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고 8 (1) 말씀과 간증으로 영광 돌립니다
17.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할지니라 18.옳다 인정함을 받는 자는 자기를 칭찬하는 자가 아
니요 오직 주께서 칭찬하시는 자니라. (고후10:17-18)
저는 예수님을 믿기 시작한 때부터 누가 '성경 봐라, 기도해라, 죄를 버려라'라고 강조나 당부나
재촉을 해서 성경 말씀을 읽거나 죄를 버린 것이 아닙니다. 내가 예수님을 믿기로 하였으니 당연히
성경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고, 말씀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성경을 알고 말씀대로 믿고자
하여 성경을 열심히 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성경대로 예수님은 내 구주요 내 하나님이신 것을 참
으로 믿었습니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은 다 배설물로 여겼고, 예수님을 아는 것 외에는 다른 것 아
무것도 원치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성경을 아는 것과 예수님을 아는 것 그 외의 것들은 아주 무식
하기로 작정했습니다.
제가 성경을 보면서 성영님으로 깨달은 것은, 그리고 믿는다는 사람들에게서 보게 된 것은 세상 것
가지고 세상 지식 가지고, 인간으로 아무리 똑똑해 보았자 그것으로 성경을 아는 것도,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것도 아니더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세상이 바라는 것을 인정하고 높이고 추구하는 마음
을 그 안에 가지고 있으면, 있는 만큼 하나님과의 관계에는 담이 된다는 것, 믿음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세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는 그것을 머리로만 알게 된 것이 아니라, 그 이치
를 확실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품고 있던 세상을 다 내버리고, 세상에 대해서는 아주
무식하기로 가난하기로 작정해버렸고, 그러므로 사람에게도 지도받기를 원치 않았고, 성영님께서
말씀으로 지도해주시는 것을 따르면서 믿음을 가졌고 믿음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제가 교회 나온 초기 때 성경을 읽으려고 창세기를 열고, 그 시작의 말씀, 서두에 기록된 창1:1의
말씀이 무엇입니까?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는 말씀을 읽는데 순간 뭔가 크게 열리
는 것 같은 희한한 느낌을 받으면서,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것이 내 마음이 못이 박히듯
확실하게 믿어졌습니다. 그리고 곧 따라서 '아!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으니 기록된 성경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이니 믿지 못할 이유가 없구나'하는 생각이 밀려들었습니다. '아니,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는데, 성경이 그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는데, 믿지 못할 이유가 없잖아요?'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는 말씀이 확실히 믿어지니, 그 뒤에 기록된 모든 말씀 또한 믿지 못할 이유
가 없다는 생각이 밀고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는 이 말씀으로 성경을 만나는 시작이 되었고 받아들인 처음
말씀이 되었습니다. 물론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가 믿어지고, 성경 전체를 믿게 된 것은,
내가 믿으려고 해서가 아니고, 성영님께서 그 말씀을 믿을 수 있도록 내 안에 넣으셨다는 것을 이
후에 깨닫게 되었습니다. 성경을 처음 대하는 내게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가 한순간에
믿어졌으니 그 뒤 모든 말씀도 믿게 된 것이요, 성경의 모든 말씀을 내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문이 열리게 됐다는 것, 여러분이 이해되겠습니까? 나는 전혀 알지 못했지만, 내게 이 일이 이루
어지도록 성영님께서 도우시고 전개하여 오셨다는 것을 몇 년 전에 비로소 알게 하셨습니다. 그
리고 성경을 계속 읽어 나가는데, 그중에서도 마음이 대단히 설레고 마음을 붙잡는 말씀들이 아
주 많았습니다.
특히 제가 다니엘서를 읽으면서 참 많은 감동을 받으며 눈물을 많이 흘렸는데, 그것은 그렇게 멋
진 다니엘과 다니엘의 세 친구의 신앙 때문이었습니다. 신상 앞에 절하지 않는 절개 있는 신앙,
이글거리는 풀무 불(화력)속에 던짐을 당할지라도 신앙의 절개를 지킨 이 다니엘과 그 세 친구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의 신앙이 참으로 존경스러워 그 감동으로 읽고 또 읽으면서 '그래 신앙
이란 이거야! 이것이 신앙이지, 자기 형편 따라서 믿고 변하는 것은 신앙일 수가 없지!'라고 감
탄이 되어 눈물을 흘리며 이것이 신앙이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게는 다니엘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의 이 이름이 아주 친숙하여 입에 붙은 이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내 기억 속에 늘 함께 있습니다.
저는 세상의 친구는 없습니다. 인간적으로 친하다 해도 예수님을 믿지 않고 거절하고 믿음을 비웃
듯이 하며, 세상 것을 위해 사는 자면 그것은 나와 친구가 될 수 없기 때문에, 그러니 세상에 친
구가 있을 리 없지요. 바로 성경 속에 있는 이들을 나의 친구로 삼고, 신앙을 배우고 교제를 나눕
니다. 그래서 저는 성경에서는 친구가 많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이들의 신앙을 배우고 그 길을 가
는 데는 감동받고 존경하는 것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고통과 고난과 연단을 통해 죽음을 통과해
야 즉, 예수님의 죽음은 내 죽음임을 믿는 것과 함께 예수님을 따르는 데에는 혼의 자아가 온전히
죽어야 했습니다. 죽음을 통과해야 했습니다. 내가 죽어야 했던 것입니다. 죽어야!!! 내 안에 가
진 세상을 온전히 버리고 내 자아(무엇으로도 깰 수 없는 차돌같이 단단한 내 자아를 봄)가 깨져
야만 비로소 껍데기를 벗은 부활의 몸이 되는 것이기에 겪어야 할 고통이요, 고난이었다는 것을
많은 세월이 흐른 뒤에야 깨달았습니다. 그것이 하나님 사랑의 방법임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다음 신앙생활을 시작한 지 약 7년이 되었을 때쯤 성영님께서 성경을 기록하라 하셨습니다. 그
래서 '아니 성경책이 없는 것도 아닌데, 이 많은 내용을 뭐 하자고 기록하라는 것인가?'하는 의아
함도 있었고, 성경 분량이 너무 엄청나서 기록할 엄두도 나지 않아, 그냥 못 들은 척했는데 어느
날 성경을 옮겨 써야 할 것으로, 마음에 결단하도록 하게 하시는 어떤 계기를 주시고 기록을 시행
하게 하셨습니다. 기록하다가 죽으면 죽고 죽더라도 기록하자는 결단을 하고, 약 3년 가까운 동안
성경 한 권 반 이상을 기록했습니다. 성경을 옮겨 기록하면서도 왜 성영님께서 기록하라 하셨는지
를 몰랐습니다. 단지 이 성경 말씀이 손의 기록으로 끝나지 않고, 내 영혼의 생명이 되고 마음에
기록되게 해주시라고 기도하면서 했습니다. 기록이라는 말은 애초에 성영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
기에 그렇게 표현합니다.
그런데 성경 기록이 끝나고 많은 세월이 흐른 뒤, 성경의 기록은 옮겨 적으라는데 있지 않고, 성경
의 뜻을 내 안으로 가져오는....., 내 안에 기록이 되게 하시는 뜻이었다는 것을 알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일하심과 영적인 전 역사가 내 안에 들어오시도록 하는 뜻이었다는 것을 알게 하셨다는
말입니다. 알아듣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나 자신이 성경이 되라는 것이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기록하는 그 당시는 나의 삶이라는 것이 그야말로 광야 메마른 곳, 사방을 둘러봐도 길이라
곤 보이지 않는 황량한 곳, 그 한가운데에 버려진 것 같은 삶이었습니다. 물론 예수님을 처음 믿기
로 한때는 하나님께서 물질을 주시는 것부터 해서, 여러 가지 영적인 것들, 신유가 나타나게 하시
고 귀신을 쫓아내는 등 많은 것을 경험케 하여 믿음을 가질 수 있게 하셨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참으로 고백하게 하셨습니다.
이후 삶은 점점 더 미궁 속으로 빠져드는 것과 같았고, 숨조차도 쉬기 어려울 정도의 정신적 고통
과 함께 빛이라곤 손톱만큼도 보이지 않는 캄캄함에 빠졌습니다. 실제로 삶으로 지옥을 겪어야 했
습니다. 성경을 기록하는 일과 탄식 같은 기도 외에는, 그 어떤 것도 희망을 품어볼 수가 없게 돼
버렸어요. 도무지 옴짝달싹할 수가 없었습니다. 살 수도 죽을 수도 없는 황량함과 캄캄함의 극치
요, 그야말로 살면서 겪는 지옥이었습니다. 깊은 어둠의 나락으로 떨어져 꽁꽁 묶여 있는 것과 같
았고, 살기 위해서는, 오직 하나님을 찾고 부르는 것밖엔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육의 것을 힘 있게 붙잡고 놓지 않는 나에게, 그것은 곧 하나님과 원수요, 지옥을 놓지 않으려는
것과 같다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깨닫게 하셔야 했고, 나는 그것을 철저히 깨달아야 했습니다. 내
영혼이 그때 어디에 속해있는지, 그것이 내 영과 혼으로 그대로 나타나 그 처참한 고통을 영혼으로
겪으며 삶에서 겪게 되었던 것입니다. 내 영의 상태가(지옥(죽음)을 가졌다는 것이) 그대로 드러나
겪음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못 박아 죽음에 내줘버린 그 육에서 나오게
하시려고, 육을 추구하는 것이 곧 지옥이라는 것을 겪게 하심으로써, 나로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
를 보내신 하나님만 바라고 찾을 수 있는 통로 하나만 두시고, 한 줄기의 빛을 따라 통과하여 나올
수 있도록 하신 것 외엔, 다른 어떤 것도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나 좀 살게 해주세요'하면 '너는 기도로 살리라 기도하라'하셨고 '나 질식해서 죽겠습
니다'하면 '너는 기도로 살리라 오직 나만 바라 기도하라 길을 막은 자도 나요, 길을 여는 자도
나니라, 너는 기도하라'였습니다. 그때는 하나님 아버지의 이 같은 사랑을, 죄로 깜깜한, 지옥을
가진 그 망할 육의 마음으로 어떻게 알 수가 있었겠습니까? 아버지의 길이 참으신 사랑으로 점차
영의 밝음 가운데로 나오는 힘을 얻게 되었고, 이제 살든지 죽든지 이끄시는 대로 살 것으로 결
심하고, 오직 주 예수님께 생각을 사로잡아 마음을 고정할 것으로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세
상에서 어떻게 살까 하는 아등바등하던 고민도 다 내려놓고, 마음에 집착하고 있던 세상 것들도
다 내려놓고 죽이시든지 살리시든지 살리면 살 것이요, 죽이면 죽으리라 하고 오직 예수님께 붙어
예수님만 알기로 작정했습니다.
어느 날엔가는 예배 기도회 때 성영님께서 "내가 너에게 천국 열쇠를 주리니"라고 말씀하셨는데 이
것이 믿음의 승리, 사단이 건드릴 수 없는 권세를 말씀하는 것인 줄은 모르고, 예수님의 이름이 천
국 열쇠인가? 하는 생각만 하고 그 뒤엔 잊어버렸습니다. 그리고 기도로 살리라 하신 것은 엎드려
서 기도만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 세상에서 나와 말씀으로 들어가라는 거예요. 하나
님의 뜻을 확실히 깨달아 알고 삼위 하나님을 경험하는 관계가 되고, 하늘을 소유하는 영적 후사가
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믿는 믿음이 돼야 하는 일을 말씀하신 뜻이었습니다. 제가 성경
을 옮겨 쓰고 또 열심히 성경을 읽기는 했어도, 성경을 바로 깨달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는 살든지 죽든지 오직 예수님께만 내 모든 관심을 고정하고 살리라고 결단하고 결심했지만, 내 마
음은 여전히 공허하고 슬픔이 있고 괴로움이 있고, 어쩌면 그리도 행복한 마음이나 평안이라고는
말 표현 그대로 손톱만큼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어둠 속에서 헤매는 내 영의 모습을 내가 보는 겁니다. 광야 속에 홀로 버려진 것과 같은 내 영의
모습을 내가 보고 있었습니다. 제가 영적인 체험을 솔직히 참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도 그런 것들
이 나의 비어있는 영혼의 고통을 해결해주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내가, 나는 죄밖에 지은
것이 없는 죄인이라는 것, 아담으로부터 이어온 내 죄 때문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피 흘려
죄를 사하신 내 구주라는 것을 모르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너무나 분명히 알고 믿고 고백하여 예수
님을 내 구주로 영접한 믿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 달려 온몸을 찢기시
고 피 흘리시던 그곳에 나도 같이 있으면서 죄 때문에 통곡하는 내 모습을 내가 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날마나 날마다 내 죄를 보면서 애통하고 애통하며 죄를 고백하고 걸음마다 자국마다 다 죄
뿐인 것을 보면서, 가슴이 저리고 아픈 마음으로 "하나님 아버지 어찌 이리도 죄뿐입니까? 나 같은
죄인을 위해 예수님이 그렇게 수모와 고난을 받으시며 십자가에 달려 손과 발에 못 박히고 피 흘리
고 죽으셨습니까?"하고 아주 애통하며 때로는 방바닥에 힘없이 주저앉아 다리를 뻗고 통곡하기도
하였고, 하나님의 그 사랑에 대해서 항상 눈물로 감사하곤 했습니다.(이후에 크게 깨닫게 된 것은
분내고 미워하고 욕하는 이런 기타 등등의 내 모습들을 보면서 애통하고 죄를 고백한 것이지, 십
계명과 율법에 비추어 회개함이 아니었다는 것, 내가 아담이요 십계명의 죄를 짓고 산 죄인으로
성품이 완전히 죄였음을 깨닫게 되어 바른 회개를 하게 됨)
나의 메마른 심영에 예수님의 그 은혜는 깊이 뿌리내려져 있었고, 그 피를 믿음으로 받아들여 가지
고 있었습니다. 죄 용서받은 증거의 피로 가지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럼에도 내 마음은 무겁고
무엇인가 답답했습니다. 그 상황 가운데서 제게 성경을 알고 싶다는 강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문자
적인 것, 시대적인 것, 겉의 것이 아닌 말씀들 속에 두신 뜻을 바로 알아야 하겠더라는 말이지요.
그 소망이 크게 있게 되었는데 그러면 성경을 제대로 배울 수 있고 깨달을 수 있는 가장 좋은 첩경
은 바로 설교이겠구나, 거기에 깨닫는 방법이나 말씀에 대하여 궁금한 뜻을 알 수 있겠구나 했었습
니다. 그리고 말씀을 듣고 은혜라는 것을 받으면 내 마음이 겪는 지옥, 즉 고통 불안 공허 같은 것
들에서 해방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뒤로는 각종 모임의 예배나 세미나 등 또 그때 당시의 유명하다는 목사들의 설교를 듣기
위해 열심히 쫓아다니게 되었고, 또 이후에는 출석 교회가 매년 유명 목사들을 초빙하여 부흥 집회
등을 장기간 하게 되어서 많은 설교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 목사들의 설교 테이프를 세트로 사서
틈만 나면 듣고 라디오 방송 채널을 고정해놓고 듣곤 했습니다. 왜냐면 사실 깨닫기를 원한 성경은
답이 될만한 뜻은 듣지는 못했지만, 설교를 들을 땐 마음에 기쁨이 일고 살 힘이 막 생기곤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더더욱 설교 듣는 것을 전념하며 깨달은 말씀을 듣게 될 것을 기대했습니다.
참으로 성경을 제대로 알고 싶어서 깨달아 보려고 힘쓰고 많은 몸부림을 했습니다. 또 남편이 신학
을 하며 공부하던 모든 교재, 신앙서적, 성경주석들을 다 탐독하고 탐구해 나갔습니다. 그런 시간
이 내게는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외적인 혼의 것이었지요. 그래서 성경의 전체적
인 역사의 흐름과 인물들의 일과 시대적인 배경 등등은 알게 되었습니다. 성경 안에 하나님 아버지
의 살림하신 내용이 나의 살림으로 들어오게 되었고, 성경의 줄거리가 보이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
면 부엌살림을 하는 내가 쌀, 솥, 칼, 도마, 양념, 그릇 등등을 여기 저기 찾아 헤매지 않아도 있
는 곳을 알고 바로 찾아 사용하듯이, 성경이 그렇게 알게 됐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내 속은 여전히
말할 수 없는 공허함이 찾아들곤 했습니다. 설교의 말씀들이 얼마나 좋은지, 들을 때는 큰 감동을
받고 기쁨이 넘치기는 했지만, 시간이 얼마 지나면 또 곧 본래 있던 자리로 돌아갔습니다. 그 고통
의 장소로 돌아와 버리는 거였어요. 평안함이 있는 것 같으면서도 또 전혀 없었습니다. 꼭 밑 빠진
독에다 물 붓기와 같았습니다.
앞에 어떤 희망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늪에 빠져 도무지 나올 수가 없는 상황과 같았습니다. 때로
는 마음이 우울감에 사로잡히고 '너 무엇하러 사니? 도대체 너 사는 이유가 뭐냐?'하는 물음을 듣
곤 했습니다. 그런 물음에 나도 모르게 '그러게 나도 지금 무엇 때문에 이렇게 고통을 겪으며 비
참하게 사는지 모르겠다, 왜 이렇게 사는 게 힘드냐, 왜 이렇게도 어렵냐!'하고 동조하여 답하곤
했습니다. 그러니까 '네가 말씀 좋아서 그렇게 말씀으로 살아보겠다고 몸부림치지만, 너 지금 형
편을 봐라, 너 얼마나 지금 힘드냐?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너를 이렇게 버려두시는 것이 하나님
이냐? 말씀이 너에게 무슨 만족을 주느냐? 너에게 무슨 유익이 있느냐? 네가 예수 믿는다면서 말
씀에 집착해보았자 소용없지 않으냐 포기해라'하는 생각이 밀려들어 오는 일이 반복되었습니다.
그런 어느 날 그것이 마귀의 속삭임이라고, 마귀가 가져다주는 생각이라고, 이 시험을 나 스스로
물리칠 수 있어야 한다고, 성영님이 이르셔서 마귀의 속삭임의 동조하던 내 어리석음을 회개하고,
내가 왜 사는지에 대하여 당당히 외치고 쫓아내기도 했습니다. 또 주변 사람들을 통해서도 악한
영이 시험을 계속하고 들어왔지만, 그때마다 성영님이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계속 일러주시는 일
을 하셨습니다. 또한, 내 속에 미움 원망 용서할 수 없는 것 등을 다 버려야 하는 숙제를 안고,
그것을 위해 기도는 수없이 했지만, 또 다시 무너지고 또 무너지는 한계를 겪으면서, 참 많이 애
통하며 괴로워했습니다. 어느 날 성영님께서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3)는 말씀으로 내게 미움, 원망, 용서할 수 없는 것들에서 놓여나는 능력을 주셨습
니다. 아니, 그 힘으로 붙잡고 있던 귀신이 말씀 앞에 떠났다는 것이 맞습니다. 이후에 깨닫게 된
것은 이 같은 미움, 원망, 용서할 수 없는 이런 쓴 뿌리들은 내 안에 영생을 가질 수도 없고, 하
나님의 영적인 뜻을 깨달을 수도 없는 장애물로써, 애통하며 소원하는 기도에 성영님께서 말씀으로
치유되게 하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읽다 보면 거기에서 왜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는가? 도무지 인간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또 하나님을 원망할 수밖에 없는 그 왜? 라는 질문이 성경에 많이 있잖아요? 그 질문
들에 대하여 그 어마어마하게 들은 설교들 속에서 '아 그렇구나! 아 그것이구나! 아 그러셨구나!'
하고 내 속에서 깨끗이 복창이 일어나 해결되는 속 시원한 해답을 얻어낼 수가 없었습니다.
내 영혼의 목마름, 끝없는 갈증으로 고통받는 내 영의 소원을 하나님 아버지께 아뢰고, 아뢰고, 끊
임없이 아뢰어 간구를 올렸습니다. 그 같은 몸부림이 있을 때 어느 날 성영님이 '세상에는 내 말을
바르게 알고 믿는 자가 적어서 내가 일을 할 수가 없단다'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처음에야 무슨
뜻인지 제가 알지 못했지만, 몇 년 뒤 그 말 뜻을 확실히 체험으로 알게 됐습니다. 그리고 어느 때
부터인지 내 마음속에서 자꾸 일어나는 생각이 있었는데, 그동안 그렇게 많이 들어온 그 좋은 설교
들에는 무엇인가 부족한 것이 있다, 진짜를 빠트린다, 진리를 거스르고 대적하는 것이 있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생각지 못할 이런 어려운 생각들이 자꾸 올라왔습니다. 그리고 나 스스로 이제
는 세상에 전해지는 설교는 다 그만 들어야겠다는 결단이 내려졌습니다. 모든 설교 듣는 것들은 이
제 끝내고, 교회도 주일(예수님의 날)에 가서 예배만 드릴 것으로 결단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에 어떤 변화가 왔는가 하면, 그렇게 열심을 품고 들어오던 설교들이 듣고 싶다는 생각이
깨끗이 없어지고, 이상하리만큼 듣기가 싫어졌습니다. 물론 이후에 내게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났는
가는 성영님께서 친히 가르치시기 위한 역사였음을 알게 하셨습니다. 보혜사 성영님께서 진리를
가르치고, 예수님의 생명의 풍성한 은혜에 들게 하여,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믿음이 되게
하시려고, 나로 세상 모든 것에서 귀 닫고 오직 성영님의 가르치심에 거하게 하시려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네가 얻고자 하는 것을 그들에게서는 얻을 수 없다. 그 속에서는 얻지 못한다. 이제 네가 듣는 것
을 금하라 하셨습니다. 그들의 말은 너에게 줄 수 있는 것이 부족하다. 모자람이 많다. 빠진 것이
많다는 말씀을 반복하셨습니다. 반복하셨다는 것은 그동안 성영님께서 내게 그 일을 마음에 깨닫
도록 이끄셨는데, 내가 그것을 알아차리고 확실히 깨달아 그 일에 대하여 성영님께 알았다는 것을
답해드릴 때까지 하셨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성영님의 가르치심이 없다면, 말씀을 바르게 깨달아
볼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생각과 마음을 알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그때 하나님의 깊은 것
이라도 통달하시고, 참되고 거짓이 없는 것을 가르치시는, 성영님에 대하여 깊이 깨닫는 바가 되었
고, 그렇기에 사람에게서는 들을 이유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성영님의
가르치심만 듣고 따를 것을 결단하고 그 고백을 했습니다.
이후에 제가 분명히 깨닫게 된 것은 그 설교들에 영의 생명이 돼야 할 영적인 레마의 말씀은 너무
나 빈약하고 혼의 감정과 지성을 만족하게 하는 말들만 뛰어났기 때문에, 그렇게 마음에 힘이 되고
기쁘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성영님으로 말미암은 생명이 되는, 영에 주는 말씀이 없기에 돌아서면
또 곤고함을 겪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왜 그렇게 곤고한 것이냐? 왜 그렇게 공허함에 고
통을 겪느냐? 내 안에 예수님의 생명이 없기 때문이었다는 말입니다. 그것을 알지 못했기에, 그것
을 알 수가 없었기에 내 속에 있어야 할 생명이 없어서 그렇다는 것은 모르고, 사람들의 전하는 설
교들을 들으면, 그 공허함 그 고통이 해결될까 하여 그렇게 찾고 노력했고 몸부림을 쳤지만, 얻지
못한 것입니다. 찾지를 못한 것입니다. 해결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때의 설교 들은 대부분 성경의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세워, 그들이 어떻게 했더니 하나님이 이런
큰 복을 주셨다, 그러니 이 복 받으라는 것이었고, 예수님의 말씀도 윤리와 도덕으로 연결하여 인
간의 도덕성을 회복해야 하는 말씀인 것처럼 세워놓고, 땅에서 인간이 좌절하지 않고 힘을 얻고
잘 되는 소망을 갖게 하고, 땅에서 성공해야 하는 말씀으로 세워 전하는 것들이었습니다. 영에 주
는 말씀이 아니라, 인간 정신에 맞는 말들이었던 것입니다. 영이 구원을 받아 생명의 말씀을 공급
받고 생명으로 충족되어야 하는데, 그것이 되지 않으니 여전히 공허하고 혼돈 가운데 있게 되었다
는 말입니다. 영의 목마름 영의 갈급함을 생명 되는 양식으로 채움 받지 못하여 겪는 영의 고통이
었습니다. 영에 맞는 말씀을 얻지 못하여 영이 겪는 기갈이었습니다.
이제는 목사들이 요구하고 강조하는 것들에서 깨끗이 떠나 나오니, 마음이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
습니다. 어떤 꽁꽁 묶여있던 사슬에서 풀려난 것과 같은 자유요 기쁨이 샘솟았습니다. 내게 주신
성경 말씀을 성영님께서 친히 가르치시고, 그 가르치심만이 거짓이 없고 참이라고...., 큰 감동으
로 역사하시니 너무나 큰 자유요, 기쁨을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제 성영님만 따르고 성
영님께서 말씀하시는 것만 듣기로 했습니다. 한발 가라면 한발 갈 것이요, 있으라 하면 있을 것이
요, 성영님이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니, 이제 성영님께서 하신다는 믿음에 딱 서버리니, 너무 자
유하고 행복했습니다. 나를 겹겹이 묶고 있던 것들이 다 떨어져 나간 것 같았습니다.
제가 한편으로는 영적 체험을 많이 했다고 했잖습니까? 환상 보았다고 그것이 속사람의 생명은 되
지 않았습니다. 귀신 쫓아냈다고 해서 그것이 내 영혼의 생명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내 몸의 병이
치료되고 다른 사람이 나로 인해 병이 치료되고, 내 삶의 문제들이 해결 되었다고 해서 그것으로
영의 생명이 되진 않았습니다. 그것은 외적으로 얻는 기쁨일 뿐입니다. 사라지는 것으로서 정신의
기쁨일 뿐입니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됩니까? 그러니까 천국도 성영님께서 말씀과 함께 내 영에
들어오셔야 그것이 생명이고 천국이지 눈앞에 보이는 것, 환상으로 천국 본다고, 환상으로 예수님
을 본다고, 그것이 자기 영혼에 이루어진 생명의 천국이 되는 것 아닙니다. 눈앞에 보는 것들로는
존재의 여부를 믿을 수 있는 표적은 될지언정, 자기 영혼에 맺은 것은 아닙니다. 그렇기에 구원받
은 증거도 아니요 외적인 경험일 뿐입니다. 이해가 됩니까?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다 할 때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자기와 어떤 관계가 되어야 하는가, 자기
가 누구인가에 대해서 말씀을 통해 알지 못하면 사실 자기가 믿는다는 예수님은, 자기 안에 계시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기가 누구인지를 보게 해주세요, 내 죄를 보게 해주세요, 나는 아무것
도 할 수 없고 말씀도 깨달을 수 없는 땅의 머리, 죄의 머리, 어둠의 머리밖에는 없으니, 말씀을
깨닫게 하시고 빛을 주시는 분은 오직 성영님이시니 성영님께서 나를 보게 해주시고 말씀을 깨닫게
해주시라'는 것을 기도하라고 늘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그런 사모함을 가지고 기도하면서 이 말씀
을 받아들이면 똑같이 영혼이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영님으로 자기를 보고 알지 못하면,
사실 예수님도 자기 영혼에 맺어지는 예수님이 되지 못합니다.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저도 창조 때의 말씀, 창조를 통해서 성영님께서 내가 누구인가를 보게 하신 뒤에야 예수님과 관
계가 확실해졌고, 비로소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말씀을 보
내셔서 내 안에 있는 모든 악한 것들, 미움 원망 용서할 수 없었던 것들에서 놓여나 치유가 되어
평안을 얻게 되었습니다. 누구도 빼앗지 못할 예수님의 그 평안으로 다스림을 받으니, 예수님을
처음 믿기 시작한 때부터 헤매오던 내 영혼의 방황이 비로소 평안한 자유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성영님께서 내 안에 함께하심을 내가 확실히 아는 관계, 이것은 느낌이 아닙니다. 실제로
함께 있음을 아는 것입니다. 내 안에 온전한 연합으로 함께 계신 성영님께서 눈을 열어 성경 말씀
을 보게 하시고, 하나님의 깊은 사정, 영적인 뜻을 깨달아 알게 하시니, 그 기쁨이라는 것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는 겁니다. 그러니 성영님에 의해 내 안에 하늘이 소유되었으니 땅의 것들이 뭐 그
리 중요하겠습니까? 그렇게 아등바등 소유하기를 원했던 세상 것들이, 바울의 말처럼 분토요, 나
는 죽고 오직 예수님으로 사는 믿음이 되니, 세상 것들에서 깨끗이 놓여나 얼마나 자유지 않겠어
요? 자유! 아무리 근심되는 산 같은 문제가 있다 해도, 하늘의 평안함의 능력이 와있으니 그 평안
이 근심을 삼켜버리고, 문제는 믿음을 굳게 세우는 발판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성경 말씀을 통해서 자신이 누구인가를 알고 예수님을 믿게 된 그 귀함을 안다면, 참으로
영생의 복을 안다면 성영님께서 전하라 보내신 이 같은 레마의 말씀을 듣는 귀가 있을 것이요, 그
복 때문에 자기 영혼에서부터 감사가 넘쳐나게 될 것입니다. 스스로는 성경 말씀을 깨닫지 못하여
영혼에 양식이 돼야 할 레마, 영이요 생명이신 말씀을 얻지 못해 겪는 갈증의 고통으로, 영혼의 목
마름으로 헤매었다면, 성영님께서 보내신 하늘의 말씀, 영혼의 생명이 되는 말씀을 들을 수 있다는
이것에, 천하를 얻은 것보다 다 기쁜 감사가 넘쳐날 것이라는 말입니다. 자기가 살아야 하고, 또한
살기 위해서 받아들여야 할 말씀을 들을 줄도 모르고, 누누이 당부함에도 이후 영혼에 레마로 세워
진 능력이 없다면, 그것은 구원 얻기를 원하거나 영생을 얻고자 하는 것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하
나님의 복을 받고자 한 것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자주 하는 말이지만 새겨듣기를 바라서 또 언급합니다. 교회는 세상 말 들으려고 오는 곳 아닙니
다. 세상 지식의 말 들으려고 오는 곳 아닙니다. 세상 뉴스 정보 들으려고 오는 곳이 아닙니다.
학문 깨우치러 오는 곳 아니에요. 도덕, 교양 강의 들으려고 오는 곳이 아닙니다. 인간이 죄 때문
에 멸망하게 되었다는 것을 들어야 합니다. 영원한 죽음의(불못으로 들어감) 형벌에 처하였다는,
망하게 된 인간 자기를 알려고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인간을 죄에서 구원해내시려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셔서, 그 죄를 지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고, 다시 살아나셨다
는 그 복음을 들어야 합니다.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야 합니다. 죄에서 구원하여 다시 살
아나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생명을 얻게 하시고, 영생 복락에 들어가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소원,
하나님의 그 뜻을 끊임없이 듣고 앎으로써, 그 뜻대로 믿음을 가져야 하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전하는 말씀을 듣기 위해서 오는 곳입니다. 이 같은 복음의 말씀을 듣고 배워서, 자신을 알고 예
수님을 확실히 아는 관계가 되고, 자기의 예수님으로 한 몸을 이루기 위해, 그 일을 위해 오는 곳
입니다. 아셨습니까?
그렇기에 저는 하나님 앞에 갔을 때 너는 세상에서 무엇을 주고 왔느냐? 하고 물으신다면 '아버지
께서 주신 사람들에게 잘 먹고 잘살게 해주시는 하나님을 전한 것이 아니라, 구원의 복음을 전하
고 왔다'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아버지의 소원을 내 소원으로 받아 그 뜻을 말하고 왔다는 것을
당당히 말씀드리고 싶어서, 그 소원을 가지고 여러분에게 지금까지 예수님의 이름으로 인간의 죄
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죄 사함과 구원과 생명을 외쳐왔습니다.
자, 그래서 그때 당시에 제가 성경을 기록하면서 또 성경을 읽고 탐구하는 데 열중했기 때문에, 그
같이 성경을 읽고 기록하면서부터 마음을 사로잡는 말씀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 말씀들을 접할 때
마다 "아! 그렇구나!"하는 감격과 함께 마음에 큰 행복감을 느끼면서, 왜 그런지 친근하고, 왜 그
런지 사랑스럽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내가 아는 것 같고, 그 말씀들이 내게 각인이 되는 경
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뒤에 잊어버린 것이 아니라 그 말씀들이 내 안에 새겨지듯 하여 항상 되
새김하듯 생각나는 말씀들이 되더라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 내 안에서 아주 친한 말씀들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중에서 성영님께서 제게 역사하셨던 말씀들 제 말씀이 되게 하신 말씀들이 있었습니다.
창18:17에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하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 하셔서 하나님께서 믿
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숨기지 않으셨던 것처럼, 하나님의 사람들에게는 하시는 일을 숨기지 않으
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시25:14에 여호와의 친밀함이 경외하는 자에게 있음이여 그 언약을 저희에게 보이시리로다 하셔서
바로 하나님께서 창세로부터 언약하신 구원의 뜻, 예수님의 오심에 대하여, 오실 때까지 사단에게
는 감추시려고 예표로 상징으로 비유로써 나타내셨던 언약의 뜻을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는 친
밀하게 하셔서 다 보이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모스3:7에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
이 없으시리라고 분명히 말씀을 하셨습니다. 또한 출33:11에 사람이 그 친구와 이야기함 같이 여호
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며 하셨고,
요15:15에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
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여 따르는 제자들에게는 비밀 없는 친구처럼 속내까지 다 열어서 말하듯 다 알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저는 과거에 이 말씀만 생각하면 얼마나 멋지고 아름답고 기쁜 일인지, 그렇게
마음에다 두고 예수님과 늘 대화하는 말씀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여러분에게도 이 말씀을 깊
이 묵상하는 말씀이 되라고 당부했습니다.
요14:16,17에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
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
이라 하셨습니다. 그 하나님께서 우리 속에 영으로 오신다는 것, 이것이 얼마나 큰 이적이며, 얼마
나 놀라운 일이며, 얼마나 어마어마한 복입니까? 하나님의 영이 우리와 함께 계시고, 우리 속에 계
시겠다는 것 아닙니까? 바로 이 같은 복이 내게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니 성경의 말씀을 깨닫지 못
할 이유가 어디 있다는 말입니까? 하나님의 깊은 사정까지 통달하신 성영님이 내게 오셨으니, 성영
님이 기록하게 하신 말씀을 통해 하나님 아버지 마음을 알 수 있는 것이요, 아버지의 마음을 담아
놓은 말씀을 깨닫지 못할 일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저는 이 복을 받았습니다. 삼위 하나님이 내
안으로 들어오셨습니다. 이것이 저의 신앙입니다. 잘 먹고 잘살게 해주셨다, 그런 것이 내 신앙이
아니라 삼위의 하나님이 아주 내 안으로 오셨다는 것 이것이 나의 신앙입니다. 이것이 나의 영원한
신앙이요 고백이요 간증입니다. 여러분!
요14:26에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영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성영님이 오시지
않았을 때는 예수님의 말씀을 알아듣지를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하늘의 것을 말씀하고 계신데, 제
자들은 땅의 것으로 듣고 예수님이 이스라엘을 통치할 왕으로 오신 줄 알고, 이스라엘 나라는 어느
때 회복되느냐고, 땅에서 있을 일만 말한 겁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말씀은 하늘의 것이었다는 것
을 어느 때 깨달았습니까? 성영님이 오시자 모든 말씀의 뜻이 열리고 깨달아져 그 기쁨이 크니, 죽
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나가 예수님을 증거하고 외치고 다녔습니다.
요일2:27에 너희는 주께 받은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
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자기의 사람들에게 숨기시는 분이 아니라, 무조건 일
방적인 것이 아니라 자기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그 사람과 함께 이야기 하신다는 것,
이 놀라운 엄청난 복을 나로 알게 하시려고 처음 성경을 읽을 때 이 모든 말씀을 만나게 하시고 내
안에 큰 레마로 들어오게 하셨습니다. 이같이 먼저 말씀을 보내시더니, 마침내 때가 되니 아버지와
예수님과 성영님, 삼위 하나님께서 내 안으로 아주 들어오셨습니다. 내가 성전이 되었다는 말입니
다. 성영님은 인격이시기에 영적인 대화, 인격적인 대화를 할 수 있는 분이라는 것, 내 안에 와계
신 성영님께서 내 믿음을 도우시고 이 모든 성경을 나로 깨닫게 하시고 가르치시는 분이라는 것,
그러므로 "성영님이 하신다"는 결론이 내 안에 딱 세워지니 더 여기에 무슨 답이 필요했겠습니까?
그렇기에 사람에게 무엇을 얻고자 하는 것, 다 끝내고 오직 성영님을 바랐습니다. 그래서 성영님께
서 다 하셨습니다.
그리고 성영님께서 이 같은 영적 지식을 깨닫기 전부터도 저에게 필요한 말씀을 때때로 주셨습니
다. 그때마다 성영님의 말씀임을 직감으로 알았습니다. 단지 그 말씀이 무슨 뜻인지는 그때그때
깨닫지 못하고,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말씀을 드립니다만, 아직
신앙이 어렸을 어느 날 남을 지도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의 모임에서 서로 간증을 하는데, 기도
했더니 남편이 출세했다, 자식이 고위직 뭐가 됐다, 더 크고 좋은 차를 주셨다, 더 좋은 집으로
옮겨 주셨다 등등을 자랑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듣고 있던 내 심영이 우울해져 집으로 돌아오
는 길에 차를 타는 것도 싫고 하여 걸으며 '왜 난 그런 것들을 자랑할 것이 없나요? 나도 그런 자
랑 좀 하게 자랑거리 좀 주세요'하고 그냥 혼자 하는 말처럼 하였는데 "세상 것은 자랑할 것이 되
지 못하느니라, 그럼 너는 오직 나만 자랑하라, 나 예수만 자랑하라"라는 말씀을 하시며 나의 헛된
허상들로 우울해하는 것을 깨셨습니다.
또 어느 땐가 제가 아주 애써 기도하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가정환경으로 인해 마음에 쌓인 상처와
분노를 스스로 감당하지 못해 방황하는 어떤 청소년 여자아이를 위해 무엇인가를 놓고 도우심을 청
하여 기도하는데, 도무지 답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낙심되어 하나님께 삐친 마음을
가지고 말씀을 드리길 "제가 집안이 더러우면 청소하고 나서 깨끗하다는 것을 아는 것이 아니라, 청
소하기 전에 깨끗해질 것을 알고 청소합니다. 그렇듯이 이제는 저에게 아버지께서 답을 하시지 않
는 기도는 하지 않도록 해주세요, 이제는 기도하지 않겠습니다"하곤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그러기
를 한 달이 넘었을 때 예수님의 날 예배드리러 가서 엎드려 말씀드리길 "내가 왜 기도하지 않는지
남편이 묻길래 아버지가 아시니 아버지께 물으라고 했습니다, 내가 왜 기도하지 않는지 아버지가 아
시잖아요?" 하는데 느닷없이 내 속에서 올라와 내 입으로 외치기를 "이때를 위하여 하나님께서 나
를 훈련하셨나이다"였습니다. 내가 의도하지 않은 나에 대한 이 말을 내 입으로 왜 하게 하셨는지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잘 알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기도 중에 "나는 부족해, 나는 못났어, 나는 미련해서.....,라는 말을 입에 담지 말라 너
는 겸손을 말하려는 것이지만, 네 입의 말로 얽히리라, 마음과 행동으로 낮추고 겸손하라"하셨습
니다. "예수님이 미련하냐?" 물으셨습니다. 아니요. "예수님께 부족한 것이 있더냐?" 물으셨습니
다. 아니요. "예수님이 못 나셨느냐?" 물으셨습니다. 아니요. "그 예수님이 네 안에 계시느니라"
하셨습니다. 바로 입의 말에 권세가 있으니 내가 나를 미련하다 말하면, 미련으로 얽히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생각과 입의 말을 고치도록 하셨습니다.
어느 날 또 "내가 너를 위해 큰 이적을 예비해 놓았나니"하셨습니다. 여러분! 이 엄청난 복을 내게
명하신 것입니다. 사실 저 같은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된 이것이 이적입니다. 다른 이들
이 깨닫지 못한 것을 나로 알도록 하셔서, 세상에 전하라 하신 이것이 이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저
는 이것으로 받고 있습니다. 앞으로 또 어떻게 역사하실 것인지는 저는 모릅니다. 그것 또한 아버
지가 하실 일이니까요. 그리고 "네가 이 믿음의 시험에서 인내하지 않으면 너는 나의 일을 할 수가
없단다. 네가 인내로 합격하면 시온의 영광이 있다"하셨습니다. 쓰리고 아픈 고통의 세월을 지나며
믿음의 시험과 연단을 받으며, 내 자아, 육이 죽어야 하는, 사단의 온갖 방해와 영적 전투를 하며
영적인 사람으로 단단히 세워져야 하는 신앙의 여정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오늘은 여기서 맺습니다. 다음에 계속 이어서 말씀드릴 것으로 하고, 오늘 나로 이 신앙을 말하게
하여 예수님을 자랑하게 하고, 예수님 안에서 나를 자랑하는 것 또한 예수님을 자랑하는 것이니
나를 자랑하게 하여 영광을 돌리게 하신 성영님께 무한 감사드립니다. 아멘!!
경고 8 (1) 말씀과 간증으로 영광 돌립니다.p211-p2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