終郎의 屍身을 묻어준 武夫
有一武士習射于訓練院, 日暮而還路, 遇一女鮮衣婉容立於沙場路左. 愁色滿顔, 武士心動戱之曰 : 「日暮虛場, 何物美姝獨立延佇?」 女卽改容春風之氣可掬. 遂嬌辭而答曰 : 「有所如歸向弊室, 日暮路遠以是憂之.」
유일무사습사우훈련원, 일모이환로, 우일여선의완용립어사장로좌. 수색만안, 무사심동희지왈 : 「일모허장, 하물미주독립연저?」 여즉개용춘풍지기가국. 수교사이답왈 : 「유소여귀향폐실, 일모로원이시우지.」
[解釋] 어떤 한 무사가 訓練院에서 활쏘기를 익히고서 날이 저물어 돌아가는 길에, 깨끗한 옷에 유순한 용모를 한 여자를 만났는데, 모래사장 왼 편에 서있었다. 얼굴 가득 근심스런 낯빛을 하고 있는지라 무사는 마음이 동하여 농담하였다. 「날도 저물었는데 텅 빈 모래사장에 어떤 미녀가 오랫동안 홀로 서 계실까?」 여자가 즉시 얼굴빛을 고쳤는데 춘풍어린 기운이 역력하였다. 마침내 교태로운 말로 대답하였다.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날은 저물고 길은 멀어 이 때문에 근심하고 있는 것입니다.」
曰 : 「娘若道遠日暮, 與之同歸何難.」 曰 : 「妾名終郎, 家在南山底南部洞路窮處. 如蒙賢君子不棄賤陋, 何幸之如?」 遂與携同手歸南部窮巷, 入其家.
왈 : 「낭약도원일모, 여지동귀하난.」 왈 : 「첩명종낭, 가재남산저남부동로궁처. 여몽현군자불기천루, 하행지여?」 수여휴동수귀남부궁항, 입기가.
[解釋] 무사가 말하기를, 「낭자께서 만약 길은 멀고 날은 저물어 근심하는 거라면야, 함께 가주는 것이 뭐 어렵겠소.」고 하자, 여자가 말하기를, 「저의 이름은 終娘이고, 집이 남산아래 남부동 길 궁벽한 곳에 있습니다. 만약 어진 군자님께서 저를 천하고 더럽게 여기지 않으셔서, 그 은혜를 입을 수 있다면야 얼마나 큰 행운일는지요?」라 하고는, 드디어 함께 손을 잡고 남부동 구석진 곳으로 가, 그녀의 집으로 들어갔다.
卽士族巨室長廓, 衡外第三間也, 卽女所寓而. 四壁圖畵帷簾衾褥甚華. 仍與之坐, 架上有細柳器盛切脯芳肴, 枕右有白沙缸淸醑灎瀲, 其側有畵盃. 遆酬累巡, 遂極其繾綣. 而但體冷如潑水. 久而不溫問之. 則曰 : 「暮夜遠行弱體猶寒.」
즉사족거실장곽, 형외제삼간야, 즉여소우이. 사벽도화유렴금욕심화. 잉여지좌, 가상유세류기성절포방효, 침우유백사항청서灎렴, 기측유화배. 체수누순, 수극기견권. 이단체냉여발수. 구이불온문지. 즉왈 : 「모야원행약체유한.」
[解釋] 거가대족의 집으로 길고 컸는데, 난간 밖 세 칸 집이 그 여자가 거처하는 곳이었다. 사방 벽에는 그림이 붙어 있었으며 휘장, 발, 이부자리가 무척 화려하였다. 인하여 함께 앉았는데, 시렁 위에는 자른 고기 포와 맛있는 안주를 담은 조그마한 유기고리가 놓여 있었고, 베개 오른 쪽에는 맛좋은 술이 가득한 흰 사기 항아리가 있었으며, 그 곁에는 그림 그려진 술잔이 있었다. 서로 잔을 여러 번 주고받은 후 마침내 곡진한 정을 나눴다. 그런데도 그녀의 몸은 물을 끼얹은 듯이 차가왔다. 시간이 지나도 따뜻해 지지 않았다. 그 까닭을 묻자 여자가 대답하였다. 「밤을 무릅쓰고 먼 길을 왔기에 이 약한 몸이 아직 차가운 것입니다.」
終宵騈枕抵曉而宿. 醒甚渴. 歸時見隣婦曉汲請飮, 婦疑之曰 : 「郞何空舍出來?」 曰 : 「宿終娘家.」 曰 : 「其家闔家染病死尸如麻, 終娘逝已三日, 未斂是誑我也.」
종소병침저효이숙. 성심갈. 귀시견린부효급청음, 부의지왈 : 「낭하공사출래?」 왈 : 「숙종낭가.」 왈 : 「기가합가염병사시여마, 종낭서이삼일, 미렴시광아야.」
[解釋] 밤새 베개를 나란히 베고 누었다가 새벽이 되어서야 잠이 들었다. 깨어나자 몹시 갈증이 났다. 돌아갈 때 이웃집 아녀자가 물 긷는 것을 보고 물을 청하니, 아녀자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낭군께서는 어찌 빈집에서 나오십니까?」 「종낭의 집에서 묵었지요.」 「그 집은 온 집안사람이 전염병으로 죽어 시신들이 삼[麻]처럼 널려 있으며, 종낭이 죽은지도 이미 사흘이 지났지만, 아직 시신도 거두지 못하고 있는데, 저를 속이시는군요.」
武夫大驚再入省之, 家中死尸縱橫, 有一尸第三房卽終郎也. 有未盡肴酒尙在屍側. 武夫慡然而還曰 : 「娘必自悲無斂. 知我意氣多, 欲使之葬也.」
무부대경재입성지, 가중사시종횡, 유일시제삼방즉종낭야. 유미진효주상재시측. 무부상연이환왈 : 「낭필자비무렴. 지아의기다, 욕사지장야.」
[解釋] 무사는 크게 놀라 다시 들어가 살펴보니, 집안에 죽은 시신들이 종횡으로 널려 있었고, 한 시신이 세 번째 방에 있었는데 그것이 곧 종낭이었다. 미처 다 먹지 못한 술과 안주가 시신의 곁에 여전히 있었다. 무사는 멍한 채 돌아와 말하였다. 「죽은 낭자가 시신이 거둬지지 않음에 스스로 슬퍼하다, 내가 의기가 많은 사실을 알고 나로 하여금 묻어 주게끔 하려한 것이 틀림없을 거야.」
遂具柩車斂而葬于郊外, 盛備肴酒祭之而歸. 其夜夢終娘來謝曰 : 「不棄陋體斂瘞備盡, 豈無冥報? 郞其識之.」 後登第官至高階.
수구구거렴이장우교외, 성비효주제지이귀. 기야몽종낭래사왈 : 「불기루체렴예비진, 기무명보? 낭기식지.」 후등제관지고계.
[解釋] 마침내 관과 수레를 갖추어서 시신을 거두어 교외에 묻어 주고, 술과 안주를 성대하게 준비하여 제를 지내주고 돌아 왔다. 그날 밤 꿈에 종낭이 나타나 감사하며 말하였다. 「더러운 몸을 버리시지 않고 마음과 힘을 있는 대로 더 써 저를 거두어 묻어 주셨으니, 어찌 명계에서 보답하지 않겠습니까? 낭군님 그렇게 알아 두십시오.」 후에 그 무사는 과거에 급제하여 높은 관직에까지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