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의 ‘동의’인가, 학부모의 ‘요구’인가?
2018년 12월,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마친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이 강원도로 ‘학교장 허가 교외체험학습(이하 교외체험학습)’을 갔다가 펜션 난방설비 문제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어디까지나 ‘안전사고’였음에도 교육부는 전국 고3 학생들의 교외체험학습에 대해 전수조사를 벌이며 교외체험학습을 자제할 것을 명했다. 이 사고가 ‘출석으로 인정하는 결석’(출석인정 결석) 중 하나인 교외체험학습 때문이었다면 이 제도를 폐지했어야 마땅하다.
5월 어느 날 한 학생이 제주도에 가서 한 달 살기 체험을 하기로 했다면서 교외체험학습신청서를 제출한다. 기간은 5월 19일부터 6월 15일까지다. 6월 1일 지방선거일을 빼면 딱 19일이다. 거의 한 달 동안 학교에 나오지 않아도 출석으로 인정해주는 교외체험학습이지만 학생의 보호자가 서명까지 해서 계획서와 함께 제출한 신청서를 반려한 사례는 이 제도가 시행된 이래 단 한 번도 없었을 것이다. 이 제도가 처음 시행될 당시 ‘교육’보다는 ‘관광산업활성화’라는 경제적 목적이 더 크다는 말이 널리 회자되기도 했다.
5일마다 학생의 안위를 확인하라고?
5일째 되는 날 담임교사는 학생 보호자에게 전화를 한다. 여기부터 무한 경우의 수 퍼레이드가 펼쳐진다. 전화를 받는다/안받는다. 다행히 통화가 된다. 안부를 묻는다. “00이는 잘 지내고 있나요?” 직접 통화를 요구한다. “00와 통화할 수 있을까요?” 직접 통화가 된다/안된다. 학생에게 직접 안부를 묻는다. “잘 지내고 있어?” “제주도는 어때?” “저 지금 제주도 아닌데요?” 요행히 여기까지 대화가 이루어졌다고 하자. 그 다음은 무엇일까?
“어머니, 제주도 한 달 살기로 체험학습 신청서 내셨는데요. 지금 제주도에 계신 거 아니라면서요. 제출하신 계획과 다르니 바로 중단하시고 돌아오세요.”라고 말할 수 있는 담임이 어디에 있을까?
이것은 담임교사의 안전불감증도, 이 제도의 미비점 때문도 아니다. 부모가 자녀를 데리고 극단적 선택을 계획하고 허위 신청서를 제출했을지도 모른다고 의심하지 않는 것이 지극히 정상이고 상식이기 때문이다.
“보호자의 동의를 얻어”
1995년 5월 31일 ‘신교육체제 수립을 위한 교육개혁방안’(이하 5.31 교육개혁안)은 1946년 제정되어 37차례나 개정된 「교육법」을 「교육기본법」, 「초․중등 교육법」, 「고등교육법」으로 제정할 것을 요구하였다. 이에 따라 1997년 12월 「초․중등 교육법」이 제정되었고, 「초․중등 교육법 시행령」과 더불어 1998년 3월 1일부터 시행되었다.
학교장 허가 교외체험학습의 법적 근거는 이때 마련되었다. 「초 중등교육법 시행령」 제48조제5항은 “학교의 장은 교육상 필요한 경우 보호자의 동의를 얻어 교외체험학습을 허가할 수 있다. 이 경우 학교의 장은 교외체험학습을 학칙이 정하는 범위 안에서 수업으로 인정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1997년 제정 이후 이 시행령은 100차례가 넘게 개정되었지만 이 조항은 단 한 번도 개정되지 않고 있다. 법문은 보호자의 동의를 구하는 주체를 학교의 장으로 정하고 있는데 실제 현실은 학부모가 주체가 되어 신청서를 제출하면 학교장이 허가하는 식으로 운영된다. 이 조항에는 문제가 없는 것일까? 왜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것일까?
이 조항에 근거한 ‘학교생활기록 작성 및 관리지침(교육부훈령 제393호 시행 2022. 3. 1., 일부개정 2022. 1. 17.)’에는 다음과 같이 명시하고 있다.
제8조 (출결상황)
① ‘수업일수’ 란에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제45조에 따른 수업일수를 입력한다.
② ‘결석일수’, ‘지각’, ‘조퇴’, ‘결과’ 는 별표 8에 따라 질병․미인정․기타로 구분하여 연간 총일수 또는 횟수를 각각 입력한다.
위 훈령의 별표 8(출결상황 관리 등)의 2조 나목은 다음과 같다.
2. 결석
나. 다음의 경우에는 출석으로 인정한다.
1) 지진 폭우 폭설 폭풍 해일 등의 천재지변 또는 법정 감염병 등 학교 내 확산 방지를 위해 학교장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비법정 감염병을 포함 으로 출석하지 못한 경우
2) 병역관계 등 공적의무 또는 공권력의 행사로 인하여 출석하지 못한 경우
3) 학교장의 허가를 받은 ‘학교․시도(교육청)․국가를 대표한 대회 및 훈련 참가, 산업체 실습과정(현장실습, 현장실습과 연계한 취업), 교환학습, 교외체험학습, 「학교보건법」 제8조에 따른 등교중지’ 등으로 출석하지 못한 경우
위 내용을 보면 시행령의 “학교의 장은 교외체험학습을 학칙이 정하는 범위 안에서 수업으로 인정할 수 있다”는 규정은 교육부 훈령을 통해 ‘출석 인정 결석’으로 지정되어 버린다. 상위법인 시행령보다 촘촘한 규정으로 학교장의 자율권을 침해하고 있는 조항인 셈이다.
훈령으로 다 담지 못하는 부분을 교육부는 매년 ‘학교생활기록부 기재요령(이하 기재요령)’을 통해 구체적으로 안내하고 있다. 교육부는 기재요령 일러두기를 통해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이 학교생활기록부 기재요령은 학교생활기록부 작성 및 관리의 표준화를 통해 학교생활기록부의 공정성과 신뢰성을 제고하기 위한 것으로 시․도교육청이나 교육지원청, 학교현장에서 임의로 변경하여 적용할 수 없습니다.
2022년 기재요령 57쪽에는 교외체험학습의 출결 처리를 이렇게 명시하고 있다.
7) 교외체험학습 출결처리
◦ 기간 및 횟수: 교육과정 이수에 지장이 없는 범위 안에서 학칙이 정한 범위
◦ 내용: 현장체험학습, 친인척 방문 가족동반 여행, 고적 답사 및 향토행사 참여 등
- 감염병 위기 경보 단계가 심각 경계 단계인 경우에 한해 교외체험학습 승인 허가
사유에 '가정학습' 포함
※ 가정학습 승인 시 학교장은 학생의 안전 건강을 최우선으로 판단하여 승인여부를 결정함.
※ 정상적인 교육과정 이수에 지장을 주는 과도한 체험학습 허가 자제
◦ 방법: 교외체험학습 신청(신청서 및 학습계획서 제출) → 학교장 심사 후 승인 통보 → 교외체험학습 실시 → 교외체험학습 보고서 제출 → 면담 등을 통한 사실 확인 후 출석 인정 결석으로 처리
※ 「초 중등교육법 시행령」 제48조제5항에 따라 학교장은 교육상 필요한 경우, 보호자의 동의를 얻어 학칙이 정하는 범위 안에서 교외체험학습을 허가하여 수업으로 인정할 수 있으나, 학교생활기록부의 어느 항목에도 내용을 입력하지 않음.
‘수업으로 인정할 수 있다’는 규정은 ‘출석 인정 결석’으로 둔갑하고, ‘정상적인 교육과정 이수에 지장을 주는 과도한 체험학습 허가 자제’라는 문구는 실효성이 상실된 지 오래다. 서울시교육청의 경우 해외 어학연수 등으로 인한 교외체험학습 남발로 인한 문제 때문에 국외의 경우만 교육청에서 ‘10일 이내’로 제한해 두었을 뿐이다.
우리가 진짜 물어야 할 것
‘교외체험학습’이 5.31 교육개혁안이 정초했던 것처럼 학교 밖 체험활동을 통해 학생들의 다양한 체험과 성장을 지원하는 교육 기제로 작동하고 있는가? 아니면 강산이 두 번이나 변했을 세월의 흐름과 함께 다시 한 번 손 보고 정비해야 할 제도가 되었는가?
교외체험학습 중인 학생의 관리 책임을 담임교사에게 묻는 것은 이 제도의 시효가 다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교외체험학습이 학생의 신변안전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잠재적 가능성을 전면화시키고 있는 가정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이 제도의 공과를 논하고, 그 교육적 의미를 평가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 아닐까? 5일마다 담임교사의 확인전화와 같은 땜질식 처방은 구차하기만 하다.
원글 링크: https://www.koreateachers.org/news/articleView.html?idxno=8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