나의 모습을 보고 감탄한다. 천오백여 평의 농장에 채소․과수․농작물 단지가 질서 정연하게 다듬어져 있고, 연못과 우물을 배경으로 자리 잡은 아담한 농막에서 노년을 생기 있게 보내고 있는 나를 부러워했다.
누구하나 의지할 데 없는 산간벽촌에 혈혈단신으로 4년 만에 어엿한 관광농원처럼 꾸며 놓은 나의 용기와 열정이 돋보인 것이다. 지금껏 50여 명의 지인이 방문했고, 자존심 세기로 이름난 옛 상사도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내가 농촌 길을 택한 것은 도시에서의 열등감도 한몫했다. 직장에서 거침없이 잘나가던 선두주자였건만 정년 8년을 남겨둔 시점에서 5년 후배에게 승진 경쟁에서 물을 먹었다. 나는 분노와 절망감으로 자살까지 시도했으나 4일 간 한 숨 못잔 극심한 비통함이 다량의 수면제를 외면해버렸다.
나는 그 뒤 새로운 인생길을 택했다. 직장에서 승진이란 두 글자를 내팽개쳤다. 그리고는 나의 여생을 차분히 준비한 것이다. 후배를 상사로 둔 지지리도 못난 내 자신을 채찍질하면서 노년의 삶만은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말자고 입술을 깨물며 다짐한 농촌생활이다.
이곳 소박한 농촌에서는 잘난 사람도 못난 사람도 없다. 그저 인정만이 존재한다. 나는 이곳 농부들을 무척 좋아한다. 외출하다 한여름 논밭에서 구슬땀을 흘리는 마을 사람들을 보면 차에서 내려 시원한 음료수를 건네주었다. 나의 농막을 찾아주는 사람에겐 농사일로 찌들려 지저분한 옷과 몸에서 역겨운 냄새가 나지만 내색치 않고 깨끗한 방석에 앉게 했다. 그리고는 일회용 종이컵대신 빛깔고운 사기나 유리컵으로 차나 술을 대접했다.
나의 이런 정성이 농촌사람들의 마음에 들었던지 그들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 농막에 온돌방을 만들 때는 어떤 이는 자기 땅의 황토 흙을 파 쓰게 하고, 또 어떤 이는 폐가를 헐다 생긴 구들장을 차로 실어다 주기도 했다.
비록 4년밖에 안된 초년생 농부이지만 나는 이곳 농촌에서 많은 것을 깨달았다. 외딴 산골 마을에서 홀로 적적하게 지내서 그런지 사람은 물론 모든 사물에 정감이 깃든다. 좀 보태서 말한 것 같지만 나름대로 대자연과 소통을 하며 홀로 사는 즐거움을 느낀다.
소통의 힘은 상대를 인정하고 배려하는 데서 나온다. 그 상대가 사람만을 인정한다면 막힌 소통이요, 생물이며 무생물이며 모든 사물까지 인정한다면 뚫린 소통이다.
사실 지난 날 도시에서의 나의 삶은 사람과의 소통도 부족했다고 생각한다. 사소한 일로 아내에게 짜증내고 다투기도 했다. 공원길에서 좋아라 꼬리치며 뛰어노는 개를 보면 발로 확 차버리고 싶은 충동이 일었고, 그 주인이 무척 얄밉기도 했다.
그러나 이곳 농촌에서는 달라졌다. 농원의 파수꾼이며 나의 동반자인 ‘마루’라는 개를 소중히 키우고, 마을의 다른 개들을 보면 ‘예쁘다’ 하고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
농촌에서 농사를 짓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호미며 낫과 삽은 물론 도끼와 예초기 등 많은 농기구가 필요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이들 농기구를 머슴처럼 매섭게 대하고 부려먹기만 했다. 쓰고 난 농기구를 손질도 안하고 아무렇게 방치하여 더럽혔다. 비가 오면 흠뻑 젖고 눈이 오면 추워 벌벌 떨게 했다.
금년 6월말 경이다. 농장의 잔디와 잡초를 깎을 요량으로 큰맘 먹고 예초기를 샀다. 잔디를 깎는데 벌 떼처럼 ‘윙윙’거리는 엔진소리와 헬리콥터 날개처럼 예리하게 회전하는 칼날이 두려워 몸이 굳어졌고 힘이 잔뜩 들었다. 서툰 이발사 머리 깎듯 움푹움푹 잔디가 깎였고, 더 이상 버틸 힘도 재간도 없어 금세 도중하차했다.
잠시 쉬었다가 예초기를 친구처럼 다정하게 대하고 살손을 붙여 잔디를 깎자 고르게 잘 깎이고 기분이 상쾌했다. 한 시간가량 땀으로 목욕을 하며 작업을 했는데도 피곤하지 않았다. 손바닥이 얼얼하고 시원하여 쉬는 참에 자세히 살펴보니 빨갛게 변해 있었다. 예초기의 빠르고 미세한 진동이 손바닥과 등을 자극하여 온몸의 혈기를 왕성하게 한 것이다.
나는 비로소 농기구를 친구처럼 다정하게 대해주면 농사일도 잘되고 온 몸의 건강을 지켜준다는 믿음을 갖게 되었다. 밭을 매거나 곡식을 심을 때 쓰는 호미는 손목과 팔꿈치 등의 근육을 키워준다. 땅을 파는 삽은 발바닥과 무릎이며 허벅지를 튼튼하게 한다.
겨울철 온돌방에 불을 지필 장작을 팰 때는 도끼가 필요하다. 세로로 바르게 세운 통나무의 중심선을 도끼로 내리친다. 팍하는 경쾌한 장단에 장작이 두 동강이가 나면 신이 난다. 도끼와 아삼륙이 되어 그 신난 동작을 반복하면 땔감이 이드거니 쌓인다. 더불어 가슴과 어깨, 무릎과 허리 등에 운동이 되어 건강한 몸매를 만들어 준다.
우리의 삶을 새롭고 활기차게 바꾸어주는 것은 엄청나게 큰 일이 아니다. 평소에는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은 사소한 것들이 때로는 삶의 방향을 바꾸는 중대한 변수로 등장한다. 농기구를 친구처럼 다정하게 대한 뚫린 소통, 어쩌면 마음먹기에 불과한 것임에도, 농기구는 분명 나의 농사일과 건강을 도와주는 고마운 친구임에 틀림없다.
오늘은 긴 가뭄 끝에 기다리던 단비가 내렸다. 밭고랑의 물길을 삽으로 터 주었다. 삽의 얼굴이 흙탕물로 뒤범벅이다. 수돗가에서 삽의 얼굴을 시원한 물로 씻겨주고 수건으로 닦아준다. 마음속으로 ‘삽아, 수고했다. 이제 푹 쉬어라.’ 하고 인사한다. 말쑥한 얼굴로 삽이 방긋 웃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