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믿지 않는 자들을 위한 표적, 방언
2.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듣는 자가 없고 그 영으
로 비밀을 말함이니라 3.그러나 예언하는 자는 사람에게 말하여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안위하는
것이요 4.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우나니.......
중략......12.그러면 너희도 신영한 것을 사모하는 자인즉 교회의 덕 세우기를 위하여 풍성하기를
구하라 13.그러므로 방언을 말하는 자는 통역하기를 기도할지니 14.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히지 못하리라 .....중략..... 21.율법에 기록된바
주께서 가라사대 내가 다른 방언하는 자와 다른 입술로 이 백성에게 말할지라도 저희가 오히려 듣
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22.그러므로 방언은 믿는 자들을 위하지 않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
하는 표적이나 예언은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지 않고 믿는 자들을 위함이니 (고전14:2-22)
제가 사도 신경을 다루려고 준비하다가, 본의 아니게 방언에 대한 말씀으로 돌아가게 되었는데 기본
적인 것만 말씀을 드릴 것입니다. 먼저 여러분에게 당부합니다. 저는 이 성서의 말씀을 원어, 즉 히
브리어나 헬라어 등의 원어를 공부했고 연구했고, 그래서 연구하여 해독했기 때문에 그 해독된 것으
로 말씀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필요하다면 원어를 살피고 뜻을 받기도 했지만, 성영님께서
가르침을 주시고 깨닫게 하심을 따라서 저의 경험된 말씀이 되었고, 그러므로 전하는 말씀이 되었
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듣고 동의가 되면 받으시라는 말씀을 드립니다. 저는 성영님이 계신 사람
이요, 그러므로 저와 영이 같으면 받는 것이고 함께 경험되는 말씀이 되어 믿음의 능력을 갖추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저와 영이 같지 않으면 말씀이 부딪힐 것밖에는 없고, 듣는 것이 불편할 것밖
에 없으니 빈정대거나 비웃는 것으로 말씀을 부정하지 않겠습니까? 그런 이들에게는 듣는 것 반드
시 금하라는 당부를 하겠습니다.
사실 사도신경에 대해서나 방언에 대해서나 솔직히 말해서 다루고 싶지는 않습니다. 제가 인터넷
성도들에게 방언해야 하느냐? 하지 않아야 하느냐? 하는 질문을 한참 받게 되었는데, 그때 다음에
다루겠다고 답을 했었기 때문에, 그래서 사실 그동안에 제가 방언에 대한 말씀을 준비하려고 했었
습니다. 그런데 성영님께서 계속 제게 어떤 불편함을 주시면서 강하게 거부를 해오셨습니다. 처음
엔 성영님의 거부이신지를 알아차리지를 못했으나 어렴풋하던 내게 이후에 확실히 알게 해주셨습
니다. 그래서 부득이 포기했었는데 왜 그렇게 거부하셨는가에 대해 오늘 그 일을 설명해 드리면서
방언에 대해 좀 말씀드릴 것입니다.
사람들이 방언해야 하느냐? 하지 않아야 하느냐? 하는 그 이면에는 자신이 하는 방언에 대한 확신
이 없기 때문이지 않겠습니까? 자신이 방언하면서도 그것이 성영님이 주신 것인지, 또 항간에서는
마귀가 방언을 준 것이지 성영님이 준 것 아니라고 나오니, 정말 자신의 방언이 마귀가 준 것인지
스스로가 알지 못해 다른 사람에게 의견을 묻는 것이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성영님께서는 그런 영
적인 일에서는 다른 사람에게 의견을 물어서 아는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가 알지 못하면 그는
알지 못한 자라고 하셨습니다. 성영님으로 알지 못하면 그는 알지 못한 자라고 하셨다는 말입니다.
성영님에게서 온 것이 아니면 알지 못하는 것이라고 했어요.
예수님께서,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을 아는 것은, 피부에 와 닿는 감각 때문에 알듯이 성영으로 난
자도 다 이와 같다고 하셨습니다. 바람이 지나가는 것을 피부가 느끼고 알듯 우리 눈에 보이지 않
는 성영님이 오신 것도 자기에게 오셨으면 그렇게 영과 혼의 감각으로 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
므로 자기의 방언이 성영님이 주신 것이면 어디로서인지 안다는 거예요. 방언은 자기 의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성영님이 주시는 것이기 때문에, 그래서 자신이 하는 방언을 자기가 모른다면 그것은
성영님이 주신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이 방언을 오해하고 있습니다. 방언 받는 것은 성영을 받은 것이고 방언을 못 하면
성영을 받지 못했다는 것으로 말하고, 또한 방언을 받는 것은 구원받은 증거라고 말해주고 있습
니다. 과거에 저도 순복음 계통에서 그렇게 말해주는 것을 자주 들어왔기 때문에 이 말을 합니다.
방언하는 것을 구원받은 것으로 간주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크게 잘못된 착각입니다.
방언하는 것은 구원받은 증표가 아닙니다. 구원과는 관계없어요.
여러분! 방언이라는 것은 성영님이 주시는 것만 있는 것이 아니라, 마귀가 가져다주는 것도 분명히
있습니다. 그래서 방언을 구원받은 것으로 착각하면 큰 오산입니다. 마귀가 가져다주는 것은 자기
가 알지 못합니다. 이 부분은 뒤에서 다시 설명하겠습니다. 그리고 성영님이 주시는 방언은, 구원
을 받고도 하는 것이지만, 구원을 받지 않고도 방언을 하게 하십니다. 오늘 고전14:14에 내가 만
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히지 못하리라 했습니다. 지
금 방언으로 기도한 것에 대한 사도 바울의 설명입니다. 자기가 만일에 방언으로 기도하면 자기의
누가 기도한다고요?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했어요. 나의 영이 기도한다는 것은 구원받은 자가
하는 방언 기도를 말합니다.
우리 영은요, 기도할 줄 모릅니다. 여러분이 저의 이 말에 대해서 이해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 영
은 기도할 줄 몰라요. 기도는 우리 영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영이 구원을 받기 전에는
기도하는 것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영에 있어야 할 생명이 없어 목마름의 고통을 겪는 것은 맞지
만, 영이 기도하는 것은 아닙니다. 성영님이 우리 영에 들어오시니 영이 구원을 받고, 구원받은
영이 성영님에 의해서 기도하는 것이기에, 그래서 나의 영이 기도한다는 것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이해됐습니까?
그런데 구원받지 않았음에도 성영님께서 혀를 붙잡아 방언하게 하십니다. 왜입니까? 구원 안으로
들어오게 하시려는 뜻에서입니다. 성영님이 그에게 와계신다는 것을 표적으로 주시는 은사입니다.
성영님이 구원 안으로 들어오게 하시려고 주시는 선물이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자기 영이 기도하
거니와'가 아니고, 구원과 상관없이 성영님이 혀를 잡아서 하게 하시는 말이요 기도입니다. 그러
니까 성영님이 오시면 맨 먼저 뭐부터 잡으신다고요? 혀부터 잡으신다고 말씀드렸죠? 성영님이 오
시면 우리 혀부터 잡으신다고 말씀드렸어요. 그래서 바울이 22에 그러므로 방언은 믿는 자들을 위
하지 않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는 표적이나 예언은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지 않고 믿는
자들을 위함이니 라고 말한 것입니다. 방언은 믿는 자들을 위하지 않고, 누구를 위해요? 믿지 아
니하는 자들을 위해 주는 표적이라고 했어요. 그러니까 방언은 믿는 자들에게 주는 것이 아니고,
누구에게 주는 거라고요? 바로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해서 주는 표적이라고 분명히 말했습니다.
그러면 믿지 아니하는 자가 구원받은 것일까요? 구원받지 않은 자임을 말하는 것이지 않습니까?
그렇죠? 그러면 방언은 믿지 않는 자, 즉 구원받지 않은 자에게 성영님이 주시는 표적이라, 성영
님이 주시는 선물이라, 왜 주시느냐? 믿는 자가 되게 하려고, 구원 안으로 들어오게 하는 표적이
란 말이에요. 표적이라는 것은 성영님(하나님의 나라)이 그의 옆에 와계신다는 것을 알게 하시려
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방언으로 하는 말이나 기도 즉 본문에서 '방언을 말한다' 또는 '방언으로 기도한다'라고 했
는데, 그 당시의 고린도 교인들이 방언을 받게 되니, 우리처럼 엎드려 눈 감고 기도했던 것이 아니
라 강단에 나와 회중을 바라보고 방언을 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말, 말이라고 표현
했고, 또 기도라고도 표현을 했습니다. 그러나 2에서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해서 방언은 곧 하나님께 기도하도록 성영님이 주신 하나님만 알아듣는 성영님의
언어임을 말합니다. 성영님이 혀를 잡아 하나님께 하는 기도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4에 방언을
말하는 것은 누구의 덕을 세우는 것이라고 합니까? 자기의 덕을 세운다고 했습니다. 남들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를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자신의 믿음을 위해서 기도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성영님의 언어는 사람에게 하는 말이 아니고 영으로 하나님께 하는 것으로서, 사람은 알아들을 수
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비밀'이라 했고, 그렇기에 14에서 바울이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히지
못하리라"고 했습니다. '내 중심이 원하는 것, 내가 원하는 것을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
다. 방언으로 기도하는 그것을 내 마음도 알지 못한다, 내 마음도 아는 바가 되지 못한다''내가 아
는 것, 내가 알고 있는 것을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알지 못한 것, 사람이 알아들을 수 없는
영으로 말하는 것이니, 사람의 마음도 알 수 없다'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우리 인간 머리로, 인간
양심으로 영이신 하나님을 알 수 있다고 했습니까? 영이신 하나님은 또한 영으로만 아는 것입니다.
영으로만 안다는 것은, 성영님이 우리 영에 오셔야 안다는 말입니다. 방언, 즉 영으로 기도하는 것
도 그와 같다는 것을 이해하면 됩니다. 이해됐습니까?
그러면 여러분, 구원받지 않은 우리 영이 하나님의 비밀을 말한다는 말입니까? 아직 구원받지 않은
영이 하나님의 사정 하나님의 비밀을 알 수 있는 것입니까? 말할 수도 없고 알 수도 없다고 조금
전에 제가 답을 드렸지요? 그러면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라도 다 통달하시고 그 모든 비밀을 다 아
시는 분이 누구예요? 성영님이시죠? 그래서 그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라 하는 것은 구원받은 내 영
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이것은 구원받기 전에 성영님이 혀를 잡아 말하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성영님이 혀를 잡아서 하나님께 기도하게 하신다, 말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 지성과 이성으
로는 알아들을 수 없는 성영님의 언어로 혀를 잡아 말하게 하신다, 기도하게 하신다 하는 겁니다.
'내 영으로, 나의 영으로' 했을 때는 구원받은 것을 말하고, '그 영으로' 했을 때는 그에게 성영
님이 오셔서 혀를 잡았을 뿐, 구원받기 전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영님이 무엇을 기도하게 하십니까? 바로 영적인 것, 하나님의 뜻대로 믿음을 가질 수 있
도록, 죄를 깨달을 수 있도록 하시기 위해서, 예수님을 알고 예수님에 대해서 증거하는 말씀을 믿
고 받을 수 있도록 하시기 위해서, 그러니까 말씀으로 말미암아 의에 대하여 죄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깨달을 수 있는 지혜와 믿음을 구하도록 성영님이 혀를 잡아서 기도하게 하시는 영의 기도
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이 방언을 진짜 성영님으로부터 받은 것이면 성영님께서 이 사람의 영혼을
바른 믿음 안으로 이끄시는 너무나 귀한 표적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또 표적을 가졌다고 해
서 다 그렇게 이끌림을 받는다는 것 아닙니다. 이것은 내적 표적이 아니라 외적 표적이기 때문에
이 은사를 경험하고도 잘못된 경우는 얼마든지 있어요. 방언을 주시는 것, 바로 믿음 안으로 들어
올 수 있도록 개인의 믿음을 위해서 주시는 하나의 표적이요, 하나님이 계신 것과 성영님이 오신
것을 체험으로 알게 하시는 표적, 성영님이 임하셨다, 곁에 와계신다는 표적, 그래서 믿음을 가
질 수 있도록 하시고 성영님께서 말씀을 깨닫게 하심을 따라 성영님을 안으로 모셔 들여 거듭나게
하시는 표적이라는 말입니다. 알아듣습니까?
그리고 방언의 기도는, 여러분이 잘 아십시요. 성영님이 각 사람에게 자기의 뜻대로 주시는 것이
지, 무조건 무차별로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방언 달라고 몸부림치며 기도한다고 해서, 방언 받겠
다고 며칠씩 밥을 굶고 기도한다고 해서, 또 부흥회라든가 어떤 집회에서 고조된 분위기 속에서
흥분하고 도취하고 열광하고 감정에 몰입하고 하는 그런 것들을 통해서 방언을 주신다거나 받게
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이것은 다 사단의 흉계로 믿음의 일인 것처럼 흉내 내는 것에 걸려들
어서 하는 짓들입니다. 그리고 방언을 해보겠다고 무슨 연습을 한다든가, 저도 들었어요. 연습한
다는 것에 대해서....., 또 방언을 받겠다고 연습을 한다든가 혀가 돌아가게 한다든가, 하는 것은
다 가증한 것이요, 장난하는 귀신의 영들에 자신을 온전히 내주는 무지한 일들입니다. 만일에 이
같은 경로들을 통해서 방언을 받게 되었다고 하면 그것은 성영님으로부터 받은 것 절대로 아니니
정신차리기 바랍니다.
성영님은 인격이십니다. 하나님이세요. 사람들이 자기 욕심에 이끌려 방언이나 어떤 능력들을 받겠
다고 하는 그런 비정상적인 환경이나 방법들에 역사하시는 분 아니란 말입니다. 방언을 구하지 않
는다 해도 그의 정신이 똑바르면 성영님이 분명히 주시게 되어 있어요. 물론 구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영님이 자기 뜻대로 방언하게 하실 자를 알고 주시는 것입니다. 교회 공동체 안에서 기도
할 때에 주시는 것이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뜻에 맞는 신앙이 되고자, 말씀을 깨달아 삶을 살고자
하여 대부분 혼자 기도할 때에 많이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하는 간절함이 있고 인
격적인 겸손한 자에게, 죄인 됨을 고백하고 회개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자에게, 성영
님께서 와계신다는 증표로 그의 혀를 잡아 방언하게 하신다는 말입니다. 장소도 시간도 구애받지
않는 것이요, 또한 장소도 시간도 구애됨 없이 성영님이 그의 마음에 주신 소원을 따라 기도하라고
혀를 잡아 방언의 기도를 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저는 제가 교회에 나오기 몇 달 정도 되었을 때, 그때 제가 출석하는(집에서 100m 거리)교회도 방
언이나 입신이나 예언한다고 하는 일들이 교회의 이미지고 분위기 였습니다. 그 속에서 제가 방언
이 오면 혀가 밑에서 위로 말린다는 이야기를 종종 들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교회 생활이 이런 것
인가 하는 생각과 신비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별로 좋은 느낌이 들지 못했고, 그런 것은 특별한
사람들의 것으로 생각하여 부럽다거나 관심을 그리 두지 않았습니다. 또한, 그때 저는 내 마음이
이미 지옥을 처절히 겪고 있는 것이었기에 그런 것에까지 마음을 쓸 여유가 없었습니다. 마음이 그
곳으로 열리지를 않았어요. 이후 성영님에 의해 깨닫고 보니 그 같은 신비 체험들은 대부분 다 귀
신에게 속는 일들이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교회 나온지 몇 달 정도 때, 집을 이사해야 할 문제도 있고, 금식을 작정하여 기도하고 싶
다는 생각이 들어서(금식기도도 교회가 열심히들 하고 있어서) 낮 12시, 밤 12시를 기도 시간으로
정하고, 교회에 나가 사흘을 밥을 안 먹고 기도했습니다. 뭘 기도했는지 다 생각은 안 나지만, 이
사 문제를 놓고 기도했다는 생각이 있고, 내가 아는 정도의 회개도 하며 눈물을 많이 흘렸다는 것
도 생각이 듭니다. 그땐 예수님도 모르고, 천국 지옥도 모르는 상태에서 그저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만 알았기에 하나님! 하나님! 부르면서 기도할 줄을 몰라 몇 마디하고 멈추어 있다 생각나면 또
하곤 했습니다. 자정에 교회 나가 기도할 땐 넓은 예배당을 다 불 밝힐 수는 없고, 스위치가 어디
인지도 모르고 하여 컴컴한 곳에서 혼자 기도했는데, 그땐 머리가 쭈뼛쭈뼛하도록 귀신들이 기도
못 하게 방해하듯 장난하는 것들을 진짜로 경험하곤 했습니다. 그래서 귀신의 존재를 더욱 확신하
게 되었습니다.
이틀째 낮에 기도하는데 등줄기가 뜨거워지면서 입에서 내 말이 아닌 다른 말, 영어 같기도 하고,
불어 같기도 하고, 중국어 같기도 하고, 일본어 같기도 하고, 암튼 각 나라말과 같은 다른 말이
계속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방언을 달라고 기도한 적도 없고 방언에 관심을 둔 적도 없었는데, 그
리고 방언을 이해도 못 한 상태인데, 그렇게 다른 말로 계속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방언을 받으면
혀가 위로 또르르 말리듯 한다고 들었으니 그러면, 방언이면 혀가 말려야 할 텐데, 저는 전혀 말리
지도 않고 그런 느낌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혀가 말려야만 되는 줄로 알고, 그 말을 안 하려고 의
도적으로 그치고, 내 말로 하려고 하면 금방 다른 말로 돌아가고, 하기를 몇 번을 하는 중에 내 마
음에 '아 이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방언이라'는 확신이 확 밀려 들어 왔습니다. 의심할 이유도 의문
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기도할 줄 모르는 내게 성영님께서 방언을 주셔서 그 뒤로 방언으로 기도를
올려드릴 수가 있었습니다.
그 뒤 몇 해가 지난 어느 날 집에서 자유롭게 기도할 수가 없어서 그대로 아뢰었는데 성영님께서
"내가 네게 방언하게 한 것은 아무 데서나 기도하라는 것이니 이불 속에서도 할 수 있지 않으냐?"
순간 내가 알아듣기는 꼭 기도 장소가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설거지를 하면서도 잠자리에 누워
서도 화장실에서도 길을 가면서도 자유롭게 기도하는 것이라는 것으로 들었습니다. 이것은 방언에
대한 저의 경험입니다.
성영님이 주시는 방언의 기도는 영적인 능력으로 들어갈 수 있는, 큰 유익이 되는 영적 자산입니
다. 성영님이 마땅한 자에게 자기 뜻대로 주시는 신비한 하늘의 언어요 체험입니다. 고전12:7에서
각 사람에게 성영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했습니다. 그리고 고전12:11에서 성
영이 각 사람에게 뜻대로 나누어 주신다고 해서 성영님의 나타남을 주시는 은사 등의 표적은 성영
님의 뜻대로 주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 통달하신 성영님께서 통
달하신 그 비밀을 받을 자가 누구인지를 아시고, 그에게 비밀을 열어주신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내가 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다. 왜냐?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 통달하신 성
영님이 오시는 것이니, 너희에게 '유익이라'는 겁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의 말씀을 재해석하여
전해준 것입니다. 믿음은 오직 성영님으로만 되는 것이요, 하나님의 뜻대로 구하게 하시는 기도
또한 오직 성영님에 의해서요, 그러므로 성영님이 우리의 믿음을 도와주시고 하늘의 것을 소유하
게 하시니 유익인 것입니다.
성영님께서 저에게 세상 교회들을 향해 경고하라 하실 때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의 영적 상태를 보
게 하셨다고 했잖습니까? 사람들이 자기가 믿는다는 예수님을 아는 지식도 없고, 참으로 알아야 할
것은 관심이 없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알려고 하는 신앙 인격이 없는 사람들이 자기 분수에
맞지 않는 은사에나 마음을 쓰고 집착하는 모습들이었습니다. 자기 기분, 자기만족을 위해, 자기를
세우려고 분별없이 은사들을 좇아서 어떤 목사가 능력 받게 해준다더라, 어떤 목사에게 안수받고
기도 받으면 성영의 불이 임하여 불 받게 된다더라. 방언을 받게 해준다더라. 답답한 문제들을 예
언해준다더라 하는 것들에 구세주 만난 듯이 쫓아다니고 찾아다니고, 방언이나 예언 등 귀신 쫓고
병 고치는 능력, 심지어는 기도만 하면 성영 충만 이루어지는 줄 알고 성영 충만하게 해달라고,
자기의 좋은 대로 기도하는 모습들을 영으로 보게 하셨습니다.
방언 받는 것은 성영 받는 것이라고 하니 그 성영을 받겠다고, 방언 받겠다고 속임이 난무한 그
같은 곳으로 쫓아다니다 거짓 영들에 다 붙잡혀서, 그 영들에 혀를 잡혔다는 말입니다. 정신이 지
배받고 혀를 잡혀서 방언이라고 흉내 내는 것에 다 걸려버렸습니다. 모방에 걸려들었다는 말입니
다. 사단이 쳐 놓은 그물들에 걸려들어 방언이라고 열심히 흉내 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랄랄라, 따따따' 이런 발음으로 방언한다고 하는 경우들이 있는데, 그것은 성영님으로부터
온 것 아닙니다. 성영님께서 주시는 방언은 듣기에 거부감이 들지 않고 신비감이 들게 합니다. 거
짓 방언은 듣기에 거북스럽고 혐오감이 든다거나 심하게 거부감이 듭니다. 사람의 마음에 화가 일
어나게 하고 또 안정을 잃게 합니다. 그리고 무아지경에 빠진 듯이 하는 것, 깊은 기도 들어간다고
하는 것, 도취하는 것, 다 성영님에게서 온 것 아닙니다. 우리가 아버지께 기도하는 것은 믿음으로
하는 겁니다. 믿음으로! 아니, 무슨 깊은 기도 들어간다고들 하는데 도대체 어디 깊은 곳으로 들어
간다는 것입니까? 어디로?! 간혹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사실 소름이 끼칩니다.
성영님이 내게 오셨으니 성영님께서 내 생각을 지배하시고 내 혀를 잡아주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구
할 수 있도록 저의 기도를 도와주십시오. 하고 성영님을 의지하고 맡겨드리고 믿음으로 기도하는
겁니다. 사람들이 기도하는 것도 말씀의 지식을 따라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생각을 따라, 자
기 신념을 가지고 기도하고 있어서 마귀에게 자기를 지배하라고 하는 것밖에 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분명히 아십시오. 여러분이 만일에 방언을 받은 경로가 위의 경우들에 해당하면,
방언을 받았다고 하는 것이 그런 경로들을 통해서이면 다 거짓이라는 것을 알라는 말입니다. 거짓
방언이라는 것이 무엇으로 나타납니까? 자기의 방언이 어디로서 왔는지 자기가 모르는 것입니다.
자기 방언이 어디로서 왔는지 모르는 거예요. 성영님이 자기 안에 주신 확신이 없으면 거짓 방언하
는 것임을 말합니다. 그래서 방언해야 하느냐? 하지 않아야 하느냐? 하고 갈등하는 것, 이런 범주
에 속한 것은 거짓 방언입니다. '방언은 마귀가 준 것이다'하면 '그런가?'했다가, 왜입니까? 자신
이 모르니까 자기가 성영님으로 받은 것이 아니니 '방언은 마귀가 준 것이다'하면 그런가? 했다가
'방언은 성영님이 주는 은사다'하면 또 그런가? 하고, 방언을 해야 하느냐? 하지 않아야 하느냐?
전전긍긍하며 좌충우돌하는 것, 다 거짓 방언임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아니, 도대체 말입니다. 자기도 모르는 방언을 왜 합니까? 성영님께서 주신 은사인지도 알지 못하
는 방언을 왜 하는가 말입니다. 어떻게 자기가 알지 못하는 방언을 하는가 말입니다. 성영님이 주
신 방언의 기도는요, 자기가 아는 것입니다. 성영님께서 영감에 확신을 주시기 때문에 누가 뭐래도
자기가 아는 것입니다. 마음에 성영님께서 주신 것이라는 영의 직감으로 확신을 주십니다. 성영님
이 말씀하신단 말이에요. 성영님과 자기와의 관계에서 온 경험이요 성영님이 자기 안에 분명한 확
신을 하도록 하시기 때문에 분명히 아는 것입니다. 성영님과의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것은 성
영님께서 성영님이 하신다는 확신을 주시는 것까지 하십니다. 이 증거, 이 보증이 없으면 거짓이
에요. 분명히 성영님이 주시는 방언이 있고, 그 방언을 흉내 내게 하는 거짓의 영들이 주는 거짓
방언도 있습니다.
그러면 '방언은 성영님이 주시는 것이 아니라 마귀가 주는 것이라고들 하는데 방언을 해야 하느냐?
하지 않아야 하느냐?'라고 질문했던 여러분에게 말입니다. 제가 방언 안 해야 한다고 말하면 안 하
시겠습니까? 또 해야 한다고 말하면 하시겠습니까? 이것은 고전14:38에 말씀하신 만일 누구든지 알
지 못하면 그는 알지 못한 자니라 입니다. '알지 못하면 그는 알지 못한 자니.....' 이것은 버리운
자라는 말입니다. 그러니 이것이 얼마나 잘못되어 있는 것입니까? 아니, 하란다고 하고 하지 말란
다고 안 한다면....., 여러분이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자기 자신이 모르는 것을 하란다고 하는 것
이면, 그것이 흉내 내는 것이지 무슨 믿음이냐는 말입니다.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자기가 모
르는 것이면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성영님이 주신 것이면 제 마음에 확신까지 주십시오'하고 기
도해보시되 그러나 자기가 모르면 하지 말라는 말을 할 것밖엔 없습니다. 자기가 모르는 것을 도대
체 왜 합니까? 방언의 출처도 모르면서 왜 하는 건데요? 그래서 성영님께서 방언해야 하느냐, 하지
않아야 하느냐는 질문들에 대해서 제가 답해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그렇게 저의 마음을 아주 불
편케 하시면서 말하는 것을 강하게 거부를 하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하는 신앙고백에 대한 말씀도 마찬가집니다. 신앙고백에 대한 질문도 마찬가지란 말입니다.
제가 방언에 대해 말하다 보니 긴 이야기가 돼 버려서 사도신경까지는 나갈 수가 없게 되어 오늘
말씀은 이것으로 마치고 사도신경은 다음으로 하겠습니다.
그리고 참고로, 성영님께서 주시는 방언의 언어는요 그 종류가 다양합니다. 만일에 하나님께 '감사
합니다'를 A라는 사람이 하는 것하고 B라는 사람이 하는 것하고 똑같지 않고 언어가 다를 수가 있
습니다. 열 명이라도 백 명이라도 다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고전12:10에 각종 방언
말함을 이라고 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하나님 감사합니다'하는데 같은 뜻의 말이라도 각 나
라의 언어가 다 다르지 않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다 알아들으시잖아요? 성영님의 언어가 이와 같
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색을 말할 때는 한 가지 색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온갖 종류의 색깔이 있듯이
모든 색깔을 묶어 말할 때는 색이라고 말하듯이, 성영님이 주시는 방언 언어도 각각이지만, 하나님
은 하나로 들으신다는 말입니다.
예를 들면 성영님이 방언으로 '하나님 감사합니다'하게 하실 때, A는 혀에서 나는 소리가 '가나스
칸다쎄'했는데 B는 '오마이칸데쎄'했어요. 또 C는 '올레켄데마딧쎄'한 겁니다. 이런 식으로 서로
말이 달라도 성영님이 주시는 방언 통역은 똑같이 '하나님 감사합니다'로 통역되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도 똑같이 '감사합니다'로 들으시는 겁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언어의 무한한 신비함이요
능력이에요. 제가 말이 짧아서 설명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안타깝기만 해요. 단지 성영님께서
여러분에게 알아들을 지혜를 주시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리고 또 이것은 여러분이 때를 보는 눈이 있기를 바라서 말씀을 드립니다. 몇 년 전부터 여자들
이 말씀을 전하겠다고 주의 종이라고 해서 많이 나오는 추세였어요. 그런데 어느 날 저에게 성영
님께서 보이신 것은 여자들이 대거 등장하여 나올 것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어쩌면 그리도 전부 미
혹의 영에 잡혀서 사람들의 영혼을 낚으려고 나오는 것들이었어요. 그러면서 제가 무엇을 보게 되
었느냐? 큰 동굴이 있는데 동굴이 얼마나 깊은지 그 안이 보이지가 않아요. 깊이가 보이지 않는 동
굴 안은 아주 깜깜한 어두움 그 자체였는데 분간을 할 수가 없지요. 그러나 동굴 입구는 밝은 광채
로 환했어요. 그런데 그 동굴 속에서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는데 보니 대부분 여자였습니다. 주의
종 되겠다고 나오는 여자들이더란 말입니다. 제가 그중의 어떤 사람의 눈을 들여다봤는데, 그 영의
상태를 눈을 보면 알아요. 그 눈은 검은 동자로 덮었고 눈 속이 얼마나 깊은 블랙홀인지, 도무지
그 끝을 모르겠는 겁니다. 목사라고 나온 여자의 눈 속에서 제가 그것을 봤단 말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정말 알아야 할 것에 관심 없고, 정말 예수님과
의 관계에 분명한 믿음을 가지기를 원해서 오직 예수님을 아는 일에 자기 믿음을 두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전부 은사에다 마음을 두고 호기심으로 좇아가는 것....., 그래서 완전히 그 호기심을 이
용해서 사람들이 얼마나 호기심이 많습니까? 이 은사들이나 하늘의 놀라운 영적인 것들에 대해서
얼마나 호기심들이 있느냔 말이에요. 그 호기심으로 인해 다 붙잡혀버리는 거예요. 그 여자의 눈
속에 정말 깊이를 알 수 있는 블랙홀을 제가 봤단 말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이 미혹의 때는 남자들보다 여자들이 대거 등장하여 섬세한 말솜씨로, 여러분 잘
아십시오. 사람들의 영혼을 미혹하고 낚시질하여 지옥으로 끌고 가는 일이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아시란 말입니다. 저는 여자들 목회하는 것 사실 긍정적으로 보지 않습니다. 저도 여자지만 여자
들이 목회하러 나오는 것 정말 보기 싫다 말씀드리잖아요. 물론 참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이면 말할
것은 없지요. 그럼 당신도 여자이면서 왜 목회를 하느냐? 한다면 저는 목회가 아니요, 목회자가
아닙니다. 성영님께서 말씀을 말하라고 명하신 것을 순종하려 하니 사람들에게 목사라는 직함이
가장 친숙한 것이라서 편의상 필요로 가진 직함일 뿐입니다.
성영님께서 저에게, 물론 목사의 직함을 가진 뒤에 말씀하신 것이지만 말씀에 관해서 선지자 역할
로 세상에 보내졌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성영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여러분에게 제가 설명해
드릴 수는 있어도 여러분이 저에게 '선지자님'한다는 것은 어색한 것이지 않습니까? 목사로 불리는
것이 일반적으로 거부감 없는 직함이고, 말씀 전함에 있어서 권위적인 것도 필요하니, 편리를 위해
목사의 직함을 갖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런 부분에 있어서 분별할 수 있는 영적 지각이 있기
를 원해서 이 말씀을 하게 되었으니 유념하기 바랍니다.
오늘 방언에 대한 것을 이 정도만 말씀드려도 방언에 대해서 깨닫지 못할 일 없습니다. 아셨습니
까? 말씀을 맺습니다. 말씀 전함의 여부를 일일이 간섭해주시고 기름 부음의 세세한 가르침으로
전하게 하시는 삼위의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올립니다. 아멘!!
2014년 믿지 않는 자들을 위한 표적, 방언.p217-p2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