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7장 32절 34절 구레네 시몬의 억지로 진 십자가
우리는 지금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만 예배는 우리의 삶의 가장 중요한부분입니다.
누군가는 오늘 예배를 안 드릴 수는 없고 그래서 억지로 율법적으로 예배하는 사람 있고
누군가는 지금 내 삶이 힘들어도 은혜를 알고 감사함으로 예배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사랑을 깨달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 감사함으로 예배의 자리를 사모합니다.
억지로 마지못해서 예배의 자리에 나온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억지로나 마지못해서 인색함으로 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마음에도 없는 것을 억지로 하는 것을 외식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것은 우리들이 가증이나 가식으로 하는 위선을 싫어합니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자기 자신을 위해 하는 것을 싫어하십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서 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이름을 드러내기 위해 살려고 하는 것이 죄인된 인간의 모습입니다.
죄인 된 인간은 무엇을 바라보고 살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바라보고 사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자신의 삶의 도움이 될 만한 것인가를
바라보고 거기에 모든 기대를 걸고 살아가게 됩니다.
죄인 된 인간은 모든 행동의 중심이 자기입니다.
모든 행동을 내 삶의 유익과 평안을 위해서 하게 됩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들에게 주시는 말씀에 나오는 구레네 사람 시몬은
십자가를 억지로 지게 되지만 누구를 위해 억지로 십자가를 지고 갑니까?
내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예수님을 위해서입니다.
구레네라는 지역은 오늘날 리비아의 수도 트리폴리입니다.
시몬은 유대인으로 아프리카 지역의 구레네에서 살았는데 알렉산더와 루포 라는 두 아들을 데리고 유월절 짐승의 제사를 드리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올라오던 중이었습니다.
군중들이 잔뜩 모여 웅성거리고 있는 것을 보고 구경하고 있는데
로마군병은 십자가를 질만한 사람을 찾다가 군중들 틈에 서있던
시몬에게 십자가를 억지로 지워 주었습니다.
원래는 죄수가 십자가를 지고 사형장인 골고다 언덕까지 가야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밤새도록 심문을 받기위해 여기저기로 끌려 다니셨고
많은 채찍을 맞으셨기 때문에 십자가를 지고 사형장까지 갈 수 없는 처지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군병들이 시몬에게 예수님의 십자가를 억지로 십자가를 지게 하여 간 것입니다.
십자가는 부끄러움과 저주의 상징이기 때문에 비록 죄수가 아니라고 해도
십자가를 지고 사형장으로 가는 것은 시몬에게는 수치스럽고 부끄러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거부하지 못한 것은 십자가를 지게 한 사람이 로마 군병이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일어나는 일은 우연이란 없습니다.
시몬이 재수 없게 로마군병에게 걸려서 십자가를 억지로 지고 가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대신해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이 재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됩니까?
시몬은 지금 유월절 짐승의 제사를 드리기 위해 왔는데
진짜 유월절 짐승의 제사의 실상인 유월절 어린양이신 예수님을 만난 것입니다.
예수님이 지고가신 십자가는 우리의 죄가 얼마나 무거운가 하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무거운 죄의 짐을 지고가다 쓰러지고 쓰러진 곳이 시몬이 서있는 곳 이였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오라 하셨습니다.
지금 시몬은 짐승의 제사 실체인 제사를 드리게 된 것입니다.
내가 지고 갈 십자가에 예수님의 피가 있어야 합니다.
율법을 지키기 위해서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에 왔지만
시몬의 의지와 상관없이 로마 군병이 십자가를 지라하기 때문에 억지로 지고 있습니다.
시몬은 예수님이 흘리신 피로 범벅이 된 십자가를 지게 된 것입니다.
시몬은 억지로 십자가를 짐으로 고뇌 하시는 예수님을 가까이에서 보게 되었습니다.
십자가 사이로 보이는 예수님의 모습이 구레네 시몬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을 것입니다.
억지로 십자가를 지고 가고 있지만 지친 듯 하면서도 평온해 보이시는 예수님의 모습
십자가 옆으로 보이는 예수님의 처절하면서도 무언의 메시지가 가득 담고 있는 모습에서
시몬은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우리도 십자가를 질 때만이 예수님을 알 수 있고 볼 수 있습니다.
십자가를 짐으로 나 자신이 누구인가를 정확하게 알게 됩니다.
십자가는 나 혼자 지고 가는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가 무겁게 느낄지라도 지고 가면 예수님이 함께 지고 가십니다.
고난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십자가의 고난이고 다른 하나는 세상적인 고난입니다.
십자가의 고난은 죄 없이 당하는 고난이고 세상 고난은 자기 죄로 인해 겪는 고난입니다.
십자가의 고난은 다른 사람을 위한 고난이고 다른 사람을 유익하게 하는 고난이고
세상의 고난은 다른 사람에게 아무 유익도 주지 못하는 고난입니다.
이 세상에는 의미나 보람 없이 고생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죄를 짓고 감옥에 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못할 일을 하고 자기 죄 값을 받는 것은 고난이 아닙니다.
자기의 허물이나 부족함으로 당하는 고난도 십자가의 고난이 아닙니다.
자기 앞날을 위해 고생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먹을 것도 먹지 아니 하고 잠도 자지 아니하고 힘을 다 해 일합니다.
나름대로는 고난이지만 자기가 잘살기 위한 목적이라면 십자가의 고난은 아닙니다.
십자가의 고난은 다른 사람을 위한 고난입니다.
시몬이 십자가를 억지로 지고 가는 것은 예수님을 위한 것이지만
사실은 안하면 죽으니까 억지로 지게 된 것입니다.
억지로 지고 가는 시몬을 예수님께서는 구원의 자리로 옮기는 일을 하셨습니다.
구원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찾아서 부르시는 것입니다.
시몬은 자기의 선택이 없이 의논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부르심이요 선택받은 것입니다.
시몬이 억지로라도 헌신을 했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로마 군병들을 통해 시몬을 찾은 것으로 하나님의 일하심을 알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뜻과 상관이 없이 묻지도 않고 찾아와 부르신 것입니다.
우리에게 조금이라도 자랑거리가 있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자기가 한다고 생각한 사람은 자기가 하기 싫으면 안하고 하고 싶으면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시몬에게 억지로 십자가를 지게 했지만
우리가 스스로 자원해서 십자가를 질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십자가를 지게 해서 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있을 것 같습니까?
그럴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억지로라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은혜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손에 붙들린 사람은 자기의 의지와 상관없이 하게 되어 있습니다.
결국 억지로 십자가를 지게 된 시몬은 예수님의 구원의 은혜를 깊이 깨닫게 됩니다.
시몬은 억지로 십자가를 지고 가면서 예수님과 눈이 마주쳤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그 눈빛을 본 시몬의 마음은 어떻게 은혜를 모르겠습니까?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고 간 시몬은 분명 영적인 눈이 열렸을 것입니다.
예수님과의 눈빛으로 무언의 대화가 있었을 것입니다.
시몬은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으시는 예수님의 모든 모습과 말씀을 들었습니다.
골고다 언덕에서 예수님의 영광을 본 사람은 시몬뿐일 것입니다.
왜요 십자가를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의 흔적을 가진 사람인 것입니다.
억지로 지게 된 십자가로 인해 가장 복을 받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의미를 깨닫는 자가 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 세상의 인생에서 마지막 동행자가 된 복을 누린 자가 되었습니다.
시몬이 자원해서 십자가를 졌습니까?
하나님의 강권적으로 십자가를 지게 했습니까?
하나님의 복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내 인생을 강권적으로 간섭하시는 것이 최고의 복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시몬이 억지로 십자가를 져야만 할 그 당시는 고통스럽고 창피하고 부끄러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억지로 진 십자가로 인해서 훗날 시몬의 인생과 자손과
성경에 기록을 남길 정도의 엄청난 축복을 받았음을 하나님의 말씀이 증언하고 있습니다.
마가복음 15장 21절의 말씀을 봅니다.
시몬에게는 알렉산더와 루포라는 두 아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장차 하나님의 사람 믿음의 사람이 되어 바울과 함께 사역의 동역자가 됩니다.
로마서 16장 13절을 봅니다.
여기서 어머니는 바로 구레네 사람 시몬의 아내입니다.
이렇게 사도였던 바울을 만나 함께 믿음의 반열에 서는 축복된 가정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것을 볼 때 억지로 십자가를 지는 것은 형벌이 아니라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바로 축복받는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억지로 진 십자가가 자기 운명을 바꾸어 놓을 줄은 생각도 못했을 것입니다.
억지로 맨 그 십자가 속에 큰 복이 있음을 시몬은 몰랐습니다.
억지로라도 지고 갔던 이 십자가가 시몬에게는 은혜가 되고 축복이 되고
영광이 되어서 자자손손까지 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말씀인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 예수에 대한 이야기 중에서 가장 큰 클라이맥스는 바로 십자가의 죽음입니다.
이 십자가의 죽음에서 예수가 그리스도요 메시아요, 하나님의 아들이요
구원자로 오셨다는 사실을 최초로 목격한 자가 바로 구레네 사람 시몬입니다.
억지로 진 십자가가 시몬에게 어떠한 복을 주었는지,
또 오늘 우리가 져야할 십자가는 무엇인지를 생각해 볼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부산에서 사역하던 어느 전도사님이 어느 성도한테 어려움을 당한 말을 했습니다.
어느 성도가 괴로워하면서 내가 예수를 몰랐으면 죄인인줄도 모르고 내 마음대로 살 텐데
당신이 나를 예수 믿게 해서 내가 이렇게 힘들다고 화를 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알지 못했다면 교회를 안 나와도 되고 마냥 내 마음대로 살 수 있었을 텐데
예수님을 만난 이후로 희생해야 되고 행동도 조심해야 되고 말도 조심해야 되고
육 일 동안 열심히 일하고 주일날 교회 나와서 온 종일 봉사하고 세상에 나가서
빛과 소금의 삶을 살라고 하니 이것이 짐이 되어 가지고 왜 나를 힘들게 했냐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렇다고 생각을 하십니까?
예수님을 믿는 것이 힘듭니까?
교회 나오는 것이 무거운 짐이 됩니까? 식사봉사 하는 것 무거운 짐이 됩니까?
내 마음이 내키지 않아도 어떠한 상황 속에서 보기 싫은 사람이 있어도 억지로라도
예수님의 일을 할 수만 있다면 바로 자신에게 복이 됨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우연히 믿게 되었다고 생각하지도 마시고,
어쩌다가 하기 싫은 직분을 맡게 되어 고생한다고 원망하지도 마시고
누구 때문에 교회에 끌려와 들로 산으로 바다로 놀러가지 못하고 억지로 앉아있다고
원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자신도 모르게 복된 삶으로 들어서고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마찬가지로 구레네 시몬이 짊어진 십자가는 억지로 짊어진 십자가였지만
시몬은 그 일로 말미암아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가기 싫고 오기 싫어도 교회에 나오시고, 갈등이 일어나고 주저하는 마음이 생길지라도
내가 원하지 아니한다할지라도 하나님을 위하여 살아가면 결국 그것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는 길이요 나 자신이 복을 받는 삶을 누리는 인생길이 됨을 잊지 마시길.......
진실로 내게 주신 그 십자가를 지기 싫을 지라도 그것이 바로 영광스러운 십자가요
축복된 십자가라고 믿고 깨달은 사람 그 사람은 앞으로 어떤 곳에 가더라도 승리할 수
있으며 많은 사람에게 복이 되고 축복된 인생을 살아갈 수가 있을 것입니다.
오늘 시몬과 같이 십자가는 우리 스스로 지고 가는 것이 아니라
어떤 힘에 의해서 억지로 지워지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저와 여러분을 붙드시고 십자가를 지게 하시고 그 같은 길로 가게 하십니다.
이것이 성령을 우리 안에 보내 주셔서 자기 백성에게 함께 하신 이유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띠 띠우고 우리가 원하지 않은 길로 데려가십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이 가신 십자가의 길입니다.
우리는 그 예수님의 간섭하심을 거부할 수 없습니다.
고통이란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라고 합니다.
십자가의 고난을 나의 것으로 받아들일 때 우리에게 있는 십자가는 고난이 아닐 것입니다.
구레네 사람 시몬이 억지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짊어졌지만
그것은 재수 없는 것이 아니라 엄청난 복이였음이 무엇을 깨우쳐 주시고 있습니까?
지금 사순절기간입니다. 고난 뒤에는 부활이 있습니다.
우리들은 십자가지고 가는 삶을 살아야만 합니다.
교회는 십자가를 말하는 목사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십자가를 지는 목사가 필요하며
십자가를 바라보고 말하며 듣기만 하는 교인들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십자가를 억지로라도 메고 지고 가는 시몬과 같은 그리스도인들이 필요한 줄 믿습니다.
때로는 아픔이 있고 피곤함도 있고 말할 수 없는 힘든 일도 있지만
항상 변함없이 봉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내가 짊어질 무거운 죄의 짐의 십자가를 예수님이 대신 지셨으니
우리는 예수님의 기쁨을 위하여 오늘의 사명의 십자가를 짊어지는 것뿐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마음이 불편하고 갈등이 생겨도 그 자리에서 도망하지 말고
억지로라도 십자가를 지고 갈 수 있기를 원합니다.
억지로 지는 십자가라도 예수님과 만나는 축복의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어떠한 상태, 어떠한 마음이라도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 있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지기 싫어도 억지라도 구레네 시몬처럼 십자가를 지고 가므로
예수님을 만나게 되고
예수님의 구원의 감격을 누리며 살아가는 복된 삶이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