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야구의 4대 전국대회라면 대통령배, 청룡기, 봉황기, 황금사자기를 가리킵니다. 한국전쟁 전에 창설된 청룡기, 황금사자기에 이어 1967년 대통령배, 1971년 봉황기가 창설되면서 30년이 넘게 고교야구의 산실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 기간 동안 많은 팀들이 우승, 준우승에 웃고 울었지만 이 4개 대회를 모두 한 번 이상 제패한 팀은 단 6개 뿐입니다. 경북고, 광주일고, 대구상원고, 광주동성고, 군산상고, 천안북일고가 영광의 주인공입니다.
반면 특정 대회와 계속 인연을 맺지 못한 팀들이 부지기수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다른 대회에서는 모두 우승을 해 봤지만 한 대회에서만 준우승에 머무는 징크스입니다. 그들의 면모를 알아 볼까요.
부산고는 창단 이래 지금까지 대통령배 6번, 청룡기와 봉황기 각각 3번씩 모두 12차례 우승을 했습니다. 그러나 황금사자기에서는 4번 결승에 올라 모두 준우승에 그쳤습니다. 1965, 1966년 연이어 준우승을 했고, 1972년은 군산상고에 '역전의 명수'라는 별칭을 안기며 패했습니다. 그리고 1992년... 손민한, 주형광 원투 펀치에 든든한 안방마님 진갑용이 버틴 부산고는 대통령배에서 우승을 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대회인 황금사자기에서 당대 최강인 배명고에 패하고 맙니다. 이후 지금까지 황금사자기 결승과는 인연이 없습니다.
부산 지역 5개 학교 중 야구부의 역사가 가장 긴 개성고(옛 부산상고)는 1980년 이전까지 청룡기 2번, 봉황기와 황금사자기에서 각각 1번씩 우승했습니다. 그러나 윤학길이 에이스였던 1979년 대통령배 결승에서 선린상고를 만나 15대 1이라는 기록적인 점수차로 패했으며 이후 중앙 무대 결승에 오르기까지 20년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우승 회수로는 경북고에 이어 역대 2위인 경남고. 청룡기 6번, 봉황기 2번, 황금사자기 6번으로 화려합니다. 그러나 유독 대통령배에서는 맥을 추지 못했으니... 1973년에 첫번째 준우승, 김선일, 이종운이 활약한 1984년에는 그 해 최강인 서울고에 패배, 1986년에는 군산상고에 눌렸고(당시 군산상 에이스 조규제), 1992년에는 부산고, 1998년에는 경남상고 등 동향 팀들에 잇다라 우승기를 내줬습니다. 경남고는 봉황기도 98년에야 처음으로 우승을 하는 등 역사가 길지 않은 대회와는 그리 인연이 없어 보입니다.
대전의 유일한 팀인 대전고는 1987년 구대성의 활약으로 청룡기 우승을 차지한 후 1990년 안희봉을 앞세워 봉황기를, 1994년 김병준, 오창선 원투펀치를 바탕으로 대통령배를 차지했습니다. 안타깝게도 황금사자기는 아직 결승에 오른 적이 없습니다. 지역예선이 없는 데에 따른 경쟁력 저하로 최근에 뚜렷한 성적을 내지 못하고 있어 앞으로도 전망이 어두운 편입니다.
인천고는 2000년 이전까지는 청룡기, 황금사자기에서 각각 2번 우승한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러다가 2004년 대통령배를 제패하게 되죠. 다만 봉황기에서 아직 우승 기록이 없습니다. 1979년 최계훈이 에이스였던 시절 광주상고(동성고)를 결승에서 만났으나 상대 팀 에이스 윤여국(현 모교 감독)에 눌렸고, 이근용과 김수경을 앞세운 1996년에는 정대현이 마운드를 지킨 군산상고에 패했습니다.
중앙 무대 통산 8회 우승에 빛나는 동산고는 70년대 이전 청룡기를 5차례 제패한 데 이어 봉황기 1번, 황금사자기 2번 우승의 전과를 올렸고 올해 다시 청룡기에서 우승했습니다. 그러나 대통령배에서는 결승에 한 번도 올라가지 못했습니다.
1980년에 창단해 역사가 그리 길지 않은 덕수정보산업고. 상당히 빠른 편인 1986년 청룡기를 제패한 것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6번 우승했습니다. 청룡기 2번, 봉황기 1번, 황금사자기 3번... 그러나 대통령배에서는 작년에 처음으로 결승에 올라 우승을 바라보았으나 인천고에 밀려 아쉽게 준우승에 머물렀습니다.
서울고의 최전성기는 김동수, 임형석이 활약한 1984, 1985년입니다. 대통령배는 연속 우승을 했고 청룡기는 85년, 봉황기는 84년에 가져갔습니다. 첫 우승은 1978년 봉황기였습니다. 아쉽게도 황금사자기에서는 1차례 준우승(1978년)에 머물렀습니다.
선린상고의 역사를 잇는 선린인터넷고. 통산 8번 우승했지만 준우승은 이를 훨씬 뛰어넘는 14번입니다. 대통령배, 청룡기에서 2번, 황금사자기에서 4번을 우승했지만 유난히 봉황기와는 인연이 닿지 않아 5번 준우승에 머물렀습니다. 1976년, 1978년 잇다라 준우승한 선린은 1981년 전년도 2관왕의 기세를 이어갈 듯 했지만 초반부터 삐긋했고, 숙명의 라이벌 경북고와의 두 차례 결승전에서 모두 패했습니다. 특히 봉황기 결승에서 박노준의 부상은 정말 안타까운 일이었죠. 이후 2차례 더 봉황기 결승에 오르지만 모두 좌절했습니다. 이영우가 중심 타선을 이끌던 1991년에는 신일고의 화력에 눌려 12대 1로 대패했고, 경헌호와 최경훈이 마운드를 이끈 1995년에는 박명환, 장성호가 버틴 충암고에 패했습니다.
올해로 창단 30주년을 맞은 신일고는 서울 지역 학교 중 유일하게 우승 회수가 10회를 넘습니다. 그런데 우승 회수를 잘 보면 황금사자기에서 무려 8번을 우승한 반면 청룡기 1번, 봉황기 2번으로 편식이 심하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첫 대회인 대통령배에서는 유난히 약해 2번 결승에 올라 모두 준우승을 했습니다. 1989년에는 김경원이 에이스였던 동대문상고(현 청원고로 야구부 이관)에 패했고, 올해 두번째로 결승에 올라서는 동성고에 밀렸습니다.
신일, 덕수와 더불어 서울 지역 고교야구의 신흥 명문인 충암고는 지금까지 모두 5번(대통령배 1번, 봉황기 3번, 황금사자기 1번) 우승을 했으나 청룡기에서는 아직 결승에 오른 적이 없습니다. 지난 몇 년간 팀 분위기가 많이 저하되어 전학하는 선수가 속출했으나 올해 안정을 찾았으니 내년을 기대해 볼 만 합니다.
1907년 창단한 오랜 역사를 지닌 휘문고는 1980년대까지는 정말 별 볼 일 없는 팀이었으나 임선동이라는 거물이 배출되면서 전력이 상승하기 시작했습니다. 임선동이 1학년이었던 1989년 창단 이래 처음으로 결승에 올라 동산고를 상대했습니다. 강타자였던 박정혁*(작고)을 앞세운 휘문의 창이냐, 위재영이 버틴 동산의 방패냐 하는 관심 속에 치러진 결승은 동산고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이후 휘문고는 봉황기와는 인연을 맺지 못한 반면 1994년 청룡기 우승으로 싱동을 걸며 대통령배 1번, 청룡기 2번, 황금사자기 1번의 우승을 보탭니다.
* 당시 3학년이었던 박정혁은 고교야구 최고의 강타자였습니다. 봉황기 16강전에서 공주고 1학년이었던 박찬호에게 3연타석 홈런을 뽑아내는 등 최고의 스타로 꼽혔죠. 그러나 고려대 진학 후 선배(신일고 출신 K모 포수)에게 체벌을 당하면서 몸이 상해 야구를 포기하게 됩니다. 졸업 후 LG에 연습생으로 입단해 재기 의욕을 불태우기도 했으나 결국 실패했고, 이후 개인 사업을 하다가 교통사고로 사망했습니다.
첫댓글 야구학교에서 스크랩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