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8년 이승만 대통령 탄신기념 경찰무도대회에서 송덕기옹은 경무대의 요청으로 택견시연을 보이게 된 것을 계기로 택견은 다시 대중 속에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였으나 별다른 관심을 끌지 못하였다.
송덕기 옹은 종로의 택견 명인 임호로부터 전수 받은 분이시며 오늘날 택견이 있기까지 중요한 분이시다.
그러나 택견에 대한 깊은 애착과 자부심은 있었으나 택견을 적극적으로 보급하고 체계화시키기에는 너무 연로하신 분이셨다.
송덕기 옹 이외에도 이 당시 구리개 택견의 명인 김홍식(1892 ~1985). 왕십리 살꽂다리 명인 이경천(1904 ~1985) 같은 분들이 계셨으나 역시 연로하시고 전통무예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계셨다.
더욱이 당시 택견을 지켜보았던 많은 이 땅의 지식인들도 일본무도에 길들어져 있어 춤사위 같은 택견에 아무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다행스럽게도 어려서 종조부이신 왕십리 택견의 명인 신재영으로부터
택견을 익혀 온 신한승이란 분이 계셨다.
누군가 체계화를 시켜 놓지 않으면 택견은 영영 없어질 분위기였다.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어려서 종조부이신 왕십리 택견의 명인 신재영으로부터 택견을 익혀 온 신한승이란 분이 계셨다.
신한승선생은 1960년대초부터 택견정립 작업을 시작하였다. 1970년도부터 직접 송덕기옹을 찾아가 기술을 전수 받았으며 그밖에 구리게 택견의 명인 김홍식옹과 왕십리 살꽂다리 명인 이경천옹으로부터 재차 택견의 전수를 받아 각 택견의 계보를 두루 섭렵하면서 전국을 샅샅이 뒤져가며 오늘날의 택견을 완성하였다..
"1973년 10월에 처음 충청북도 충주에
택견 전수 도장을 개설하고...."
1973년 10월에 처음 충청북도 충주에 택견 전수 도장을 개설하고 후배양성과 택견 보급에 전념하시었다.
이러한 선생의 노력으로 택견은 중요무형문화재76호로 등록이 되었으며 오늘날 자타가 공인하는 민족 전통무예로 사랑받게 된 것이다.
현재 신한승선생을 비롯하여 근세 택견의 산 증인이시던 이 분들은 모두 작고 하시고 사단법인 한국전통택견회. 사단법인 결련택견계승회. 사단법인 대한택견협회등의 단체와 정경화 예능보유자외 일부 개인적으로 전국각지의 많은 지도자들이 택견 보급 . 계승. 발전시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