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나의 바보 친구들
<세상에 둘도 없는 바보와 하늘을 나는 배>
유리 슐레비츠 그림/아서 랜섬 글ㆍ우미경 옮김/시공주니어
예술강사님이 수업을 하는 국악시간이었다. 민요도 부르고, 사물놀이 연주도 하는 시간. 아이들을 데려다 주고 오는 길에 현관에는 유치원 아이들이 보는 그림책장이 있다. 앉은뱅이 의자도 있다. 수더분하고 마음씨 고운 유치원선생님은 지금 저 조그만 아이들과 수업하느라 초집중이다. 선생님은 내가 책을 좀 살펴보고 몇 권 빌려간다고 해서 나를 나무라실 분이 전혀 아니다. 나는 내 큰 엉덩이로 앉았다가는 금방이라도 주저앉아 버릴 것 같은 작은 의자에 조심스럽게 앉아본다. 국악수업은 시작하고 있었다.
“선생님! 악기 준비할까요?”
“아니, 오늘은 비가 와서 악기가 축축하고 가죽이 퍽퍽해서 악기를 만지지는 않을 거예요. 민요 부를 테니까, 자리에 앉으세요. 다 같이 아~리라앙 아리라앙~ 아라아리~요오오오오”
아이들이 입을 떼기 시작하더니 선생님과 함께 노래를 부른다.
“선생님, 저만 부르고 다른 애들은 노래 안해요~”
“왜 노래를 안 하니? **가 제일 딴 짓 많이 하고 돌아다니네. 담임선생님한테 노래 안하고 선생님 말 안 듣는다고 문자로 일러야겠다.”
에궁~, 교실에서도 방방거리는 아이들이 다른데 가서도 오죽하려고.
내 눈은 그림책들을 열심히 스캔하고 있었다. 어머나, 유리 슐레비츠면 <새벽>을 그린 작가, 볼프 에를브루흐면 <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의 작가, 그림형제이면 제목이 잘 생각나지 않는데, 숲 속에서 두 형제가 뭘 찾아가는 내용이었어. 고미 타로면 <사과가 쿵!>인가? <달걀을 품은 할아버지>이야기는 모파상이 쓴 이야기라고 한다. <목걸이>의 그 작가. 소설가가 쓴 동화는 줄거리가 그렇게 탄탄하고 문학적일 수 없다. <이야기 담요>는 제목하고 그림이 너무 맘에 들어. 아~~~~ 아이들은 다른 수업 중이고 나는 그림책의 바다에 풍덩 빠지는 시간. 이게 꿈이 아니고 현실이라니.
이것 저것 들춰보니 책은 오래되었지만 누군가가 책장을 넘긴 흔적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달에 최초로 간 사람은 닐 암스트롱으로 세계사에 길이 남는 사람이지만, 나는 사 둔지 오래 되었지만 아무도 들춰보지 않은 책을 최초로 본 사람일 수도 있겠다. 역사에 남지 않더라도 설레임이 일어나는 일이다. 내 마음으로 쑤욱 들어앉는 책들이 많다. 골라낸 책이 총 17권! 교실에 와서 사진으로 찍어서 유치원선생님께 보낸다.
“제가 유치원 책장에서 빌려온 그림책이예요. 읽고 갖다 둘게요.☺♥”
1학기 교육과정 반성회를 마치고 저녁회식을 하고(도산면에 있는 <분이네솔곰탕>집 추천한다. 식당주인이 소박하게 가꾸는 화초와 단정한 인테리어, 과하지 않는 멋스러운 소품들이 마음에 오래오래 남는다. 저런 마음가짐으로 식당을 하는 분이 있다는 게 내가 고마웠다.) 저녁 7시 반이 다 되어 일과를 마쳤다. 퇴근하려다 교실에 두었던 그림책이 생각났다. 저 책이 없다면 나는 오늘 과연 무사히 잠들 수 있을까? 그럴 자신이 없었다. 나는 당직주사님께 모조리 잠긴 학교 문을 조금 열어달라고 부탁드렸다. 볼 때마다 돌아가신 친정아버지가 생각나는 주사님은 씨익~ 웃으시며 내게 농담을 걸으셨다.
“선생님, 그냥은 못해 드립니다. 허허허”
그날 밤 나는 무사히 잠들 수 있었다. 이 글은 주사님의 웃음과 잠들기 전 내 눈과 마음에 머물렀던 것들의 기록이다.
그림책을 소개하기 전에 작가 이야기를 조금만 하고 시작하고 싶다. 언젠가 둘이서 책갈피 모임을 하던 날, 계수님은 김소연의 <은행나무처럼> 책과 유리 슐레비츠의 <새벽>을 함께 가지고 왔다. 그 때의 기억이란 결코 지워지지 않는 문신처럼 깊이 새겨져 있다. 그저 새벽 풍경을 그린 그림책이고, 김소연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였지만 그토록 깊은 기억의 이유를 들자면 둘이서 얼굴을 맞대고 했다는 점과 그 분위기에서 느낀 이야기여서 더 여러 번 반복해서 읽고 또 읽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지난 번에 <몬스터 콜스>도 둘이서 했다. 나는 둘이서 하는 모임 좋아한다.
<새벽>은 안개 낀 호수의 새벽풍경과 호숫가에서 잠을 자고 있는 할아버지와 손자, 하늘을 나는 박쥐와 개구리, 호수 표면을 흔들며 지나가는 바람 정도이다. 손자와 할아버지가 일어나 짐을 정리하고 배를 띄워 호수를 건너간다는 이야기이다. 그림책의 화자는 제 3의 인물(꼭 사람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나무인 것 같기도 하고, 고라니나 새 일 수도 있겠다.)이라는 느낌이 든다. 찾아보면 이 그림책은 중국 시인의 한시를 바탕으로 그린 책이라고 한다.
작가의 생애를 보면 그가 닿고자 했던 동양적 정서의 출발이 보인다. 1935년 폴란드 바르샤바 출생, 유태인. 이 몇 글자만으로 출생부터 불안에 휩싸였을 환경과 탈출, 유랑의 삶이 느껴진다. 1957년에는 뉴욕으로 이주하여 본격적인 그림을 배우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새벽>이 주는 시보다 짙은 서정성은 어린 시절의 경험과 그가 탐닉했던 동양적 정서와 맞닿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세상에 둘도 없는 바보와 날아다니는 배>는 <새벽>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아서 랜섬 작가가 채록한 러시아 민담에 그린 그림이데, 주인공 바보가 하늘을 나는 배를 구하러 가는 과정은 매우 역동적인 스토리이고 실제 그림에서도 드넓은 러시아의 땅과 수많은 등장인물과 궁전과 풍차, 커다란 빵과 뜨거운 목욕탕 등이 배경으로 등장하는데 색이 화려하고 다채롭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아주 옛날, 늙은 농부 부부에게는 아들이 셋 있었다. 세 아들 중 두 아들은 남에게 속지 않고 돈을 빌릴 수 있을 정도로 영리했지만, 셋째 아들은 세상에 둘도 없는 바보로 어린 아이만큼이나 순진하여서 평생 남에게 해로운 일을 한 적이 없었다. 부부는 똑똑한 두 아들에게는 이것저것 챙겨주었지만, 바보는 제때 밥만 얻어먹을 수 있어도 다행이었다.
어느 날, 그 나라를 다스리는 차르(러시아 황제)가 하늘을 나는 배를 가져오는 사람이 있으면 그가 누구든 공주와 결혼시키겠다는 방을 붙인다. 영리한 두 아들은 자신들에게 아주 좋은 기회라며 나란히 길을 떠나기로 하고, 부부는 좋은 옷과 음식을 챙겨주며 축복해 준다.
형들이 떠나는 모습을 본 바보는 부모에게 자신도 차르의 딸과 결혼하고 싶다며 집을 떠나겠다고 말하지만, 부모는 멍청한 너는 곰이나 늑대에게 잡아먹히고 말 것이라며 반대한다. 하지만 바보는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길을 떠난다. 말라비틀어진 검은 빵 몇 조각과 물 한 병, 부모의 무관심 속에서.
얼마가지 않아 바보는 나이 많은 노인을 만난다. 등이 잔뜩 굽고 수염이 길며, 숱 많은 눈썹에 가려 눈이 보이지 않는. 노인과 바보는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바보는 자신의 부끄러운 보따리를 풀어 노인과 빵과 물을 나누어 먹는다. 하지만 말라 비틀어진 검은 빵은 갓 구인 흰 롤빵과 고기가, 물은 최고급 옥수수 브랜디가 되어 있었다. 노인이 바보에게 어디를 가느냐고 묻자, 노인은 바보에게 하늘을 나는 배를 구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그 배를 타고 가면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태우는 것도 잊지 말라고 당부한다.
노인이 알려준 대로 바보는 하늘을 나는 배를 구해서 숲 위로 날아오른다. 드넓은 러시아의 농촌과 강이 아름답다. 바보는 하늘을 나는 도중,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듣고 있느라 축축한 땅에 귀를 대고 엎드려 있는 남자와 두 다리로 가면 너무 빨리 가게 될까 봐 한쪽 다리를 머리에 묶고 한쪽 다리로 걸어가고 있는 남자를 만나 태웠다. 셋은 노래를 부르며 하늘을 날았다. 또 눈에 보이는 것은 쏠 생각도 안하고 아주아주 먼 데 있는 새나 짐승 정도를 표적으로 삼아서 쏘는 총을 든 남자와 대식가와 호숫물을 다 마셔도 목덜미도 젖지 않는 남자와 장작개비 수만큼 군인을 만들 수 있는 남자와 짚만 뿌리면 금세 날씨가 추워져서 눈도 오고 서리도 내리게 만들 수 있는 남자까지 태워서 드디어 차르가 살고 있는 궁전에 도착하게 된다. 차르는 하늘을 나는 배를 몰고 와 닻을 내린 훌륭한 남자가 누구인지 물어보라고 명령한다.
차르의 명령을 받은 시종이 가서 보니, 배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죄다 하찮은 농부들이라는 것을 단박에 알아차린다. 시종은 이 사실을 차르에게 알리자, 차르는 하나뿐인 외동딸을 농부와 결혼시켜야 한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언짢아졌다. 이제 차르는 어떻게 하면 약속을 지키지 않아도 될지 궁리하기 시작했다. 그 사람들이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을 시켜서 공짜로 배만 얻어내기 위해 바보에게 자신이 저녁 식사를 마치기 전까지 신비한 생명수를 가져오라고 명령했다. 차르가 시종에게 명령하는 순간 바보의 첫 번째 친구인 귀 밝은 남자가 그 이야기를 엿듣게 되었고,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바보는 포기하려했다. 그 옆에 있던 발 빠른 남자가 머리에 묶어두었던 발을 풀어 잽싸게 생명수가 있는 샘에 도착해서 한 병 가득 물을 담았다. 돌아오는 길에 발 빠른 남자는 시간이 충분히 여유가 있어 깜빡 잠이 들고 말았다. 차르의 저녁식사는 거의 끝나가고 있었고 발 빠른 남자는 돌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자, 귀 밝은 남자는 풍차 그늘아래 자고 있는 남자의 코 고는 소리를 찾아냈다. 그 곁의 명사수는 자신의 총을 꺼내어 풍차 나무판에 총알을 박았고, 깜짝 놀란 발 빠른 남자는 눈 깜짝할 사이에 생명수를 차르에게 전할 수 있었다.
차르는 이어 지킬 수 없는 다른 몇 가지 명령들을 내렸다. 통째로 구운 황소 열두 마리와 오븐 마흔 개에서 구워 낸 빵을 일행이 한 끼에 모두 먹기, 한 통에 40양동이가 들어가는 포도주 40통을 마시기, 바보에게 결혼식을 올리기 전 쇠로 만든 목욕탕을 뜨겁게 달구어 놓고 목욕을 하게 하기, 공주를 지킬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1개 연대의 군대는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등과 같은.
바보는 어떻게 문제해결을 했을까? 친구들이 가진 쓸데 없고 바보?같은 재주들이 총 출동된다. 나중에 바보는 차르가 자꾸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전쟁을 일으켜서 공주를 강제로 데려가겠다고 차르에게 압력을 가한다. 결국 차르는 바보에게 제발 공주와 결혼해 달라고 간청할 지경에 이르렀다.
근사한 옷을 차려입자 바보는 어떤 공주라도 결혼하고 싶어할 만큼 잘 생기고 훌륭한 젊은이가 되었다. 공주와 바보는 사랑에 빠졌고, 바보는 무척 영리해져서 궁전의 모든 사람들이 바보가 하는 말을 그대로 따라 외우게 되었다.
농부의 영리한 두 형제는 어떻게 되었냐고? 그걸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한다.
내게도 바보 친구들이 많다. 자꾸만 선물을 주는 바보, 다른 사람에게 상처주는 말을 할 줄 모르는 바보, 책만 읽으려고 하는 바보, 옛날 민요를 좋아하는 바보, 교실의 아이들만 생각하는 바보, 글을 자꾸만 쓰려고 하는 바보, 요가를 잘하는 바보, 농사지은 걸 자꾸 퍼주는 바보, 모일 때 자꾸 먹을 걸 챙겨오는 바보. 그런 바보들.
세상에서 둘도 없는 바보가 친구들과 모이기만 하면 즐겁게 노래하고 웃고 떠들었듯이, 나도 나의 바보 친구들과 함께 떠들기를 좋아한다. 요샌 노래도 곧잘 한다. 바보가 아니라 이것저것 재고 필요한 게 뭔지 계산하는데 빠른 바보가 아닌 사람들은 훨씬 덜 행복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바보가 아닌 사람들은 우리더러 저렇게 멍청하고 계산할 줄 몰라서 행복하지 않을거라 생각하겠지만, 그건 아니라 생각한다. 바보들끼리 웃고 떠드느라 바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