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시 킹스 인트로
집시 킹스는 아마도 현존하는 '월드 뮤직' 아티스트들 가운데 가장 상업적으로 성공한 케이스일 것이다. 1987년에 발표한 "Bamboleo"는 '히트 싱글'이라고 할만큼 높은 판매고를 기록했고 이 곡이 실린 데뷔 앨범은 '플래티넘 레코드'를 기록했으니까.... 이제까지 그들의 앨범 판매고는 1,400만장에 이르고 이 가운데 팝 음악의 본고장인 미국에서 판매된 것도 400만장에 이른다.
집시 킹스의 고향은 프랑스 남부의 알르(Arles)와 몽뻴리에(Montpelier)의 집시 거주촌이다. 현재 이들의 멤버는 7명인데 그 가운데 4명은 레예(Reyes) 가문 출신이고 나머지 3명은 발리아르도(Bliardo) 가문 출신이다. 집시들의 '족내혼' 전통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물론 스스로 원해서 그랬다기보다는 다른 사람들이 집시들을 경멸하고 무시했기 때문에 발생한 현상에 가깝지만...
평단에서는 이들의 음악을 '플라멩꼬 록'이라고 부르지만 이들 스스로는 '룸바 플라멩꼬'라고 부르기를 좋아한다. 양쪽 모두에 '플라멩꼬'라는 음악이 들어가니 이들의 음악이 플라멩꼬에 속한다고 생각하면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따져 보면 이상하다. 프랑스인인 이들이 '플라멩꼬'와 '록'과 '룸바'가 뒤섞인 음악을 연주하다니.... 룸바는 '쿠바 음악'이라고 알고 있고 쿠바 음악 가운데서도 아프리카의 기원이 강한 음악이다. 또한 플라멩꼬는 기본적으로 '스페인의 음악'으로 알려진 음악이다. 이들 음악의 '국적 불명'은 정도가 심하다.
집시들이란 본래 국적이 불명한 존재들이다. 게다가 집시 킹스의 음악은 너무 '팝적'이라는 비판도 듣고 있다. 조금 심한 표현이지만 "주식 브로커의 커피 테이블을 위한 음악", "집시 음악의 배리 매닐로우"라는 것이 그들에 대한 비판의 요지다. 말하자면 플라멩꼬를 '중도적(middle-od-the-road)'이고 '이지 리스닝(easy listening)'하게 만들었다는 이야기다. 그러니 이제 진짜 플라멩꼬를 찾아가 보자. 그렇다면 진짜 플라멩꼬는 어떤 것일까. 일단 피레네 산맥을 넘어서 이베리아 반도로 가 보자.
안달루시아와 플라멩꼬의 소사
19세기 초 스페인을 침략한 나폴레옹은 "피레네 산맥을 넘으면 아프리카다"라고 말했다. 나폴레옹은 스페인을 '유럽'이라고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그 이유는 스페인이 중세 때 무어인의 지배를 받아 이슬람 왕국을 건설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슬람교를 믿는 북아프리카인 무어인이 이베리아 반도를 침공한 것이 711년이고, 기독교인들이 국토탈환운동, 이른바 레꽁끼스따(reconquista) 운동을 벌여 이슬람 왕국의 거점이었던 그라나다를 함락한 것이 1492년이다. 그러니 거의 800년 가까이 이슬람 문화권의 지배를 받은 셈이다.
1492년은 컬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해이기도 하다. 이후 근대의 역사에서 스페인은 아메리카와 아프리카 등지에 식민지를 개척하여 세계를 지배하는 거대한 제국을 건설한 일이 있다. 그렇지만 이후 식민지를 서서히 상실하면서 국력이 쇠퇴해 갔고, 20세기에는 악명 높은 스페인 내전을 치러야 했다. 1939년부터 3년에 걸쳐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벌인 뒤 프란시스코 프랑코가 스페인의 독재자가 되어 죽을 때까지 집권했다. 민주화가 이루어진 것이 1975년이니 이제 겨우 4반세기가 조금 더 지났을 뿐이다.
이상 수박 겉핥기 식으로 스페인과 이베리아 반도의 역사를 훑어보았지만 한 가지 언급할 것이 남아 있다. 다름 아니라 이곳의 지리다. 먼저 포르투갈이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한 것은 스페인은 끼스띠야, 갈리시아, 바스크, 카탈루냐, 안달루시아 등 성격이 다른 지역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들 사이에는 언어와 문화가 달라서 요즘도 심심찮게 독립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이들 지역은 단지 '지방'이 아니라 '나라'라고 불러야 적절할지도 모른다.
이상의 정보를 통해 이제 플라멩꼬에 접근해 보자. 간단히 말해서 플라멩꼬는 스페인 남부인 안달루시아의 음악이다. 안달루시아는 꼬르도바(Cordova), 세빌리아(Sevilla), 까디즈(Cadiz) 세 도시에 둘러싸인 삼각형 모양의 지역이다. 안달루시아가 지리적 위치 상 이슬람 문화권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것은 자연스럽다. 안달루시아라는 명칭 자체가 무어인들이 이 지역을 알 안달루스(Al-Andalus)라고 부른 것에서 유래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렇지만 플라멩꼬의 기원을 설명할 때는 무어인보다는 집시가 등장해야 한다. 집시들은 인도로부터 출발하여 12세기부터 방랑을 시작했는데 중부 유럽을 거쳐 15세기말에는 스페인까지 도달했다. 앞서 기독교도들이 그라나다를 탈환하고 컬럼버스가 아메리카를 발견할 무렵이다. 그들 고유의 풍습과 더불어 '오리엔털' 느낌이 나는 음악을 가져온 것이 바로 이 집시들이다. 집시들은 정부의 특별 관리를 받아 다른 시민들과는 격리되어 거주했다. 이들의 직업은 농부, 광부, 대장장이 같은 단순노무직이었다. 그래서 이 시기의 플라멩꼬는 집시들의 집안에서 연주되거나 아니면 광산이나 대장간에서 '노동요'가 되었다. 그래서 이때의 플라멩꼬는 무반주 노래였다. 리듬이라고 해 봐야 손뼉을 치면서 장단을 맞추는 정도였다. 요즘도 플라멩꼬에서 손뼉(hand clapping) 소리가 자주 들리는 것은 이때의 전통이 계승된 것이다.
상황이 바뀐 것은 18세기 중반 집시들이 다른 스페인 시민들과 동등한 법적 권리를 인정받으면서부터다. 이때부터 기타가 반주 악기로 추가되었고 춤이 동반되었다. 플라멩꼬의 3대 요소를 '노래(el cante), 춤(el baile), 기타(el toque)'라고 부르는 관행이 이때부터 정착된 것이다. 또한 안달루시아의 다른 민속음악과 융합되는 일도 빈번해졌다. 판당고(fandango), 불레리아스(bulerias), 알레그리아스(alegrias) 같이 플라멩꼬에 비해 가벼운 느낌의 스페인 음악(및 무용)들이 플라멩꼬에 섞여 들어왔고 또 섞여 들어갔다.
그런데 어디에서 누구에게 연주했는가. 처음에는 부유한 후원자들이 악사들을 고용해서 파티에서 연주하게 하는 일이 출발이었다. 그리고 '까훼스 깐딴떼스(cafes cantantes)'라는 곳이 탄생했다. 번역하면 '노래 카페', '음악 카페' 정도 될 것이다. 한 자료에 의하면 플라멩꼬의 '황금기'를 1869년부터 1910년으로 잡는다. 이 기간은 까훼스 깐딴떼스의 흥망성쇠의 기간과 일치한다. 이때부터 플라멩꼬를 연주하는 사람들이 '직업적 아티스트'가 되었다.
까훼스 깐딴떼스에서 연주하는 그룹은 통상 한두 명의 가수, 서너 명의 여자와 두 명의 남자 무용수, 그리고 두 기타리스트로 구성되었다고 한다. 가수가 가장 중요한 존재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기타리스트의 역할이 중요해졌고 기타리스트들 사이의 경쟁도 치열했다. 스페인이 오늘날 기타의 왕국이 된 데는 이때의 경험이 가장 중요하다. 라몬 몬토야(1880~1994)라는 플라멩꼬 기타의 현대적 주법이 '창시자'가 탄생했다. 플라멩꼬 기타에 대해서는 조금 있다 이야기하자.
정리하면 19세기를 거쳐 20세기초에 이르면 플라멩꼬는 안달루시아의 민속문화를 넘어 예술형식이 되었다. 그 다음 순서는? '상업화'와 '제도화'다. 1910년대에 이르면 까훼스 깐딴떼스가 급격히 쇠퇴했다. 1920년대를 지나 1930년대에 접어들면 오페라 플라망카(opera flamanca)나 플라멩꼬 발레(flamenco ballet)같은 '연극적 형태'의 플라멩꼬가 탄생하고, 가수들도 부드러운 목소리의 달콤한 노래를 불렀다. 1940년대는 내전의 뒤끝이자 2차 대전의 발발로 별다른 발전이 없었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가 '진짜' 플라멩꼬라고 간주하는 음악들은 1955년대 이후 몇몇 사람들이 플라멩꼬의 전통을 재발견하려고 시도하면서부터 만들어진 것이다. 이때 이후가 '플라멩꼬 르네상스'의 시기다. 플라멩꼬의 부활을 이끈 대표적인 인물은 안또니오 마이레나(Antonio Mairea)다. 그의 휘하에서 호세 메네세(Jose Menese), 엔리께 모렌테(Enrique Morente), 포스포리또(Fosforito), 엘 초콜라떼(El Chocolate) 등이 탄생했다. 1960~70년대에는 플라멩꼬 페스티벌이 여러 차례 열리면서 플라멩꼬를 대중에 알리고 새로운 아티스트를 발굴하게 되었다. 지난 번 음반 리뷰에서 소개한 까르멘 리나레스도 1970년에 경력을 시작한 플라멩꼬 디바다.
플라멩꼬 기타 그리 빠꼬 델 루씨아
이제까지 플라멩꼬의 '가수'를 중심으로 논했지만 플라멩꼬 기타에 대해 언급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먼저 스페인이 기타의 왕국이라는 사실을 강조해 둘 필요가 있다. 20세기 이후 기타라는 악기가 세계 각지에 보편화되었고 특히 영미의 대중음악과 관련해서 급격히 발전했지만 '클래식 기타'의 경우 스페인은아직까지도 세계 정상의 지위에 있다. 단적인 예로 페르난도 소르(Ferrnando Sor), 프란체스카 타레가(Francisco Tarrega Eixea), 안드레스 세고비아(Andres Segovia), 호아퀸 로드리고(Joaquin Rodrigo) 등 시대를 달리 하는 기타의 거장들이 모두 스페인 출신이다.
플라멩꼬 기타는 클래식 기타와는 또 다르다. 플라멩꼬 기타는 19세기 중반에 악기의 형태와 주법이 확립되었는데, 시기적으로 클래식 기타와 비슷하다. 그 주역은 안또니오 드 또레스(Antonio de Torres: 1817~92)인데, 그가 클래식 기타(classical guitar)를 확립시키는데 기여했다는 점이 간접적 설명을 제공해 줄 것이다. 이렇게 비슷한 시기에 개발되었으니 양자의 차이를 비교하는 것이 플라멩꼬 기타의 특징을 이해하는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먼저 클래식 기타는 자단(rosewood)으로 만들어지지만 플라멩꼬 기타는 상나무(cypress)로 만든다. 그래서 플라멩꼬 기타가 상대적으로 가볍다. 둘째로 플라멩꼬 기타에는 골뻬아도레스(golpeadores)라고 불리는 플라스틱으로 된 판이 있는데, 이는 클래식 기타에는 없는 부분이다. 골뻬아도레스는 오른손으로 태핑(tapping)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것이다. 셋째로 클래식 기타는 금속으로 된 기어를 돌려서 튜닝을 하지만 플라멩꼬 기타는 바이올린처럼 나무로 된 못을 사용한다.
결론적으로 플라멩꼬 기타가 클래식 기타보다 가볍고 단순하다. 이런 특징이 별다른 고상한 동기를 가진 것이라기보다는 '값싸게' 만들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라는 설이 있다. 예전에 플라멩꼬 기타리스트들은 살림이 그리 넉넉치 않았기 때문에 이런 설은 설득력이 없지 않다. 그렇지만 이유와 동기야 어떻든 이렇게 만들어진 플라멩꼬 기타는 줄과 프렛 사이가 클래식 기타보다 가깝고 지판들도 좁게 배열되어 있다. 그러니 손가락을 신속하게 움직이는데 유리하다. 전광석화처럼 몰아치는 듯한 플라멩꼬 기타의 비결은 여기 있다.
이런 전광석화같은 플라멩꼬 기타 연주의 대가는 단연 빠꼬 데 루씨아(Paco de Licia)일 것이다. 1947년 까디스 태생인 루씨아가 연주할 때 왼손가락은 지판을 빠른 속도로 이리저리 왕복하고 오른손가락도 '광속'으로 움직인다. 또한 '반주에 머물지 않는 테크닉을 과시했다'는 차원에 머물지 않고 다른 장르의 기타리스트들과 더불어 기타를 개인적 감정을 표현하는 악기로 만들었다. 파코 데 루씨아의 레코딩은 그와 형제 사이인 기타리스트 라몬 드 알헤씨라스(Ramon de Algeciras)와 여동생인 가수 카마론 드 라 이슬라(Camaron de la Isla) 등과 함께 6인조로 연주한 것이 많다. 물론 다른 장르의 대가들과도 협연을 많이 했는데 그 중 가장 유명한 것은 1996년 존 맥러플린(John McLaughlin), 알 디 메올라(Al DiMeola) 등과 앙상블을 이룬 [Guitar Trio: Paco de Lucia/John McLaughlin/Al Di Meola]일 것이다.
요즘은 플라멩꼬가 나이트클럽에서도 울려 나오고 팝 가수들도 즐겨 부른다. 대부분 상업적 대중음악에 지나지 않는 것들이다. 그렇지만 그 가운데 께따마(Ketama)나 빠따 네그라(Pata Negra) 같은 그룹은 플라멩꼬를 록이나 블루스와 결합시켜서 '플라멩꼬 쿨(flemanco cool)'이라는 신종 장르를 만들어 내었다. 물론 이는 '누에보 플라멩꼬(Nuevo Flamenco)'라는 넓은 범주의 한 갈래일 뿐이다. 께따마는 바르셀로나의 록 밴드 하라베 드 빨로(Jarabe de Palo)의 음반에도 참여하여 이 음반을 플라멩꼬의 향기를 머금은 록 음악으로 만들어 주었다. 플라멩꼬의 역사는 처음부터 그랬듯 '퓨전'의 역사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