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문이 없는 숙소다. 도난의 위험이 있는지 복도에 큰 락커가 있는데 나무가 아닌 철제로 되어 있다. 아시다시피 철제 금고는 여닫을 때 끽 소리가 나는데 이게 오래된 데다가 여러 사람이 쓰다 보니 이미 고물상에 갖다 줘야 하는 상태라서 끼익 ㅡ가방 쟈크 소리ㅡ쾅 문 닫는 소리ㅡ열쇠 돌리는 소리가 크게 난다. 심지어 문이 잘 안 닫기니 있는 힘껏 닫는다.
어젯밤에 한 명씩 들어올 때마다 저 과정을 거쳤다. 심지어 전등은 키고 끄는 것이 아닌 인식할 때마다 켜지고 자동으로 꺼진다. 그러니 복도는 그야말로 사이키 조명에 쿵쾅거리는 소리가 숙박객이 모두 들어올 때마다 들렸다. 그러면 모두들 저 소리가 얼마나 소음이 심한지 알 텐데 얘네들의 락커 사랑은 소음 따위는 견디는 수준이다.
무슨 소리냐.. 잠을 못 잤다는 야그다. 새벽이 되자마자 다시 소음이 시작되었거든.
곧 지워질 바닥의 그림. 정성이 아깝다.
비몽사몽 기차역으로 왔다. 미리 피사로 가는 표를 사 두었는데 그게 또 에러다. 스플릿에서 한꺼번에 왕창 미친 듯이 예약을 한 바람에 제대로 알아보지를 못했었다. 피사의 사탑 외엔 볼 게 없으니 일찍 가서 보고 오후엔 다섯 개의 이쁜 마을이 있는 친퀘테레로 이동해야 한단다. 근데 11시 도착해서 저녁 5.45분에 출발하는 차를 예약했으니 그 시간 동안 뭐 하냐고.
이미 산 표는 시간이 어중간하다. 버리고 다시 사려고 했는데 어제 밤중의 소동 때문에 행동이 느려졌고 사리판단도 빨리 안되는 상태였다. 결국 있는 표로 피사로 향했다.
그래도 정보는 용케 알아내어서 피사 센트럴 다음 역인 pisa s rossore 역에 내렸다. 여기서는 피사의 사탑까지 십분이 걸린다. 중앙역보다는 훨씬 가깝단다. 딱 봐도 한국인 그룹이 앞장을 섰다. 똘똘한 한 애가 먼저 가니까 나머지 사람들은 그냥 그들 뒤에 따라갔다. 나도.ㅋ
그룹 투어인 줄 알겠다.
벌써 보인다. 와 이리 실실거려지는지. 웃긴다. tv나 사진 등 엄청 보았는데도 막상 보니 그냥 웃긴다. 저 정도면 무너지지 않은 게 더 신기하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와 있다. 저기 보이는 끼우뚱 탑 말고도 건물들과 성벽들이 있다. 그렇지만 관광객들은 피사의 사탑 근처에만 다들 있다. 온갖 포즈로 사진을 찍으면서. 일행이 있으니 저렇게 사진을 찍지 혼자 온 사람은 증명사진만 간신히 찍었다. 사진 찍는 풍경만 봐도 웃기고 기울어진 탑을 봐도 웃긴다. 날도 무지하게 좋다. 몇 시간이고 있겠지만 화장실이 급하다.
화장실 따위는 안 보인다. 그러니까 식당에서 밥을 먹던지 아님 3.5유로짜리 젤라또라도 먹으라는 얘기다. 아이스크림은 안땡겨서 스파게티라도 먹으러 왔다. 샌드위치를 만들어 왔지만 별 수 없다.
먹어본 누군가가 그냥 토마토 베이스가 제일 낫더란 얘기에 기본을 시켰다. 졸리비가 푹 퍼진 면이라면 저건 좀 덜 익힌 파스타면이란 거만 빼고 맛이 비슷하다.ㅋ 맛이 괜찮단 얘기다. 진짜 방토 몇 알에 토마토소스 조금 부은 것에 카푸치노 한잔해서 14유로다.
시간이 남아 돌아서 시내를 보다가 다시 탑을 보러 가려고 한다. 지금 친퀘테레 가는 건 택도 없다. 가서 안뇽하고 손 흔들어주고 다시 오는 수도 있지만 굳이 모험을 하고 싶진 않다.
문이 열려 있으면 어김없이 들어가는 성당이다. 이름난 성당보다 이렇게 작은 성당에 앉아 있으면 오히려 마음이 편해진다.
여기도 강을 끼고 있다. 강 따라 한 바퀴를 돌았다. 사람들이 적으니 숨쉬기가 편하다.
여기도 알록달록. 이탈리아의 갬성인가.
소나무가 여기에?
갈릴레이의 동상이 왜 여기에 있지.
족자의 목욕탕 훔쳐보는 거기 같은 느낌으로 창 턱에 앉아서 쉬었다. 위장이 늘어났는지 점심으로 가져간 오렌지와 삶은 계란 두 알을 먹었다. 빵은 이따가 기차 안에서 먹어야겠다.
keith haring의 작품이 있다고 해서 왔다. 피사의 중앙역 근처의 art buger 집 옆 담에다 그려져 있다. 낙서와 예술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예술로 승화했다고 한다.
동네가 작아서 한 바퀴를 돌아도 시간이 많이 남았다. 지도를 검색해 보니 livrno라는 지역이 바다랑 가깝다. 여기라도 가볼까 싶어서 기차표를 보니 33분 걸린다.
기계에서 기차표를 사는데 리브르노 센트럴과 포트가 나왔다. 무심결에 센트럴을 샀다. 펀칭 기계에 표를 찍으면서 포트가 항구인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잘못 샀다는 .. 망했네.
역에 내려서 밖을 보니 야자수 나무가 반겨 주기는 하지만 내가 지도에서 검색한 그 장소는 아니다. ㅠㅠ 지도를 보니 일직선으로 걸어가면 바다가 나오긴 하겠다.
걷다가 버스가 보여서 탔다. 표 걱정 없이 트레블 월렛으로 찍으니 편하다.
성당과 공원이 보여서 들어갔다.
그럴싸하다
이게 모두 다. 시간이 모자라서 더 안까지는 못 갔다. 꽤 너른 모양이다.
기차표는 꼭 펀칭해야 한다. 안 그럼 벌금. 도로 피사로 왔다. 짧은 시간 동안 다녀왔지만 그래도 커피집에서 멍하니 있는 거보단 나았다.
내린 곳이 피사 중앙역이라 다시 내 기차를 타기 위해 탑 쪽으로 왔다. 물론 중앙역에서 타면 되긴 했지만 탑을 한 번 더 보고 싶어서 다시 걸어왔다.
다시 봐도 웃긴다. 저게 지금 바로 서고 있다고 한다. 기우뚱해야 하는 되는 탑이어야 하다니. 여하튼 재미나게 구경은 잘했다.
저녁 시간대라 사람들이 적다. 낮에는 기차가 발 디딜 틈이 없었는데. 피렌체에 낮에 도착하면 가방을 두고 그날 다녀오면 시간 절약도 되고 다음 날 활용을 할 수 있으니 더 낫겠다. 일단 사람들이 좀 적다.
피렌체 온 목적은 딱 하나. 기우뚱 탑을 봤으니 만족한다. 사진으로 볼 때는 신기하네였는데 막상 보니 그냥 웃음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