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누아투
위치: 남서태평양 솔로몬제도와 뉴질랜드 사이
인구: 325,482명 (2023년 추계)
수도: 포트빌라
면적: 12,190㎢ 세계면적순위
공식명칭: 바누아투 공화국 (Republic Of Vanuatu)
기후: 열대성기후
민족 구성: 멜라네시아인(90%)
언어: 영어,프랑스어
정부/의회형태: 공화제 / 단원제
종교: 장로교(31%), 성공회(13%), 로마가톨릭
화폐: 바투 (Vt)
대륙: 오세아니아
국가번호: 678
GDP: USD 957,000,000
인구밀도: 25명/㎢
전압: 220V, 240V / 50Hz
도메인: .vu
바누아투과 한국의 관계
▶ 외교
▶ 경제·통상·주요 협정
▶ 문화교류·교민 현황
요약
태평양 남서부에 있는 13개의 주요섬과 여러 작은 섬들로 열도를 형성하고 있는 공화국. 수도는 포트빌라이며 국민의 약 90%가 멜라네시아인이다. 출생률과 사망률이 높으며 국민의 약 45%가 15세 미만이다. 주로 농업, 목축업, 어업에 기반을 둔 자유시장 경제체제로 직접세가 없기 때문에 금융 줌심지가 되고 있다. 관광업이 또한 점차 중요한 외화 수입원으로 작용하고 있다. 피지에서 800km 서쪽, 오스트레일리아에서 1,800km 동쪽에 있으며. 섬들은 일정하지 않은 Y자 형태로 남북으로 650km에 걸쳐 뻗어 있다.
여기에는 뱅크스 제도(바누아라바·가우아[산타 마리아]·모타·모타라바), 에스피리투산토, 말로, 아오바, 마에워, 팡트코트(펜티코스트), 말라쿨라, 암브림, 에피, 에파테, 에로망고, 타나, 아나톰 등이 속한다. 수도는 본도인 에파테에 있는 빌라(포트빌라)이다.
자연환경
험준한 산맥과 높은 고원에서부터 해안단구지대, 연안 산호초 및 완만한 구릉과 낮은 고원에 이르기까지 기복이 심한 것이 이 섬들의 특징이다.
토양은 퇴적성 산호 석회암과 화산암으로 이루어졌으며, 지진이 잦은 것을 보면 지각이 불안정함을 알 수 있고 뱅크스 제도와 탄나·로페비·암브림과 같은 몇 개 섬에는 활화산이 있다. 최고봉은 1,879m의 타브웨마사나 산으로 면적 3,680㎢의 가장 큰 섬인 에스피리투산토 섬에 있다.
기후는 열대해양성으로 5∼10월에는 남동 무역풍이 불어 온화하다. 다른 기간중에는 바람의 변화가 심하며 태풍이 불기도 한다. 1987년 바누아투는 전국의 주택 대부분을 파괴하거나 손상을 입힌 사상 최악의 사이클론으로 폐허가 되었다. 연강수량은 남부가 약 2,000㎜, 북부가 약 4,000㎜로 차이가 심하다. 열도 중간 지점에 있는 에파테의 빌라는 평균기온이 22∼27℃이다.
모든 섬에는 숲이 우거져 있으며, 고지대의 열대성 우림은 키가 큰 나무들과 무성하게 자란 양치류, 덩굴식물, 난초류들로 이루어진다. 에로망고·타나 등의 남부 섬들에는 군데군데 훤히 트인 목초지가 있으며, 말라쿨라와 에파테의 해안지대에는 홍수림지대가 펼쳐져 있다. 유럽인들이 들어오기 전에는 박쥐와 쥐, 야생돼지와 같은 포유동물들이 있었다. 비둘기와 앵무새, 꿀빨이새, 지빠귀 및 흰집칼새류 등의 수많은 조류가 서식하고 있다.
국민
니바누아투라는 원주민들 가운데는 멜라네시아인들이 압도적으로 많으나 유럽인들과 중국인·베트남인·폴리네시아인·미크로네시아인들도 소수 섞여 있다. 원주민 대부분은 농촌지역에서 살고 있는데, 인구가 가장 많이 모여 사는 빌라와 에스피리투산토 섬에 있는 루간빌이 2개의 주요도시이다.
인구증가율은 1970년대 3%대에서 2000년대 2%대로 하락했지만 총 인구는 꾸준히 증가해, 1970년 76,200명에서 2023년 추산 32만 5,482명으로 올랐다. 인구밀도는 25명/㎢이다. 전체 인구의 36%가 15세 미만이며, 26.44%가 도시 지역에 거주하고 있다.
언어
많은 멜라네시아어군에 속하는 언어와 방언들을 사용하는데, 대부분 피지어·누벨칼레도니어와 관계가 있다. 국어는 영어에 기초를 두고 있는 멜라네시아 혼합어인 비슬라마어인데, 이는 국제혼성어로 바누아투 국회에서 회의할 때 사용된다. 비슬라마어· 영어· 프랑스어가 공용어이다.
문화
문화적으로는 파푸아뉴기니의 영향도 받았으며, 전통적인 부족 문화도 이 나라에 강하게 남아있다. 영국과 프랑스의 공동 식민 지배의 영향으로 다른 오세아니아 국가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문화도 약간 있다. 교육은 주로 영어와 프랑스어로 한다. 초등교육은 거의 모든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실시하며 중등학교도 많이 있고, 실업전문 교육기관과 사범대학도 있다. 주간신문사와 라디오 방송국이 하나씩 있는데, 모두 빌라 외곽에 있다.
역사
현재 바누아투를 이루고 있는 북부 섬 대부분에는 적어도 3,000년 전부터 멜라네시아인들이 거주해왔다(→ 멜라네시아 지리적 인종). 방사성 탄소를 사용하여 남부 섬에서의 절대 거주연대를 측정한 결과, BC 420년경에 타나 섬에 사람들이 거주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1606년 포르투갈의 해양탐험가 페드루 페르난데스 데 키로스가 이곳을 처음으로 발견했고, 그후 프랑스의 탐험가 루이 드 부갱빌이 재발견했으며(1768), 제임스 쿡 선장이 스코틀랜드의 헤브리디스 제도를 따서 명명하고 지도를 만들었다(1774).
19세기 중반에 백단향 판매상들과 유럽 선교사들이 들어왔으며 그후 1868년경 주로 영국과 프랑스의 목화 재배업자들이 들어왔다. 영국과 프랑스 간의 이권다툼은 이 제도를 관리하기 위해 합동해군단을 창설함으로써 해소되었다(1887). 1906년 양국은 공동통치 정부를 세우기로 합의했다.
영국과 프랑스는 고등판무관을 임명하여 공동통치 정부의 수도였으며 지금은 바누아투 공화국 수도인 에파테의 빌라에 상주하던 판무관들을 통해 권한을 행사하게 했다. 이러한 공동통치는 멜라네시아 원주민들을 대상으로 했으나 1914년의 의정서(1922 승인)에 따라 양국은 자국교포들에 대한 책임을 갖게 되었다. 이 제도는 제2차 세계대전중 일본의 침략을 모면했으며 연합군의 주요기지가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토지소유권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면서 지방정치가 시작되었는데, 그당시 뉴헤브리디스 영토 중 1/3 이상을 외국인들이 소유하고 있었다. 지역별로 정당이 세워진 뒤 대표제의회(1974∼77)를 구성했으나 곧 해체되었다. 영국과 프랑스, 뉴헤브리디스 대표들이 참석한 1977년의 파리 회담에서 독립에 합의한 뒤 1979년에 선거를 치르고 헌법을 제정했다.
1980년 중반 나그리아멜당(黨) 지도자 지미 스티븐스는 이 제도 나머지 지역으로부터 에스피리투산토 섬을 독립국가로 세우려고 했으나 실패했다. 뉴헤브리디스는 1980년 7월 30일 '조국이여 영원하라'라는 뜻의 바누아투 공화국으로 독립하게 되었다.
종교
주민들은 주로 장로교나 영국국교, 로마 가톨릭교 등을 믿는 그리스도교도들이다. 주민 중 일부는 전통적인 종교 관습을 추종하고 있으며, 특히 타나에는 존 프럼의 적하숭배를 믿는 사람들도 있다.
바누아투과 한국의 관계
외교
바누아투는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동시 수교국이다. 1980년부터 1991년까지 친소 성향의 사회주의체제였기 때문에 소련과도 친했다. 소련이 망한 이후, 소련에서 러시아로 된 이후에도 여전히 외교 관계가 존재한다.
경제·통상·주요 협정
현재: 경제·통상·주요 협정/ 없음
문화교류·교민 현황
현재: 문화교류·교민 현황/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