昭公 24年(紀元前 518年)
二十四年春王正月辛丑, 召簡公, 南宮嚚以甘桓公見王子朝, 劉子謂萇弘曰 : 「甘氏又往矣?」 對曰 : 「何害? 同德度義. ≪大誓≫曰, '紂有億兆夷人, 亦有離德. 余有亂臣十人, 同心同德.' 此周所以興也. 君其務德. 無患無人.」 戊午, 王子朝入于鄔.
이십사년춘왕정월신축, 소간공, 남궁은이감환공견왕자조, 유자위장홍왈 : 「감씨우왕의?」 대왈 : 「하해? 동덕도의. ≪대서≫왈, '주유억조이인, 역유리덕. 여유난신십인, 동심동덕.' 차주소이흥야. 군기무덕. 무환무인.」 무오, 왕자조입우오.
[解釋] 24년 봄 정월 신축에, 召의 簡公 南宮嚚이 甘의 桓公을 데리고 王子朝에게 갔다 劉子가 萇弘에게 말했다. 「甘氏까지 자조에게 갔는가?」 장홍이 대답했다. 「무엇이 해롭겠는가? 마음씨를 같이하려면 우선 의리에 맞는지 아닌지를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大誓≫에 말하기를, '주에게는 億兆의 백성이 있어도, 이들은 모두 떠날 마음이 있다. 나에게 오직 어진 신하 열 명이 있는데도, 마음씨가 모두 같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곧 주나라가 번영한 까닭입니다. 그대도 마음씨를 닦아 주십시오. 지금 우리 편이 없는 것을 걱정할 것은 없습니다.」 무오에, 王子 朝가 오에 들어갔다.
晉士彌牟逆叔孫于箕. 叔孫使梁其踁待于門內曰 : 「余左顧而欬, 乃殺之, 右顧而笑, 乃止.」
진사미모역숙손우기. 숙손사양기경대우문내왈 : 「여좌고이해, 내살지, 우고이소, 내지.」
[解釋] 晉나라의 士彌牟가 叔孫을 箕땅으로 맞으러 갔다. 叔孫은 梁其踁을 방문 안쪽에 기다리게 해놓고서 말하기를, 「내가 좌편을 향해서 기침을 하거든, 죽이고, 우편을 향해서 웃거든, 그대로 두어라.」고 다짐했다.
叔孫見士伯, 士伯曰 : 「寡君以爲盟主之故, 是以久子. 不腆敝邑之禮, 將致諸從者, 使彌牟逆吾子.」 叔孫受禮而歸.
숙손견사백, 사백왈 : 「과군이위맹주지고, 시이구자. 부전폐읍지례, 장치제종자, 사미모역오자.」 숙손수례이귀.
[解釋] 叔孫이 사미모와 만나자, 사미모가 말하기를, 「우리 임금은 맹주인 때문에, 그대를 오래도록 머물게 했던 것입니다. 가난한 우리들의 예의로서, 이제 같이 있는 여러분에게 무엇인가 해드리고 싶어서, 이 彌牟로 하여금 당신을 맞게 하는 것입니다.」고 했다. 이에 叔孫은 그 예의를 받고 돌아갔다.
二月, 婼至自晉, 尊晉也. 三月庚戌, 晉侯使士景伯涖問周故. 士伯立于乾祭, 而問於介衆. 晉人乃辭王子朝, 不納其使.
이월, 착지자진, 존진야. 삼월경술, 진후사사경백리문주고. 사백립우간제, 이문어개중. 진인내사왕자조, 불납기사.
[解釋] 2월에, 婼이 진나라에서 돌아왔다고 한 것은, 진나라를 높여서 한 말이다. 3월 庚戌에, 진나라 임금은 사미모를 실지로 보내서 주나라의 사정을 알아오게 했다. 사미모는 乾祭門의 왕의 거처를 조사하고, 민중에게 의향을 물었다. 그러나 진나라 사람들은 王子 朝를 내보내고, 그 사자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夏五月乙未朔, 日有食之. 梓愼曰 : 「將水.」 昭子曰 : 「旱也. 日過分而陽猶不克. 克必甚. 能無旱乎. 陽不克莫. 將積聚也.」
하오월을미삭, 일유식지. 재신왈 : 「장수.」 소자왈 : 「한야. 일과분이양유불극. 극필심. 능무한호. 양불극막. 장적취야.」
[解釋] 여름 5월 乙未 초하루에, 일식이 있었다. 梓愼이 말하기를, 「큰 장마가 지겠군요.」라고 하니, 昭子가 말했다. 「가물 것이다. 지금 춘분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양이 음에게 지고 있다. 이기게 되면서부터는 반드시 혹독할 것이다. 가물지 않고서는 못 베길 것이다. 양의 진행이 더디다. 세력이 이제 모이고자 하는 참이다.」
六月壬申, 王子朝之師攻瑕及杏, 皆潰. 鄭伯如晉. 子大叔相, 見范獻子, 獻子曰 : 「若王室何?」
육월임신, 왕자조지사공하급행, 개궤. 정백여진. 자태숙상, 견범헌자, 헌자왈 : 「약왕실하?」
[解釋] 6월 壬申日에, 王子 朝의 군사가 瑕와 杏나라를 쳐서, 모두 무너뜨렸다. 鄭伯이 진에 갔다. 子大叔이 정승을 하여, 范獻子를 뵙자, 獻子가 말하기를, 「王室은 어떻게 되었는가?」라고 하니,
對曰 : 「老夫其國家是不能恤. 敢及王室. 抑人亦有言曰, 嫠不恤其緯, 而憂宗周之隕, 爲將及焉. 今王室實蠢蠢焉, 吾小國懼矣. 然大國之憂也, 吾儕何知焉? 吾子其早圖之. ≪詩≫曰, 'ꝛ之罄矣, 惟罍之恥.' 王室之不寧, 晉之恥也.」 獻子懼, 而與宣子圖之, 乃徵會於諸侯, 期以明年.
대왈 : 「노부기국가시불능휼. 감급왕실. 억인역유언왈, 리불휼기위, 이우종주지운, 위장급언. 금왕실실준준언, 오소국구의. 연대국지우야, 오제하지언? 오자기조도지. ≪시≫왈, '병지경의, 유뢰지치.' 왕실지불영, 진지치야.」 헌자구, 이여선자도지, 내징회어제후, 기이명년.
[解釋] 여기에 대답하기를, 「늙은이는 자기 나라 일도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도저히 왕실에 대한 생각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 누군가도 말했듯이, 홀어머니가 자기가 짜는 길쌈을 걱정은 하지 않고, 주나라가 말하는 것만 생각한다고 했으니 이것은 윗사람이 어지러우면, 홀어머니에게도 재앙이 미친다는 것입니다. 이제 왕실은 진정 어수선하여, 우리들 소국으로서도 걱정이 됩니다. 하지만 이러한 일은 대국의 걱정거리이니, 우리들이 어떻게 알 수가 있겠습니까? 자기 스스로 처리하십시오. ≪詩經≫에 말하기를, '긴 병에 술이 다한 것은, 술독의 수치로세.'했습니다. 왕실이 다스려지지 못하는 것은, 晉나라의 수치일 것입니다.」고 했다. 獻子는 두려워하여, 한선자와 의논하고, 장차 제후들의 회합을 요구하여, 그 날짜를 내년으로 정했다.
秋八月, 大雩, 旱也. 冬十月癸酉, 王子朝用成周之寶珪沈于河. 甲戌, 津人得諸河上. 陰不佞以溫人南侵, 拘得玉者, 取其玉, 將賣之, 則爲石. 王定而獻之. 與之東訾.
추팔월, 대우, 한야. 동십월계유, 왕자조용성주지보규심우하. 갑술, 진인득저하상. 음불녕이온인남침, 구득옥자, 취기옥, 장매지, 즉위석. 왕정이헌지. 여지동자.
[解釋] 가을 8월, 기우제를 지낸 것은, 가을 가뭄 때문이었다. 겨울 10월 癸酉에, 王子 朝는 주의 보물인 규옥을 황하에 가라앉혀서 복을 빌었다. 甲戌에, 나무 사공이 그 옥을 하수에서 주웠다. 때에 마침 陰不佞이 溫의 사람을 이끌어 남방을 침로하고 있다가, 옥을 주운 자를 잡아서, 옥을 빼앗아, 팔려고 했더니, 그것은 돌이었다. 그 후에 경왕이 주를 정했을 때 뱃사공이 정말 옥을 바쳤다. 왕은 그에게 東訾의 마음을 주었다.
楚子爲舟師以略吳疆. 沈尹戌曰 : 「此行也, 楚必亡邑. 不撫民而勞之, 吳不動而速之. 吳踵楚, 而疆埸無備, 邑能無亡乎.」
초자위주사이약오강. 심윤술왈 : 「차행야, 초필망읍. 불무민이로지, 오부동이속지. 오종초, 이강역무비, 읍능무망호.」
[解釋] 楚子가 수군을 만들어 오나라 국경을 쳤다. 沈尹戌이 말했다. 「이번 행차에서, 楚나라는 기필코 토지를 없앨 것이다. 백성들을 못 견디게 일을 시키고, 가만히 있는 오나라를 유인한다. 만일 吳나라가 楚나라의 뒤를 침범해 온다면, 국경지대에는 준비가 없기 때문에, 뺏기지 않고는 못 배길 것이다.」
越大夫胥犴勞王於豫章之汭, 越公子倉歸王乘舟. 倉及壽夢帥師從王, 王及圉陽而還. 吳人踵楚. 而邊人不備, 遂滅巢及鍾離而還.
월대부서안로왕어예장지예, 월공자창귀왕승주. 창급수몽솔사종왕, 왕급어양이환. 오인종초. 이변인불비, 수멸소급종리이환.
[解釋] 과연 越나라 大夫 胥犴이 초왕을 豫章의 입장에서 위로하고, 越나라 公子 倉은 왕에게 배를 보냈다. 그리고 倉과 壽夢이 군사를 이끌고 왕을 모시니, 王은 圉陽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왔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오나라 사람이 초나라 군사의 뒤를 따랐다. 국경 사람들에게는 준비가 없었기 때문에, 오나라는 드디어 소와 종리를 멸망시키고 돌아갔다.
沈尹戌曰 : 「亡郢之始於此在矣. 王一動而亡二姓之帥. 幾如是而不及郢. ≪詩≫曰, '誰生厲階?' 至今爲梗.」 其王之謂乎.
심윤술왈 : 「망영지시어차재의. 왕일동이망이성지수. 기여시이불급영. ≪시≫왈, '수생려계?' 지금위경.」 기왕지위호.
[解釋] 沈尹戌이 말했다. 「郢을 망칠 시초가 여기에서 시작되었다. 왕이 한 번 움직여서 소와 종리와의 장수를 없이 했다. 몇 번 이렇게 하는 동안에 영에 오지 않을 리가 없다. ≪詩經≫에 말하기를, '누가 어지러운 기미를 만드는가?' 지금에 와선 막을 수가 없네.」라고 했으니, 이것은 왕의 일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