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회 및 지방회 임원 수련회의 메시지 요약과 소감
2023년 3월 27일(월)~28일(화)
장소: 제주도 섭지코지 피닉스
참가자: 제72차 회기 임원 전체
임원: 회장 남기환 목사, 부회장 박영순 목사, 총무 조해강 목사, 서기 김경종 목사, 회계 안혜숙 목사, 재무 박종기 목사
일정: 개회예배 정동균 목사, 성령대망회 이영훈 목사, 폐회예배 이태근 목사
메시지 요약
<개회 예배: 정동균 목사>
본문: 창세기 10:22~25
제목: 셈의 후손 벨렉
총회장 정동균 목사는 노아의 5대손 벨렉의 시대에 세상이 나뉘었다는 이야기를 본문으로 선택했다. 그 계보는 노아-셈-아르박삿-에벨-벨렉이다. 여기서 세상이 나뉘었다는 말은 바벨탑 이후에 인종과 언어가 나뉘게 된 사건을 가리킨다고 설교자는 해설했다. 그것은 홍수 이후 300년~350년 경의 일이라고 한다.
설교자의 핵심 메시지는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하나님은 세상이 죄로 어그러질 때마다 심판을 하신다. 에덴동산에서 첫번째 심판이 있었고, 노아의 시대에 물의 심판이 있었다. 그리고 장차 불의 심판이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세상을 심판으로부터 건지려면 죄인을 의인으로 바꾸는 작업인 전도가 중요하다. 그리고 그 전도를 위해 교회가 영적 모델이 되어야 한다. 그 영적 모델은 곧 교회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우리의 선함을 세상에 어떻게 나타낼 것인가로 결정된다.
이 설교를 들으면서 나의 마음 속에는 다음과 같은 질문이 일어났다:
1. 인류학적으로 보면 언어의 분화와 새로운 인종의 출현은 자연적인 현상이다. 서로 오랜 세월 떨어진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언어는 달라지게 마련이다. 그런데 성경은 이를 하나님의 심판으로 해설한다. 이런 이야기가 담고 있는 의미는 무엇일까? (존 사일하머가 모세오경 주석에서 설명하는 내용을 후에 추가합니다)
2. 예를 들면, 우리는 창조 이야기를 읽으면서 이 세상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에 대하여 배운다. 동시에 우리는 과학적인 해설인 빅뱅이나 진화론적 설명을 배척하지 않는다. 그것은 다른 관점에서 다른 의미를 부여하는 해설이기 때문이다.
3. 그러면 바벨탑과 언어의 혼잡에 대한 성경의 이야기를 어떤 방식으로 해설하는 것이 좋을까? 그 중심을 잘 잡는 것이 필요하다. 이에 대해서 지금으로서는 다음과 같이 정리해 두자: 바벨탑 이야기의 진정한 의미는 인간이 자기 이름을 내려고 하지만 결국은 무명한 자가 되고 만다. 언어가 달라서 그 이름도 부를 수 없는 시대를 살게 되는 것이다. 반면에 하나님은 무명한 자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그의 이름을 창대하게 해주겠다고 약속하셨다.
<성령대망회: 이영훈 목사>
사무엘상 27:1~2
대표총회장 이영훈 목사는 말레이시아의 자카르타에서 집회를 인도하고 돌아와서 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들은 이 집회를 위해서 1년 동안 기도했다고 한다. 그리고 집회기간 동안에 집회 장소를 제외한 다른 지역에서는 비가 쏟아졌다고 간증했다.
이영훈 목사는 싱가포르의 씨티하베스트처치를 방문하여 격려의 메시지를 전하고 왔노라고 말했다. 그 교회의 담임인 콩히 목사는 미국에 거액의 손을 송금하면서 공금유용의 죄목으로 8년형을 언도받고 2년 넘게 감옥에 갇혀 있었는데 그 동안에 3만2천의 교인들은 2만천명으로 줄었다고 한다.
이영훈 목사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메시지를 전달했다. 그것은 ‘나의 종들이 눈물의 기도를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다윗은 평생 눈물의 사람이었으며, 예레미야는 나라와 민족을 가슴에 품고 눈물로 기도했다. 이영훈 목사는 우리나라의 곳곳에 ‘주사파’가 있어서 우리나라가 무너져 내리고 있다고 진단했다(2022년 8월 순복음한사랑교회 김형수 목사는 이영훈 목사의 주사파 발언에 대하여 자제를 요청하는 글을 총회 홈페이지에 올렸다.).
또한 이목사는 2028년이 되면 럼시 선교사가 내한한지 100주년이 되므로 다시 성령으로 충만하기를 위해 기도하고 노력하자고 했다. 그리고 강조하여 말하기를, ‘분열을 극복하고 다시 하나됨을 이루는 교단을 이루자. 그것이 오순절 교단이 아닌가!’라고 했다.
이영훈 목사는 동남아 선교사대회에 참석하여 성령의 음성을 전했다고 소개했다. 그들이 선교사로서 어찌하여 노후대책을 위해 애쓰고 있느냐고 질타했다는 것이다. 인간적인 생각을 하기에 목회가 약해진 것을 모르느냐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영훈 목사는 변하는 사람의 말을 믿지 말고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기억하라고 권면했다. 이런 흐름 가운데서 이영훈 목사는 오늘의 본문 사무엘상 27장을 다루었다. 거기에서 다윗은 마음이 무너져 블레셋의 땅으로 피하여 가서 그 왕에게 자신을 의탁하러 갔다고 안타까워했다. 지금껏 하나님을 신뢰하며 살았는데 이제 지쳐서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적국의 땅에 들어가서 아기스에게 머리를 숙이고 매달리는가 라고 다윗의 이야기로 목회자들을 일깨우려고 노력했다.
이영훈 목사는 싱가포르의 콩히 목사의 사연을 소개하면서 그 교회의 목회자들이 감옥에 가 있지만 여전히 2만천명이 모여 예배하고 있다고 기적이라는 해석을 했다. 이 이야기를 통해서 어려운 중에 목회자들은 더욱 하나님을 신뢰하고 기도하라고 강조했다.
특히 다윗이 한 말 중에서 ‘내가…’로 시작되는 문장을 지적하면서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자신을 의지하는 사람으로 전락하게 되었다고 비판했다. 그 결과 1년 4개월동안 블레셋의 왕 아기스의 수하에 들어가서 모든 일행들도 동일한 수모를 당했다고 지적했다. 이는 다윗의 마음이 무너진 것이라고 하면서 이영훈 목사는 목회자들에게도 기도와 눈물과 열정을 회복하라고 강조했다.
이영훈 목사는 올해 자신의 교회가 5만명의 새신자를 목표로 전도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오는 2033년은 예수님 승천 2000년 기념이 되는 해로서 각 교회가 10배의 성장을 목표로 열심히 노력하자고 권면했다.
특히 총회의 지도자 선출과 관련하여 양 교단의 통합 절차를 밟는 과정에서 앞으로는 선거 방식을 추대로 할 것이므로 다시는 선거로 인해서 다투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내다 보았다. (나중에 들으니 다음 총회장은 정동균 목사가 될 것이라고 한다). 이영훈 목사는 약속대로 4년간의 대표총회장의 임기를 마치며 물러나겠다고 약속했다.
설교의 마무리 시간에 이영훈 목사는 앞으로 십년간 놀라운 부흥이 일어날 것을 기대하고 전력을 다하자고 했다. 그리고 모두에게 자리에서 일어날 것을 권하면서 합심기도를 인도했다.
이 설교를 들으면서 나는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해보았다:
1. 다윗이 블레셋의 나라로 피하여 아기스에게 자신과 부하들을 의탁한 것은 과연 그의 실책인가, 아니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인가? 이영훈 목사는 그의 마음이 무너졌기 때문에 이런 선택을 했다고 설교했다.
2. 하지만 애굽으로 피하여 간 야곱이 하나님의 분부를 받고 그렇게 했으며, 목수 요셉도 가족을 데리고 애굽으로 피했다면, 사람이 단지 어떤 나라로 간 것 그 자체로는 공과를 따지기 어려운 것 아니가 하는 생각이 든다.
3. 그러면 우리가 마음에 어떤 주제를 정해놓고 성경본문을 그 주제에 맞게 각색하고 손질하는 것이 현재 설교자들의 풍토라면 이것은 문제가 될 것이다. 성경 자체로부터 메시지를 찾으려 하기보다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소재로 성경을 사용하는 잘못을 범할 수도 있다.
4. 이번 제주 여행지 중에 쇠소깍에서 뗏목을 탔는데 그 뗏목을 끄는 가이드의 입담이 나를 신나게 했다. 그런데 그는 뗏목을 타고 가는 도중에 하천을 따라 늘어선 바위들을 가리키며 설명을 했다. 그가 설명할 때마다 바위는 곰 발바닥으로 보이기도 하고, 윙크하는 호동이나, 물고기를 잡으려고 노려보는 독수리로 보이기도 했다. 그냥 볼 때는 바위인데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면서 바라보면 바위에 이런 저런 그림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5. 성경말씀도 이런 사람이 이렇게 해설하면 이렇게 보이고, 저런 사람이 저렇게 해설하면 저렇게 보이는 식으로 해설되어도 되는 것일까?
6. 한가지 분명한 것은 부흥이라는 하나의 주제에 몰입되면 설교자는 성경의 모든 이야기를 그런 식으로 바라볼 것이다. 목회자의 도덕적 잘못조차도 덮어주게 되는 것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런 일이 반복되면 결국 기독교회는 성경을 통해서 드러나야 할 가치인 진실과 자비, 그리고 겸손한 신앙을 뒷전으로 물리고 자신이 굳게 붙들고 있는 성장에 대한 야망과 편향된 이념으로 인하여 결국 성경의 가르침을 왜곡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지금 교회가 이단이라고 지적하는 JNS의 집단이나 된 신천지 집단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닌가!
<폐회 예배: 이태근 목사>
마가복음 10:42~56
제목: 하나님의 때를 놓치지 말자
이태근 목사는 설교에서 목회에 성공하는 비결을 소개했다. 그의 설교 중에서 인상적인 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 하나님의 때가 있다. 모세의 경우, 배움의 때와 연단의 때, 그리고 소명의 때가 있다. 자신의 때를 분별하고 거기에 최선을 다하라.
2. 배움의 때와 관련하여 이태근 목사는 자신의 미국 유학 경험을 소개했다. 그것을 한마디로 말하면, ‘검불이 되려는가, 아니면 장작이 되려는가?’라는 말로 요약될 수 있다.
3. 목회자는 끊임없이 배우고 연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를 들어, 전에는 메시지가 귀로만 듣는(ear-oriented) 시대라면, 이제는 시각적으로 정리된 한 컷의 장면이(eye-oriented) 더 명확하고 선명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시대라고 강조했다.
4. 그는 TED(Technology Entertainment Design)을 보면서 더 효과적인 메시지 전달 방법에 대하여 끊임없이 관심을 기울이고 있노라고 소개했다.
5. 목회에 성공하려면 분명한 정체성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내가 왜 목회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분명한 대답이 바로 그것이다.
6. 실수도 연단의 한 부분이다.
7. 카프만의 책, 광야의 샘에 나오는 누에고치의 이야기를 통해서 연단과 인내의 필요성을 다시 강조했다.
8. 그는 또한 목회자들을 격려하기 위하여 이런 말도 했다: 전투에 투입되는 병사는 에이스(Ace, Elite)다. 바로 우리가 그렇다!
9. 강단이 변해야 교회가 변한다!
나는 이태근 목사의 설교를 들으면서 다음과 같은 생각이 들었다:
1. 그의 설교에서 성경의 이야기가 우리의 삶에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나는 보았다. 이태근 목사에게 성경은 자신의 주장이나 견해를 입증하는 근거나 자료에 해당한다.
2. 설교자나 성경을 자주 읽는 사람들이 이렇게 성경을 대하지 않는 이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성경이 무엇에 대하여 말하는지에 대한 고민보다는 성경을 단지 자신의 주장을 펼치기 위한 소재로만 활용한다면 성경이야기는 이야기를 펼쳐 나가기 위한 화두에 불과하다. 바디매오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통해 기회를 찾고 그 기회에 충실하라는 메시지를 시작하는 식이다.
3. 해석학적인 관점에서 볼 때, 성경을 이렇게 사용해도 되는가 하는 의문이 든다. 아니면 본래 성경은 이렇게 사용될 수밖에 없는 것일까? 성경을 읽으면서 누구라도 자신의 삶에 대한 지혜와 통찰을 발견하면 되는 것인가?
4. 나는 이런 해석학적인 패턴이나 방식이 현실적이고 직관적이기는 하지만, 인간 본질과 삶의 근본 문제에 대한 탐구로 나아가는 데는 결함이 있다고 생각한다.
5. 성경이 들려주는 가치관과 세계관을 처세술을 위한 교본으로 격하하는 행위가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든다. 그런 점에서 순복음신학은 실용주의적 조언(pragmatic advice) 같은 느낌이 든다. 즉물적이고 통속적이라는 표현도 과히 틀린 말은 아니다.
6. 냉정하게 말하면, 순복음신학은 아직도 교회성장론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번 세미나에서 오직 정동균 총회장의 설교에서만 나는 ‘우리의 삶과 사역에서 오직 성장과 부흥이 전부는 아니지 않느냐’는 식의 메시지를 들었다.
7. 그는 ‘전도란, 죄인을 의인으로 바꾸는 작업’이라고 정의했다. 사실 그 말은 본이 되는 삶을 살자는 권면을 하기 위한 디딤돌이었다. 정동균 목사의 메시지는 ‘우리의 선함을 삶으로 어떻게 나타낼 것인가?’에 그 핵심이 있다.
8.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본다면, 학자들은 학문적 성취와 업적에 집중하고, 운동선수는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노력한다. 그래서 그 부분에 전문가가 되기를 원한다. 그것은 나쁜 것이 아니다. 다만 인생을 오로지 그 일에만 투자하는 것은 지혜롭지 못하다. 삶에는 더 많은 영역이 있다. 인생은 단순한 목표로 치환되기에는 너무나 고상하고 아름답기 때문이다.
9. 나는 성경해석에 대하여 조금 더 공부해야 한다고 느꼈다. 사람들이 왜 이런 저런 방식으로 성경을 해석하는지, 그리고 그 모든 방식에 대하여 어떻게 평가를 해야 하는지, 성경을 바르게 읽고 해석하는 기준은 어떤 것인지, 이런 것을 정리해야 성경해석의 혼돈에서 벗어날 출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 길은 반드시 마련되어야 하고 제시되어 한다.
<끝>.
https://youtu.be/UbsifOwGz5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