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보커터(Provocateur)
provoke
1. (특정한) 반응을 유발하다
2. 화나게[짜증나게] 하다, 도발하다
프로보커터(provocateur)는 도발하는(provoke) 사람이라는 뜻으로, 주로 소셜미디어를 서식처 삼는다. 이들은 막말·혐오 발언·음모론·가짜뉴스·‘개소리’로 무장하고 정치 권력자·이념·유명인·사회 이슈 등에 대해 가리지 않고 발언한다. 표나게 정치 성향을 드러내면서 좌우 어느 진영을 표방하기도 하지만 프로보커터에게 정치 이념은 자신의 도발을 장식해주는 명분에 지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우익 프로보커터의 본고장인 미국에서도 이들을 ‘강력하게 주장한다’는 뜻의 ‘애지테이터 (Agitator)’라고 총칭하지 정치적인 의미를 띤 포퓰리스트·프로파간디스트·이데올로그라는 말은 절대 붙이지 않는다. 이들이 상연한 추태와 이들이 대외적으로 언급하는 세계관·정치관 사이에는 아무런 연관이 없기 때문이다. “이들의 목적은 공론장에서 혼란을 일으키는 것과 조회수뿐이다.”
7쪽
도가 지나친 욕설과 스턴트로 관심을 추구하는 것은 조회수 자체가 돈이요 영향력인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관종은 더 이상 멸칭이 아니라 과거와 구별되는 현대인의 특징으로 거론된다. 자연히 ‘나쁜 관종’과 ‘좋은 관종’을 구별해야 한다는 논의가 나오기 시작했다. 예컨대 <관종의 조건>(임홍택, 2021)은 ‘좋은 관종’이 되기 위한 지침서라고 할 수 있다.
8쪽
이런 사람들은 문화 현상에 대해서 이야기하지만 문화평론가로 불리지 않고, 정치 이야기를 하지만 정치평론가로 불리지 않는다. 대중 강연과 거리 연설에서도 곧잘 나서지만 운동가로 불리지 않는다. 이들은 어떤 신념이나 가치를 설파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들은 아무런 내용 없이 ‘어그로’를 끄는 것만으로 커리어를 쌓아간다. 영미권의 언론에서는 이들을 ‘프로보커터 provocateur’, 우리말로 ‘도발자’라고 일컫는다.
☆ 어그로(aggro) : 폭력, 관심을 끌기 위해 자극적인 행동이나 글을 올리는 것을 의미
☆ aggravation(악오름), aggression(공격성)
☆ 트롤(troll) : 인터넷 커뮤니티에 주제에 벗어나거나 불쾌하고, 선동적인 글을 올리는 사람
☆ 트롤링(trolling) : 인터넷 용어로서 관심끌기, 관심유발, 화나게 하기 등 이런 일을 일부러 하는 걸 말하며 오히려 즐기는 걸 뜻한다. 누군가를 화나게 할 의도로 인터넷에서 모욕적인 언행을 하는 것.
☆ 페도파일(pedophile) : '페도필리아에 해당하는 성애가 있는 사람
☆ 페도필리아(pedophilia) : 소아성도착증(小兒性愛症 혹은 어린이성애증). 사춘기 이전의 아이에게 강렬한 성적 욕망을 느끼는 것.
아모스 이는 하늘에서 떨어진 별종이 아니라 시대의 산물이다.
주목과 관심에 환금성이 부여되는 주목경제 attention economy의 시대, 조회수에 자아를 동기화하는 관종의 시대, 좋아요와 구독자를 늘리기 위해 상상 밖의 추태를 불사하고 사회적 금도를 넘나드는 무질서의 시대가 그것이다. - Cinema Paradiso
26쪽-27쪽
아모스 이는 하늘에서 떨어진 별종이 아니라 시대의 산물이다. 주목과 관심에 환금성이 부여되는 주목경제(Attention Economy)의 시대, 조회수에 자아를 동기화하는 관종의 시대, ‘좋아요’와 ‘구독자’를 늘리기 위해 상상 밖의 추태를 불사하고 사회적 금도를 넘나드는 무질서의 시대가 그것이다. 지금부터는 이 시대에 작동하는 문화정치적 몇몇 원리를 들여다볼 것이다. 나아가 기민하고 기막힌 적응력으로 이 난세의 공론장을 오염시키고 있는 한국과 영미권의 아모스 이들, 요컨대 ‘관종 스피커’들의 양태를 비평하고자 한다.
41쪽
‘무플보다 악플이 낫다’는 표현은 대중적 인기로 성패가 결정되는 연예인과 정치인에게나 어울리는 말이었다. 정치인들 사이에서는 ‘부고란만 아니면 무조건 언론에 나오는 것이 좋다’는 우스개가 있을 정도다. 그러나 소셜미디어가 전 인류를 ‘네트워킹’ 하면서 이제는 만인에게 무플보다 악플이 나은 시대가 되었다.
56쪽-59쪽
‘선 넘기’, 즉 위반의 문화정치는 본래 좌파의 전략이다. 사드 후작과 프리드리히 니체, 미셸 푸코는 정상-비정상 혹은 합리성-비합리성의 경계를 긋는 지식과 도덕에는 권력이 작용한다는 것을 일찍부터 알았다. 나아가 이들은 통념과 금기에 대한 전복과 위반을 저항의 미덕으로 축복한 바 있다. […] 이렇듯 좌파의 문화정치 전략이었던 ‘선 넘기’, 위반의 미학은 주목경제 시대에 이르러 하나의 장사 수완이 되었다. 나아가 이제는 극우 진영의 주효한 전략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70쪽
사유는 고된 일이다. 사유를 남이 대신해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동안 다른 재미있는 일을 하거나 한 푼이라도 더 벌 수 있을 테니 말이다. 현대인은 사실상 모든 것을 남에게 맡길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다. ‘먹방’은 양질의 식사를 남이 대신해주는 것과 다름없다. ‘겜방’(게임방송)은 놀이를 대신해주는 것이다. 실제로 비디오게임을 직접 즐기지 않고 겜방 시청으로 만족하는 사람이 늘면서 게임 업계의 고민이 크다고 한다. 심지어 짤막한 리뷰 영상을 보는 것으로 영화 관람을 대신하는 사람도 있다. 여행 방송은 말할 것도 없고, 특히 대중이 시사 비평 유튜브 방송을 소비하는 양상은 ‘사유의 외주화’의 전형을 웅변한다.
74쪽
정치 유튜버들은 대체로 항상 분노하고 있다. 이들은 시사를 단순화하는 것을 넘어서 문제의 원인을 의인화해 그들에 대한 공격을 선동한다. 문제의 원인이 어떤 추상적인 구조에 있는 게 아니라 몇몇 인물이나 특정 집단에 있다는 진단은, 그들만 사라지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간편한 처방으로 이어진다. 공식은 명쾌할수록 대중에게 강한 호소력을 갖는다. 그에 맞춰 이들이 카메라 앞에서 상연하는 분노와 격동하는 감정은 스펀지에 잉크가 스미듯 시청자에게 손쉽게 전이된다. 실시간으로 쏟아지는 댓글은 이를 더 증폭시킨다. 시청자는 그렇게 전이된 감정을 스스로 발아한 감정으로 착각한다. 유튜브를 통해 감정이 학습되는 것이다.
95쪽
이렇듯 밈은 손쉬운 시사 비평을 위한 템플릿으로 곧잘 활용된다. 몇 초간 밈의 캡션을 읽는 것만으로 당대 쟁점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복잡하고 긴 글을 독해할 필요가 없다. 밈 하나면 해당 이슈에서 어떤 입장을 취할지 판단이 선다. 시청자가 구독하고 지지하는 사람이 올리는 밈이라면 더 고민할 것도 없다. 그 밈에 자신의 입장을 동기화하면 되는 것이다. 즉 사유의 외주화가 ‘사유의 밈화’로도 이어지고 있다고 하겠다.
126쪽-127쪽
그는 자신이 비난하는 대상이 최대한 언짢게끔 최선을 다한다. 참다못한 상대는 마침내 발끈하고, 그것이 미디어를 통해 노출된다. 이를 ‘사이다’라고 느낀 사람들의 지지와 후원이 이어진다. 이렇듯 ①‘싸가지 없는’ 발언으로 상대를 도발한다. ②이에 격동한 상대를 ‘적’으로 만든다. ③적의 적은 나의 친구, 자연스럽게 ‘우리 편’ 추종자를 확보한다. 이것이 그의 전략의 핵심이다. 요컨대 그를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논객으로 만든 것은 지식인으로서의 어젠다가 아니라 퍼포먼스 능력이다.
164쪽
〈나꼼수〉의 기능은 이미 존재하는 민주당 지지자들을 동원하고 결집하는 데 머물렀고, 반대 진영 설득에는 관심이 없었다. 다시 말해 〈나꼼수〉의 토대는 정치 종족주의(tribalism)였다. 김어준과 종족주의는 낯선 조합이 아니다. 그가 진보·보수 성향은 학습된 가치관이 아니라 타고난 기질이라고 주장하면서 양자의 뇌 구조 자체가 다를 것이라고 짐작한 바 있음을 상기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