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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독수리와 농구,아이스하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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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선린야구의 마지막 전성기 1980년
신동파와 필리핀 추천 1 조회 722 18.01.15 12:24 댓글 20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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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18.01.15 17:11

    첫댓글 생각하기도 싫은 81년의 우승팀을 살펴보면

    대통령기ㅡ우승~군산상고(조계현ㅡ1,장호익ㅡ3,이동석ㅡ2,이건열ㅡ3) 준우승~천안북일(김상국포수ㅡ3,안성수,김대중투수ㅡ2,하인수ㅡ3)

  • 작성자 18.01.15 17:14

    청룡기ㅡ우승~경북고(3학년ㅡ성 준,최무영,홍순호,권택재,구윤, 조광덕2학년ㅡ유중일,1학년ㅡ문병권)ㅡ선린보다 한수 아래로 평가되었으나 짜임새있는 팀컬러와 고비때마다 에러를 남발하는 선린의 박지원,김국진,조영일,조흥기덕택에 박노준과 김건우를 침몰시킴)

  • 18.01.15 17:16

    기억력이 상당히 좋으시네요.선린상고가 전력이 좋음에도 불구하고 에러 등으로 우승기회를 많이 날려 버린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 작성자 18.01.15 17:25

    저한테 81년은 악몽이었습니다.
    선린출신들은 초등학생한텐 지더라도 경북고에겐 콜드게임으로 이기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으니깐요.

  • 작성자 18.01.15 17:20

    봉황대기ㅡ경북고 우승
    선린상고 준우승
    박노준의 발목이 돌아가면서 선린의 운명도 뒤틀어짐ㅡ6대4로 경북승리

    황금사자기ㅡ경북고 우승
    광주진흥 준우승
    박노준과 김건우가없는 선린상고가 빠지자 경북이 손쉽게 우승하며 3관왕.
    광주진흥의 김정수투수는 연대로 진학하여 팀숙소를 여러번 이탈하고 게임에도 거의 나오지않는등 싱싱한 어깨를 가지고 해태에 입단

    화랑기(봉황기 직전에 열렸음)ㅡ신일고 우승(이재홍투수,서효인포수,민경삼유격수)
    선린상고ㅡ준우승ㅡ에러가 또 발목잡음

  • 18.01.15 17:27

    서울팀을 응원하는 저로서는 선린상고 야구의 흑역사는 마음아픈 일이었습니다.

  • 작성자 18.01.15 23:53

    저도 그때만 생각하면 가슴이 아픕니다.
    화끈한 공격야구까진 좋은데 수비가 너무 엉망이었습니다.
    주전10명이 3학년이었는데 그중 두명정도는 야구선수라 볼수없을 정도의 실력이었습니다
    구본호감독은 바로 짤리고 자취를 감추고 말았으니 아무 증거가 없지요.

  • 18.01.15 20:46

    81년 대붕기는 어디가 우승했나요?

  • 작성자 18.01.15 21:42

    세광고등학교가 우승 ㅡ인천고ㅡ80년도
    대구고우승ㅡ군산상고 준우승ㅡ81년도

  • 작성자 18.01.15 21:51

    화랑기는 몰라도 대붕기는 권위가 좀 떨어지더군요.
    이제는 화랑기ㅡ대붕기ㅡ무등기가 완전 폐지되었습니다

  • 18.01.16 03:35

    60년대부터 80년대 초반까지 선린상고에는 초고교급 선수로 불리며 일찍부터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선수들이 많이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고교 졸업 후에 대성한 선린출신 선수는 의외로 적은 것 같습니다.
    60년대 중반에 고교생 홈런왕으로 이름을 떨쳤던 김태석, 이영완 등 강타자들은 제일은행에 입단한 후에 두각을 보이지 못했고... 오히려 같은 시기에 조용히 제일은행에 입단했던 김우열 선수만이 실업야구 2, 3년차부터 홈런타자로 명성을 얻으며 국가대표선수로 크게 활약했었습니다.
    (선린출신 중에서는 60년대 졸업생인 김우열 선수가 첫 손으로 꼽을 레전드일 것 같네요. 그 다음에는 건대 72학번이었던 이해창 정도?...)

  • 18.01.16 03:37

    이상하리만큼 선린출신 선수들은 고교 졸업 후에 잘 풀리지 않은 아까운 선수들이 많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저만의 생각일까요?
    박노준은 고1 때인 79년 대통령배대회에서 최우수선수상을 받았고 고2 때인 80년 청룡기대회에서 또 최우수선수상을 받는 등 일찍부터 투타를 겸비한 초고교급선수로 그 명성과 인기가 하늘을 찔렀지만... 역시 이후에 큰 선수가 되지는 못했습니다.
    고교야구사에서는 가히 전설적인 선수로 꼽힐 만큼 인기가 높았던 박노준이었지만... 프로야구에 진출해서는 12시즌 동안 통산타율 0.262, 통산홈런 28에 100안타 이상을 친 시즌이 2회뿐인, 아주 평범한 선수였습니다.

  • 18.01.16 04:29

    네.아오이님의 기억도 선린상고 출신들이 졸업후에 많이 뻗어나가지 못한 선수들로 남아 있군요.안타깝네요.

  • 작성자 18.01.16 08:00

    선린선수중 유남호만큼 대학이나 실업에가서 추락한 선수도 없을겁니다.
    69년 고교전국대회를 싹쓸이하고 연대에 진학했지만 부진한 모습을 보였고 아마롯데에서도 거의 던지질 못했으니깐요.

  • 18.01.17 06:36

    저는 유지홍이 3루나 숏 스탑으로 기억 합니다. 김건우가 3루를 자주 하구요.. 선수는 얼마나 진정으로 아껴주는 감독이 만나느냐 못 만나느냐에 따라 선수의 미래가 크게 좌우 된다고 생각 합니다. 마산 상고와 결승전이 5대0 이었던가요. 그럼 13대 12로 이긴 경기는 다른 대회였나 보네요.. 마산상고가 또다른 준우승이 있었다는 사실이 너무 놀랐습니다.ㅎㅎ

  • 작성자 18.01.17 11:15

    1964,2014,21016,2017년 황금사자기에서 준우승만 무려 4번이나했습니다.
    용마고(마산상고)도 꼭 우승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유지홍은 1루수였고 유격수ㅡ이정철, 3루수에는 원래 김종호라는 62년생 강타자가 있었는데 80대통령배 광주일과의 대결에서 혼자 4개의 실책을 범하는 바람에 외야에있던 김건우를 3루수로 불러들입니다.
    그후 김종호는 대학에 진학후 야구를 그만둡니나.

  • 작성자 18.01.17 11:23

    2004년 대구에서 열린 대붕기에서 우승했지만 마산상고는 서울의 메이저4개대회에서는 준우승만 5번을 차지한 불운한 팀입니다.
    이제 용마고로 이름도 바뀌었으니 반드시 우승하리라 믿어의심치 않습니다.

  • 18.01.17 15:55

    그렇죠.. 그래서 핫코너 수비수들은 아주 중요하죠..서울팀들이 내야 수비에 문제가 있더군요. 최동원이 27승 하던날 직관했는데 mbc청용 3루 였나 1루였나.. 그쪽에 가면 그냥 에러 인거예요.. 정말 프로선수인가 이심이 들었습니다. 아마 루키 선수 였던거 같아요.. 아무리 초창기 프로야구 이지만 내야 백업이 그렇게 없을수가 앗나 싶더라구요..

  • 작성자 18.01.17 16:08

    맞습니다.
    마산용마가 작년과 재작년에 덕수한테 져서 준우승할때도 다 이긴걸 에러때문에 분위기 다운되면서 패한겁니다.
    경북ㅡ부산ㅡ덕수ㅡ광주일고 이런팀들은 얄이울정도로 수비가 강하고 짜임새있습니다.

  • 18.01.17 16:28

    그래야지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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