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긴 잠에서 깨어나는 한국 '팬터마임' |
| |
춘천에서 두번째 '회생'의 페스티벌 열려 새 시도 돋보였으나 소규모 아쉬움 |
시사저널[56호] 1990.11.22 (목)
| 고금석 (연극연출가) |
몸짓 하나로 세계를 표현하는 마임(무언극)의 축제가 지난 6~7일 양일간춘천에서 열렸다. 작년 5월 공간소극장에서 열렸던 첫번째 마임페스티벌에 이은 이번 제2회 축제에는 유진규 최규호 그리고 '차세대 마임'을 대변하는 임도완과 유홍영등이 참여했다. 두번에 걸쳐 '세계인형극제'를 개최하고 '전국연극제'를 유치했던 낭만의 호반도시 춘천은 이번에는 마임축제를 맞아들여서 '문화예술의 도시'라는 이미지를 착실하게 다져가고 있다.
마임축제는 6일 인천 돌체소극장 '최규호와 광대들'의 거리마임으로 시작되었다. 거리마임은 전야제 행사를 겸해 벌어졌는데, 오후 2시 강원대 교정에서의 한마당을 시작으로 5시에는 명동 시청 앞까지 이어졌다. 비가 오락가락하는 궂은 날씨였음에도 많은 시민들은 발걸음을 멈추고 어릿광대들의 서커스 묘기와 행인들과의 즉석 해프닝에 박수를 보냈다.
7일의 춘천시립문화관 공연은 관객동원이나 작품에 대한 관객의 호응에서 근래에 보기 드문 성공을 거두었다. 사실 두번에 걸친 한국마임페스티벌은 한국마임계로서는 중요한의미를 갖는다. 69년도 극단 에저또의 마임 워크숍을 모태로 시작된 한국마임은 초창기에 정호영 전유성 김종찬 고 호씨 등이 참여하다 잠시 중단된다. 그후 72년에 데뷔한 유진규, 74년 공간에서 침묵극 발표를 계기로 시작한 김동수 김성구가 외롭게 맥을 이어오다가 80년 초반부터는 아예 긴 휴면상태로 들어가버린다. 오랜 침묵으로 이렇다 할 무대를 갖지 못했던 한국마임은 88년 들어서야 유진규의 재기무대가 마련되고 거의 같은 시기에 임도완 유홍영 심철종 등 차세대 마임이스트들이 가세하며 기사회생한다. 그 여세를 몰아 탄생한 것이 바로 한국마임축제인 것이다.
첫번째 축제는 89년 5월24일부터 29일까지 일주일 동안 공간소극장에서 열렸는데, 20년에 걸쳐 선구자적인 역할을 했던 중견연기자들과 신인들을 총망라해 마임계의 새 출발을 다짐한 흐뭇한 행사였다.
이번 춘천에서의 첫 무대를 장식한 임도완은 여간 재간꾼이 아니었다. 그는 <손>이라는 작품에서 무대를 사방 1m도 안되는 상자곽안에 축소시키고, 두 손만을 이용해 1천여 관중을 압도했다. 임도완은 두 손으로 암수 한쌍의 새를 표현했는데 새가 다투고 화해하는 과정을 인형극의 형태로 만들어 팬터마임의 또다른 세계를 보여주었다.
유홍영은 봉산탈춤의 <노장마당>을 팬터마임으로 풀어보려는 시도를 하여 이채로웠다. 평소 마임이 서구적인 몸짓으로 일관해온 데 대해 불만을 품어왔던 유홍영은 한복을 입고나와 좁은 판을 사이에 놓고 노장이 소무로, 소무가 취발이로, 취발이가 노장으로 변신하는 과정을 해학스럽게 보여주었다.
유진규는 <생김과 없어짐><삶>등 신작을 선보였는데 삶을 소재로 한 사변적인 몸짓으로의 변화를 꾀했다. 그는 때론 담담한 묵화를 그리듯 때론 무용을 하듯 생략되고 절제된 모습을 보였다.
이번 축제에 초대된 연기자들은 올 한해 동안 '공간 마임의 밤'을 통해 계속적인 발표회를 가졌던 때문인지 비교적 탄탄한 연기를 보여주었고, 음악과 춤을 최대한 활용하여 많은 볼거리를 제공하려고 노력했다.
음악 춤 활용. 많은 볼거리 제공
그러나 춘천에서의 이번 행사는 그 규모나 의욕에서 1회 때보다는 훨씬 뒤지는 소규모 행사에 머물고 말았다. 작년엔 10개팀 20여명의 인원이었던 것이 올해는 4명으로 줄었고, 기간도 일주일에서 전야제를 포함, 이틀로 짧아졌다. 그 결과로 마임은 침묵극 행위예술 해프닝 등 보다 다양한 형태와 교류하며 영역을 넓혀갈 기회를 잃어버렸다.
그리고 4명이 모두 고전에 가까운 정통 마임을 하고 있어 전체 구성이 단조로웠다. 지나치게 맨몸에만 의존하는 연기를 보여주어 소품이나 무대매체에 대한 적극적인 활용이 아쉬웠다.
그러나 이런 몇몇 약점에도 불구하고 연기자들은 마임의 매력을 소개하는 데 성공했고, 관객들은 '낮선 행위'를 마음껏 자기 것으로 즐길수 있었다. 공연이 끝나며 연기자들은 손으로'하트' 모양을 만들어 관객에게 선사했으며, 관객은 열띤 갈채로써 그 사랑을 받아들였다. 제2회 한국마임페스티벌은 마음과 마음이통한 '사랑의 축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