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화추천 0조회 122.06.03 16:16
<호 거내영 이론 ㅣ 무화 > (1) 거룩한 내맡김의 영성
(1) 거룩한 내맡김의 영성
"한처음에 인간을 만드신 분은 그분이시다.
그분께서는 인간을 제 의지의 손에 내맡기셨다."(집회 15,14)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제 의지의 손에 내맡기시기를"(집회 15,14)원하셨고,
창조주를 자유로이 따름으로써 완전한 행복에 이르기를 바라신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요약편, 1743항)
“인간 존엄성의 빼어난 이유는
하느님과 친교를 이루도록 부름 받은 인간의 소명에 있다.
인간은 이미 태어날 때부터 하느님과 대화하도록 초대받는다.
하느님의 사랑으로 창조되고
언제나 하느님의 사랑으로 보존되지 않는다면
인간은 결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그 사랑을 자유로이 인정하고
자기 창조주께 자신을 맡겨 드리지 않고서는
인간은 온전히 진리를 따라 살아갈 수 없다.
그러나 현대의 많은 사람들은
하느님과 이토록 친밀한 생명의 결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거나
노골적으로 배척하고 있다.”
(현대 세계의 교회에 관한 사목 헌장 〈기쁨과 희망〉, 19항)
“인간은 당신 자신을 계시하시는 하느님께 어떻게 응답하는가?
인간은 하느님의 은총에 힘입어,
계시하시는 하느님께 신앙의 순종으로 응답한다.
신앙의 순종은
하느님께 온전히 자기 자신을 내맡기는 것이고,
진리 자체이신 하느님께서 친히 보증하시는 진리를 받아 들이는 것이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요약편, 25항))
"믿음은 하느님과,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계시하신 것과,
거룩한 교회가 우리에게 믿도록 제시하는 모든 것을 믿게 하는 향주덕이다.
하느님께서는 진리 자체이시기 때문이다.
믿음으로 인간은 “자기를 온전히 하느님께 자유로이 맡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자는 하느님 뜻을 알고 실천하고자 애쓴다.
“의로운 이는 믿음으로 살 것이다”(로마 1,17).
살아 있는 믿음은 “사랑으로 행동한다”"(갈라 5,6).
(가톨릭 교회 교리서, 한국천주교주교회의, 1814항)
거룩한 내맡김의 영성
거룩한 내맡김의 영성은 이해욱 신부님이 만들어낸 개인적인 영성이 아니라,
이 신부님이 병을 얻고 2006년 2월,
모든 것을 버리고 지리산으로 들어가 살면서 얻게 되었던 “하느님에 대한 체험”이며
동시에 하느님을 체험하였던 하느님 백성의 공동체험이기도 합니다.
하느님을 만난 모든 이들의 공통점은
“자신이 만난 하느님을 다른 이들에게 전하는 것“입니다.
진실로 하느님을 뜨겁게 만난 사람들은
그 사람 안에 계신 하느님께서
그 사람 안에만 안주하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이해욱 신부님에게 찾아주신 하느님께서도
더욱 많은 영혼들에게 찾아가시기를 강하게 요구하셨고,
신부님께서는 하느님의 요청에
신부님의 모든 것을 다하여 기쁘게 따라드리셨습니다.
하느님께서 이 신부님께 바라시는 그 요청이 바로,
“거룩한 내맡김의 영성을 온 세상에 전하는 일”이며,
신부님께서는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그 소명을
생명을 다하여 완수하시고자 전국 각지로 강의를 다니시다가
2009년 12월 다음(Daum) 포털에
'무형의 성전, 마리아처럼' 카페를 만들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거룩한 내맡김의 영성이란
“하느님의 뜻대로 거룩하게 사는 삶”을 말합니다.
테살로니카 1서 4장 3절에 나와있듯이
“하느님의 뜻은 바로 여러분이 거룩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인간은
창조주이신 하느님의 뜻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창조주 하느님의 인간창조의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신앙인들이 “하느님 뜻대로 살아야 한다.”며
하느님의 뜻이라는 말을 입에 붙이고 살지만,
말과는 달리 하느님의 뜻대로 살기보다는 오히려
자신의 뜻대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며 또한 사실입니다.
신앙인들이 하느님의 뜻대로 살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이
“하느님을 자신의 주인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머리나 지식으로가 아니라
진실한 마음으로 하느님을 자신의 주인으로 모셔 들인 사람들은,
자신의 생명, 배우자, 자녀, 재산, 신분 등
자신이 소유한 모든 것의 주인도 하느님이심을 굳게 인정하고,
하느님께서 자신의 모든 것을 요구하실 때에는 언제든지
하느님께 기꺼이 내어 드리겠다는 “맹세 수준의 굳은 결심”을
하느님 앞에 봉헌해 드리는 것이 필요합니다.
하느님 뜻대로 살겠다는 맹세 수준의 굳은 결심을 봉헌한 이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사항은 “끊임없는 기도”입니다.
“형제 여러분,
언제나 기뻐하십시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입니다."(1테살5,16-18)
하느님의 뜻대로 살기 위해서는
삶에서 기도가 끊기지 않아야 하며
그래서
거룩한 내맡김의 영성에서 강력하게 추천하고 권유하는 기도가 바로
“화살기도 성가”입니다.
이 성가 이외에도
자신이 좋아하는 다른 모든 성가를 자유롭게 선택하여
되풀이되는 화살기도처럼
마음속으로나 입으로나 끊임없이 노래(기도)하는 삶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앞에서 이 신부님의 체험은 하느님 백성의 공동체험이라고 말했듯이
<거룩한 내맡김 영성>은
과거 수많은 성인들이 추구해 오던 '하느님 신앙의 근본 영성'이며,
더 나아가서는
하느님 뜻대로 살다가 믿음의 조상이 된 구약의 <아브라함의 영성>이며 또한
하느님 뜻에 순명으로 대답하여
하느님의 어머님이 되신 신약의 <성모 마리아의 영성>이며,
하느님 뜻에 순명으로 태어나 하느님 뜻대로 살아가 순명으로 돌아가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님의 영성>입니다.
“아버지, ‘제 영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루카 23,46)
또한 신뢰와 완전한 위탁의 길, "작은 길(Little Way)"을 저술한
<성녀 데레사의 영성>이기도 합니다.
이와같이 <거룩한 내맡김 영성>은
결코 새롭지 않은 아주 오래된 최초의 영성이면서도 "새로운 영성"입니다.
왜냐하면 이 영성이 그동안 빛을 발하지 못했었기 때문입니다.
"내맡김의 영성"이라는 말을 사용하게 된 동기는
이해욱 신부님이 지리산 생활에서 체험한 '하느님 체험'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하느님 섭리에 내맡김'(장 삐에르 드 코사드), '거룩한 위탁'(동 비딸 러오데)
이 두 서적이며
거룩하신 하느님을 닮고,
거룩한 하느님의 뜻대로 살아가기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하느님께 전적으로 의존하여 내맡겨 사는 삶은
자연히 거룩한 삶이며,
그 삶이 바로 내맡김의 삶, <거룩한 내맡김의 영성>입니다.
* * *
그동안
무형의 성전 카페 마리아처럼에서는
2016년에 <거룩한 내맡김 영성>을 살며 변화된 신자들 33명이
'가톨릭출판사'를 통해 증언집을 출간했고
지금까지 8쇄, 1만 6천 권을 발행했습니다.
이 책은 가톨릭출판사 역사상 가장 많이 발행한 증언집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2018년 8월에는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영성신학 교수 민범식 신부님의 감수를 받아
<끊임없는 기도모임>이라는 평신도 (사립)단체 승인을 받았습니다.
2019년 10월에는
'가톨릭 출판사'에서 이 신부님의 <거룩한 내맡김 영성>이
"창에 찔린 예수 화살에 꽂힌 신부"라는 이름으로 출판되었고
지금까지 4쇄, 9천 부가 발행되었으며
이 책은 성 골롬반 외방 선교회 신부님들께서
해외 신자분들을 위해 영어로 번역해 주신 덕분에
6월 말 영어 번역본이 출간될 예정입니다.
2020년 11월
코로나 팬데믹 사태에 의해 <온라인 화상 나눔>을 시작하였고
이 화상 나눔에는
서울대교구 신자들뿐만이 아니라 전국 각지, 또 해외 신자들까지 함께 하여
뜨거운 나눔의 장을 이루었는데,
온라인 특성상 교구를 망라한 이 화상나눔은
단체 사목을 관장하는 교구 행정지원팀의 허락과 지원을 이미 받은 바 있습니다.
<끊임없는 내맡김 화살기도 성가>들은
모든 곡이 화살기도문 감수는 물론이고
서울대교구 출판검열위원회로부터, 출판승인을 받았습니다.
* * * * * * * * *
Q 1. 거룩한 내맡김의 영성이 이단이 아닐까?
그동안 <거내영>의 글들이 온라인상에서 활개를 치고 돌아다니고 있고,
거내영에 들은 신부님들이 많은데,
'이단적인 요소'가 아니라
교리에 조금이라도 어긋나는 소지가 있는 글이 있다면,
벌써 옛날부터 '이단으로 공인'되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성모신심에 대한 어리석은 판단'으로 떠드는 사람들과
'영적지도 사제에 대한 험담'은 있었을 지언정
<거룩한 내맡김의 영성> 자체에 있어서는
그 어느 신부님들도, 주교님조차 한마디도 하지 못하셨습니다.
Q 2. 개인의 신심행위를 공적으로 퍼뜨리는 것은 옳지 않다.
거내영은 이 신부님의 <개인의 신심행위>가 아닙니다!
<하느님 신앙의 근본 영성>입니다.
"내맡김의 영성"은 한글이며,
한자로는 "委托 (위탁)의 靈性"입니다.
수많은 성인들이 추구해 오던 "의탁의 영성"이 "위탁의 영성"이며,
위탁의 영성을 우리말로 "내맡김의 영성",
더 정확히 말해서
하느님께 맡기기에 "거룩한 내맡김의 영성"입니다.
내맡김의 영성은 이해욱 사제가 만들어낸 영성이 아니라
오히려 구약의 "아브라함의 영성"이며 "하느님 신앙의 영성" 입니다!
또한 신약의 "성모 마리아의 영성"이며,
성모 마리아를 통하여 이 세상에 오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님의 영성"입니다.
그리고 성녀 소화 데레사가 말하는 "작은 길(Little Way)"이야 말로
<내맡김의 영성>과 다를 바 없습니다.
▶영적지도 사제의 말씀
어떤 분께서는 제가 전하는 "내맡김의 영성"이
이 시대에 맞는 "새로운 영성"이라고 생각하거나 말씀하는 분이 계십니다.
그러나, 분명히 "내맡김의 영성"은 제가 그렇게 이름을 지어서 그렇지, 결코
어디서 새로 생겨나거나 하늘에서 뚝 떨어진 "새로운 영성"이 전혀 아닙니다.
왜 이미 널리 알려진 신앙(위탁의 영성)을,
한 사제가 하느님을 만난 체험을 <주교회의의 허락>을 받아야 합니까?
그것도 교회의 전통 영성으로 하느님을 만난 체험과 그에 대한 <증언>을?
아무나 얻을 수 있는 보물은 보물이 아닙니다.
하느님은 아무나 소유할 수 있는 하느님이 아니십니다.
하느님께 자신의 모~~~든 것(목숨까지도)을 다 내맡긴 사람만이
소유할 수 있는 하느님이십니다.
대충 얼렁뚱땅해서 하느님을 소유하려 해서는 아니 됩니다.
하느님을 <싸구려 취급>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저 이해욱 프란치스코 신부는 거내영에 제 목숨을 바쳤습니다, 이미!
“하늘 나라는 밭에 숨겨진 보물과 같다.
그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그것을 다시 숨겨 두고서는 기뻐하며 돌아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마태 13,44)
당신은 하느님을 체험하셨습니까?
자신이 체험한 하느님을 증거한 적이 있으십니까?
얼마나 많은 영혼들을 구원의 길로 이끄셨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