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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장: 구속(救贖)함을 얻은 자들
1-5절, 구속(救贖)함을 얻은 자들
[1-3절] 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양이 시온산에 섰고 그와 함께 14만 4천이 섰는데 그 이마에 어린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도다. 내가 하늘에서 나는 소리를 들으니 많은 물소리도 같고 큰 뇌성도 같은데 내게 들리는 소리는 거문고 타는 자들의 그 거문고 타는 것 같더라. 저희가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니 땅에서 구속(救贖)함을 얻은 14만 4천인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
사도 요한은 어린양이 시온산에 선 것을 보았다. 어린양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시온산은 천국이다. 히브리서 12:22,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산과 살아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사도 요한은 그와 함께 14만 4천명의 성도들이 서 있는 것도 보았다. 이 14만 4천명의 성도들은 7장에 증거된 대로 이마에 하나님의 인을 맞은 자들이며 땅에서 구속(救贖)함을 받은 모든 성도들, 즉 교회를 가리킨다고 본다. 그 이마에는 어린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었다. 그것은 소속과 소유권을 나타낸다. 그들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요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께서 피를 흘려 사신 자들이다.
사도 요한은 하늘에서 나는 큰 소리도 들었다. 그것은 많은 물소리와 같고 큰 뇌성과도 같았고 거문고 타는 자들의 거문고 타는 소리와 같았다. 그것은 분명히 14만 4천명의 성도들이 부르는 찬양 소리이었다. 참된 성도들은 지상에서도 천상에서도 찬송을 부를 것이다.
사도 요한은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는 것을 보았다. 그 노래는 땅에서 구속함을 받은 14만 4천명의 성도들밖에는 배울 자가 없는 새 노래이었다. 우리가 구원받기 전에 좋아하며 불렀던 노래들, 민요든지 유행가든지, 그것들은 다 옛 노래들이다. 우리는 이제 그것들이 헛되다는 것과 그것들 중 어떤 것들은 심지어 죄악되다는 것을 안다. 우리는 더 이상 그런 노래를 좋아하지 않으며 또 부르기를 원치 않는다.
구원받은 성도들은 새 노래를 부른다. 새 노래는 구원의 노래이다. 어린양의 피로 구속(救贖)받은 자들만 새 노래를 부를 수 있다. 속죄의 신앙을 가진 자들만 새 노래를 부를 수 있다. 새 노래는 하나님의 구원을 찬양하며 감사하고 또 증거하는 노래이다. 구원받은 자들은 새 노래를 배우고 그것을 부르고 그것을 사랑할 마음을 가지고 있다. 시편 98:1, “새 노래로 여호와께 찬송하라, 대저 기이한 일을 행하사 그 오른손과 거룩한 팔로 자기를 위하여 구원을 베푸셨도다.”
[4-5절] 이 사람들은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이 있는 자[처녀들]라.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서 [예수님으로 말미암아]24) 구속(救贖)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속한 자들이니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
사도 요한이 본 14만 4천명은 땅에서 구속(救贖)함을 얻은 성도들이며 하나님의 첫 열매들이다(롬 8:23; 약 1:18). 하나님께서는 모든 피조 세계의 회복을 계획하셨고 택하신 사람들을 먼저 구원하셨다. 그들은 첫 열매들과 같다. 성도들의 구원이 충만히 성취되면, 온 세상 만물이 회복되며 새로워질 것이다. 요한계시록 21:5, “보좌에 앉으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가라사대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본문은 구속(救贖)받은 성도들의 특징들을 묘사한다. 첫째로, 구속받은 성도들은 거룩한 자들이다. 그들은 여자들로 더불어 더럽혀지지 않은 자들, 정절이 있는 자들, 처녀들이라고 표현된다. 여자들은 죄악된 세상을 가리킨다(약 4:4). 또 구속받은 성도들은 흠 없는 자로 표현된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흠 없는 자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신 것은 우리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기 위함이었다(엡 1:4).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것은 우리로 깨끗하게 하시고 거룩하게 하셔서 티나 주름잡힌 것이 없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었다(엡 5:26-27).
구원받은 성도들은 다시 죄악되고 멸망할 세상을 사랑하지 말아야 한다. 비록 그들이 과거에 술 마시고 방탕하였을지라도, 이제 그들은 다시 그런 세상 생활로 돌아가지 말아야 한다. 그들은 이제 세상을 사랑하지 말아야 한다. 만일 그들이 다시 이 세상을 사랑한다면, 그들은 자기 몸을 더럽히는 자와 같을 것이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뱀이 그 간계로 이와를 미혹케 한 것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단순함에서(전통본문)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고 말하였다(고후 11:2-3). 또 그는 고린도 교인들이 다른 예수, 다른 영, 다른 복음을 용납한 것을 지적하며 책망하고 믿음 생활을 바르게 하기를 권면했다. 우리가 구원받은 자라면, 우리는 모든 잘못된 사상과 교리, 모든 잘못된 행위와 풍조를 버리고 오직 하나님 한 분만 믿고 섬기며 경배하며 또 오직 성경에 밝히 계시된 하나님의 온전한 뜻만 믿고 그를 따르며 섬기고 그 성경의 교훈들을 실천해야 할 것이다.
둘째로, 구속받은 성도들은 순종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어린양이 어디로 가시든지 따라가는 자들이다(원문). 사람은 누구든지 잘못을 범할 수 있으며 거기에는 목사도 예외가 아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만 따르며, 그의 말씀과 명령이 성경에 있으므로 성경말씀만 믿고 순종하며, 목사의 성경적 교훈을 존중하고 순종해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께 순종하는 바른 태도이다. 우리는 성경에 기록된 그의 말씀만 따라야 한다. 우리의 삶 속에서 그의 명령이 보이는 대로, 그가 어디로 가시든지 그를 따라가는 것이 순종의 삶이다. 그러나 주를 따라가는 것이 항상 즐겁고 평안한 길은 아니다. 주를 따라가는 길에는 때때로 시험과 고난과 핍박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주께서 가시는 대로, 성경의 교훈대로 즐거이, 자원함으로 따라가야 한다.
셋째로, 구속받은 성도들은 그 입에 거짓말이 없는 자들, 즉 거짓말하지 않는 자들이다. 거짓말은 마귀의 죄악이다. 마귀는 거짓말쟁이이며 거짓의 아비이다. 거짓은 사탄의 종들의 특징이고, 진실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종들의 특징이다.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천국에 들어갈 수 없고 지옥불에 던지울 것이다(계 21:8, 27; 22:15).
천국에서 어린양과 함께 서서 새 노래로 하나님을 찬송한 14만 4천명의 성도들은 거룩하고 흠이 없는 자들이었고 그리스도께서 가시는 대로 따라갔으며 거짓이 없는 자들이었다. 본문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우리는 땅에서 구속(救贖)함을 얻은 자들인가? 땅에서 구속(救贖)함을 얻은 14만 4천명의 성도들은 어린양의 피로 죄사함을 받은 자들이다. 구주 예수님을 믿는 것은 그의 십자가 속죄사역을 믿는 것이다. 속죄신앙이 구원 신앙이다. 여러분에게는 이 속죄신앙이 있는가?
둘째로, 우리는 죄를 멀리하고 흠이 없는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 땅에서 구속함을 얻은 14만 4천명은 여자로 더불어 자신을 더럽히지 않은 자들 곧 세상의 죄와 쾌락에 빠지지 않은 자들이며 흠이 없는 자들이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의 거룩함이다. 우리는 죄를 멀리해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만 따라가야 한다. 땅에서 구속함을 얻은 자들은 어린양이 어디로 가시든지 따라가는 자들이다. 우리는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주를 따라야 한다(눅 9:23).
넷째로, 우리는 거짓말하는 자가 되지 말아야 한다. 거짓은 마귀의 속성이며 지옥 갈 죄악이다. 우리는 항상 서로에게 진실을 말해야 한다.
6-12절, 세 천사들의 외침
[6-7절] 또 보니 다른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데 땅에 거하는 자들 곧 여러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 그가 큰 음성으로 가로되 하나님을[주를](전통사본)25)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하더라.
사도 요한은 세상에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지고 공중에 날아가는 한 천사를 보았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뜻을 계시하시기 위해 때때로 천사를 사용하신다(계 1:1; 8:2; 10:1; 16:1).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신속하게 수행함을 나타낸다. 그가 가지고 있는 복음은 영원한 복음이다. 그것은 어느 한 시대에만 적용되는 복음이 아니고 모든 시대에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복음이다. 그 효력은 영원하다. 복음은 사람들에게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주는 소식이다. 그것은 언제나 온 세상에 증거되어야 할 소식이다.
그 천사는 큰 음성으로, 하나님의 심판의 시간이 되었으니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에게 영광을 돌리며 천지와 바다와 샘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에게 경배하라고 외쳤다. 이것은 어느 시대에나 매우 근본적인 진리들이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한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은 지혜와 지식의 시작이다(잠 1:7; 9:10). 거기에 하나님께 대한 참된 믿음도 가능하다. 또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 그들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그에게 감사와 찬송을 올려야 한다. 또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께 경배해야 한다. 진심으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에게 영광을 돌리며 그를 경배하는 것은 구원받은 성도들이 서야 할 사람의 본래의 위치이다.
[8절] 또 다른 천사 곧 둘째가 그 뒤를 따라 말하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모든 나라를 그 음행으로 인하여 진노의 포도주로 먹이던 자로다 하더라.
사도 요한은 다른 한 천사 곧 두 번째 천사의 외침을 들었다. 그 외침은 큰 성 바벨론이 무너졌다는 내용이었다.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라고 두 번 반복한 것은 그 무너짐의 확실함을 나타낸다. 큰 성 바벨론은 마지막 날에 확실히 무너질 것이다. 이 바벨론은 17:5, 18에서는 땅의 임금들과 음행하는 큰 음녀요 그들을 다스리는 큰 성이라고 말했고, 19:3, 10에서는 땅의 왕들이 그로 더불어 음행하였고 땅의 상인들도 그 사치의 세력을 인해 부요함을 얻었던 크고 견고한 성이라고 말했고, 16:19에서는 일곱째 대접 재앙에서 큰 지진으로 인해 세 갈래로 무너질 큰 성이라고 말했다. 그 성은 반드시 무너질 것이다.
이 큰 성 바벨론에 대해서 성경 주석가들의 해석은 다양하다. 어떤 이들은 이 바벨론이 로마 제국을 가리킨다고 보고(헹스텐버그), 어떤 이들은 이 바벨론이 이 세상을 가리킨다고 본다(헨드릭슨, 박윤선). 또 어떤 이들은 이 바벨론이 로마 천주교회를 가리킨다고 보고(매튜 풀, 벵겔, 알포드, 반즈), 또 어떤 이들은 이 바벨론이 말세에 배교한 교회를 가리킨다고 본다(포셋, 렌스키, 비더울프). 이 마지막 두 견해 중 하나가 적절해 보인다. 장차 배교한 기독교회는 로마 천주교회와 연합하여 한 교회를 이룰 것이라고 본다. 짐승을 탄 음녀(17:3)인 이 바벨론은 주의 재림 직전에 나타날 세속화된 배교한 교회를 가리키며 그것은 아마 로마 천주교회의 지배를 받을 것이라고 보인다.
이 큰 성 바벨론은 모든 나라를 그 음행의 진노의 포도주로 먹였다. 여기의 ‘음행’은 육적인 의미와 영적인 의미를 다 가질 것이다. 배교한 교회는 음행의 풍조를 퍼뜨리는 일에 앞장 설 것이며, 또 이단들을 포용하고 이방 종교들을 포용하는 신학적 포용주의와 종교 다원주의의 교회가 될 것이고, 또 물질적 부요와 육신적 향락을 조장하는 세속화된 교회가 될 것이다. 현대 교회들이 그렇게 되고 있다.
옛날 로마 천주교회는 종교적으로, 도덕적으로 심히 부패하였었다. 그것은 큰 성 바벨론과 같았다. 그래서 16세기 종교개혁자들은 로마 교황청이야말로 성경에 예언된 그 바벨론이라고 생각했었다. 오늘날 온 세계의 배교한 교회들의 연합체인 세계교회협의회(WCC)는 또다시 로마 천주교회와 연합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우리는 마지막 때에 나타날 세계적인 배교한 교회들의 중심에 또다시 로마의 교황이 서게 되리라고 보며, 또다시 로마 교황청이 세계의 종교의 중심이 될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이 배교한 교회는 마침내 망하고 말 것이다.
[9-11절] 또 다른 천사 곧 셋째가 그 뒤를 따라 큰 음성으로 가로되 만일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 그 진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주라.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 이름의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하더라.
사도 요한은 또 다른 천사 곧 세 번째 천사의 외침을 들었다. 그것은,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실 것이라는 선언이다. 배교한 교회의 교인들 곧 신앙의 변절자들은 하나님의 진노를 받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신앙의 정절을 지켜야 한다. 그는 비진리를 받아들이지 말고 비진리와 타협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신앙을 버리고 변절한 자는 하나님의 맹렬한 진노의 잔을 받을 것이며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 곧 지옥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그것은 영원한 고통의 형벌의 장소이다. 거기에서 그들은 밤낮 쉼을 얻지 못할 것이다.
[12절]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미래의 사실들이 이러하기 때문에 성도들에게는 오직 인내가 필요하며 끝까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지키는 것이 필요하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의(義)이며 그것을 지키지 못하는 것이 죄이다. 성도는 은혜로 구원받은 자이지만, 의로운 행위로 그 구원을 증거해야 한다. 행위는 구원의 조건은 아니나 구원의 증거가 된다. 사람이 의로운 행위로 구원받는 것은 아니지만, 의로운 행위 없이 구원받는 것도 아니다. 구원받은 성도들은 죄 가운데 살 수 없다. 죄 가운데 사는 자는 지옥의 형벌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피로 구원받은 성도들은 모든 죄를 미워하고 모든 죄와 싸우며 모든 죄를 떠나야 한다. 또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지켜야 한다. 참 신앙은 성경에 계시된 그대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다. 그것이 보수 신앙이다. 보수 신앙이 바른 신앙이며, 그것만이 영생에 이르는 신앙이다.
본문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우리는 사도 바울을 통해 선포된 영원한 복음, 곧 이신칭의(以信稱義)의 복음을 확신해야 한다.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 우리는 이제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에게 영광을 돌리며 경배하며 그의 계명에 순종해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의 백성과 세상을 구별하는 잣대가 된다.
둘째로, 우리는 적그리스도의 나라와 배교한 교회들이 결국 망하게 될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장차 멸망할 세상과 구별된 생활을 해야 한다. 또 우리는 성경적 교훈의 터 위에 세워지고 그 교훈만을 전하고 가르치고 그 교훈 안에서 양육되는 바른 교회를 세워야 한다. 우리는 배교한 교회들의 연합운동을 배격하고 그것으로부터 분리되어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끝까지 인내로 바른 믿음을 지키고 또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야 한다. 바른 믿음이란 성경적, 역사적 기독교 신앙을 가리킨다. 우리는 그 바른 믿음을 지켜야 한다. 또 우리는 돈과 육신의 쾌락을 추구하지 말고 음란한 세상을 본받지 말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 거룩하고 정직하고 선하고 진실한 삶을 끝까지 실천해야 한다.
13-20절, 주 안에서 죽는 자들, 추수
[13절]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가로되 기록하라. 자금 이후로[이제부터]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가라사대 그러하다.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저희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저희는 수고를 그치고 쉴 것이며 저희의 행한 일이 저희와 함께 따르리라](전통사본)26) 하시더라.
‘이제부터’라는 말은 ‘복음 신앙을 가진 때로부터’라는 뜻이다. 복음 신앙은 곧 구원이 되며 복음을 믿고 죽는 자는 확실히 천국에 들어갈 것이므로 복되다는 뜻이다. 또 하나님께서 이 시점에서 새삼스럽게 죽음에 대해 언급하시는 것은 대환난 시대에 순교자들이 많을 것을 암시한다(계 6:11). ‘주 안에서’ 죽는다는 것은 ‘주를 믿는 믿음 안에서, 주님과의 영적 연합 속에서’ 죽는다는 뜻이다. 사람이 주 밖에서, 복음 신앙 없이 죽는다는 것은 큰 불행이다. 왜냐하면 모든 믿지 않는 죄인들에게 죄의 값인 죽음 곧 단지 육신의 죽음뿐 아니라, 둘째 사망인 지옥 형벌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눅 16:19-31).
그러나 주 안에서 죽는 것은 복이다. 본문은 그 이유를 두 가지로 말한다. 첫째는 그가 그 수고를 그치고 쉴 것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는 수고와 고생이 많다. 모세는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라고 말했다(시 90:10). 주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씀하셨다(마 11:28). 세상은 수고로운 세상이다. 그러나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죽은 자들에게는 안식이 있다. 히브리서 4:3, 10-11, “이미 믿는 우리들은 저 안식에 들어가는도다,”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 일을 쉬심과 같이 자기 일을 쉬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그 안식의 세계가 바로 천국이다. 천국은 평안이 넘친 안식의 세계이다.
주 안에서 죽는 것이 복된 두 번째 이유는 그가 이 세상에서 행한 선행들에 대해 보상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선행이 천국에 들어갈 만한 가치도 없는 누추하고 얼룩지고 보잘것없는 것이며 그 자체도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의 도우심으로 된 것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그 선한 행위를 귀히 보시고 상 주실 것이다.
마태복음 16:27, “인자(人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때에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갚으리라.” 요한계시록 22:12,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 고린도후서 5:8-10,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라. 그런즉 우리는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노라.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14-16절] 또 내가 보니 흰 구름이 있고 구름 위에 사람의 아들과 같은 이가 앉았는데 그 머리에는 금 면류관이 있고 그 손에는 이(利)한[날카로운] 낫을 가졌더라. 또 다른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와 구름 위에 앉은 이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외쳐 가로되 네 낫을 휘둘러 거두라. 거둘 때가 이르러 땅에 곡식이 다 익었음이로다 하니 구름 위에 앉으신 이가 낫을 땅에 휘두르매 곡식이 거두어지니라.
14-20절은 의인들과 악인들에 대한 마지막 심판을 상징적으로 보인다. 흰 구름 위에서 머리에 금 면류관을 쓰고 날카로운 낫을 들고 땅의 곡식을 거두는 인자(人子) 같은 이는 구름 타고 재림하실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고 본다. 그가 날카로운 낫을 들고 곡식을 베는 것은 성도들의 구원의 때 곧 천국에 들어갈 때가 되었음을 상징한다. 심판의 때는 성도들에게는 구원의 때이다. 가을에 곡식이 다 익으면 추수하여 창고에 들이듯이, 마지막 심판 때에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을 천국으로 들이신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에 대해 이렇게 증거하였다. 마태복음 3:11-12, “나는 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천국은 이 세상에서 성도들의 가장 큰 소망이요 참된 기쁨의 이유이다.
[17-20절] 또 다른 천사가 하늘에 있는 성전에서 나오는데 또한 이(利)한[날카로운] 낫를 가졌더라. 또 불을 다스리는 다른 천사가 제단으로부터 나와 이(利)한[날카로운] 낫 가진 자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불러 가로되, 네 이(利)한[날카로운] 낫을 휘둘러 땅의 포도송이를 거두라. 그 포도가 익었느니라 하더라. 천사가 낫을 땅에 휘둘러 땅의 포도를 거두어 하나님의 진노의 큰 포도주 틀에 던지매 성 밖에서 그 틀이 밟히니 틀에서 피가 나서 말굴레까지 닿았고 1천 6백 스다디온에 퍼졌더라.
날카로운 낫으로 땅의 포도송이를 거두는 것은 이 세상의 악한 자들을 심판하시는 것을 상징한다고 본다. 그들을 포도송이에 비유한 것은 그들이 마지막 큰 전쟁으로 많은 피를 흘리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피가 말굴레 즉 말의 목까지 튀는 것은 온 세상에 많은 사람들의 피가 흘려질 것을 암시한다. 인류의 마지막 전쟁, 마지막 세계 대전은 많은 사람들의 피를 흘리는 참혹한 전쟁이 될 것이다.
그 피는 1,600스다디온에 퍼질 것이다. 1스다디온은 약 184.2미터이므로 1,600스다디온은 약 294.7킬로미터, 즉 약 300킬로미터이다. 그것은 이스라엘 땅의 남북의 길이에 해당한다. 이스라엘 땅 전체에 많은 피가 흘려질 것이라는 뜻이라고 보인다. 악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은 심히 두려운 일이다. 그들이 경험할 전쟁은 매우 참혹할 것이다. 유브라데 강 주위에서 일어날 것으로 예언된 마지막 세계 대전은 지구 인구의 3분의 1이 죽게 될 참혹한 전쟁이 될 것이다(계 9:15). 하나님의 공의의 진노는 심히 두려울 것이다.
본문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우리는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이 복됨을 알아야 한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복음 신앙, 속죄 신앙을 가지고 죽는 것은 복되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천국에서의 참된 안식이 있고 그 선한 행실에 대한 하나님의 상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로, 구원받은 성도들은 추수한 곡식이 곳간에 저장되듯이 장차 천국에 들어갈 것이다. 성도에게는 복되고 영광스런 천국이 약속되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고 의와 선을 행하며 오히려 담대히 죽음을 사모해야 한다. 히브리서 11:35-38,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를 부활로 받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악형을 받되 구차히 면하지 아니하였으며 또 어떤 이들은 희롱과 채찍질 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험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에 죽는 것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세상이 가치가 있지 않도다].) 저희가 광야와 산중과 암혈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요한계시록 12:11, “또 여러 형제가 어린양의 피와 자기의 증거하는 말을 인하여 저를 이기었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고린도후서 5:8,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라.”
셋째로, 그러나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경외치 않고 섬기지 않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고 믿지 않고 살다가 죽는 자들에게는 화가 있을 것이다. 온 세상에 만연한 불경건과 우상숭배, 미움과 음란과 거짓은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죄악들이다. 악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것이다. 그것은 많은 사람들의 피를 흘리는 전쟁을 동반할 것이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고 모든 죄들을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 구주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며 순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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