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산도서관 수필쓰기 강좌 –8차시 (2022년 6월 8일 수)
소재와 테마 탐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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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작품 첨삭 지도
1. 나를 충전하는 시간 /권삼국
여행이라고 다 즐거운 것은 아닌 모양이다. 누구와 어떻게 즐기는가가 더 중요하다. 흔히 여행이라면 익숙한 일상을 벗어나 낯선 곳 낯선 사람을 만나, 자신의 삶을 조명 해 보거나 성찰하며 에너지를 얻는데 있다고 생각된다.
독일에 살고있는 아들 내외가 작년부터 한번 다녀가라고 했다. 2년 전 결혼식을 하고 바로 독일로 떠나서 아쉬운 마음이 많았다. 결혼식 이틀 후가 며느리의 첫 출근일이라 어쩔 수도 없었지만 섭섭한 마음은 그들도 지울 수 없었는가 보다.
들뜬 마음으로 계획을 세웠다. 가져갈 품목을 정하느라 몇 번의 통화가 이어졌다. 그러나 갑작스런 아내의 교통사고로 여행은 무리라는 의사의 진단을 듣고는 허탈함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었다. 미안함은 많았지만 혼자라도 결행하기로 하였다.
퇴직 4년차. 모든 게 시무룩하고 성가시게 느껴지는 일상의 나태함에 뭔가 큰 변화가 필요가 했다. 애들은 이미 휴가 신청서를 내었고, 그들 나름 미리 계획을 세워두고 있었다. 불안하다. 혼자만의 여행은 국내에서도 아직 해 본 적이 없었다. 외국어 공포증도 부담을 떨칠 수가 없었지만, 감히 큰 용기를 냈다. 시작이 반이라 하지 않는가. 아들에겐 시집을 며느리에게는 에세이집을 선물하기로 하고, 따로 옷과 김도 준비했다. 또 그곳에서 인기가 많은 한국산 고무장갑도 넉넉히 싸 주위 분들에게 선물하기로 하였다.
인천공항 부근에 호텔을 예약하고 기차에 몸을 실었다. 서울역에서 다시 공항열차를 타고 저녁 늦게 호텔에 도착했다. 여행 경비를 아끼려 영국 히드로공항에서 환승하기로 했다. 다음 날 호텔에서 아침을 먹고 공항으로 가 수속을 끝내고 브리티시 에어웨이에 탑승하니 숙제를 마친 기분이었다. 그러나 여기는 말이 통하는 한국 땅이다. 문제는 다음부터다.
11시간이 지나 영국 히드로공항에 도착하였다. 공항 대기실에서 3시간 동안 머물면서 간단히 배를 채웠다. 입국 수속 시 평소 사용하던 자외선 차단제와 융프라우에 오를 때 사용할 멀미약이 문제가 되었다. 자외선 차단제는 압수되었고, 멀미약은 융프라우에 오를 때 사용 할 거라고 미리 사전을 찾아 적어 갔던 쪽지를 보여 주었다.
함부르크공항에 애들이 마중 나와 있었다. 짐을 싣고 20분을 달려 집에 도착하니 기진맥진 아무 생각이 없었다. 언어소통 부제로 스트레스가 여간 아니었다. 영어로 말할 준비는 되어 있는데 너무 빨라 도대체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내 영어는 전혀 쓸모없는 것이 되어 버렸다.
독일에서 3일을 머무르며 시가지로 흐르는 강으로 유람선을 타기도 하고 맛 집을 찾아가기도 하며 소시지에 맥주를 마셔 보았지만, 기분은 편치 않았다. 혼자 있을 아내 때문이다. 내일은 스위스로 가기로 되어 있어서 선물을 구입하기 위해 시내로 나갔다. 오카리나와 사돈이 부탁한 과도와 영양제 외손주의 장난감을 구입하고 아시아 마트에서 한국 음식을 가득 싸 저녁에 짐을 꾸렸다.
다음 날 베른 공항에 내려 인터라켄으로 향하는 열차를 탔다. 가방 4개를 모두 선반 위에 올려 두고 차창으로 보이는 풍광을 구경하는 중, 제네바역에서 역무원이 차표 검사를 하러 왔다. 표 검사가 끝난 후 아들이 가방 하나가 없다며 선반 위를 올려다보았다. 분명 나란히 4개가 있었는데 첫 번째 가방이 없어졌다. 차표 점검 때 누군가 가져간 모양이다. 거기에는 어제 독일에서 싼 선물과 한국 음식이 가득 담긴 검은색 가방이었다. 아들과 며느리가 울상이다. 어찌하겠는가 이 낯선 땅에서, 이미 엎질러진 물인데. 나도 기분은 좋지 않았지만 나까지 그러면 여행이 아니라 고행이 될 판이니 잊자고 달랬다.
숙소 가까이에 한국어로 ‘라면 있습니다’. 라는 한글로 쓴 글귀가 있어 라면을 끓어 저녁을 대신했다. 가방을 잃어 울적했던 기분이 라면을 먹은 후에는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애들도 밝은 표정이다. 선물은 다시 사기로 했고 찰밥에 깻잎과 장아찌는 못 먹었지만, 라면이 기분 전환 역할을 톡톡히 하였다.
인터라켄을 사이에 두고 두 호수가 정말 장관이었다. 아름다운 풍경과 옹기종기 모여 있는 집들이 별난 세상 같았다. 이른 아침 방문을 열어보니 눈 앞에 펼쳐진 설산의 아름다움과 쉼 없이 흐르는 물소리가 때 묻은 나를 말끔히 씻어 주었다. 며느리가 차련 준 아침상을 설산 바라보며 먹는 기쁨도 누렸다. 나의 적적함을 어떻게 알고 찾아왔는지 몇 마리의 새들과 아침을 한참이나 함께 보냈다.
융프라우로 산악열차는 숨을 헐떡이며 올랐다. 4000m가 넘는 하늘길을 ..... 산소 부족으로 일본인 여자와 어린이가 울먹이며 좌석에 누워 가쁜 숨을 쉬고 있었다. 멀미약을 건냈더니 소용이 없는지 손을 내 젖었다. 여름과 겨울이 공존하는 곳, 꽃을 사랑하고, 자연을 소중히 여기는 청정국가. 소들도 누워서 풀을 뜯는 축복받은 나라다. 그러나 내일이면 이태리로 떠난다.
나폴리 공항에 내려 남부 해안선을 향하는 버스를 탔다. 아말피, 미노리, 포시타노 남부 해안도시가 소문대로 절경이다. 아말피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산 지형에 맞추어 집을 지어 자연 훼손을 최대한 줄이고 있었다. 출입구가 지붕으로 나 있어 계단을 타고 내려가 현관으로 들어가는 특이한 구조의 집과 가계도 있었다. 자연에 순응하고 공존하려는 지혜가 아름답다.
이태리 공항에서 애들은 독일로, 나는 영국으로 또 각자의 길로 돌아갈 시간이 왔다. 16일 동안 함께 한 힘들었지만, 행복한 동행이였다. 내가 인정하지 않았을 뿐 이미 행복은 내 곁에 있었다.
2. 그늘 / 김을수
1. 웅성거리는 소리가 가득하다. 여기저기 여인들이 삼삼오오 머리를 맞대고 며칠 째 숙덕거린다. 10년간 삶의 활력처가 되었던 동네 수영장이 문을 닫는다. 어떤 운동보다도 수영을 즐겼는데 놀이터를 빼앗긴 것 같다.
오늘은 마지막 운동을 끝냈다. 같은 반별로 모여 이별의 아쉬움을 나누는 시간이었다. 나를 언니라 부르며 따르던 한 회원이 말한다.
“언니, 10년 전 볼 때에 비하면 지금은 눈과 목소리에 힘이 너무 빠져 보여요. 어깨 펴고 당당하게 잘 지내세요.” 작별인사에 잠시 멍해진다. 지난 10년간 별로 내색하지 않고 살았는데 내 얼굴에 그늘이 지고 힘이 빠져있음은 숨기지 못했나보다. 지나간 세월을 되짚어본다.
2. 큰 변화는 남편의 퇴직이었다. 규칙적인 생활이 몸에 밴 남편은 매일아침 일어나도 갈 곳이 없다는 현실에 적응하는데 나의 도움이 필요했다. 새로운 인생 이모작을 균형 있게 보내는 계획을 세웠다.
우선 동네 주민센터 요가 프로그램에 참여케 했다. 대부분 회원들이 여성인 것을 쑥스러워했지만 굳어있는 몸과 마음을 유연하게 하는데 가장 좋은 운동임을 강조하며 홀로 설 때 까지 옆에서 보조했다.
어릴 적에 분 적 있다는 하모니카도 취미로 새롭게 시작하여 재미를 느끼며 열중했다. 퇴직생활의 균형도 잡히고 순항하는 듯하였다. 점점 자리를 잡아가는 하모니카 실력으로 문화센터 동기들과 하모니카연주회를 앞두고 열정적인 연습을 하던 중이었다.
3.평소 건강에 예민한 편인 남편이 몸에 이상을 느껴 병원을 찾았는데 뜻하지 않은 징후가 발견되었다. 신장에 문제가 있다는 진단이라 대학병원과 서울병원을 교대로 판독을 하러다녔다.
결국 신장 수술을 하고, 항암치료를 하느라 집과 병원을 오가며 머무는 생활이 반복되었다. 순조로운 퇴직 생활은 일단 멈춤이 되고 살얼음 위를 걷듯 조심스런 일상이 지속되었다. 환자의 기분을 살피고, 마음을 다독이고, 식단을 조절하는 일이 주 임무가 되었다. 그 시간들 속에서 내 눈과 목소리가 허수로워 진 것일까
4. 옛날 남편과 데이트를 할 때, 주로 걸어 다녔다. 중앙로에서 만나 반고개 넘어 있던 집까지 가는 동안 많이 조잘거렸다. 그 때 낭랑한 내 목소리가 듣기 좋았노라고 나중에야 말했다. 살면서 목소리가 점점 커진다고 남편과 아이들에게 지적을 받기도 하고, 조근조근 말하는 이를 부러워하기도 했다. 가랑비에 옷 젖듯이 우여곡절 많은 세월의 무게가 목소리를 조금씩 변하게 하니 참 헛헛하다.
5.거울 앞에 섰다. 속내를 들켜버린 씁쓰레함이 담긴 후줄근한 얼굴을 마주한다. 눈도 크게 떠 보고 힘도 줘 본다. 미간에 생긴 주름도 손가락으로 살살 밀어보니 펴진다. 입 꼬리를 양쪽으로 살짝 올리니 저절로 웃음 띤 얼굴이 된다. 어깨를 펴고 허리를 꼿꼿이 세운다.
6.결혼생활 햇수만큼 함께 해온 남편이 아끼는 군자란이 있다. 머잖아 꽃을 피울 태세로 꽃대가 쑥 올라왔다. “이것 보세요. 곧 꽃이 피려고 해요.” 호들갑스럽게 남편을 부른다.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꽃이 피고 지기를 반복하듯 우리네 삶도 굴곡의 연속이지만 소소한 것에도 감탄하고 활력을 불어넣어 주고 싶다. 조용히 주문을 왼다. '우리 얼굴 어디에도 그늘은 없다.' 고
3. 끝과 시작 /김형윤
1. 폐업 신고는 의외로 간단했다. 교습소 허가를 낼 때는 여러 가지 서류와 요건이 필요했지만, 이번에는 서류 한 장을 교육청에 내는 걸로 모든 게 끝났다.
2. 내가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영어 교습소를 연 것은 4년 전 봄이었다. 처음 시작할 때는 희망으로 한껏 부풀었다. 인근 아파트 화단에 핀 목련은 나의 소망을 담은 듯 소담스러웠다. 교단에 섰던 경험은 있었지만, 오랫동안 주부로 생활하다가 자영업을 하는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두려움과 설렘이 컸다.
3. 간판을 달고 교실 내부를 꾸미고 집기를 사들였다. 내게 일할 공간이 생긴다는 것이 말할 수 없이 즐거웠다. 비록 작은 규모이긴 하지만 누구의 간섭과 지배 없이 일한다고 생각하니 신바람이 났다. 프랜차이즈에 가입하지 않고 두 아들을 가르친 경험을 바탕으로 독자적인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4. 크게 잘되지 않았지만, 그런대로 나 혼자 감당할 만큼 학생들이 모였다. 몸은 힘들어도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 재미있고 보람도 느껴졌다. 처음에는 아이들에게 하나라도 더 많이 가르치려고 했지만, 곧 그들의 마음을 읽는 것이 먼저임을 깨달았다. 눈에 보이는 결과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아이들이 흥미를 갖고 공부할 수 있도록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어 주었다. 매시간 교실은 어수선했지만, 그 속에서도 서로 부대끼며 아이들은 즐겁게 공부하였다. 겉으로 보기에는 장난치며 노는 것 같아도 아이들은 스펀지처럼 신속하게 지식을 빨아들였다. 아이들이 문장을 외우는 소리는 작은 새들이 노래하는 것 같았다. 아이들은 수업시간에 배운 영어노래를 부르며 뛰어다녔다.
5. 점차 학생들도 늘어났고 교실도 늘렸다. 일주일에 한번은 원어민 강사를 초빙해서 수업을 맡겼다. 교습소 운영도 안정되고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려나갔다.
6. 그런데 감염병 유행이 시작되자 학생 수가 갑자기 줄어들었다. 설상가상으로 건물 주인과 마찰이 생기자 교습소를 계속하기가 어려워졌다. 새로 시작하는 것보다 일을 그만두는 것이 더 힘들었다. 기대와 호기심을 갖고 나를 찾아오는 학생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늘 밝은 얼굴로 잘 웃는 지수와 영어 공부가 재미있다고 두 계단 씩 뛰어 올라오는 병주, 몸은 약하지만, 수업 시간 중에는 누구보다도 열심인 영희…. 모두 내게는 반갑고 소중한 아이들이었다. 그러나 오래 망설일 수 없었다.
7. 다행히 교습소를 인수하려는 사람이 나타났다. 물건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한때 요긴했지만, 이제 더는 쓸모가 없어진 물건들을 보니 마음이 착잡했다. 많은 책과 노트, 각종 집기 등 아끼던 물건들이 쓰레기봉투로 들어갔다. 새삼 후회와 아쉬움이 새록새록 고개를 들었다. 처음에도 끝을 생각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희망으로 채색된 크고 멋진 결말이었다.
8. 아이들과 마지막 수업을 했다. 수업에 대한 여러 가지 계획과 아이디어는 많았지만, 막상 닥치고 보니 뭐가 급한지 후딱 지나가 버렸다. 아이들도 모두 떠나고 혼자 남았다. 교실을 둘러보았다. 앞으로는 다시 볼 수 없는 공간이다. 책상과 의자를 만져보고 쓰다듬었다. 교습소를 천천히 나왔다.
9. 그날 밤 영희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동안 고마웠다며 교실을 나올 때 눈물이 나왔다는 아이의 말을 전해주었다. 내 삶의 한 시기를 같이했던 아이들에게 새삼 고마운 생각이 들었다. 크고 작은 집안 문제와 나이들수록 짙어지는 우울감을 뒤로하고 맞이했던 그들은 울퉁불퉁했던 내 삶을 달래준 작은 위로자들이었다. 아이들의 엉뚱한 상상력과 기발한 아이디어,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던 선한 동기들이 늘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었다. 나는 그들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10. 세상은 치열한 경쟁 원리로 이끌어지는 정글이다. 자영업은 교직과는 또 다른 세계였다. 사업은 情의 원리가 아닌 이윤 추구가 목적일 수밖에 없다. 규모가 크든 작든, 성과가 나와야 일이 지속될 수 있다. 교습소를 운영하면서 사회를 보는 시야가 좀 더 넓어졌다는 것이 소득이라면 소득이었다.
11. 지난 4년을 돌이켜보면 스스로 대견하다고 생각할 만큼 잘한 일도 있지만, 직업인으로서 프로의식이 부족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지난 일에 대해서 이런저런 가정과 방법을 궁리해보지만, 지금에 와서는 다 부질없는 일이 되었다.
12. 우리의 삶은 시작과 끝의 끊임없는 반복이다. 끝은 새로운 시작점이다. 또 다른 세상의 문을 열고 더 넓어진 마음으로 희망을 찾아갈 것이다. 내가 지상에 존재하는 한 삶은 축복이니까.
*제목 ‘끝과 시작’은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시 제목을 차용함
4. 어르신 집단프로그램을 마치며 / 남병웅
1. 2021년도 들어서 첫 번째 진행한 어르신특화서비스 집단프로그램을 잘 마쳤다. 매주 2회 화, 금요일 오전에 강의를 다니다 보니 벌써 6주가 훌쩍 지나갔다. 어느 프로그램이던 한 과정을 마칠 때면 항상 시원섭섭한 마음이 든다.
2. 복지관에 붙어있는 #가가호호(好好) 라는 슬로건처럼 코로나로 인하여 집콕하면서 고독하고 우울하게 지내시던 어르신들에게 웃음을 찾아주는 좋은 친구 같은 강사로 함께 하겠다는 마음으로 12회차를 즐겁게 진행했다.
3. 매주 2회씩 6주간 프로그램을 하는동안 어르신들과 같이 웃고 즐기면서 정이 많이 들었기 때문에 헤어짐에 서운하면서 한편으로는 한 과정을 잘 마친데 대한 안도감과 함께 시원하고 한결 가벼워진 마음이기도 하다. 특히 코로나 시국에 고위험군에 속하는 70~80대 어르신들과 만나 12회차를 진행한다는 것이 다소 부담스럽고 조심이 되었던 게 사실이다. 무사히 한 과정을 마치게 된 것이 무척이나 고맙고 감사한 일이다.
4. 마지막 수업 시간이라서 그동안 수업한 내용을 총 복습해 보았다. 웃음 스트레칭, 웃음 박수, 웃음 레크리에이션, 웃음 율동, 손유희, 민요 등과 매 회차별로 했던 여러 가지 놀이들도 일일이 기억을 되살려서 이야기 하시도록 했다. 개인별 소감 발표를 하시면서 몇 분은 그동안 너무 즐거웠고 고마웠는데 마친다니 매우 아쉽다면서 손수건을 꺼내서 눈물을 훔치시니 웃음박사도 덩달아 눈물이 핑 돌기도 했다.
5. 평생교육기관 방역수칙을 준수하다보니 그동안 수업 시간에는 어르신들 상호간이나 강사하고도 일체 신체 접촉을 하지 않았다. 수업을 모두 마치고서는 즉석에서 손소독제를 더 바르고 축축한 채로 손을 잡고서 아쉬움을 달래드렸다.
6. 열두 번 수업으로 웃은 것이 1년 웃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웃었다면서 너무 고맙고 이대로 계속했으면 좋겠다고 하신다. 하지만 강사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안타까운 마음뿐이다. 날짜가 왜 그리 빨리지나갔는냐며 헤어지는데 악수라도 한번 더하자면서 또 손을 잡으시고 눈물을 글썽이는 어르신을 보면서 마음이 짠해 진다.
7. 복지관 주차장에서 집으로 모셔다드리기 위해 출발하는 스타렉스에 타고 계시는 어르신들께 손을 흔들며 배웅해 드리고, 내년에도 또 뵐 수 있도록 내내 건강하시기를 기원하면서 사무실로 돌아왔다.
8. 평소 외롭게 홀로 지내시면서 특히 코로나로 인하여 경로당도 못 가시고 다른 활동도 거의 못하시는 어르신들이라서 우울감이 높으신 분들이다. 이런 어르신들의 힐링을 위하여 이번 특화서비스 과정에서 웃음, 레크리에이션, 전래놀이, 실버체조, 민요, 심리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동원해서 서로 마음을 털어놓고 이야기도 나누시고, 같이 어울려서 웃음꽃을 피우며 친하게 지내시고, 자존감이 높아지며, 마음 힐링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여 프로그램을 진행 하였다.
9. 제일 기억에 남는 것은 과정 중반에 가발과 코믹안경 등 웃음도구를 쓰시고 평생처음으로 복지관 강당의 무대에서 음악에 맞춰 웃음율동을 하며 즐거워 하셨던 시간이다. 이때 사진을 찍어서 혼자 심심하실 때 꺼내 보시고 웃으시라고 담당 선생님이 폰으로 찍어서 보내드리니 엄청 좋아들 하셔서 웃음박사도 덩달아 기분이 좋다. 아마도 이렇게 함께 즐겁게 보냈던 시간들을 어르신들은 두고 두고 폰을 열어보시며 즐겁게 기억하실것 같다.
10. 이미 두 번째 집단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지만 담 주부터 시작되는 세번째 집단의 어르신들의 힐링을 위해 첫 번째 집단의 결과 피드백을 받아보고 미흡한 점이 있다면 개선하여 더욱 즐겁고 유익한 내용으로 최선을 다하겠다는 다짐을 해 본다.
11. 아무쪼록 어르신들이 웃음박사와의 만남을 계기로 여생을 즐겁고 편안하게 보내실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어르신들께서 프로그램에 적극 참여해주신 덕분에 웃음박사도 6주간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특히 엄중한 코로나 시국에서도 12차시 과정을 안전하게 잘 마칠수 있어서 더욱 고맙고 감사합니다.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5. 잠을 편집한다 / 박송애
“백야에 말달리고 순록이 썰매 탄다
하얗게 돌아가는 필름은 밤새우고
관객은 오직 잠만을 꿈꾸며 편집한다
잠에 관한 명상과 수면 음악 틀어놓고
간절히 빌어보는 고가 터질 잠의 나라
또다시 황량한 눈발 돌아가고 감긴다”
1 “달러구트 꿈 백화점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무슨 꿈을 사고 싶으신가요?”
당당하게 꿈 백화점에 입장했다. 무슨 꿈을 살까? 여기저기 돌아본다.
2 불면증으로 한참 고생을 했다. 밤이 오는 것이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오늘 밤도 못 자면 어떡하지?’ 하얗게 날을 새는 일이 열흘 이상 되었다. 핏기 하나 없이 부초처럼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낮엔 병든 닭처럼 맥아리 없이 허느적 거렸다.
3 안대를 하고 눈을 감는다. 머릿속은 하얗다. 오늘은 어떤 영화가 상영될 것인가? ‘아무 생각도 하지 말자’ 숫자를 거꾸로 세본다. 999, 998, 997 ...... 양 천마리가 지나갔다. 상영 끝난 무대는 하얗게 돌아간다.
4 바로 잠들 수 있다는 음악도, 오디오북도 다 소용이 없다. 잠을 포기하고 책을 펼쳐 든다. 집중이 되지 않아 바로 덮는다. 내일 일이 걱정이다.
5 달러구트 꿈 백화점*이 있다. 이 백화점은 잠이 들어야 입장 할 수가 있다. 잠자는 꿈을 사고 싶은데 잠이 들 수 없으니 어찌 살 수 있단 말인가?
6 꿈을 사고 파는 이야기가 많다. 그 꿈 덕분에 바라던 아들을 낳기도 하고 왕후가 되기도 한다. 꿈값은 비단 치마 감이다.
잠자는 꿈을 사고 싶어도 살 수가 없다. 입장하지 않고 꾸는 꿈은 없을까?
7 수면에 도움 된다는 온갖 종류의 약을 먹어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더는 견딜 수 없어 정신과에 갔다. 불면의 밤이 급기야 여기까지 떠밀었다. 현대인은 마음의 상처가 많은가? 예약하는 데도 일주일 이상 걸렸다. 병원엔 대기자들이 순번을 기다리고 있었다. 일반 병원보다는 까다롭게 작성하는 것이 많았다. 수면제 몇 알 처방 받으려고 주관식의 문항들도 의사의 마음에 들게 시험 문제 풀 듯 꼼꼼하게 적었다.
8 의사와 내담자 간은 형식상의 상담이 이뤄졌다. 자고 싶은 욕망뿐, 약 처방이 목적인데 의사는 상담을 권고했다. 스트레스, 불안, 집착 등 스스로가 내린 진단에 약을 처방받았다. 일주일 분량 수면제를 들고 왔다. 첫날 약을 먹으며 잘 잘 수 있길 바랐다. ‘기필코 잠을 잘거야’ 최면을 걸었다. 그러나 ‘약은 먹었나?’ 하고 나를 비웃었다.
9 결사의 각오로 잠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누가 이기나 한번 해 보자’ ‘병은 소문내’라고 여기저기 야야기 했더니 호르몬제를 복용해 보라고 권유했다. 갱년기 증상일 수도 있단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산부인과엘 갔다. 상담결과 약을 한번 먹어보라고 권했다. 유방암 위험보단 골다공증에도 도움이 되고 수면장애를 완화 시킬 수 있단다. 달콤한 유혹이었다.
10 그 날, 결전의 날 약을 놓고 간절히 빌었다. ‘제발 잠들게 하소서’
요행인지, 약 덕분인지 꿈도 없는 단잠을 자게 되었다. 서너 달 약의 힘으로 불면증을 이겨내고 이제는 약을 끊고 잘 잔다.
11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정신분석 입문>에서 "고대인들은 꿈에 대해 커다란 의의를 부여하고 실제적인 이용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고 말했다. 달러구트 꿈 백화점에 입장하여 바라던 꿈을 사고 싶다. 이제는 입장이 가능하므로
*달러구트 꿈 백화점: 2020년 발간된, 이미예의 판타지 소설
6. 걸레 도둑 /이문자
2 아카시아 향기에 코를 벌름거리며, 세탁기에서 빨래를 꺼내는데 휴대전화기가 울린다.
"야야 내다 엄마다."
어머니의 목소리는 평소와 달리 나지막하다. 뭔가 은밀하게 할 말이 있는 것 같다.
"아 엄마, 무슨 일이에요?"
나도 덩달아 작은 목소리로 말한다.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아서다. 아흔 살을 바라보는 어머니는 귀가 많이 어둡다. 텔레비전 볼륨을 영화관처럼 높여서 들을 정도다. 아버지와 대화를 할 땐 입 모양을 보고 말을 짐작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대화에 익숙하지 않은 우리 형제 자매는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야 한다. 전화 통화를 할 때면 그저 안부를 묻는 정도만 하고, 그 외의 이야기는 아버지를 통해서 한다. 보청기를 써 보기도 했지만 신통치 않았다. 보청기는 필요한 말만 크게 들리도록 하는 게 아니라, 온갖 소리들을 다 끌어들여서 귓속이 왕왕거리고 머리가 아프다고 했다. 그런 어머니가 이토록 나지막한 음성으로 직접 전화를 한 것이다. 당신이 우리에게 전화를 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전화요금이 아까워서다. 우리가 전화해도 자기 할 말만 다 하면, 더 할 말이 있는지 물어보지도 않고 끊어버린다. 여덟 명의 자녀를 먹이고 입히느라고 안 해 본 장사가 없다는 어머니는 아낄 수 있는 건 뭐라도 아낀다.
"목욕탕에 도로 갖다 놨다. 아무한테도 말 안 했제?"
3 지난주 고향에 다녀왔다. 자매 중 누구든 부모님을 뵈러 가면 어머니와 함께 목욕탕엘 간다. 혼자 보내기가 겁이 나서다. 그래서 함께 목욕탕엘 갔다. 오십천 건너의 목욕탕은 내 걸음으로 십 분 정도 걸리는데, 어머니와 함께 가면 삼십 분 남짓이다. 손자가 쓰던 낡은 유모차에 빨간 플라스틱 목욕 바구니를 얹고 손잡이에 기대듯 밀며 천천히 걷는다. 그렇게 천천히 가는데도 가는 동안 몇 번이나 주저앉아 쉬어야 한다.
4 어머니는 젊어서부터 쪼그리고 앉아서 하는 일을 너무 많이 했다. 바닷가 마을에서 쪼그리고 앉아 하는 일은 대개 생선을 다듬는 일이다. 생선 배를 갈라 내장을 빼내고 깨끗이 씻는 일. 그물 건조대에 생선을 펴서 말리는 일. 오랫동안 그 일을 밥벌이로 해온 통에 척추협착증이 생겼다. 허리를 거의 기역자 모양으로 구부린 채로 걷는다.
5 유모차를 앞세운 우리는 이윽고 목욕탕에 도착했다. 어머니는 혼자서 때를 밀 수 있으니 신경 쓰지 말고 나대로 목욕을 하라고 했다. 그러고는 수건을 펴서 바닥에 놓고 그 위에 퍼질러 앉았다. 비누를 묻혀 복작복작 거품을 많이 낸 샤워타월로 몸 구석구석을 씻기 시작했다. 나는 어머니의 등만 겨우 밀어주고 나서, 온탕과 냉탕을 번갈아 들락거리며 놀았다.
6 갈 때보다 오는 길이 더 멀게 느껴졌다. 유모차는 더 자주 멈춰 앉아 쉬었다. 다리 위에서는 아예 바닥에 퍼질러 앉았다. 강 위를 선회하며 끼욱거리는 갈매기들을 보는가 싶었는데, 엉거주춤한 자세로 목욕 바구니를 뒤적거리더니, 갈아입은 속옷 밑에서 뭔가를 꺼냈다. ‘보석사우나’가 새겨진 팥죽색 타월이었다.
“걸레하믄 딱이것제…집에는 요런 색이 엄쓰서…”
쿵! 내 심장이 천 길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졌다. 어머니의 목소리는 은밀하면서도 자랑처럼 들떴다. 나는 잠시 얼떨떨했다. 그 짧은 시간에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엄마, 그걸 가져오면 어떡해? 필요하면 사 달라 하지.”
7 당황하고 다급해서 아랫사람에게 훈계하듯이, 내 말은 거칠고 날카롭고 짜증스러웠다. 이번 말고도 이와 유사한 일들이 있었거나 있을 것 같아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내 말과 표정을 보고 풀이 죽은 어머니도 적잖이 놀란 표정이었다. 별생각 없이 죄책감도 없이 평이한 일상인양 말했다가 된통 당황해 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목욕탕에 되돌아가서 타월을 돌려줄 수도 없었다. 자칫 어머니가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당할 수도 있고, 어쩌면 다시는 거기에 갈 수 없게 될까 싶어서 차마 용기가 나지 않았다. 한참 내 눈치를 살피던 어머니가 타월을 꺼낸 자리에 도로 쑤셔 넣으며 말했다.
“담에 목욕 갈 때 도로 갖다 놓을게. 걱정하지 마라.”
쑤셔 넣은 타월처럼 구겨진 얼굴을 다 펴지도 못하고 어머니와 나는 천천히 집을 향해 걸었다. 둘 다 아무 말 없이 걸었다. 속이 다 썩어빠진다는 기분이 이런 건가 싶은 생각이 들면서 눈물이 핑 돌았다.
8 “야야 목욕탕에 도로 갖다 놨다. 아무한테도 말 안했제? 큰아가 알믄 난리 난다. 알았제?”
9 목구멍에서 주먹만 한 덩어리 하나가 치밀어 오른다. 멍하니 창밖을 본다. 잠깐 전화 받는 사이에 꽃은 더 많이 피고 향기도 한층 더 짙어졌다. 코를 벌름거리며 꽃향기를 한껏 들이마신다. 해와 바람이 꽃을 피우기로 공모한 이 아침, 어머니와 내가 아주 은밀하게 뭔가를 모의한 것 같다.
10 내던져놓은 빨래를 다시 집어든다. 색깔이 진하고 낡은 타월을 너는데 자꾸 어머니 얼굴이 겹친다. 남의 타월을 숨겨와 무슨 자랑처럼 내게 보여주던 얼굴. 울움을 터뜨릴 것만 같은 내 얼굴을 보고 팍, 풀이 죽던 얼굴. 자식들이 모두 알게 될까봐 전전긍긍하던 얼굴.
11 어머니가 험한 일을 겪게 될까봐 무거웠던 마음이 한결 가볍다. 오늘은 만사를 제쳐두고 차일피일 미루던 일을 해치워야겠다. 팥죽색 타월을 사러 가는 일. 만발한 아카시아꽃 향기가 온몸에 그득 차오른다. 코를 벌름거리며 깊은숨을 쉰다. 휴! 안도의 한숨. 베란다에 걸어둔 풍경 소리가 유난히 맑다.
7. 목욕탕이라는 요지경/ 이장희
들어서면서
1) 목욕탕마다 쉬는 날이 조금은 달랐다. 혹시나 싶어 인터넷으로 확인하고 갔더니 안내원이 들머리에 서서 손을 내저었다. 보일러가 고장 나서 오후라야 가동될 거라며 양해를 구하는 게 아닌가. 부득이 다른 동네 목욕탕에 가야했다. 바다 건너 지진도 재깍 알 수 있고, 미세먼지가 심하다고 알려주는 세상인데 불편한 마음에 한 줌 짜증을 숨길 수 없었다.
2) 조조할인 목욕탕이 있었다. 가까운 곳의 온천 수준 고급사우나로 성업 중이었다. 손님을 더 끌 묘책으로 새벽이나 늦은 저녁은 요금을 덜 받았다. 조용한 시간대의 후한 서비스를 누리려고 자주 다닌 기억이 난다. 차별화 된 고급시설에 소모품도 흔전만전 쓰도록 했다. 경영난이 왔는지 행운은 길지 않았다. 얼마 후 종전처럼 비누와 수건만 챙겨주는 동네 목욕탕으로 원점회귀하게 되었다. 사회복지관 목욕탕도 그중 하나였다.
3) 언젠가 수건을 딱 두 장 주면 되냐고 볼멘소리 하는 이가 보였다. 관리인이 자초지종 설명하기를 하루 이삼백 장이면 충분한데 두세 배 이상 낭비하기 때문에 부득이 통제했다고. 쓰고 난 수건은 세탁업체에 맡기는데 인력과 비용을 감당 못해 택한 차선책이라 했다. 하기야 온천탕이나 찜질방에서 거저 쓰던 버릇을 당장에 고칠 수 있으랴. 땀 흐를 때 덮어쓰고, 누울 때 베게삼고, 한증막에서 엉덩이 밑에 깔고는 던져버린다. 불편해도 제 것처럼 아끼는 이들이 많아질 날은 언제일까.
탕 안에서
1) 몸을 씻고 있을 때, 덩치가 우람한 청년이 온탕에 몸을 담그는 게 보였다. 첨벙하고 몸을 누이니 더운 물 몇 말은 쏟아버렸으리라. 격투기나 씨름선수인 듯한 그가 물을 넘치게 한 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온수를 다시 철철 넘치도록 한참이나 새로 틀어 놓는 게 한심한 짓거리였다. 탕 안에 다시 물이 차는 동안 일전에 다급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한순간에 쓰러진 노인이 있었으니 나이 들면 보호자도 피보호자로 둔갑한다는 걸 체험했다. 관리인이 노인을 가정에 연락해 빠른 조치가 이뤄졌다고 들었다. 복지관목욕탕에서 경로우대증을 발급할 때 보호자와 연락처를 묻는 이유를 알만했다.
2) 복지관 인근에서는 심신장애자들이 자주 눈에 띈다. 따뜻한 물에 몸을 덥히고 있는데 낯선 청년 하나가 말을 걸어왔다. 그가 던지는 돌발적 질문에 가슴이 서늘했던 이유는 뉴스 특보로 들은 이야기처럼 물었기 때문이다.
“노00 대통령 죽었다면서요?”
아니, 그새 정권이 몇 번 바뀌었고 이미 역사 속 인물인데 느닷없는 확인이라니…. 몽환 속에 떨어진 듯 묘한 느낌이 덮쳤다. 아! 이런 증세의 정신지체 환자들이 더러 있구나 싶었다. 벌써 세상 떠났다며 짤막하게 이해만 시켰다. 대화를 이어갈 가치를 못 느꼈고 그가 또 어떤 질문을 던질지 난감해서 자리를 피하고 싶었다.
3) 한번은 보건소에 들렀다가 길 건너 대중탕을 알게 되었다. 사우나 개점기념 행사를 한다기에 들어갔다. 손님은 넘쳤고 시설에 비해 후한 서비스였다. 대개는 자기 몸 씻기 바빠 남남끼리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런데 웬 중년 남자가 서로 등 밀기하자고 제안해왔다. 호의가 고마워 응했더니 딸 자랑으로 함박꽃이 만발했었다. 선물 받은 샴푸라며 써보라 했다. 북적이는 인파로 답답했지만 인정 넘치는 선물샴푸로 거품을 내니 개운한 향기가 오래 남을 듯했다.
4) 신축 개업한 곳과는 달리 오래된 목욕탕은 곳곳에 엇비슷한 주의 표지가 덕지덕지 붙어있다. 미끄럼 주의, 염색 불가 같은 단문에서부터, 샤워하고 입탕하시오, 냉온탕 반복을 삼가시오, 노약자 주의 문구까지 많았다. 노령의 기초수급자가 많은 동네라 오죽 염려되면 그렇게 주의표시를 도배해 놓았을까. 잠시 머리가 핑 돌며 혼절했던 일을 한번 겪었던 나로서도 늘그막에 조심할 사람은 따로 없다는 사실을 알겠다.
나오면서
1)지상철 종점 근처에서였다. 목욕 마치고 벗어둔 속옷을 입으려는데 어떤 노옹이 들어와 인사를 건넨다. 어디선가 뵙던 분인데 먼저 알은척하니 엉겁결에 그냥 응했다. 가만히 기억을 더듬으니 수년 전 폐업한 단골 이용소 주인 어르신이 아닌가. 몰라 뵈어 죄송하다는 말끝에 내의를 뒤집어 입어셨다고 했더니 이게 바로 입은 거라며 설명을 덧붙였다.
2)어르신 얘기로는 입던 옷은 집에 벗어놓고 미리 새 옷을 뒤집어 입고 온다했다. 와서 깨끗이 씻은 다음 뒤집으면 깨끗한 옷을 새로 바르게 입을 수 있다는 것이다. 미세먼지가 지진 만큼 무서운 적이 된 세상에 씻은 몸에 깔끔한 새 옷을 입는 창의적 해결법이란 생각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3)목욕을 마치고 나온 그날, 시내 중심지 목욕탕에 불이 났었다. 창졸간에 옷도 제대로 걸치지 못하고 뛰쳐나왔을 손님을 생각하니 측은지심이 생긴다. 연기와 불길을 헤쳐 나오느라 얼마나 애가 탔을까. 평생 겪지 않아야 할 참사는 특급 호텔도 고급헬스사우나도 예외가 없다. 유행가 가사처럼 세상은 요지경인데 대중탕 역시 한바탕 요지경이 아닐는지.
8. 장미 여사/차갑희
1.노을 까페 장미 여사가 시집 한 권을 가지고 왔다. 지난주 남편의 출판 기념회가 있었다고 한다. 장미는 남편이 그녀에게 부르는 애칭임을 시집 속에서 읽어 내려갔다. 여사는 우리 가게의 재활용품을 구매하는 단골 손님이다. 실내 장식할 물건을 매의 눈으로 찾아내어 까페에 설치하여 몇 배의 효율성을 높인다. 그녀의 손을 거치면 고물은 보물로 변신하는 순간이다. 모과청이 바닥을 보이던 차 소백산 자락에서 따온 무공해 모과도 한 자루 내놓았다.
2.집에 들고 오자마자 세척하여 소쿠리에 담는다. 물기도 말릴 겸 하루동안 거실에 두었다. 은은하고 깊은 모과 향이 거실에 머물러 그녀가 다시 생각났다.
3.도마와 칼을 꺼내어 모과를 손질한다. 못생긴 것이 손질하기에도 힘들지만, 가족들의 건강에도 한 몫할 것이라는 생각에 힘을 가한다. 단단한 열매를 맺기까지 얼마나 많은 햇빛과 바람과 비를 견뎌냈을까 하는 생각에 함부로 대할 수가 없다. 아름답게 탄생한 과일들은 금방 사람들의 입속을 즐겁게 하지만 모과는 또 다른 하나의 공정이 거쳐야만 한다. 못난이의 대표로 불리어온 억울함을 호소하려는 듯이.
4.모과청 만들기는 간단하다. 중간의 단단한 속씨를 파내어 얇게 채를 썰어 설탕이나 꿀의 동량 비율로 버무려 밀봉하면 끝이다. 보통 2주만 지나면 먹을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숙성되어 더 깊은 차 맛을 낸다. 비타민 C함량이 매우 높아 여름철보다 겨울철의 감기 예방과 피로 해소에 많은 도움을 준다. 신맛의 유기산 성분은 근육을 원활하게 하여 혈액순환을 개선 시켜주기도 한다. 폐 건강을 좋게 해 가래와 잦은 기침에도 많이 도움을 준다. 단 공복에는 별로 이로움을 주지 않는 것 같다.
5.밝고 베풀기 좋아하는 장미 여사가 남편의 부도로 인해 피폐한 삶이 있는줄 누가 알았겠는가. 신용불량자로 낙인되어 노숙자로, 일용직 노무자로 남편이 객지에서 혼자 떠돌 때 그는 어린 남매를 끌어안고 있었다. 칼바람이 몰아 치던 날 말없이 집을 떠난 남편이 걱정되어 며칠동안 찾아서 두툼한 겨울옷을 전해줄 땐 어느 부부의 애틋한 사랑과 비교될 수 없다. “아버지의 일기 몇 권을 읽었다. 먼지를 뒤집어쓴 낡은 모습도, 묵묵하게 기다리면 지키고 선 모습도, ...지금 내가 누리는 쾌적한 생활은 아버지가 지옥에서 벌어온 것들이라고.” 시집 뒷 표지에는 아들의 짧은 글이 실려 있었다. “00은 누구 아들?” “아빠 아들!” 가족들이 간절히 그리워질 땐 목소리로나마 위안을 삼았던 대목엔 뜨거운 덩어리가 가슴속에서 울렁거렸다.
6.젊은 여인의 둔부를 닮은 부적리의 넓은 고분군 옆에 그녀의 까페는 자리 잡고 있다. 원룸이 즐비한 골목길을 휘둘러 지나가면 노을은 어서 오라고 손짓하는 듯했다. 까페 옆 동은 식구들이 거주하는 작은 보금자리이다. 건축도인 남편의 재능도 한몫했으리라. 재활용하는 우리 가게를 열기 몇해전부터 까페는 먼저 터를 잡았다. 어린 왕자가 문 앞에서 반겨주는 노을이 예쁜 풍경 속에 첫 발걸음을 하던날 식구들의 식사 시간이랑 겹쳐 정갈한 장미여사의 비빔밥을 맛보고 온 날도 있다. 무더운 여름날 마당에서 태양 빛을 그대로 받으며 일하고 있을 때 장미 여사는 내가 부담 가질까 지나는 길이라면서 냉커피를 한잔 건네기도 했다. 일이 바빠 얼음이 다 녹은 미지근한 커피를 마시면서 겉과 속이 한결같은 그가 더 아름다워 보였다.
7.나는 말주변머리가 없다. 손님들이 오면 정당한 댓가를 치르고 의례적으로 차를 한잔 대접하면 끝이다. 사무실 안에 있거나 마당의 널브러진 일을 정리하느라 부산한 척을 한다. 마땅히 같은 주제의 대화거리도 없거니와 솔직히 손님이 오는 것이 아직도 부담스럽다. 가게에 들어오는 물건의 질이 떨어지면 나의 잣대로 손님의 인격까지 판단 했다. 돈주고 사서 버리는데에도 돈이드는 물건이니 갖고 오지 말라고 큰소리를 내면서 다시 되돌려 보내기도 했다. 되돌린 물건은 백발백중 서너번씩이나 순환을 했다. 얼굴의 표정을 감추고 응대해야 하는데 싫은 기색은 그대로 드러나 아마츄어를 여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8.모과처럼 인고의 세월을 장미여사의 아름다움은 그냥 비춰지는게 아니었다. 날씨 이야기로 먼저 인사를 하거나 수고했다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관심받고 있음에 그들의 표정은 봄날처럼 밝았고 양심적인 거래에 주변 사람들을 소개 해주기도 했다. 진심 어린 한마디에 그들뿐 아니라 내 마음도 밝아지는 나날이다. 모과처럼 은은하고 달콤한 오래 지속되길 바라는 나는 고물상 안주인이다.
9. 인기 있는 집밥 /한외근
1. 아내는 음식으로 손님을 접대하는 것을 좋아한다. 평소에 음식 만들기를 좋아하고 집에 사람이 오는 것을 좋아했다. 집으로 초대하기도 하고 어떤 곳에는 음식을 해 가기도 한다.
2. 공동체 부서에는 호박범벅이나 약밥 등으로 해마다 간식해간다. 몇 개의 모임은 내가 유사 차례만 되면 으레껏 집에서 치른다. 집에서 모임이 사라져가는 시대의 풍속을 아랑곳하지 않는다.
3. 우리 집 베란다에 있는 내 키보다 큰 철쭉꽃이 화사하게 피는 3 월에는 꽃 사진을 카톡으로 자랑하고 꽃 보러 오라고 초대한다. 어느 날에는 콩국수 한번 먹어보자고 부르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우리 집 집밥이 인기가 좋다.
4.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리면
“철쭉꽃 안 피었어요?”
은근히 독촉도 한다.
직장의 동료들도 매년 한 번쯤은 집에서 식사를 했다. 전에 함께 일했던 직원들도 초청하여 음식을 나눈다.
5. 손님을 초대할 때는 모임 장소가 ‘시지에서 두 번째로 맛있는 식당’으로 소개된다. 초대받은 사람들의 반응은
“요즘 세상에 귀찮게 집밥 하는 집 없다” 라며 반긴다. 가족이나 친족 모임조차 외식문화로 변한 세상이어서 흔하지 않은 모습일 것이다. 어쩌면 향수 같은 것이 있어서 맛보다 분위기 때문에 좋아하리라.
6. 식사 뒤에 자리에서 일어설 때면
“맛있는 집밥 오랜만에 잘 먹었습니다”라며 인사한다. 어떤 친구는
“네가 부럽다. 아내가 음식을 맛있게 해서” 라고도 하고
“나는 몸에 좋다는 잡곡밥 얻어먹는데 20 년이나 걸렸다”고 한숨을 쉬면서 부럽다는 표정도 짓는다.
7.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도
“사모님 잘 계시죠? 하고 내 안부보다 아내 안부를 먼저 묻기도 한다. 아마 음식이 맺어준 인연 때문일 것이다 .
8. 아내는 깔끔 지향 주의자다. 음식 재료도 직접 자기 손으로 장만해야 한다. 된장과 고추장은 물론 청국장도 직접 담은 것이다. 야쿠르트도 수제품이다. 김치도 절인 배추가 아닌 생배추를 매천동 농산물시장에서 직접 구매하여 집에서 절인 것이다.
9. 봄에는 뽕나무 햇순을 딴 뽕잎 나물이 상 위에 오른다. 돛 나물이나 산나물도 직접 채취한 것을 재료로 쓴다. 육식으로 묵은지 찜이나 식사 시간과 맞추어 찐 수육에 잡곡밥을 차린다.
가을에는 무 시레기 무침이 빠지지 않는다. 심지어 견과류도 호박 씨와 해바라기 씨, 아마 씨와 같은 작은 씨앗들을 버무려 작은 강정으로 만들어 낸다.
10. 특별히 준비하는 음식은 계절에 따라 다르다. 산에서 주워 온 꿀밤 가루로 일 년 내내 묵을 만든다. 쑥떡 인절미와 모찌는 몇 차례 만들어 이웃과 수시로 나눈다.
11. 겨울철엔 누렁호박으로 범벅을 쑨다. 보통 범벅이 아니라 콩과 땅콩 및 찹쌀가루 등이 많이 들어간 영양식이다.
봄에는 청정지역 산골에서 뜯어온 쑥으로 만든 쑥국이 차려진다. 겨울 과일에는 집에서 만든 곶감이 자주 상에 오른다.
12. 설 무렵에는 시어머니에게서 배운 식혜가 특식으로 마련된다. 맛있는 가을무에 생강이며 배와 잣 등이 많이 들어가서 톡 쏘는 맛이 일품이다. 안동식혜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처음에는 반기지 않다가 몇 차례 시음한 뒤에는 먼저 찾기도 한다. 과일 대신에 먹어도 충분한 간식이다.
13. 음료수도 강황을 넣은 노란 식혜로 미리 만들어 둔다. 술꾼들을 위해서는 매운 안주로 닭발 눌림이 추가된다.
14. 옛날 시골에서 많이 먹던 음식들이 주류를 이룬다. 이런 특식을 만들 때는 나도 한몫해야 한다. 곶감을 깎거나 호박 껍질을 벗기는 힘든 작업은 나에게 주어진 과업이다.
15. 아내가 음식을 할 때 특별한 요리법은 따로 없다. 식당을 다니다가 보기 좋거나 맛있는 것들을 유심히 보아두었다가 흉내를 내거나 꼬치꼬치 조리 방법을 묻고 배운다. 또 평소에 음식과 관련된 TV 프로그램에서 참고하는 것 같다.
16. 특별한 조리 방법보다 음식을 준비하면서 정성을 들이는 게 눈에 보인다. 식기 하나에도 신경을 쓴다. 밥그릇과 국그릇을 내성 유기로 열 벌 준비했다. 숟가락과 젓가락까지 방짜유기로 맞추었다.
17. 오래전부터 우리 집은 음식을 싱겁게 먹었다. 설탕과 조미료는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묵은 매실청이나 제조해 둔 효소들로 간이나 향을 맞춘다. 사회에서 얘기하는 자연식 스타일이다.
18. 그런데도 손님들은 음식이 맛있다고 칭찬이다.
“사모님! 음식점을 차리면 돈 벌겠습니다”라고 하면, 아내는 웃으면서
“사장님이 투자하시고 맛있는 식당 한번 해 봅시다”라고 응수한다.
19. 어떤 분은 염치없게도 ‘김치가 맛있다’라며 입맛을 다시면 김치 한쪽을 꺼내 봉지에 담아주기도 한다. 호박범벅의 경우에는 집에 있는 사람 갖다 드리라며 반찬통에 담아서 준다.
20. 가끔 이틀씩 손님을 치러야 할 때가 있다. 전날 음식이 남으면 그 이튿날 다른 팀을 또 부르기 때문이다.
“어요! 뭐하노?”
“놀고 있다.”
“우리 집에 오이소.” 깜짝만남이 이루어진다. 초청하면 특별한 일이 없는 이상 달려왔다. 처음이 아니라 몇 번씩 와본 적이 있어서다.
21. 호박은 가을이면 청도에 가서 스무 덩이 정도를 구입해 놓는다. 어느 해에는 9월 햇 호박이 나올 때까지도 남아 있었다. 그것을 아는 지인들은 자기 집에 있는 것을 가져 오기도 한다.
22. 지난가을에도 지인 3명에게서 호박을 선물 받았다. 고령에서 농사짓는 친구에게서는 여러 덩이를 받아왔다. 텃밭에서 수확한 두 개 중 한 개를 들고 온 사람도 있었다. 지산동 사는 친구는 시골에서 선물 받은 것이라며 호박을 주고서는 식당에서 저녁까지 사주었다.
23. 자기들 집에 두면 썩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보다는 아내가 그 호박으로 범벅을 끓이면 이름을 써놓은 호박 주인에게
“범벅 잡수러 오세요.”
하고 초대한다. 수육도 한판 곁들인 식사 상을 마주하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24. “간단하게 범벅으로 끝내자”
라고 내가 말해도
“우예, 그래요? 식사가 되게 해야죠.”
자연히 집에서 자주 식사하게 된다.
25. 몇 날을 무리하고 몸살을 하여 입술이 당나귀 입처럼 부르튼 적이 있었다. 잇몸에 염증이 생겨 뜨겁거나 매운 음식을 먹을 때 깜짝깜짝 놀라면서도 집밥 차리기 좋아하는 것을 말릴 수 없다.
26. 집밥이 나의 몸도 피곤하게 하지만 그래도 가까운 사람 챙기기를 좋아하는 아내가 고맙다. 나도 아내가 차려주는 집밥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