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밤에 찬비를 맞으며 돌아온 우산이다. 아침에 나와 보니 거죽에 조그만 나뭇잎 두엇이 아직 젖은 채 붙어 있다.
아마 문간에 선 대추나무 가지를 스치고 들어온 때문이리라.
그러나 스친다고 나뭇잎이 왜 떨어지랴 하고 보니 벌써 누릇노릇익은 낙엽이 아닌가!
가을! 젖은 우산이 자리에서 나온 손엔 얼음처럼 찬 아침이다.
뜰에 내려 화단 앞에 서니 화단에도 구석구석에 낙엽이 보인다. 어쩐지 앵두나무가 꺼칠해졌고 살구나무도 끝가장귀들만 푸른 빛이 흔들릴 뿐, 굵은 가지들은 엉성하게 줄거리만 드러났다.
낙엽이 놓여 그런지, 눈에 선뜻 화단도 파리해졌다. 틈틈이 올려 솟는 잡초를 거의 날마다 한 움큼씩 뽑아 주었는데 그것을 잊은 지 며칠 동안 화단은 상큼하니 야워졌구나!
우썩우썩 자라던 힘이 한밤에 정지한 듯, 빛 낡은 꽃송이들은 씨를 물고 수그렸고 살내린가지 밑에는 벌레 소리만이 어지럽다.
과꽃과 코스모스가 아직 앞날을 보이나, 그들의 꽃은 워낙 가을 손님, 추풍秋風과 함께 설렁설렁 필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도 잠깐이려니 생각하면 가을꽃의 신세는 피기도 전에 서글프다.
오래 볼 것이 무엇인가?
화단을 아무리 둘러보아야 눈에 머무름이 없다. 어느새 웅긋중긋 올려 솟는 것은 단을 모은 돌멩이밖에.
돌! 나는 다시 마루로 올라와 아침 찬비에 젖는 잡석을 내려다본다. 그리고 좀 더 돌에 애착하지 못했던 것이 적이 부끄러워도 진다.
동양화에 석수도石壽圖가 생각난다. 또 동양의 선비들이 돌석자石를 사랑하여 호號에까지 흔히 석 자를 가진 것도 생각난다.
그것은 돌의 그 묵직하고 편안하고 항구한 성품을 동경한 때문이리라. 생각하면 돌은 동양인의 놀라운 발견이다. 돌을 그리고 돌을 바라보고 이름까지 즐겨 돌로 부른 동양 예술가들의 심경은, 찰나적인 육체에 붓들인 서양인의 그것에 비겨 얼마나 차이 있는 존경 할 것이오!
돌!
가을 아침 우연히 비 맞는 잡석을 보며 돌을 사랑한 우리 선인들의 청담고박淸淡枯朴한 심경을 사모하다.
첫댓글 놀라운 관찰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