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바새계경 제2권
9. 의보살심견고품(義菩薩心堅固品)
선생이 세존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의보살(義菩薩)이라고 하면, 어떻게 스스로 의보살임을 아나이까?”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고행(苦行)을 닦을 때 먼저 스스로 마음을 시험하느니라.
선남자야, 내가 생각하건대, 옛적에 보살도를 닦을 때 먼저 외도에게서 고행법(苦行法)을 받고 지극한 마음으로 받들어 행하여, 마음에 퇴전함이 없었느니라.
무량한 세상에서 재를 몸에 바르고,
오직 깨[胡麻]와 팥[小豆]과 멥쌀과 좁쌀과 싸래기 등을 날마다 한 알씩만 먹었고,
따가운 가시나무ㆍ등걸ㆍ맨땅ㆍ돌로써 침구(臥具)를 삼았으며,
소똥ㆍ소오줌으로써 약을 삼았고, 한여름에 오열(五熱)로 몸을 지졌으며,
한겨울이면 얼음으로 속옷을 삼았느니라.
그리고 혹은 초식(草食)ㆍ근식(根食)ㆍ경식(莖食)ㆍ엽식(葉食)ㆍ과식(果食)ㆍ토식(土食)ㆍ풍식(風食)도 받았느니라.
이러한 모든 고행을 할 때에 내 몸이나 남의 몸에도 이익이 없었지만,
비록 그러하나 오히려 마음에 퇴전함이 없어서 모든 외도들의 고행보다 더하였느니라.
선남자여, 내가 먼 예전에 네 가지 일을 위하여 몸과 목숨을 버렸나니,
첫 번째는 중생의 모든 번뇌를 부수기 위한 것이요,
두 번째는 중생으로 하여금 안락함을 얻게 하기 위한 것이며,
세 번째는 스스로 몸에 탐착(貪着)함을 부수기 위한 것이요.
네 번째는 부모님이 낳아서 길러주신 은혜에 보답하기 위한 것이었느니라.
보살이 만약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않는다면, 곧 이것으로 의보살임을 스스로 아느니라.
선남자여, 내가 먼 예전에 바른 법을 위하여서 몸을 깎아서 3천 6백의 등을 만들었나니,
내가 그때 번뇌를 가지고 있어 몸이 아픈 것을 알았지만,
모든 중생의 해탈을 위하였기 때문에 마음을 달래어서 굳게 하여 퇴전할 마음을 내지 않았느니라.
그때 곧 세 가지 일이 갖춰졌으니,
첫 번째는 끝까지 퇴전함이 없는 것이요,
두 번째는 실의 보살이 된 것이며,
세 번째는 이름을 불가사의라 한 것이니,
이것을 ‘보살의 불가사의’라고 이름하느니라.
또 내가 먼 예전에 정법을 위하여 한 겁 동안 온 몸에 좌우로 천이나 되는 부스럼이 나는 고통을 받았나니,
그때 온갖 번뇌를 가지고 있어 몸으로 괴로움을 느꼈지만,
모든 중생의 해탈을 위하여 마음을 달래어 굳게 하여서 퇴전하지 않았나니,
이것을 보살의 불가사의라고 하느니라.
또 내가 먼 예전에 한 비둘기를 위하여 이 몸을 버렸나니,
그때 온갖 번뇌를 가지고 있어 몸으로 괴로움을 느꼈지만,
모든 중생의 해탈을 위하여 마음을 달래어 굳게 하여서 퇴전하지 않았나니,
이것을 보살의 불가사의라고 하느니라.
선남자여, 온갖 나쁜 벗과 모든 번뇌의 업이 곧 보살도를 장엄하는 도반(道伴)이니, 왜 그런가?
모든 범부들은 지혜와 정념(正念)의 마음이 없으므로 번뇌를 원적(怨敵)으로 삼지만,
보살은 지혜와 정념을 갖추고 있으므로 번뇌로써 도반(道伴)을 삼나니,
악우(惡友)와 악업도 마찬가지이니라.
선남자여, 번뇌를 버리면 마침내 나쁜 세계(惡有)의 몸을 받지 않나니,
그러므로 보살이 비록 악업을 나타내더라도 실로 몸과 입과 뜻이 나빠서 짓는 것이 아니며, 이는 서원의 힘이니라.
이 서원의 힘으로 사나운 짐승의 몸도 받나니, 저 축생들을 조복하고자 하기 때문이니라.
보살은 현재 축생의 몸을 받아도 사람의 말과 법어(法語)와 실어(實語)와 거칠지 않고 악하지 않은 말과 뜻이 있는 말을 잘 알며,
항상 연민하는 마음으로 자비를 닦아 방일하지 않나니,
이것을 보살의 불가사의라고 하느니라.
선남자여, 내가 먼 예전에 곰의 몸을 받았을 때 비록 번뇌를 갖추었으나 번뇌가 나를 마음대로 할 힘이 없었으니 무슨 까닭이었는가?
바른 생각을 갖추었기 때문이니라.
내가 그때 중생을 가엾이 여기고 바른 법을 옹호하고 법행(法行)을 닦아 행하였느니라.
구타(瞿陀)의 몸ㆍ겁빈기라(劫賓耆羅)의 몸ㆍ토끼의 몸ㆍ뱀의 몸ㆍ용의 몸ㆍ코끼리의 몸ㆍ금시조의 몸ㆍ비둘기의 몸ㆍ사슴의 몸ㆍ원숭이의 몸ㆍ양의 몸ㆍ닭 ㆍ꿩ㆍ공작ㆍ앵무새ㆍ두꺼비ㆍ개구리의 몸도 받았나니,
내가 이러한 새와 짐승의 몸을 받을 때도 비록 번뇌를 갖추었으나 번뇌가 나를 마음대로 할 힘이 없었으니, 무슨 까닭이었는가?
바른 생각을 갖추었기 때문이며,
중생을 가엾이 여기면서 정법을 옹호하고, 법행을 닦아 행하였기 때문이니라.
선남자여, 기근이 횡행하는 세상에서 내가 큰 원을 세워서 그 원력으로 큰 물고기의 몸을 받고,
모든 중생을 위하여 배고픔과 목마름을 여의게 하였나니,
내 몸을 먹는 자도 도를 닦고 도를 생각하였고 나쁜 죄과가 없었느니라.
병이 퍼졌을 때도, 또 큰 원을 세워서 그 원력으로 몸이 약(藥)나무가 되었는데,
모든 병자들이 나를 보거나, 듣거나, 접촉하거나, 피부ㆍ혈육ㆍ골수를 먹거나 하면, 병이 모두 나았느니라.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이러한 고통을 받아도 마음이 퇴전하지 않으면,
이것이 의보살이니라.
보살이 육바라밀을 수행할 때 끝까지 육바라밀의 과보를 구하지 않고, 다만 중생을 이익되게 하는 것으로 일을 삼느니라.
보살이 깊이 생사계의 허물과 환난을 알면서도 즐겨 머무는 것은 중생을 위하여 안락함을 받게 하기 위함이니라.
보살이 해탈의 안락과 생사의 허물과 환난을 알면서도 능히 머무나니,
이것이 보살의 불가사의이니라.
보살은 행하는 바에 대한 은혜의 보답을 구하지 않고, 은혜를 받으면 항상 갚을 것을 생각하느니라.
선남자여, 모든 중생들은 항상 제 이익만 구하지만 보살의 행위는 항상 남을 이롭게 하기를 구하는 것이니,
이것이 보살의 불가사의이니라.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은 번뇌를 가지고 있으나 원수에게나 친한 이에게나 평등하게 이익을 주나니,
이것이 보살의 불가사의이니라.
선남자여, 모든 외도들은 중생을 교화할 때에 혹 욕설을 하고 채찍으로 치고 꾸짖고 욕하고 밀어내고 한 연후에 조복하지만,
보살은 그렇지 않아서 중생을 교화할 때에, 추악한 말ㆍ성난 말, 꾸미는 말이 없고 오직 온화한 말과 진실한 말이 있어,
중생이 듣고 나면 푸른 연꽃이 달을 만난 것 같고 붉은 연꽃이 해를 만난 것과 같으니라.
선남자여, 보살이 보시 할 때에 재물이 비록 적고 걸식하고 구하는 사람이 많은 것을 보더라도 싫어하는 마음을 내지 않나니,
이것을 보살의 불가사의라 하느니라.
보살이 장님ㆍ귀머거리ㆍ벙어리ㆍ바보ㆍ오지의 악한 중생들을 교화할 때 마음으로 피로와 싫증을 내지 않으니,
이것을 보살의 불가사의라 하느니라.
선남자여, 보살에게 네 가지 불가사의가 있으니,
첫 번째는 사랑하고 소중히 하는 물건을 능히 남에게 주는 것이요,
두 번째는 모든 번뇌를 갖추고도 능히 모든 나쁜 일을 참는 것이며,
세 번째는 분열하고 파괴하는 무리들을 능히 화합하게 하는 것이요,
네 번째는 임종시에도 악을 보면 법을 설하여 고치게 하는 것이니,
이것이 보살의 네 가지 불가사의이니라.
또 세 가지 불가사의가 있으니,
첫 번째는 모든 번뇌를 질책하는 것이요,
두 번째는 번뇌 가운데 머무르면서 버리지 않는 것이며,
세 번째는 비록 번뇌와 번뇌업을 갖추었으나 방일하지 않는 것이니,
이것이 보살의 세 가지 불가사의이니라.
또 세 가지 불가사의가 있으니,
첫 번째는 처음 보시하고자 할 때 마음에 환희와 즐거움을 내는 것이요,
두 번째는 보시할 때 남을 위하되 과보를 구하지 않는 것이며,
세 번째는 보시하고 나서 마음이 즐거워 후회하거나 원한을 갖지 않는 것이니,
이것이 보살의 세 가지 불가사의이니라.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이 이 수행을 할 때 스스로 그 마음을 관하되,
‘내가 명보살(名菩薩)인가 의보살(義菩薩)인가?’라고 할 것이다.
중생이 그와 같은 일을 많이 하면 그런 사람은 바로 의보살인 줄 알아야 한다.
선남자여, 보살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첫 번째는 재가보살이요,
두 번째는 출가보살인데,
출가 보살은 이와 같은 일을 하는 것이 어렵지 않으나,
재가보살은 이와 같은 일을 하는 것이 어려우니, 왜 그런가?
재가보살은 많은 악연으로 얽혀 있기 때문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