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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아시다시피, 북아프리카에서 해적질을 하다 우리 해군의 ‘여명작전’으로 체포된 소말리아인들을 수감하고 있는 교도소 직원은, 그들이 처음 한국에 체포되어 왔을 때는 자신들이 한 범죄행위에 대한 죄의식이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내전으로 부모 형제가 죽어가는 가난한 나라에서 먹고살려면 무엇이든 해야 했기 때문이다. 성경은 알고 잘못한 짓을 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고, 모르고 맞을 짓을 한 종은 적게 맞을 것이라고 말한다.(눅12:47~48) 그렇다면 잘못된 짓임을 잘 알고 한 자는 엄한 벌을 받게 될 것이다. 목사의 신분이 그렇다. 목사란 하나님의 뜻을 배워서 가르치는 자리이다. 누구보다 하나님의 뜻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그런 그가 나쁜 짓을 반복하고 있다면 심각한 일이다. 그렇지만 우리 주변에는 그런 목사를 보는 일이 어렵지 않다. 말하자면 그들은 자신이 하는 나쁜 일에 대해 죄의식이 없어 보인다. 그렇지 않다면 보통 사람도 쉽게 하지 못하는 일들을 천연덕스럽게 저지르고 있겠는가?
간음
마 5:28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목사들이 성추행이나 성폭행 등의 죄목으로 언론의 기삿거리가 되고 세상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는 사건들이 발생하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이다. 평신도라 하여도 예수님과 크리스천들이 받아야 하는 조롱과 멸시가 넘쳐날 텐데, 하물며 작은 흠결이라도 부끄러워하며 드높은 도덕성을 유지하여야 하는 목사가 치욕적인 죄악으로 감옥에 가는 사건이 벌어졌다면 그 충격과 후폭풍은 상상하기조차 힘들 것이다. 물론 목사도 연약한 의지를 지닌 부족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한 순간의 유혹을 못 이겨 잘못을 저지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치밀한 계획을 가지고 여신도들을 괴롭혔으며, 그것도 오랫동안 반복해서 여러 명에게 욕을 보였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한 순간의 잘못이 아니라 방탕을 좇으며 쾌락을 탐닉하는 사악한 이리의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최근 방영된 SBS 방송의 시사프로그램인 ‘그것이 알고 싶다’에 김 베드로-김 다윗이라는 부자 목사의 막장행각에 대해 방영되었다. 그들은 여신도들에게 최면을 걸려 다리를 풀리게 하고 정신을 혼미하게 해놓고 성적 착취를 일삼았다고 한다. 그리고는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메시지를 받았다며, 주님이 당신을 자신의 베필로 삼았다거나 사모가 되게 해주겠다는 등의 유혹을 했다고 한다. 신도들에게 영서를 쓰게 하고 직접 해석까지 했기 때문에 그의 유혹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리는 착시현상을 겪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목사는 90년대 말 지방교회에서 10대여신도와성적인 문제로 목사직에서 쫓겨났던 면직목사였다고 한다. 더 웃기는 사실은, 이 목사의 설교가 영적이라며 적지 않은 목사들이 설교를 배우려 교회를 기웃거렸다고 하니 기가 찰 노릇이다. 그렇지만 이를 처벌한 근거도 쉽지만은 않다. 여성신도들의 성적 피해들은 성관계시 폭력이나 강압적 행위를 통하지 않고 종교와 신을 빌미 삼았기 때문에 세상 법으로는 처벌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설령 처벌되었다고 하더라도 형을 살고 나서 기성교단의 간판을 버젓이 달고 일탈적인 행각을 다시 벌인다면 사건이 불거질 때까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그 마수에 놀아난 불행한 여신도들만 가정이 파괴되고 삶이 폐허가 되는 극심한 고통에 시달릴 것이다.
또 다른 예로 최근 ‘빤쓰 목사’로 유명세를 탄 청교도 영성훈련원의 J목사의 경우를 들어보겠다. 그는 자신의 신도라면 빤쓰를 내리라는 목사의 말에도 순종해야 한다는 투로 말했다고 한다. 짧은 치마를 입고 다니면 치마를 들추겠다는 말도 했다고 한다.(뉴스엔죠이, 2011.9.2) 그는 청중들과 상호이해, 공감을 바탕으로 말해서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성폭력 전문가들은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삼고 비하발언을 하는 것은 어느 대상이나 어떤 장소라도 비판을 피할 수 없다고 밝히고 있다. 전부는 아니겠지만 적지 않은 목사들이 가진 비이성적인 여성관을 엿 볼수 있는 대목이다. 이 같은 생각이 문제가 되는 것은 여성을 성적 유희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것은 성추행과 성폭행으로 쉽게 번질 수 있다는 것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여신도들을 성적 대상으로 삼는 목사들은 소수에 불과하겠지만, 깨끗하고 거룩한 성품에 대한 검증 없이 목사가 되는 현재의 한국교단의 시스템으로서는 음란한 목사들이 얼마든지 존재할 수밖에 없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자. 필자의 지인은 현재 교회에 다니고 있지 않다. 몇 년 전에 음란한 목사에게 받은 충격과 상처가 커서 믿음을 잃어버리고 방황하는 중이다. 지인이 다니던 교회의 담임목사는 준수한 용모에 소탈한 성품으로 교인들, 특히 여신도들에게 인기가 높았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 교회에 청소를 하러가서 이 목사로부터 수치스러운 성희롱을 당했다고 한다. 그 날 사건은 상당한 충격과 상처를 안겨주어서 그 이후로 교회를 그만두었다고 한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목사는 전임교회에서도 여신도와 음란한 사건으로 쫓겨나다시피 교회를 떠난 전력이 있었다고 한다. 이처럼 성적으로 음탕한 대부분의 목사는 자신의 한 행위에 대해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므로 또 다른 먹이를 찾아 침을 흘리면 이 교회 저 교회를 돌아다닌다. 이들은 하나님의 종이 아니라 목사의 탈을 쓴 흉악한 이리일 뿐이다.
횡령
횡령이란 직원이 회사 돈을 착복하여 자신의 임의대로 쓰다가 발각 났을 때 일컫는 험악한 범죄를 말한다. 그런데 이러한 일들이 교회에서도 적지 않게 일어난다면 경악할 만한 일임에 틀림없다. 말하자면 담임목사가 교회재정을 자신의 임의대로 사용하는 일이다. 교회로 들어온 헌금은 목사가 임의대로 사용해서는 안 되며 재정부에서 총괄하여 꼼꼼하게 관리하게 되어 있다. 그렇지만 담임목사가 개척하여 세운 작은 교회일수록 재정의 투명성이 열악하여, 목사의 지갑으로 넣어져 우물쭈물 사용되는 경우가 흔하다. 물론 이 경우에도 목사는 선교목적으로 사용되었으므로 문제가 없다고 말하며, 교인들도 잘 알아서 사용했을 거라 믿는다는 게 일반적인 현상이다. 물론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지 않게 사용된 것과 상관없이 모든 교인에게 투명하게 재정의 출납과 회계를 하지 않는 게 문제라는 것이다. 작은 교회라 별 문제없을 것이라고 생각될지라도, 돈은 하나님의 자리를 넘보고 있는 악한 영이 사용하는 공격무기이기에, 한순간에 유혹에 넘어가기 십상이며 돈이 점점 커질수록 유혹의 강도는 거세지기에 작은 돈이라도 처음부터 투명하게 사용되어야 하는 것이다. 대형교회를 이룬 담임목사들이 재정을 담당하는 교회조직이 엄연히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 유용하는 풍토가 사라지지 않는 이유도 이와 다르지 않다. 작은 교회시절부터 재정이 투명하게 유지되지 않았기에 관행으로 굳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투명하지 못한 돈사용 때문에 세간에 구설수에 오르고 불명예 퇴진하는 일도 잦다. 처음부터 교회에 드려진 돈이라며 목사 개인적으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감독하는 시스템을 갖추어야 할 것이며, 그런 시스템을 무시하고 개인금고처럼 사용하려는 목사라면 분명한 경고메시지를 보내야 할 것이다.
감리교단 최고위직을 배출한 K교회는 담임목사를 횡령혐의로 소송을 제기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경악스럽다. 의혹적인 사건이 한, 두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E집사는 자신의 집에서의 심방예배를 주관한 담임목사에게 십일조로 8,000만원을 드렸다. 그런데 며칠 후 담임목사는 E집사를 따로 불러 목사 개인명의 통장을 내놓았다. 그리고는 천만원만 교회로 입금시키고 나머지 7,000만원은 따로 해외선교사업을 하자고 했다.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눈치 챈 E집사는 담임목사에게 항의를 해서 나머지 금액도 교회에 입금시켰다. 그 와중에서 담임목사의 횡령사건인 하나하나 드러났다. 어느 집사는 새벽예배때 건축헌금으로 300만원을 드렸는데, 연말정산용 증명서를 떼려고 하자 그 금액이 교회에 입금이 안 된 사실을 알고 화들짝 놀랐다. 어느 집사는 자신의 수술비 250만원을 교회에 드렸는데, 나중에 헌금봉투가 바뀐 채 50만원만 교회재정으로 입금되었다. 또 다른 예로 어느 집사는 수양관 건축헌금 700만원과 감사헌금 300만원을 담임목사에게 직접 드렸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교회에 100만원만 입금되었다. 이처럼 금전문제가 연이어 터지자 담임목사는 교회를 떠났지만, 얼마 후 다시 교회로 되돌아왔다. 이에 교인들은 감리교 서울연회에 고발장을 접수시켰고 이에 따라 열린 재판위원회에서는 고작 3개월의 정직만을 선고했을 뿐이다.(뉴스엔조이, 2011.1.10)
제자교회 J목사는 검찰에 32억원의 횡령건으로 불구속 기소되었다. 이를 조사한 검찰은 무려 총 324회에 걸쳐 총 32억 6,600만 원의 교회 자금을 개인적으로 착복하거나 제삼자와 공모해 외부로 빼돌린 것으로 보았다. 주말을 제외하면 매일 약 900만 원씩 교회 헌금을 빼돌린 셈이다. 빼돌린 자금은 J목사의 지인들에게 나누어 준 것으로 파악되었다. 이에 화가 난 J목사는 자신을 고발한 S장로와 그에게 동조한 장로 6명을 함께 출교시켜버렸으며, 장로들과 뜻을 함께했다는 이유로 교인 200여 명을 사역에서 제외시키고 제명했다.(조선일보, 2011.1.15.)
위의 두 사건은 대형교회로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어서 이를 보도한 언론기사를 살펴보았다. 물론 법원의 판결이 나와 봐야 결과를 알겠지만, 적지 않은 대형교회 담임목사들의 삐뚤어진 재정관을 들여다볼 수 있다. 이들은 교인들이 가져온 헌금을 하나님 앞에 바쳐졌다고 보기보다, 자신의 사금고로 생각하여 개인용도를 전용하는 데 별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교회에 재정을 관리하는 부서와 담당자들이 있기는 하지만, 자신의 심복을 그 자리에 앉혀놓고 불법적으로 유용하고 있다. 교회가 대형화되고 돈이 많아질수록 이런 부끄러운 사건이 언론을 통해 온 국민에게 까발려지고 있다. 이런 사건이 드러나면, 물 만난 고기처럼 세상 사람들은 기독교를 조롱하고 교회와 교인들을 싸잡아 비난하고 있다. 그렇지만 횡령사실이 있는 교회의 교인들은 자신의 담임목사를 감싸고도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물론 목사도 사람인지라 실수를 할 수도 있고, 잘못을 고백하고 회개하면 용서해주라는 예수님의 명령에 따라야 하지만, 유혹을 이기지 못해 한 순간에 벌어진 잘못이 아니라 처음부터 치밀하게 계획된 사건이거나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사건이라면 이를 철저히 공개하고 퇴출시켜 무너진 교회를 바로 세우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문제가 생겨도 교단이나 교인들이 유야무야 치부를 가리기에 급급한 결과, 날이 갈수록 추악한 비리가 반복되고 범죄의 내용이 더욱 대범해지고 있다.
사기
목사가 사기를 친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충격이다. 세상 사람에 비해 고결한 도덕성으로 흠모를 받아도 시원치 않은 데 거짓말을 하거나 사기를 치고 다니다가 검찰에 조사를 받아 실형을 받는 일이 언론에 보도되는 일이 적지 않다. 물론 대다수의 목회자들은 그렇지 않을 것이라 생각되지만, 한국교회에서 목사안수를 받는 시스템이 허술하기 짝이 없는 형편인지라 조폭들도 혀를 내두르는 끔찍한 사건들이 고결하고 성스러워야 하는 교회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러한 나쁜 목사들에게 피해를 입지 않기 위해서는 해박한 성경지식과 더불어 사악한 영의 계략을 꿰뚫는 분별력을 가지고 살펴보는 안목을 가다듬어야 한다.
얼마 전 세인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신정아사건의 후폭풍으로 가짜학위사건이 도마에 올랐었다. 그런데 그 불똥이 교회에도 튀었다. 교육부의 발표에 의하면 목사나 신학교 교수 중에 가짜 박사학위를 가진 이들이 적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그렇지만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최근에도 인천의 무인가 신학교에서 미국에 있는 성경학교 수준의 신학교와 자매결연을 맺고, 국내 목회자들에게 가짜 석박사 학위를 남발했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그곳에서 학위를 받은 목회자는 “교인들 학력 수준이 높기 때문에 이들에게 권위를 지키기 위해서 어쩔 수 없었다.”고 해명했다. 사실 이러한 사건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들에게 가짜 학위를 파는 신학교의 대부분은 미국학력인증기관에서 인증을 받지 못한, 소위 미인가 신학교로서 학력브로커에게 수백만 원에서 수천만 원의 돈을 건네주고, 정규과정을 이수하지 않고 형식적으로 국내 강연회에 참석하거나 한글 논문을 제출하는 방법으로 학위를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교회와 교인들을 속이는 일은 높은 도덕성을 유지하여야 하는 목사들에게 치명적인 잘못이다.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들이 자주 일어나고 있다.
목사가 교인들에게 거짓말을 하고 사기를 치는 일들은 흔한 일이 아니다. 그런 일이 드러나면 더 이상 목회직을 수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교인들이 쉽게 검증할 수 없다는 이유를 빌미로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는 경우가 있다. 그것은 하나님이 자신에게만 말해주었다는 소위, 특별계시이다. 이런 사건은 교인들의 신앙수준이 상당하고 성경지식이 해박한 대형교회나 중견교회에서 일어나기보다, 작은 교회나 기도원 혹은 이단으로 물의를 빚고 있는 교회에서 극성을 부린다. 이곳의 목사들은 하나같이 자신이 하나님과 절친하여 신령한 영적 능력이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물론 이들은 금식기도나 철야기도 등의 다른 이들이 쉽게 하지 못하는 희생적인 기도행위를 무척이나 강조한다. 그래서 예언의 은사를 받았으며 꿈이나 환상, 음성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들었다고 한다. 성경에서도 하나님이 자신이 택한 종에게 특별한 계시를 하는 일이 없지 않으므로, 무조건 그들의 말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말씀이 아니라고 잘라 말하기는 쉽지 않다. 그렇지만 거의대부분 그들의 말은 거짓이다. 왜냐하면 성경에 비추어보아 합당한 내용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들이 말하는 내용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사소한 것으로, 대부분 복을 받기 위해서는 교회에 헌금을 드리라고 했다거나 자신의 교회를 떠나면 하나님이 벌을 주겠다고 했다거나 주의 종인 자신의 말을 들으라고 했다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들이 말하는 내용은 축복과 벌을 내세워 돈과 복종을 강요하는 주제가 대부분이다.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이 선지자를 보내 불법과 불의를 행하는 이스라엘 민족들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전달하곤 했지만, 신약시대에는 심판의 날까지 유예하시고 참고 기다리신다. 왜냐하면 모든 이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기록한 성경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거짓예언자들과 삯꾼목자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앞세워 자신의 배를 채우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이런 일들은 정상적인 교회에서도 일어난다. 평범한 목사들도 기도하다가 생각나는 것들을 모두 하나님이 자신에게 준 특별한 메시지로 생각하고 생각없이 교인들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그렇게 보임으로서 자신이 특별한 영적 권위를 가진 종으로 비치기를 원하고, 또한 자신이 원하는 뜻대로 교회를 이끌어나가기를 바라는 속내가 감추어져 있다. 기도할 때 떠오르는 생각이라고 모두 하나님의 뜻은 아니다. 자신의 생각도 있고 악한 영이 넣어준 생각도 있다. 그러므로 이를 분별하기 위해서는 성경에 해박하여야 하고 성령으로부터 분별력을 얻어야 한다. 필자의 경험에 의하며, 성경에 특별한 기준이 없으며 교인을 책망하거나 목사에게 유익한 내용이라면 재고하며 추이를 지켜보아야 한다. 시간이 지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게 대부분이다. 이는 기도할 때 떠오른 자신의 생각이 뿐이다. 그렇지만 우리 주변에는 하나님의 이름을 앞세워 거짓말을 하고 사기를 치는 목사들이 적지 않다. 이들이 전혀 모르던 사람이라면 아무도 넘어가지 않겠지만, 자신이 다니는 교회의 담임목사라면 사태가 심각하다. 성령의 은사를 자랑하며 특별한 능력을 가진 하나님의 종이라는 것을 시도 때도 없이 강조하는 목사라면 100% 가짜일 것이 분명하다. 진정한 하나님의 종이라면 자신에게 주어진 은사를 결코 자랑하지 않으며, 혹시라도 잘못 전달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가릴까봐 늘 조심하고 근신하며 겸손하고 절제하는 태도를 잃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자세가 없는 목사라면 관심조차 갖지 않는 게 좋고, 자신이 다니는 교회의 담임목사라면 즉시 그 교회를 떠나야 한다. 그들의 말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게 아니기 때문이다.
싸움
우리나라의 기독교는 수많은 교단으로 나누어져 있다. 큰 교단들은 미국에서 파견온 선교사들에 의해 자연스레 뿌리를 내렸지만, 그 이후에 무한반복의 핵분열을 한 군소교단들은 이전투구식의 싸움을 벌이다가 뛰쳐나와 자신만의 판을 벌인 탓이다. 한국 기독교의 뿌리인 장로교내에서 대형교단의 분열도 이와 다르지 않다. 예장에서 뛰쳐나간 기장과 고신과의 분열이나 예장내에서의 통합과 합동측의 분열도 이와 유사한 과정을 가지고 독립되었다. 분열하는 과정에서 가장 먼저 시작하는 것이 미움과 질투, 시기와 같은 부정적인 감정들로 채우게 된다. 그런 감정들이 폭발하며 싸움으로 번지고 분열이라는 최악의 결과를 낳게 된다. 싸움에 익숙한 부정적인 역사를 가지고 있는 한국의 기독교는 교단뿐 아니라 개교회내에서도 비일비재하다. 질펀한 싸움 끝에 교회가 찢어지고 교인들이 정든 교회를 떠나는 일들을 보는 것이 어렵지 않다. 이미 한국교회에는 사랑과 자비, 배려와 친절, 불쌍히 여김, 오래 참음, 절제와 같은 덕목들이 사라진지 오래이다. 그 중심에 미움과 질투, 싸움과 분열을 일삼는 목사들이 있다.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툭하면 싸움을 버리며 소송을 벌이거나 교인들을 내쫒는 일들을 일삼는 담임목사를 둔 교회라면 하나님이 계실 리가 없다.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교회가 우리 주변에 너무 많다는 사실이다.
제법 교인수를 자랑하는 교회들은 신천지를 비롯한 이단들의 공격적인 전도전략에 비상이 걸렸다. 그들은 버젓이 교회에 새신자로 들어와 기존 교인들과 친숙감을 익힌 다음 교회의 기둥이 될 만한 교인들에게 접근해서 감언이설로 설득하여 빼간다는 것이다. 어떤 교회에서는 예배에 참석해서 목회자와 교인들에게 자신들의 신분을 밝힌 후에 전도CD와 책자들을 버젓이 내놓고 유유히 사라졌다고 한다. 이들의 자신감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 그들이 하는 말에서 찾아보면 어렵지 않게 알수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믿는 교회가 정당함을 주장하기 전에, 한국교회나 큰 교회들의 비리를 들추어내는 것을 기본전략으로 삼고 있다. 그중의 하나가 수많은 교단으로 분열된 부끄러운 모습을 지적하고 있다. 더불어 교회세습, 횡령, 간음 등을 죄를 저질러 유명세를 탄 중견목사들을 들이댄다. 마지막으로 걸쭉하게 싸우는 교회들의 실례를 들어 기성교회는 이미 하나님이 떠난 교회라는 결론을 내린다. 그래서 충성스런 교인들일지라도 기성교회의 나쁜 사례들을 조목조목 들어가며 설득하는 이단교인들에게 속수무책으로 넘어가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례들은 이미 언론보도에 의해 세세하게 밝혀졌기 때문에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렇듯 시장판보다 못한 교회의 싸움에 의한 분열은 세상 사람들의 조롱과 멸시를 불러오고 이단들에게 치명적인 빌미를 제공한다.
과거에 벌어진 교단분열이나 남의 교회에서 일어난 이전투구식의 싸움사건들은 그나마 다행스럽다. 그렇지만 실제 자신의 교회에서 이런 사건이 벌어지고 있다면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다. 목사파와 장로파로 갈려 싸우거나 삼삼오오 교인들끼리 떼를 지어 다니며 원색적으로 비난하다 못해 급기야는 서로 법원에 맞고소를 제기하기도 한다. 이런 일들은 대부분 교회의 주도권을 둘러싼 쟁탈전이다. 아직도 개척한 목사가 당회장을 맡고 있는 교회라면, 담임목사가 교인들의 총의를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일을 처리하면서 비리와 전횡이 수면 밖으로 드러난 결과일 게다. 그래서 이를 항의하는 교인들을 누명을 덮어씌여 내쫒았기에, 쫒겨난 이들이 이를 갈며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며 주일이면 교회 밖에서 시끄럽게 농성하는 일들이 벌어지는 것이다. 개척한 목사가 은퇴하고 새로 청빙한 목사가 온 경우라면, 처음에는 당회의 결과를 겸허하게 수용하며 겸손을 모습을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 점점 교회 내에 자신의 사람들을 확보하고 나면 그전의 모습은 온데 간데 없어지고, 이미 교회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중진들과 편을 갈라 이전투구식의 싸움을 벌이기 십상이다. 그래서 오랜 시간 이들의 싸움을 지켜보다 염증이 난 교인들이나 싸움에 져서 세력이 약해진 파벌이 교회를 떠나 껍데기뿐인 교회로 남게 되지만, 담임목사는 이 같은 불행한 일에 책임을 지고 교회를 떠날 생각이 전혀 없다. 설령 목사가 세력에 밀려 싸움에 졌다하더라도 이에 승복하지 않고 자신의 사람들과 함께 떠나서 새로운 교회를 만든다. 목사가 이런 일을 자행하는 이유는 자신이 하나님의 종이라는 정체성을 까마득히 잊었으며, 교회의 주인이 하나님이시며 교회라는 의미가 교인들의 모임이라는 사실에 전혀 무지하기 때문이다. 싸움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 지를 떠나서 이러한 지경까지 교회를 벼랑 끝에 서게 한 목사의 잘못이 가장 크다. 질시와 비난, 미움과 싸움은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성품이고, 편을 갈라 교회분열을 조장하는 행위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는 죄악임에 틀림없다. 비록 목회자에 대한 교인들의 무시와 근거 없는 비난이 사실일지라도 극한 싸움을 벌이며 법정에 호소하는 일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된다. 성경은 많이 맡긴 자에게 많이 요구할 것을 말하고 있다.(눅12:48) 이런 불행한 사건에 끼어든 목사라면 변명의 여지없이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이 예정되어있을 것이다. 목사는 평신도에 비해 많이 맡긴 자이기 때문이다.
출 처 : 다음 카페 [크리스천 영성학교]
글쓴이 : 신상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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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