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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락 나눔]
1:01-11
1:12-30
1:31-35
23:1 바울이 공회를 주목하여 이르되 여러분 형제들아 오늘까지 나는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노라 하거늘
▶공회를 주목하여:
이러한 본절에서 ‘주목하여’로 번역된 ‘아테니사스’는 강의 접두사 ‘아’와 ‘뻗치다’,‘펴다’라는 뜻을 지닌 ‘테이노’가 결합되어 만들어진 ‘아테네스’에서 유래한 동사로서 ‘~에 눈을 고정시키다’,‘응시하다’란 뜻을 지닌 ‘아테니조’의 부정 과거 분사이다. 이 단어는 단순히 어떤 사물이나 사람을 쳐다보는 것이 아니라 진지하게,즉 열중하여 보는 것을 나타낼 때 주로 사용되었다 (행 3:12 ;10:4; 14:9 ; 눅 4:20 ; 22:56). 그렇다면 본서 저자 누가는 왜 이렇게 바울이 공회를 주목하고 본 사실을 본장 첫 절의 그것도 맨 처음에 둠으로써 강조하고 있는 것일까? 무엇보다도 그것은 당시 바울의 당당했던 태도와 더불어 산헤드린 공회에 대한 그의 연민을 묘사하기 위함일 것이다.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노라:
직역하자면 ‘선한 양심’ (KJV, good conscience)이 된다. 성경 가운데는 ‘양심’이란 단어가 ‘착한 양심’ (딤전 1:19), ‘깨끗한 양심’ (딤전 3:9)과 같이 좋은 의미로도 사용되지만 ‘더러운 양심’ (딛 1:15), ‘화인 맞은 양심’(딤전 4:2)과 같이 나쁜 의미로도 쓰이기 때문에 본절에서도 ‘선한 양심’으로 번역하는 것이 합당하다.
또한 ‘섬겼노라’라고 번역된 ‘페폴리튜마이’는 ‘시민’이란 의미가 있는 ‘폴리테스’ 에서 유래하여 ‘시민으로서 합당하게 행하다’ ,‘어떤 원리나 규칙대로 살다’를 뜻하는 ‘폴리튜오마’의 완료 직설법이다. 헬라어에서 완료형은 과거에 있었던 어떤 일의 결과가 지속되어 현재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나타내는 시제이다. 따라서 이 단어가 완료 직설법으로 사용되었다는 점에서 바울은 이미 자신이 과거부터 하나님을 선한 양심을 따라 섬겨왔으며 그리고 그러한 자세는 변론을 하고 있는 지금도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는 셈이다. 즉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의무를 다하였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그 나라가 요구하는 원리대로 철저하게 살고 있다고 자부하였던 것이다.
23:2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바울 곁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그 입을 치라 명하니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본절에 언급된 아나니아는 눅 3:2 ;요 18:3 그리고 본서 4:7에 등장하고 있는 인물이 아니라 헤롯 아그립바 1세의 아들인 헤롯 아그립바 2세에 의해 지명되어 D.48년부터 59년까지 이스라엘의 대제사장으로 재임했던 자로서 네베대우스 CNebedaeus)의 아들이다.
▶그 입을 치라:
‘치라’로 번역된 ‘휩테인’은 손바닥이나 주먹 뿐만 아니라 막대기,채찍 등의 도구를 가지고 때릴 때도 사용되는 용어인 ‘됩토’의 현재 부정사이다.
그런데 왜 하필 입인가?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뺨이나 입을 때리는 행위는 사람의 인격을 모독하는 행위였다. 그러므로 아나니아가 사리도 따져보지 않고 즉각적으로 바울의 업을 치라고 명한 것은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 그의 인격을 모독하려는 심산이었다.
23:3 바울이 이르되 회칠한 담이여 하나님이 너를 치시리로다 네가 나를 율법대로 심판한다고 앉아서 율법을 어기고 나를 치라 하느냐 하니
▶회칠한 담이여…율법을 어기고:
‘회칠한’이라고 번역된 ‘케코니아메네’는 ‘회칠하다’를 뜻하는 ‘코니아오’의 완료 분사로서 과거로부터 계속 회칠된 상태로 있었다는 의미이다. 바울이 말하고 있는 ‘회칠한 담’은 흰 회를 발라 균열된 것을 감추고 마치 새로 지은 견고한 담처럼 꾸며놓은 상태를 뜻한다 (겔 13:10-12). 위선자에 대한 질책으로
사용된 것이다.
그렇다면 아나니아는 어떻게 율법을 거스른 것인가? 유대의 율법대로라면 죄가 판명될 때까지 피고인의 권리를 보호해 주고 무죄성을 인정해 주어야 했다(레 19:15). 그런데 바울은 그때까지 심리를 거치지도 않았고 죄가 발견되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범죄를 저질렀다는 명목으로 정식으로 고소조차 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런 상황에서 아나니아가 바울의 인격을 모독하는 처벌을 명하였으니 이것은 명백히 율법을 어긴 행위였다 (신 19:15).
‘멜레이’는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이다’, ‘~할 수밖에 없다’라는 뜻을 지니는 ‘멜로’의 현재 능동형으로서 하나님의 징계가 부당한 명령을 내리는 대제사장에게 필연코 임할 수밖에 없음을 보여 준다.
23:4 곁에 선 사람들이 말하되 하나님의 대제사장을 네가 욕하느냐
▶하나님의 대제사장을 네가 목하느냐:
한편 ‘하나님의’라고 번역된 ‘투 데우’는 ‘호 데오스’의 ‘소유의 소유격 (Geni ti ve of Possession)’으로 ‘하나님께 속한’이란 의미를 나타낸다. 이는 곁에 선 사람들이 대제사장 아나니아를 그의 악한 성격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대리인(신 17:8 이하)이라고 여겼음을 보여 준다.
또한 이러한 본문의 표현은 대제사장에게 불손한 것은 곧 그 직책을 주신 하나님께 불경죄를 범하는 것이라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23:5 바울이 이르되 형제들아 나는 그가 대제사장인 줄 알지 못하였노라 기록하였으되 너의 백성의 관리를 비방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하더라
▶나는...알지 못하였노라:
‘알다’에 해당하는 ‘에데언’은 ‘눈으로 보다’를 뜻하는 ‘호라오’에서 유래한 ‘오이다 ’의 과거 완료형이다. 이것이 동사를 부정하는 부정어 ‘우크’와 결합하여 바울에게 말한 그가 대제사장인지 누군지 알지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지시해 주고 있다.
바울은 정말로 아나니아가 대제사장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 것이 된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이 모임은 갑자기 소집된 것이며 산헤드린 정규 집회가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이 경우 대제사장은 자신의 고유한 복장을 갖추지 않았을 수도 있다. 더군다나 바울은 20년 동안 산발적으로 예루살렘을 방문했었으며,유대교와 교류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당시 대제사장의 얼굴을 몰랐을 수도 있다.
23:6 바울이 그 중 일부는 사두개인이요 다른 일부는 바리새인인 줄 알고 공회에서 외쳐 이르되 여러분 형제들아 나는 바리새인이요 또 바리새인의 아들이라 죽은 자의 소망 곧 부활로 말미암아 내가 심문을 받노라
▶사두개인이요…바리새인인 줄 알고:
본문에서 ‘알고’로 번역된 ‘그누스’는 ‘알다’,‘이해하다’,또는 ‘지각하다’란 의미를 지닌 기노스코’의 부정 과거 분사이다. 본문에서는 진입적 (Ingressive)의미로 사용되었는데, 이는 바울이 산헤드린 공회원들이 어떤 부류들로 구성되어 있는지를 이제 비로소 지각하기 시작했다는 의미 자체라기보다는 이를 통하여 자신이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를 알게 되었다는 의미를 전달해 준다. 즉 산헤드린 공회원들은 주로 사두개인들과 바리새인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 이 문제 해결의 돌파구가 될 수 있음을 깨달았던 것이다.
23:7 그 말을 한즉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사이에 다툼이 생겨 무리가 나누어지니
▶다툼이 생겨...나누이니:
‘다툼’이라고 번역된 ‘스타시스’는 ‘놓다’,‘두다’를 뜻하는 ‘히스테미’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어떠한 주장을 ‘세움’ (행 19:40)을 의미한다. 즉,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 사이에는 서로 다른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면서 서로 자신들이 옳다고 주장하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한편 ‘생겨’로 번역된 ‘에게네토’는 ‘일어나다’,‘발생하다’를 뜻하는 ‘기노마이’의 부정 과거 직설법이며 또한 ‘나누이다’로 번역된 ‘에스키스데’ 역시 ‘분열하다’ ,‘찢어지다’를 뜻하는 ‘스키조’의 부정 과거 직설법이다. 여기서 부정 과거형은 절정적 부정 과거 (Culminative Indefinite Past)로 볼 수 있다.
23:8 이는 사두개인은 부활도 없고 천사도 없고 영도 없다 하고 바리새인은 다 있다 함이라
▶이는…도 없다 하고…다 있다 함이라:
한편 ‘하고’로 번역된 ‘레구신’은 ‘말하다’를 뜻하는 ‘레고’의 현재 직설법이며
‘함’으로 번역된 ‘호몰로구신’ 도 ‘인정하다’ ,‘용인하다’ (행 7:17; 마 14:7)라는 뜻을 지닌 ‘호몰로게’의 현재 직설법이다. 헬라어에서 현재 직설법은 보편적인 진리나 일반적인 통념을 표현할 때,그리고 동작의 계속을 나타낼 때 주로 사용된다. 그러므로 본문은 부활,천사,그리고 영의 존재 유무에 대해서 일반적으로 바리새인들은 그것을 인정한 반면 사두개인들은 그것을 부정했다는 사실을 시사해 준다 (마 22:23).
23:9 크게 떠들새 바리새인 편에서 몇 서기관이 일어나 다투어 이르되 우리가 이 사람을 보니 악한 것이 없도다 혹 영이나 혹 천사가 그에게 말하였으면 어찌 하겠느냐 하여
▶크게 훤화가 일어날새:
한편 ‘훤화’로 번역된 ‘크라우게’는 ‘비명을 지르다’,‘울부짖다’를 뜻하는 동사 ‘크라조’에서 비롯된 명사로서 ‘큰 외침’이나 ‘고함’등을 가리킨다. 공회가 진행되는 중인데도 불구하고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은 서로 ‘크게(메갈레)’ 고함을 지르고 소란을 피우면서 자신들의 주장을 내세웠던 것이다.
▶혹 영이나 혹 천사가...말하였으면:
사두개인들과는 달리 영이나 천사의 존재와 그 활동을 인정하고 있었던 서기관
들로서는 전날 행해진 바울의 연설 가운데서 그의 다메섹 체험(행 22:6-11)나 혹은 성전에서의 체험(행 22:17-21)을 단순하게 착각으로만 치부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여기서 서기관들은 바울이 체험한 예수가 영이나 천사 즉,예수의 죽은 영일지도 모른다고 가정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표준 원문(Textus Receptus)에는 ‘우리가 하나님께 대항하여 싸우지 말자’ 의 뜻을 지닌 ‘메 데오마코벤’이 부기되어 있어 바울을 섣불리 처리하는 것은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일일지도 모른다는 그들의 우려를 표현해 주고 있다.
23:10 큰 분쟁이 생기니 천부장은 바울이 그들에게 찢겨질까 하여 군인을 명하여 내려가 무리 가운데서 빼앗아 가지고 영내로 들어가라 하니라
▶큰 분쟁이 생기니..찢겨질까 하여:
한편 ‘찢겨지다’라는 의미로 번역된 ‘디아스파스데’는 본문을 포함해 신약 성경에서 2회 사용되었으며(막 5:4) ‘~를 통하여’란 뜻이 있는 전치사 ‘디아’와 ‘당기다’ 는 의미의 동사 ‘스파오’의 합성어에서 유래하여 ‘조각조각 찢다’란 뜻을 지닌 원형 ‘디아스파오’의 부정 과거 수동태 가정법이다. 부정 과거 가정법으로 사용되어 단번에 바울이 찢겨질지도 모르는 위태로운 상황을 암시하며, 또한 수동태로 사용되어 누군가에 의해서 찢겨질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그 누군가는 바로 바리새인들 및 그들과 신학적인 대립 관계에 있었던 사두개인들을 가리킬 것이다. 지금 바울은 서로 그를 차지하려고 잡아당기는 바라새인들과 사두개인 사이에 서 있는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23:11 그 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
23:12 날이 새매 유대인들이 당을 지어 맹세하되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아니하고 마시지도 아니하겠다 하고
▶유대인들이 당을 지어:
여기서 ‘당’에 해당하는 ‘쉬 스트로펜’의 원형 ‘쉬스트로페’는 ‘함께’란 뜻을 지닌 전치사 ‘쉰'과 향하다’ (행 13:46)라는 의미를 지닌 동사 ‘스트레포’의 합성어로서 문자적으로는 ‘함께 ~을 향하다’라는 뜻을 지니는 ‘쉬스트레포’에서 유래하여 ‘함께 ’~을 향하는 무리’란 의미를 지닌다. 이는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모인 집단’이란 의미에서 본절에서는 ‘당’이라 번역되었으나 동일한 단어가 본서 19:40에서는 ‘불법 집회’로 번역되었다. 이러한 번역에서도 암시되는 바와 같이 이 단어는 건전한 모임이 아니라 음모가 숨겨진 불법적인 모임 혹은 선동적인 모임이란 뉘앙스를 지닌다. 당시 유대인들도 몇몇 사람의 선동에 의하여 바울을 죽이기 위한 불법적인 모임을 만들었던 것이다.
23:13 이같이 동맹한 자가 사십여 명이더라
▶이같이 동맹한 자가:
맹세한 사람들이 한글 개역 성경에서는 ‘사십여 명’으로 기록되었다. 그러나 ‘여 명’에 해당하는 ‘플레이우스’의 원형 ‘플레이온’은 ‘많은’이란 뜻이 있는 ‘폴뤼스’의 비교급이므로 ‘더 많은’이란 뜻이다. 즉 당시 맹세에 참여한 사람은 분명히 40 명이 넘었다고 할 수 있다 (KJV, more than forty).
23:14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가서 말하되 우리가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아무 것도 먹지 않기로 굳게 맹세하였으니
23:15 이제 너희는 그의 사실을 더 자세히 물어보려는 척하면서 공회와 함께 천부장에게 청하여 바울을 너희에게로 데리고 내려오게 하라 우리는 그가 가까이 오기 전에 죽이기로 준비하였노라 하더니
23:16 바울의 생질이 그들이 매복하여 있다 함을 듣고 와서 영내에 들어가 바울에게 알린지라
23:17 바울이 한 백부장을 청하여 이르되 이 청년을 천부장에게로 인도하라 그에게 무슨 할 말이 있다 하니
23:18 천부장에게로 데리고 가서 이르되 죄수 바울이 나를 불러 이 청년이 당신께 할 말이 있다 하여 데리고 가기를 청하더이다 하매
23:19 천부장이 그의 손을 잡고 물러가서 조용히 묻되 내게 할 말이 무엇이냐
▶그 손을 잡고 물러가서:
여기서 ‘종용히’에 해당하는 ‘카트 이디안’은 ‘사적으로 (KJV,privately)’란 뜻으로 아무도 모르게 은밀하게 대화를 나누었음을 보여 준다.
23:20 대답하되 유대인들이 공모하기를 그들이 바울에 대하여 더 자세한 것을 묻기 위함이라 하고 내일 그를 데리고 공회로 내려오기를 당신께 청하자 하였으니
▶유대인들이 공모하기를:
본절은 15절에서 40명이 넘는 열혈 유대인들이 당을 지어 대제사장과 장로들에게 찾아가 말하고 있는 내용과 일치한다. 그런데 왜 바울의 생질은 유대인들 가운데 ‘40 명이 넘는 이들이’ 바울을 죽이고자 하여 결사를 만들었다고 진술하지 않고 ‘유대인들이(호이 이우다이오이)’라는 일반적인 범주의 용어를 사용한 것일까? 바울의 생질이 유대인들이라는 포괄적인 용어를 사용한 것은 단지
유대인 중 몇몇 사람들만 바울에 대하여 적대감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유대인 전체가 바울을 죽이려고 혈안이 된 것처럼 표현함으로 이번 사태의 심각성을 전달하기 위해서라고 볼 수 있다.
23:21 당신은 그들의 청함을 따르지 마옵소서 그들 중에서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기로 맹세한 자 사십여 명이 그를 죽이려고 숨어서 지금 다 준비하고 당신의 허락만 기다리나이다 하니
▶당신은 청함을 지 마옵소서:
또한 ‘청함을 쫓지’로 번역된 ‘페이스데스’는 ‘설득되다’또는 ‘굴복하다’라는 뜻을 지닌 ‘페이’의 부정 과거 수동태 가정법이다. 일반적으로 고위 관직에 있는 자들에 대하여 완곡하고 우회적인 언급을 하는 경우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바울의 생질은 직설적으로 천부장에게 말하고 있다. 특히 어떤 행동에 대한 금지를 나타낼 때 사용되는 부정어 ‘메’를 동반하여 강한 어조의 부정적 의미를 전달하고 있다. 바울을 죽이기로 맹세한 40명이 넘는 열혈 유대인들은 수단이나 방법을 가리지 않고 글라우디오 루시아를 설득할 것이 뻔했다.
▶당신의 허락만 기다리나이다:
‘허락’으로 번역된 명사 ‘에팡겔리안’은 ‘알려다’,‘전하다’를 뜻하는 동사 ‘에팡겔로’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본문에서는 바울을 산헤드린 공회의 심의에 넘겨주겠다는 ‘약속’, ‘동의’, ‘찬성’의 의미를 나타낸다.
23:22 이에 천부장이 청년을 보내며 경계하되 이 일을 내게 알렸다고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고
23:23 백부장 둘을 불러 이르되 밤 제 삼 시에 가이사랴까지 갈 보병 이백 명과 기병 칠십 명과 창병 이백 명을 준비하라 하고
▶보병…마병…창군:
‘보병’은 중무장한 군단의 병사를 일걷고,‘마병’은 곧 말탄 병사를 의미한다. 그리고 ‘창군’은 오른손에 창을 들고 다니는 경무장한 보충 부대를 뜻하는 듯이 보이나 이에 대해서는 이견(異見)이 있다. 왜냐하면 ‘창군’으로 번역된 ‘텍시올라부스’는 신약 성경 중 유일하게 이 부분에서만 볼 수 있고 현존하는 헬라어 문헌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많은 학자들은 그 말이 ‘창군 (spearmen)’을 뜻한다고 이해한다. 왜냐하면 ‘텍시오스’가 ‘오른손잡이’라는 뜻이고 창은 보통 오른 손으로 던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영역본 (KJV,ASV, RSV, TEV, NIV)은 이를 ‘창군’으로 번역했다.
23:24 또 바울을 태워 총독 벨릭스에게로 무사히 보내기 위하여 짐승을 준비하라 명하며
▶짐승을 준비하라 명하며:
‘준비하라 명하며’로 번역된 파라스테사이’는 ‘곁에 또는 가까이에 두다’의 뜻을 지닌 ‘파리스테미’의 부정과거 명령 부정사로 천부장이 바울을 태우기 위한 짐승을 신속하게 ‘곁으로 가지고 오라’고 명령한 사실을 나타낸다.
한편 본문에서 언급된 ‘짐승(크테네)’은 전쟁을 위한 말 즉,전마(戰馬)가 아니라 짐이나 사람을 운송하는 운송용 ‘나귀나 말’을 지시한다. 뿐만 아니라 이 단어는 본문에서 복수형으로 사용되었는데 이는 예루살렘에서 가이사랴까지는 약 104km정도 되는 거리였으므로 그 거리를 신속하게 이동하기 위해서, 또한 먼 거리의 여행을 위해 자주 갈아탈 목적으로 천부장이 여러 마리의 짐승 (KJV, beasts)’을 준비시켰음을 보여 준다.
23:25 또 이 아래와 같이 편지하니 일렀으되
▶또 이 아래와 같이 편지하니:
그렇다면 글라우디오 루시아는 왜 총독 벨릭스에게 ‘편지’를 보내야만 했던 것일까? 그냥 사람을 보내 기별하고 바울을 거기로 데려다 주면 되지 않았을까? 그 이유는 로마의 법에 따르면 ‘엘로기움’이라 하여 하급 관리가 상급자에게 어떤 사건을 보고할 경우 그 사건에 대한 ‘서면 진술서’를 보내야만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글라우디오 루시아는 로마법에 근거하여,그리고 자신의 책무를 다하는 차원에서 총독에게 일종의 서면 진술서를 쓴 것이다. 즉, 이 편지는 글라우디오 루시아가 그의 상급자 벨릭스 총독에게 보내는 ‘피의자에 대한 서면 진술서’ 였다.
23:26 글라우디오 루시아는 총독 벨릭스 각하께 문안하나이다
▶글라우디오 루시아는:
‘글라우디오’란 이름은 로마식이고 ‘루시아’란 이름은 헬라식이다. 천부장이 이러한 두 언어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그가 본래는 헬라인으로서 루시아란 헬라식 이름만을 가졌을 것이나 황제 글라우디오 통치하에서 로마의 시민권을 취득하고 글라우디오란 로마식 이름을 덧붙였을 것이란 사실을 암시한다 (행 22:28),
▶각하에게 문안하노이다:
‘각하’라고 번역된 ‘크라티스토’는 ‘강한’, ‘고귀한’을 뜻하는 ‘크라티 스토스’의 최상급으로서 ‘가장 숭고(累高)한’,‘지존(至尊)한’이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 호칭은 로마의 원로원 의원 보다는 낮으나 상당한 권세를 지녔던 기사 계급이나 로마 정부의 고위충 관리를 부르는 존칭으로서 (행 24:3 ;26:25), 본문에서도 이러한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이 호칭은 점차 상대방에 대한 존경을 나타내는 인사말로도 사용되었다.
한편 ‘문안하노이다’로 번역된 ‘카이레인’은 ‘기뻐하다’,‘즐거워하다’를 뜻하는 ‘카이로’의 현재 부정사인데 본문에서는 보다 넓은 의미인 ‘번영하다’ ,‘성공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것은 라틴어의 ‘안녕하십니까’를 뜻하는 ‘살베’를 번역한 것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벨릭스에게 보내진 이 편지는 분명히 라틴어로 기록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23:27 이 사람이 유대인들에게 잡혀 죽게 된 것을 내가 로마 사람인 줄 들어 알고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구원하여다가
23:28 유대인들이 무슨 일로 그를 고발하는지 알고자 하여 그들의 공회로 데리고 내려갔더니
23:29 고발하는 것이 그들의 율법 문제에 관한 것뿐이요 한 가지도 죽이거나 결박할 사유가 없음을 발견하였나이다
▶한 가지도…사건이 없음을:
또한 한글 개역 성경에서 ‘사건이’로 번역된 ‘앵클레마’는 28절에서 ‘유대인들이 ...송사하는지’로 번역된 ‘에네칼룬’의 원형이며 ‘고소하다’ (행 19:28), ‘책망하다’ (행 19:40)로 번역되는 ‘앵칼레오’에서 유래하여 ‘송사할 만한 것’ 혹은 ‘책망거리’ 란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본문은 ‘단 하나의 책망거리나 송사거리도 없다’란 의미를 갖는다. 이 역시 천부장 글라우디오 루시아가 바울의 완전한 무죄를 확신하고 있었음을 보여 준다.
23:30 그러나 이 사람을 해하려는 간계가 있다고 누가 내게 알려 주기로 곧 당신께로 보내며 또 고발하는 사람들도 당신 앞에서 그에 대하여 말하라 하였나이다 하였더라
23:31 보병이 명을 받은 대로 밤에 바울을 데리고 안디바드리에 이르러
▶밤에....안디바드리에
한글 개역 성경에서는 ‘디아 펙토스’를 ‘밤에’라는 정적 의미로 번역하였으나,전치사 ‘디아’는 시간의 소유격과 함께 사용되어 계속되는 시간,즉 ‘무엇이 행해지는 동안 내내’ (마 26:61 ;막 14:58)란 동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본문을 원어 뉘앙스에 부합하게 직역하자면 ‘밤새도록’이 된다. 즉, 보병들은 ‘밤새도록’ 가서야 안디바드리에 도착한 것이다.
23:32 이튿날 기병으로 바울을 호송하게 하고 영내로 돌아가니라
▶마병으로…돌아가니라:
허비 (Hervey)에 따르면 본절에 언급된 이튿날은 안디바드리에 도착한 다음날이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출발한 다음날이다. 이제 안디바드리까지 바울을 호위하였던 보병들이 모두 돌아갔다. ‘돌아가니라’로 번역된 ‘휘페스트랩산’은 ‘돌아가다’,‘철수하다’의 의미를 지닌 ‘휘포스트레포’의 부정 과거형이다.
23:33 그들이 가이사랴에 들어가서 편지를 총독에게 드리고 바울을 그 앞에 세우니
23:34 총독이 읽고 바울더러 어느 영지 사람이냐 물어 길리기아 사람인 줄 알고
▶어느 영지 사람이냐:
본문에서 ‘영지(領地)사람’이라고 번역된 ‘에파르케이아스’는 ‘위’를 뜻하는 전치사 ‘에피’와 지배하다’ ,‘통치하다’라는 뜻의 동사 ‘아르코’가 결합된 것으로서 ‘통치권이 미치는 곳’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본문은 ‘통치권이 미치는 곳’,즉 로마 제국의 통치 구역 내에서도 누구의 관할권하에 있는지를 확인하는 질문으로 볼 수 있다.
23:35 이르되 너를 고발하는 사람들이 오거든 네 말을 들으리라 하고 헤롯 궁에 그를 지키라 명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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