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방채식주의?
녹용없이 보약이 가능할까?
동물성 약재성분이 빠진 보약이 가능할까? 라고 의구심을 갖는 분들이 많다. 그러나, 고방(古方)으로 알려진 상한방(傷寒方)과 후세방(後世方)으로 알려진 동의보감(東醫寶鑑), 방약합편(方藥合編) 처방 중에는 동물성 약재를 사용하여 처방된 경우보다 순식물성 약재만으로 구성된 처방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즉, 한가지 처방 중에 동물성 약재와 식물성 약재가 나란히 들어있는데, 동물성 약재만 빼고 식물성 약재만 사용하는 게 아니라, 처방 자체가 식물성 약재만으로 구성된 처방들이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일반적으로 병을 치료하는 한의학적인 방법들과 구성에 대해 간단히 알아보자.
1. 한의학적인 치료법의 분류(상용치법)
전통적으로 병의 위치, 상태에 따라 한법, 토법, 하법, 화법, 온법, 청법, 소법, 보법, 활혈거어법으로 나뉘어 진다.
한법(汗法)이란 병이 바깥에 있을 때 발산하는 방법이라 해표법(解表法)이라고도 한다.
토법(吐法)은 병이 상부쪽 , 특히 위중에 음식의 독이나 담음 등을 배설하는 치료법이다.
하법(下法)은 실열을 없애고 체내에 적체된 것을 사하시키는 법이다.
화법(和法)이란 병이 겉도 속도 아닌 중간지점에 있을 때 병사를 제거하고 정기를 도움으로 장부, 음양기혈의 편쇠(편쇠), 편성(편성)을 조절하는 치료법이다.
온법(溫法)은 온열(溫熱)한 성질의 약물을 이용하여 몸을 따뜻하게 하고 기(기)를 보강하는 치료법이다.
청법(淸法)은 청열(淸熱), 사화(瀉火), 해표(解表), 청온열(淸溫熱) 등의 작용이 있는 약물을 이용하여 열을 내리고 사기를 제거하는 치료법이다.
소법(消法)은 체내에 적체된 음식(食積), 기체(氣滯), 어혈, 종양(腫塊) 등을 흩어서 해소하는 치료법이다.
보법(補法)은 장부음양기혈(臟腑陰陽氣血)의 부족한 상태를 보충함으로써 음양의 조화와 균형을 회복하도록 정기를 보충하고 사기를 없애는 치료법이다.
활혈거어법(活血祛瘀法)에는 어혈과 노폐물, 독소 등으로 생긴 여러 질병과 타박상으로 생긴 어혈증을 치료하는 방법이다.
이 중 대부분의 사람들이 오해를 하고 있는 것은 보법에 해당되는 보약처방인데, 보약을 구성하는 약물들과 보약처방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보자.
2. 보약의 종류과 약물구성
보법은 다시 보기법, 보혈법, 보양법, 보음법, 보정법, 보장부법 등 으로 분류하여 활용된다.그리고 보법을 구성하는 보약류는 대개 보기약, 보양약, 보혈약, 보음약 의 네가지로 구분되어 있다.
보기약(補氣藥)의 종류에는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인삼, 황기, 산약, 백출, 백편두, 감초, 대조(대추)와 당삼, 봉밀(꿀) 등이 들어 있다.
보양약(補陽藥)에는 녹용, 녹각을 포함하여 파극천, 유종용, 선모, 음양곽, 호로파, 두충, 속단, 보골지, 구척, 익지인, 골쇄보, 동충하초, 합개, 호도육, 자하거, 토사자, 사원자, 쇄양, 구자, 양기석, 해구신, 해마, 사상자 등이 있다.
보혈약(補血藥)에는 당귀, 숙지황, 백작약, 하수오, 아교, 용안육 등이 있다
보음약(補陰藥)에는 사삼, 맥문동, 천문동, 석곡, 옥죽, 황정, 백합, 구기자, 상심자, 한련초, 여정자, 귀판, 별갑, 흑지마, 저실자 등이 있다.
이 중 가장 동물성 약재가 많은 것은 보양약(補陽藥) 종류인데, 여기에 우리가 흔히 말하는 용약(茸藥)의 녹용(鹿茸)이 들어있다. 즉 녹용의 효용은 바로 양을 보충하는 약이라는 점이다. 보양이란 인체의 양기를 도와 양이 허한 증상을 개선하는 약물이다. (양허증에 대해서는 다음에 자세히 다루기로 하겠다) 녹용은 사슴의 골화되지 않은 상태를 어린 뿔을 잘라 건조한 것으로 품질에 따라, 부위에 따라 가격에 많은 차이가 난다.
3. 보양약에 녹용을 반드시 써야할까?
보법에 의해서 체질이 강건해지고 항병능력이 증강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보법을 남용하는 것은 옳지 않다. 왜냐하면, 인체는 음양이 조화를 이룬 가운데에서만 정상적인 기능활동을 유지할 수 있는데 비해, 일반적인 보허약에는 나름대로의 편향성이 있어서 양을 보충하는 약을 과용할 경우에는 음이 손상될 우려가 있고, 음을 보충하는 약을 과용할 경우에는 양이 손상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건강한 상태란 음양의 균형과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중용(中庸)의 도(道)를 몸에서 실현하는 것이다. 따라서, 자신의 영양상태의 과불급, 체력과 체액의 산도 등을 고려하여 약을 복용하는 시기와 기간을 정하고, 처방의 종류를 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요즘처럼 영양과잉으로 인한 영양불균형, 독소과잉으로 인한 성인병이 많은 시대에는 몸이 허하다는 기준이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기운이 너무 없어서 쓰러질 것같은 사람도 굶주림에 허기진 탓이라기보다는 스트레스나 과로, 잘못된 생활습관 때문에 기가 허해진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또한, 조루나 발기부전 등의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도 대부분은 영양부족이나 몸이 허해서 양기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과로,과음, 흡연, 스트레스, 심적인 압박감과 긴장감 등의 정신적인 이유가 더 크기 때문이다.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녹용약을 선호하는 우리나라의 보약문화가 나는 좀 이상하다. 나도 처음 약을 배우기 시작했던 무렵, 지인들에게 비싼 녹용약을 지어주고 용돈을 벌곤 했지만, 임상에 나와 환자들의 상세한 곡절을 들어가며 약을 짓고 있는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극도로 허약한 경우가 아니라면, 녹용이 모든 사람에게 보약이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보양이 필요한 일부의 사람, 그리고 그러한 경우에도 식물성 한약재로도 얼마든지 보약을 지어먹을 수 있다.
또한, 약만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적절한 섭생 즉, 식이요법과 생활방식의 변화, 심리적으로 이완될 수 있는 자신에게 맞는 프로그램을 선택하고 활용하는 것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